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하룻밤 상대가 되어 드립니다
하룻밤 상대가 되어 드립니다 1화
1장. 딱 한 가지, 성격이 흠인 그를 만나다 (1)
오랜만에 들른 회원제 호스트 클럽, W의 현란한 간판을 한 번 봐 주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클럽 안으로 들어서며 시간을 보니 9시 반이 약간 지나 있었다.
‘1부는 다 돌아갔겠지?’
W는 게이 호스트 클럽으로, 오전반과 오후반을 나눠 오전에는 음료와 간단한 디저트를, 오후에는 술을 판다. 여기서 일하는 호스트들은 모두 외모가 뛰어나고 센스도 좋은 엄선된 사람들뿐이라서 그들과 얘기를 나눌 때면 괜히 위축이 되곤 했다. 나와는 사는 세상이 다를 것 같은 호스트들을 빠른 걸음으로 스쳐 지나가며 오늘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인 2부 캡을 찾았다.
“우영아, 제이가 가벼운 접촉 사고 때문에 오늘 만나기로 한 회원님에게 가지 못하게 돼서 그러는데, 이거 가지고 가서 직접 사과 좀 하고 와라. 전화로 미리 연락은 해 뒀어.”
“그냥 이거 드리고 사과만 하고 오면 되는 거예요?”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종이 가방을 조심스럽게 건네받았다.
“응, 내가 사정은 잘 이야기해 뒀으니까 제이가 왜 안 오냐는 소리는 하지 않을 거야. 그나저나 너 요즘 잘 먹고 다니는 거야? 좀 마른 거 같은데?”
내 어깨를 잡아 이리저리 돌리며 몸을 훑은 2부 캡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요즘 저 일하는 곳이 정신이 없어서요.”
오랜만에 보는 2부 캡의 모습은 여전히 화려해서 이렇게 마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호피 무늬의 부피가 큰 털옷이 2부 캡의 화려함에 화려함을 더해 주는 것 같다.
‘2부 캡 자체가 화려한 크리스마스 같아.’
“실습이면 돈도 얼마 안 될 텐데 그냥 여기서 일하라니까.”
“그건 좀 곤란해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은 경험을 많이 쌓으면 쌓을수록 좋거든요. 곧 크리스마스에 연말이라 바쁘실 텐데 거들지 못해서 죄송해요.”
실습 때문에 W일을 제대로 거들지 못하는데도 나를 챙겨 주는 2부 캡에게는 진심으로 죄송했다.
“죄송하기는. 여기 일이 바빠서 너한테 일하라는 거 아니라는 거 잘 알잖아. 여기서 일하면 웬만한 곳보다 수입이 괜찮잖아. 편하게 돈 좀 벌어 놓으라고 권하는 거야, 나는.”
2부 캡이 안내 데스크에 상체를 기대며 고양이 눈이 매력적인 얼굴을 내게 가깝게 들이대었다.
‘2부 캡의 매력 포인트는 고양이 같은 눈 밑에 있는 점인 거 같아. 보고 또 봐도 예쁘네.’
키가 크고 늘씬한 데다 얼굴까지 화려한 2부 캡의 모습에 이런 사람이 바로 선택받은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돈은 적지만 그래도 동경하던 일이라 좀 더 노력해 보고 싶어요.”
“에효, 늘 똑같은 대답이구나? 여전히 형도 찾으러 다니고?”
“……네.”
형 이야기에 기분이 급격하게 우울해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게이라는 걸 들킨 형은 집에서 쫓겨났다. 나는 그 뒤로 형이 있을 법한 곳을 찾으러 다녔지만, 아직까지도 형을 봤다는 소리조차 들어 볼 수 없었다.
“형 찾는 것도 좋지만 몸 생각해서 잠은 푹 자 둬. 그리고 여기서 정식으로 일하는 것도 한번 생각해 보고.”
“저는 그냥 대기조로 만족해요.”
