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25화


마법(魔法)!
그것은 참으로 신비스러운 힘이다.
‘중앙청 철창상 쌍창살, 철도청 쇠창살 겹창살.’
머릿속으로 주문을 외우니까 아무것도 없던 새하얀 공간에서 1m 남짓한 덩치의 해골이 튀어나왔다.
그뿐인가.
‘간장 공장 공장장은 강 공장장이고, 된장 공장 공장장은 공 공장장이다.’
곧 뼈로 만들어진, 세숫대야만 한 크기의 방패가 허공에 생성되었다.
두께나 강도(剛度)는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지만, 이 또한 언젠가는 나아지리라.
으득―!
계속해서 이런 유치한 짓거리를 하고 있자니, 전신에서 닭살이 돋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하루라는 소중한 시간을 날려 버리면서까지…… 아니, 실질적으로 계산해 보자면 클래스를 정하기 전부터 고민하던 시간에다 지능과 지혜 능력치를 올리기 위해 노가다를 해온 시간들까지…… 이제 와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 괴상한 주문들이 마법을 사용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데, 이 정도쯤은 참아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라이프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다솜의 존재였다.
[킥킥! 너 지금 뭐하냐? 간장 공장 공장장? 푸훗!]
“…….”
다른 사람의 시선쯤이야 속으로 주문을 외우면 되니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쪽팔린 일도 남들이 알아 문제지,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실행하면 이불 킥 정도로 끝날 테니까.
하지만 라이프에게는 다솜의 존재가 있었다.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생각들을 모두 읽어낼 수 있는…….
‘저기 있는 저분은 박 법학박사이고, 여기 있는 이분은 백 법학박사이다.’
[그, 그만해. 푸핫! 이러다가 웃겨서 죽겠어.]
빠직―!
인내심의 한계가 찾아왔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
라이프는 잔뜩 굳은 표정으로 다솜에게 말했다.
“너도…… 같이해.”
[응? 뭘?]
스윽―!
라이프의 손가락이 정확히 매직 북 위의 우스꽝스러운 주문들을 가리켰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다솜이 마구 손사래를 치며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앞으로 내가 접속할 때 현실에 남아 있어.”
[엑?]
“어떻게 할래?”
[으으…….]
다솜은 그제야 속으로 괜히 웃었다고 후회를 했지만, 이미 떠나간 열차였다.
한 번 내뱉은 말은 꼭 지키는 소이의 성격을 알기에 소드 앤 매직의 세계를 포기할 수 없던 다솜은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외웠던 주문들 똑같이 해봐.”
[중앙청 철창상 쌍창살, 철도청 쇠창살 겹창살…….]
“푸하하하!”
[우씨!]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대놓고 웃는 라이프의 모습에 울상을 짓던 다솜은 순간 시야에 들어온 놀라운 광경에 눈동자를 연신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뭐해, 다음 주문 외우지 않…… 어?”
매직 북의 페이지를 넘기기 위해 고개를 내린 라이프도 목격하고 말았다.
환하게 빛을 뿜어내고 있는 레이지 스켈레톤의 모습을.
“이건 설마……?”
[우와! 나도 마법 쓸 수 있는 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질문을 던져 오는 다솜을 보며 라이프는 그저 할 말을 잃어버렸다.

***

라이프는 사실상 이제 다솜과 관계되어 소드 앤 매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달관한 상태였다.
어디 놀라운 일이 한두 가지여야 말이지.
애초에 귀신이 가상현실 게임에 접속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인데…….
따지고 들자면 한도 끝도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라이프는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라이프가 손해 볼 일은 전혀 없었으니까.
[웅얼, 웅얼, 웅얼…….]
다솜이 주문을 외운다.
매직 북의 본 애로우 페이지가 은은한 빛을 뿜어낸다.
라이프는 오른손을 뻗으며 마법이 시전될 방향을 설정했다.
쒜에엑―!
날카로운 뼛조각이 생성되어 허공을 가른다.
성공적인 마법의 사용.
그와 동시에 요란스러운 소리를 울리며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을 가렸다.
띠링!

[성공적인 마법의 사용!]

[‘죽음’ 속성의 자격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지능, 집중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나이스!”
여세를 몰아서 ‘스피릿’ 속성과 ‘연금’ 속성의 자격시험도 도전했다.
죽음 속성과 마찬가지로 주문을 외우면 되는 일이기에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 알게 된 또 하나의 사실.
‘한양 양장점 옆 한영 양장점, 한영 양장점 옆 한양 양장점.’
[앞집 팥죽은 붉은 풋 팥죽이고, 뒷집 팥죽은 하얀 풋 팥죽이다.]

