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25화
나는 그리 눈치가 나쁜 편은 아니다. 스승님께서 전하신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정도는 된다.
‘정말 궁금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 모든 것의 기본이라고 했으니 지금은 스승님께서 마지막에 가르쳐 주신 것에 집중하도록 하자.’
잡념이 생기는데도 심법을 운용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의문을 가질 바에야 스승님이 내게 주신 것들을 깊게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곳의 구조는 대강 알았고, 내가 파악을 한 대로라면 빠져나가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내 몸은 물론이고, 주변의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기에 빠져나가는 방법은 아주 손쉽게 알아냈다.
그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밀려 내려오는 폭포수의 힘을 이용해 10미터쯤 아래쪽으로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물살의 흐름으로 볼 때, 아래쪽에 물이 빠져나가는 물길이 있을 것이다.
떨어져 내리는 수량 때문인지 상당한 크기의 물길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용출될 것이 분명하다.
이 정도의 크기면 작은 샘 같은 것이 아니라 강바닥 같은 데서 많은 양이 용출될 것이다. 그러니 물길을 따라가면 빠져나가는 데는 문제가 없을 터였다.
‘후후후, 아무나 생각해 낼 수 있는 방법은 아니지만, 나는 충분히 가능하다.’
물속에서 호흡이 불편하지 않으니 생각해 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제부터 내 몸에만 집중하자. 녹색 광석이 무엇인지 알아봐야 할 것 같으니 말이다.’
단의 형성이 끝나가는 것 같아 혈맥에 스며들어 피와 함께 흐르고 있는 녹색 광석에 정신을 집중했다.
워낙 엄청나게 많은 양이라 수기와 섞여 단을 형성하고도 혈액 전부와 융합되어 있다. 피와 융합한 이유를 알게 되면 녹색 광석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녹색 광석에 대한 집중력을 잃지 않으며 그것이 보내오는 의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어떤 놈인지 본질을 알아내야 할 시간이다.
먼저 단전에 형성된 단을 살폈다. 수기와 결합한 이유를 찾아내기 위해서다.
‘스승님의 말씀처럼 세상의 기운이 뭉쳐 있는 것이 틀림없는 것 같구나.’
수기와 결합해 기운으로 바뀐 뒤, 단전으로 모여들어 단을 형성했다. 처음으로 만들어 본 단이지만 아주 단단한 느낌이 드는 것을 보면, 엄청난 기운이 응집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으음, 단전만이 아니구나.’
기운으로 변해 버린 녹색 광석이 뭉쳐지고 있는 곳은 단전만이 아니었다. 혈맥을 따라 흐르던 것들이 어느새 심장을 중심으로 뭉치고 있는 중이었다.
‘마치 말랑말랑한 진흙을 만지는 느낌이다.’
심장에 뭉쳐지고 있는 것은 느낌이 또 달랐다. 뭉쳐지고 있기는 하지만, 딱딱한 고체는 아니다. 유형화된 것은 분명하지만 조금 느슨한 상태다.
‘어떻게?’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내가 정신을 집중해 관조를 시작하자 변화가 일어났다.
두근! 두근!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심상치 않은 맥동이 시작됐다.
녹색 광석이 전체를 아우르며 천천히 심장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정말이지, 이건 예상하지 못한 변화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신물이라고는 하지만 사람의 세포를 자신과 동화시켜 바꾸어 버리다니, 믿지 못할 기사가 아닐 수 없다.
‘서, 설마! 내가 사람이 아니게 되는 것인가?’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두근! 두근!
혹시나 하는 생각에 불안감이 일자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맥동하는 심장 소리가 마치…….’
두근거리는 소리가 정말 이상했다. 심장의 두근거림이 마치 걱정하지 말라고 나를 위로하는 것 같다. 자신과 내가 하나라 말하는 것 같은 의지가 읽혀진 순간, 불안감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어차피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다. 조금 더 집중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불안감이 사라지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나에게 기회가 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기에 정신을 더욱 바짝 차렸다.
심장은 녹색 광석으로 인해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갔다. 세포 하나하나를 변화시켜 녹색 광석과 같은 형태가 됐다.
변화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단전에서처럼 기운이 뭉쳐 회전을 시작하더니, 심장을 중심으로 둥그런 공처럼 뭉쳐지고 있다.
