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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제6장


몇 년 전 대한민국이 점령을 당할 당시, 유일하게 함락을 당하지 않은 곳이 제주도였다고 들었다. 스팟이 나타나지 않은 유일한 곳이 제주도였기 때문이다.
해군 전력을 비롯해 상당수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고, 때마침 미국과 일본이 급파한 병력이 있어 무사할 수 있었다고 했는데, 그만 제주도마저 점령을 당한 모양이다.
“제주도가 함락을 당했다니…….”
“갑자기 나타난 강습함이 상륙을 주도했고, 강력한 공군력으로 인해 미군과 일본군이 패주했지. 얼마 버티지도 못하더군. 많은 사람들이 어선을 이용해 탈출했지만, 대부분은 사로잡혀 북으로 끌려왔소.”
“그렇군요. 그러면 오시는 동안 남쪽은 어땠습니까?”
“잘 모르겠소. 우리는 모두 배로 끌려왔으니 말이오.”
“그렇군요. 다들 놀라셨을 테니, 좀 쉬십시오.”
“고맙소.”
강신 아저씨는 할아버지들을 쉬도록 했다.
‘저 할아버지는 날 왜 쳐다보는 거지?’
쉬고 있던 할아버지 한 분이 날 물끄러미 바라보신다.
“아가, 네 이름이 뭐냐?”
“차훈이요, 박차훈.”
“박차훈이라…….”
할아버지가 뭔가 생각에 잠기신다.
“부모님은 없느냐?”
“지금은 안 계세요.”
“그럼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도 안 계세요.”
“그렇구나. 알았다.”
할아버지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눈을 감으셨다. 뭔가 생각을 할 것이 있나 봤더니 벽에 등을 기댄 채 앉아서 잠을 주무신다. 꽤나 재미있는 할아버지다.

정진호는 잠을 자는 것이 아니었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잠을 자는 척했을 뿐이다.
‘자네도 이곳에 끌려왔던 모양이군. 척 봐도 자네 손자인 걸 보면 말이야.’
정진호는 어린 차훈의 모습에서 친우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어린 시절 같이 뛰어놀던 친구의 모습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차훈이라는 이름도 며느리가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듣고 자신이 친우를 위해 지어준 것이었다.
‘그나저나 자네가 가다니…….’
정진호는 가슴이 답답했다.
살아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친우가 죽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군에 들어가 무예를 익힌 터라 살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무지막지한 곳이라면 자네라도 견디기 힘들었겠지. 놈들이 배후에 있다면 자네의 무예가 높아졌다고 하더라도 탈출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테니까 말이야.’
정진호는 한반도 곳곳에 스팟이 생성되는 것을 보고 조사를 시작한 후, 누군가 인위적으로 스팟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대륙판의 경계에 놓여 있어 지형상 스팟이 생성되지 못하는 제주도로 급히 피신한 후 내막을 알아보았다.
스팟을 생성시키고 일부러 정보를 유출해 군대가 스팟을 탐색하도록 유도한 세력은 북쪽을 장악하고 있는 매영의 지령을 받고 있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을 동원해 깊이 파고들어 보니 매영 또한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나름대로 그에 대비할 준비를 했다.
그렇게 필사의 노력을 기울여 준비를 모두 마쳤건만, 조직의 배신자로 인해 제주도를 탈출할 기회를 놓친 정진호였다.
가지고 있는 능력을 모두 쏟아부은 터라 빈껍데기만 남은 그로서는 자력으로 제주도를 탈출할 수 없었고, 신분만 감춘 채 이곳까지 끌려와야 했다.
‘후후후, 여기 와서 저 아이를 만나다니…….’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친우의 손자를 만나니 한 가닥 희망이 보였다.
마치 운명의 안배 같았기 때문이다.
‘자네가 이 세상을 등졌다면, 얼마 남지 않은 삶이지만 차훈이는 내가 돌보도록 하겠네.’
남아 있는 시간은 길어야 10년이지만, 충분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전할 수는 없겠지만, 중요한 것은 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차훈이를 건사하려면 조금이나마 능력을 찾아야 한다. 자연지기가 강한 곳이니 잘하면 일부나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능력을 잃었지만 감마저 죽은 것은 아니다.
주변에 휘돌고 있는 기운이 예사로운 것이 아니니, 전부는 아니지만 능력을 되찾을 수 있을 터였다.
‘능력을 일부 찾는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저 아이를 위해서는 뭔가 할 수 있겠지. 일단 쉬면서 생각하도록 하자. 체력을 회복하며 내상을 치료하는 것이 우선이다.’
정진호는 아픔을 참으며 예전의 자신을 있게 한 심법을 운용했다. 찢어지는 고통이 가슴에 엄습했지만, 이를 악물며 참았다.

