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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 : 소울 콜렉터 1권 (1화)


1. 저승에서 온 퇴마사 (1)

말끔한 하늘을 본 적이 언제인가. 매캐한 매연과 모래먼지에 뒤덮여 푸른 하늘이 뭔지 모를 정도로 탁해진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
탁한 하늘 아래 그 기운이 지상에도 내려앉은 듯 도시의 전경은 색소가 다 빠지고 머릿결이 상한 백발노인의 머리카락처럼 희끗희끗한 옅은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거무죽죽한 아침. 해가 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햇빛이 먼지에 가려졌기 때문에 자동차들은 하나 같이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렸고, 사람들은 희끗한 연기가 피부에 스며든 것처럼 생기 없는 표정으로 바쁘게 출근을 하고 있었다.
현재 시각 아침 9시.
겨울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역시 먼지 때문에 해가 가려져서일까. 거무죽죽한 분위기는 전보다 훨씬 더 어두웠고, 시계만 없다면 지금이 새벽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드는 분위기였다.
출근으로 인파가 가득한 거리를 뛰어가는 사람들과는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는 남자.
소년? 성년? 앳된 모습에 평균 한국 남자의 키보다 조금 작은 체구에 핑크빛이 옅게 감도는 불그스름한 피부의 남자가 검은 코트를 펄럭이며 걸어오고 있었다.
댄디한 스타일의 단정한 검은 머리에 흑진주를 박아 넣은 듯 희끄무레한 안개 속에서도 빛나는 눈동자. 성년이라면 동안인, 나이 대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남자의 모습은 앳돼 보였지만 학생이라고 보기엔 몸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상당히 어른스러웠다.
도시의 주택가.
제법 호화스러운 저택가에 일반 사람은 꿈도 못 꿀 커다란 저택들이 즐비했다. 말로만 듣던 유명 인사들이 사는 저택가인가. 남자는 그중 한 집의 대문 앞에 멈춰 서서 초인종을 꾹 눌렀다.
<네, 누구세요!>
약간 다급하면서도 심각하게 내려앉은 여성의 목소리. 후덕한 목소리로 볼 때 사모님보단 이 집에서 일하는 가사 도우미 같은 느낌이었다.
“이 집 사모님이 연락을 주셔서 찾아왔습니다.”
일전에 이미 이야기가 된 듯 가사 도우미라 생각되는 여성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대문의 잠금장치를 풀어낸 듯 대문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덜컹―!
남자는 대문을 가볍게 밀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예쁘게 잘 자란 잔디들과 조경에 조예가 깊은 풀들을 예술적으로 깎은 화단. 희끗한 안개 따위는 단숨에 물러가게 만들고 아침 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질 정도로 잘 가꾸어진 정원을 따라 남자는 아무런 감흥 없이 잘 깔려진 돌길을 밟으며 걸어갔다.
남자가 문 앞에 서자 기다리고 있다는 듯 대문에서 들렸던 후덕한 목소리의 주인이 다급하게 문을 열어젖혔다. 문제라면 안에서 당기는 문이 아니라 미는 문이었다는 것이다.
꽝―!
“악!”
방금 전까지 무게를 잡고 움직이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문이 다급하게 열리며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얼굴을 박은 남자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얼굴을 부여잡고 쭈그려 앉았다.
“어, 어머나! 죄,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선생님?”
“끄으으으…….”
이게 웬 창피. 남자는 속으로 오늘은 재수가 없나, 하고 속으로 욕을 두어 번 곱씹었다.
거실에 있던 부부는 허술한 모습의 남자를 보고는 믿어도 되나 싶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크, 크흠…….”
뻘겋게 변한 코를 잡으며 찔끔 눈물을 흘린 남자는 헛기침을 하며 애써 체면을 차렸다.
“연락받고 왔습니다.”
“아, 네…….”
상황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사치스러운 차림새로 있던 집 안주인은 현관으로 들어온 그를 미덥지 못한 눈치로 맞이했다.
“박염라라고 합니다.”
특이한 이름의 남자. 스스로를 염라라 밝힌 그는 자신의 이름을 듣고 굉장히 이상하게 여기는 이 부부를 보고도 익숙한 일인 듯 불편해 하지 않았다.
“굉장히 짐이 가볍네요.”
집의 가장은 염라가 양손에 아무것도 없는 걸 확인하고는 트집을 잡았다.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건 아마추어나 하는 짓이죠. 전 굳이 뭘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남이 볼 때는 미덥지 못하고 전혀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사내였다. 하지만 주변 소문으로는 이 일대에 가장 실력 좋기로 유명한 남자였기에 제발 그 소문이 맞길 바라며 그를 믿어보기로 했다.
“이쪽으로 올라오시죠.”
