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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영웅은 마왕이 되었다
1화
프롤로그 ― 미르
“질문, ‘미르’가 도대체 뭐야?”
어느 날 문득 노크도 없이 방에 들이닥친 그녀가 펼쳐져 있는 노트북의 화면을 불쑥 들이밀며 질문을 던졌다.
침대 위에 엎드린 채 소설책을 펼쳐 놓고 킬킬거리던 소율은 불의의 기습에 놀라 우스꽝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혼자 보기 아까운 표정이라 생각하며 선율은 쌍둥이의 침대 위에 올라갔다.
“…뜬금없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야. 그보다 방에 들어올 때는 노크를 해라.”
만화책을 덮고 몸을 일으킨 소율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나 노크를 부탁하고 있지만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인지, 이 아리따운 외모의 쌍둥이는 도통 들어 먹지를 않는다.
“미안, 사과할게. 하지만 노크는 앞으로도 하지 않을 예정이야.”
“문을 잠가놓든가 해야지 원. 그보다 갑자기 미르가 뭐냐고 묻는 이유가 뭐야? 단순히 사전적 의미를 묻는 거라면 전설의 생물인 용을 일컫는 순우리말이라고 대답하겠어.”
“그게 아니라 이쪽을 봐.”
고개를 숙인 탓에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선율이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노트북 화면을 가리킨다. 그녀의 손끝이 향한 곳에는 ‘금주의 초특급 화제’라는 문구와 함께 ‘PAO 정식 오픈 임박. 미르의 선택은 과연?’이라는 기사가 펼쳐져 있었다.
겨우 그녀가 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한 소율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표정은 벌레라도 씹은 듯 영 떨떠름했다.
“요즘 미르에 대해 말이 많더라고. 검색어 순위 2위야. 다음 주에 오픈하는 가상현실 게임 ‘Project Another Online’이 검색어 순위 1위인 것은 이해하겠는데, 미르가 뭐기에 함께 떠오르는지 모르겠어.”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소율은 오랫동안 엎드려 있은 탓에 뻐근함을 호소하는 어깨를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풀어주며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내용들을 간결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다.
“우선 미르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는 PPO에 대한 지식이 필요해. PPO가 뭔지는 알고 있지?”
“모를 리가 없지. ‘Project Pangea Online’ 세계 최초이자 유일했던 다이브형 가상현실 게임이며, 1년 전에 서비스를 종료함. 어떤 게임 폐인이 죽어라 매달려 있던 게임인데 모를 리가 없지. 안 그래?”
그렇게 말하는 선율은 자신의 옆에서 허리를 비틀고 있는 소율을 흘겨보았다. 그녀가 말하는 어떤 게임 폐인이 자신을 칭하는 것임을 익히 아는 소율은 웃는 얼굴로 얼버무렸다.
“정답. 네가 언급한 것 외에도 PPO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번에 나오는 PAO와 동일한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이야. 당시 기술력의 부족으로 인해 7천만의 플레이어밖에 수용하지 못했지만, 방송으로 공개되는 PVP(Player vs Player) 분야의 인기가 상당했어. 내가 듣기로는 PPO의 팬이 무려 10억 이상에 달한다고 하더라.”
“어마어마하네.”
선율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순수한 경악을 터뜨렸다. 10억은 결코 작은 수가 아니다. 2033년 기준으로 세계 인구가 80억 정도임을 감안하면 여덟 명 중 한 명은 PPO의 팬이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네가 말한 미르는 PPO가 서비스를 한 5년 동안 PVP 랭킹 1위의 자리를 단 한 번도 내놓지 않은 팀이야.”
“대단한 거야?”
“대단한 거지. 네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자면… A라는 스포츠 팀이 매년 열리는 세계 대회에서 5회 연속으로 1위를 차지하는 것과 비슷한 업적이야.”
“오오!”
설명을 들은 선율은 물개박수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업적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시선이 노트북 화면으로 향했다. 온갖 광고가 양쪽 사이드를 장식하고 있는 기사에는 미르 팀에 관한 정보가 제법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미르란 누구인가.>
기본적으로 PPO에서 PVP는 다섯 명이 하나의 팀을 구성하게 된다.
