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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민방위3년차] 아직도 속는 병신이 있네. 고맙다. 이건 이번 달 술값으로 잘 쓸게.
“후우…….”
무거운 돌덩어리를 하나 올려놓은 것처럼 가슴께가 답답하다.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한숨 소리.
소이는 뻐근해져 오는 뒷목을 주물렀다.
실수다. 평소라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치명적인 실수.
하지만 현재 몸 상태를 고려한다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기도 했다.
그놈의 경험치 두 배 이벤트가 뭔지.
이틀 밤을 꼬박 샜더니 멀쩡한 사물들도 서너 개로 흔들려서 보이는, 자체 발현의 마법을 겪고 있는 소이였다.
‘내 아이템…….’
어두운 현실 세계의 실내와 달리 모니터 너머의 아이템 창은 화려하기만 했다.
현금으로 구입할 수 있는 온라인상의 캐시(Cash)를 사용하여 그 기능과 적재 수량을 업그레이드한 소이의 소중한 보물 창고.
언제나 든든하게 채워져 있던 그곳에 하나의 구멍이 생겨나서 소이의 마음에 커다란 공허함을 안겨주고 있었다.
“망할.”
소이는 모니터 화면 속에서 연신 ‘ㅋㅋㅋ’를 연타하고 있는 사기꾼의 캐릭터를 노려보았다.
어딜 가나 이런 종자들은 존재했다.
좋은 아이템이나 스킬들을 노력해서 얻을 생각은 하지 않고 편한 길, 쉬운 길만 찾아다니면서 남들 속여 먹을 생각이나 하는 암적인 존재들.
이런 기본적인 인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활개를 치는 이유는 간단했다.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
운만 좋으면 작은 노력으로도 큰 이익을 챙길 수 있고, 그에 반해서 페널티는 형편없었다.
제재라고 해봐야 심하면 계정 정지인데, 어차피 사기꾼들이 사용하는 계정은 낮은 레벨에 아무 쓸모도 없는…… 말 그대로 ‘사기용’ 계정이 대부분이다.
새로 생성하는 시간이 아까울 뿐, 사실상 큰 피해라고 할 수 없었다.
이러니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헤맬 필요가 있겠는가.
결국 본인의 양심이 걸린 문제일 뿐이었다.
[착하게살자] 돌려주시죠. 지금 바로 돌려주면 없던 일로 해줄 테니까.
딸칵, 딸칵!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소이는 마우스를 조작하여 상대에게 거래를 신청했다.
하지만 상대방이 거래 신청을 수락할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에 가까웠다.
소이가 사기당한 아이템이 ‘웬만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금으로 따지자면 대략 30만 원의 가치가 있는 고가의 아이템이었다.
모르긴 해도 상대방은 지금 연신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민방위3년차] 에이, 왜 없던 일로 해? 괜찮으니까 신고하쇼. 억울하면 신고해야지. 암, 경찰이 괜히 있는 게 아닌데. ㅋㅋㅋ 그리고 선비 코스튬은 그만해. 보는 내가 안타깝다. ㅠㅠ 참지 말고 욕을 하란 말이지. 30만 원이 넘는 아이템인데, 그 정도를 못 들어줄까? ㅋㅋㅋ 아니면 엄마한테 가서 이르든가. 나 혼내주라고.
[착하게살자] 닉네임을 보니 20대 후반 정도는 된 것 같은데, 적당히 합시다. 서로 만나서 얼굴 붉히지 말고.
한껏 삐뚤어진 감정이 느껴진다.
타인을 속이고 그 행위로 본인이 우월하다 느끼는 것인지,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깐죽거리는 게 소이의 분노를 자극했다.
“야, 찾아봐.”
[……귀찮은데.]
“내가 저번에 놀아줬잖아. 밥값은 해야지.”
[칫, 알았어. 근데 너무 멀리 있으면 못 찾아. 알지?]
“알았으니까, 빨리.”
