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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원령 (4)
버스를 타고 기숙사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깜깜한 밤이었다.
유성은 기숙사 입구의 가로등 밑을 지나면서 자신의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림자에 눈이 생겼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그림자였다. 이곳에 오는 동안 헤르미아는 유성에게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꿈이었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손목에 채워져 있는 은색 시계를 보면 방금 겪은 일이 꿈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헤르…….”
문득 유성은 헤르미아를 부르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부른 것만으로 그림자에서 어떤 존재가 반응한다, 그 편이 더 무서울 것 같았다.
일단은 기숙사로 돌아가자. 돌아가면 새벽이가 있겠지. 어쩌면 여름밤 또한 돌아와 있을지도 모른다. 걔네들이랑 평소처럼 일상을 보내자.
그렇게 생각한 유성은 발길을 재촉했다.
그러나 기숙사에 도착했을 때 여름밤은 와 있지 않았고, 어떻게 된 일인지 새벽 또한 없었다.
“새벽이 얘는 어디 간 거야? 자기가 저녁 먹기 전까지 오라고 해놓고서는…….”
유성은 방에 불을 켜고 자신의 책상으로 다가가 손목에서 시계를 풀어놓았다.
― 그런 건 아무 데나 두면 안 돼.
책상 위에 드리운 그림자에 두 개의 눈이 나타났다. 헤르미아였다.
“…왜?”
유성은 흠칫 놀랐지만 다시 책상에서 손목시계를 집어 들며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 몰라? 그건 괴물을 찾는 데 쓰이는 거야. 시침을 따라가다 보면 괴물을 만나게 돼. 아무 데나 놨다가 평범한 사람이 그 시계를 보고 따라가면 어쩌려고 그래?
그럼 역시 아까 그 고릴라 같은 괴물을 만난 게 우연은 아니란 소리다.
‘이것 때문일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시계를 들여다보던 유성은 그것을 자신의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
그런데 여름밤은 왜 이런 물건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헤르미아는 어떻게 이 물건에 대해 알고 있는 걸까?
“헤르미아, 너는 어떻게 이 시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야?”
― 그거야 내가 달라붙어 있던 마술사가 사용했던 물건이니까.
“그러고 보니 마술사를 따라서 왔다든가 했었지. 이 시계가 그 마술사 물건이라고?”
그럼 대체 마술이란 건 뭐고, 마술사는 뭐고, 그들은 이곳에 왜 왔으며, 왜 여름밤이 그 마술사의 물건을 들고 있던 걸까?
뭐부터 물어봐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헤르미아가 말했다.
― 유성아.
“왜?”
― 나는 네 생각을 읽을 수 있거든? 그냥 순서대로 대답해 줄게.
유성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을 읽는다니. 마치 감시당하는 것 같지 않은가.
― 왜, 손해배상 청구라도 하게? 사생활이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라고. 너도 내 생각을 읽을 수 있잖아.
헤르미아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는 할 말이 없어 침묵했다.
― 아무튼. 마술이란 정신적, 물리적 작용이야. 사람의 영혼에서 나오는 힘이지.
이 부분은 이해가 가지 않으므로 패스.
― 그냥 마법 같은 거라고 생각해.
“응, 그렇게 말해주라.”
― 소리 내어 말할 필요 없는데. 그냥 생각만 해도 들린다니까? 뭐, 마술사는 그런 마술을 할 줄 아는 사람이고, 나와 함께 이곳에 온 마술사는 두 명이야. 키 큰 남자와 작은 여자. 그 시계는 키 큰 남자가 들고 있던 거였어. 지금은 둘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사람들이 이곳에 온 이유는 어떤 인물을 보호하면서 주변에 있는 괴물들을 퇴치하기 위해서였어.
이 부분도 그다지 여름밤과 관련이 있을 것 같지 않으므로 패스. 중요한 건 다음 부분이었다.
― 음, 그리고 마술사의 물건이 왜 네 친구한테 있었냐는 건데……. 그건 나도 몰라.
“엥? 너 지금 내 안에 들어왔듯이 그 마술사 안에 들어가 있었다면서. 그런데도 모르는 거야?”