대기조. 대기조는 W의 정식 호스트가 아닌 W의 스태프로, 이런 잔심부름을 하거나 일손이 부족한 곳에 투입되거나, 가끔 나 같은 외모와 몸을 찾는 회원님들의 지명이 있을 때 밤 상대를 하는 일을 했다. 호스트들 사이에선 심부름꾼으로 불리고 있는 듯했다.
“내가 보기엔 우영이도 충분히 호스트로 이름 올릴 만한데∼”
“그거야 캡이 절 좋게 봐주셔서 그런 거구요. 저는 호스트에 안 어울려요.”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외모를 가진 호스트들이 수두룩한 W에서 정식으로 호스트가 된다니, 아무리 무신경한 나라도 분명 다른 호스트들에게 위축이 될 게 빤했다.
‘그래도 오늘 같은 날은 지명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크리스마스가 성큼 다가와 온통 축제 분위기여서 그런지 다른 사람의 살결이 유난히 그립다. 눈치 빠른 2부 캡에게 쓸쓸한 표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표정을 관리했다.
“하여간 고집은……. 회원님에게 괜찮은 시간을 알려 주시면 당장 내일이라도 넘버 투라도 보낸다고 잘 이야기해 줘. 그리고 연말인데 이런 심부름을 시켜서 미안해.”
“아니에요. 오히려 전 고마운데요? 이런 알바라도 꼭 저 찾아 주시잖아요.”
“에이∼ 우리 사이에 너무 격식 차리지 말자고. 중요한 회원님이니깐 오늘 일 잘 부탁한다! 아, 얼굴 보고 너무 놀라지 마! 그래도 인마, 내가 오늘 너한테 크리스마스 선물 주는 산타 심정이라서 좋다! 정말 잘생긴 고객님이니까 얼굴이나 실컷 보고 와. 미리 크리스마스야∼”
싱긋 웃는 캡의 얼굴이 ‘정말 끝내주는 손님이야!’라고 말을 하는 것 같다. 표 나지 않게 감정이 붕∼ 떠오른다. 대체 얼마나 잘생긴 사람이길래 캡이 저렇게 들떠서 이야기하는 걸까?
“아! 우영아! 너 잘생긴 얼굴 밝히는 건 알지만 조심해라. 그 손님 무지 사납다.”
사납다고? 어디가 사나운 걸까? 그…… 밤일이 사나운 걸까? 아니면 사람 자체가? 그것도 아니라면 암흑가의 사람? 뭐, 나는 지금 사과 심부름으로 회원님의 얼굴만 보고 오면 되니까 잘생겼다면 그걸로 된 거다.
“네, 조심할게요. 그럼 가겠습니다.”
“응∼ 또 연락할게∼”
손을 들어 인사하는 2부 캡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W를 나섰다.
경찰이나 유단자를 보고도 피식 웃어 버리는 캡이 사납다고 말하다니……. 긴장으로 살짝 굳은 손으로 캡이 준 그 사람이 있다는 주소를 확인했다. 파라다이스 호텔 23층. 23이라는 숫자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만 같다.
‘난 고소공포증인데…….’
“하아, 그래도 일이니까, 말만 전해 주고도 십만 원을 받는 곳이 대체 어디 있겠어.”
한숨에 하얀 김이 뽀얗게 뱉어졌다. 입김이 생길 정도로 추운 날씨가 꼭 내 마음과 비슷한 것 같다.
“어? 우영이네? 일손 돕고 가는 거야?”
“아니요. 말 전해 주러 심부름 가는 길이에요.”
아무렇지 않은 척, 애써 무표정을 지으며 W 정식 호스트에게 인사했다.
“우웅∼ 오늘은 심부름 때문에 왔구나. 우영이도 얼른 호스트로 명단에 이름 올리면 좋을 텐데∼ 여기서 자리도 잡고, 님도 만나면 좋잖아∼”
“W의 정식 호스트가 되기엔 저는 너무 평범하잖아요. 전 학비 벌 정도면 돼요.”
