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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프롤로그


대회로 인해 피곤한 탓에 차에서 잠이 들었던 승연은 움직임 없는 차 안에서 눈을 떴다. 주위를 둘러보니 차는 어딘지 모를 어느 어두운 지하주차장에 도착해 있었고 누군가 보는 듯한 느낌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제야 승연은 대회가 끝나고 민재와 함께 차를 타고 나섰던 것이 기억났다.
여긴 어디고, 그는 왜 저런 눈으로 자신을 보는 것일까?
민재는 좌석에 몸을 기댄 채 손가락으로는 핸들을 톡톡 치며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승연이 지금까지 봐왔던 그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숨을 들이마실 만큼 뜨겁고도 야릇한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녀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봐오던 눈빛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늘 침착함과 무표정이 트레이드마크인 민재의 눈빛이 평소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주차장 희미한 불빛아래임에도 민재의 상기된 표정이 보일 만큼 그는 뜨거움 그 자체였다. 안전하던 차 안이 갑자기 뜨거운 불길에 휩싸인 듯 뜨겁고 불편해 승연은 몸을 일으키며 꼼지락댔고 그의 눈도 살짝 피했다.
“지금 네가 거부한다면 집으로 데려다 줄게.”
“……!”
승연은 이제야 그가 보낸 눈빛을 무엇을 뜻하는지,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지금 이리 결정하고 나면 되돌릴 수 없음에도 승연은 그를 편안하게 보았다.
민재와 선배와 후배 사이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연인으로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탓일까, 그를 금방 사랑해버리고 말았다. 아니 오히려 예전부터 그를 마음에 담고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민재를 사랑하게 되었다.
민재의 표정 없는 듯한 눈이 자신에게로 꽂힐 때마다 손가락 하나 파닥댈 수 없는 기쁨에 사로잡혔고, 그의 손이 그녀의 손을 잡을 때면 온몸이 간질거리는 느낌에 민재에 대한 사랑이 커가는 것을 느꼈다. 아직 그에게선 사랑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지만 잔잔히 그녀를 배려해주는 것이나 그의 눈빛 속에 담긴 느낌만으로도 승연은 사랑을 느꼈다. 승연은 그의 눈빛에서 자신이 그에게 완전히 보호받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원하는 것이라면 지옥이라도 뛰어들 수 있었고 자신이 가진 그 무엇도 줄 수 있었다.
승연은 조바심 나는 민재의 눈을 보다가 싱긋이 웃으며 몸을 일으켜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이미 이성은 저 멀리 던져 버렸다. 민재가 몸을 흠칫 떠는 것이 느껴지고 그의 심장이 그녀의 가슴을 힘차게 두드리고 있는 것이 느껴지자 밝게 웃었다. 그녀가 불안하고 떨리듯이 그도 그러는 것이 지금 이 순간 너무 위로가 되었다.
“고마워.”
다소 굳은 얼굴로 그녀의 팔을 그의 목에서 풀어 내린 민재는 운전석을 나가 조수석으로 다가왔다. 떨리는 가슴을 쥐었다가 그의 손이 잡아 이끄는 대로 차에서 내려 낯선 건물의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한동안 서로를 깊이 응시했다.
“여긴 어딘데요?”
“내 오피스텔.”
그의 대답에 승연은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그를 보았다. 그녀의 그런 반응에 그의 눈이 왜 그러냐는 듯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하루하루 많은 연습과 틈틈이 대회에 출전하느라 그의 개인적인 공간에 올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어떤 곳에서 생활을 하고 먹고 자는지 궁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사적인 공간을 본다는 흥분감과 함께 그에게 그녀 자신을 내어줘야 한다는 것에 승연은 몸이 떨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이런 감정을 눈치 챈 것일까, 엘리베이터에서 몸을 기대서서 그녀를 보던 민재가 몸을 일으켜 다가왔다.
“왜? 불안해?”
“조금요.”
민재는 담담한 척 애쓰지만 승연의 불안에 떠는 목소리에 싱긋이 웃었다. 남자의 인내심이 얼마나 깊은지는 아마 하느님만이 아실 것이다. 마치 변태처럼 연습을 하는 승연을 보며 얼마나 많은 상상을 했던가. 사랑을 나누고 싶어 육체는 갈증에 목이 말라있었고, 눈은 충혈이 될 만큼 승연을 원했다. 승연이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그녀에 대한 열망이 너무 강했다. 상의를 밀어내듯 볼록 솟아있는 승연의 가슴을 손 안 가득 잡아채고 싶었고, 숨이 막히도록 키스도 하고 싶었다. 지금껏 승연이 놀라지 않을 정도로 키스를 하는 것이 그에겐 고역 그 자체였었다.
그런데 오늘 연습을 끝마치고 그의 차에 올라탄 승연의 몸에서 나는 은은한 꽃향기가 민재의 인내심을 다 앗아간 상태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승연이 거절이라도 했으면 죽을 만큼 힘들어도 참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승연은 아이처럼 맑은 눈을 하고서 그에게 모든 것을 내어줄 결심을 했으니 그는 냉큼 받아 챙길 것이다.
팔을 뻗어 승연의 젖은 앞머리를 귀 뒤로 꽂아주었다. 승연의 촉촉하고 부드러운 머릿결이 그의 손을 적시는 순간 민재는 전율에 몸을 떨었다. 그의 이성을 마비시켰던 향기가 그의 온몸에 전해졌다.