― 동기화의 차이지.
유성의 물음에 헤르미아의 간결한 대답이 돌아왔다.
“동기화가 뭐야?”
― 너 내가 이 몸 안으로 들어올 때 되게 아팠잖아? 그건 네 감각과 내 감각을 일체화시키는 과정이야. 근데 나는 그 마술사의 그림자에 살고 있던 게 아니고 잠깐 숨어든 거였으니까, 그렇게 요란한 작업은 할 수 없었어. 그러다 보니 들어오는 정보가 너무 제한되어 있었어서, 그 마술사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몰라. 동기화하지 못하면 그 안에서 마술사의 정신과 내 정신이 경쟁하는 구도가 되어버리거든. 그래서 마술사가 깨어 있는 동안에는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어. 거의 잠들어 있었다고 봐도 될걸.
결론적으로 헤르미아가 알고 있는 부분은 아무것도 없다는 거였다. 유성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어쩌면 여름밤의 행방에 대해 알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밤 얘는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거야…….”
유성은 소리 내어 탄식했다.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은 걸 보면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 그런데 그 밤이라는 애가 누구길래 그렇게 찾는 거야? 여자 친구야?
“뭐?”
그는 화들짝 놀랐다.
“뭔 소리야, 걔 남자야. 그냥 친군데 없어져서 찾고 있는 거라고.”
유성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헤르미아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깔깔 웃었다.
― 이름 때문에 여자애인가 했지. 애인도 아닌데 왜 찾으려는 거야? 그냥 이대로 좀 편하게 쉬면 안 돼? 너무 오랫동안 마술사의 그림자에 붙어 있었더니 피곤하다고. 평범한 삶을 체감해 보고 싶은데.
“…나도 피곤하긴 한데, 내가 주변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가만히 보고만 있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말이야. 특히 다른 사람들이 무관심할수록.”
― 오지랖 넓은 스타일? 뭐, 그런 거 싫어하지는 않는데 피곤해지긴 하겠네.
그림자의 눈이 가늘어졌다.
가만히 그림자를 들여다보던 유성이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 네가 나를 도와줬으면 해. 밤이 갖고 있는 시계가 마술사의 물건이었다는 건… 역시 마술과 관련이 있다는 게 아닐까 싶거든.”
― 아하. 걔를 찾아다니다가 오늘처럼 괴물을 만날 것 같다, 그런 거야?
유성은 손목시계가 든 서랍을 가볍게 쓸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이 시계처럼 마술에 관련된 단서가 앞으로 더 나올 수 있는 거잖아. 그런데 나는 이쪽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까. 보고도 그냥 지나쳐 버릴 수도 있잖아.”
― 음,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안 도와줄 수 없네. 우린 공생 관계니까 말이지. 사라진 사람을 찾아다닌다니, 좀 재밌을 거 같기도 하고.
“땡큐.”
유성이 미소를 짓자, 재듯이 말하던 그림자의 눈도 눈꼬리를 내리며 웃었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해야 되지? 폐병원 부지에서부터 다시 조사해 볼까?”
―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해? 우리한테는 중요한 단서가 있잖아.
“중요한 단서?”
유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시계 말이야. 네 친구가 시계를 갖고 있었다면 그 시계를 어디에다 썼겠어?
“아.”
이 시계는 괴물을 찾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름밤 또한 괴물을 찾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어째서 그런 위험한 짓을 한 걸까?
― 그게 중요한 거지. 그걸 알면 지금 네 친구가 어디에 있을지 감이 올 거 아냐.
“그러네.”
여름밤은 괴물을 찾고 있었다. 그렇다면 여름밤이 괴물을 찾아다니던 이유, 그것은 뭐였을까?
― 대충 세 가지 중 하나겠지. 첫째, 괴물을 퇴치하기 위해서. 둘째, 찾는 괴물이 있어서. 셋째, 괴물과 관련된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
헤르미아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던 유성이 신중하게 대답했다.
“첫 번째는 아닌 것 같아. 밤한테 괴물과 싸울 만한 힘이 있다거나, 마술을 쓸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으니까.”
