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타이탄 로드 1(25화)
chapter 8. 얻어 걸린 대박(5)
루인의 온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호흡마저 불안정해졌다.
“하아…… 하아…… 하아…….”
하르가 당황해서는 소리쳤다.
“루인! 왜 그러는 거야?”
하르는 아라사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야! 너 도대체 루인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라사는 하르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루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러고는 양팔로 루인의 몸을 끌어안았다.
루인의 모습은 아라사에게 익숙한 모습이었다. 첫 살인을 경험했을 때 종종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었다.
아라사 역시 처음 살인을 경험했을 때 루인 정도는 아니지만 겁에 질렸었다. 그때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아라사는 루인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넌 잘못하지 않았어. 그들은 너를 죽이려고 했고 너는 스스로를 방어했을 뿐이야.”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루인의 몸의 떨림이 차츰 줄어 갔다. 호흡 역시 안정되어 갔다.
루인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내가 정말 잘못하지 않았을까? 그들이 나쁘고 나를 죽이려 했다 해도, 내가 그들을 죽인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를 노리는 자라면 모조리 죽여 버린다 해도 올바른 일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어떤 핑계를 댄다고 해도 내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그건 명백히 나의 죄다. 어쩌면 나는 앞으로 무수히 많은 죄를 저질러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더 이상 지금처럼 도망치지는 않겠다. 그 대가는 스스로 치를 것이다.’
루인은 아라사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반박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말이 자신을 진정시켜 주기 위한 말임을 아는 까닭이다.
효과가 있는지 루인은 안정을 찾기도 했다. 어쩌면 그건 말이 아니라 아라사의 행동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루인은 안정을 찾자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를 깨달았다.
욕망에 찬 신체 접촉을 경험한 적은 있어도, 지금처럼 따뜻한 포옹은 처음이었다.
‘어머니에게 안겨 있는 것 같아.’
루인은 자신의 생각에 부끄러움을 느끼고는 얼굴을 확 붉혔다.
하르는 루인의 상태가 정상이 되자 순수하게 기뻐했다. 하지만 루인이 얼굴을 붉히는 모습을 보자 눈꼬리가 올라갔다. 무엇보다 루인을 꼭 안고 있는 아라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안으려 하면 항상 피했는데!’
하르가 뾰족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야! 언제까지 안고 있을 거야!”
하르의 고함에 아라사는 자신이 안고 있는 루인이 완전한 타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통 이렇게 안아 주는 것은 가족 간이나 동성친구 간에 하는 일이다. 젊은 남녀가 이렇게 할 경우는 그 둘이 연인일 경우다.
아라사는 화들짝 놀라며 얼굴을 붉혔다. 그러고는 얼른 안고 있던 팔을 풀고 거리를 벌렸다.
아라사가 다급하게 사과했다.
“미안하다. 괜한 참견을 한 거 같다.”
그사이 루인의 안색은 평소대로 돌아와 있었다. 성노예로 교육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루인은 남녀 사이의 일에 둔했다.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노예에게 필요한 것은 연애가 아니라 복종이니까.
루인은 담담한 태도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라사의 도움에 감사합니다. 당신 덕분에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습니다.”
루인은 시선을 돌려 하르를 보며 말했다.
“하르도 고마워. 덕분에 저들을 물리칠 수 있었어.”
“헤헤. 뭘.”
“그런데 하르. 네가 머무는 아공간, 넓이가 어느 정도 해?”
“넓이에 제한은 없어. 왜?”
“아공간으로 갈 때 혹시 다른 물건도 가지고 갈 수 있어? 저런 것들.”
루인은 하르실리온의 몸을 움직여 부서진 센티넬을 바라보았다.
“저 정도는 문제없지. 그런데 나보고 그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가 있으라고?”
“하르는 몸이 크니까 같이 다닐 수 없잖아. 미안, 하르. 대신 자주 부를게.”
하르가 뾰로통한 태도로 말했다.
“저번에도 자주 부른다고 하고선 4일 만에 불렀잖아.”
“하루에 한 번씩은 부를게. 약속.”
“치잇. 알았어. 저것들 가지고 가면 된다는 거지?”
“고마워, 하르. 그럼 일단 심퍼사이즈부터 해제할게.”
루인이 해제를 생각하는 순간, 루인의 몸은 하르실리온의 몸 바깥으로 나왔다. 그건 아라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루인은 센티넬의 안에 있는 기사의 시신을 끄집어냈다. 피 냄새가 왈칵 밀려와 루인의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래도 이 정도로 센티넬을 얻을 수 있다면 엄청난 이익이었다. 단장의 센티넬은 박살이 났지만 다른 두 기의 센티넬은 제법 멀쩡했다.