키 178에 평범한 외모, 게다가 옷 스타일에 센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 꾸미는 거엔 더더욱 센스가 없다. 고르고 고른 회원만 받는 W의 정식 호스트가 되는 건 나 스스로가 자신이 없다.
지금도 나는 라운드 니트에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은 평범한 스타일로, 눈앞의 W 호스트와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경험할 수 있는 실습을 하면서도 학비 낼 정도로 돈을 벌 수만 있다면 되었다. 그러니까 W 스태프 겸, 대기조로 있는 것에 만족한다.
거기다 탑이라면 그나마 정식 호스트가 되어도 지명해 줄 사람이 있을 것 같은데, 이런 내가 바텀이라 정식 호스트가 되어도 대기조와 비슷한 수준으로 지명을 받을 게 빤하니 정식 호스트는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다.
“아∼ 아쉽다∼ 하긴 나도 간당간당하게 들어왔으니. 에이! 우영이는 착해서 좋은데∼”
착해서 좋다라……. 하룻밤을 근사하게 보내고 싶은 회원님들이 착하다고 지명을 해 줄까?
“전 별로 착하지 않아요. 저 심부름 때문에 이만 가 볼게요.”
“응∼ 나중에 또 봐∼ 안뇽∼”
말에 애교가 철철 넘치는 사람이다. 이곳에 와서 다섯 번쯤 본 사람. W의 호스트들의 입장에선 나 같은 건 아주 우스울 텐데도 어느 누구 하나 나를 멸시하는 사람이 없다. 모두 이렇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챙겨 준다. 그래서 난 더욱 W에선 호스트가 될 수 없다고 느낀다. W의 호스트들은 호스트가 천직인 사람들이라는 게 느껴지니까.
‘약속 시간이…… 11네.’
지금이 10시 좀 안 됐으니 버스를 타고 가도 11시 전엔 도착할 수 있을 거다. W에서 조금 떨어진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파라다이스 호텔에선 한참 떨어진 정류장에 내려서 느릿느릿 걸었다.
‘가만, 생활비가 이제 거의 바닥이지? 내일 어머니께 전화를 해 봐야 하나? 매월 보내 주시는 날에 용돈이 안 들어왔던데.’
“휴학하고 그냥 아르바이트나 할까?”
방학이긴 하지만 3학년 실습 기간인지라 월급이 짠 출판사에서 실습을 하고 있다. 월급이라고 해도 세끼 밥을 다 챙겨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는 받지 못해 괜히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형이 서울로 칵테일을 다루는 쇼 플레이어를 배우러 가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 어려운 생활임에도 서울살이를 포기할 수가 없다.
‘오늘 지명이 들어왔다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슬금슬금 자라난다. 그래도 십만 원 벌었으니 김밥이랑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 당분간은 살 수 있을 거다.
느릿느릿하게 걷길 10분쯤, 저 멀리 휘황찬란한 호텔이 눈에 들어왔다. 밤에 보니 더 예쁜 호텔이다. 생활고를 겪고 있어서 그런지 저길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이 부러워졌다.
화려한 장식과 전구들이 반짝거리며 연말을 알리고 있다. 만인의 축제 기간. 그런 축제의 틈에서 무표정을 짓고 있는 내가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별로 익숙하지 않지만 익숙한 듯 호텔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 나를 돌아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처음에 이 호텔 문을 열었을 땐 차림새가 평범해 호텔 측 경비원에게 잡힐까 봐 걱정했었다. 너무 낡은 복장이 아니고선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걸 알고는 얼마나 맥이 빠졌었는지…….
승강기에 올라 23층 버튼을 찾았다. 그러나 두세 번 훑어봐도 보이지 않는 23층 버튼.
결국 승강기에서 내려 안내 데스크로 갔다.
