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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연대기 1권(7화)
제2장 왜구내습(倭寇來襲)(2)
이제 곧 성문이 열리고 저들을 토색(討索)해 쓸 만한 몸은 대마도로 끌고 가서 부리고, 재물을 약탈해 가문의 영달과 제 몸의 입신에 쓸 것이다. 적어도 그때까지 하야다는 그 계획에 아무런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하야다가 그렇게 제주도 남동쪽 해안을 쓸고 다니다시피 하는 동안, 그 사실이 이내 관아에도 알려졌다.
“표선면 해안에 상륙한 왜구가 읍성(邑城)까지 임박했나이다!”
군수의 직무도 보고 천천히 방적기를 좀 더 효율적으로 개량해 볼 요량으로 정의군 읍성으로 내려와 있던 세훈은 이방의 보고에 깜짝 놀랐다.
언젠가 왜구가 내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고, 또 병력을 기르는 핑계를 왜구로 대었던 세훈이었지만 정말 말 그대로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대충 닿는 대로 도포를 걸치고 전립을 쓰고 나와 성루(城樓)에 올라서니 과연 저 멀리 왜구들이 노략한 마을들이 불타고 있었고, 성루에서 훤히 보이는 거리에 왜구들이 바글거렸다.
준비가 되는 대로 성문을 때려 부수고라도 쳐들어올 기세였다.
“성안에 군사가 어느 정도 있느냐!”
세훈이 심각한 표정으로 이방에게 다그쳐 묻자 이방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총병은 죄다 훈련으로 인해 도호부 성내로 들어갔사옵고, 잡병 이백이 전부이나이다.”
“내가 이곳에서 최대한 저들을 막아 볼 터이니 저들이 이곳으로 가까이 몰려오기 전에 너는 후문으로 바삐 말을 달려 나가 도호부에 이 사실을 알리고 병력을 청하라. 그들은 내가 지난 수 개월간 총을 쥐어 훈련시킨 정병들이니 오는 대로 왜구를 격퇴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세훈은 이런 당혹스러운 사태에 노기가 치밀어 올랐지만 지금은 역정을 부릴 것이 아니라 냉정한 마음으로 적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 부족한 병력이나마 그간 마련해 둔 보총을 든 신식 병력이 올 때까지만 버틸 수 있으면 해 볼 만한 일이었다.
“분부 받잡겠나이다.”
이방이 서둘러 뛰어 내려가자 세훈은 꽹과리를 쳐 성내에 남은 병력을 불러 모았다.
이들은 새로이 훈련받은 병사들이 아니라 예로부터 제주에 있어 왔던 정병들로 군역을 지고 있는 이들이었다. 이들의 무장 상태는 형편없어서 칼이며 활에 무장도 제각기였고 훈련 상태도 엉망이었다.
이런 것을 예견하지 못하고 새로이 편성한 군대를 좀 더 훈련시킨다는 요량으로 죄다 제주 도호부성 안에다가 모아 논 것이 실책이었다.
군사들의 무예를 갈고 닦아 좋은 무기를 쥐어 준들 제때 있을 곳에 있지 아니하면 이렇게 심중한 타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 하나 그것 또한 실기(失期)는 불비(不備)나 마찬가지였다.
하야다가 이끄는 왜구 떼의 공격은 해가 중천일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정의군 내의 성읍을 둘러싼 마을들을 거의 초토화시키고 나서는 성을 공략하기 위해 흩어졌던 무리들이 떼 지어 모여들었다.
천미천 개울을 따라 몰려 있던 왜구들은 어디서 마련했는지 모를 사다리를 가져와 낮은 성벽에 대어 기어오르려 했다.
세훈은 병사들에게 창이며 낫, 조금이라도 날카로운 것을 되는 대로 들려서 그들을 막아서게 했다.
성벽 아래로 뜨겁게 끓인 물을 붓기도 하고 돌도 던지며 막아 보았으나 성벽으로 올라오는 것들을 활을 쏘고 칼로 쳐 내어 걷어내면 그렇게 죽여서 막는 것보다 뒤에서 몰려오는 기세가 더 강맹했다.
“이게 바로 왜구로구나!”
