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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영웅은 마왕이 되었다
25화
<어빌리티>
이름 : 시안
레벨 : 11
직업 : 마왕(Rank ― 초월)
종족 : 마족 ― 전설
공포 : 142
HP : 640
MP : 630(+63)
근력 : 35
마력 : 63(+12)
체력 : 32
정신력 : 42(+4)
민첩성 : 41
내구성 : 31
통솔력 : 155(+100)
<소지 스킬>
어둠 마법(하급 8단계), 종속 마법(하급 2단계), 부대 관리(하급 7단계), 마왕의 면류관(P).
<마왕의 면류관 ― Passive.>
종의 정점에 선 자에게 주어지는 왕관. 그중에서도 모든 마를 관리하고 선두에 서는 마족의 왕에게 주어지는 왕관이다. 강력한 축복이 부여되어 있다.
해제가 불가능하다.
― 마력, 정신력 10%상승.
― 통솔력 100상승.
― 마신의 축복 : 모든 암흑 속성 마법에 면역 상태가 된다. 빛 속성 마법에 10%의 추가 대미지를 받는다.
― 모든 일반 공격이 암흑 속성을 갖게 된다.
머리 위의 왕관은 아이템이 아니라 스킬로 적용되었다. 여러 가지 어빌리티를 상승시켜 주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통솔력. 빠듯하게 운영하고 있던 통솔력을 무려 100이나 증가시켜 주었다.
아이템이 아닌 스킬이기에 죽어도 빼앗길 염려가 없다는 것이 마음을 풍족하게 했다.
수많은 별들이 가득한 하늘로부터 그 별의 개수만큼이나 많은 박쥐들이 날아들었다. 평범한 박쥐가 아니다. 단단한 피부로 보호받는 커다란 눈에 날개와 발이 달린 왕눈이의 형제쯤 되는 녀석들이다.
녀석들은 창공에 거대한 원을 그리며 비행했다. 그들은 한 목소리로 입을 맞춰 노래를 불렀다.
새로운 마왕이 탄생했다.
경배하고 두려워하라. 어리석고 나약한 인간들이여.
모든 마의 왕이 납셨도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라. 그대들을 죽음의 세계로 인도할 정벌자가 왔다.
왕의 귀에 아첨을 넣는 간신배처럼 간사하고 무게감이 없는 목소리지만 그것이 수백, 수천이 모여 울리니 제법 그럴듯하게 분위기가 살아났다.
“마, 마왕…….”
마을 주민들은 하나둘 무릎을 꿇었다. 그들의 표정에 극한의 공포가 가득하다.
“저렇게까지 화려한 퍼포먼스는 필요 없는데.”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시안은 영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검이 탄생하는 과정과 마왕으로 각성을 축하하는 자리에 필요 이상으로 입회자가 많은 까닭이다.
보통 모험가 조합과 국가들은 증언을 멀리하고 증거를 신용한다. 때문에 별이 지는 숲에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는 증언이 있더라도 곧장 토벌대를 꾸리지 않는 것이다. 증언만 수두룩하지 정작 중요한 증거는 없으니까.
한때 정상급 플레이어였기에 모험가 조합의 특징을 너무도 잘 아는 시안은 증거만 주지 않으면 된다고,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뜬소문이라 할지라도 마족, 마왕과 관련된 일은 중요시된다. 과거 대륙이 마왕의 군세에 의해 멸망의 위험에 처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다 글러먹었다. 여기 있는 마을 주민 전원을 처리하지 않고서는 비밀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어쩌지… 역시 다 죽여야 하나?”
시안은 아무렇지도 않게 끔찍한 대량 학살극을 떠올렸다. 그의 중얼거림을 주워들은 마을 주민 중 하나가 몸을 움찔 떨었다.
“부, 부디 제 목숨은 가져가셔도 좋으니 가족만큼은…….”
중년의 남자는 가족들을 등 뒤로 숨기며 시안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그 남자를 따라 많은 마을 주민들이 머리를 낮춘다. 대륙 공공의 적인 마왕을 향해.