“저, 23층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결국 촌티를 내고 말았다. 호텔이라는 공간에 기가 죽어 목소리가 시원치 않게 나왔다.
“몇 호 가십니까?”
“2304호요.”
쪽지를 보며 호수를 알려 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라며 투숙자 명단을 확인했다.
“전화로 여쭤 보겠습니다.”
지금 만나러 가는 사람이 대단한 사람인가 보다, 승강기가 따로 설치되어 있는 방을 잡은 걸 보면 말이다. 발끝을 세워 바닥을 툭툭 쳤다. 왠지 저 직원들이 내가 밤일을 하러 다니는 걸 알 것만 같다. 고개를 푹 숙이고 발끝을 계속해서 툭툭 치고 있으니 직원이 승강기 하나를 가리키며 올라가 보란다. 쭈뼛쭈뼛 안내 받은 승강기를 타고 23층으로 올라갔다. 유리로 되어 있어 훤히 보이는 승강기 밖 풍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으려 애를 쓰며 23층 도착 소리가 들리자마자 후다닥 내렸다.
‘난 높은 곳은 딱 질색이라고.’
쪽지를 보며 방 호수를 확인했다. 쪽지의 숫자와 일치하는 방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벨을 누르는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오늘은 밤일을 하러 온 게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은 항상 긴장이 된다.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잘생겼을까? 몸이 좋을까? 혹은 얼굴을 알 정도로 유명인이 아닐까? 혹은 반대로 오늘 잘못 걸리진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었다.
안에서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은 것 같았는데 문이 스르륵 열렸다. 문을 연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지만 사과가 우선이라 2부 캡이 쥐어 준 종이 가방을 앞으로 내밀며 고개를 숙였다.
“W에서 왔습니다. 전화를 받으셨겠지만 회원님께서 찾으셨던 넘버 원 제이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90도 사과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기분이 나쁜지 인상을 잔뜩 쓰고 나를 내려다보는 남자의 익숙한 얼굴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최석진이다.
아이돌 가수 출신으로 지금은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최석진이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이래서 2부 캡이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하셨던 거구나.’
실제로 보니 더 잘생겨 보이는 최석진 씨의 모습에 그가 인상을 쓰며 나를 보든 말든 내 기분은 붕 뛰어올랐다.
‘캡한테 너무 고맙네.’
심부름을 마치고 나가면서 캡에게 연락을 해야겠다. 이런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을 미리 챙겨 줘서 너무 고맙다고. 이대로 보고 있다가는 넋을 놓을 것 같아 살짝 고개를 숙여 그에게서 시선을 뗐다.
“내일 괜찮으시다면 넘버 투 윤이를 보내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건 죄송하다는 뜻으로 W에서 드리는 작은 선물입니다.”
선물을 건네면서 다시 슬쩍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봤다.
‘넋을 놓고 보면 안 돼!’ 속으로 그렇게 외쳤지만 눈은 자꾸만 그의 얼굴을 훔쳐봤다. 분명 내 눈길에 그에게 안겨 봤으면 하는 끈적끈적한 감정이 담겨 있을 거다. 안 그래도 기대한 저녁을 망쳤는데, 나 같은 놈이 끈적끈적한 시선으로 본다면 분명 그의 심기는 더 뒤틀릴 게 빤하다.
그러나 어서 시선을 거둬야 하는데 좀처럼 볼 수 없는 잘생긴 얼굴이라 쉽사리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
턱 선이 예술이다. 얼굴이 제일 변하지 않은 아이돌 중의 한 사람. 아이돌은 나이를 먹으면 거의 아저씨처럼 얼굴이 커지고 턱 선이 뭉툭해지는데 이 사람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그저 얼굴에 늘어 가는 연륜의 흔적 말곤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얼마 전에 티브이에서 보기론 밝은 갈색 머리였는데 어느새 검은 머리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역시 검은 머리가 제일 잘 어울린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넋이 나간 정신을 다잡아 다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W 스태프? 하? 너 같은 게? W도 한물갔군! 너 같은 걸 호스트로 두다니 말이야!”