서로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경우 머릿수가 많아야 전투에서 유리한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용되는 당연한 이치다. 때문에 PVP는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원수를 꽉꽉 채워 5:5로 진행되기 마련이다. 물론 여기에는 각종 직업의 조화와 팀플레이가 중요시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마스터 레벨은 100. 성장에 명확한 상한선이 그어져 있는 PPO에서 상위권 PVP팀에게 요구되는 것은 장비의 성능과 캐릭터의 육성 방향, 상황에 맞게 사용할 수 있는 각종 소모성 아이템의 준비와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전술, 마지막으로 그 모든 것을 적재적소에 맞게 스킬을 사용할 줄 아는 컨트롤이다.
그러나 이러한 틀을 깨부순 것이 바로 시안과 이향, 단 두 명의 마법사로만 구성된 혼성 PVP팀 미르다.
그들은 캐릭터를 PVP 전문으로 육성하지 않았고, 장비를 PVP 전용으로 구성한 것도 아니며, 전투에서 값비싼 소모품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르의 승률은 무려 81%에 이른다. 2위 팀의 승률이 65%임을 감안하면 실로 압도적이며 비현실적인 수치다.
어디서나 평범하게 볼 수 있는 육성법을 도입한 캐릭터를 사용하며, 남들이 애용하는 매직 카드나 치료 약품 따위에 의존하지 않는 미르가 수많은 승리를 거머쥔 비결은 플레이어들의 눈을 의심하게 되는 압도적인 컨트롤, 그리고 그들의 독자적인 기술이라 할 수 있는 개조 마법이다. 이는 PPO를 사랑하는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열광하기에 충분했다.
희대의 천재, 게임의 신, 컨트롤의 귀재 등… 그들을 칭하는 별명은 실로 다양했으나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그들의 팀명에서 탄생한 별명을 즐겨 사용했다.
쌍룡.
그것이 최강의 PVP팀 미르를 칭하는 대표적 별명이다. 언제나 최강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는 그들을 시기하는 자도 있었으나 그 수는 극소수이며, 무려 8억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팬을 자처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과거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제 그들은 배신자이며, 공공의 적일 뿐이다.
“과거의 이야기? 배신자? 공공의 적?”
기사의 마지막 부분에 적혀 있는 한마디 짧은 문구가 그녀의 호기심을 건드렸다. 소율의 어깨를 두드려 강제로 해당 문구를 읽게 만든 그녀는 입술 모양을 고양이처럼 만들며 설명을 요구했다.
스트레칭을 마치고 읽던 만화를 마저 보려던 소율은 그녀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강제로 붙잡혀 설명을 해야만 했다.
“1년 전, PPO의 시나리오는 막바지에 이르렀어. 마족의 침공을 막기 위해 31인의 결사대가 꾸려졌고, 그들은 마왕을 쓰러뜨리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일곱 개의 신기를 배정받았어. 그 결사대에 미르 역시 포함되어 있었고, 그들은 실력을 인정받아 일곱 개의 신기 중 네 개를 지급받았지.”
“굉장히 신뢰받고 있었구나.”
“그런 셈이지. 그런데 결전 당일, 미르 팀은 신기를 들고 잠적했어. 덕분에 마왕의 침공을 막지 못했고, PPO의 시나리오는 인류의 패배라는 식으로 허망하게 막을 내리게 되었지. 이게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는 과거의 이야기야.”
“…그러면 안 돼?”
게임의 시나리오에 일말의 관심도 없는 선율은 뭐가 잘못되었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질문을 던진다. 그녀가 이해하기 쉽도록 적당한 예시를 찾아야 하는 소율은 명명백백 귀찮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네가 보는 드라마 있지? 거기서 여주인공이 결혼식 당일에 갑자기 남주인공을 배신하고 잠적해 버린 후, 그대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온다고 생각해 봐.”
“작가를 찾아가서 죽일 거야.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지금 네가 느끼는 그 감정이 당시 PPO를 사랑했던 10억의 팬들이 느꼈던 감정이야. 덕분에 미르는 증오의 대상이며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으로 통하는 실정이지.”