‘하단전과 심장에 쌓이는 기운이 더욱 커지고 있다. 어쩌면…….’
심장에도 단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더욱 집중을 했다. 단이 형성되는 과정은 너무도 황홀했다.
단전에 단이 만들어질 때는 몰랐는데, 이번에는 알 것 같다. 녹색 광석이 가진 본질에 대해서다.
이제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알아도 된다는 듯 많은 것을 알려왔다.
‘녹령?’
광산에서 채굴된 것이기는 하지만 광석이 아니라 영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운의 응집체이자 의지를 가지며, 녹령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아!’
녹령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드러낸 신물에 집중을 하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렸다.
이전보다 두 배나 커진 단전의 단과 심장의 단을 느끼는 찰나였다.
‘이런,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집중에 집중을 거듭하고 있는 터라 시간이 지나가는 것도 몰랐다.
‘이제 이것도 거의 끝이구나.’
수기가 흡수되는 양이 상당히 줄어 있었다.
처음에는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오더니, 이제는 샘에서 솟아나는 물줄기보다 적었다.
‘이제는 끝낼 때가 됐다.’
녹령이 결합하는 양도 현저히 줄어들어 흡수를 중단해야 할 것 같다. 숨을 쉬지 않으면 죽으니 기운의 흡수만 멈추고 피부호흡은 계속했다.
몸 상태를 살폈다. 녹령 덕분에 상태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많이도 변했군.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는지… 참.’
제대로 먹지 못해 비쩍 마른 체형에 키도 난쟁이 똥자루만 했는데, 완전히 달라졌다. 먹은 것도 없는데 신기한 일이다. 키는 30센티미터는 더 커졌고, 살도 많이 붙은 모습이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그래봐야 겨우 사나흘일 텐데 이 정도로 변하다니. 확실히 스승님이 말씀하신 대로 신물이 이적을 행하는 것이 분명하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지만, 기적 같은 일이 생겼다. 신물이 아니라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적당히 시간도 지났으니 이제 밖으로 나가보자.’
추적하던 놈들도 지쳐서 포기할 시간이기에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던 수기도 많이 사라지고 없기에 움직이는 데는 별다른 지장이 없었다.
회전하는 물길을 느끼며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수의 힘을 받기 위해 손발을 놀려 위로 올라갔다.
상당한 압력이 느껴졌지만, 그리 어렵지 않게 빙글 돌며 회전하는 물길을 따라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위로 올라가는 동안 여기저기 바위에 부딪쳤다. 제법 날카로운 것도 있었는데, 그다지 아프지도 않고 상처가 나지도 않았다.
‘압력이 상당했는데 그저 거센 물결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렇고, 상처가 하나도 나지 않은 것을 보니 괴물처럼 튼튼해진 모양이구나.’
녹령과 수기로 인해 몸이 강철처럼 변한 모양이다. 나로서는 잘된 일이다.
‘저걸 잡고 기다리자.’
대충 목표한 곳에 올라온 후 튀어나온 바위를 양손으로 움켜잡고서 기회를 기다렸다. 떨어져 내리는 폭포수의 압력을 그대로 받을 수 있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콰르르르!
‘지금이다.’
물길이 약간 비틀리는 순간, 쏟아지는 폭포수의 물살 속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내려간다.’
밑으로 쑥 꺼지는 물살을 타며 재빠르게 손발을 놀렸다. 조금 전까지 내가 머물고 있던 곳을 빠르게 지나쳐 더욱 아래로 내려갔다.
‘어!’
물살에 몸이 휩쓸렸다. 회전하는 것이 아니라 지하 공동을 빠져나가는 물 때문에 발생한 물살이다. 하수구에 물이 빠지는 것처럼 물살을 따라 지하 깊은 곳으로 흘러 들어갔다.
상당히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여긴 더 엄청나구나.’
지하로 내려갈수록 수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수만 년을 흘러 들어온 강물 때문에 쌓인 수기가 분명했다.
두근! 두근!
심장이 급하게 뛰기 시작한다. 사라졌던 수기를 다시 느끼기 시작한 탓이었다.
‘어차피 언제 용출되어 밖으로 나갈 수 있을지 모르니, 심법과 함께 호흡이나 계속하자.’
