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해피 엔드(HAPPY END) 1화
1. 걸어 둔 시간 (1)


“이제 나가서 잘 살아.”
교도소 소장이 어깨를 두드린다. 의례상 하는 말이 괜히 심중을 건드렸다. 집도 가족도 없는 사람에게 하는 말치고는 영 부실한 인사였다. 그의 거칠고 두툼한 손바닥을 느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날씨 좋은 봄날이었지만 나를 마중 나온 사람은 없었다. 봄날에도 칙칙한 회색빛 교도소 건물을 바라보았다. 길고 긴 12년의 복역 끝에 세상에 나오게 되었지만 좋아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같은 방을 쓴 놈들은 드디어 닭장 같은 감옥을 나가는 내가 부럽다고 말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부러울 수가 없는 사람이니까.
속된 말로 개털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나였다. 처음 소년 교도소에 입소할 당시에도 쥐고 있던 돈은 3만 원이 고작이었다. 그것도 수사 중이던 형사가 딱하다고 혀를 차며 쥐여 준 용돈이었다. 그러니 변변찮은 사식*을 사 먹을 돈도 없었다. 복역 내내 영치금* 한 번 제대로 받아 본 적이 없다. 고아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온종일 출력*을 나가 일을 해도 빵장*들에게 털리고 나면 천 원짜리도 몇 장 안 남았다.
재산 없음, 가족 없음, 능력도 인맥도 없음, 봐줄 것 하나 없는 놈이니 교도소 안에서도 대놓고 왕따와 폭력이 이루어졌다. 숨이 붙어 있어 살긴 했지만, 미래가 긍정적이었던 적은 없었다. 늘 표정도 없이 조용히 시키는 일만 하며 교도소 구석에 웅크린 채 시체처럼 지냈다.
교도소 근처 버스 정류장에 조그만 마을버스가 몇 번이나 멈춰 섰지만 타지 않았다. 버스 기사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지만 묵묵하게 시간을 보냈다.
차츰차츰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의 하늘이 어두워지고 서편의 하늘이 노랗게 물들었을 때쯤 드디어 버스에 올라탔다. 약속 시각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두 번 버스를 갈아타고, 한참을 물어 가며 약속 장소 지하철역 근처까지 걸어서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하늘은 검푸른 색이 되어 있었다.
열다섯에 살인을 저질렀다. 살인 방법이 잔인하고 죄질이 악해 이례적으로 12년 형을 선고받았다. 김천의 소년 교도소에서 시간을 꾸역꾸역 채우다 스물둘에 쫓겨나듯 안양에 있는 교도소로 옮겨 살았다.
소년 교도소의 소장은 나를 안쓰럽게 여겨 붙들어 놓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평판이 바닥인 죄수 하나를 그 나이까지 데리고 있는 게 아마 더 곤란했을 것이다. 결국은 김천에서도, 안양에서도 사고에 많이 연루되는 바람에 가석방은 꿈도 꾸지 못하고 꾸역꾸역 12년을 전부 채웠다.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도, 작업장의 사람들도, 교도소 소장 역시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숨만 쉬어도 등에 붙어 있는 붉은 딱지는 내가 구원받을 수 없는 살인마라고 외치고 있었다. 같은 원생들 역시도 그랬다. 그들은 법정에서 내가 천사 같은 아버지를, 자신들의 신을 죽인 살인귀라고 소리 질렀다.
형제들에게 원장은 정말로, 정말로 천사 같은 사람이었다. 빠듯한 고아원 살림을 꾸려 나가면서 아이들에게 싫은 티 하나 내지 않았다. 우리가 마음대로 무릎에 올라타거나, 다리에 매달려도 웃기만 했다. 너른 어른의 품에 안겨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상쾌한 바람,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자애로운 얼굴…….
모두는 그를 하느님이고 신이라 믿었다. 원장은 우리를 천사들이라고 불렀다. 천사는 신의 종이다. 우리는 그걸 모르고 귀애받는다 생각하여 그저 좋아했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첫 번째 종이었다.