소이는 창문 너머로 사라져 가는 하얀 연기의 형상을 잠깐 응시하다가 다시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그사이 ‘민방위3년차’의 캐릭터가 소이의 캐릭터 주위를 돌며 경쾌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게임 내에서 감정 표현으로 종종 사용되는 모션 동작이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무척 신이 났음을 보여주는 행동.
그걸 목격한 소이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다.
[착하게살자] 마지막 경고다. 지금 주소 알아보는 중인데, 실제로 얼굴 마주 보고 대화 좀 해볼까? 험한 꼴 보기 전에 돌려주는 게 좋을 거야, 이 자식아.
[민방위3년차] 우왕! 님 소설 너무 많이 보신 듯. 혹시 국정원 같은 데서 일하십니까? IP 같은 걸로 추적하는 건가? 대박! 한 번 해보세요. 낄낄낄!
예상했던 반응이다.
확실히 평범한 플레이어들에게 사기꾼의 주소를 알아낼 방법 같은 것이 존재할 리 없었다.
만약, 상대가 소이만 아니었으면 사기꾼은 모처럼의 대박에 즐거워하며 발 뻗고 단잠을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헤엑, 헤엑! 찾았어. 다행히 서울 안이고, 멀지도 않더라. 7―3섹터…….]
“수고했어.”
소이는 슬쩍 손을 들어서 새하얀 연기로 이루어진 형체의 머리 부분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흐리멍덩했던 그것이 점점 뚜렷한 형체를 갖추더니, 곧 젖살이 채 빠지지 않은 소녀가 되었다.
평범한 사람이 봤다면 환각은 아닌지, 수십 번은 눈을 깜빡였을 것이다.
그다음에는 열심히 눈동자를 비비고 볼을 꼬집어보겠지.
마지막에는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뺨을 좌우로 후려쳐 볼 것이다.
그렇게 호들갑을 떨 정도로 지금 소이의 방 안에서 일어난 일은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 등장할 것 같은 황당한 스토리.
하지만 소이는 이러한 비현실적인 광경이 익숙하다는 듯 소녀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 주다가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착하게살자] 서울특별시 7―3섹터…… 기다려라.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일 찾아갈게. 나도 더 이상 좋은 말 쓰지 않아, 이 양반아.
[민방위3년차] ……무슨 헛소리를. 나 제주도 사는데. 병신이네. 너 서울 사냐? 비행기 타고 찾아와 봐. ㅋㅋㅋ 물론, 난 만나줄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소이는 ‘피식’거리며 비웃음을 흘렸다.
최대한 태연한 척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당혹감으로 인해 약간의 시간 공백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멍청한 녀석.
소이는 확신을 가지고 채팅을 이어 나갔다.
[착하게살자] 일주일 정도 집 근처에서 기다려 볼 테니까, 얼굴 좀 보자. 계속 집 안에 숨어 있을 거면 그렇게 하고. 아예 사회생활을 포기하고 살든지 알아서 하시고.
[민방위3년차] …….
더 이상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이건 겁을 집어먹었다는 증거나 다름없었다.
이런 뻔뻔한 사기꾼은 얼굴을 마주하고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주고 싶지만, 솔직한 마음으로는 거기까지 오가면서 낭비되는 시간이 더욱 아까웠다.
분명히 열은 받지만 이런 쓰레기들은 요즘 세상에 너무도 많았다.
현실이 아니라 게임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비양심의 사람들.
‘허탈하네.’
겁에 질린 상대의 반응이 맥 빠지게 한다.
소이는 이쯤에서 상황을 정리하고자 뒤쪽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는 소녀를 다그쳤다.
“뭐, 더 보고 온 건 없어?”
[음…… 안경 꼈고, 체구는 작았고, 침대 위에 교복이 널브러져 있던데?]
“교복? 하…….”
소이는 황당함을 느꼈다.
닉네임은 저렇게 지어놓고 교복이라?
거기에 자신보다 어린 학생에게 방금 전까지 우롱을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분노가 더해졌다.
‘이걸 그냥 확!’
순간적으로 솟구친 감정을 애써 다스리며 다시 채팅을 재개했다.
