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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GV 배우의 어려움 1화
[프롤로그]


서점 안으로 발을 들였을 때, 살짝 거친 호흡을 뱉었다. 흘끗 서점 밖으로 시선을 주니 갑자기 쏟아진 비에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가방을 머리에 짊어진 사람, 별 도움은 안 되어도 손으로 비를 가리는 사람 등등. 그 속에 우산을 펼쳐 든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마른하늘에 웬 비인지. 잠시 맞은 비인데도 상의가 다 젖어 버렸다. 손으로 대충 물기를 털어 내며 서점 안으로 걸음을 옮길 때였다.
여상하게 어깨를 털고, 셔츠 앞부분을 털다 시선이 유두로 향했다. 하얗기만 한 셔츠에 분홍빛 두 개가 유난히 선명하다. 흠칫. 서둘러 가슴을 가방으로 가리고 비인기 코너 쪽으로 몸을 숨겼다.
별일이 아닌데도 심장이 거세게 뛰어 귀가 시끄럽다. 누가 본 것은 아니겠지?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주변을 빠르게 훑었지만 나를 보는 시선은 없는 듯하다.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쉰 후 눈에 보이는 책 한 권을 꺼내 들었지만 책 내용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비에 젖어 그 모양이 고스란히 드러난 유두만이 온통 머릿속을 가득 메울 뿐이었다. 하얀 셔츠 너머로 선명하게 보이던 분홍빛 유두.
젠장. 책을 읽으며 조금 전 일을 싹 잊었어야 했는데.
가방으로 감춘 유두가 조금씩 단단해지기 시작하더니 곧 완벽하게 서 버렸다. 한심하게도 다른 이의 것도 아닌 제 몸뚱이를 보고 흥분을 해 버린 거다.
자괴감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병신. 평생을 본 제 유두를 보고 흥분하는 미친놈. 속으로 자책하는 욕을 한 바가지 퍼부으며 손에 쥔 책을 펼쳐 든 순간이었다.
눈앞에 금색이 화려한 명함 한 장이 불쑥 나타났다. 기척도 전조도 없이 벌어진 일에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으니 저음이 아주 매력적인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생각 있으면 전화 줘요. 내 감이 당신은 나와 동류라고 알려 주고 있거든요.”
동류? 동류라는 게 무슨 뜻일까?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아 잠시 눈만 깜빡이다 명함을 천천히 훑었다.
‘GV 프로덕션? 대표이사 준지?’
이게 왜 내 손에 있는 걸까? 이 남자가 왜 이걸 나에게 준 걸까? 그리고 동류라는 의미가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고개를 갸웃거렸다.
심장이 쿵쾅쿵쾅 시끄럽다. 순식간에 넘쳐나는 추측성 정보들로 눈앞이 뱅글뱅글 돌았다.
‘GV란 것이 게이 DVD를 말하는 게 맞나? 아니야, 이제껏 그런 의심을 받아 본 적은 없는걸?’
바들바들 떨고 있다는 걸 애써 감추며 고개를 들었다. 이제와 이 명함을 내민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분명 이상한 놈일 거다. 도를 아십니까, 같은 사이비 냄새를 풍기거나 한눈에 봐도 변태처럼 보이는 사람일 것이다…….
‘잘생겼다.’
숨을 턱 막히게 할 정도로 잘생긴 모습에 마음이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이런 남자가 왜 이 명함을 준 것일까? 생각지도 못한 미남의 등장에 잠시 넋이 나가 있을 때였다.
“비에 젖어서 드러난 몸매를 보니 확신이 차. 쉽게 흥분하는 모습도 귀엽고. 분명 인기 많은 배우가 될 거야.”
심장이 다시 한 번 쿵쾅쿵쾅 거세게 뛰었다. 내게만 들리도록 작게 소곤대는 말에 GV가 가리키는 것이 게이 DVD라는 걸 확신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내게 다가왔을 때처럼 훌쩍 몸을 돌린 그의 입매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잠시 멍하게 있다가 불에라도 데인 사람처럼,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명함을 얼른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사람들 모르게 쓰레기통에 버릴 거라고 다짐하며.