2학년에 올라온 뒤부터 알고 지냈을 뿐이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도 여름밤은 악몽을 자주 꾸는 점을 제외하면 그냥 평범한 애였다. 잘 못 자서 그런지 자주 골골거리기도 한다. 낡았다고는 하지만 벽도 부수는 괴물에 여름밤이 대항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유성이 설명하자, 헤르미아도 동조했다.
― 음, 아니면 굳이 마술사가 아니더라도 괴물 퇴치에 도움이 되는 특이체질일 수도 있으니까. 그 경우 마술사가 조수로 부려먹기 위해 시계를 줬을 수도 있고.
“특이체질?”
― 가끔 있어. 마술로도, 과학으로도 설명이 안 되는, 그야말로 신이 내린 체질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이. 물론 살면서 한 번 볼까 말까 할 정도로 드물지만 말이야.
“체질…….”
유성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것도 체질이라면 여름밤은 악몽을 잘 꾸는 체질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게 지금 여름밤이 사라진 것과 무슨 관련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뭔가 있다고 해도 여름밤도, 여름밤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찬비도 없는 지금 여름밤의 체질 같은 걸 알아볼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결국 이것도 패스.
고민하던 유성은 푹 한숨을 내쉬었다.
― 뭐, 아무튼, 그럼 아직 확정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거네. 그래도 네 친구가 가지고 있던 시계를 손에 넣은 지금, 우리는 그 친구가 있던 출발점에 똑같이 서 있는 걸지도 몰라.
헤르미아는 이 상황이 마치 탐정 놀이라도 되는 것처럼 신이 나서 말했다.
“네 말은 괴물을 쫓자는 거지? 이 시계를 이용해서.”
― 바로 그거야!
유성은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오늘 같은 건 좀 그래. 몸을 조종당하는 것도 그렇지만 뭔가를 죽인다는 게…….”
― 그럼 뭐 더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
“…아니.”
― 그러니까 괴물을 쫓아야 하는 거야. 당장 오늘 밤부터 시작하자. 괴물을 사냥하는 법은 제대로 알려줄 테니까. 히히히.
유성은 다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어쩔 수 없네……. 그런데 사냥이라니, 너 말야, 난 그런 거 하겠다고 한 적 없다고. 너무 신난 거 아니냐?”
그때였다.
쾅쾅!
누군가 밖에서 방문을 두드렸다. 소리의 세기나 위치로 보건대 발로 문을 차고 있는 듯했다.
“아오, 씨. 깜짝이야. 뭐야?”
문을 열자, 그 앞에 양손 가득 터질 듯한 비닐봉지를 들고 서 있는 새벽이 보였다.
“유성, 이것 좀 들어줘.”
“이게 다 무슨……. 그, 그래.”
유성은 깜짝 놀라면서도 비닐봉지를 받아 들어 방 안에 들여놓았다. 무언가 봉지 속에서 움직이는 느낌에 이상해서 안을 들여다보니 꽃게가 한 가득 들어 있었다.
“이게 뭐야, 꽃게?”
“오늘 저녁은 꽃게 찜이야.”
새벽이 태연하게 말했다.
“이런 걸 어디에서 가져온 거야? 설마 다 산 건 아니지?”
근처에 살 만한 데도 없지만, 양으로 보아 산다 해도 한두 푼은 아닐 것 같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한테 받았어. 잘 먹고 기운 좀 내라고.”
유성이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걸 주는 친구가 있었어?”
“비즈니스 관계야.”
“친구라며.”
“음, 아무튼 네가 모르는 사람이야.”
“…그러냐.”
유성은 힘 빠진 웃음을 지으며 다시 봉지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게들을 보았다.
“누가 됐든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먹지?”
“유성. 이거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되려나?”
새벽이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물었다.
“전자레인지 같은 소리 하네. 미쳤냐? 잠깐만 기다려 봐. 사감한테 부엌 빌려 쓸 수 있냐고 물어보고 올 테니까.”
유성이 슬리퍼를 신고 방을 나섰다. 사감실로 향하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 있었다.
그래. 이게 일상이다. 평범하지만 즐거운 이 일상으로 여름밤과 찬비를 돌아오게 하겠다고, 그는 다짐했다.
