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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전기 1권(25화)
제11장 형제의 강[兄弟之江](2)


앞으로 나섰던 두 명의 흑의인은 검을 쥐려고 손을 가져가던 자세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러고는 진호가 그들 사이를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자 그제야 두 명의 목이 몸통에서 분리되어 굴러 떨어지면서 피분수가 치솟아 올랐다.
삼 보 앞으로 나선 진호가 갑작스런 상황에 멍하니 선 흑의인들 중 가운데 선 자를 향해 도를 내밀어 목젖의 천돌혈을 찔렀다. 상대는 진호의 도가 닿기도 전에 목에 구멍이 뚫리며 피를 뿜어냈다. 진호는 다시 우측으로 반보 나아가며 손목을 돌려 검파(劍把)로 손을 가져가선 우측에 선 자의 목을 날려 버리곤, 손목을 역으로 틀면서 오른발을 고정한 채 왼발을 뒤로 가져가는 반삼재보를 밟으며 좌측에서 검을 뽑아 달려드는 흑의인의 몸통을 좌에서 우로 대각으로 내려 베어 두 동강 내어 버렸다.
“도강!”
흑의인들 가운데 누군가가 진호의 도에 맺혀 있는 도강을 보며 놀람의 외침을 부르짖었다. 앞으로 나선 두 명의 목을 날려 버린 절대 쾌도에 이어 도에 투명한 강기를 머금은 채 세 명의 흑의인을 단숨에 베어 버린 진호의 번개 같은 동작에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었다.
남아 있는 흑의인들의 눈에 점점 공포가 전염병처럼 번지기 시작하였다.
진호가 좌측의 흑의인들을 향해 나아가자 진성이 진호의 등을 맞댄 채 검을 뽑아 유운검법을 펼치며 뒤쪽으로 달려드는 자들의 검을 걷어 내었다.
진성이 달려드는 상대의 검을 소극적으로 걷어 내기에 급급한 것과는 달리 진호는 자신의 앞에 선 흑의인들을 향해 적극적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흑의인들은 나름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자들인지 정신이 거의 공황에 가까운 상태에서도 천지인 삼재의 합격술로 진호의 머리와 심장, 그리고 단전을 향해 동시에 검을 찔러 왔다.
챙! 챙! 챙!
흑의인들의 검이 몸에 닿을 정도까지 기다리던 진호가 벼락같이 도를 내밀어 단전을 노린 검부터 쳐 내며 삼각형을 그렸다. 세 명의 흑의인들의 검이 튕겨 나며 주춤거리는 사이 생긴 틈으로 진호의 도가 파고들었다. 정면의 흑의인의 머리를 쪼개 버리며 튀어 오른 진호의 도가 부드럽게 원을 그리며 우측으로 돌아가자, 심장을 찔러 왔던 흑의인의 우측 목 대정맥이 벌어지며 피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진호는 왼손의 손등으로 니권을 펼쳐 좌측에 선 자의 안면을 날려 버렸다. 진호의 강기가 담긴 니권이 강타하자 상대는 달려드는 동료들을 밀어내면서 안면이 짓뭉개진 채 날아갔다.
챙!
다시금 진호의 우측 옆을 찔러 오던 검을 진호가 튕겨 내자 상대는 검을 되돌려 다급하게 머리를 막았다.
서걱!
진호의 도강을 머금은 도가 상대의 검을 잘라 버리면서 코 밑 인중까지 상대의 머리를 반으로 갈라 버렸다. 중단으로 도를 되돌린 진호가 다시금 우측으로 반보 이동하자 날카로운 검 하나가 진호의 미간으로 폭사되었다. 진호는 느긋하게 도를 마주 내밀어 상대의 검을 좌측으로 밀어내고는, 손목을 되돌려 도를 아래로 떨어뜨리며 다가온 상대의 배에 대고서는 앞으로 나아가며 그어 버렸다. 진호의 도가 지나가자 복압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 버린 상대의 내장이 갈라진 틈을 비집고 꾸역꾸역 밀려 나오고 있었다. 이 한 수는 진호가 풍운도법 가운데 제오초인 풍운만변을 응용한 것이었다.