조금만 고치면 충분히 가동할 수 있을 상태였다.
루인은 하르실리온에게 부탁해 바닥에 구덩이를 팠다. 그러고는 시체 세 구를 그 구덩이에 집어넣고, 다시 하르실리온에게 부탁해 구덩이를 메워 버렸다.
작업이 끝난 후, 하르실리온의 머리 위로 검은 구멍이 생겨났다. 그 구멍은 크기가 커지더니 지름 5밀 정도의 커다란 원이 되었다. 그 원으로 하르실리온과 부서진 센티넬들이 빨려 들어갔다.
이윽고 검은 원은 다시 구멍으로 돌아갔다가 문자가 되었고, 루인의 가슴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라사는 그 광경을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았다. 당연했다. 공간 마법만 해도 경악할 지경인데 의지를 가진 나이트암이라니!
아라사는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루인에게 물어보았다.
“저기. 이건 도대체…….”
루인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비밀입니다.”
루인의 단호한 태도에 아라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루인, 넌 앞으로 어떻게 할 거지?”
“이 정도의 대형 사건을 터뜨렸으니 슈론토에 머물 수는 없겠죠. 렌토로 가 볼 생각입니다. 일단 중간에 신전이 있는 마을을 들러야겠군요. 제가 당신을 치료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응급처치. 제대로 신관에게 치료 받아야 할 테니까요.”
아라사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여기서 너와 헤어져야 할 것 같다.”
“무슨 말이죠? 현재 당신의 몸 상태로 혼자 여행하기는 힘듭니다.”
“내가 가야 할 곳은 레실이다. 너랑 정반대의 방향.”
레실이라면 루인이 킨델베르 숲에서 나와 처음 들렀던 마을이다. 슈론토에서의 거리는 일주일 정도. 그 정도라면 되돌아간다 해도 별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럼 레실까지 동행해 드릴게요.”
“거절한다. 너는 너의 목적지로 가라. 나는 혼자 레실로 가겠다.”
루인이 당황해서는 소리쳤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지금 당신 몸 상태로 레실까지 어떻게 혼자 가겠다는 겁니까? 지금 당신은 코쿤 한 마리만 만난다 해도…….”
“그만!”
루인의 말을 끊은 아라사는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나는 전사다. 그렇기에 너에게 기대는 것은 사양한다. 그것이 바로 나의 긍지. 날 더 이상 비참하게 만들지 마라.”
루인이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로 물었다.
“긍지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당신의 목숨보다 더?”
“그렇다.”
“당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인데.”
“너에겐 없는가? 너의 목숨보다 소중한 무언가가?”
“당연히…….”
루인은 대답할 수 없었다. 생각해 보면 루인이 하려는 일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기득권자들은 루인의 존재를 못마땅해하고 지워 버리려 할 것이다. 자살이나 마찬가지의 일이다.
결국 루인 역시 아라사와 마찬가지. 루인은 더 이상 아라사를 설득할 수 없었다.
아라사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너의 도움에 감사한다. 지금은 사정이 있어 떠나지만 반드시 널 찾아가서 지금의 은혜를 갚겠다. 그리고.”
쐐액!
아라사의 옆구리에는 어느새 검 두 자루가 걸려 있었다. 슈론토의 기사들이 쓰던 검이었다. 그 검 중 한 자루가 섬뜩한 소리와 함께 뽑혀 나왔다.
그 속도는 너무나 빨라서 루인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검이 멈춘 후에야 루인은 자신의 바로 앞에 검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아라사는 뽑았던 검을 다시 검집에 넣으며 말했다.
“난 결코 약하지 않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럼 다음에 보자.”
아라사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려 걸어갔다.
루인은 아라사를 잡고 싶었다. 하지만 걸어가는 그녀의 등에 서린 단호함이 루인의 행동을 가로막았다.
길포드 용병대와 헤어졌을 때처럼 가슴 한 켠이 아려 왔다. 루인은 한참 동안이나 아라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렌토가 있는 북쪽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아라사와 헤어지고 반나절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이별의 심란함도 어느 정도 가라앉은 상태. 루인은 생각했던 일을 하기 위해 하르실리온을 불렀다.
나타난 하르실리온은 기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루인! 정말 빨리 불렀네.”