♥ 프로필 촬영 (1)


“저기.”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겨우 짜낸 목소리가 묻혀 버렸다. 소규모 촬영장일 줄 알았던 곳이 생각보다 매우 큰 규모의 회사라는 걸 확인하곤 기가 잔뜩 죽어 있는 중이다. 이제 곧 촬영을 시작하는 3층, 303호 안으로 명함을 꼭 쥔 채 조용히 들어섰다.
얼핏 봐도 상당히 너덜너덜해진 명함을 다시 한 번 살피고는 묵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버리지 못했다. 당장 버려야 한다고, 이걸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고 이성이 끊임없이 설득했지만 결국 버릴 수가 없었다.
명함을 받은 순간부터 불안정한 내면 아래로 억지로 감춰 왔던 호기심과 욕망이 나날이 커져 결국엔 2주 만에 이렇게 이곳을 찾고 말았다.
수십 번의 망설임 끝에 전화한 내게 이 회사의 대표이사, 준지 씨는―명함을 건네 준 남자―촬영을 구경하는 게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며 약속 장소를 촬영장으로 잡았다. 그런데 도착하고 보니 정작 본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왠지 첫 시작부터 영 순탄치 않은 느낌이다.
전화를 해 보는 게 좋겠다 싶을 때였다.
[좀 늦겠으니 촬영 보고 있어요.]
준지 씨의 메시지에 난감함이 일었다. 촬영을 같이 보기로 약속하고 온지라 이 남자 없이 혼자 덩그러니 촬영을 볼 생각은 조금도 못했고, 더더욱 이 남자가 나를 배려해 여기 직원 누군가에게 연락을 해 뒀을 것 같지도 않았다. 실례되는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무척 호방해 보이는 그에게 섬세함은 한 올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예로, 서점에서 명함을 건네었을 때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었다.
우물쭈물 촬영 스태프 사이로 섞여 들어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불안한 눈으로 주위를 훑었다. 다행히도 불순물 같은 나에게 신경 쓰는 이는 없어 보였다. 어쩌면 나 같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다녀간 것인지도 모른다.
TV에서나 잠깐 봤을 법한 촬영장과 비슷한 분위기에 주변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너저분하다고 할 정도로 흩어져 있는 촬영 소품들, 그리고 유달리 환한, 누군가의 방처럼 보이는 세트장 등이 눈에 들어왔지만 개중에서 가장 독보적으로 시선을 잡아끄는 건 하반신을 수건으로만 가린 GV 배우로 보이는 남자 둘이다.
한 발짝 떨어진 거리에 서서 정답게 대화를 나누는 GV 배우를 본 순간 심장이 쿵! 커다랗게 한 번 움직이고는 그 길로 귀가 아플 정도로 빠르게, 시끄럽게 쿵쾅대었다. 놀란 건지, 흥분한 건지, 혹은 둘 다인 건지.
“너 근육 생긴 거 같다?”
“그래? 살이 좀 빠져서 그렇게 보이는 건가?”
“살 뺐어? 근육이 붙어서 살이 빠졌는지 모르겠는데?”
“엉덩이는 어때? 엉덩이가 너무 투실해 보여서 살 뺀 거거든.”
“보자. 흐음~ 네 엉덩이는 언제나 군침 돌게 생겼다는 것밖에 모르겠다.”
분명 부끄러운 대화인데도 일상적인 대화처럼 평이하게 구는 두 사람의 모습이 참 색다르고 신기하기만 하다.
나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조차 한 번도 속마음을 내비친 적이 없었다. 참으로 쉽게 흥분하는 몸뚱이. 남자를 보면 가슴이 뛰고, 그들에게 정신이 날아가 버릴 정도로 안겨 울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는 절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해선 안 되는 말이기도 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깊숙이 숨겨 놓은 부끄러운 부분을 꺼낼 수 있을까? 자위조차 두려워―너무 쉽게 흥분하는 몸이라 자위에 맛들이게 되면 헤어 나올 수 없을 거다―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벌거벗고 신음을 흘릴 수 있을까?
“스탠바이!”
우렁찬 소리에 시끄럽게 떠들어 대던 촬영장이 순식간에 조용해지며 배우들이 세트장으로 이동했다. 알몸인 두 배우는 전혀 부끄러움이 없어 보이는데 구석에서 훔쳐보는 내가 되레 얼굴이 붉어져 곤란하다.