도강과 권강을 뿜어내는 가공할 무위로 일말의 흔들림조차 없이 잔혹하게 상대를 베어 버리고 있는 무표정한 진호의 모습은 지옥의 사신과도 같았다. 공포에 물든 눈으로도 기계적으로 달려들고 있는 흑의인들은 더 이상 진호 형제에게 위협이 되지 못하였다. 일방적인 도살이 진행되었다.
진성은 무당파의 신임 장문인이 된 명진의 제자답게 침착한 표정으로 달려드는 상대들의 검을 밀어내거나 피하며 손목을 잘라 버렸다. 진성과 달리 진호는 몸과 도가 합일된 채 마치 춤을 추는 듯이 손목으로 원을 그리며 적들의 검을 튕겨 내었다가 끌어들였다. 그러면서 상하 좌우로 베어 버리고 때로는 목과 심장을 뚫어 버렸다. 진호의 거침없이 나아가는 부드러운 동작들의 연결은 진호가 어릴 때 늘 연습하던 그것과 닮아 있었다. 그것은 바로 태극혼원무였다.
진호는 흑의인들을 상대로 태극혼원무를 연습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일각도 채 지나지 않아 더 이상 서 있는 흑의인은 아무도 없었다. 진성이 사정을 두어 손목만 잘라 내었던 흑의인들도 모두 자결해 버렸고 진성만이 한쪽에서 익숙하지 않은 피비린내의 역한 냄새 탓인지 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괜찮아?”
진호가 진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
진성이 몸을 세우며 입가를 닦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빨리 집으로 가 보자!”
진호가 진성을 재촉하며 몸을 돌렸다. 순간 진호의 눈이 번뜩거렸다.
송림에 몸을 숨긴 채 숨죽이며 진호 형제와 흑의인들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던 삼(三) 자가 새겨진 두건을 뒤집어쓴 흑의인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손쉽게 끝나리라는 처음의 예상과 달리 제거 대상이었던 진호라는 자는 강해도 너무 강했다. 최근에 명성을 얻고 있다고는 들었으나 이제 이십 대 후반의 나이에 고작 풍운대 위사에 지나지 않는 자였다. 주인이 그러한 자에 관심을 가진 것 자체가 이상할 정도였다. 제거 명령을 받은 제삼대가 출발하자 느긋하게 구경이나 할 요량으로 뒤를 따라 송림에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압도적인 무위로 삼십 명에 달하는 제삼대 전체를 공포로 몰아가는 진호의 잔혹 무비한 솜씨를 보면서 온몸이 떨렸다. 자신의 주인과 그들은 진호라는 자에 대해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단순히 무공이 강한 애송이가 아니었다. 싸움에 임할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위를 훨씬 뛰어넘어 몇 배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혹독한 실전 경험을 가지고 있는 자였다. 오히려 등 뒤를 막고 있던 자가 방해가 된다는 느낌을 줄 정도였다. 만약 저자 혼자였다면 주인이 만금을 쏟아 부어 공들여 키운 삼십 명의 일 개 대가 몰살되는 시간이 더 빨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진호가 주는 공포감에 떨고 있는 흑의인의 동공이 갑자기 확대되며 그의 눈동자에 진호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진성과 함께 소하무관 쪽으로 몸을 돌리던 진호의 신형이 갑자기 몸을 돌려 송림을 향해 섬전같이 폭사되었다.
“유운섬!”
백사장에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 송림을 향해 번개가 무색할 정도의 빠르기로 날아가는 진호를 보고는 진성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외쳤다. 진호가 펼친 신법은 일전 무당산에서 수련을 할 당시에 어느 노사에게 들었던, 유운보가 극성에 이르면 펼치는 게 가능하다던 유운섬이었다. 단순히 빠르기만 따진다면 천하제일을 다툰다는 유운섬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제자들이 제운종을 익히는 과정으로 유운보를 익히기에 극성에 이르도록 수련하는 이가 없어 당대에서는 보기가 불가능하다는 바로 그 유운섬이었다.
퍼억!