“너는 설명의 천재가 분명해. 단번에 이해했어.”
주먹을 쥐락펴락하던 선율이 깊은 깨달음을 얻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원효 대사가 해골 물의 깨달음을 얻은 직후 저런 표정을 지었을 거라 생각한 소율은 작게 웃음을 흘리며 읽던 소설책을 펼쳤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이 있어.”
“또 뭔데?”
소율은 책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고 답을 했다.
마침 소설 내용에서 재미있는 장면이 나왔기에 폭소를 터뜨리고 있던 그의 귓가로 선율의 나지막한 속삭임이 파고들었다.
“10억 명의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기분이 어때? 미르의 시안 씨.”
“…수명이 100년은 늘어난 기분이야.”
웃던 표정 그대로 절망적인 감정을 토해낸 소율은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Chapter 1 ― 마왕(후보)의 탄생
“더워, 너무 더워……. 이러다 아이스크림마냥 녹아버릴지도 몰라.”
입을 열면 계절을 저주하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그야말로 찜통 같은 더위였다.
기상 캐스터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매년 갱신되는 역대 최고치의 무더위가 찾아왔노라고 떠들어 댔다.
손에 들고 있는 아이스크림은 아직 반도 채 먹지 못했건만, 벌써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방 안에 있는 창문은 모두 활짝 열었으며, 선풍기만으로는 부족해서 부채까지 들었다. 심지어 얼음물을 채운 대야에 발을 담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위는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들려오는 매미의 울음소리는 가뜩이나 한계를 향해 치솟는 짜증 지수를 단번에 증폭시킨다.
“왜 하필 이런 때 에어컨이 고장 나는 거야!”
소율이 원망스러운 눈으로 방구석에 설치된 소형 에어컨을 노려보았다.
올여름 초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근면 성실하게 일한 에어컨이 어제저녁에 한계를 선언하고 먹통이 되어버렸다. 일단 수리를 요청하기는 했지만, 휴일이 겹쳐 모레에나 방문이 가능하다는 절망적인 답변을 받았을 뿐이다.
쉬지 않고 ‘더워’라는 단어를 주문처럼 웅얼거리던 소율의 일련의 행위는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가 있기까지 계속되었다.
방문자는 어지간히도 급한 성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초인종을 누르는 것과 문을 두드리는 것을 쉬지 않고 반복한다.
“더워. 귀찮아. 움직이고 싶지 않아. 가만히 있으면 선율이가 나가주겠지.”
누군지도 모를 방문객은 게으름의 화신이 강림한 소율을 움직이게 하기에 다소 부족함이 있었다.
하지만 한차례 진동을 마친 스마트폰 액정에 표시된 마법의 문구는 곧바로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택배요!>
“지금 만나러 갑니다!”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처럼 바닥과 혼연일체가 되어 있던 소율이 번개처럼 일어나 달려 나갔다.
대야가 엎어지고 얼음물이 바닥에 쏟아져 난장판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경은 오로지 택배를 받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결국 소율은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근심 걱정 하나 없는 얼굴로 방에 돌아온 그의 품에는 커다란 박스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PAO가 오픈하는 날이었지. 최근 날짜감각이 없어서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네.”
소율의 시선이 벽에 걸린 달력으로 향했다.
다른 곳은 새것처럼 깨끗한데 8월 17일에만 붉은색의 원이 여러 개 덧그려져 있다. 그 옆에는이라는 문구가 아기자기한 필체로 적혀 있었다. 다름 아닌 소율 본인의 필체다.
에어컨의 고장으로 인해 최저 수치까지 떨어져 있던 기분이 급격히 좋아졌다. 간단하게 방 정리를 마친 소율은 콧노래를 부르며 상자를 봉하고 있는 테이프를 뜯었다.
상자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가 잔뜩 부착되어 있는 고글이 담겨 있었다. 청색의 고글을 불투명했으며, 좌측면에는 크로노스 회사의 로고가 기입되어 있다.
고글 외에도 코드로 연결되어 있는 금속 상자가 몇 개 정도 자리하고 있었으며, 사용 설명서와 멋들어진 디자인의 검은색 편지 봉투가 담겨 있다.