루인은 하르실리온의 반가운 태도에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며 말했다.
“반가워, 하르. 그런데 미안해서 어쩌지? 지금 부른 건 사실 네가 가져간 센티넬 때문이야.”
“칫, 그러면 그렇지. 다 꺼내 줘?”
“아니. 그중에 제일 많이 부서진 것만 꺼내 줘.”
“그건 뭐 하게?”
“실험해 볼 게 있어서. 그러려면 멀쩡한 것보다는 부서진 게 낫겠지.”
“알았어.”
하르실리온의 머리 위로 검은 공간이 열리고 그 속에서 한때 센티넬이었던 금속 덩어리가 떨어져 내렸다. 기사단장이 탑승했던 센티넬이었다.
루인은 센티넬의 기사석에 앉은 다음 바닥에 손바닥을 대었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의지를 집중했다.
‘역시 느껴지는구나.’
루인은 기사석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센티넬의 핵심 부품, 컨트롤 코어를 감지할 수 있었다.
루인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컨트롤 코어의 재료가 바로 에테르기움이었기 때문이다.
나이트암이나 센티넬이나 컨트롤 코어는 모두 A급 에테르기움으로 만들어진다. 에테르기움을 그냥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규칙대로 부수어 정교한 방위에 위치시켜서 만든다.
루인은 노예로 생활할 때 컨트롤 코어를 본 적이 있었다. 사용 중인 컨트롤 코어가 아니라 폐컨트롤 코어였는데, 루인을 샀던 주인이 스스로를 자랑하기 위해 보여 주었던 것이다.
루인은 그때 컨트롤 코어를 보며 그 어떤 보석보다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하르실리온을 만났다. 의지로 마나를 다루고 에테르기움을 강화시키고, 에테르기움을 느낄 수도 있게 되었다.
루인은 하르실리온에 존재하는 에테르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컨트롤 코어가 아니라 에고 코어라고 했다.
그 형상은 예전에 보았던 컨트롤 코어와 놀랍도록 비슷했다.
물론 컨트롤 코어에 비하면 하르실리온의 에고 코어는 훨씬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전체적인 모습은 비슷했다.
루인은 다른 차원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중에는 에테르기움에 관한 지식도 많았다. 그 지식으로 볼 때도 에고 코어는 놀랍도록 정교하고 조화로웠다.
반면 컨트롤 코어는 지극히 조잡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너무 조잡하기에, 루인의 실력으로도 조금은 개선의 가능성이 존재했다.
루인은 의지로 마나를 움직였다. 대기의 마나를 모아 센티넬의 컨트롤 코어에 밀어 넣었다. 마나가 컨트롤 코어의 배열에 따라 움직이려 했다.
루인은 다시 의지를 움직였다. 마나의 움직임이 컨트롤 코어의 배열이 아니라 루인의 의지를 따라 흘렀다.
그 차이는 실상은 그리 크지 않았다. 흐름 자체는 컨트롤 코어의 배열과 거의 일치했다. 단지 컨트롤 코어의 배열이 울퉁불퉁한 시골 길이라면 루인의 의지는 그 시골 길을 곧고 탄탄하게 포장했을 뿐이다.
마나의 움직임이 훨씬 자연스럽고 빨라졌다. 그러다 한순간 컨트롤 코어에서 빛이 뿜어졌다.
루인이 한 것은 컨트롤 코어의 성능 개량.
루인이 자신의 힘을 기를 방법으로 처음부터 생각했던 것이 바로 이 컨트롤 코어의 성능 개량이었다.
컨트롤 코어가 좀 더 좋아진다면 그만큼 나이트암은 기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것이다. 눈으로 보기에는 그 차이가 크지 않겠지만 실제 전투에는 어마어마한 결과를 가져오리라.
하지만 루인은 확신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실제 컨트롤 코어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센티넬과 전투를 벌였고 그것들을 가질 수 있었다. 센티넬이나 나이트암이나 컨트롤 코어는 그리 차이 나지 않는다.
실패할 것 같아서 가장 많이 부서진 센티넬로 실험했고, 그 실험은 성공이었다.
처음 나이트암을 얻는 것은 힘들겠지만, 나이트암이 생긴 이후에 루인의 힘은 비약적으로 강해질 것이다.
루인은 자신의 꿈에 한 걸음 다가섰다는 생각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었다.
그런데.
[누구지? 너는 누구지? 나는 누구지?]
부서진 센티넬에서 남자의 것으로 짐작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타이탄 로드』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