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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그리고 뭐, 서류에 이상한 내용이 좀 있으면 어때? 불새의 꽁지깃으로 벌 수 있는 돈이 얼마인데. 이걸 사려고 줄을 서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데. 얼른 손에 넣어야지.
“뭐, 좋아. 분명히 계약은 성사되었어.”
그녀도 내 사인의 밑에 자신의 사인을 남겨 두었고, 두 부 중 한 부는 봉투에 넣어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한 손에 든 망고를 얼른 그녀에게 내밀었다.
“드세요! 좋아하시는 망고예요.”
“어머, 기뻐라. 이렇게 많이 사 주면 미안한데.”
“미안하긴요. 제게 가장 먼저 연락을 주셔서 덕분에 귀한 물건을 가지게 되었잖아요.”
시에라 씨는 잠시 고민하는 얼굴을 하고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물건은 정해지면 보내 줄게. 비용은 물건을 확인하고 나서 배달꾼 편에 보내도록 해.”
“네? 뭐가 정해져야 하는데요?”
“……계약서에 적어 놨잖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곧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마 망고를 두러 가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의 가게를 나오면서 계약서를 다시 찬찬히 읽어 보았다. 별다른 내용은 없는 것 같은데.
「물건은 인수자의 거처가 정해지는 대로 전달한다.」
무슨 소리지? 나의 거처라면 부채 가게잖아?
시에라 씨는 가끔 이렇게 엉뚱한 말을 계약서에 넣는다니까. 뭐, 물건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니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 날, 나의 아침을 깨운 것은 아란의 울음소리였다. 신성한 가게에서 아침부터 눈물을 흘리다니, 그게 무슨 재수 없는 짓이냐며 화를 내려다가 친구의 의리로 한 번은 참았다.
“왜, 왜 우는데?”
또 시원치 않은 대답이 나오면 뒤통수를 후려갈겨 주리라.
“어떻게 해! 달의 여신님이 조건을 발표했어! 으앙!”
반응을 보니 시원하게 탈락인 모양이다.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뭐야, 무슨 조건이 그따위야. 왜! 생각도 못 했단 말이야!”
“그래. 그래.”
“성년 소원까지 써 버렸는데 이게 뭐야!”
“그래. 그래.”
이 징징거림이 이번에는 며칠이나 가려나. 나는 새로 만든 부채들을 예쁘게 나열하며 그녀의 울먹거리는 소리에 적당히 대꾸해 주었다.
“그래서 그 조건이 뭔지 알아? 나 원 참 기가 막혀서.”
“그래. 그래.”
너는 떠들어라. 나는 돈 버느라 바쁘시단다.
“어제 루 아저씨네 가게에서 망고를 전부 다 산 사람이래!”
“그래. 그래.”
“아니, 어느 미친 사람이 보관도 어려운 망고를 그렇게 많이 사? 안 그래? 분명히 이상한 사람이야. 그런 사람을 우리 달의 나라 대표로 보낸다는 게 이해가 되니?”
바삐 움직이던 내 손이 멈췄다. 방금 뭔가 굉장한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그러니까 어제 루 아저씨네 과일 가게에서 내가 뭘…….
이런 시…… 망고!



망고라니, 내가 망고라니.(내가 망고는 아니구나.)
내가 왜 그런 미친 짓을!
아아, 이상한 짓을 해서는 안 되었다. 그래, 여신님의 기준이 발표될 때까지 얌전히 살았어야 했는데! 가만, 내가 망고를 왜 샀지? 그야 시에라 씨에게 주려고 했으니까! 그러니까 그 망고의 소유권은 어디까지나 시에라 씨에게 있는 거다. 내가 아니야!
……라고 내가 외치고 있는 곳은 감옥이었다.
“생각보다 평범한 조건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하나의 전설이 세워졌군요.”
“라프 님.”
척 보아도 값비싼 원단으로 만들어진 정장을 갖춰 입은 저 사람은 깐깐하기로 유명한 행정부의 루키, 라프 님이다. 달빛을 닮은 그의 결 좋은 머리카락은 이 칙칙한 곳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것이었고, 조금 피곤한 듯한 얼굴에는 승리의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는 자타 공인 달의 나라 최고의 신랑감으로 꼽혔다. 외모 출중, 직업 탄탄. 모든 것이 완벽한 그를 모두가 칭찬했지만, 나에게 있어 라프 님은 그저 잔소리가 많은 신경질쟁이일 뿐이었다.
하필이면 이 성격 파탄자에게 붙잡히다니! 으아아아! 열받아! 그렇게 깐깐하니까 먹어도 먹어도 살이 안 찌는 거야! 아무리 잘생겨도, 그래서야 여자 친구 안 생긴다고!
……라고 마음속에 있는 말을 모두 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그는 가장 많은 부채를 주문해 준 손님이기도 하니까.