왜 그때는 몰랐을까. 원장은 신이 아닌 비열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신에서 인간으로 몰락한 원장을 죽일 때의 감각은 생생했다. 손톱 밑을 파고들던 물컹거리는 살점. 분수처럼 치솟던 뜨거운 피와 목이 찢어져라 소리 지르던 그의 부어터진 얼굴. 불덩이에 일그러져 춤을 추듯 방 안을 뛰어다니던 풍선 인형 같은 꼴. 여러 인생과 고아원을 한 번에 집어삼킨 화마.
단 한 번도 원장을 죽였다는 사실을 후회해 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황홀한 일이었다. 다시 돌아가도 몇 번이고, 또 몇 번이고 죽일 수 있었다. 더 잔인하고, 더 끔찍한 방법으로 수십 번 반복해서라도 죽일 수 있었다. 집과 터를 잃어버리고 죄를 짓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게 누구야, 우리 윤이원 아니신가.”
상념을 깨고 유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얼굴이 매끈하고 젊은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와 내 몸을 와락 끌어안았다. 팔을 떼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방금 퇴근을 했는지 양복 차림이었다. 내가 12년을 허물처럼 찢어 벗어 버리는 동안 누군가는 번듯한 직장인이 되었다.
“놔.”
“이때까지 너 뒷바라지해 줬더니 버리겠다 이거야? 너무한다, 정말.”
뒷바라지 좋아하시네. 얼굴을 찡그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어깨 위로 자연스럽게 팔을 올린 주영이 그대로 내 등을 떠밀어 근처 포장마차 한 곳으로 밀어 넣었다. 빨간색 플라스틱 의자 하나를 빼서 앉자마자 서주영이 손을 번쩍 들었다.
“이모님, 여기 두부김치랑 어묵탕이요.”
“……두부 좀 빼라.”
“이런 날엔 두부를 먹어야지. 소주도 한 병 주세요.”
자기 마음대로 음식을 주문한 주영이 웃으면서 소주를 받아 뚜껑을 땄다. 말없이 소주잔을 집어 따라 주는 술을 받았다. 낯선 물건이었지만 익숙한 물건이기도 했다. 한때는.
“술은 처음인가?”
그걸 전혀 모르는 주영이 묻는다. 테이블의 물 얼룩을 손끝으로 문질러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지.”
“한 잔 마시고 뻗지 마.”
“너보다 잘 마실 텐데.”
주량은 자신 있었다. 최소한 서주영보다 잘 마시는 편이었다. 익숙한 몸짓으로 소주를 입에 털어 넣으며 말했다.
“주량 네 병.”
“쓸데없이 정확하네. 그 안에서 술 마셔 봤냐?”
“아니.”
교도소에서 소주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에 킥킥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주영이 술잔을 손안에서 가만히 기울이더니 물었다.
“그럼, 꿈에서?”
“그래.”
꿈이라, 주영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 없이 빈 잔을 채워 주었다.
서주영. 고아원에서 유일한 동갑내기 친구였던 그는 수감 생활을 할 때 유일하게 면회를 와 준 사람이었다. 입소하고 3년 만에 받았던 편지와 5천 원, 만 원씩 넣어지던 영치금. 변호사에게도 하지 않았던 말을 한 것도 충동적인 감상에 젖어서였다.
짧은 면회 시간 동안 내 이야기를 들은 뒤 주영은 정신병자의 망상이라고 말했다. 본성에 내재되어 있던 살인의 충동을 제어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고, 나는 가볍게 긍정했다. 틀리지 않은 답이었다.
소년범이 받을 수 있는 거의 최대치의 형량을 받고 오랜 시간 지옥과 가장 가까운 교도소에서 살았다. 그렇지만 그곳은 결코 지옥은 아니었다. 나는 이미 진실한 지옥을 보았다. 검은 불꽃, 그 뜨겁고 염도 높은 악취.
