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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랩퍼1권



트랩퍼1권(1화)
1. 사이비 승천(1)


강철호는 노란색의 약을 먹으며 이것도 약이라고 쓴맛이 난다고 생각했다.
‘지난번의 빨간색 약은 그래도 약간은 달콤한 맛이 났는데 이번 약은 맛도 쓰고 심장이 빨리 뛰게 만들어 잠도 못 자게 하네.’
강철호는 군 제대 후 신약의 임상 실험에 참가해 학비를 벌고 있었다.
한국은 많은 자본과 시간이 필요한 신약 개발을 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최근 특허가 만료된 약의 복제인 제너릭과 바이오시밀러가 미래 사업으로 각광을 받으며 임상 실험 시장도 넓어졌다.
신약 개발이 많지 않을 때는 교수의 인맥을 통해 학생들을 모아 실험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실험도 많아지고 위험한 약을 검증할 필요가 생기자 백수들도 기회를 얻었다.
임상 실험은 몸을 버릴 수도 있지만 튼튼한 몸만 필요하다는 점에서 백수들이 꿈꾸는 직업이었다.
강철호도 학교 선배의 인맥을 활용해 임상 실험에 끼어들어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약의 부작용이 걱정되었지만 복학하기 위한 준비로 책을 보며 돈을 벌 수 있어서 좋은 알바였다.
“저 이 약 먹고 계속 가슴이 빠르게 뛰어 잠을 못 잤는데 이게 약효입니까 부작용입니까?”
“실험에 영향을 미칠 어떤 정보도 밝힐 수 없습니다. 증상은 보고 드리겠습니다.”
“이거 아름다운 최 간호사님을 생각해 심장이 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강철호는 아직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자만 봐도 떨렸다. 게다가 예쁜 간호사가 곁에 있으니 자신도 모르게 작업을 걸었다.
그러나 약을 나누어 주고 상태를 기록하는 간호사는 사무적으로 대했다.
‘이거 이제 내 청춘은 끝이고 연애도 끝인가? 버스에 타면서 들었던 군인 아저씨 소리가 아직 귀에 아른거리는데 돈 받으면 유행하는 옷이라도 사야겠다.’
아직 청춘이라고 생각하는 강철호지만 어린 여학생들로부터 들었던 군인 아저씨 소리는 계속 트라우마로 남았다.
강철호는 고생스런 졸병 생활과 부모님이 돌아가시며 겪은 마음고생으로 망가진 피부 탓을 하며 연애를 꿈꿨다.
제대를 한 강철호는 가까운 친척도 없는 상황에서 나름대로 인생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복학 전에 임상 실험에 참가해 돈도 벌고 장학금도 받으려 굳은 머리를 굴려 책을 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강철호는 병실에 같이 있는 사람들과 사회 돌아가는 이야기도 하고 책도 보며 천천히 민간인으로 변해 갔다.
그리고 실험약도 꼬박꼬박 먹는 사이에 임상 실험이 끝나게 되었다.
그런데 친해진 사람들과 뒤풀이를 하려 짐을 챙기던 강철호는 의사의 호출을 받았다.
강철호는 자신에게만 뭔가 부작용이 있는지 걱정하며 간호사를 따라 진료실로 들어갔다.
“강철호 씨, 뭔가 운동이라도 하시는 것 있습니까? 실험약이 심혈관 확장 효력이 있는 약인데 강철호 씨는 다른 분보다 약효가 약하게 반응합니다. 보통 저혈압이나 심장에 문제가 있는 분이 이런 반응이 나오는데 강철호 씨야 건강하지 않습니까?”
“뭐, 한국 남자 중에 태권도나 무술 한번 배워 보지 않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제가 군에서 제대한 지 얼마 안 되어 규칙적인 생활로 튼튼한가 봅니다.”
“요즘 웰빙이나 헬스 붐이 있어 젊은 사람도 대부분 운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심장 반응은 질환이 아니라면 단전 호흡이나 명상을 하는 사람에게서 가끔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신약 실험 데이터를 위해 확실히 밝혀야 하니 수련하신 것 있으시면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강철호는 학생 때부터 최근 전승자가 산에서 내려와 퍼진 전통무도를 깊게 수련했었다.
강철호는 의사의 추궁이 있자 돈값은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냥 단전 호흡을 했다고 얼버무렸다.
‘요즘은 이런 수련도 약효에 영향을 미치는 건가.’
강철호는 의사와의 면담을 마치고 뒤풀이에 참가하려 했다.
“명상이나 단전 호흡 등을 깊게 수련한 사람을 대상으로 특별한 임상 실험을 하는 곳을 알고 있는데 참여할 의향이 있습니까? 밝힐 수는 없지만 유명 제약회사에서 장수 연구를 하는 곳입니다. 비밀유지 서약서를 쓰고 한 달 정도 숙식하며 지내면 이런 실험참가 보수의 3배를 주는 곳입니다.”