편지지에는 짧지만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문구가 기입되어 있었다.
1화
프롤로그 ― 미르
“질문, ‘미르’가 도대체 뭐야?”
어느 날 문득 노크도 없이 방에 들이닥친 그녀가 펼쳐져 있는 노트북의 화면을 불쑥 들이밀며 질문을 던졌다.
침대 위에 엎드린 채 소설책을 펼쳐 놓고 킬킬거리던 소율은 불의의 기습에 놀라 우스꽝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혼자 보기 아까운 표정이라 생각하며 선율은 쌍둥이의 침대 위에 올라갔다.
“…뜬금없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야. 그보다 방에 들어올 때는 노크를 해라.”
만화책을 덮고 몸을 일으킨 소율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나 노크를 부탁하고 있지만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인지, 이 아리따운 외모의 쌍둥이는 도통 들어 먹지를 않는다.
“미안, 사과할게. 하지만 노크는 앞으로도 하지 않을 예정이야.”
“문을 잠가놓든가 해야지 원. 그보다 갑자기 미르가 뭐냐고 묻는 이유가 뭐야? 단순히 사전적 의미를 묻는 거라면 전설의 생물인 용을 일컫는 순우리말이라고 대답하겠어.”
“그게 아니라 이쪽을 봐.”
고개를 숙인 탓에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선율이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노트북 화면을 가리킨다. 그녀의 손끝이 향한 곳에는 ‘금주의 초특급 화제’라는 문구와 함께 ‘PAO 정식 오픈 임박. 미르의 선택은 과연?’이라는 기사가 펼쳐져 있었다.
겨우 그녀가 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한 소율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표정은 벌레라도 씹은 듯 영 떨떠름했다.
“요즘 미르에 대해 말이 많더라고. 검색어 순위 2위야. 다음 주에 오픈하는 가상현실 게임 ‘Project Another Online’이 검색어 순위 1위인 것은 이해하겠는데, 미르가 뭐기에 함께 떠오르는지 모르겠어.”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소율은 오랫동안 엎드려 있은 탓에 뻐근함을 호소하는 어깨를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풀어주며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내용들을 간결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다.
“우선 미르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는 PPO에 대한 지식이 필요해. PPO가 뭔지는 알고 있지?”
“모를 리가 없지. ‘Project Pangea Online’ 세계 최초이자 유일했던 다이브형 가상현실 게임이며, 1년 전에 서비스를 종료함. 어떤 게임 폐인이 죽어라 매달려 있던 게임인데 모를 리가 없지. 안 그래?”
그렇게 말하는 선율은 자신의 옆에서 허리를 비틀고 있는 소율을 흘겨보았다. 그녀가 말하는 어떤 게임 폐인이 자신을 칭하는 것임을 익히 아는 소율은 웃는 얼굴로 얼버무렸다.
“정답. 네가 언급한 것 외에도 PPO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번에 나오는 PAO와 동일한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이야. 당시 기술력의 부족으로 인해 7천만의 플레이어밖에 수용하지 못했지만, 방송으로 공개되는 PVP(Player vs Player) 분야의 인기가 상당했어. 내가 듣기로는 PPO의 팬이 무려 10억 이상에 달한다고 하더라.”
“어마어마하네.”
선율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순수한 경악을 터뜨렸다. 10억은 결코 작은 수가 아니다. 2033년 기준으로 세계 인구가 80억 정도임을 감안하면 여덟 명 중 한 명은 PPO의 팬이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네가 말한 미르는 PPO가 서비스를 한 5년 동안 PVP 랭킹 1위의 자리를 단 한 번도 내놓지 않은 팀이야.”
“대단한 거야?”
“대단한 거지. 네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자면… A라는 스포츠 팀이 매년 열리는 세계 대회에서 5회 연속으로 1위를 차지하는 것과 비슷한 업적이야.”
“오오!”
설명을 들은 선율은 물개박수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업적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시선이 노트북 화면으로 향했다. 온갖 광고가 양쪽 사이드를 장식하고 있는 기사에는 미르 팀에 관한 정보가 제법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미르란 누구인가.>
기본적으로 PPO에서 PVP는 다섯 명이 하나의 팀을 구성하게 된다.