분명 기분이 나쁠 만한 말이지만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에 대수롭지 않게 흘려버렸다.
“W의 호스트는 아닙니다.”
대답을 하며 다시 본 최석진의 모습은 보고 또 봐도 정말 잘생긴 것 같다. 바람둥이 외쌍꺼풀이 참 매력적이다. 하지만 잘생긴 얼굴에 깃든 거만한 표정을 보니 그의 성격이 듣던 대로 싸가지가 참 많이 없는 것 같다. 소문으로 돌던 매니저 폭행 사건과 조폭이 뒤를 봐주고 있다는 이야기가 정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얼굴을 좀 더 보고 싶지만 이젠 발길을 돌려야 할 때다.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오늘 저희 W에서 실례가 많았습니다! 모쪼록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고 저희 W에 다시 연락 주십시오!”
사인이라도 받고 싶었지만 사인 이야기를 꺼낼 분위기가 아닌지라 그저 사과의 말만 줄줄 뱉어 냈다.
“나보고 좀처럼 오지 않는 황금 같은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라는 거야?”
이젠 가도 되겠지, 하며 슬쩍 걸음을 뒤로 물리려고 할 때 이를 가는 듯한 그의 목소리에 쉽게만 느껴졌던 오늘 심부름이 간단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저, 다른 곳의 호스트를 알아봐 드릴까요? 하지만 연말이라 다른 곳도 상황이 비슷할 것 같은데…….”
내 말에 더욱 구겨지는 최석진의 표정을 보니 많이 굶주려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연말이라 불러낼 수 있는 호스트가 없는 걸 어떡한단 말인가? 시간 많고 기꺼이 엉덩이를 내어 줄 수 있는 눈앞의 나로는 눈에 차지 않을 테니, 차마 나로도 괜찮겠냐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사과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내가 죄송할 건 없지만 그래도 W의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라 앵무새처럼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칫. 썩 내키지는 않지만, 너, 뒤 뚫렸어?”
탐탁지 않은 목소리지만 나는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두근거리고 말았다.
‘평범하디 평범한 내가 배우 최석진 씨와 관계를 가질 수도 있는 걸까?’
“그렇긴 하지만, 저는 호스트가 아니라서 회원님을 만족시켜 드릴 수가 없을 겁니다.”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나는 그가 만난 호스트들처럼 잠자리를 만족시킬 애교도 없고 그렇다고 잘난 얼굴을 하고 있지도 않다. 나는 그냥 뒤만 대 줄 수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섣불리 뒤를 대 줄 수 있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W로 돈 보낼 테니 받아 가.”
생각지도 못한 그의 말을 끝으로 뒷덜미가 잡혀 파라다이스 호텔에서도 최고급일 게 분명한 특실 안을 구경하게 되었다. 전용 승강기까지 있는 룸은 얼마나 좋을지 궁금해 둘러보는 순간 구역질이 날 것만 같은 엿 같은 상황에 처했다. 한쪽 벽이 온통 유리로 되어 있는 아주 무시무시한 풍경에 몸이 절로 굳고 식은땀이 등 뒤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침실로 가면 이 엿 같은 풍경을 보지 않아도 될 거라고 위로하며 긴장된 마음을 애써 진정시켰다.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조금만 참으면 괜찮을 거야.’
“씻어야 하나?”
“아닙니다.”
W로 호출을 받았을 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씻고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옷을 벗어 소파 위에 가지런히 두었다.
“흐음. 뭐, 몸은 그런대로 쓸 만하네.”
최석진 씨 자신이 나를 안기로 결정했으면서 여전히 탐탁지 않은 말투를 뱉는 그가 아주 조금 얄밉다. 말투는 탐탁지 않아도 많이 쌓인 모양인지 가운을 입은 그의 앞섬은 눈에 띄게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설마 풀어 주고 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크기가 크시면 풀어야 할 겁니다.”