자신의 턱을 쓰다듬던 시안은 묘안을 떠올리고 손뼉을 마주쳤다. 무의미한 학살보다는 그들의 인력을 어떻게든 써먹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나의 포로가 되어 모든 마족들을 위해 노동력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너희의 생존권을 보장해 주겠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마왕으로써 수많은 사람들 앞에 서게 된 시안의 말투가 조금은 근엄하고 진중해졌다.
그의 말이 있은 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치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상대가 대륙의 공적인 마왕이며 그와 타협하는 것이 용서받지 못할 행위라 할지라도 당장의 목숨이 더 소중한 법이다. 멀리 있는 법보다 눈앞의 주먹이 두려운 것처럼.
[키익! 왕, 전투가 끝났다. 우리의 승리다! 하지만 지휘관인 그 여자가 죽었다. 그 여자 약하다.]
때마침 자경단 및 플레이어 연합과 싸우고 있던 고블린으로부터 전투가 끝났다는 소식이 전해져왔다. 당연한 승리를 전달받은 시안은 그들의 합류를 기다렸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합류를 한 고블린들은 생각 이상으로 수가 줄어들어 있었다. 거의 3할에 달하는 고블린이 죽었고, 전신에 갑옷을 입히느라 돈을 잔뜩 처바른 오크 한 마리가 죽었다.
“한동안 죽어라 사냥만 해야겠군.”
그나마 위안인 점은 플레이어와 자경단을 쓰러뜨림으로 얻은 전리품을 통해 당장의 손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너희들은 여기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복귀하도록 해. 절대, 한 사람도 빠뜨리지 말고 전원이다. 도망치는 사람이 있으면 쫓아가서 죽여라. 도중에 누군가에게 발견되면 그 녀석도 죽여라.”
“키익! 알겠다. 우리는 왕의 명령을 잘 따른다. 착한 고블린이다.”
가차 없이 살인멸구를 명하는 시안이나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고블린의 태도가 마을 주민들의 뇌리에 일말 남아 있는 도주라는 선택지를 깔끔하게 지워버렸다.
먼저 떠나는 고블린들과 포로들을 배웅한 시안은 몇 대의 마차에 시선을 주었다. 저 안에는 시안이 구출해야 할 엘프들이 감금되어 있다.
하지만 마차 문을 열어줘도 포로들이 걸어서 나오는 일은 없었다. 엘프들은 노예사냥꾼들에게 화환을 빼앗긴 후 전부 크리스탈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전리품 회수를 잊었군.”
시안은 노예사냥꾼들이 남긴 전리품을 하나씩 회수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노예사냥꾼들이 하나 혹은 여러 개의 화환을 남겼다.
<엘프의 화환 ― Rank : Unique.>
세계수의 잎과 줄기, 꽃 따위를 엮어 만든 화환으로 마법적 처리가 되어 있어 쉽게 훼손되지 않는다. 마력의 효율을 높여주며 엘프가 사용할 경우 크리스탈화를 방지해 준다.
― 세계수의 축복 : 크리스탈화 방지.
― 캐스팅 속도 5% 감소.
― 내구 : 35/35
― HP, MP 회복력 10% 상승.
유일 등급의 상당히 귀한 물건이며, 대부분의 성능이 회복에 치중되어 있다. 회복 기술이 희귀한 몬스터들에게는 몹시 귀중한 물건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화환들은 전부 주인이 있으므로 휘하 몬스터들에게 나눠줄 수 없을뿐더러 머리에 화환을 쓰고 있는 고블린이나 오크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치가 떨릴 만큼 끔찍하다.
그 외에도 노예사냥꾼 보스인 칼카스를 쓰러뜨려 희귀한 소재들을 손에 넣었다. 그중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목재 방패다.
보통 목재 방패는 철재 방패보다 성능이 뒤처지기 마련이지만 다름 아닌 나무 괴인 칼카스를 쓰러뜨리고 얻은 장비다. 시안은 높은 성능을 기대하며 방패의 효과를 살폈다.
<세계수의 묘목방패 ― Rank : Unique>
세계수의 묘목으로 만든 나무 방패. 일반 나무 방패에 비해 압도적인 견고함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성장하지 못한 묘목인지라 다 자란 세계수보다는 다소 뒤떨어지는 흠이 있다.
―제한 : 10레벨 이상. 근력 30이상.