과거로 떨어진 지 3년 만에 왜구라는 존재를 처음 본 세훈은 그 포악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자들이 수천수만 무리를 이루어 수륙으로 출몰하며 고려 말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 까지 약탈을 일삼았다니 아무리 퇴락한 왕조라고 하지만 고려 조정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이유를 알 만했다.
세훈 그 자신만 해도 갑작스레 해변에서 올라와 순식간에 마을들을 훑으며 쳐들어오는 진격 속도에 이들이 성문 앞에 밀려올 때까지 상륙한 사실조차 알지 못하지 않았던가. 현대전으로 치면 일종의 게릴라전이요, 유격술에 능한 이들이었다.
적의 기세는 보이는 것만 대충 어림잡아도 천여 명에 가까운데 비록 성안에서 사수하고 있다 하나 이쪽은 이백에 불과했다. 거기에 애초에 이런 교전 상황은 크게 염두에 두고 지어지 않은 정의읍성은 허술한 토성으로, 조금만 기세에 밀리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언제고 함락 위험이 있었다.
“목숨을 걸고 성루를 지켜내라! 저들이 넘어오면 아내와 딸들이 끌려가 겁간당하고 남정네들은 도륙당할 것이다!”
성이 적의 수중에 떨어졌을 때 벌어질 비참한 일을 말하며 병정들을 자극해 보아도 이미 밀리는 기세는 어쩔 수 없었다.
왜적들이 떼로 붙어 두들겨대는 통에 허술한 성문은 이제 반파되기 직전이었고 성벽으로 기어서 올라오는데 성공하는 왜구들의 숫자도 점점 늘어가고 있었다.
이러다 성문이 열리고 세훈 자신도 성루에 갇혀 토살당하기를 기다리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설마 과거로까지 오며 목숨을 건져 낸 나도 여기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 이제 시작인데!’
세훈은 아찔한 기분에 눈을 감고야 말았다.
“사또 어르신! 어서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적의 기세가 성벽을 곧 넘을 듯하나이다!”
병졸을 지휘하던 나장이 뛰어와 세훈에게 읍하고서는 말했다.
세훈은 몸이 침침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한창 신혼의 즐거움을 누리는 아내 고상희와 이제 핏덩이 같은 아들을 생각해 보았다. 차마 여기서 목숨을 잃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만 지방관으로서 이 성을 왜구에게 내어 주고 도망치는 것은 싫었다.
그 와중에도 왜적 몇 명이 성루의 야대(夜臺)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어서 피하셔야 합니……!”
타다당!
나장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온 소리에 묻힌 것은 그때였다.
세훈은 귀가 바짝 열리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공을 들여 개발해 낸 보총이 쏘아지는 울음이었다.
총성(銃聲)이 하늘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소리가 울려 퍼질 때까지 하야다는 기분이 좋았다. 이제 저 성읍은 함락될 것이다. 역시나 성을 지키는 군사는 얼마 되지 않았고 이제 곧 성문이 열릴 참이었다.
저 성루 위에서는 저쪽의 관리로 보이는 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어떻게든 막아 보려 애쓰는 것이 눈에 보였지만 하야다는 코웃음 칠 수 있었다. 이런 허술한 성채로 이만큼 버틴 것만 해도 칭찬해 줄 수 있을 정도였다.
“어서 어서 서둘러라! 성문이 곧 열……!”
타다다다당!
하야다가 소리치고 있는 와중에 어디선가 벼락 터지는 듯한 소리가 귀를 찢을 듯이 들려왔다.
좌우를 둘러보니 하나둘씩 가슴이며 배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어떤 이는 머리에 피를 뿜으며 쓰러져 있었다.
“이, 이잇! 이게 대체 무어냐!”
“저쪽 언덕 위입니다!”
카게야가 어느샌가 타고 있던 말도 잃어 버리고 거친 숨을 헐떡이며 쫓아와 손가락을 들어 동북쪽을 향해 보였다.
과연 그 손가락 끝에 병사로 보이는 자들이 거의 천 명 가까이 열을 지어 도열해 있었다. 놈들은 열을 바꾸어 가며 뭔가를 계속 쏘아대고 있었는데 바다에서 왜선을 잡을 때도 쓰기 시작했다던 포(砲)의 일종인 듯싶었다.