원령 (4)
버스를 타고 기숙사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깜깜한 밤이었다.
유성은 기숙사 입구의 가로등 밑을 지나면서 자신의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림자에 눈이 생겼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그림자였다. 이곳에 오는 동안 헤르미아는 유성에게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꿈이었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손목에 채워져 있는 은색 시계를 보면 방금 겪은 일이 꿈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헤르…….”
문득 유성은 헤르미아를 부르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부른 것만으로 그림자에서 어떤 존재가 반응한다, 그 편이 더 무서울 것 같았다.
일단은 기숙사로 돌아가자. 돌아가면 새벽이가 있겠지. 어쩌면 여름밤 또한 돌아와 있을지도 모른다. 걔네들이랑 평소처럼 일상을 보내자.
그렇게 생각한 유성은 발길을 재촉했다.
그러나 기숙사에 도착했을 때 여름밤은 와 있지 않았고, 어떻게 된 일인지 새벽 또한 없었다.
“새벽이 얘는 어디 간 거야? 자기가 저녁 먹기 전까지 오라고 해놓고서는…….”
유성은 방에 불을 켜고 자신의 책상으로 다가가 손목에서 시계를 풀어놓았다.
― 그런 건 아무 데나 두면 안 돼.
책상 위에 드리운 그림자에 두 개의 눈이 나타났다. 헤르미아였다.
“…왜?”
유성은 흠칫 놀랐지만 다시 책상에서 손목시계를 집어 들며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 몰라? 그건 괴물을 찾는 데 쓰이는 거야. 시침을 따라가다 보면 괴물을 만나게 돼. 아무 데나 놨다가 평범한 사람이 그 시계를 보고 따라가면 어쩌려고 그래?
그럼 역시 아까 그 고릴라 같은 괴물을 만난 게 우연은 아니란 소리다.
‘이것 때문일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시계를 들여다보던 유성은 그것을 자신의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
그런데 여름밤은 왜 이런 물건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헤르미아는 어떻게 이 물건에 대해 알고 있는 걸까?
“헤르미아, 너는 어떻게 이 시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야?”
― 그거야 내가 달라붙어 있던 마술사가 사용했던 물건이니까.
“그러고 보니 마술사를 따라서 왔다든가 했었지. 이 시계가 그 마술사 물건이라고?”
그럼 대체 마술이란 건 뭐고, 마술사는 뭐고, 그들은 이곳에 왜 왔으며, 왜 여름밤이 그 마술사의 물건을 들고 있던 걸까?
뭐부터 물어봐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헤르미아가 말했다.
― 유성아.
“왜?”
― 나는 네 생각을 읽을 수 있거든? 그냥 순서대로 대답해 줄게.
유성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을 읽는다니. 마치 감시당하는 것 같지 않은가.
― 왜, 손해배상 청구라도 하게? 사생활이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라고. 너도 내 생각을 읽을 수 있잖아.
헤르미아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는 할 말이 없어 침묵했다.
― 아무튼. 마술이란 정신적, 물리적 작용이야. 사람의 영혼에서 나오는 힘이지.
이 부분은 이해가 가지 않으므로 패스.
― 그냥 마법 같은 거라고 생각해.
“응, 그렇게 말해주라.”
― 소리 내어 말할 필요 없는데. 그냥 생각만 해도 들린다니까? 뭐, 마술사는 그런 마술을 할 줄 아는 사람이고, 나와 함께 이곳에 온 마술사는 두 명이야. 키 큰 남자와 작은 여자. 그 시계는 키 큰 남자가 들고 있던 거였어. 지금은 둘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사람들이 이곳에 온 이유는 어떤 인물을 보호하면서 주변에 있는 괴물들을 퇴치하기 위해서였어.
이 부분도 그다지 여름밤과 관련이 있을 것 같지 않으므로 패스. 중요한 건 다음 부분이었다.
― 음, 그리고 마술사의 물건이 왜 네 친구한테 있었냐는 건데……. 그건 나도 몰라.
“엥? 너 지금 내 안에 들어왔듯이 그 마술사 안에 들어가 있었다면서. 그런데도 모르는 거야?”