―방어력 : 11
―체력회복력 15%상승.
―내구 : 46/46
―화염내성 5% 하락. 자연내성 10% 상승.
역시나 상당히 효율이 좋은 장비다. 비록 근력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그리 높은 편도 아니다. 다소 사이즈가 커서 고블린은 고사하고 시안조차 사용할 수 없다.
“이건 어쩔 수 없이 오크에게 줘야겠군.”
덩치가 큰 오크라면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 잡다한 것들을 인벤토리에 쑤셔 넣은 시안은 비로소 엘프들을 해방하기 위한 작업을 개시했다.
가장 먼저 찾아간 이는 그에게 강제 퀘스트를 부여한 간접적 원인이 되는 엘프, 라일라 레림이다.
마차의 문을 열자 이제는 거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크리스탈화가 진행된 라일라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시안을 보자 작게 미소를 지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기운을 느꼈습니다. 진정한 마의 왕이 되셨군요. 경하 드립니다.]
그녀는 크리스탈 안에서 우아하게 절을 했다. 아름다운 미인이 건네는 축복이 썩 달가웠던 시안의 입가가 당장이라도 피어날 것처럼 씰룩거렸다.
작게 헛기침을 하며 폭주하려는 본능을 잠재운 시안이 눈높이에서 화환을 흔들었다.
“이거, 어떻게 사용하면 되는 거야?”
[제게… 크리스탈에 접촉시켜 주세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녀의 부탁에 시안의 망설이지 않고 화환을 크리스탈 위에 올려두었다. 그러자 작은 빛과 함께 크리스탈이 서서히 기화하기 시작한다.
기화한 크리스탈은 라일라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두 다리로 땅을 딛는 그녀의 손에는 화환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화환을 머리에 쓰고 예쁘게 웃었다.
크리스탈에서 해방되어 색조를 되찾은 그녀의 머리카락은 화사한 태양을 녹여 만든 듯한 금발이었다. 눈동자는 따뜻한 대지를 연상시키는 갈색이다.
“저를, 그리고 동족들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왕이시여.”
“괜찮아. 별거 아니었어.”
비록 상대가 NPC일지언정 무릇 남자란 미인 앞에서 폼을 잡고 싶은 법이다. 시안은 스스로를 과대포장하며 우쭐거렸고, 라일라는 온화하게 웃는다.
시안은 남아 있는 화환들을 전부 그녀에게 넘겨주었다. 그녀는 마차의 문을 열며 크리스탈화된 엘프들을 하나하나 해방시켜 주었다.
“왕께서 저희를 위해 불필요한 노고를 해주셨으나 저희들은 신천지를 찾아 도시를 떠나온 몸. 세계수의 묘목도 잃어버려 갈 곳이 없는 지금의 저희들은 흔히들 말하는 떠돌이 신세겠지요. 죄송합니다만 저희들은 보답으로 드릴만한 마땅한 것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녀가 말을 마쳤을 때는 마지막 엘프를 해방한 직후였다. 라일라를 포함해 남자가 넷이고 여자가 여섯. 총 열 명이 엘프의 전원이다.
남자가 화사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화환을 쓰고 있는 건 제법 꺼려지는 모양새였으나 옷걸이가 최고급이기 때문인지 심하게 어색하지도 않다.
그들은 라일라에게 상황을 전해들은 후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엘프란 은원관계에 몹시 철저한 종족이다.
“때문에 저희들을 나락에서 구원해 주신 왕께 저희들의 목숨을 마치겠습니다. 부디 좋을 대로 활용해 주시길.”
그녀의 선언이 있자 여봐란 듯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별이 지는 숲에 거주하는 엘프들이 충성을 맹세합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뭘 당연한 것을 물어보고 그래?”
고민할 가치도 없는 질문이다. 시안은 흔쾌하게 수락했다.
그에 따라 새로운 건축물을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보나마나 엘프를 소환할 수 있는 훈련소일 가능성이 다분하므로 제대로 읽지도 않고 지워버렸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이 부하가 된 엘프들의 어빌리티다. 시안은 그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엘프의 레벨은 10에서 13사이이며 하나같이 민첩성이 뛰어나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안의 이목을 사로잡은 것은 최강의 궁술.