나는 교도소에서 뉴스를 보지 않아도 사회가 돌아가는 흐름을 알았고, 과학 기술이 얼마나 발전하는지 알았다. 스마트폰도 인터넷의 발달도, 그 해의 이슈도.
종종 내가 기억하는 세상이 사실은 거짓된 상상이라는 악몽을 꿨다. 불안감으로 인해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릴 때면 신기하게도 서주영이 면회를 왔다. 주영은 세상에서 가장 크게 바뀐 이야기를 한두 개쯤 떠들었고, 고아원에서 지내던 아이들은 어떻게 변했는지 알려 주었다.
세상은 기억하고 있던 미래에서 한 치도 변하지 않았고, 서주영을 제외한 고아원의 형제들은 하나같이 나에게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상냥하고 자애로운 아버지를 죽인 나를 귀신이 낳은 아이라 욕하며 침을 뱉었다. 그때마다 티를 내지 않았지만 구역질이라도 하고 싶었다. 형제들에게 분노를 느낀 것이 아니다. 원장을 떠올리게 하는 모든 것들이 싫었다. 고정된 미래나, 고장 난 인생이나, 기억 같은 것들 전부.
생각의 시작은 더운 여름이었다. 선풍기가 미지근한 바람을 일으키며 돌아가던 방에서 깨어나 원장의 방문을 두드렸다. 이어지는 살을 저미는 감촉, 비명을 지르던 원장의 목소리, 더러워 모조리 불태우고 싶었던 기억의 증거.
“당장 지낼 돈은 있고?”
“응.”
“생필품 사면 돈 많이 들 텐데, 너 거지잖아.”
말을 참 예쁘게도 한다. 얼굴을 조금 찡그리곤 모난 표정 없이 빙글빙글 웃는 주영을 흘겨보았다.
“일당 주는 일이라도 하지, 뭐.”
“노가다?”
“노가다.”
“비리비리해서 벽돌 나르다 깔리는 거 아닌지 몰라.”
굳이 입으로 꿱, 하고 터지는 소리까지 내며 납작하게 깔린 흉내를 내는 주영을 노려보았다.
“좀 닥쳐라.”
“진심이야, 진심.”
“진심이면 더 닥쳐.”
주영이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했다. 교도소에서 노역으로 한두 푼 모았던 돈으로는 집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나마 얻은 싸구려 단칸방도 주영에게 빚을 졌다. 백만 원도 없는 인생. 삶은 마른 우물이었다. 오목하게 고여 썩어 가는 물도 없었다. 돌바닥 위에 쌓인 먼지와 쓰레기. 다들 쳐다도 보기 싫을 뿐이지 내 안에 뭐가 있는지는 알고 있을 터였다.
덜떨어진 인생이지만 출소를 기념이라도 하는 것처럼 하얀 두부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귀퉁이를 잘라 먹으며 오랜만에 음식의 맛을 느꼈다. 혀가 아릴 정도로 자극적인 짠맛, 단맛과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 교도소의 음식은 멀건 국물에 기름이 조금 떠다니는 게 전부였다. 살기 위해 먹었다기보다는, 먹지 않으면 급식판에 얼굴을 처박고 괴롭혀서 억지로 먹었다.
간간이 소주를 한 병씩 추가하다 보니 테이블 위에 동그란 소주 뚜껑이 점점 늘어났다. 초록색 알루미늄을 구부러트려 날카로운 모서리를 안으로 차곡차곡 접었다. 조금 취했는지 얼굴이 불그스름해진 주영이 이마를 짚은 채 물었다.
“바깥 공기는 어때?”
“그냥 똑같아.”
“이상한 놈이네.”
오간 말은 적었다. 아무도 열심히 살겠다거나, 열심히 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일어날까.”
“그러지, 뭐.”
고개를 끄덕이고 늘어진 상체를 들어 올렸다. 코를 간지럽히는 꽃가루와 흙먼지. 서울 근교의 봄 냄새가 온화해 이미 잊어버린 얼굴이 빛처럼 머릿속에서 반짝거렸다. 주황색 불빛, 빨간 천막의 반사된 색소 먹은 빛.