도우미 아줌마가 종종 걸음으로 나선 계단이 있는 쪽으로 안내하자 염라는 딱 보기만 해도 비싸고 좋아 보이는 걸로 무장된 거실을 한 번 보고는 도우미 아줌마를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
“이쪽입니다.”
이걸 언제 일일이 열어서 청소하나 싶을 정도로 방이 여러 개가 있었고 도우미 아줌마는 그중에서도 가장 끝에 있는 방 앞에 서서 들어가라는 듯 손으로 문만 살짝 밀었다.
염라는 조심히 방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그를 맞이한 건 지독할 정도로 역한 유황 냄새. 시체 썩는 냄새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보통 사람이라면 토악질을 해댈 수준이었다.
그 유황 냄새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니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문 바로 맞은편에는 해가 높게 떠 있었다면 채광이 좋다고 생각될 정도로 적당한 크기의 창문이 있었고, 그 창문을 타고 탁한 먼지를 머금은 햇살이 들어와 창문에 딱 붙어 있는 침대를 비추고 있었다.
찜찜할 정도로 거뭇거뭇한 마룻바닥, 오래 돼서 탁해진 하늘색 벽지. 바닥에는 솜이 터져 나온 인형들이 전쟁터의 시신 마냥 군데군데 널브러져 있었고, 바닥과 벽에는 온갖 낙서들로 가득했다.
개인 공간에 필수적으로 있는 책상에는 자신과 부모, 그리고 친구들이 찍은 사진이 액자에 정성스럽게 넣어져 있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듯 청순한 얼굴에 볼에 젖살이 덜 빠진 귀염성 있는 단발머리의 여성.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가 얼마나 활발하고 밝은 아이인지 알 수 있었다.
액자에서 시선을 돌린 그는 주변을 다시금 관찰했다.
대학생답게 물오른 외모를 한껏 가꾸는 여느 또래의 아이들처럼 그녀도 화장품이 가득했고, 자신의 모습을 늘 관찰하기 위한 손거울이 있었다.
게다가 절실한 신자인가, 온갖 이상한 글들로 낙서 된 벽에는 드문드문 십자가 그림이 있었으며, 십자가 모형의 장식품과 벽걸이로 된 십자가들도 벽에 여기저기 박혀 있었다.
“……?”
알고 보니 십자가뿐만이 아니었다. 문 위쪽 공간에는 부적이 있었고, 또 책상 위에는 십자가 말고도 불상과 염주가 갖가지 놓아져 있었다. 이건 절실한 신자의 모습이 절대 아니었다.
“얼씨구.”
절로 헛웃음이 나온 그는 바닥에 칠해진 낙서들을 바라봤다.
과연. 한자, 라틴어, 데바나가리 문자, 온갖 성경과 경전에 나온 글귀들로도 도배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인간이 사용한 언어라 보기에 힘든 글씨들도 많았지만, 그 덕분인지 이 방에는 심각할 정도로 불길한 기운이 가득했다.
‘하여튼 극성이다. 한쪽 종파만 부를 것이지, 이렇게 해놓으니 나을 병도 안 낫는 거지. 뭐, 정작 중요한 문제는 그게 아닌 듯하지만.’
바닥과 벽을 갈아엎지 않는 이상 글씨들을 지울 방법이 없었기에 염라는 괜히 기분 나쁜 글씨들을 짓밟으며 침대로 걸어갔다.
창백한 피부의 여성이 누워 있었다. 액자 속의 밝은 표정이었던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녀의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을 정도였다.
제대로 먹지 못해 핼쑥해진 얼굴, 자고 있음에도 매일 매일이 피곤했을 것이라 짐작되는 길게 늘어진 다크 서클, 입술은 한여름 가뭄의 땅처럼 바짝바짝 말라 갈라져 있었고 창백한 피부 사이로 정맥이라 생각되는 혈관들이 돌출되어 있었다.
그녀의 모습을 잠깐 보고 있던 염라는 침대 끝에 앉아 조심스럽게 손을 올려 그녀의 이마를 짚으려고 했다.
“샤아아아.”
그녀는 흰자만 가득한 눈을 희번뜩 뜨며 입 속에서는 사람의 목소리인지 짐승의 울음소리인지 짐작 가지 않을 정도로 섬뜩한 소리를 내었다.
일종의 손대지 말라는 경고인 걸까. 보통 사람이면 그녀에게 손대는 것을 무서워하며 뒤로 빠졌을 테지만, 그녀가 전혀 두렵지 않았던 염라는 그 경고를 무시하며 그녀의 이마에 손을 대었다.
“키야아아아!”
순간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여자가 번쩍 일어나며 짐승처럼 입을 딱딱 거리고 그를 물어뜯을 듯 흉포하게 변했다. 다행인 것은 두 팔과 손이 꽁꽁 묶여 있었기에 상체를 일으켜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혹여나 손이라도 물릴까 재빠르게 이마에서 손을 떼 낸 염라는 침착한 표정으로 여자에게 말했다.