그는 땀이 많이 나는 타입이라서, 손 닿는 어디든 부채를 놓아야 안심할 수 있다고 했다. 오늘도 그의 손에는 내가 만들었던 선인장 그림의 부채가 있었다.
“태양의 나라로 갈 신부가 국경을 넘어서 도망갈 생각을 하다니, 전대미문입니다.”
“……그, 그러니까 저는 그저 여행을 가려던 것뿐이에요.”
“네. 그 여행, 행정부의 예산으로 편히 모시죠. 어떻습니까? 차원의 문을 이용한 태양의 나라 취향 저격 관광 명소 총집합! 식사와 잠자리까지 포함된 합리적인 가격. 여행 일정은 평생!”
“으아아아, 그러니까 제가 아니라고요. 저는 그 망고를 단 하나도 입에 대지 않았어요!”
“걱정하지 마십쇼. 여행 상품엔 망고를 드실 수 있는 일정도 아마 수십 번은 있을 테니까.”
“여행 상품이 아니라 결혼 상품이잖아요!”
“결혼은 사은품입니다. 부디 받아 주시길.”
“으아아아, 필요 없다고요!”
“곧 좋아하시게 될 겁니다.”
라프 님은 소리를 지르는 내가 더워 보였는지, 내 쪽으로 부채를 살랑살랑 부쳐 주기 시작했다. 그것참, 살다 살다 관료님의 부채질도 받아 보고 참으로 팔자가 피긴 피려나 보다.
아니, 벌써 만족스러운 부분을 찾아서 어쩌자는 거야! 겨우 부채질 한 번에! 이 빌어먹게 구질구질한 머릿속 같으니!
“저 언제까지 감옥에 있어야 하는 거예요?”
“여행 출발일에는 풀어 드릴 겁니다.”
“그건 또 언젠데요?”
“내일입니다. 기대되시죠?”
“으아아아, 이대로 그냥 끌려간다고요? 그 먼 곳으로요?”
“아닙니다. 물론 소중한 분들과 인사하실 수 있도록 준비는 충분하게 해 두었습니다.”
그가 손짓하자 몇 명의 여인들이 감옥 안으로 들어왔다. 그 뒤를 따라 하인들이 꽤 커다란 이동식 욕조를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설마. 설마. 나보고 지금 감옥 안에서 목욕하라는 거야?
“그런 몰골로 인사를 나누실 수는 없으실 테고.”
“자, 잠깐. 지금 여기에서 옷을 홀랑 벗고 목욕을 하라고요?”
“예.”
“싫어!”
“곧 좋아하시게 될 겁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감옥 한가운데에 욕조가 놓이고, 하인들과 라프 님은 자리를 비웠다. 나는 끝까지 여기서는 목욕할 수 없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돌아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친절한 미소가 도리어 더 무섭게 느껴지는 언니들이 나에게 달려들어 강제로 옷을 벗기는 순간에도 나의 저항은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아니, 남의 옷을 이렇게 능숙하게 벗기는 기술이 있을 줄이야.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라프 님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곧 좋아하시게 될 겁니다.’
아…… 따듯해. 그러고 보면 어제 도망간다고 집을 나선 뒤로 단 한 번도 씻지 못했지. 온몸에 먼지도 뒤집어쓰고.
아아, 거기요. 네, 아아, 시원해요. 언니들은 옷만 잘 벗기시는 게 아니라 조물조물해 주시는 것도 장난 아니게 잘하시네요. 기분 좋아요. 아아, 손끝 감각이 죽이네요. 어머, 어디를 만지시는……. 왜 슬픈 표정을 지으시나요. 왜. 내 가슴이 어때서.
가끔 묘한 소리가 내 입에서 튀어나오던 목욕이 끝나고, 나는 제법 호사스러운 드레스를 입게 되었다.
물론 감옥 안에서.
옷 입기와 화장까지 마치자 그 얄미운 라프 님이 다시 돌아왔다.
“드디어 사람 꼴이 되셨군요. 아, 거기 옷자락 주의해 주세요. 감옥의 먼지가 옷자락에 달라붙는 건 곤란하거든요. 빌린 거라 반납해야 합니다.”
“주는 거 아니었어요?”
“테라 양의 드레스를 맞출 예산은 이미 모험가 길드로 다 들어가 버렸죠.”
“라프 님, 나랏돈을 길드로 빼돌리다니요!”
“빼돌리다뇨. 테라 양을 붙잡기 위한 현상금이었습니다. 테라 양을 잡은 모험가에게 그 돈을 지급하는 것은 시장의 당연한 이치죠.”
뭐? 현상금? 아이고, 머리야.
어쩐지 어딜 가도 붙잡으려는 사람이 쫓아오고, 또 수법이 꽤 거칠다고 생각은 했었다. 그런데 아주 대놓고 범죄자 찾듯이 했던 거구나.