이상한 분이시다. 금방 잠이 드는 것 같았는데 인상을 쓰다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아무래도 잠자는 것 같지는 않다.
할아버지처럼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몸 주변에 맴돌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심법 같은 것을 운용하시는 건가?’
기운이 주변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맴돈다. 그러면서 몸속을 정기적으로 드나든다. 할아버지가 나에게 가르쳐 주신 것과 같은 심법을 운용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심법을 운용할 때 누군가 건드리면 큰일이 난다고 했는데, 정말 태평한 양반이다. 이런 곳에서 운용을 하다니.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내가 지켜 드려야지.’
인상을 쓰는 것을 보면 내상을 입으신 것 같다. 저런 상태에서 무리하게 심법을 운용하다가 누군가 건드리면 곧바로 죽는다. 내가 지켜 드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먼저 바로 앞에 앉았다. 벽을 기대고 있으시니 내가 앞에 버티고 있다면 누군가 다가와 건드릴 염려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씨, 배고파 죽겠네.’
일을 하지 않으면 배급을 주지 않는다고 하더니, 정말이다. 막사에 있는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렇지만 내 뒤에서 심법을 운용하고 있는 분에게는 다행이다. 모두 조용히 배급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으으, 호흡이 안정적으로 변한 것을 보니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되겠다.’
사실 오줌도 마려워 죽겠다. 심법을 끝내시지 않아 자리를 뜰 수 없어 오줌을 누러 가지도 못했다.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하니 더 마려운 것 같다.
“차훈아.”
날 부르시는 것을 보니 심법 운용이 드디어 끝난 모양이다.
“예.”
“계속 이러고 앉아 있던 모양이구나.”
“예.”
“고맙구나. 내가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할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모양이구나.”
“예? 아, 아니요.”
황급히 부인을 했다. 절대 비밀로 하라고 할아버지가 당부하셨는데, 큰일이다. 누군가 들었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근처에 아무도 없다. 강신 아저씨가 밖으로 나간 이후 사람들의 이목이 밖으로 쏠려 있어 다행이다. 할아버지도 우리 주변에 사람이 없음을 알고 물으신 모양이다.
“걱정하지 말거라. 네 할아버지와 나는 친구였으니 말이다.”
“친구요?”
“그래. 이름은 알려줄 수 없다만, 천호라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면 믿겠느냐?”
“할아버지도 천호를 알고 계세요?”
“그래. 믿지 못하겠지만, 알고 있단다. 그리고 너희 할아버지와 나는 같은 스승을 모신 사이란다.”
“아! 그럼.”
이분을 알 것 같다. 심법을 수련하다가 언젠가 할아버지가 말씀해 주셨다. 무예를 같이 배운 친구가 있다고 말이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이름을 알려주실 수 없다고 했는데, 이분도 같은 말씀을 하신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친구분이 틀림없는 것 같다.
“나를 아는 모양이구나.”
“할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셨어요.”
“나를 믿느냐?”
“예. 이 세상에서 할아버지가 유일하게 믿고 있는 분이라고 하셨어요.”
“하하하, 그랬구나. 앞으로 나를 할아버지처럼 여기려무나.”
“고마워요, 할아버지.”
어쩐지 정이 가더라니, 정말 고마운 분이시다. 아저씨들이 나를 지켜주고 있어도 조금은 힘들었는데, 정말 다행이다.
“할아버지는 어떻게 됐느냐?”
“여기서 말씀드리는 것은 곤란해요.”
“그러냐? 그럼 시간이 날 때 말을 좀 해주려무나.”
“예, 할아버지.”
스팟과 게이트에 관해서, 특히 할아버지와 부모님에 관해서는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기에 다음으로 미뤘다. 말 못할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아신 듯 더 이상 묻지 않으신다.
때마침 밖으로 나갔던 강신 아저씨가 돌아오셨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괜찮네. 밖에 나갔다가 온 모양인데, 무슨 일인가?”
“앞으로 작업할 내용과 지켜야 할 수칙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왔습니다. 그런데 전에 있던 수용소보다는 지내기가 조금 더 힘들 것 같습니다.”
“으음, 내가 수용소가 처음이라 그런데, 어떻게 지내야 하는 건가?”
“모두 들어야 하니까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다들 이곳으로 모이십시오!”
강신 아저씨가 사람들을 불러 모을 필요도 없이 어느새 주변이 가득 찼다.
“지금부터 들은 것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광산 작업은 아침 일곱 시부터 시작이 돼서 저녁 아홉 시까지입니다. 취침은 식사 후 열 시에 하게 됩니다. 아까 경비대장이 말한 것처럼 일하지 않게 되면 저녁 식사만 가능합니다. 다들 잘 알아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휴우.”