혈맥 속에는 녹령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기운으로 변하지 않은 탓에 조금 찜찜하다. 무엇보다 언제 밖으로 빠져나가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곧바로 빠져나갈 수도 있고, 지하 수맥을 따라 흐르다가 한참 후에나 빠져나갈 수도 있다.
심법을 운용하면 수기도 얻을 수 있고, 녹령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으니, 스승님께서 가르쳐 주신 심법에 집중하기로 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자연지기가 모인다는 무극지일 확률이 아주 높으니 말이다.
아주 빠르게 물살을 타고 흘러가다가 몸이 멈췄다.
‘멈춘 것이 아니구나.’
자세히 느껴보니 몸이 멈춘 것이 아니라 물살이 지극히 느려진 것이었다. 거대한 지하 호수를 만난 것이다.
수기를 흡수하는 것은 어느새 끝이 나 있었다.
무아지경에 빠져 정신없이 수기를 흡수했는데, 주변에 수기가 얼마 없어지자 다시 인지가 돌아온 모양이다.
눈을 떠보니 거대한 공동이 보인다. 나는 공동의 천장을 바라보며 지하 호수 위에 떠 있는 중이었다.
“으음, 마치 별 같구나.”
공동의 천장에는 마치 별처럼 반짝이는 것들이 박혀 있었다.
희미하게나마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것도 저 반짝이는 것들 때문이었다.
“후후후, 야명주라도 되는 건가?”
스팟이 생긴 이후로 중심지 근처에서는 신기한 보석들이 발견되고는 했다.
수용소에서 관리하던 광산처럼 다이아몬드 같은 일반적인 보석이 발견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경우고, 도저히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특이한 보석들이 발견되는 곳도 있다는 사실을 아저씨들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천장에 박혀 있는 것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이라면 스팟이 형성된 곳에서 생겨난 특이한 보석일 가능성이 높았다.
“으음, 그렇다면 이곳이 스팟이라는 말인데……. 내가 생각하는 대로 저 위에서 반짝이는 것이 특별한 보석이라면, 이곳에 게이트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스팟이라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보석과 게이트다. 특이한 보석이 있다면 근처에 게이트도 형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문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이냐, 왕래할 수 있는 곳이냐는 것인데 말이야.”
게이트가 있는 스팟으로 흘러 들어온 것이 천운인지, 아니면 악연인지 모르겠다. 게이트가 형성되어 있을 가능성은 높은데, 어떤 종류의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디 종류를 알아볼 수 있는지 확인해 보자.”
수용소 내에서 내력을 키우지 못하고 본격적인 수련을 하지 못하는 대신 집중한 것이 있다. 바로 초상감각을 깨우는 수련이다.
정신만으로 주변을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수련을 쌓은 탓에 남보다 뛰어난 감각을 소유하고 있는 나다.
스승님으로부터 게이트의 종류를 탐지하는 법을 배웠었다.
“양쪽으로 열린 게이트의 경우에는 기운이 교차하며 흐른다고 하셨지. 한쪽으로만 열린 것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
새롭게 나온 감지기들은 이런 점에 착안해 만들어진다고 했다. 게이트별로 교차하거나 흐르는 기운의 종류가 다르기에 상당한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지만, 제일 확실한 방법이었다.
너무 미세한 양이라 주변에 흐르는 일반적인 기운과 혼동이 될 뿐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기운이 아닌 것도 많아 능력자들도 쉽게 느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주 미세한 양이라고 했으니 집중을 해야 한다.
‘다행이군.’
오랫동안 머물러 있던 수기 때문인지 이곳에 기운 대부분이 물 속성의 기운을 띠고 있다.
같은 속성이라면 찾을 수 없겠지만, 만약 다른 종류의 것이라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감각을 확장해 나갔다. 물 속성인 기운은 가차 없이 제거해 나갔다.
‘빠르고 넓어졌다. 더 명확하기도 하고.’
수용소에 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감각이다. 굳이 정신을 집중하지 않아도 주변의 기운이 명확하게 느껴진다. 심상으로 형상화해 바라보는 느낌도 더 선명하다.
이내 감각에 걸리는 것이 나왔다. 지하 호수의 한가운데 섬 같은 공간이 존재했다.
사방 10미터 정도 되는 암반이 호수 중앙에 솟아 있다. 그 위로 미세한 기운이 교차하며 흐르고 있다. 주변을 가득 채운 물 속성과는 전혀 다른 기운이다.