“장신구를 살 돈으로는 이렇게 현상금 포스터를 만들었죠.”
그가 자랑스럽게 내민 포스터를 바라보았다. 포스터에는 내 이름이나 인적 사항이 적혀 있었고. 제일 밑에 커다란 글씨로.
「망고를 좋아하는 스무 살의 귀여운 부채 소녀예요. 저를 잡으시는 분께는 현상금을 드리지만, 제 마음은 빼앗을 수 없을걸요? 웃흥!」
“이, 이건!”
“뭐긴 뭡니까. 남성 모험가들의 로망을 부추기기 위한 홍보 전략이었습니다.”
“네?”
“여성 악당과의 로맨스는 남성 모험가라면 누구나 꿈꾸는 로망입니다. 덕분에 색 하나 들어가지 않은 이 값싼 포스터도 주목을 받을 수 있었죠. 정말 다행입니다.”
“……태양의 나라에 보내는 사람을 악당으로 만들어서 어쩌자는 거예요.”
“걱정하지 마십쇼. 전 유능합니다. 신분 세탁은 확실하게 해 드릴 테니.”
그런 것치고는 그가 내미는 내 서류에는 이미 착실하게 붉은 줄이 추가되어 있었다. 이건 정말 공식적으로 내 신상에 범죄 이력이 추가되었다는 뜻이다. 세상에, 지금까지 세금 한 번 안 밀리고 전부 납부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겨우 범죄자 취급이라니!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감옥 안으로 새로운 감옥이 도착했다. 그러니까 수레 위에 작은 감옥이 있는 ‘이동형 감옥’이었다. 뭐야, 저 참신한 병신 같은 물건은!
나름대로 뭔가 장식을 추가한답시고 바닥에 푹신한 원단을 깔아 놓은 모양인데, 그렇다고 해서 짐승 우리 같은 모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설마.”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기에 타서 이동하라는 것은 아니겠지. 아무리 범죄자라도 화장도 하고 드레스까지 입었는데?
“저걸 타고 사람들을 만나러 이동하라는 것은 아니겠죠?”
“아유 참, 무슨 말씀을.”
라프 님은 어느새 바꿔 온 잠자리 모양 부채를 가볍게 팔랑팔랑 부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나는 안도했다. 비록 지금 내가 감옥 안에 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왕의 반려로서 태양의 나라로 보내질 몸으로 이곳에 와 있는데, 저런 끔찍한 것을 타고 온 천하를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우리 달의 종족은 개인의 존엄성을 가장 존중하는 것을 전통으로…….
“저기에 탑승하신 채 이별 연회를 하시게 됩니다.”
……네?
“또 도망가시면 잡아들일 수 있는 예산이 없습니다. 그래서 테라 양의 구두를 살 예산으로 저 안락한 이동식 감옥을 만들게 했죠.”
……안락한?
“뭐든 예방이 제일입니다. 일이 일어나고 나면 늦는 법이지요.”
“싫어!”
“곧 좋아하시게 될 겁니다.”
그의 자신 있는 미소는 전혀 위안이 되지 못했다.



아름다운 조명, 맛있는 음식의 고소한 향기, 연주가들의 아름다운 음악 그리고 사람들의 기대감에 찬 목소리.
아아, 모든 것이 완벽했다. 내 인생 최초이자 최후의 파티인 줄로만 알았던 성년 파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단 한 가지.
내가 모두의 주목을 받는 단상 위에 놓인 돼지우리 같은 이동식 감옥에 얌전히 앉아 있다는 사실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드시고 싶은 것이 있으십니까.”
라프 님은 작은 접시 위에 커다란 고기를 올려놓고 혼자서 날름날름 집어 먹고 있었다. 아마 나에게 음식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실컷 먹고 난 이후에야 겨우 쫄쫄 굶고 있는 내가 생각났을 것이다.
“……고기요.”
나는 차마 ‘이 안에서는 아무것도 먹지 않겠어!’라고 말할 수 없었다.
배고팠다. 극심하게.
현상금 사냥꾼들을 피해 도망 다니고, 끌려다니고, 감옥에 갇히는 동안 제대로 된 식사 따위 할 수 없었으니까.
“알겠습니다. 곧 대령하지요.”
내 앞을 지키던 라프 님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나의 불쌍한 모습은 다른 사람들에게 더욱 잘 보이게 되었다. 몇 명의 사람들은 내가 안쓰러웠는지 그저 안되었다는 눈빛을 보내 주었다. 그것이 나를 더 참담하게 했다.
나와 친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내 꿈이 무엇인지. 남들 다 놀러 다니는 나이에 꾹 참고 부채 가게에서 피 터지게 돈을 벌었던 이유가 무엇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