서로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경우 머릿수가 많아야 전투에서 유리한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용되는 당연한 이치다. 때문에 PVP는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원수를 꽉꽉 채워 5:5로 진행되기 마련이다. 물론 여기에는 각종 직업의 조화와 팀플레이가 중요시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마스터 레벨은 100. 성장에 명확한 상한선이 그어져 있는 PPO에서 상위권 PVP팀에게 요구되는 것은 장비의 성능과 캐릭터의 육성 방향, 상황에 맞게 사용할 수 있는 각종 소모성 아이템의 준비와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전술, 마지막으로 그 모든 것을 적재적소에 맞게 스킬을 사용할 줄 아는 컨트롤이다.
그러나 이러한 틀을 깨부순 것이 바로 시안과 이향, 단 두 명의 마법사로만 구성된 혼성 PVP팀 미르다.
그들은 캐릭터를 PVP 전문으로 육성하지 않았고, 장비를 PVP 전용으로 구성한 것도 아니며, 전투에서 값비싼 소모품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르의 승률은 무려 81%에 이른다. 2위 팀의 승률이 65%임을 감안하면 실로 압도적이며 비현실적인 수치다.
어디서나 평범하게 볼 수 있는 육성법을 도입한 캐릭터를 사용하며, 남들이 애용하는 매직 카드나 치료 약품 따위에 의존하지 않는 미르가 수많은 승리를 거머쥔 비결은 플레이어들의 눈을 의심하게 되는 압도적인 컨트롤, 그리고 그들의 독자적인 기술이라 할 수 있는 개조 마법이다. 이는 PPO를 사랑하는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열광하기에 충분했다.
희대의 천재, 게임의 신, 컨트롤의 귀재 등… 그들을 칭하는 별명은 실로 다양했으나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그들의 팀명에서 탄생한 별명을 즐겨 사용했다.
쌍룡.
그것이 최강의 PVP팀 미르를 칭하는 대표적 별명이다. 언제나 최강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는 그들을 시기하는 자도 있었으나 그 수는 극소수이며, 무려 8억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팬을 자처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과거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제 그들은 배신자이며, 공공의 적일 뿐이다.
“과거의 이야기? 배신자? 공공의 적?”
기사의 마지막 부분에 적혀 있는 한마디 짧은 문구가 그녀의 호기심을 건드렸다. 소율의 어깨를 두드려 강제로 해당 문구를 읽게 만든 그녀는 입술 모양을 고양이처럼 만들며 설명을 요구했다.
스트레칭을 마치고 읽던 만화를 마저 보려던 소율은 그녀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강제로 붙잡혀 설명을 해야만 했다.
“1년 전, PPO의 시나리오는 막바지에 이르렀어. 마족의 침공을 막기 위해 31인의 결사대가 꾸려졌고, 그들은 마왕을 쓰러뜨리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일곱 개의 신기를 배정받았어. 그 결사대에 미르 역시 포함되어 있었고, 그들은 실력을 인정받아 일곱 개의 신기 중 네 개를 지급받았지.”
“굉장히 신뢰받고 있었구나.”
“그런 셈이지. 그런데 결전 당일, 미르 팀은 신기를 들고 잠적했어. 덕분에 마왕의 침공을 막지 못했고, PPO의 시나리오는 인류의 패배라는 식으로 허망하게 막을 내리게 되었지. 이게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는 과거의 이야기야.”
“…그러면 안 돼?”
게임의 시나리오에 일말의 관심도 없는 선율은 뭐가 잘못되었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질문을 던진다. 그녀가 이해하기 쉽도록 적당한 예시를 찾아야 하는 소율은 명명백백 귀찮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네가 보는 드라마 있지? 거기서 여주인공이 결혼식 당일에 갑자기 남주인공을 배신하고 잠적해 버린 후, 그대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온다고 생각해 봐.”
“작가를 찾아가서 죽일 거야.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지금 네가 느끼는 그 감정이 당시 PPO를 사랑했던 10억의 팬들이 느꼈던 감정이야. 덕분에 미르는 증오의 대상이며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으로 통하는 실정이지.”