‘으음, 저기구나. 다행이다. 양쪽으로 열린 게이트다.’
게이트 안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른 세계일 수도 있고, 아니면 같은 지구의 다른 곳일 수도 있다.
‘그래도 가봐야겠지.’
천천히 팔을 휘저었다. 수영을 배운 적은 없지만, 수기를 통해 물의 성질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 터라 빠르게 암반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나는 지체 없이 암반 위로 올라갔다.
완만히 경사가 져 있는 형태로 봤을 때, 마치 산처럼 물속에서부터 솟아오른 형태다.
대략 10미터의 타원형인 평평한 암반 위에는 기운이 양쪽으로 교차하며 흐르고 있었다.
‘게이트를 열려면…….’
중심부로 가서 기운을 이용해 흐름을 조절해야 게이트가 열린다.
스승님께 이미 배운 것이지만 실제로는 처음 해보는 것이라서 그런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천천히 심법을 운용하며 기운의 흐름을 느꼈다.
‘생각보다 쉽군.’
단전과 심장에 자리한 단들로 인해 흐름을 느끼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번쩍!
게이트의 기운과 내가 흘려보낸 기운의 파동이 일치하자 천장에서 빛나던 보석들이 일제히 빛을 내뿜었다.
‘우와! 장관이다.’
사방에서 빛이 내리고 있다. 은하수라 일컬어지는 별들의 향연은 저리 가라고 할 만큼 장관이다.
내려온 빛들은 모두 암반 위에 있는 나를 향하고 있었다.
수많은 빛에 휩싸인 모습이 장관일 텐데, 내가 직접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우우우웅!
작은 진동과 함께 공간이 일렁이며 타원형으로 된 게이트가 열렸다.
‘들어가 볼까?’
호기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도 모르게 걸음을 옮겼다.
안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꼭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기도 했다.
희미한 빛으로 이루어진 게이트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자, 마치 누가 날 잡아당기는 것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상당한 거리를 나아가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다른 쪽의 게이트가 나타나는 일렁임 뒤로 환한 햇살이 느껴진다. 다른 세상이 머지않았다.
나는 그리 눈치가 나쁜 편은 아니다. 스승님께서 전하신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정도는 된다.
‘정말 궁금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 모든 것의 기본이라고 했으니 지금은 스승님께서 마지막에 가르쳐 주신 것에 집중하도록 하자.’
잡념이 생기는데도 심법을 운용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의문을 가질 바에야 스승님이 내게 주신 것들을 깊게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곳의 구조는 대강 알았고, 내가 파악을 한 대로라면 빠져나가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내 몸은 물론이고, 주변의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기에 빠져나가는 방법은 아주 손쉽게 알아냈다.
그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밀려 내려오는 폭포수의 힘을 이용해 10미터쯤 아래쪽으로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물살의 흐름으로 볼 때, 아래쪽에 물이 빠져나가는 물길이 있을 것이다.
떨어져 내리는 수량 때문인지 상당한 크기의 물길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용출될 것이 분명하다.
이 정도의 크기면 작은 샘 같은 것이 아니라 강바닥 같은 데서 많은 양이 용출될 것이다. 그러니 물길을 따라가면 빠져나가는 데는 문제가 없을 터였다.
‘후후후, 아무나 생각해 낼 수 있는 방법은 아니지만, 나는 충분히 가능하다.’
물속에서 호흡이 불편하지 않으니 생각해 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제부터 내 몸에만 집중하자. 녹색 광석이 무엇인지 알아봐야 할 것 같으니 말이다.’
단의 형성이 끝나가는 것 같아 혈맥에 스며들어 피와 함께 흐르고 있는 녹색 광석에 정신을 집중했다.
워낙 엄청나게 많은 양이라 수기와 섞여 단을 형성하고도 혈액 전부와 융합되어 있다. 피와 융합한 이유를 알게 되면 녹색 광석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녹색 광석에 대한 집중력을 잃지 않으며 그것이 보내오는 의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어떤 놈인지 본질을 알아내야 할 시간이다.
먼저 단전에 형성된 단을 살폈다. 수기와 결합한 이유를 찾아내기 위해서다.
‘스승님의 말씀처럼 세상의 기운이 뭉쳐 있는 것이 틀림없는 것 같구나.’
