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레벨업1 -
레벨업 시작!




레벨업1(1화)
제1장 레벨 1(1)


지금부터 똑바로 들어.
내 이름은 J. S.다.
일단 나이는 19세로 지금은 폴커 왕국의 크렌도스 성의 1년차 견습 병사로 일하고 있다. 두 달만 있으면 승진이야. 좋아하는 건 책과 튤립 꽃, 예쁜 여자. 싫어하는 건 동방인하고 찬바람 맞는 거지. 공립학사를 나와서 지금은 미래의 천인장을 목표로 살아가고 있어. 천인장이 되면 또 만인장이 되길 원하겠지만 그건 그때 얘기.
여하튼 나에 대해서는 이 정도만 알면 충분해.
안 그래?
솔직히 내 이야기를 듣는 네 녀석은, 나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을 거 같거든. 니놈이 폴커 왕국이 뭔지 크렌도스 성이 알 게 뭐야? 지금 너한테 중요한 건……
중요한 건……
에, 뭐시냐.
방금 전 니가 레벨업(Level up)이랬지.
맞지? 난 잘못 들은 적 없어.

사건의 발단은 어제 근무할 때였지.
난 경비병이라서 3교대로 근무하지. 교대 근무로 어제 야근하면서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2년차 선배인 셀로 형하고 체스를 두고 있는데, 형 머리 위에 떡하니 글자가 띄워져 있었어. 눈앞에 글씨가 덧씌워진 것 같지 뭐야.
Level 6.
아, 뭐야…….
레벨 6이라니 뭐하자는 거야? 살짝 황당하잖아.
이게 무슨 눈병도 아니고.
여하튼 뚫어지게 바라보니까 뭐가 계속 뜨더라고.

직업 : 병사
장비 : 롱소드
가죽 갑옷
기술 : 강베기

……뭐 이 정도까진 그러려니 하겠는데,

HP 120
MP 0

이봐…… 작작 하시지.
뭔 알 수도 없는 소리를 씨부렁씨부렁.
사람을 황당하게 하길래 굳어 버리고 말았지.
“뭐 하냐, JS. 퀸 옮겼잖아. 빨리 안 두냐?”
“잠깐만요.”
의자에서 일어서서 거울 앞으로 가 봤지.
그리고 헛웃음을 지었다고.
내 머리 위에 떡하니 떠 있는 글자…….

Level 1

그 외에도 이것저것 보이던데 잘 모르겠다.
뭔 알 수 없는 소리를 그렇게 많이 써 둔 건지…….
……그날 체스는 지고 교대 근무는 힘들고 춥고 짜증났다.
자기 전에 다시 거울을 보니까 HP가 줄어 있다.
추워서 HP가 줄었나 본데. HP란 건 생명력이나 체력인가 보지?
에라이, 젠장.
그래, 레벨이란 게 생겼다 치자.
왠지 나한테만 보이는 건 그렇다 치자.
그럼 대체 어쩌란 건가.
그래서 뚫어져라 거울을 보고 있으니까 [도움말]이란 게 보이더라고. 도움말을 보니까 글자가 튀어나왔어. 이것저것 잔뜩 설명하는데…….
뭐, 뭔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간에 이 상황을 해결하려면 너한테 말을 걸어야 하는 것 같더라고.
어…… 그러니까 니 이름이 GM인가?
이름이 좀 특이하네.
어쨌든 이런 일은 별로 달갑지 않아.
얼른 내 시력을 정상으로 돌려 줘.
내일도 아침 일찍 근무를 나가야 한단 말이다.
……이봐, 들려?
야!
야! 안 들리냐!
말 씹지 말라고!
개X*@&#*…….

[뚝.]

……그리하여 나, J. S.는 본의 아니게 다른 성에 있는 병원에 가게 된다는 사소한 이야기. 병가 내서 갔다 와야 한다는 불쌍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GM 이 자식…….

