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대한제국 연대기 1권(25화)
제7장 결전지로(決戰之路)(5)


1406년 중춘(仲春)
조선국 평안도 순안현(順安縣).

동정장군 양영이 이끄는 명군의 5만 군세는 안주성을 포기하고 남으로 내닫고 있었다.
환국(還國)하라는 파발은 아직도 국경을 넘지 못했으니 양영은 이 사실을 꿈에도 알지 못하고 그저 어떻게 한성으로 진격할까 궁리만 거듭하고 있었다.
이제는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라 평양성을 빨리 빼앗던가, 아니면, 그마저도 내버려 두고 보급이 없어 조금 고되더라도 한성으로 가능한 빨리 진격해 가짜 왕을 사로잡고 대신들을 포획해 조정을 무너뜨리는 것이 능사였다.
그렇게 된다면 안주고 평양이고 크게 중요해지지 않는다. 조정을 손에 넣는다면 그때는 본국에 좀 더 병력을 요청해도 될 일이었다.
‘고된 길이긴 하나, 지금은 조금 힘들더라도 빠른 시간 내에 한성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들이고 마을이고 죄다 비웠으니 어차피 성을 공략하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취할 수가 없다. 그러나 지금 평양성을 공격하게 된다면 군사를 크게 잃고 더 이상 남쪽을 도모하지 못할 것이니, 이는 크게 화를 자초할 일이다.’
양영은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진중의 장수와 책사들을 모아 놓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였다.
양영에게는 이격(李格)이라는 장수가 그 휘하에 있었는데, 그 직책은 도사(都司)로서 높은 직위는 아니었으나, 양영은 그 기재(奇才)를 아껴 중히 쓰고 있었다.
그 이격이 상관 양영의 생각을 깊이 듣고서는 말했다.
“지금 평양을 버리고 한성으로 들어갔다가는 양쪽에서 협공을 맞아 크게 패할 수가 있으니 우선은 다시 청천강을 넘어 돌아가 남겨 두었던 군세를 합쳐 전열을 정비하고, 요동에서 보급을 받은 후에 다시 도모하시는 게 어떠할지요.”
이격의 말은 합당한 것이었으나 이미 전승에 대한 압박을 조금씩 받고 있던 양영의 귀에는 크게 차지 않았다.
그러나 평소 그른 말을 한 적이 없는 이격인지라 그 말을 따를까 한참을 고민해 보았으나, 결론은 이대로 군세를 후퇴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미 적군의 주력은 평양과 안주 사이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으니 빠르게 이탈하여 한성으로 들이닥친다면 그곳은 병력이 비어 있어 감히 우리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
조선군의 정확한 병력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양영이었으나 그가 파악한 것만큼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이미 도성과 경기를 방어하던 시위대를 빼다가 평양으로 보내 버렸으니, 이미 한성 근역은 지킬 군사가 없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아마 이쯤에서 한성으로 진격했다면 양영은 생각했던 것보다 큰 것을 얻었을 것이고, 아마 이격의 말을 듣고 군세를 물렸으면 적어도 큰 손실 없이 명나라로 회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패책은 별다른 것이 아니라 평양성 지척인 순안현의 읍에 이르러 그곳에서 결정을 빨리 내리지 못하고 군사를 하루 머무르게 한 것이었다.
“지금으로서는 별 도리가 없으니 우선은 하루 머무르면서 생각해 보도록 하자.”
양영의 말에 이격은 불쑥 불안한 기분이 들었으나 아직까지 별다른 징조가 보이지 않는지라 우선은 양영의 말을 따라 막사를 꾸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순안현의 읍내는 백성들이 급히 피하느라 마저 못 없앤 양식 따위가 조금 있어 명군의 병사들은 간만에 요기라고 할 만한 것을 입에 댈 수 있었다.
그런 상황이니 이런 식량도 죄 버리고 빨리 발걸음을 재촉해야 한다는 말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식량이란 것도 죄 평양에 남아 있는 양은계가 황희를 시켜 병사를 움직여다 이들이 당도하기 전에 남겨 놓은 것이라는 것을 이들이 알 리가 없었다.
배는 부르지 않으나 적어도 간만에 식사를 하게 되면 우선은 진영을 만들게 되고 잠시 유숙하게 될 것이니, 이것으로 잠시 시간을 묶어 두는 것이 양은계의 전략이었다.