크기가 얼마 정도 될까? 얼굴과 몸이 완벽하다 해도 거기가 작다면 게임 오버다. 타올랐던 두근거림이 푹, 하고 꺼져 버리고 말 거다.
“그럼 풀어야겠네. 내 건 다들 버거워하거든.”
그는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자랑스럽게 가운을 열고 당당하게 자신의 페니스를 내게 보였다.
꿀꺽하고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울렸다. 자랑스럽게 보일 만한 물건이다. 저렇게 모양 좋고 큰 걸 실물로 보는 건 난생 처음이었다.
“어서 풀어. 난 지금 얼른 해치우고 자고 싶은 마음뿐이니까.”
그는 턱짓을 하며 거만하게 명령을 내렸다. 역시나 풀어 주지 않는구나, 생각하고 룸 안을 둘러보며 적당한 곳을 찾았다.
“여기서 하는 겁니까?”
침실로 갈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의 말에 소파가 적당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아, 그래.”
퉁명스러운 대답에 상처 같은 건 받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윤활제와 콘돔에 살짝 난감해졌다. 나는 호스트들과 달리 윤활제도 콘돔도 소지하고 다니지 않았다. 옷을 올려놓은 소파에 한쪽 다리를 올리곤 퉤! 소리가 날 정도로 손바닥에 침을 뱉어 다리 사이를 비볐다. 추운 날씨에 차가워진 손가락이 애널에 닿으니 움찔움찔하며 입구를 닫아 버렸다.
“하아∼”
시린 손끝에 애널은 움츠러들었지만 오랜만의 감촉에 기분 좋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잔뜩 움츠러든 입구를 빠르게 넓혔다. 서두르느라 뒤가 아파 왔지만 최석진 씨의 그것을 받아들일 생각을 하면 이쯤은 참아 낼 수 있다. 다만, 그의 테크닉이 실한 물건만큼 나를 흥분시켜 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너무 오래 걸리잖아!”
그의 날카로운 외침에 서둘러 손가락 하나를 늘렸다.
“아, 흣! 이제 거의…… 악!”
신음이 아닌 비명을 지를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갑자기 나를 잡고 아직 풀리지 않은 애널에 멋대로 자기 페니스를 억지로 구겨 넣어 내 입에서 비명이 터지게 만들었다. 힘 있게 꾸역꾸역 들어온 실한 페니스는 자리를 잡는 듯 잠시 살짝살짝 움직이더니 곧 내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사정없이 내 안을 헤집으며 성을 냈다.
유두를 만지지도, 페니스를 만지지도 않았는데 찌르르거리는 전율이 몸속에서 피어났다. 입술이 꽉 깨물려지는, 미치도록 황홀한 상황이었다.
애널이 살짝 찢어진 듯 쓰라렸지만 오랜만의 섹스라 그런지, 최석진 씨의 물건이 실한 덕분인지, 아픔보다 흥분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가 흥분에 달뜬 내 엉덩이를 꽉 잡곤 허리를 힘 있게 움직여 찰싹찰싹 살 붙는 소리를 냈다.
찰싹찰싹, 쿨적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세차게 움직여 대는 그의 행위에 찌르르한 느낌이 점점 거세져 허리가 절로 움직일 정도로 흥분해 버렸다.
“아아! 흣, 거기! 거기 좀 더!”
결국 내 입에서 더 해 달라는 소릴 뱉어 냈다. 상대에게 내가 많이 굶주려 있다는 걸 알게 하는 거 같아 웬만하면 잘 쓰지 않은 말인데, 이렇게 흥분해 제정신이 아닐 때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튀어나오곤 했다. 나에 대한 배려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빨리 끝내고 싶지가 않다.
“얌전한 척 굴더니 뚫어 주니 사람이 변하는군.”