그래도 조금 전보다 사용하는 단어가 거칠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현일 것이다.
[착하게살자] 이제 보니까 고삐리였네? 하, 어이가 없어서. 야! 너 세상 무서운 줄 모르지? 몇 대 좀 맞아볼까? 아니지. 아무래도 학교로 한 번 찾아가는 게 좋겠다. 네 담임선생하고 이야기를 하는 게 좀 더 좋은 해결 방법이 될 것 같으니까.
[민방위3년차]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아, 아이템도 바로 드릴게요.
상대가 바로 거래를 신청해 온다.
아이템을 돌려받은 뒤, 놈은 묻지도 않았는데 주저리주저리 궁금하지도 않은 내용들을 늘어놓았다.
어리면 얕보일까 봐 닉네임을 이렇게 지었다느니, 자기는 원래 이런 행동을 하지 않는데 친구들이 돈 많이 벌 수 있다고 부추겨서 오늘 처음으로 해봤다는 말까지.
나중에는 ‘형, 형’거리면서 한 번만 봐달라고 사정사정한다.
소이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개소리’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필요 이상으로 감정적일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이게 현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철없는 어린 학생’의 흔한 모습이었으니까.
[착하게살자] 너 같은 동생 없다. 기분 더러워지니까 형이라고 하지 마.
[민방위3년차] 네, 네. 잘못했어요.
[착하게살자] 그나저나 너 몇 살이냐? 몇 살인데 아직까지 이렇게 유치하게 노는…….
[민방위3년차] 2학년이에요. 다음부터는 절대로 안 그럴게요. 한 번만 봐주세요.
[착하게살자] 고등학교 2학년이면 이제 정신 차리고 공부나 해라, 이 자식아. 무슨 새벽까지 게임질이야.
[민방위3년차] 그, 그게 아니고, 중학교 2학년인데요.
[착하게살자] ……중2?
[민방위3년차] 네, 형.
정말 학습 능력 없는 녀석이다.
앞서 형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는데.
아무튼 게임과 현실, 양쪽에서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렀다.
소이는 속으로 연신 중2병을 중얼거리다가 키보드를 두드렸다.
[착하게살자] 이번 한 번은 봐줄 테니까, 발 닦고 얼른 자라. 내일 숙제 있으면 자기 전에 해놓고.
[민방위3년차] 아, 맞다. 수학 숙제! 그럼 수고하세요.
“…….”
중2는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기.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며 감정을 다스린 소이는 깊은 한숨과 함께 컴퓨터를 종료시켰다.
그러자 어두운 실내를 유일하게 비추고 있던 빛마저 사라졌다.
그 순간, 뒤에서 느껴지는 묘한 한기(寒氣).
침대에서 혼자 장난을 치고 있던 소녀가 반색하며 소이에게 다가왔다.
[게임 끝났으니까, 이제 놀아줘.]
“이제 새벽이다. 잠이나 자라.”
[우씨! 귀신이 잠자는 거 봤어?]
“네가 최초로 하면 되겠네. 기네스북에도 오르고.”
소이는 심드렁하게 답하며 침대에 누웠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잠시 고민하던 소녀가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듯, 묘한 열기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우리…… 어른들의 ‘놀이’를 할까? 난 잘할 자신 있는데.]
“……가슴도 납작한 게.”
빠직!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굉장한 효과음이 들려왔다.
소이는 상상해 봤다.
소녀의 이마에는 아마 굵은 힘줄이 잔뜩 솟았을 것이다.
게다가 입술께는 부들부들 떨리고 있겠지.
무거운 침묵으로 가득하던 시간이 지나고, 곧 한(恨)이 서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두고 봐. 후회하게 해줄 테니까.]
그러다가 이내 포기했는지, 소녀는 좀 더 투명하게 변해서 벽을 통과해 사라져 갔다.
“……하아.”
홀로 남은 방 안에서 울리는 작은 한숨 소리.
비현실을 옆에 둔 소이의 평범한 일상이었다.