몇 번 대사와 진행 방향을 확인한 후 촬영이 시작되었다. 카메라만 덜렁 있는 게 아니라 조명 드는 사람, 메이크업 겸 헤어 담당, 소리 담당 등 생각보다 스태프가 많았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찍어야 하다니, 문화 충격이다.
아마도 처음엔 아파하는 게 콘셉트였던 모양인지 남자는 인상을 잔뜩 찡그리다 얼마 안 가 쾌락에 푹 젖어 헐떡거리며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여자 같은 신음을 뱉으며 저와 같은 남자의 허리에 다리를 감고 좋다고, 더 해 달라고 조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안의 무언가가 일렁거렸다.
내가 저 밑에 깔린 남자라면 좋겠다. 일할 때만 다른 얼굴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나를 아는 사람에게 내 속을 들킬 일 없이 살아갈 수 있을 텐데.
여기까지 스스로 걸어 들어오긴 했지만, 솔직히 주변 사람들에게는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들키고 싶진 않다. 이제와 내 속에 엉큼한 속물이 자리 잡고 있다는 걸 누군가에게 들켜 다른 시선을 받는 게 가장 두렵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역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대를 뒹굴고 있는 두 배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저 사람들은 어떤 경위로 GV 배우가 되어 지금 촬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그 고민으로 밤을 지새웠을까?
저들이 무척 부러워졌다. 주변을 무시한 채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얻은 걸까? 할 수 없이 이곳으로 흘러들어오게 됐다고 하기에는 무척 밝아 보인다. 미련스러운 눈길을 거두고 이쪽 세계에서 나가는 문을 열었을 때였다.

곤란한 상황이 돼 버리고 말았다.
빨리 도망갔어야 했는데 미련이 남아 잠시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던 게 화근이었다. 멈췄던 걸음을 다시 떼려고 할 때, 준지 씨와 맞닥뜨린 거다. 준지 씨는 매우 반갑다는 얼굴로 나를 제 사무실로 이끌었다.
준지 씨는 혼자가 아니었다. 180cm 쯤 되어 보이는 그보다 10cm는 더 커 보이는, 무뚝뚝한 표정과 목소리가 인상적인 남자는 자신을 은수라고 소개했다. 얼결에 꾸벅 인사를 하고보니 난감함이 일었다.
“이름은 뭡니까?”
“네? 아……. 저기, 그러니깐, 저는.”
어수룩한 대답이 성가셨는지 은수 씨의 미간이 슬쩍 구겨졌다.
“이, 이종호라고 합니다.”
은수 씨의 표정 변화에 나도 모르게 본명을 말해 버리고 말았다.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당황한 나와는 달리 내 앞에 앉은 아주 커다란 남자는 종이에 내 이름을 태평스럽게 받아 적기만 할 뿐이다.
“키 몇입니까?”
“키요? 177이요.”
“키는 네코치고는 좀 크고, 몸이 아주 호리호리한 것도 아니고. 멀티 지원입니까?”
“네, 네코? 멀, 멀티?”
잘 모르는 단어들이 쏟아지니 어리둥절해져서 멍청한 얼굴이 됐나 보다. 준지 씨가 나를 보며 웃음을 터트린 걸 보면.
“몸무게는 몇입니까?”
“66이요. 저, 그런데 이건 왜…….”
준지 씨가 웃음을 터트려도 은수 씨의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하기만 하다. 갑작스런 물음이 계속 이어졌다.
“발 치수는 몇입니까?”
“275요.”
“탑치고는 어리숙한 얼굴이네.”
“예? 어, 어리숙?”
오늘 처음 본 사람에게 상처 될 수 있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는 이 남자가 싫을 법도 한데도 나는 그의 앞에서 얼굴을 붉힌 채 얌전하게 있을 뿐이다. 이상형이라고 해야 할까? 가끔 정신을 놓고 바라보던 체구와 인상의 남자들을 모아 놓아 놓으면 내 눈앞에 있는 이 남자가 될 거다.
‘중증이야, 좋지 않은 소릴 들어도 가슴이 뛰다니.’