“거, 참. 히스테리 작작 좀 부려.”
흰자만 가득한 눈으로 짐승 같은 소리를 내던 아이는 그의 말을 들은 듯 귀를 쫑긋쫑긋 거리며 인간의 언어를 자연스럽게 내뱉었다.
“또 퇴마사군. 크흐흐, 이번엔 어떤 오빠야? 목소리 들어보면 뻔질나게 오던 다 늙어 빠진 쭈그렁탱이 늙다리는 아닌 거 같은데?”
도무지 여성의 입에서는 나올 수 없는 저급한 입담. 퇴마사들이라면 이런 입담을 듣지 않는 게 정상이었다. 대꾸할수록 정신이 나약해지고 홀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염라는 그런 규칙 따위는 없는 듯 마치 친구에게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웃으며 그녀와 대화를 시도했다.
“응, 이 오빠는 제법 젊어. 물론 겉모습만. 알맹이는 네가 살아온 세월보다 늙었지.”
“크흐흐흐, 그래? 그럼 오빤 좀 쓸 만하겠다. 전에 왔던 늙은이들은 영 재미가 없었거든. 어때, 나랑 한 번 놀아 볼래?”
“미안. 나랑 놀면 너 몸 박살나. 솔직히 지금 영양실조처럼 보여서 나랑 놀면 버틸 힘도 없어 보여.”
그 말에 그녀는 흥분한 듯 발가락을 꼼지락꼼지락 거리며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고 입맛을 다셨다.
“와, 오빠, 최고네. 내가 이렇게 보이지만 제법 잘 놀아. 오빠랑 놀면 밤새도록 놀 수 있을 것 같은데. 응? 어때?”
그녀의 끈적끈적한 말과 행동을 조용히 듣고 보던 염라는 침대에서 일어나 벽에 있는 글씨를 만졌다.
“그럼 너랑 놀기 전에 궁금한 게 있어.”
“뭔데 오빠? 오늘 뭐 하고 놀 건지? 오빠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혼자 상상의 나래에 빠진 듯 여성은 연신 기분 나쁠 정도로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흰자만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벽에 굉장히 다양하고 많은 글자가 박혀 있어. 네가 쓴 거야?”
“오빠, 나랑 오늘만 놀아줄 거 아니야? 나에 대해 궁금한 거 보면… 이건 호감의 표시로 봐도 되는 거지?”
자신이 원하는 대답은 쉽게 주지 않겠다. 과연 보통 녀석은 아니란 걸 알겠다는 듯 염라는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물론이야. 네게 관심이 있어. 말만 해주면 네가 원하는 천국이구나 할 만큼 놀아줄게.”
“우후후, 난 좋아. 어서 시작하면 안 될까?”
여자는 입맛을 다시며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듯 몸을 뒤틀었다. 염라는 쿡쿡 웃으며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더니 그녀의 어깨를 잡아 침대에 밀어 붙이고는 그녀가 꼼짝할 수 없도록 꽉 붙들었다.
“오빠, 생각보다 되게 거칠게 노는구나? 난 좋아. 빨리 날 재밌게 해줘!”
여자가 다시 몸을 뒤틀려는 순간, 염라는 눈빛이 서늘하게 변하며 상체를 숙이고 인간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
그의 말을 들은 여성은 흰자를 휘둥그레 뜨며 몸을 떨었고, 상체를 일으킨 염라는 그녀의 턱을 확 잡았다. 방금 전까지 기대와 즐거움에 차 있던 그녀는 무언가에 겁을 먹은 듯 떨며 당황한 음색으로 외쳤다.
“너, 너… 뭐야? 너 누구야!”
“왜? 고향의 언어를 들으면 보통 반가워해야 하는 거 아니야?”
염라가 뱉은 말은 이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 언어였다. 인간의 입으론 절대 발음할 수 없으며, 쓸 수도 없고, 알아들을 수조차 없는 다른 차원의 언어. 일종의 악마들만이 사용하는 언어였다.
“딱 봐도 악마인 건 알았어. 바닥에 쓰여 있는 글씨 중에는 악마들이 사용하는 글씨도 있었으니까. 중요한 건 너 같은 악마가 어떻게 사자들에게 잡히지 않고 있냐는 거지.”
여자는 잠깐 동안 뭔가를 생각하듯 입을 다 물더니 뭔가가 기억난 듯, 씨익 하고 웃었다.
“아. 저승사자들을 마치 종처럼 부리는 놈들. 신이란 작자구나? 그중에서도 우리의 언어를 알고 있는 건 우리와 가깝게 지냈다는 것.”
그녀는 오랫동안 생각을 정리하더니 그가 누구인지 짐작한 듯 어금니를 꽉 물었다.
“염라대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