* * *

나, J. S.는 솔직히 말하자면 약간 운이 좋다.
이를테면 폴커 왕국 최전방에 투입될 수도 있었는데 그냥 고향 땅에서 경비병 일을 하게 된 거라든지 부모님도 노예가 아니라서 걱정 없이 먹고 살고 있다던지 하는 것이다. 물론 나도 2년 정도는 공립학사에서 교육을 받아서 기본적인 글과 지식 정도는 안다는 것도 있다. 열심바지런하게 살아온 인생이랄까.
그래서인지 일상의 행복을 깨는 어떠한 것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성격이다. 지금까지 운 좋게 살아왔는데, 난데없이 생겨난 일 때문에 그 행복을 잃어버리는 일 따위는 생각도 하기 싫다. 누군들 좋겠냐마는.
크렌도스 성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는 라레인 시(市)다. 수도까지 가려면 돈과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일단은 그쪽에서 괜찮은 의사를 찾아볼 생각이다. 마구간에서 10골드를 주고 말을 빌려서 탔다.
마관 관사 츈이 채찍을 감아쥐며 말했다. 늘 술에 쩔어 사는 배불뚝이 아저씨지만 나랑 친해서, 가끔 공짜로 말도 타게 해 준다.
“J. S. 라레인에 예쁜 아가씨 하나 숨겨 뒀냐?”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 거 없거든요.”
마구간은 각 도시마다 4개씩 존재한다. 각 성과 도시의 동서남북에 크게 지어져 있으며 이곳에서 국가가 운영하는 마관사가 말을 임대해 준다. 원래 말이란 건 귀족의 전유물이었으나 성왕(聖王)이 개혁을 일으켜서 평민도 쓸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크렌도스 성에서 라레인 성으로 가면 그쪽의 마구간에 말을 반납하든가, 아니면 임대료를 추가 지불하고 계속 탈 수 있다. 관도도 뻥 뚫려 있어서 시간 걱정을 할 일은 없다. 마법이 발전하면서 교통도 크게 편리해졌지, 아마?
다그닥다그닥.
이놈의 말이 말을 잘 안 듣네. 오른쪽으로 가자고 몰았더니 왼쪽으로 걸어가서 하마터면 사람을 칠 뻔했잖아. 말갈기를 세게 잡아당기자 정신을 차렸다.
뭐, 귀족들은 이제 웬만해선 말 같은 걸 타고 다니지는 않는다.
그들은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해서 성에서 성으로 옮겨 다닌다. 횡으로만 1,200km에 이르는 거대한 왕국이 일일 생활권이 되어 있는 것이다. 난 마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텔레포트 마법진을 한 번 이용하는 데만 250골드나 든다.
10골드만 해도 나 같은 평민이 열흘 정도는 의식주를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다. 250골드라고 하면 금전 감각이 딸려서 잘 모르겠다. 아무튼 큰돈이다. 나는 수중에 있는 나머지 35골드를 꽉 움켜쥐며 생각했다.
‘얼른 치료받고 와야 돼. 왕복비로만 20골드라니. 안 그래도 월급이 짠데 이래서야 올해는 먹고살기 힘들겠어.’
푸르르르.
성질 급한 말이 콧김을 내뿜었다. 마법이 꽤 발전한 덕분에 말에게도 그 혜택이 부여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보통 말보다 더욱 강인한 체력과 힘을 지니게 되어서, 정식 종마교배가 이루어진 지 50년 만에 말의 평균 지구력은 세 배 가까이 향상되었다. 들리는 말로는 귀족이나 왕족이 몰고 다니는 말들은 마법저항도 있다고 하니까 할 말 다 했다.
“끙.”
나는 말을 타고 관도를 가다가 인상을 찡그렸다. 또냐? 또 이상한 글자가 계속 보이는 거냐.
사람들의 머리 위에 레벨이 떠 있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HP와 MP도 선명하게 떠 있었다. HP와 MP는 누구라고 해도 세 자리가 넘지 않았다.

“뭐야 또…….”

제레스
level 0 상인
HP 15
MP 0

골드만
level 3 뒷골목 주먹꾼
HP 35
MP 0

……같은 식이다.
대개 레벨이 0인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개중 레벨이 1∼3 정도 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싸움 좀 하게 생겼거나 마법학교에 다니는 귀족학생들이었다. 나는 그제야 레벨의 정의를 대충 알 수가 있었다.
확신이 생긴 것은 크렌도스 성을 담당하는 마스터가드(Master Guard)를 보았을 때였다. 경비병들을 통솔하는 에서론 자작님이다.
영웅이 있다면 이런 사람일까?
깎아지른 듯한 외모에 턱 선을 따라 기른 엷은 수염. 거기에 뚜렷한 이목구비에 마치 물결 같은 머리카락. 완벽하게 균형 잡혀 있는 몸은 누구나 감탄성을 터뜨릴 정도다.
“……응? 왜 그러나, J. S. 사람 얼굴을 왜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나.”
나이 35세에다 크렌도스 성의 모든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실무자. 10여 년 전에는 왕궁 무투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데다가 골든프릭스 용병단과 함께 대륙 동쪽 끝까지 가 봤다는 대단한 사람이다. 검술만으로는 왕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한다.
지금은 그냥 성주 아래에서 범죄자들을 잡아넣으며 소일하고 있는 분이지만 그것도 마스터시프 정도 되면 격이 다르지. 2년 전 대도 마스터시프를 쓰러뜨린 이래로 성의 모든 사람들이 에서론 자작님을 신뢰하고 있었다.