[민방위3년차] 아직도 속는 병신이 있네. 고맙다. 이건 이번 달 술값으로 잘 쓸게.
“후우…….”
무거운 돌덩어리를 하나 올려놓은 것처럼 가슴께가 답답하다.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한숨 소리.
소이는 뻐근해져 오는 뒷목을 주물렀다.
실수다. 평소라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치명적인 실수.
하지만 현재 몸 상태를 고려한다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기도 했다.
그놈의 경험치 두 배 이벤트가 뭔지.
이틀 밤을 꼬박 샜더니 멀쩡한 사물들도 서너 개로 흔들려서 보이는, 자체 발현의 마법을 겪고 있는 소이였다.
‘내 아이템…….’
어두운 현실 세계의 실내와 달리 모니터 너머의 아이템 창은 화려하기만 했다.
현금으로 구입할 수 있는 온라인상의 캐시(Cash)를 사용하여 그 기능과 적재 수량을 업그레이드한 소이의 소중한 보물 창고.
언제나 든든하게 채워져 있던 그곳에 하나의 구멍이 생겨나서 소이의 마음에 커다란 공허함을 안겨주고 있었다.
“망할.”
소이는 모니터 화면 속에서 연신 ‘ㅋㅋㅋ’를 연타하고 있는 사기꾼의 캐릭터를 노려보았다.
어딜 가나 이런 종자들은 존재했다.
좋은 아이템이나 스킬들을 노력해서 얻을 생각은 하지 않고 편한 길, 쉬운 길만 찾아다니면서 남들 속여 먹을 생각이나 하는 암적인 존재들.
이런 기본적인 인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활개를 치는 이유는 간단했다.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
운만 좋으면 작은 노력으로도 큰 이익을 챙길 수 있고, 그에 반해서 페널티는 형편없었다.
제재라고 해봐야 심하면 계정 정지인데, 어차피 사기꾼들이 사용하는 계정은 낮은 레벨에 아무 쓸모도 없는…… 말 그대로 ‘사기용’ 계정이 대부분이다.
새로 생성하는 시간이 아까울 뿐, 사실상 큰 피해라고 할 수 없었다.
이러니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헤맬 필요가 있겠는가.
결국 본인의 양심이 걸린 문제일 뿐이었다.
[착하게살자] 돌려주시죠. 지금 바로 돌려주면 없던 일로 해줄 테니까.
딸칵, 딸칵!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소이는 마우스를 조작하여 상대에게 거래를 신청했다.
하지만 상대방이 거래 신청을 수락할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에 가까웠다.
소이가 사기당한 아이템이 ‘웬만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금으로 따지자면 대략 30만 원의 가치가 있는 고가의 아이템이었다.
모르긴 해도 상대방은 지금 연신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민방위3년차] 에이, 왜 없던 일로 해? 괜찮으니까 신고하쇼. 억울하면 신고해야지. 암, 경찰이 괜히 있는 게 아닌데. ㅋㅋㅋ 그리고 선비 코스튬은 그만해. 보는 내가 안타깝다. ㅠㅠ 참지 말고 욕을 하란 말이지. 30만 원이 넘는 아이템인데, 그 정도를 못 들어줄까? ㅋㅋㅋ 아니면 엄마한테 가서 이르든가. 나 혼내주라고.
[착하게살자] 닉네임을 보니 20대 후반 정도는 된 것 같은데, 적당히 합시다. 서로 만나서 얼굴 붉히지 말고.
한껏 삐뚤어진 감정이 느껴진다.
타인을 속이고 그 행위로 본인이 우월하다 느끼는 것인지,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깐죽거리는 게 소이의 분노를 자극했다.
“야, 찾아봐.”
[……귀찮은데.]
“내가 저번에 놀아줬잖아. 밥값은 해야지.”
[칫, 알았어. 근데 너무 멀리 있으면 못 찾아. 알지?]
“알았으니까, 빨리.”