유일 등급보다 한 단계 높은 영웅 등급의 스킬인 요정 궁술을 모두가 빠짐없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되도 않는 고블린들에게 활을 갖게 하지 않아도 되겠군.”
치가 떨릴 정도로 빈곤하기 짝이 없는 고블린들의 활솜씨를 떠올린 시안이 실로 만족스럽게 웃었다.
엘프.
흔히 요정으로 분류되는 그들은 NPC이지만 동시에 희귀 등급의 몬스터로 통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중에서 라일라는 무려 유일 등급이었다.
<어빌리티>
이름 : 라일라 레림
레벨 : 14
직업 : 궁수(Rank ― 일반)
종족 : 하이엘프(요정) ― 유일
HP : 320
MP : 330
근력 : 27
마력 : 19
체력 : 17
정신력 : 22
민첩성 : 56
내구성 : 13
<소지스킬>
요정 궁술, 별을 쫓는 자, 매의 눈, 숲지기의 걸음걸이.
PPO시절부터 존재하는 대부분의 스킬을 꿰뚫고 있는 시안은 그녀가 가진 스킬들이 얼마나 뛰어난 것들인지 알 수 있었다.
시력을 높여주는 매의 눈과 숲에서의 이동 속도를 상승시켜주는 숲지기의 걸음걸이는 궁수에게 무엇보다 효과적인 스킬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감히 사기적인 수준이라 단언할 수 있는 것이 별을 쫓는 자. 무려 레벨이 오를 때마다 일정 확률로 추가 어빌리티를 획득할 수 있는 희귀 스킬로 게임의 시나리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NPC가 가지는 스킬이기도 하다.
“의외로 엄청난 녀석을 손에 넣은 걸지도 몰라.”
절로 어깨춤과 콧노래가 흘러나올 정도로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의미에서 시안은 그녀와 악수를 나누었다. 라일라의 손은 마시멜로처럼 부드러운 한편 전사의 것임을 증명하듯 일부에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하이엘프 라일라 레림이 전력(全力)의 성좌를 갖게 되었습니다.>
25화
<어빌리티>
이름 : 시안
레벨 : 11
직업 : 마왕(Rank ― 초월)
종족 : 마족 ― 전설
공포 : 142
HP : 640
MP : 630(+63)
근력 : 35
마력 : 63(+12)
체력 : 32
정신력 : 42(+4)
민첩성 : 41
내구성 : 31
통솔력 : 155(+100)
<소지 스킬>
어둠 마법(하급 8단계), 종속 마법(하급 2단계), 부대 관리(하급 7단계), 마왕의 면류관(P).
<마왕의 면류관 ― Passive.>
종의 정점에 선 자에게 주어지는 왕관. 그중에서도 모든 마를 관리하고 선두에 서는 마족의 왕에게 주어지는 왕관이다. 강력한 축복이 부여되어 있다.
해제가 불가능하다.
― 마력, 정신력 10%상승.
― 통솔력 100상승.
― 마신의 축복 : 모든 암흑 속성 마법에 면역 상태가 된다. 빛 속성 마법에 10%의 추가 대미지를 받는다.
― 모든 일반 공격이 암흑 속성을 갖게 된다.
머리 위의 왕관은 아이템이 아니라 스킬로 적용되었다. 여러 가지 어빌리티를 상승시켜 주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통솔력. 빠듯하게 운영하고 있던 통솔력을 무려 100이나 증가시켜 주었다.
아이템이 아닌 스킬이기에 죽어도 빼앗길 염려가 없다는 것이 마음을 풍족하게 했다.
수많은 별들이 가득한 하늘로부터 그 별의 개수만큼이나 많은 박쥐들이 날아들었다. 평범한 박쥐가 아니다. 단단한 피부로 보호받는 커다란 눈에 날개와 발이 달린 왕눈이의 형제쯤 되는 녀석들이다.
녀석들은 창공에 거대한 원을 그리며 비행했다. 그들은 한 목소리로 입을 맞춰 노래를 불렀다.
새로운 마왕이 탄생했다.
경배하고 두려워하라. 어리석고 나약한 인간들이여.