수기와 결합해 기운으로 바뀐 뒤, 단전으로 모여들어 단을 형성했다. 처음으로 만들어 본 단이지만 아주 단단한 느낌이 드는 것을 보면, 엄청난 기운이 응집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으음, 단전만이 아니구나.’
기운으로 변해 버린 녹색 광석이 뭉쳐지고 있는 곳은 단전만이 아니었다. 혈맥을 따라 흐르던 것들이 어느새 심장을 중심으로 뭉치고 있는 중이었다.
‘마치 말랑말랑한 진흙을 만지는 느낌이다.’
심장에 뭉쳐지고 있는 것은 느낌이 또 달랐다. 뭉쳐지고 있기는 하지만, 딱딱한 고체는 아니다. 유형화된 것은 분명하지만 조금 느슨한 상태다.
‘어떻게?’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내가 정신을 집중해 관조를 시작하자 변화가 일어났다.
두근! 두근!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심상치 않은 맥동이 시작됐다.
녹색 광석이 전체를 아우르며 천천히 심장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정말이지, 이건 예상하지 못한 변화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신물이라고는 하지만 사람의 세포를 자신과 동화시켜 바꾸어 버리다니, 믿지 못할 기사가 아닐 수 없다.
‘서, 설마! 내가 사람이 아니게 되는 것인가?’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두근! 두근!
혹시나 하는 생각에 불안감이 일자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맥동하는 심장 소리가 마치…….’
두근거리는 소리가 정말 이상했다. 심장의 두근거림이 마치 걱정하지 말라고 나를 위로하는 것 같다. 자신과 내가 하나라 말하는 것 같은 의지가 읽혀진 순간, 불안감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어차피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다. 조금 더 집중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불안감이 사라지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나에게 기회가 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기에 정신을 더욱 바짝 차렸다.
심장은 녹색 광석으로 인해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갔다. 세포 하나하나를 변화시켜 녹색 광석과 같은 형태가 됐다.
변화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단전에서처럼 기운이 뭉쳐 회전을 시작하더니, 심장을 중심으로 둥그런 공처럼 뭉쳐지고 있다.
‘하단전과 심장에 쌓이는 기운이 더욱 커지고 있다. 어쩌면…….’
심장에도 단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더욱 집중을 했다. 단이 형성되는 과정은 너무도 황홀했다.
단전에 단이 만들어질 때는 몰랐는데, 이번에는 알 것 같다. 녹색 광석이 가진 본질에 대해서다.
이제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알아도 된다는 듯 많은 것을 알려왔다.
‘녹령?’
광산에서 채굴된 것이기는 하지만 광석이 아니라 영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운의 응집체이자 의지를 가지며, 녹령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아!’
녹령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드러낸 신물에 집중을 하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렸다.
이전보다 두 배나 커진 단전의 단과 심장의 단을 느끼는 찰나였다.
‘이런,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집중에 집중을 거듭하고 있는 터라 시간이 지나가는 것도 몰랐다.
‘이제 이것도 거의 끝이구나.’
수기가 흡수되는 양이 상당히 줄어 있었다.
처음에는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오더니, 이제는 샘에서 솟아나는 물줄기보다 적었다.
‘이제는 끝낼 때가 됐다.’
녹령이 결합하는 양도 현저히 줄어들어 흡수를 중단해야 할 것 같다. 숨을 쉬지 않으면 죽으니 기운의 흡수만 멈추고 피부호흡은 계속했다.
몸 상태를 살폈다. 녹령 덕분에 상태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많이도 변했군.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는지… 참.’
제대로 먹지 못해 비쩍 마른 체형에 키도 난쟁이 똥자루만 했는데, 완전히 달라졌다. 먹은 것도 없는데 신기한 일이다. 키는 30센티미터는 더 커졌고, 살도 많이 붙은 모습이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그래봐야 겨우 사나흘일 텐데 이 정도로 변하다니. 확실히 스승님이 말씀하신 대로 신물이 이적을 행하는 것이 분명하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지만, 기적 같은 일이 생겼다. 신물이 아니라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적당히 시간도 지났으니 이제 밖으로 나가보자.’
추적하던 놈들도 지쳐서 포기할 시간이기에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던 수기도 많이 사라지고 없기에 움직이는 데는 별다른 지장이 없었다.