소이는 창문 너머로 사라져 가는 하얀 연기의 형상을 잠깐 응시하다가 다시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그사이 ‘민방위3년차’의 캐릭터가 소이의 캐릭터 주위를 돌며 경쾌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게임 내에서 감정 표현으로 종종 사용되는 모션 동작이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무척 신이 났음을 보여주는 행동.
그걸 목격한 소이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다.
[착하게살자] 마지막 경고다. 지금 주소 알아보는 중인데, 실제로 얼굴 마주 보고 대화 좀 해볼까? 험한 꼴 보기 전에 돌려주는 게 좋을 거야, 이 자식아.
[민방위3년차] 우왕! 님 소설 너무 많이 보신 듯. 혹시 국정원 같은 데서 일하십니까? IP 같은 걸로 추적하는 건가? 대박! 한 번 해보세요. 낄낄낄!
예상했던 반응이다.
확실히 평범한 플레이어들에게 사기꾼의 주소를 알아낼 방법 같은 것이 존재할 리 없었다.
만약, 상대가 소이만 아니었으면 사기꾼은 모처럼의 대박에 즐거워하며 발 뻗고 단잠을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헤엑, 헤엑! 찾았어. 다행히 서울 안이고, 멀지도 않더라. 7―3섹터…….]
“수고했어.”
소이는 슬쩍 손을 들어서 새하얀 연기로 이루어진 형체의 머리 부분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흐리멍덩했던 그것이 점점 뚜렷한 형체를 갖추더니, 곧 젖살이 채 빠지지 않은 소녀가 되었다.
평범한 사람이 봤다면 환각은 아닌지, 수십 번은 눈을 깜빡였을 것이다.
그다음에는 열심히 눈동자를 비비고 볼을 꼬집어보겠지.
마지막에는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뺨을 좌우로 후려쳐 볼 것이다.
그렇게 호들갑을 떨 정도로 지금 소이의 방 안에서 일어난 일은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 등장할 것 같은 황당한 스토리.
하지만 소이는 이러한 비현실적인 광경이 익숙하다는 듯 소녀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 주다가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착하게살자] 서울특별시 7―3섹터…… 기다려라.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일 찾아갈게. 나도 더 이상 좋은 말 쓰지 않아, 이 양반아.
[민방위3년차] ……무슨 헛소리를. 나 제주도 사는데. 병신이네. 너 서울 사냐? 비행기 타고 찾아와 봐. ㅋㅋㅋ 물론, 난 만나줄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소이는 ‘피식’거리며 비웃음을 흘렸다.
최대한 태연한 척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당혹감으로 인해 약간의 시간 공백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멍청한 녀석.
소이는 확신을 가지고 채팅을 이어 나갔다.
[착하게살자] 일주일 정도 집 근처에서 기다려 볼 테니까, 얼굴 좀 보자. 계속 집 안에 숨어 있을 거면 그렇게 하고. 아예 사회생활을 포기하고 살든지 알아서 하시고.
[민방위3년차] …….
더 이상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이건 겁을 집어먹었다는 증거나 다름없었다.
이런 뻔뻔한 사기꾼은 얼굴을 마주하고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주고 싶지만, 솔직한 마음으로는 거기까지 오가면서 낭비되는 시간이 더욱 아까웠다.
분명히 열은 받지만 이런 쓰레기들은 요즘 세상에 너무도 많았다.
현실이 아니라 게임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비양심의 사람들.
‘허탈하네.’
겁에 질린 상대의 반응이 맥 빠지게 한다.
소이는 이쯤에서 상황을 정리하고자 뒤쪽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는 소녀를 다그쳤다.
“뭐, 더 보고 온 건 없어?”
[음…… 안경 꼈고, 체구는 작았고, 침대 위에 교복이 널브러져 있던데?]
“교복? 하…….”
소이는 황당함을 느꼈다.
닉네임은 저렇게 지어놓고 교복이라?
거기에 자신보다 어린 학생에게 방금 전까지 우롱을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분노가 더해졌다.
‘이걸 그냥 확!’
순간적으로 솟구친 감정을 애써 다스리며 다시 채팅을 재개했다.