이리하여 평양부중에 있던 남은 병력 중 양은계가 1만을 빼내어 순안현 경내의 언덕들 사이에 밤중을 틈타 매복하고, 안주에서도 고상온이 1만의 병력을 이끌고 와 북쪽에서 진입해 들어오니, 이것도 모른 채 명군의 진중은 오랜만의 식량으로 한껏 들뜬 분위기였다.
그렇게 허름한 토성으로 없는 것이나 진배없는 순안의 읍성 내외로 주둔한 명군과 이것을 양측으로 감싸오듯이 조여 오는 조선군의 묘한 대척이 깨진 것은 이격의 덕분이었다.
이것은 명군으로서는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는데, 혹여나 싶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주변 경계를 이격이 지시하여 병사 수십을 풀어 사방의 십 리를 살피게 했는데, 때마침 좀 더 전진해 매복할 위치를 물색하던 양은계의 병력과 마주치게 된 것이다.
양측 모두 본진에서 떨어져 나와 초계(哨戒)를 하던 중이라 서로를 나포하지 못하고, 명군 병사 하나가 목숨을 건져 나와 이것을 늦은 밤 이격에게 전했으니, 이격은 이 사실을 듣고서는 급히 놀라 양영을 찾아가 어서 전투가 벌어질 것이니 태세를 갖추라 종용했다.
이격이 워낙 심각한지라 양영 또한 사태가 급박한 것을 알아채고 병사들을 방비하도록 단단히 일러두고, 그 자신도 무구와 도검을 착용하고 말을 타고 진중을 순시하며 적의 기습에 대비했다.
조선군도 상황이 이쯤 된 것을 알자 기습을 포기하고 정면으로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식량을 깔아 놓은 것도 그 틈을 타 기습을 해 승기를 잡자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전면전으로 상황이 바뀌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적군의 병세는 5만이었고, 조선군은 양쪽을 합쳐 2만이니 과히 유리하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이것을 노려보는 것은 무기의 우세를 믿는 탓이었다.
그 와중에 양영은 진채를 단단히 하고 이들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양은계가 나섰다.
남쪽에서 안쪽으로 휜 부채꼴 모양으로 보총대를 앞세우고 선제 사격을 하며 조금씩 군세를 전진시켜 나갔다. 조선군이 하나 더 믿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적은 아직 조선군이 양쪽에서 협공해 들어온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양은계는 그 사실이 들통 나기 전에 적의 시선을 한껏 이쪽으로 집중시키기 위해 요란하게 포와 총으로 적진을 두드리며 천천히 적진을 압박해 들어왔다.
“적은 보총으로 무장했다고 하나 우리는 병력이 우월하게 많다! 겁내지 말고 포를 준비해 적진에 응사하고, 활을 날려 진격을 막아라!”
양영이 크게 소리치며 명군을 다독이자 압박에 조금씩 물러나고 있던 명군이 일세 전열을 가다듬고 응수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순안현의 성진을 나와 들 앞에서 회전(會戰)을 펼치려 하고 있는 상황이니, 양영이나 이격이나 도무지 후진은 신경 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천자총통으로 진내를 휘저어 놓고, 대신기전으로 화시(火矢)를 날려대나 같이 포를 응사하며 막아내고 있는데, 보총의 사정거리 안으로 진영이 들어오게 되면 일이 힘들어질 것이었다.
양영은 보총대의 진열을 그전에 흩어 버리기 위해 직접 말을 달려 기병들을 끌고 고상온의 진으로 돌격해 들어갔다.
조선군의 가장 앞서 있던 보총대의 진열이 일시에 흩어지자, 명군은 이내 병사들을 전부 돌격시켜 보총의 우위를 흩어 버리고 백병전(白兵戰)으로 전환시킬 계책을 부리려고 했다.
그러나 이때에 고상온이 북쪽에서 빠른 속도로 병력을 몰아다가 기병대로 명군의 후진을 뒤흔들며 총포를 쏘아대니 명군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져들고 말았다.
지금까지 기세 좋게 앞에서 양은계의 군세를 몰아붙이던 양영과 이격도 그제야 양쪽에서 협격(挾擊)한 것을 알고서는 군세를 재정비하려 애썼으나 이미 늦은 노릇이었다.