눈이 저절로 은수 씨의 넓은 어깨를 탐욕스레 훑고 있다. 자칫 정신줄을 놓으면 대놓고 몸 구석구석을 훑을까 봐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체구도 큰데다가 얼굴까지 잘생기다니.’
“몸 상태 체크해야 하니까 탈의하세요.”
옷을 벗으란 말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예? 아, 저는 오늘 그냥 구경하러…….”
“아아. 간단한 신체검사니깐 걱정 마. 카메라 앞에 서려면 피부 상태나 이런저런 걸 알아 둘 필요가 있으니깐.”
나를 진정시키려는 건지 웃고만 있던 준지 씨가 내 어깨를 부드럽게 토닥이며 말했다.
“그래도, 저, 저기, 전.”
점점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못한다고 하라며 머릿속이 시끄럽게 울어 댔지만, 바보 같은 입은 달싹거리기만 할 뿐 어떤 말도 꺼내질 못했다.
“이쪽은 바쁘니까 벗을 거면 빨리 좀 벗어 줬으면 좋겠습니다.”
“아, 예!”
은수 씨의 까칠함에 눌려 벌떡 일어나 셔츠에 손을 대고 말았다. 그러고서는 밀려드는 후회감에 쭈뼛거리고 있으니 여태 본 얼굴 중에서 가장 상냥한 표정을 지은 준지 씨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너무 긴장할 필요 없어.”
“저기, 저는 못할 것 같아요.”
준지 씨라면 들어줄지도 모른다. 역시 안 되겠다. 나는 못한다.
“테스트 받는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거나 하지 않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괜찮아, 괜찮아.”
한 걸음 거리를 두고 준지 씨가 조금 더 다가서자 갑작스레 좁혀진 거리감에 어깨가 바싹 움츠러들었다.
“이 셔츠와 셔츠 안의 반팔 티를 벗으면 너의 비밀스러운 게 보이겠지?”
귓가에서 울리는 준지 씨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달콤하다. 그 달콤함에 취해 준지 씨의 손이 내 옷을 천천히,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벗겨 내도 반항하지 못하고 그대로 몸을 내맡기고 말았다.
“이야~ 상체는 일단 멋진데? 옷으로 가리기엔 아주 아까운 몸이야. 몸이 참 예쁘게 생겼어.”
마른침을 삼켰다. 누군가가 내 몸을 감상하며 찬사를 보내는 것이 처음이라 쑥스럽기도 하고, 조금은…… 기쁘기도 하다.
“배우가 되면 분명 인기가 많을 거야.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다니까. 처음이라 무섭지? 무서워도 한번 발을 디디고 나면 마음이 시원해질 거야. 항상 저 깊숙한 곳에 응어리져 있던 게 없어지는 기분을 맛보고 싶지 않아?”
내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악마다. 내 삶을 뒤흔들어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려는 수작이다. 그걸 아는데…… 너무 잘 아는데도 발밑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가슴도 적당히 탄력 있고 유두도…….”
내 손보다 한마디는 더 클 것 같은 손이 몸 주인의 허락도 없이 부끄러운 곳을 대담하게 만져 대다 작은 돌기에서 우뚝 멈췄다. 그리고 미미한 웃음소리가 울렸다.
“아직도 핑크빛을 띠고 있어. 그리고…… 복근은 없지만 아주 잘빠진 허리야.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아. 어라? 다리가 생각보다 기네? 옷으로 너무 가리는 거 아냐?”
“그게, 저는.”
“이 밑이 기대되는데? 얼마나 쭉 뻗은 다리를 가지고 있을까?”
“벼, 별로 쭉 뻗은 다리는 아닌……! 웃! 잠, 잠시만!”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벌써 바지를 벗겨 내려 버리는 준지 씨의 행동에 너무 놀라 펄쩍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이미 바지는 벗겨져 바닥에 질질 끌리고 있었다. 아니, 바지를 이렇게 순식간에 풀어 벗기다니……. 여우에게 잠시 홀려 버린 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재빠른 손길이다. 이런 게 기술인가.
부끄러워 손으로 중요한 곳을 가리니 준지 씨의 입에서 희미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와우~ 엉덩이 예쁜데? 보면 볼수록 탐나는 몸이야.”