그래도 조금 전보다 사용하는 단어가 거칠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현일 것이다.
[착하게살자] 이제 보니까 고삐리였네? 하, 어이가 없어서. 야! 너 세상 무서운 줄 모르지? 몇 대 좀 맞아볼까? 아니지. 아무래도 학교로 한 번 찾아가는 게 좋겠다. 네 담임선생하고 이야기를 하는 게 좀 더 좋은 해결 방법이 될 것 같으니까.
[민방위3년차]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아, 아이템도 바로 드릴게요.
상대가 바로 거래를 신청해 온다.
아이템을 돌려받은 뒤, 놈은 묻지도 않았는데 주저리주저리 궁금하지도 않은 내용들을 늘어놓았다.
어리면 얕보일까 봐 닉네임을 이렇게 지었다느니, 자기는 원래 이런 행동을 하지 않는데 친구들이 돈 많이 벌 수 있다고 부추겨서 오늘 처음으로 해봤다는 말까지.
나중에는 ‘형, 형’거리면서 한 번만 봐달라고 사정사정한다.
소이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개소리’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필요 이상으로 감정적일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이게 현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철없는 어린 학생’의 흔한 모습이었으니까.
[착하게살자] 너 같은 동생 없다. 기분 더러워지니까 형이라고 하지 마.
[민방위3년차] 네, 네. 잘못했어요.
[착하게살자] 그나저나 너 몇 살이냐? 몇 살인데 아직까지 이렇게 유치하게 노는…….
[민방위3년차] 2학년이에요. 다음부터는 절대로 안 그럴게요. 한 번만 봐주세요.
[착하게살자] 고등학교 2학년이면 이제 정신 차리고 공부나 해라, 이 자식아. 무슨 새벽까지 게임질이야.
[민방위3년차] 그, 그게 아니고, 중학교 2학년인데요.
[착하게살자] ……중2?
[민방위3년차] 네, 형.
정말 학습 능력 없는 녀석이다.
앞서 형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는데.
아무튼 게임과 현실, 양쪽에서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렀다.
소이는 속으로 연신 중2병을 중얼거리다가 키보드를 두드렸다.
[착하게살자] 이번 한 번은 봐줄 테니까, 발 닦고 얼른 자라. 내일 숙제 있으면 자기 전에 해놓고.
[민방위3년차] 아, 맞다. 수학 숙제! 그럼 수고하세요.
“…….”
중2는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기.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며 감정을 다스린 소이는 깊은 한숨과 함께 컴퓨터를 종료시켰다.
그러자 어두운 실내를 유일하게 비추고 있던 빛마저 사라졌다.
그 순간, 뒤에서 느껴지는 묘한 한기(寒氣).
침대에서 혼자 장난을 치고 있던 소녀가 반색하며 소이에게 다가왔다.
[게임 끝났으니까, 이제 놀아줘.]
“이제 새벽이다. 잠이나 자라.”
[우씨! 귀신이 잠자는 거 봤어?]
“네가 최초로 하면 되겠네. 기네스북에도 오르고.”
소이는 심드렁하게 답하며 침대에 누웠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잠시 고민하던 소녀가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듯, 묘한 열기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우리…… 어른들의 ‘놀이’를 할까? 난 잘할 자신 있는데.]
“……가슴도 납작한 게.”
빠직!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굉장한 효과음이 들려왔다.
소이는 상상해 봤다.
소녀의 이마에는 아마 굵은 힘줄이 잔뜩 솟았을 것이다.
게다가 입술께는 부들부들 떨리고 있겠지.
무거운 침묵으로 가득하던 시간이 지나고, 곧 한(恨)이 서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두고 봐. 후회하게 해줄 테니까.]
그러다가 이내 포기했는지, 소녀는 좀 더 투명하게 변해서 벽을 통과해 사라져 갔다.
“……하아.”
홀로 남은 방 안에서 울리는 작은 한숨 소리.
비현실을 옆에 둔 소이의 평범한 일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