“너는 설명의 천재가 분명해. 단번에 이해했어.”
주먹을 쥐락펴락하던 선율이 깊은 깨달음을 얻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원효 대사가 해골 물의 깨달음을 얻은 직후 저런 표정을 지었을 거라 생각한 소율은 작게 웃음을 흘리며 읽던 소설책을 펼쳤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이 있어.”
“또 뭔데?”
소율은 책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고 답을 했다.
마침 소설 내용에서 재미있는 장면이 나왔기에 폭소를 터뜨리고 있던 그의 귓가로 선율의 나지막한 속삭임이 파고들었다.
“10억 명의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기분이 어때? 미르의 시안 씨.”
“…수명이 100년은 늘어난 기분이야.”
웃던 표정 그대로 절망적인 감정을 토해낸 소율은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Chapter 1 ― 마왕(후보)의 탄생
“더워, 너무 더워……. 이러다 아이스크림마냥 녹아버릴지도 몰라.”
입을 열면 계절을 저주하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그야말로 찜통 같은 더위였다.
기상 캐스터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매년 갱신되는 역대 최고치의 무더위가 찾아왔노라고 떠들어 댔다.
손에 들고 있는 아이스크림은 아직 반도 채 먹지 못했건만, 벌써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방 안에 있는 창문은 모두 활짝 열었으며, 선풍기만으로는 부족해서 부채까지 들었다. 심지어 얼음물을 채운 대야에 발을 담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위는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들려오는 매미의 울음소리는 가뜩이나 한계를 향해 치솟는 짜증 지수를 단번에 증폭시킨다.
“왜 하필 이런 때 에어컨이 고장 나는 거야!”
소율이 원망스러운 눈으로 방구석에 설치된 소형 에어컨을 노려보았다.
올여름 초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근면 성실하게 일한 에어컨이 어제저녁에 한계를 선언하고 먹통이 되어버렸다. 일단 수리를 요청하기는 했지만, 휴일이 겹쳐 모레에나 방문이 가능하다는 절망적인 답변을 받았을 뿐이다.
쉬지 않고 ‘더워’라는 단어를 주문처럼 웅얼거리던 소율의 일련의 행위는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가 있기까지 계속되었다.
방문자는 어지간히도 급한 성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초인종을 누르는 것과 문을 두드리는 것을 쉬지 않고 반복한다.
“더워. 귀찮아. 움직이고 싶지 않아. 가만히 있으면 선율이가 나가주겠지.”
누군지도 모를 방문객은 게으름의 화신이 강림한 소율을 움직이게 하기에 다소 부족함이 있었다.
하지만 한차례 진동을 마친 스마트폰 액정에 표시된 마법의 문구는 곧바로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택배요!>
“지금 만나러 갑니다!”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처럼 바닥과 혼연일체가 되어 있던 소율이 번개처럼 일어나 달려 나갔다.
대야가 엎어지고 얼음물이 바닥에 쏟아져 난장판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경은 오로지 택배를 받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결국 소율은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근심 걱정 하나 없는 얼굴로 방에 돌아온 그의 품에는 커다란 박스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PAO가 오픈하는 날이었지. 최근 날짜감각이 없어서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네.”
소율의 시선이 벽에 걸린 달력으로 향했다.
다른 곳은 새것처럼 깨끗한데 8월 17일에만 붉은색의 원이 여러 개 덧그려져 있다. 그 옆에는
에어컨의 고장으로 인해 최저 수치까지 떨어져 있던 기분이 급격히 좋아졌다. 간단하게 방 정리를 마친 소율은 콧노래를 부르며 상자를 봉하고 있는 테이프를 뜯었다.
상자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가 잔뜩 부착되어 있는 고글이 담겨 있었다. 청색의 고글을 불투명했으며, 좌측면에는 크로노스 회사의 로고가 기입되어 있다.
고글 외에도 코드로 연결되어 있는 금속 상자가 몇 개 정도 자리하고 있었으며, 사용 설명서와 멋들어진 디자인의 검은색 편지 봉투가 담겨 있다.
편지지에는 짧지만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문구가 기입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