따뜻하네. 주영이 천막 사이로 스며 들어와 바닥에 깔린 꽃잎을 보며 낭만적인 소리를 했다. 옅은 분홍색을 보며 정말로 그렇다는 척 대꾸했다. 그러게.
지갑이 가난한 나를 대신해 주영이 지갑을 열고 계산했다. 짙은 색 양복이 무거워 보이는 어깨를 따라 한참 도로를 거슬러 걸어 올라갔다.
“보여 준 적 있나?”
“응?”
“네가 살 집.”
“아니…… 그냥 벽 있고 지붕 있겠지, 뭐.”
“지하철이랑 버스 타기는 꽤 좋아. 주변에 상점도 많고 인적도 뜸하진 않고…….”
“그럼 됐네.”
어디든 교도소보단 깔끔하고 넓은 공간일 거다. 여름에는 숨 쉬기 힘들 정도로 산소가 희박하던 그 좁은 골방. 비가 오는 날이면 늘 천장에서 물이 샜다. 일정한 간격으로 뚝뚝 떨어져 이마와 콧잔등을 적시던 물방울을 생각하며 신호등을 보았다. 붉은색으로 깜박거리던 신호등이 이내 물처럼 파란빛으로 얼룩지더니 선명한 녹색으로 변했다.
“그런데 그 방이 좀…….”
운을 떼는 주영의 목소리를 들으며 다리를 움직였다. 그 순간 거대한 경적이 뇌를 관통했다. 집채만 한 트럭이 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스쳐 달렸다. 육중한 트레일러 꽁무니가 낡은 운동화 코끝을 긁으며 멀어졌다. 소름이 쭈뼛 섰다.
“미쳤냐, 출소하자마자 죽으려고?”
목덜미 옷깃을 잡아챈 주영이 미간을 찌푸리고 타박했다. 고개를 들어 올리자마자 신호등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선명한 붉은 빛이 켜져 있었다. 분명히 아까는 녹색이었는데. 눈을 깜박이다 녹색 신호등 위치에 달라붙은 검은 몸체를 발견했다.
날카롭게 생긴 검은 덩어리가 꿈틀거리면서 바닥에 쏟아졌다. 갈아둔 고깃덩이처럼 눈과 코의 형체가 완전히 짓이겨져 있었다. 쩍 벌어진 주둥이에서 녹색 진물이 질질 흐르고 있었다. 건너편에 서 있는데도 진물에서 느껴지는 악취에 코를 틀어막았다.
주영은 아무것도 모른 채 텅 빈 어둠 사이를 가만히 노려보는 나에게 신호 준수에 대해 잔소리를 시작했다. 신호등은 한참 뒤에야 녹색으로 변했고 달리던 차들도 서서히 정지선 앞에 멈춰 섰다. 나란히 길을 건너며 주영이 실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건 너무 허무한 인생 계획 아니야?”
“……뭐 어때.”
“이미 크게 사고도 쳤으니 마지막까지 화려하게 장식해 줘야지. 교통사고는 너무 평범하다.”
“닥쳐.”
“최소한 방화라도 해 봐.”
“그건 이미 했거든.”
“아차.”
쓸데없이 티격태격하며 걸음을 빨리했다. 신호등 옆을 지날 때 시커먼 덩어리가 꿈틀거리며 발목 근처를 쓸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죽음이 코앞을 지나쳐 갔다는 걸 잊은 것처럼 내 주둥이에서는 태연한 헛소리만 쏟아져 나왔다.

주영이 구해 놨다는 집에서 역까지의 거리는 가까웠다. 지하철역에서 15분 정도. 조금 낡은 골목길 중앙에 붉은 벽돌로 지은, 오래된 원룸 건물이었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에서는 터널에서 나는 낡은 철문과 습기 찬 냄새가 가득했다.