회전하는 물길을 느끼며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수의 힘을 받기 위해 손발을 놀려 위로 올라갔다.
상당한 압력이 느껴졌지만, 그리 어렵지 않게 빙글 돌며 회전하는 물길을 따라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위로 올라가는 동안 여기저기 바위에 부딪쳤다. 제법 날카로운 것도 있었는데, 그다지 아프지도 않고 상처가 나지도 않았다.
‘압력이 상당했는데 그저 거센 물결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렇고, 상처가 하나도 나지 않은 것을 보니 괴물처럼 튼튼해진 모양이구나.’
녹령과 수기로 인해 몸이 강철처럼 변한 모양이다. 나로서는 잘된 일이다.
‘저걸 잡고 기다리자.’
대충 목표한 곳에 올라온 후 튀어나온 바위를 양손으로 움켜잡고서 기회를 기다렸다. 떨어져 내리는 폭포수의 압력을 그대로 받을 수 있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콰르르르!
‘지금이다.’
물길이 약간 비틀리는 순간, 쏟아지는 폭포수의 물살 속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내려간다.’
밑으로 쑥 꺼지는 물살을 타며 재빠르게 손발을 놀렸다. 조금 전까지 내가 머물고 있던 곳을 빠르게 지나쳐 더욱 아래로 내려갔다.
‘어!’
물살에 몸이 휩쓸렸다. 회전하는 것이 아니라 지하 공동을 빠져나가는 물 때문에 발생한 물살이다. 하수구에 물이 빠지는 것처럼 물살을 따라 지하 깊은 곳으로 흘러 들어갔다.
상당히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여긴 더 엄청나구나.’
지하로 내려갈수록 수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수만 년을 흘러 들어온 강물 때문에 쌓인 수기가 분명했다.
두근! 두근!
심장이 급하게 뛰기 시작한다. 사라졌던 수기를 다시 느끼기 시작한 탓이었다.
‘어차피 언제 용출되어 밖으로 나갈 수 있을지 모르니, 심법과 함께 호흡이나 계속하자.’
혈맥 속에는 녹령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기운으로 변하지 않은 탓에 조금 찜찜하다. 무엇보다 언제 밖으로 빠져나가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곧바로 빠져나갈 수도 있고, 지하 수맥을 따라 흐르다가 한참 후에나 빠져나갈 수도 있다.
심법을 운용하면 수기도 얻을 수 있고, 녹령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으니, 스승님께서 가르쳐 주신 심법에 집중하기로 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자연지기가 모인다는 무극지일 확률이 아주 높으니 말이다.
아주 빠르게 물살을 타고 흘러가다가 몸이 멈췄다.
‘멈춘 것이 아니구나.’
자세히 느껴보니 몸이 멈춘 것이 아니라 물살이 지극히 느려진 것이었다. 거대한 지하 호수를 만난 것이다.
수기를 흡수하는 것은 어느새 끝이 나 있었다.
무아지경에 빠져 정신없이 수기를 흡수했는데, 주변에 수기가 얼마 없어지자 다시 인지가 돌아온 모양이다.
눈을 떠보니 거대한 공동이 보인다. 나는 공동의 천장을 바라보며 지하 호수 위에 떠 있는 중이었다.
“으음, 마치 별 같구나.”
공동의 천장에는 마치 별처럼 반짝이는 것들이 박혀 있었다.
희미하게나마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것도 저 반짝이는 것들 때문이었다.
“후후후, 야명주라도 되는 건가?”
스팟이 생긴 이후로 중심지 근처에서는 신기한 보석들이 발견되고는 했다.
수용소에서 관리하던 광산처럼 다이아몬드 같은 일반적인 보석이 발견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경우고, 도저히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특이한 보석들이 발견되는 곳도 있다는 사실을 아저씨들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천장에 박혀 있는 것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이라면 스팟이 형성된 곳에서 생겨난 특이한 보석일 가능성이 높았다.
“으음, 그렇다면 이곳이 스팟이라는 말인데……. 내가 생각하는 대로 저 위에서 반짝이는 것이 특별한 보석이라면, 이곳에 게이트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스팟이라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보석과 게이트다. 특이한 보석이 있다면 근처에 게이트도 형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문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이냐, 왕래할 수 있는 곳이냐는 것인데 말이야.”