모든 마의 왕이 납셨도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라. 그대들을 죽음의 세계로 인도할 정벌자가 왔다.
왕의 귀에 아첨을 넣는 간신배처럼 간사하고 무게감이 없는 목소리지만 그것이 수백, 수천이 모여 울리니 제법 그럴듯하게 분위기가 살아났다.
“마, 마왕…….”
마을 주민들은 하나둘 무릎을 꿇었다. 그들의 표정에 극한의 공포가 가득하다.
“저렇게까지 화려한 퍼포먼스는 필요 없는데.”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시안은 영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검이 탄생하는 과정과 마왕으로 각성을 축하하는 자리에 필요 이상으로 입회자가 많은 까닭이다.
보통 모험가 조합과 국가들은 증언을 멀리하고 증거를 신용한다. 때문에 별이 지는 숲에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는 증언이 있더라도 곧장 토벌대를 꾸리지 않는 것이다. 증언만 수두룩하지 정작 중요한 증거는 없으니까.
한때 정상급 플레이어였기에 모험가 조합의 특징을 너무도 잘 아는 시안은 증거만 주지 않으면 된다고,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뜬소문이라 할지라도 마족, 마왕과 관련된 일은 중요시된다. 과거 대륙이 마왕의 군세에 의해 멸망의 위험에 처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다 글러먹었다. 여기 있는 마을 주민 전원을 처리하지 않고서는 비밀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어쩌지… 역시 다 죽여야 하나?”
시안은 아무렇지도 않게 끔찍한 대량 학살극을 떠올렸다. 그의 중얼거림을 주워들은 마을 주민 중 하나가 몸을 움찔 떨었다.
“부, 부디 제 목숨은 가져가셔도 좋으니 가족만큼은…….”
중년의 남자는 가족들을 등 뒤로 숨기며 시안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그 남자를 따라 많은 마을 주민들이 머리를 낮춘다. 대륙 공공의 적인 마왕을 향해.
자신의 턱을 쓰다듬던 시안은 묘안을 떠올리고 손뼉을 마주쳤다. 무의미한 학살보다는 그들의 인력을 어떻게든 써먹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나의 포로가 되어 모든 마족들을 위해 노동력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너희의 생존권을 보장해 주겠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마왕으로써 수많은 사람들 앞에 서게 된 시안의 말투가 조금은 근엄하고 진중해졌다.
그의 말이 있은 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치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상대가 대륙의 공적인 마왕이며 그와 타협하는 것이 용서받지 못할 행위라 할지라도 당장의 목숨이 더 소중한 법이다. 멀리 있는 법보다 눈앞의 주먹이 두려운 것처럼.
[키익! 왕, 전투가 끝났다. 우리의 승리다! 하지만 지휘관인 그 여자가 죽었다. 그 여자 약하다.]
때마침 자경단 및 플레이어 연합과 싸우고 있던 고블린으로부터 전투가 끝났다는 소식이 전해져왔다. 당연한 승리를 전달받은 시안은 그들의 합류를 기다렸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합류를 한 고블린들은 생각 이상으로 수가 줄어들어 있었다. 거의 3할에 달하는 고블린이 죽었고, 전신에 갑옷을 입히느라 돈을 잔뜩 처바른 오크 한 마리가 죽었다.
“한동안 죽어라 사냥만 해야겠군.”
그나마 위안인 점은 플레이어와 자경단을 쓰러뜨림으로 얻은 전리품을 통해 당장의 손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너희들은 여기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복귀하도록 해. 절대, 한 사람도 빠뜨리지 말고 전원이다. 도망치는 사람이 있으면 쫓아가서 죽여라. 도중에 누군가에게 발견되면 그 녀석도 죽여라.”
“키익! 알겠다. 우리는 왕의 명령을 잘 따른다. 착한 고블린이다.”
가차 없이 살인멸구를 명하는 시안이나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고블린의 태도가 마을 주민들의 뇌리에 일말 남아 있는 도주라는 선택지를 깔끔하게 지워버렸다.
먼저 떠나는 고블린들과 포로들을 배웅한 시안은 몇 대의 마차에 시선을 주었다. 저 안에는 시안이 구출해야 할 엘프들이 감금되어 있다.