의사의 갑작스러운 소개에 강철호는 현대인이 항상 가져야 하는 의심이 조금은 생겼다.
그러나 의사와 제약회사라는 간판으로 의심을 지우고 보수가 3배라는 사실만을 주목했다.
“지금 결정해야 됩니까?”
“지금도 실험을 진행하고 있어 더 늦기 전에 참가해야 합니다. 비밀유지 문제가 있어 주변에 자세한 사정을 말하면 안 되고 참가 후에도 비밀을 지켜야 합니다.”
강철호는 왠지 사기꾼이 많이 쓰는 대사같이 느껴졌지만 역시 간판의 신뢰감과 비밀유지 각서라는 말에 큰 의심을 하지 못했다.
“젊었을 때 편히 책 보며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많겠습니까? 소개해 주시면 지금 바로 참가하겠습니다.”
이번의 임상 실험을 하며 어려운 전공 서적을 독파한 강철호는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는 자리를 거절할 수 없었다.
‘돈도 3배에 강제로 공부할 수밖에 없는 환경인데 이번에는 토익이라도 한번 읽어 봐야지.’

의사는 연락을 하며 비밀유지 각서를 강철호에게 건네주었다.
“이것을 읽어 보시고 서명해 주십시오. 그리고 한 달 동안 외부와 차단되니 미리 연락을 해 두십시오.”
의사는 미리 연락을 하도록 말해 주었지만 강철호는 아예 연락할 곳이 없었다. 강철호는 새삼 천애고아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차량이 올 동안 강철호는 서류를 보다가 차량이 왔다는 소리에 서명을 하고 따라나섰다.
강철호를 데려오기 위해 온 기사는 보안요원 분위기를 풍기며 조용히 운전해 시외의 공장 같은 장소로 차를 몰았다.
담으로 둘러싸인 정문을 지나자 연구소 같은 건물과 공장, 기숙사같이 보이는 여러 건물들이 있었다.
강철호는 연구소로 보이는 건물로 들어가 몇 개의 철문을 지났다.
아무리 수련을 해서 담이 큰 강철호도 낯선 곳으로 안내되어 몇 개의 철문까지 통과하자 겁이 났다.
강철호는 영화나 소설에서 인신매매하거나 이상한 실험하는 장면이 생각났지만 요즘 세상에라는 말로 불안감을 억눌렀다.
그래도 고가의 장비들과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보이자 강철호는 약간 안심을 했다. 흰 가운을 입을 정도로 공부한 사람들이 불법적인 일에 관여할 까닭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강철호는 경비와 연구원이 안내하는 대로 숙소에 짐을 풀고 새롭게 신상명세를 작성했다.
“이곳은 불로제약에서 동양의학을 활용해 장수 연구를 하는 연구소입니다. 단전 호흡이나 전통무예 등을 깊이 수련한 사람들의 생리 작용을 연구해 장수와 면역력 증대를 위한 신약 개발을 목적으로 합니다. 보통 수련 정도를 미리 살펴보고 계약을 하지만 강철호 씨는 소개가 있으니 바로 계약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신상과 어떤 것을 얼마나 수련했는지 자세히 적어 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한 달 정도 강철호 씨의 신체를 검사해 결과를 보고 기간 연장을 협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최 연구원이라는 사람은 기업과 연구 목적을 소개하고 강철호의 신상과 수련 정도를 자세히 적어 줄 것을 요구했다.
‘젊어서 쓸데없이 수련한 것을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요즘에는 태권도를 배워 도장을 내지 않는 한 무예를 수련하는 것보다는 근육 키우는 헬스가 훨씬 도움이 되는 편이었다.
괜히 운동 좀 했다가 주먹 잘못 써서 호적에 빨간 줄 가는 수도 있고 여자들도 운동을 했다고 하면 싫어하는 경우도 많았다.
최근에는 자상한 성격에 근육질의 몸을 미디어에서 띄우고 있었다.
전통무예는 사회생활이나 연애 생활에 도움이 되지가 않았다.
강철호가 인연이 되어 전통무예를 수련했지만 요즘은 그 시간에 태권도를 배웠다면 3단 이상을 땄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3단 이상이면 도장에서 가르칠 수도 있고 외국의 도장에서 영어도 배우며 숙식을 해결할 수도 있겠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 창천문에서 배우셨군요. 전승이 잘 이어지는 무예로 제대로 수련하신 분들은 기를 다룬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최 연구원이 강철호의 서류에서 전통무예와 수련 기간을 살펴보며 아는 체를 했다.