송림의 흑의인이 놀라며 엉거주춤 몸을 세우는 순간 이미 다가온 진호의 주먹이 흑의인의 턱을 날려 버렸다. 부서진 이빨들과 함께 피분수를 뿜어낸 흑의인은 나가떨어질 수도 없었다. 어느새 진호의 왼손이 그의 목줄을 틀어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윽!”
다시 진호의 주먹이 흑의인의 배를 파고들었다. 이어 진호가 오른발로 흑의인의 왼쪽 정강이를 차서 부숴 버렸다. 흑의인은 극심한 고통에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진호는 오른손으로 흑의인의 왼 손목을 가볍게 틀어 부숴 버리고는 무릎으로 상대의 하복부를 찍어 버렸다. 진호가 목줄을 틀어쥔 왼손을 풀자 만신창이가 된 흑의인은 그 자리에 스르르 무너져서는 입으로 노란 진물을 게워 내고 있었다.
빠드득!
진호가 쓰러진 흑의인의 오른손을 밟아 손가락뼈를 자근자근 잘게 부수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뱉었다.
“말을 전하기에 그 정도만 남아 있으면 될 것이다. 가서 전하거라! 네놈들이 누구인지, 왜 나를 공격하는지 따윈 궁금하지 않다. 죽고 싶다면 언제든지 와라! 모조리 부숴 주마!”
말을 마친 진호는 몸을 돌려 송림 밖으로 걸어 나갔다. 뒤 늦게 따라온 진성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걸레처럼 구겨져 쓰러져 있는 흑의인과 진호를 번갈아 보다가 진호의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소하무관을 향해 나아가는 진호를 따라가며 진성은 진호의 넓은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호야! 도대체 너는 어떻게 살아온 것이냐?’
코흘리개 철부지 시절부터 무공에만 미쳐 살아온 동생이지만, 다른 아이들에게는 다소 무뚝뚝하긴 해도 자신에게는 가끔 어리광도 부리는 귀여운 동생이었다. 그러나 조금 전에 진호가 보여 준 모습에서는 형인 진성조차도 두려움이 느껴지고 있었다. 동생 진호는 군역을 가 있는 세월 동안 어떤 일들을 겪었던 것일까.
진호와 진성이 소하무관을 볼 수 있는 곳에 이르자 무관 앞에 장오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장오는 진호와 진성을 보고는 반갑게 손을 들었다. 아마도 소란한 소리에 경계를 하러 나온 모양이었다. 장오를 보고는 무관에 별고가 없음을 안 진호가 나아가는 속도를 늦추어 천천히 걷기 시작하였다. 진호의 뒤를 따라 진성도 걷기 시작하였다. 그제야 진성은 자신들의 옷에서 묻어 나오는 짙은 혈향을 맡고는 가볍게 인상을 찌푸렸다.
“형! 내가 처음 사람을 죽였을 때가 몇 살인 줄 알아?”
진호가 혼잣말을 하듯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묻고 있었다.
“…….”
“열다섯 살 때였어. 군역을 가서 훈련을 마치고 전투에 투입된 지 삼 개월 만이었지. 처음엔 나도 사람을 죽이는 게 겁이 나서 손목이나 다리만 잘랐어. 근데 한 번은 나한테 손목을 잘린 왜구 무사가 남은 한 손으로 발악하듯이 도를 휘두르니 내 옆의 친구가 목이 반쯤 잘려 나가 버렸어. 집이 산서성 태원인 허진석이라는, 군역에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는데 결국 죽고 말았지. 그래서 난 그 다음부턴 두 손목을 다 잘라 버렸지. 그랬더니 어느 날 나한테 두 손을 잘린 닌자라는 왜구의 첩자가 입에서 독침을 뱉어 내기에 급하게 쳐 내었더니 내 옆에 선 동료의 눈에 꽂혀 버렸어. 덕분에 정만 형은 애꾸가 되었지. 그래서 난 말이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 그때부터 죽여야 할 놈들은 반드시 죽여 버렸어. 물론 가끔 자비를 베풀 때가 있긴 하지. 내가 베푸는 자비는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인식하기도 전에 죽여 버리는 것이야. 고통 없이 단칼에……. 그게 내가 베풀어 줄 수 있는 최대의 자비지. 뭐, 그렇다고 나라고 해서 사람을 죽이는 게 즐거운 것은 아니니까 오해는 마. 나 또한 죽음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그래도 벨 놈은 베야지.”