하지만 마차 문을 열어줘도 포로들이 걸어서 나오는 일은 없었다. 엘프들은 노예사냥꾼들에게 화환을 빼앗긴 후 전부 크리스탈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전리품 회수를 잊었군.”
시안은 노예사냥꾼들이 남긴 전리품을 하나씩 회수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노예사냥꾼들이 하나 혹은 여러 개의 화환을 남겼다.
<엘프의 화환 ― Rank : Unique.>
세계수의 잎과 줄기, 꽃 따위를 엮어 만든 화환으로 마법적 처리가 되어 있어 쉽게 훼손되지 않는다. 마력의 효율을 높여주며 엘프가 사용할 경우 크리스탈화를 방지해 준다.
― 세계수의 축복 : 크리스탈화 방지.
― 캐스팅 속도 5% 감소.
― 내구 : 35/35
― HP, MP 회복력 10% 상승.
유일 등급의 상당히 귀한 물건이며, 대부분의 성능이 회복에 치중되어 있다. 회복 기술이 희귀한 몬스터들에게는 몹시 귀중한 물건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화환들은 전부 주인이 있으므로 휘하 몬스터들에게 나눠줄 수 없을뿐더러 머리에 화환을 쓰고 있는 고블린이나 오크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치가 떨릴 만큼 끔찍하다.
그 외에도 노예사냥꾼 보스인 칼카스를 쓰러뜨려 희귀한 소재들을 손에 넣었다. 그중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목재 방패다.
보통 목재 방패는 철재 방패보다 성능이 뒤처지기 마련이지만 다름 아닌 나무 괴인 칼카스를 쓰러뜨리고 얻은 장비다. 시안은 높은 성능을 기대하며 방패의 효과를 살폈다.
<세계수의 묘목방패 ― Rank : Unique>
세계수의 묘목으로 만든 나무 방패. 일반 나무 방패에 비해 압도적인 견고함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성장하지 못한 묘목인지라 다 자란 세계수보다는 다소 뒤떨어지는 흠이 있다.
―제한 : 10레벨 이상. 근력 30이상.
―방어력 : 11
―체력회복력 15%상승.
―내구 : 46/46
―화염내성 5% 하락. 자연내성 10% 상승.
역시나 상당히 효율이 좋은 장비다. 비록 근력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그리 높은 편도 아니다. 다소 사이즈가 커서 고블린은 고사하고 시안조차 사용할 수 없다.
“이건 어쩔 수 없이 오크에게 줘야겠군.”
덩치가 큰 오크라면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 잡다한 것들을 인벤토리에 쑤셔 넣은 시안은 비로소 엘프들을 해방하기 위한 작업을 개시했다.
가장 먼저 찾아간 이는 그에게 강제 퀘스트를 부여한 간접적 원인이 되는 엘프, 라일라 레림이다.
마차의 문을 열자 이제는 거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크리스탈화가 진행된 라일라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시안을 보자 작게 미소를 지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기운을 느꼈습니다. 진정한 마의 왕이 되셨군요. 경하 드립니다.]
그녀는 크리스탈 안에서 우아하게 절을 했다. 아름다운 미인이 건네는 축복이 썩 달가웠던 시안의 입가가 당장이라도 피어날 것처럼 씰룩거렸다.
작게 헛기침을 하며 폭주하려는 본능을 잠재운 시안이 눈높이에서 화환을 흔들었다.
“이거, 어떻게 사용하면 되는 거야?”
[제게… 크리스탈에 접촉시켜 주세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녀의 부탁에 시안의 망설이지 않고 화환을 크리스탈 위에 올려두었다. 그러자 작은 빛과 함께 크리스탈이 서서히 기화하기 시작한다.
기화한 크리스탈은 라일라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두 다리로 땅을 딛는 그녀의 손에는 화환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화환을 머리에 쓰고 예쁘게 웃었다.
크리스탈에서 해방되어 색조를 되찾은 그녀의 머리카락은 화사한 태양을 녹여 만든 듯한 금발이었다. 눈동자는 따뜻한 대지를 연상시키는 갈색이다.
“저를, 그리고 동족들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왕이시여.”