그러나 활도 닿지 않는 이렇게 먼 거리에서 사람마다 하나씩 들고 쏘아대는 것은 상상치도 못한 일이었다.
하야다가 섣불리 판단을 못 내리고 있는 와중에도 왜인들은 계속해서 쓰러져 나갔다.
성벽을 타고 오르고, 성문을 부수려고 달라붙어 있던 병력들도 전부 기세를 잃고 흩어지거나 주검이 되어 있었고, 어느새 총성은 하야다와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의 목숨도 앗아 갔다.
“이……! 후퇴하라!”
하야다의 명령을 들은 것인지 못 들은 것인지 왜구들은 우왕자왕하더니 제멋대로 흩어졌다.
“이게 대체 무슨 괴사인가!”
하야다는 침음성을 흘렸다. 대체 상상치도 못했던 일이다. 일전에 바다에서 고려군이 쏘는 포에 왜구들이 수장된 이야기는 들어보았으나, 육지에서 저런 작은 포를 들고 멀리서 쏘아대는 것은 겪어 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일이었다.
“적군의 공격이 드세다! 목숨을 부지하고자 하면 어서 도망쳐라!”
큰소리로 휘하를 독려하며 말을 잃은 카게야를 뒤에 태우고서 하야다는 바다에 배를 매어 두었던 곳을 향해 빠르게 전장을 이탈했다. 이래서야 절반이나 살아서 돌아갈지 모르는 일이었다.
다행이 왔던 길은 모두 초토화시키며 온 덕에 사람 하나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황폐한 길이었다. 이렇게 후퇴하는 길은 역습이 두려운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이내 배를 매어 둔 곳에 당도했을 때 하야다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배는 이미 나포당해 배 위에서는 조선군 병사들이 해안가로 도망 오는 왜구들을 향해 총을 쏘아대고 있었다.
제3장 자강불식(自强不息)(1)
「태조께옵서 이때에 임금의 학정(虐政)에 견디지 못하는 민중을 굽어 살피시고, 이에 마음을 아프게 여기사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고 속민을 구제코자 하는 마음이 계셨다. 이때에 이를 헤아린 배신(陪臣)들이 주청하여 가로되…….」
―강재번(姜渽繁), 해동야승(海東野乘)
1402년 맹동(孟冬)
조선국 전라도 제주도호부.
금년 중추(仲秋)에 있었던 왜노의 준동을 척결한 것을 치하하고 때 아닌 소동에 피해를 본 백성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조정에서 탐문사가 다녀간 것이 가을이 끝날 무렵이었다.
좌정승씩이나 지낸 금상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노신 하륜(河崙)이 몸소 내려왔기에 제주 일대가 잔뜩 긴장했다.
직접 전승을 보고하며 부득이하게 이번 승전에는 보총의 위력에 크게 힘입었음을 고해바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방군을 양성해 왜구를 물리치고자 한다는 명분이 있었으므로 화약을 다루고 총포를 생산한 것에 대해 큰 질책을 사지는 않았다. 역모 운운하기에는 이번에 왜구를 천여 명이나 죽이고 사로잡은 전공이 컸다. 근래에 이런 공록이 없었던 것이다.
하륜은 한양에 진상할 총포 십여 정과 이제는 제주에서 바쳐야 할 공납(貢納)품에 들어간 비누와 발화기를 잔뜩 실어서 올라갔다.
고봉례의 동생이자 신식군의 총병대장을 맡아 이번에 승전에 큰 공을 세운 고봉지도 하륜의 일행을 수행해 따라 올라갔다. 운이 좋다면 치하를 받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높은 품계의 관직을 받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제주 전역이 이런저런 일로 어수선한 사이에도 세훈은 잔뜩 풀이 죽어 있었다.