승세를 잡은 조선군이 더욱 힘이나 몰아붙이니 명군은 이내 병력수의 우위라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크게 진영이 흔들리기 시작했는데, 거의 적과 맞붙은 곳에서는 백병전이나 다름없어 보총의 우위가 상쇄된 상황인데도, 그 사기가 떨어지고 그간 보급이 부실해 체력적으로도 기력이 쇠한 관계로 명군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우선은 가능한 한 병력을 회수하여 뒤로 후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하자. 지금은 그러는 수밖에 도리가 없겠다.”
이격이 어렵사리 말을 몰아 양영에게 고하자 양영은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어디로 물러가야 좋겠는가? 분명히 이대로 군세를 뒤로 물린다면 안주성에 남아 있는 병력이 우리를 매몰하려 들이닥칠 것이다.”
“예전 조선의 세자에게 병력을 내어 준 바 있어, 그가 동북면 일대를 휘젓고 있다고 하니 우선 동쪽의 산세를 넘어 그 병력과 합세해 다시 국경 가까이 철수하는 수밖에 없나이다.”
“지금 계책으로서는 그것이 최선이다. 그리하도록 하자.”
양영과 이격이 간신히 군사를 한군데 모아 전세를 수습해 보려 했으나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겨우 기마병 위주로 군세를 수습해 10리 정도 도망치고 나니 남은 군사수가 겨우 4만이 되지 못했다.
하룻밤 사이에 1만의 군사를 또 잃고 만 것이다.
그나마 유용하게 쓰던 포를 죄 버리고 포병이나 보병들의 희생이 컸으니 남은 기병대로는 할 수 있는 것이 공성(攻城)도 안 될 노릇이오, 빠르게 도망치는 것밖에는 유용한 것이 없었다.
그렇게 말을 달려서 개주(介州)의 고을을 지나 영길도로 들어가기 위해 말을 달리니, 다행히도 그곳에는 조선군이 없어 생각보다 쉽게 도망칠 수 있었다.
고상온은 이들 패하고 달아나는 잔당을 뒤쫓을 것을 양은계에게 종용했으나, 양은계는 조선군의 피해도 큰 것을 들어 사양하고서는 평안도의 방비를 단단히 해 다시는 노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다독였다.
이 사이에 조사의는 안주성을 나와 건너편의 명군이 비워 둔 정주성을 차지하고, 군세가 다시 꾸려지는 대로 송거신과 함께 명나라의 남은 군세와 폐주가 있다고 하는 이주(理州)까지 진공할 계책을 궁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 명에서 회군을 종용하기 위해 출발한 파발은 이주의 명군 진중에 이미 도착하여 지휘첨사(指揮僉事) 주문(周文)을 만나 이 사실을 전하니, 주문은 도대체 양영과 이격이 군세를 이끌고 패퇴해 어디로 갔는지 종적을 알 수 없어 속만 까맣게 태우고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양영과 이격은 어렵사리 산을 넘어 영길도로 들어서니, 이 행군 와중에도 지친 병사들이 이탈하고 쫓아오지 못해 숨을 거두어 그 군세도 더욱 줄어 있었다.
이렇게 패퇴한 군세를 이끌고 영흥까지 간신이 들어와 그곳에 있던 세자 이제[讓寧大君]를 만났으나 그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이제는 깜짝 놀라 그 영문을 살피니 이미 전운이 기울었음을 알았다.
“우선은 제 병력과 합해 이주로 군세를 물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양녕군이 탄식하며 말했다. 이제는 별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이렇게 다시 한성을 도모하는 일이 끝나나 싶어 마음은 천 리 벼랑에 서 있는 것 같았으나, 우선은 살릴 수 있는 목숨은 최대한 살려 구명(求命)을 기대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양영도 상황이 이러고 보니 더 이상 큰소리치며 적당을 몰아내 주겠노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양녕은 병력의 철수를 준비시키고 개마고원의 바깥 둘레를 타고 압록강으로 들어가는 산도(山道)를 확보하여 살길을 마련했다.
이곳까지 조선군이 들어와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늦기 전에 병력만 철수시킨다면 이주까지는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이렇게 패퇴한 명군과 양녕의 군세가 모아져 산길을 넘어 이주로 돌아가고, 조선군은 승전을 축하하며 전세를 몰아 나머지 잔당을 처리하려 하니 판세는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2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