게이트가 있는 스팟으로 흘러 들어온 것이 천운인지, 아니면 악연인지 모르겠다. 게이트가 형성되어 있을 가능성은 높은데, 어떤 종류의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디 종류를 알아볼 수 있는지 확인해 보자.”
수용소 내에서 내력을 키우지 못하고 본격적인 수련을 하지 못하는 대신 집중한 것이 있다. 바로 초상감각을 깨우는 수련이다.
정신만으로 주변을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수련을 쌓은 탓에 남보다 뛰어난 감각을 소유하고 있는 나다.
스승님으로부터 게이트의 종류를 탐지하는 법을 배웠었다.
“양쪽으로 열린 게이트의 경우에는 기운이 교차하며 흐른다고 하셨지. 한쪽으로만 열린 것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
새롭게 나온 감지기들은 이런 점에 착안해 만들어진다고 했다. 게이트별로 교차하거나 흐르는 기운의 종류가 다르기에 상당한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지만, 제일 확실한 방법이었다.
너무 미세한 양이라 주변에 흐르는 일반적인 기운과 혼동이 될 뿐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기운이 아닌 것도 많아 능력자들도 쉽게 느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주 미세한 양이라고 했으니 집중을 해야 한다.
‘다행이군.’
오랫동안 머물러 있던 수기 때문인지 이곳에 기운 대부분이 물 속성의 기운을 띠고 있다.
같은 속성이라면 찾을 수 없겠지만, 만약 다른 종류의 것이라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감각을 확장해 나갔다. 물 속성인 기운은 가차 없이 제거해 나갔다.
‘빠르고 넓어졌다. 더 명확하기도 하고.’
수용소에 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감각이다. 굳이 정신을 집중하지 않아도 주변의 기운이 명확하게 느껴진다. 심상으로 형상화해 바라보는 느낌도 더 선명하다.
이내 감각에 걸리는 것이 나왔다. 지하 호수의 한가운데 섬 같은 공간이 존재했다.
사방 10미터 정도 되는 암반이 호수 중앙에 솟아 있다. 그 위로 미세한 기운이 교차하며 흐르고 있다. 주변을 가득 채운 물 속성과는 전혀 다른 기운이다.
‘으음, 저기구나. 다행이다. 양쪽으로 열린 게이트다.’
게이트 안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른 세계일 수도 있고, 아니면 같은 지구의 다른 곳일 수도 있다.
‘그래도 가봐야겠지.’
천천히 팔을 휘저었다. 수영을 배운 적은 없지만, 수기를 통해 물의 성질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 터라 빠르게 암반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나는 지체 없이 암반 위로 올라갔다.
완만히 경사가 져 있는 형태로 봤을 때, 마치 산처럼 물속에서부터 솟아오른 형태다.
대략 10미터의 타원형인 평평한 암반 위에는 기운이 양쪽으로 교차하며 흐르고 있었다.
‘게이트를 열려면…….’
중심부로 가서 기운을 이용해 흐름을 조절해야 게이트가 열린다.
스승님께 이미 배운 것이지만 실제로는 처음 해보는 것이라서 그런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천천히 심법을 운용하며 기운의 흐름을 느꼈다.
‘생각보다 쉽군.’
단전과 심장에 자리한 단들로 인해 흐름을 느끼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번쩍!
게이트의 기운과 내가 흘려보낸 기운의 파동이 일치하자 천장에서 빛나던 보석들이 일제히 빛을 내뿜었다.
‘우와! 장관이다.’
사방에서 빛이 내리고 있다. 은하수라 일컬어지는 별들의 향연은 저리 가라고 할 만큼 장관이다.
내려온 빛들은 모두 암반 위에 있는 나를 향하고 있었다.
수많은 빛에 휩싸인 모습이 장관일 텐데, 내가 직접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우우우웅!
작은 진동과 함께 공간이 일렁이며 타원형으로 된 게이트가 열렸다.
‘들어가 볼까?’
호기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도 모르게 걸음을 옮겼다.
안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꼭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기도 했다.
희미한 빛으로 이루어진 게이트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자, 마치 누가 날 잡아당기는 것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상당한 거리를 나아가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다른 쪽의 게이트가 나타나는 일렁임 뒤로 환한 햇살이 느껴진다. 다른 세상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