주영이 앞장서서 내려가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울컥거리며 냉기가 흘러나왔다. 퀴퀴한 이 악취는 익숙했다. 시체가 수십 구는 굴러다녔을 것 같은 방의 몰골을 보고 현관문 앞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음, 서주영이 눈치를 보더니 등을 툭 쳤다.
“그래도 지하철로 30분이면 서울 중심이나 마찬가지야. 뭐…… 상태가 적당히 쓰레기 같긴 하지만 괜찮아, 너도 쓰레기니까.”
“아주 고맙다.”
보증금 200만 원, 월세 17만 원. 교통의 이점에 비하면 지나치게 저렴하긴 했다.
“……몇 달 전에 사람이 죽은 뒤로 월세를 내렸다더라.”
대신 싸잖아? 쓸모없는 위로를 하며 주영이 힘차게 집 안으로 들어갔다. 차마 같이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유일하게 바깥으로 뚫린 창문을 현관에서 바라보았다. 투명한 유리창 가득 허연 달이 꽉 차 있었다. 곧 손바닥 두 개가 둥실둥실하게 떠오른 보름달을 가리며 창문에 철썩 달라붙었다. 길게 자란 손톱이 유리창의 표면을 긁으며 소름 끼치는 소리를 냈다.
“그래. 괜찮겠지.”
괜찮을 수가 없었지만, 애써 대답했다. 주영이 힘내라는 듯 어깨를 한번 꽉 쥐었다 놓았다.
“일단 조금만 써. 시간 나는 대로 더 돌아다녀 볼게.”
“아냐, 충분해. 나 이런 거 익숙해.”
진심이었다. 교도소는 괴물만 살았다. 사람 흉내를 내는 놈이 외려 웃긴 취급을 받았다. 인간이 되지 못한 놈들을 묶어 놓았다 보니 그 안에서 살인이 벌어지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창문에 붙은 저런 게 복역 중인 놈들의 몸에 덕지덕지 붙어서 아는 체를 해 왔다. 지금 와서 이런 축축한 방이 무서울 수는 없었다. 단지 싫을 뿐이다. 살아갈수록 싫은 것은 점점 늘어났지 줄어들지는 않았다.
“고마워. 잘 가.”
“……연락해.”
“응.”
주영이 빠져나간 텅 빈 방에 서서 들고 왔던 짐을 내려놓았다. 방 구석구석 찌꺼기처럼 뭉쳐 있던 것들이 서서히 기어 나왔다. 천장에서 내려온 흰 발이 어깨를 툭툭 친다. 전등이 삐걱거렸다. 어깨를 건드리는 차가운 발을 짜증스럽게 치우고 방구석에서 쪼그려 앉았다.
여전히 방안에는 창문을 긁어 대는 날카로운 손톱 소리가 고막을 찢을 것처럼 울렸다.
“……아, 정말 시끄럽네.”
원장을 죽인 걸 후회하지 않는다. 몸을 웅크린 채로 귀를 막아도 소음과 비슷한 자괴감은 끝이 없었다.
마음 속의 바닥에 미끄러운 물이 웅덩이처럼 고였다. 꿈속에서도 쫓아와 괴롭히는 망자의 사념. 오늘도 불면의 밤, 타오르는 지옥의 불구덩이가 살갗 위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더운 숨을 뱉어 냈다. 아직도 살아 있었다.

***

아침에 눈을 떴더니 눈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빈 남자 하나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구멍 뚫린 곳은 터널처럼 깊고 어두웠다. 이게 무슨 괴팍한 아침 인사야. 비명을 지르는 대신 안면을 손으로 후려쳤다. 귀신은 비틀거리며 옆으로 쓰러져 끽끽거리는 기묘한 곡성을 냈다. 아침인데도 다들 기운이 팔팔하다. 혀를 차면서 방 옆에 딸린 작은 화장실로 들어갔다. 이가 깨진 바가지가 새롭게 아침 인사를 건넨다.