“후후, 그런데 어쩌지? 이젠 돌이킬 수도 없는데?”
“선배?”
“지금 이 순간부터는 네가 뭐라고 하든 놓아주지 않을 거야. 아니 이제 보내줄 수 없어.”
그의 단호하지만 일렁이는 눈빛에 승연은 사로잡혀 그가 그녀의 턱을 쥐고 코에 살짝 입을 맞추는 것을 멍한 눈으로 보고만 있었다. 둘만이 있는 공간이 아닌 곳에서 그가 사랑표현을 하기는 처음이라 기분이 짜릿했다.
승연은 아버지 때문에 그와의 사이를 들어내 놓고 말을 하지 못해 안타까웠다. 민재를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라고 자랑하고 싶고 누가 보든 말든 옆에 있고 싶었다. 하지만 연애는 안 된다고 운동에만 전념하라고 강요하다 못해 감시까지 하는 아버지 때문에 두 사람은 비밀리에 만나고 있었다. 그것이 민재에게 늘 미안했었다.
“사람이 타면 어쩌려고…….”
고개를 들고 그를 올려다보는 승연의 촉촉한 눈을 보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진 민재는 말을 하느라 달싹거리는 승연의 입술을 덮쳤다. 그의 시선을 받아 붉게 물든 승연의 광대뼈를 보는 민재의 눈이 기분 좋은 반짝거림으로 빛나고 있었다. 승연의 허리를 잡아 안고서 엘리베이터 벽에 밀어붙였다.
달콤한 입술이 그의 입술에 닿는 순간 이곳이 어디인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을 만큼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은 그저 승연의 입술을 열어 혀를 잡아채기에 급급했다. 길고 달콤한 혀가 그의 혀에 닿는 순간 민재는 몸을 부르르 떨며 잡아채 이로 잘근잘근 깨물었다. 서로의 침이 섞이며 입술을 적실 무렵 그들의 귀에 엘리베이터 도착음이 울렸고, 민재는 승연의 허리를 잡은 채 달랑 들어올려 내렸다. 승연의 푹신한 가슴이 그의 가슴이 짓눌린 느낌이 말할 수 없이 좋아 차마 그녀를 그의 몸에서 떼어내기 싫었다. 다소곳이 안겨있는 승연의 호응이 그를 더 안달 나게 만들었다. 이미 그의 묵직하다 못해 단단한 기둥이 바지를 뚫을 것처럼 힘차게 솟구쳐있는 상태였다. 그녀의 은밀한 곳으로 파묻히고 싶은 욕망에 몸이 떨리는 경지를 넘어서서 경기에 이를 지경이었다. 어서 어떻게든 해결을 해줘야 잠잠해질 것이고, 조금 후면 구원 받을 것을 알기에 더 조바심이 생겼다.
“아야.”
오피스텔에 들어가자마자 승연을 벽에 밀어붙였더니 아팠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사과를 하면서도 민재는 승연의 입술에서 입을 떼지 않았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손에 감고 그녀의 혀를 집요하게 요구하며 핥았다. 승연이 숨이 턱턱 막혀 헉헉댈 때까지 그는 혀를 놓아주지 않았다. 미숙하지만 승연의 혀가 그의 혀를 따라 움직이는 것을 느낀 민재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지나갔다.
“미안,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어.”
“뭐가요?”
“네가 처음이라 부드럽게 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그럴 자신이 없다.”
“선배?”
“……끙, 너무 오래 참았거든.”
승연은 그의 정열에 물든 외설스러운 눈빛에 숨을 죽였다. 민재가 자신을 이토록 원한다는 것이 여자로서의 그녀를 더 당당하게 만들었다. 평소 침착함의 화신이라 불리는 그였었다. 그래서 단한 번이라도 허둥대는 것을, 아니 침착함을 잃은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가 욕망으로 잔뜩 흐려진 눈으로 그녀를 안아들고 허둥지둥 침대로 가서 던지듯 눕혔다. 순식간에 침대에 눕혀지고 그가 그녀의 다리 사이에 들어와 있음에도 승연은 불안함보다는 민재의 낯선 모습에 웃음이 났다.
“후후.”
“왜 웃어?”
“선배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서요.”
민재는 승연이 웃자 조금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 여자의 처음에 목을 매는 건 아니지만 승연에게 첫 남자가 된다는 것은 우승할 때의 기분에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승연의 촉촉한 눈도, 착착 달라붙는 이 촉촉한 입술도, 멈칫거리지만 그가 손을 내밀면 아무런 경계심 없이 내미는 길쭉한 손마저도 모두 그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의 욕망에 못 이겨 데려와 놓고도 아프게 할까봐 걱정스러웠다.
“이런 내 모습이 웃겨?”
그랬다. 그를 만난 이후 이렇듯 감정적인 모습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의 마음을 의심하진 않았지만 워낙 표현을 자제해 서운하기도 했었다.
“아니요, 내가 선배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 좋아요.”
“널 볼 때마다 늘 이랬다면?”
승연은 기분 좋게 웃다가 다리 사이를 누르는 딱딱한 그 무언가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제야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깨달았고 하체를 누르는 것의 정체를 생각했다. 언젠가 잡지에서 남자의 신체를 봤을 때 징그럽게 생겼다고 생각했었다. 남녀의 신체구조가 다르다는 것은 알지만 민재의 육체를 상상한 적은 없었다. 그러니 지금 그녀를 위협하는 존재가 참으로 낯 뜨거워 보지 않아도 얼굴이 붉어졌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