비록 자신이 손수 길러낸 총으로 무장한 신식군이 왜구를 대파하긴 했지만 자신이 군수로 있는 정의군의 성읍 남쪽 지역이 왜구들에 의해 초토화되고 수백의 인명이 죽어 나간 것이 꼭 자신의 모자람에서 빚어진 일 같았기 때문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 현도의 재롱도 그 가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륜 일행의 접대와 행객(行客)을 보아 주는 것은 장인 고봉례와 다른 토호(土豪)들에게 미루어 두고서는 세훈은 정의군 관내를 시찰하고 왜구의 준동에 피해를 입은 속민들을 위문하고 다니는 데에 시간을 썼다.
보면 볼수록 그것은 참상이었다. 남편과 아들이 죽어 일손을 놓은 여자, 제 부모고 가족을 죄 잃고 고아가 된 아이. 가족들은 살아남았으나 집이고 농사 지어 놓은 작물이 모두 잿더미가 되어 당장 살길이 궁한 이들. 왜노에게 겁간당해 실성한 처녀. 그런 것을 보고 있자니 아무리 마음을 달래 보아도 기분은 영 가시질 않았다.
“서방님께서 이렇게 기운이 없으시니 소녀까지 생각이 복잡하나이다.”
고상희가 종종 꿀물을 내어 오며 세훈을 살살 달래 보았지만 세훈의 복잡한 심경은 쉬 가라앉지 않았다.
“자네의 걱정은 고마운 일이나 시간을 좀 가지고 기다려 주게. 답답한 줄은 알지만 내 맘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을 어찌하나.”
“…….”
고상희는 그저 사랑하는 남편의 심신이 지치고 상할까봐 노심초사 걱정이었다. 자주 얼굴을 내비쳐 주지 않는 남편이 집안에 오래 있는 것은 고마운 일이었지만, 저렇게 지친 모습으로 있으니 그저 걱정이 태산이었다.
아이가 생기고 나이도 좀 더 먹어 이제는 소녀라기보다 현숙한 여인이 된 고상희는 여전히 남편을 생각하는 마음은 작아지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의 걱정 속에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이 찾아왔다.
북쪽에서 차가운 바닷바람이 조금씩 밀려오기 시작하자 세훈은 그제야 기운을 조금 차렸다. 조정에 총을 올려 보냈으니 무언가 반응이 오겠지만, 우선 만들어내는 것을 쉴 수는 없었다.
세훈은 왜노와의 전투에서 죽거나 크게 다친 이들을 솎아내어 생계를 마련해 주고 보상을 내어 준 다음에 그 손실을 메울 장정을 선발해 다시 훈련을 시키는 일에 들어갔다.
겨울이 한창에 접어들 쯤에는 보병들뿐만 아니라 기병들에게도 총기 지급이 끝났고, 창병과 궁병들에게도 총을 주어 보병으로 전환시켰다. 그리고는 기병을 좀 더 뽑고 보병의 인원도 확충해 총 보병 2천에 기병 1천을 이루는 3천의 병력을 완성했다.
구상했던 병력이 확충되자 세훈은 다시 군복을 만드는 일에 시선을 돌렸다. 지금 병사들이 입는 옷은 헤지기 쉽고 거의가 삼베나 마로 자은 옷들에 소매가 치렁치렁 넓어 전투에 과히 효율적이라 할 수는 없는 옷들이었다.
우선 내년에 수확할 목화를 기다리기 전에 세훈은 겨우내 방적기를 완성했다. 소위 말하는 제니방적기의 형태로 완성된 방적기는 세훈에 의해 다축방정기(多軸紡績機)로 이름 지어져 세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목화가 산출되는 즉시 바로 수요에 응할 수 있도록 제주성 남문 앞에다가 널찍한 집을 올려 공장으로 삼아 방적기를 사십여 대나 들여놓았다.
한 사람이 한 번에 여덟 개 이상의 물레를 빠른 속도로 잣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기존의 집집마다 물레 돌리던 것에 비할 수 없는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것이다. 역사상 발전으로 보았을 때도 몇 단계를 한 번에 뛰어넘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시 문제에 부딪힌 것은 목화였다. 작년에 심어 둔 목화는 중국에서 문익점이 가져온 그 목화의 종자로, 작년은 파종 시기를 놓쳐 수확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고, 그나마 수확한 것도 종자 자체가 털이 성기게 나 솜을 만드는 데 유용할 뿐 방적에는 좀체 맞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