“이건 또 뭐야.”
이제 보니 욕실 구석구석 검푸른 곰팡이가 포진해 있다. 타일 틈마다 꽉 차 있어서 처음에는 까만색 실리콘으로 시공이라도 한 줄 알았다. 손톱으로 득실득실 자라난 곰팡이를 긁어 보다 한숨을 쉬었다.
“되게 교도소 같네.”
위생으로 치면 최소 교도소 독방 수준이다. 남부럽지 않은 낡은 시설을 자랑하는군. 사람이 죽어 나갔다는 말이 이상할 것도 없었다.
오랜 시간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았는지, 아니면 집터의 탓인지 수도꼭지를 돌리자 녹물이 나왔다. 한참이나 붉은 녹물을 빼고 나서야 샤워를 할 수 있었다. 보일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미지근한 물로 몸을 적시고 일어나자 현기증이 났다. 하얗게 변해서 핑핑 돌아가는 시야에 세면대를 잡고 한참 끙끙 앓았다.
“음.”
사야 할 물건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주영이 미리 몇 개 가져다 두긴 했지만, 속옷도, 입을 만한 옷도 필요했다. 이제는 휴대폰도 만들어야 할 테고, 주민등록증에 적힌 주소도 바꿔야 했다. 거기에 새로운 은행 계좌도…….
세면대 위에 달린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았다. 눈 밑이 퀭했다. 살인을 저지른 이후 단 한 번도 좋은 꿈을 꾸지 못했고, 삶은 계속 불행의 미만을 달렸다.
“이래서야 살아도 사는 게 아니잖아.”
눈을 뗀 뒤에도 거울에 무언가가 찰싹 붙어 내 얼굴을 똑같이 흉내 내며 웃는다. 배알도 없이 따라서 실실 웃어 줬다.
‘살려 줄까.’
누군가 물었었다.
‘살려 줄까, 원아.’
가장 절박한 순간에 그렇게 물었다.
망설이지 않고 손을 잡았다. 살고 싶다 대답했다.
“살려 줄 거면 좀 확실하게 살려 주지 그랬나.”
싱거운 소리를 하자 거울 안에 들어 있는 내 얼굴이 픽 웃는다. 그대로 남겨 놓고 젖은 머리를 손가락으로 빗으며 바깥으로 나왔다.
일단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교도소에 있을 때 알고 지낸 노망난 인간이 나중에 일자리가 필요하면 찾아오라고 연락처를 건네줬었다. 달갑지는 않았지만 마땅히 손 벌릴 곳도 없으니 먼저 그곳에 가 볼 요량이었다.
신발을 구겨 신고 문을 열었다. 먼지 낀 계단 위는 바깥에서 달라붙어 오는 봄바람 냄새가 화하게 나고 있었다. 시멘트 계단 위에 자작하게 깔려 있는 벚꽃 잎이 바닥에서 움찔거렸다. 그 순간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허리를 들어 올렸다. 순간적으로 그림자가 내 몸 전체를 전부 먹어 치우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어.”
나지막한 목소리가 코앞에서 탄성을 터트렸다. 조그만 웃음소리, 옷자락을 쥐여 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울음을 그치던 천연덕스럽고 사랑스러운 소년.
“언제 나오나 했네.”
부드럽고 따뜻한 음성은 먼 옛날의 언제와 매우 닮아 있었다. 고개를 들어 태양 빛에 가려진 얼굴을 보았다. 정확하게는 달갑지 않은 얼굴 옆으로 비스듬하게 귓가를 스치고 내리쬐는 직선의 빛을 보았다. 오랫동안 마주하지 않았던 태양의 황금색을 눈을 붉히며 노려보았다. 침으로 찌르는 것처럼 따가웠다.
“오랜만이에요, 형.”
꿈속에서의 친근했던 감정이 고개를 슬쩍 꺾고 심장의 어느 부위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연약한 혈관이 찢어지는 기분이었다.
“잘 지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