진호의 긴 독백을 말없이 듣고 있는 사이 진성과 진호는 무관 앞에 다다르고 있었다.
“도대체 뭔 일이냐?”
장오가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는 진호의 장포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물었다.
“뭐, 그냥 피 좀 봤다.”
“혹시 그 화소도의 살수 놈들 아니냐?”
“아니, 살수들의 칼은 아니었다. 어느 집단의 무사들 같았는데……. 곰탱이, 이거나 알아봐라!”
진호가 장오에게 옥패 하나를 던지며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을 하였다. 진호가 던진 옥패를 손에 받아 들고 자세히 살펴보던 장오의 눈이 잠시 반짝거렸다.
“이것만 가지고?”
“굳이 어디에서 온 놈들인지 알 필요까진 없을 거다. 그냥 오는 대로 다 죽여 버리지, 뭐.”
말을 마친 진호가 저만치 가고 있었다.
“끙! 무식한 놈…….”

***

“삼대 전원이 몰살당했다고?”
미녀의 섬섬옥수처럼 고운 손이 손에 든 서신을 와락 움켜쥐며 노기를 띤 목소리로 말을 뱉었다.
“예.”
두건에 일(一) 자를 새긴 흑의인이 부복을 한 채 어깨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주인의 노기가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삼호는 어디 있나?”
잠시 노기를 가라앉힌 주인이 물었다.
“저…… 삼호 역시 부상이 너무 심해 의당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삼호까지?”
“예. 뼈와 근육이 모조리 부서졌습니다.”
흑의인, 일호는 무심하게 말은 하고 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은은하게 떨림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고작 위사 한 놈한테 삼대 전원이 몰살당하고 삼호까지 병신이 되었단 말이지. 놈! 제법 한 수가 있다는 건가?”
주인이 단상의 손잡이를 톡톡 치며 혼잣말로 물었다.
“그게…… 혼자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혼자가 아니었다?”
주인이 일호의 말을 따라 하며 되물었다.
“그자의 형인 유운일검이 함께 있었던 모양입니다.”
“유운일검?”
들어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별호였다.
“예. 삼대가 몰살당한 지점인 소하촌에서 소하무관을 하고 있는 자입니다.”
“일개 무관주에 지나지 않는 자가 변수였다고?”
“그게…… 무관주에 지나지 않지만 무당의 신임 장문인인 명진의 제자라고 합니다.”
“명진의 제자가 왜 촌구석에 처박혀 무관 따위를 하는 거지?”
“…….”
“그렇군! 유운일검! 바로 그 유운일검이군. 그자와 그놈이 형제였던가?”
주인은 곧 유운일검이라는 별호의 주인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한때 세간의 이목을 잠시 끌었던 자였다.
“그렇습니다. 그들의 죽은 아비가 무당 속가제자였다고 합니다.”
일호는 미리 조사를 했는지 즉시 대답을 하였다.
“현무라……. 운이 좋군! 그 형제 놈들을 일단은 살려 두지. 아직은 현무를 건드릴 때가 아니니…….”
우드드득!
주인이 주먹을 가볍게 말아 쥐자 뼈마디 끊기는 소리가 났다.
“그게 좋으실 듯…….”
일호가 다시 한 번 머릴 조아리며 대답을 하였다.
팡!
“커억!”
일호는 주인이 뿌린 격공장에 맞고 이 장 가까이 피를 뿜으며 나가떨어졌다.
“건방져졌구나! 감히 네 따위가 나에게 조언을 해?”
주인이 노기 띤 목소리로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죽을죄를 졌습니다.”
황급하게 몸을 일으킨 일호가 부복하며 이마를 땅에 찧고는 용서를 빌었다.
“내가 다녀올 동안 놈의 행동을 주시하도록!”
“존명!”
“현무라 이거지…….”
주인은 여자보다 더 고운 섬섬옥수를 들어 깎은 듯이 매끄러운 자신의 턱 선을 만지작거리며 깊은 생각에 빠져 들어갔다.


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