어쩔 수 없이 품은 내가 흥분에 젖어 있으니 괜히 아니꼬운 모양이다. 나는 대답하듯 엉덩이에 힘을 주었다.
왠지 최석진 씨가 곧 내 안에서 절정에 달할 것 같은 느낌이라 그가 자신의 실한 페니스를 빼내어 가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엉덩이를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도 뺄 거면 그 전에 내가 먼저 사정할 정도로 기분이 좋길 바라며 있는 힘껏 엉덩이를 흔들어 대고 있으니 나지막이 뒤에서 욕설이 들려왔다.
“씨발.”
내가 너무 힘을 준 것일까? 아니면 너무 못한 것일까? 그래도 섹스 중인 상대방에게 욕을 날리다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설에 쾌락을 좇아 열심히 움직이던 허리를 우뚝 세웠다.
“흣, 뭐야?!”
내 움직임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해 멈춘 허리 돌림에 이번엔 움직임을 멈췄다고 타박했다.
“움직이란 말입니까? 말라는 말입니까?”
“장난해?”
말라는 말인가? 그의 대답이 애매모호해서 제대로 뜻을 파악할 수가 없다. 소파에 걸친 한쪽 다리가 슬슬 저리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아쉽지만 내 뒤에 콱 박힌 최석진의 페니스를 빼낸 후 저린 다리를 소파에서 내리고 뒤를 돌아봤다.
미간에 주름이 잔뜩 잡힌 그의 얼굴을 보니 그가 아직도 내 애널을 원하긴 하나 보다 생각했다.
“자리 좀 옮기면 안 됩니까?”
도저히 다리가 아파서 안 되겠다. 최소한 소파에 손을 짚을 수 있도록 소파 등받이로만 이동할 수 있도록 해 주었으면 했다.
“자리? 좋지. 다른 놈들이 유독 여기를 좋아하더군.”
그가 또 내 뒷목을 잡아 자리를 이동시켰다. 점점 다가오는 밖의 풍경들. 그가 원하는 곳으로 걸음을 걷고 싶지 않았다.
‘제길, 토 쏠릴 것 같아! 나는 고소공포증이란 말이야!’
너무 깨끗한 유리라 손을 대면 그대로 아래로 추락할 것 같은 공포에 흥분으로 달떴던 몸이 순식간에 식어 버렸다.
‘당장…… 도망치고 싶어! 살려 줘!’
“손대. 하던 거 마저 해야지?”
최석진 씨의 명령에 두려워 굳어 버린 몸을 천천히 움직여 손을 뻗으면 통과할 것만 같은 아주 깨끗한 유리에 손을 대었다. 차가운 유리가 손바닥을 시리게 했다. 차가워진 손바닥만큼 마음도 고소공포증으로 싸해졌다. 무서움에 잔뜩 수축한 애널을 최석진 씨가 마구 헤집으며 자리를 잡았다.
“웃.”
내장이 한껏 쓸려 올라간 기분이 들어 이가 저절로 물렸다.
“빨리 끝내게 움직여.”
욕이 저절로 나올 것 같다. 이렇게 무서운 곳에 날 세워 놓고 그런 소릴 하다니. 두 눈을 질끈 감고 허리를 미친 듯이 흔들어 댔다. 아까까지는 내 여흥을 위해서. 지금은 이 지옥 같은 곳을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
“제길, 큭!”
또 최석진 씨의 입에서 낮은 욕설 뱉어졌다.
“흐읏, 앗! 응! 응!”
고소공포증으로 심장은 무서워 미치겠는데 어쩐지 뒤로는 좋아 미치겠다. 그가 흔들어 대던 내 엉덩이를 꽉 잡곤 마지막을 향해서 허릴 마구 움직였다. 고막을 자극할 정도로 굉장한 소리가 울렸다.
“읏! 욱!”
참으려고 해도 참아지지 않는 비명 같은 신음이 터졌지만 그는 그만둘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크흑!”
