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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로



양평 근교, 인적 없는 산속의 고요한 정적을 뚫고 하나의 손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둘러 덮은 듯한 흙을 헤치며.
만약 누군가가 봤다면 기절초풍할 장면이다.
흙투성이 손은 주변을 더듬거리다 이내 옆에 있는 나무뿌리를 잡고 당겼다. 그러자 곧 한 남자가 바닥을 헤치며 튀어나왔다. 남자는 바닥에 엎어진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교복으로 보이는 와이셔츠에는 핏자국이 가득했다.
“빌어먹을 새끼들.”
엿 같은 세상이다.
아주아주 기분이 더러워서…… 아주아주 눈물이 나서…… 세상의 모든 것을 저주하고 싶었다.
남자는 자신이 이곳에 묻힐 때까지의 일을 생생히 기억한다. 머리 위로 흙이 덮일 때까지는 아직 죽지 않았으니까.
차량 번호 3268의 아우디 차량. 운전자는 젊은 남자였다. 자신을 치지마자 문을 열고 나와서 나와서 한다는 첫마디가 ‘씨발, 존나게 재수 없네’였다.
운전자는 조심스레 내게 다가와서 코에 손가락을 댔다. 술 냄새가 심하게 난다. 분명 자신은 희미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충돌의 충격 탓에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남아 있는 기운을 모조리 끌어모아 세게 숨을 쉬었다.
하지만 운전자는 전혀 아랑곳없이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씨발, 죽었네, 죽었어. 아, 젠장.’
그 순간, 옆에 타고 있던 여자가 비틀거리며 차에서 내렸다. 그녀 역시 술에 잔뜩 취했는지 제대로 걷지를 못했다.
“큰일 났네……. 오빠, 이거 들키면 사법연수원에서 퇴출되지 않아?”
“알아, 병신아. 입 닥쳐.”
“왜 화를 내고 그래?”
“내가 지금 화 안 나게 생겼어. 씨발, 지가 노루야, 뭐야? 갑자기 도로에서 왜 튀어나오고 지랄이냐고!”
남자는 뭐라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술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야, 안 되겠다. 빨리 이 새끼 태워.”
“뭘 어쩌려고?”
“보면 몰라? 어차피 뒈졌잖아. 나는 판사가 될 사람이고.”
“설마…… 유기하려고?”
“유기는 무슨. 이런 고삐리랑 나랑 누가 더 중요해? 나라를 위해서 누가 더 희생을 할 것 같냐고.”
“당연히 오빠지.”
“그렇지? 그럼 어서 날 도와. 내가 꼭 보답할 테니까.”
“왜? 나랑 결혼이라도 하게? 그럼 나는 땡큔데.”
“일단 도와. 그건 나중에 할 얘기인 것 같다.”
“노노노. 지금 확답을 들어야겠어.”
여자는 핸드폰을 꺼내 녹음기를 켰다. 술에 취해 있으면서도 꽤 용의주도한 모습. 긴박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얻을 것은 모두 챙긴다.
“알았어. 결혼해 줄게, 올해 내로. 됐지?”
“흐흐흐, 나중에 딴말하지 마? 딴말을 했다가는…… 확!”
“알았다니까. 어서 이 자식이나 트렁크에 실어.”
“오케바리.”
운전자와 여자는 그렇게 남자를 트렁크에 실었다. 그러고는 서울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양평의 산속에 그를 묻어버린 것이다.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지?
남자는 드글드글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지로 삼켰다.
그런 후, 어디서부터 일이 잘못됐는지 천천히 기억을 되짚어 나갔다.

천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미친 듯이 거리를 내달렸다. 그 와중에 한쪽 신발이 벗겨졌지만,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주변에서 미친 사람을 보는 듯한 시선이 쏟아졌지만, 천혁은 개의치 않았다. 1분 1초라도 빨리 동생을 확인하고 싶었다.
설마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어…….
이윽고 도착한 영안실에서 천혁은 힘없이 무너져 내려 무릎을 꿇고 꺼이꺼이 울었다.
어릴 적,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두 사람은 지금까지 힘을 합쳐 살아왔다. 둘은 형제였지만, 서로가 느끼는 감정은 여느 가족들의 감정, 그 이상이었다.
“아니야! 아니야! 이건 현실이 아니야! 꿈이야!”
천혁은 머리를 부여잡고 병원을 뛰쳐나왔다. 도로는 오가는 차량 없이 한적했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나타난 차량 한 대가 그에게 빠르게 다가왔다. 하지만 역시 환상처럼 느껴질 뿐이다.
마치 천사의 불빛인 듯.
천우야, 나를 부르는 거니.
환상은 강렬한 고통으로 그에게 안겨주었다.
콰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