― 동기화의 차이지.
유성의 물음에 헤르미아의 간결한 대답이 돌아왔다.
“동기화가 뭐야?”
― 너 내가 이 몸 안으로 들어올 때 되게 아팠잖아? 그건 네 감각과 내 감각을 일체화시키는 과정이야. 근데 나는 그 마술사의 그림자에 살고 있던 게 아니고 잠깐 숨어든 거였으니까, 그렇게 요란한 작업은 할 수 없었어. 그러다 보니 들어오는 정보가 너무 제한되어 있었어서, 그 마술사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몰라. 동기화하지 못하면 그 안에서 마술사의 정신과 내 정신이 경쟁하는 구도가 되어버리거든. 그래서 마술사가 깨어 있는 동안에는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어. 거의 잠들어 있었다고 봐도 될걸.
결론적으로 헤르미아가 알고 있는 부분은 아무것도 없다는 거였다. 유성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어쩌면 여름밤의 행방에 대해 알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밤 얘는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거야…….”
유성은 소리 내어 탄식했다.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은 걸 보면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 그런데 그 밤이라는 애가 누구길래 그렇게 찾는 거야? 여자 친구야?
“뭐?”
그는 화들짝 놀랐다.
“뭔 소리야, 걔 남자야. 그냥 친군데 없어져서 찾고 있는 거라고.”
유성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헤르미아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깔깔 웃었다.
― 이름 때문에 여자애인가 했지. 애인도 아닌데 왜 찾으려는 거야? 그냥 이대로 좀 편하게 쉬면 안 돼? 너무 오랫동안 마술사의 그림자에 붙어 있었더니 피곤하다고. 평범한 삶을 체감해 보고 싶은데.
“…나도 피곤하긴 한데, 내가 주변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가만히 보고만 있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말이야. 특히 다른 사람들이 무관심할수록.”
― 오지랖 넓은 스타일? 뭐, 그런 거 싫어하지는 않는데 피곤해지긴 하겠네.
그림자의 눈이 가늘어졌다.
가만히 그림자를 들여다보던 유성이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 네가 나를 도와줬으면 해. 밤이 갖고 있는 시계가 마술사의 물건이었다는 건… 역시 마술과 관련이 있다는 게 아닐까 싶거든.”
― 아하. 걔를 찾아다니다가 오늘처럼 괴물을 만날 것 같다, 그런 거야?
유성은 손목시계가 든 서랍을 가볍게 쓸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이 시계처럼 마술에 관련된 단서가 앞으로 더 나올 수 있는 거잖아. 그런데 나는 이쪽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까. 보고도 그냥 지나쳐 버릴 수도 있잖아.”
― 음,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안 도와줄 수 없네. 우린 공생 관계니까 말이지. 사라진 사람을 찾아다닌다니, 좀 재밌을 거 같기도 하고.
“땡큐.”
유성이 미소를 짓자, 재듯이 말하던 그림자의 눈도 눈꼬리를 내리며 웃었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해야 되지? 폐병원 부지에서부터 다시 조사해 볼까?”
―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해? 우리한테는 중요한 단서가 있잖아.
“중요한 단서?”
유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시계 말이야. 네 친구가 시계를 갖고 있었다면 그 시계를 어디에다 썼겠어?
“아.”
이 시계는 괴물을 찾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름밤 또한 괴물을 찾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어째서 그런 위험한 짓을 한 걸까?
― 그게 중요한 거지. 그걸 알면 지금 네 친구가 어디에 있을지 감이 올 거 아냐.
“그러네.”
여름밤은 괴물을 찾고 있었다. 그렇다면 여름밤이 괴물을 찾아다니던 이유, 그것은 뭐였을까?
― 대충 세 가지 중 하나겠지. 첫째, 괴물을 퇴치하기 위해서. 둘째, 찾는 괴물이 있어서. 셋째, 괴물과 관련된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
헤르미아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던 유성이 신중하게 대답했다.
“첫 번째는 아닌 것 같아. 밤한테 괴물과 싸울 만한 힘이 있다거나, 마술을 쓸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으니까.”