노골적으로 엉덩이를 빤히 바라보니 얼굴이 달아오르다 못해 터질 것만 같다. 게다가…… 아까부터 슬그머니 발기하기 시작한 페니스가 무척 신경이 쓰였다. 사각 트렁크를 입긴 했지만 그래도 이 이상 발기해 버리면 이 사람들이 분명 눈치채 버리고 말 거다.
“흐음~ 팬티 안은 굳이 안 봐도 되겠는데? 이렇게 건강하게 발딱 서 있는 걸 보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말로는 안 봐도 되겠다더니 말릴 새도 없이 가린 손을 치우고 팬티를 늘린 그는 안을 대놓고 구경했다. 이젠 부끄러움에 온몸이 달아올라 있을 거다.
“일단 신체는 기대 이상이야. 안 그래? 은수?”
“그러게. 다음은 내가 할게.”
다음이라는 단어에 깜짝 놀라 은수 씨를 바라봤다. 이 이상 대체 뭘 또 하겠다는 것일까? 눈만 끔뻑이고 있는 내 앞으로 은수 씨가 노트북을 가져왔다. 그리고 나는 무심결에 보고 말았다.
-으!! 싫어! 놔 줘!
싫다며 애를 쓰다가 결국 잡혀 다리를 벌리게 되는 남자의 영상이다. 혼자 있을 때조차 겁이 나서 좀처럼 보지 못했던 영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시선이 남자들의 다리 사이에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지질 않았다. 이대로 계속 보다가는 분명 하반신 부분이 볼썽사나워질 거다. 이미 볼썽사납지만……. 어서 눈길을 돌려야 한다. 어서 그래야 하는데…….
“어때? 우리와 일해 보지 않을래?”
순식간에 현실로 끌려 올라왔다. 방금 내가 무슨 추태를 부린 거지? 어떤 얼굴로 영상을 뚫어지게 바라봤던 것일까? 머리가 살짝 맛이 갔나 보다.
“아, 그게, 좀 더 생각을…….”
“좋은 답변이 오면 좋겠네~”
“……네.”
좋은 답변. 눈길이 다시 영상으로 향한다.
이대로 다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여태껏 살아 왔던 이종호로 살아갈 수 있을까? 가끔 숨이 막혀도 내색하지 않고 살아 왔던 그때로? 심장이 죄어 왔다. 분명 예전처럼 스스로를 억누르지는 못할 거다. 하지만 이 제의를 승낙해 버리면 부모님에게 엄청난 실망을 안겨 드리게 되는 거다. 주먹을 꼭 쥐었다.
‘부모님을 실망시켜 드릴 순 없어.’
이대로 옷을 입고 회사를 나서야지 하고 생각을 정리했음에도 이상하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조금 전 보았던 GV 배우들의 자유분방한 모습이 떠올라 머릿속을 헤집었다. 마음을 돌리면 안되는데……. 잠시 입술을 꼭 깨물었다가 이에 힘을 풀었다.
“해…… 볼게요.”
대답을 하고 보니 숨이 탁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어쩐지 평생 긴장 속에서 살았던 몸도 한결 가벼워지는 거 같았다.
대답을 한 후―준지 씨는 은수 씨에게 맡긴다며 훌쩍 나가버렸다― 무언가를 준비하는 은수 씨의 행동이 무얼 의미하는지 몰라 고개를 슬쩍 기울였다. 그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니 계약서를 작성하고 일단 집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아니, 그 전에 GV 배우도 계약서라는 게 있을까?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라 은수 씨가 움직이는 대로 주춤주춤 따라나서 봤지만 결국 끝까지 멀뚱멀뚱 서 있을 뿐이었다.
소파를 향해 카메라 한 대가 세워졌다. 저걸로 나를 찍는 걸까? 새삼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어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일었지만, 하겠다고 했다가 다시 못한다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만큼 배짱이 두둑하진 않았다.
“앉아.”
“예? 아, 네.”
소파를 턱으로 가리키며 앉으라는 은수 씨의 행동에 다시 주눅이 들었다. 어중간한 존대가 어느새 완벽하게 반말이 되었지만 차라리 이편이 이 남자에게 어울렸다.