“그냥 젊어서 조금 배웠습니다. 저도 약간 기운을 느끼기는 하지만 정말 제 수준으로도 연구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창천문은 아직 전통대로 기초만 몇 년 수련하고 있지 않습니까? 겉으로 티가 안 나서 그렇지 단전 호흡을 10년 넘게 해 놓고 어설픈 것보단, 몇 년이라도 제대로 수련한 것이 더 좋습니다. 자질이나 수련 집중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땀을 흘린 만큼 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강철호는 겨우 기초 정도만 배워 멋진 발차기와 같은 시범을 보일 수도 없어 평소 수련했다는 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 연구원은 이런 분야에 대해 잘 아는지 기초 수련에 대해 긍정적인 대답을 해 줬다.
“어차피 몸의 기초가 있어야 기 수련도 깊게 할 수 있는 법입니다. 강철호 씨가 수련한 것이 티가 안 나도 그릇은 넓어진 상태이고 경맥도 조금씩 열리고 단전도 충실해 운기의 기초가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최 연구원은 기초가 중요하다는 말을 하며 강철호를 띄워 주었다.
“우선 여러 검사를 해서 강철호 씨의 기초 신체 상태를 살펴보겠습니다.”
한 건물을 통째로 쓰는 연구소는 위층에 여러 검사실과 연구실이 있었고 몇 개의 병실 겸 숙소도 있었다.
강철호는 며칠간 각종 검사를 받게 되었다. 강철호는 자신 이외의 사람은 없냐고 물었지만 다른 층에 몇 명 있다는 소리만 들었다.
강철호는 며칠간 여러 곳을 돌아보며 경비와 연구실의 배치로 보아 지하에서 핵심 연구와 실험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역시 보안을 위해 지하에서 중요한 실험을 하나? 다른 사람들은 지하에 있겠군.’
강철호는 다른 실험 참가자가 궁금했지만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지하를 살피는 일은 하지 않았다.
기초 검사를 마친 후에는 열영상 카메라를 켜 놓고 수련을 시켰다.
강철호는 수련 장면을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창피하고 꺼리는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기초를 본다고 비전을 훔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오랜만에 수련에 들어갔다.
강철호는 산에 들어가 수련할 때처럼 하루 종일 수련을 하며 여러 검사를 받았다.
강철호는 오랜만의 수련이 힘들었지만 한 달만 폐관 수련 한다고 생각하며 군에서와 같이 끝나는 날만 기다렸다.

연구소에 들어온 지 한 달이 되던 날에 강철호는 온몸이 묶인 상태에서 궁금했던 지하 연구실을 구경할 수 있었다.
강철호는 최 연구원이 준 약을 먹고 온몸이 묶인 상태에서 지하에서 깨어난 것이다.
‘내가 언제 잠들었지. 그리고 이거 묶여 있는데 어떻게 된 거지.’
강철호는 상황을 생각해 보았지만 아직 몽롱한 상태라 금방 현실을 깨달을 수 없었다.
“오, 깨어났군. 몇 시간 더 잠들어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 내외공의 기초가 튼튼하군. 나는 조 박사라고 하는데 앞으로 잘 부탁하네.”
강철호는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연구실 한 곳에 흰 가운을 입고 하얀 수염이 있는 연구원이 강철호의 바이탈과 여러 검사 결과를 살펴보고 있었다.
“저 또 무슨 검사를 하는 겁니까? 검사할 때 움직이지 않을 테니 이렇게 묶어 놓을 필요는 없습니다.”
“역시 지능에 상관없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사람을 쉽게 믿고 의심할 줄을 몰라. 늙은 사람들은 이런 처지에 놓이면 바로 상황을 알아차리던데 요즘 젊은이들은 현실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는 것 같아.”
몸이 묶여 있는데다 늙은 연구원의 불길한 말에 강철호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조 박사님, 요즘 세상에 이상한 실험 같은 것을 하지는 않겠죠. 저는 친구도 많고 여기 온 것을 아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리고 병원의 의사도 여기를 소개시켜 줬으니 어서 묶인 것을 풀어 주십시오.”
“우리가 신상 조사도 안 하고 이렇게 데려왔겠나? 가족도 없고 금방 제대해서 복학도 하지 않아 학교 친구들과 연락도 없었던 것을 알고 있네. 그리고 여기를 소개했던 의사야 당연히 우리 사람이니 마음 편하게 먹고 실험에 잘 협조해 주게. 그동안 젊고 수련을 했으면서 가족이 없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어. 노숙자나 데려와 실험해서 불만이 많았는데 오랜만에 제대로 데이터를 뽑아내겠어.”
조 박사는 이제 숨길 것도 없는지 냉정히 현실을 말해 주었다.
강철호는 조 박사가 인체 실험을 할 것을 확실히 말하자 입이 말라 갔다.
이렇게 자세히 말해 주는 것은 죽기 전에는 이 연구실을 나가지 못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 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