“에고.”
사람들이 한숨을 쉬며 자신이 자는 자리로 되돌아갔다. 사람들이 멀어지자 유찬 아저씨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전에는 여덟 시부터 시작해 여섯 시면 끝났는데… 힘들겠군. 네 시간이나 늘었으니 말이야.”
“그렇겠지.”
“석탄 분진 때문에 자칫 폐에 병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걱정이로군.”
유찬 아저씨가 인상을 쓰며 말끝을 흐렸다.
“일방적인 지시였네. 어겼다가는 아까 맞아서 죽어 나간 사람들 꼴이 될 것이라고 말을 하더군.”
“개새끼들!”
“다행인 것은 방진 마스크를 준다고 하네. 그리고 석탄 말고 다른 광물도 있다고 하더군. 그런 것을 캐면 하루 휴식을 준다고 하더라고.”
“꼴에 인심은. 그나저나 어린아이들이 문제로군. 작업하기가 만만치 않을 텐데 말이야.”
“다행스럽게도 어린아이들은 채광 작업에서 제외가 됐네.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고 말이야.”
“놈들이 어린아이들을 빼줬다는 건가?”
믿어지지 않는 듯 유찬 아저씨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어쩐 일인지 소장이 그렇게 지시를 내리더군.”
“그것만 해도 다행이군. 그런데 다른 광물은 뭐라고 하던가?”
“아직 뭔지 듣지는 못했지만, 여러 가지가 같이 나오는 모양이야.”
“하루 휴식을 줄 정도면 다이아몬드라도 나오는 모양이군.”
“그럴지도 모르지. 잠시 후 배식을 한다고 하니, 나와 같이 가세. 다른 친구들도 나올 테니 말이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상의를 좀 해둬야겠군.”
“일단 작업부터 하자고 할 생각이네.”
“그 작업 말인가?”
“그래.”
“알았네.”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두 분이 대화를 중단하셨다.
― 지금부터 배식을 시작한다.
방송이 나왔다. 강신 아저씨와 유찬 아저씨가 밖으로 나갔다. 두 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양동이 두 개를 들고 들어왔다.
딱딱한 검은 빵과 멀건 국물이 들어 있었다. 얼핏 세어보니 딱 숫자가 맞았다. 어른들 것보다는 훨씬 작지만, 내가 먹을 것도 있었다.
“다들 식기를 가지고 오세요.”
강신 아저씨의 말에 사람들은 상자를 열고 식기를 가지고 왔다. 나무 국자로 국물을 떠서 담아 주고, 검은 빵을 하나씩 나눠 주었다. 빵을 받은 후 일부를 떼어 주머니 속에 넣은 후 국물이 들어 있는 그릇에 담갔다.
“할아버지도 이렇게 하세요.”
“국물에 담그란 말이냐?”
“이게 돌덩어리라서 그냥 씹었다가 잘못하면 이빨 빠져요.”
주위를 둘러보신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을 빼고는 전부 나처럼 하고 있는 것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신다.
“조금 담가두면 씹을 만하실 거예요.”
“알았다.”
빵을 그릇에 담그자 조금씩 국물을 흡수했다.
“으음, 무슨 재료로 만든 빵이기에…….”
빨리 흡수할 것 같아 보였지만 빨아들이는 속도가 무척 느렸다. 색도 더 검어지니 무척이나 이상해 보일 만도 하다.
“뭐로 만들었는지 아무도 몰라요. 그렇지만 이렇게 하면 먹을 만해요. 자, 이제 됐어요. 조금씩 천천히 씹어 드세요.”
“알았다.”
국물에 불리기는 했지만 씹을 만한 것이 못 된다. 아직 젖니라서 나는 더욱 조심해서 씹어야 한다. 깨작깨작 조금씩 씹어서 침과 함께 삼켰다.
저녁 식사 시간을 한 시간이나 준 것은 이유가 있다. 이렇게 먹지 않으면 소화를 시키기 힘들기 때문이다.
식사 시간인 한 시간 내에 다 먹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잠자리에 들어서도 씹어 먹는다. 그렇지 않으면 내일 일을 못하니 말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어른들이 먹는 것의 절반이라고는 하지만, 잠자리에 든 후에도 한참을 씹어야 다 먹을 수 있었다.
‘쥐를 잡으려면 먹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내력을 돌려 이와 위장으로 보냈다. 아직 젖니이기는 하지만 이러면 좀 더 잘 씹어서 소화를 시킬 수가 있다. 그런데 할아버지도 경험이 있는 모양이다. 다른 분들과는 달리 우리처럼 잘 드시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