“괜찮아. 별거 아니었어.”
비록 상대가 NPC일지언정 무릇 남자란 미인 앞에서 폼을 잡고 싶은 법이다. 시안은 스스로를 과대포장하며 우쭐거렸고, 라일라는 온화하게 웃는다.
시안은 남아 있는 화환들을 전부 그녀에게 넘겨주었다. 그녀는 마차의 문을 열며 크리스탈화된 엘프들을 하나하나 해방시켜 주었다.
“왕께서 저희를 위해 불필요한 노고를 해주셨으나 저희들은 신천지를 찾아 도시를 떠나온 몸. 세계수의 묘목도 잃어버려 갈 곳이 없는 지금의 저희들은 흔히들 말하는 떠돌이 신세겠지요. 죄송합니다만 저희들은 보답으로 드릴만한 마땅한 것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녀가 말을 마쳤을 때는 마지막 엘프를 해방한 직후였다. 라일라를 포함해 남자가 넷이고 여자가 여섯. 총 열 명이 엘프의 전원이다.
남자가 화사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화환을 쓰고 있는 건 제법 꺼려지는 모양새였으나 옷걸이가 최고급이기 때문인지 심하게 어색하지도 않다.
그들은 라일라에게 상황을 전해들은 후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엘프란 은원관계에 몹시 철저한 종족이다.
“때문에 저희들을 나락에서 구원해 주신 왕께 저희들의 목숨을 마치겠습니다. 부디 좋을 대로 활용해 주시길.”
그녀의 선언이 있자 여봐란 듯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별이 지는 숲에 거주하는 엘프들이 충성을 맹세합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뭘 당연한 것을 물어보고 그래?”
고민할 가치도 없는 질문이다. 시안은 흔쾌하게 수락했다.
그에 따라 새로운 건축물을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보나마나 엘프를 소환할 수 있는 훈련소일 가능성이 다분하므로 제대로 읽지도 않고 지워버렸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이 부하가 된 엘프들의 어빌리티다. 시안은 그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엘프의 레벨은 10에서 13사이이며 하나같이 민첩성이 뛰어나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안의 이목을 사로잡은 것은 최강의 궁술.
유일 등급보다 한 단계 높은 영웅 등급의 스킬인 요정 궁술을 모두가 빠짐없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되도 않는 고블린들에게 활을 갖게 하지 않아도 되겠군.”
치가 떨릴 정도로 빈곤하기 짝이 없는 고블린들의 활솜씨를 떠올린 시안이 실로 만족스럽게 웃었다.
엘프.
흔히 요정으로 분류되는 그들은 NPC이지만 동시에 희귀 등급의 몬스터로 통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중에서 라일라는 무려 유일 등급이었다.
<어빌리티>
이름 : 라일라 레림
레벨 : 14
직업 : 궁수(Rank ― 일반)
종족 : 하이엘프(요정) ― 유일
HP : 320
MP : 330
근력 : 27
마력 : 19
체력 : 17
정신력 : 22
민첩성 : 56
내구성 : 13
<소지스킬>
요정 궁술, 별을 쫓는 자, 매의 눈, 숲지기의 걸음걸이.
PPO시절부터 존재하는 대부분의 스킬을 꿰뚫고 있는 시안은 그녀가 가진 스킬들이 얼마나 뛰어난 것들인지 알 수 있었다.
시력을 높여주는 매의 눈과 숲에서의 이동 속도를 상승시켜주는 숲지기의 걸음걸이는 궁수에게 무엇보다 효과적인 스킬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감히 사기적인 수준이라 단언할 수 있는 것이 별을 쫓는 자. 무려 레벨이 오를 때마다 일정 확률로 추가 어빌리티를 획득할 수 있는 희귀 스킬로 게임의 시나리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NPC가 가지는 스킬이기도 하다.
“의외로 엄청난 녀석을 손에 넣은 걸지도 몰라.”
절로 어깨춤과 콧노래가 흘러나올 정도로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의미에서 시안은 그녀와 악수를 나누었다. 라일라의 손은 마시멜로처럼 부드러운 한편 전사의 것임을 증명하듯 일부에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하이엘프 라일라 레림이 전력(全力)의 성좌를 갖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