2학년에 올라온 뒤부터 알고 지냈을 뿐이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도 여름밤은 악몽을 자주 꾸는 점을 제외하면 그냥 평범한 애였다. 잘 못 자서 그런지 자주 골골거리기도 한다. 낡았다고는 하지만 벽도 부수는 괴물에 여름밤이 대항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유성이 설명하자, 헤르미아도 동조했다.
― 음, 아니면 굳이 마술사가 아니더라도 괴물 퇴치에 도움이 되는 특이체질일 수도 있으니까. 그 경우 마술사가 조수로 부려먹기 위해 시계를 줬을 수도 있고.
“특이체질?”
― 가끔 있어. 마술로도, 과학으로도 설명이 안 되는, 그야말로 신이 내린 체질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이. 물론 살면서 한 번 볼까 말까 할 정도로 드물지만 말이야.
“체질…….”
유성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것도 체질이라면 여름밤은 악몽을 잘 꾸는 체질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게 지금 여름밤이 사라진 것과 무슨 관련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뭔가 있다고 해도 여름밤도, 여름밤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찬비도 없는 지금 여름밤의 체질 같은 걸 알아볼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결국 이것도 패스.
고민하던 유성은 푹 한숨을 내쉬었다.
― 뭐, 아무튼, 그럼 아직 확정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거네. 그래도 네 친구가 가지고 있던 시계를 손에 넣은 지금, 우리는 그 친구가 있던 출발점에 똑같이 서 있는 걸지도 몰라.
헤르미아는 이 상황이 마치 탐정 놀이라도 되는 것처럼 신이 나서 말했다.
“네 말은 괴물을 쫓자는 거지? 이 시계를 이용해서.”
― 바로 그거야!
유성은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오늘 같은 건 좀 그래. 몸을 조종당하는 것도 그렇지만 뭔가를 죽인다는 게…….”
― 그럼 뭐 더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
“…아니.”
― 그러니까 괴물을 쫓아야 하는 거야. 당장 오늘 밤부터 시작하자. 괴물을 사냥하는 법은 제대로 알려줄 테니까. 히히히.
유성은 다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어쩔 수 없네……. 그런데 사냥이라니, 너 말야, 난 그런 거 하겠다고 한 적 없다고. 너무 신난 거 아니냐?”
그때였다.
쾅쾅!
누군가 밖에서 방문을 두드렸다. 소리의 세기나 위치로 보건대 발로 문을 차고 있는 듯했다.
“아오, 씨. 깜짝이야. 뭐야?”
문을 열자, 그 앞에 양손 가득 터질 듯한 비닐봉지를 들고 서 있는 새벽이 보였다.
“유성, 이것 좀 들어줘.”
“이게 다 무슨……. 그, 그래.”
유성은 깜짝 놀라면서도 비닐봉지를 받아 들어 방 안에 들여놓았다. 무언가 봉지 속에서 움직이는 느낌에 이상해서 안을 들여다보니 꽃게가 한 가득 들어 있었다.
“이게 뭐야, 꽃게?”
“오늘 저녁은 꽃게 찜이야.”
새벽이 태연하게 말했다.
“이런 걸 어디에서 가져온 거야? 설마 다 산 건 아니지?”
근처에 살 만한 데도 없지만, 양으로 보아 산다 해도 한두 푼은 아닐 것 같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한테 받았어. 잘 먹고 기운 좀 내라고.”
유성이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걸 주는 친구가 있었어?”
“비즈니스 관계야.”
“친구라며.”
“음, 아무튼 네가 모르는 사람이야.”
“…그러냐.”
유성은 힘 빠진 웃음을 지으며 다시 봉지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게들을 보았다.
“누가 됐든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먹지?”
“유성. 이거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되려나?”
새벽이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물었다.
“전자레인지 같은 소리 하네. 미쳤냐? 잠깐만 기다려 봐. 사감한테 부엌 빌려 쓸 수 있냐고 물어보고 올 테니까.”
유성이 슬리퍼를 신고 방을 나섰다. 사감실로 향하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 있었다.
그래. 이게 일상이다. 평범하지만 즐거운 이 일상으로 여름밤과 찬비를 돌아오게 하겠다고, 그는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