[성공적인 마법의 사용!]

[‘스피릿’ 속성의 자격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지능, 지혜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주문을 외울 때, 라이프와 다솜이 반씩 읽어도 정상적으로 마법이 발현되었다.
그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내가 마법을 사용하는 속도는 다른 메이지 클래스 플레이어들의 두 배란 소리지.’
집중 능력치가 마법의 캐스팅 속도를 향상시켜 준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였다.
두 배라는 숫자 차이는 결코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차이임에 분명했다.

[성공적인 마법의 사용!]

[‘연금’ 속성의 자격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지혜, 집중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끝났나?’
다솜의 도움으로 훨씬 빠르게 끝낸 각 속성별 자격시험들.
언제 이곳을 벗어날 수 있는지 궁금증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라이프의 눈앞에 익숙한 시스템 메시지 창이 생성되었다.
띠링!

[퀘스트 ‘마법사의 길’을 클리어하였습니다.]

[보상으로 매지컬 마스터리 스킬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클래스 메이지(Mage)로 전직하였습니다.]

[보상으로 보너스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오오…….”
라이프로서도 이런 내용의 메시지를 확인한다면 절로 환호성을 지를 수밖에 없다.
본능적으로 눈앞에 능력치 창을 생성시켰다.

[라이프] ― [Lv. 10]

클래스 ― [메이지(Mage)]
명성 ― [45] / 성향 ― [190]
칭호 ― [진리의 탐구자]
HP ― [250] / MP ― [340] / SP ― [100%]

근력 ― [10] / 민첩 ― [8+1] / 체력 ― [15]
지능 ― [22+3] / 지혜 ― [22+3] / 집중 ― [16]
행운 ― [7] / 소울 ― [13]

Point ― [10]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것 같은 느낌의 보너스 포인트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외에도 마법사 길드에 와서 추가적으로 상승한 지능, 지혜, 집중 능력치들도…….
다시 한 번 확인해 봐도 10레벨의 플레이어가 가졌다고는 믿기 힘든 능력치였다.
‘이 정도면 비슷한 레벨에서는 적수가 없겠지?’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는 생각들.
게다가 경사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띠링!

[메이지 클래스를 얻음으로써 세계의 진리를 엿볼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속성 ‘죽음’과 ‘스피릿’을 선택하여 소울 능력치에 대한 정보를 획득합니다.]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고대의 지식을 깨닫게 되어 지혜가 상승합니다.]


“나이스!”
혹시나 하며 가슴 졸이며 내린 선택이 그대로 들어맞았다.
‘죽음’ 속성이 소울 능력치와 관계가 있을까 싶었는데 둘 다 선택해야 했다니.
이 정도로 ‘배배’ 꼬아놓은 개발자들에 대해 자기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올 뻔한 라이프였다.

[소울] ― 소드 앤 매직의 세계에는 수많은 종류의 힘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소울’의 힘은 특별합니다. 늘 ‘죽음’과 가까운 당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힘이 될 것입니다.

―> 소울 능력치를 통해 언데드들을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 스피릿 속성의 마법을 강하게 구현할 수 있습니다.


마법의 위력은 1차적으로 스킬 자체가 가지고 있는 대미지에 ‘지능’ 능력치가 더해져서 정해진다.
물론 기본 능력치인 지능 외에도 플레이를 하며 생성된 능력치들 중에는 마법의 위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라이프가 가지고 있는 ‘소울’ 능력치가 바로 그런 능력치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메이지라는 클래스 선택부터 시작해서 ‘죽음’과 ‘스피릿’ 속성의 선택까지도 모두 완벽히 들어맞았다.

[라이프] ― [Lv. 10]

클래스 ― [메이지(Mage)]
명성 ― [45] / 성향 ― [190]
칭호 ― [진리의 탐구자]
HP ― [250] / MP ― [370] / SP ― [100%]

근력 ― [10] / 민첩 ― [8+1] / 체력 ― [15]
지능 ― [32+3] / 지혜 ― [24+3] / 집중 ― [16]
행운 ― [7] / 소울 ― [13]

Point ― [0]