주춤주춤 소파에 앉자마자 은수 씨는 망설임도 없이 녹화 버튼을 눌렀다. 나는 잠깐이라고 외치지도 못하고 눈만 이리저리 불안하게 굴렸다. 불안함과 초초함에 목이 바짝 타들어 가는 거 같아 마른침을 아프게 삼켰다.
“자기소개 좀 해 줘.”
이런저런 설명도 없이 바로 시작인가 보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이런 영상을 본 적이 없으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아 입만 달싹였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어서 어떤 말이라도! 목을 쥐어짜는 느낌으로 일단 아무 소리나 해 보았다.
“네? 아! 네, 저는.”
또 말문이 막혔다. 아무 소리나 내뱉자 싶은 순간 이름을 말해야 하는 부분에서 막혀 버리고 만 거다. 지금은 테스트니까 본명을 말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가명을 사용해도 되는 걸까? 웬만하면 본명은 말하고 싶지 않아 은수 씨의 눈치를 볼 때였다.
“미오, 자기소개 좀 해 주지 않겠어?”
‘방금 나를 미오라고……?’
침을 꿀꺽 넘기며 카메라를 응시했다. 긴장으로 잔뜩 굳어 있을 게 분명한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23살, 미오라고 합니다.”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은수 씨의 손이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계속 말을 이어 가라는 것처럼 보여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키는 177이고, 음, 체중은 66에서 68 사이를 왔다 갔다 합니다. 그리고 발 사이즈는 275고 음…… 그리고, 읏! 잘 부탁드립니다.”
방금 전 은수 씨가 내게 질문한 것들을 떠올리며 겨우 자기소개를 마치니 카메라를 들고 있던 은수 씨가 소리 없이 피식 웃는 게 보였다. 내가 뭘 잘못한 건가? 너무 정석인 소개였을까?
“이 일을 하게 된 계기를 물어봐도 돼?”
“네?”
“이 일을 하게 된 계기를 물어봐도 되냐고.”
“아, 계기! 길거리에서 제의를 받았어요. 해 보지 않겠냐고. 평소에 성향에 관한 고민이 있었던 터라 용기 내 봤습니다.”
카메라를 봐야 하는데도 불안함에 시선이 자꾸만 은수 씨를 쫓았다. 질문에 이렇게 대답해야 하는 게 맞는 건지 맞지 않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는 녹화를 중단하거나 내 말을 자르지 않았다. 카메라가 돌아도 여전히 무뚝뚝한 목소리에 주눅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상하게 마음은 평안했다.
“성향에 관한 고민? 그럼 미오는 남자만 되는 게이?”
“게이? 아, 그게 아직 정확하게 결론을 못 내려서요.”
“관심은 있었는데 실행은 안 해본 거네? 설마 첫 경험도 안 해 본 건 아니지?”
“그, 그런 것도 말해야 돼요?”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지만 미오 표정으로 다들 알아차렸을 걸?”
무뚝뚝하기만 하던 남자의 목소리에 웃음이 묻어 있다.
“아, 아직이에요.”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나만의 비밀이 점점 까발려지고 있다. 알몸으로 카메라 앞에 서 있게 되면 이런 기분과 비슷할까?
쯧, 괜한 상상을 해 버렸다. 찰나의 상상만으로 앞섶이 조금씩 젖어 들기 시작했다.
“그럼 미오는 첫 경험으로 넣어지는 쪽을 하고 싶어? 넣는 쪽을 하고 싶어?”
노골적인 질문에 마주 잡은 손이 움찔 떨렸다.
“너, 넣어지는 쪽이요.”
대답을 하고나서 시선을 무릎으로 떨어뜨렸다. 작은 체구도 아닌데 넣어지는 쪽을 좋아하는 걸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괜히 걱정이 돼서다.
“넣어지는 쪽이 좋은 거구나? 키가 177이면 큰 축에 속하는 데다 체구도 작지 않아서 양쪽 다 괜찮아 보이는데 넣어지는 쪽만 좋은 거야?”
“해, 해 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넣는 쪽은 리, 리드해야 하니깐.”
“리드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넣어지는 쪽이 좋은 거야? 수동적이네?”
“조금 많이 수동적인 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