에서론
level 48
소더러 20
동방예검사 13
임페리얼 블레이드 15
HP 1,580
MP 246

“…….”
나는 입이 벌어져 버렸다.
어, 엄청나잖아?
레벨이란 건 인간의 강함을 측량하는 기준인가 보다. 내 레벨이 1이었으니까 에서론 자작님은 나보다 45배는 더 강하다는 뜻이겠지? 아, 아냐. 뭔가 차원이 다른 것 같다.
도무지 인간처럼 느껴지지가 않는다. 내가 얼어 있자 에서론 자작님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귀족 의식이 별로 없고 털털하신 분이라 나 같은 일반 병사들과도 친한 분이다.
“눈병 같은 건 빨리 치료하고 와라. 폴커 왕국엔 몬스터도 없으니까 거뜬할 거다.”
“네에…….”
나는 말굽에 박차를 가했다.
에서론 자작님의 말대로 우리 왕국엔 몬스터가 없다. 성왕이 왕위에 오르면서 제국군의 공습을 물리치고, 나아가서는 산재하던 몬스터 무리들을 모조리 박멸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드래곤들조차 성왕을 두려워해서 대륙의 북쪽 끝 하라빈타로 도망쳤다. 태평성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드래곤이나 몬스터는 삽화로밖에 보지 못했다. 그게 참 아쉬웠는데, 어른들은 미친 소리 하지 말라며 내 머리를 쥐어박곤 했다.
그때였다.
나는 귓가가 간지러운 느낌에 말을 멈췄다. 말이 앞으로 나가려다 제지를 받자 머리를 뒤흔든다.
‘어?!’
가만히 있는 내게, 왠지 모를 속삭임이 들려왔다. 여자 목소리 같기도 하고 남자 목소리 같기도 하다. 격철음처럼 감정 없다.
[Mode : Easy]
[Chronicle : On]
[Successor : On]
콰직!!
내 속에서 무언가가 변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나와는 다르다. 마치, 세포 하나하나가 불타오르면서 무언가를 열망하고 있다. 나는 혼돈스러움에 머리를 부여잡았지만 이미 변화는 끝나고 있었다.
눈앞에 기괴한 문자가 떠오른다.

구해 줘.
이누타브의 샘에서 동쪽으로…….

“……?”
이누타브?
나는 왜인지 모르지만, 그 알 수 없는 지형에서 친밀감을 느꼈다. 거기로 가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다기보다는 안 가면 후회할 것만 같다. 운명의 화살을 맞았다면 이런 느낌이리라!
자작님이 이상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자, 나는 급히 말했다. 박식하기로 유명한 에서론 자작님이라면 알지도 모른다.
“혹시 이누타브의 샘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의문의 속삭임이 동시에 들려온다.
나는 그때까지 몰랐다. 이 말 한마디로 인해, 내가 얼마나 길고 긴 여행을 하게 될 줄은…….
[분기(分期) 시작.]
“이누타브의 샘……!!”
말이 끝나자 에서론 자작님의 얼굴이 갑자기 급격하게 굳어졌다. 그러더니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는지 살펴본 뒤,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불신과 기대감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에서론 자작님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J. S. 잠깐 나와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네? 전 병원에…….”
에서론 자작님이 손을 내저었다.
“이런. 이누타브의 샘을 꺼낸 이상, 자네는 ‘그곳’에서 왔다는 뜻 아닌가? 나는 과거의 일에 대해 거리낄 게 없으니 자네도 정체를 숨길 필요는 없네.”
그 목소리에는 사람이 거부할 수 없게 하는 마력이 깃들어 있었다. 에서론 자작님은 무언가를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왠지 뻘쭘했다. 난 정말로 태어나서 특별한 일이라고는 겪어 본 적도 없는 평범한 경비병이다. 왕국 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대검호인 에서론 자작님이 이토록 진지하게 말하고 있으니 기가 죽는다.
터벅터벅.
나는 멍하니 에서론 자작님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에서론 자작님이 읊조렸다.
“10년이나 지난 일인데, 그들은 아직까지 잊지 않았다는 거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