보너스 포인트는 모조리 지능에 투자했다.
소울 능력치는 죽음과 스피릿 속성의 마법에 도움을 주지만, 지능은 연금까지 포함하는 좀 더 상위 개념의 능력치이기에 내린 선택이었다.
‘다른 메이지 클래스의 플레이어였다면 지혜와 집중에도 능력치를 투자해야 하겠지만, 나에겐 전혀 필요 없는 일이지.’
지혜 능력치는 계속해서 이어진 히든 피스와 능력치 상승 노가다로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집중 능력치는 마법의 사용 속도, 즉 주문의 길이를 짧아지게 한다거나 발음의 난이도를 낮춰서 캐스팅을 빨리 끝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다솜의 존재로 인해서 두 배의 사용 속도를 가지게 된 라이프는 전혀 관심이 없는 능력치가 되어버렸다.
덕분에 모든 능력치는 지능, 지능, 지능!
10레벨임에도 칭호의 효과까지 합해져서 35라는 괴물 같은 지능 수치를 갖게 된 라이프였다.
‘아무리 죽음 속성의 마법이 엘리멘탈 속성의 마법에 비해 대미지가 부족하다고 하지만, 이 정도 능력치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동 레벨의 메이지 플레이어라면 기껏해야 15~20 정도의 지능 수치를 갖추고 있을 것이다.
아니, 그것보다 더 낮을지도 모른다.
다들 사냥으로 레벨만 올렸지, 능력치를 성장시키기 위해 수련을 하거나 하는 플레이어는 한 명도 본 적이 없었으니까.
‘압도적인 언데드 물량은 물론이고, 대미지까지 가진 네크로맨서라…… 흥미롭네.’
동 레벨 플레이어들과 생겨난 지금의 격차가 나중에 레벨이 많이 올랐을 때도 그대로 유지된다면 어떨까?
아니, 오히려 더 벌어진다면?
[그전에 여기부터 벗어나면 안 되냐? 여긴 너무 지겨워. 새하얗기만 하고.]
“응? 아아…… 그래야지. 이제 벗어날 때가 된 것 같다.”
라이프는 순순히 수련의 방을 벗어나겠냐고 묻고 있는 시스템 메시지를 클릭했다.
이어지는 새하얀 빛의 폭발.
라이프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시야에 잡힌 것은 마법사 길드의 입구에서 일렁거리는 포탈이었다.
어느새 밖으로 이동된 것이다.
[으아! 드디어 나왔다. 그 답답한 곳에서 벗어났어.]
“아직 아냐. 벗어나야 할 곳이 남았거든.”
[응? 어디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다솜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준 라이프는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돌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초보자 마을…… 떠날 때가 된 것 같네. 앞으로의 성장을 위해서라면 좀 더 넓은 세상으로 가야지.’
월드 맵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초보자 마을의 촌장 NPC인 에드윈에게 퀘스트를 받아야 했다.
어둑어둑해져 가는 풍경이지만, 아직 강제 로그아웃이 될 때까지 약간의 여유가 남아 있었다.
퀘스트를 받기에는 충분한 시간!
“그럼 가자.”
[응!]
곱게 물든 석양이 라이프와 다솜이 걸어가는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

타닥, 타다닥―!
어둠이 내려앉은 적막한 숲의 중앙.
일렁거리는 불꽃이 장작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작은 모닥불.
이 시기의 숲은 무척 추웠다.
옹기종기 모닥불 주위로 모여 앉아 몸을 녹이려는 사람들.
그들의 몸 주위에서는 적색의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렸다.
바로 머더러 플레이어라는 증거!
그때였다.
머리에 두건을 쓴 플레이어가 나무 밑동에 등을 기대고 앉아 고민에 빠져 있는 플레이어에게 말을 걸었다.
“데블 형님, 아무래도 벌써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야. 놈은 반드시 온다. 월드 맵으로 가기 위해서는 카잔과 볼베 중에서 하나를 사냥해야 해. 그런데 놈의 모습을 본 사람?”
절레절레.
모닥불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던 머더러 플레이어들이 모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을 본 데블이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우리가 힘든 만큼 놈도 힘들다. 마을을 벗어나서 돌아다니고 싶겠지. 사냥도 하고 싶을 테고. 이건 인내심 싸움이야. 놈은 굉장히 신중한 성격을 가졌지. 인정할 만해. 이토록 우리를 엿 먹였으니까.”
“…….”
“하지만 결국에는 나올 수밖에 없어. 노멀 플레이어도 몇 남지 않았으니까. 이대로라면 베타테스트 기간이 종료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고립된다는 것을 모르진 않을 테니.”
놈은 반드시 기회를 노릴 것이다.
벌써 며칠째 헛고생을 시키고 있는 ‘라이프’라는 플레이어의 닉네임을 곱씹으며 데블은 한쪽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다고 했다.
언젠가는 수확의 때가 올 것이다.
‘이토록 기다리게 한 만큼 가치 있는 사냥감이길 빌겠다.’
환한 달빛이 숲 속의 적막함을 달래주는 밤.
때가 무르익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