머리를 새하얗게 만들어 버리는 쾌락과 아픔이 지나고 속이 따뜻해지는 게 느껴졌다. 싸가지가 없는 건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지만 이 남자, 매너도 없다. 안에다 싸 버리다니.
“하아, 하아.”
격하게 숨을 몰아쉰 최석진 씨가 스르륵 자기 페니스를 빼냈다. 페니스가 빠져나가자 그것들도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번엔 내가 제길이라고 내뱉고 싶다. 많이 쌓인 것 같더니 참 많이도 쌌다.
“욕실 좀 쓰겠습니다.”
흘러내리는 그의 분신에 서둘러 욕실로 향했다. 샤워기를 잽싸게 잡고 물 온도를 맞춰 가랑이 사이로 분사시키며 안을 손가락으로 긁어 최대한 많은 정액을 빼냈다.
며칠간은 고생하겠다. 양이 너무 많아 한참을 긁어내도 안에 남아 있다. 그래도 어떠하리, 가까이서 봐도 흠 잡을 곳 하나 없는 천하의 최석진이랑 섹스 했는데 설사병이 걸려도 행복할 거다.
정액을 긁어내고 나오니 최석진 씨는 자러 들어간 모양인지 거실에선 찾아볼 수가 없다. 침실로 들어갈까 하다 숙면에 방해만 될 것 같아 옷을 주워 입고 조용히 룸을 나섰다.
“쪽지라도 남겨 놓을 걸 그랬나? 뭐, 신경도 안 쓸 테니 상관없나? 그나저나 최석진 씨가 게이였다니 놀랍네.”
정말 캡틴이 나에게 산타클로스가 되어 준 것 같다.
오늘은 최석진 씨를 만난 날. 아주 특별하고 기분 좋은 밤이 될 것 같다.
* * *
“먼저 가 보겠습니다.”
고개도 들지 않고 가 보라며 손을 휘휘 내젓는다. 출판사도 연말의 영향을 받는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 덕에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는 실습을 나오자마자 커피며 프린트 같은 잡일만 하고 있다. 나 또한 조금 늦은 시간에 퇴근하는 건데도, 피곤에 쩔어 있는 직원들의 모습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언제 졸업해서 언제 취업하지?’
앞으로 살아가는 데 대학교 졸업장은 꼭 필요할 것 같은 데다 취업하는 데 경험은 더더욱 필요할 것 같아서 출판사 실습을 하고 있는 거지만, 현실이 너무 팍팍해서 그런지, 힘이 들어서 그런지, 졸업을 한 후 출판사에서 일하는 내 모습이 지금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출판사를 나오자마자 온몸을 휘감는 냉기에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최석진 씨와 기적 같은 만남이 있고 이틀이 지났다. W에서 받은 삼십만이란 돈이 내가 최석진 씨에게 안겼다는 걸 증명할 뿐, 내가 최석진 씨를 만났다는 걸 입증할 수 있는 건 어디에도 없다.
“아, 최석진 씨에게 배탈을 선물 받았었지.”
배가 꾸르륵 하고 신호를 보낼 때면 최석진 씨가 살짝 얄밉지만, 콘돔을 소지하지 않은 내 탓이지 했다.
오늘은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L호텔로 향했다. 오랜만에 2차 일이 들어왔다. 때마침 배탈도 잦아들었고 타이밍이 딱 좋다. 그리고 더욱 좋은 건 나를 가끔씩 찾아 주는 회원 중 한 분이라 얼굴을 확인할 때까지 마음 졸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수입 및 수출 일을 하시는 분으로, 가끔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면 이렇게 종종 나를 찾아 주시곤 한다. 외모도 그럭저럭 준수한 편이고 몸도 잘 단련된 무술인 뺨칠 정도로 매우 좋다. 외모에서 까인 점수가 몸에서 만회되는 사람이랄까?
L호텔 801호. 고층을 싫어하는 나를 위해 최대한 저층으로 잡아 주는 배려까지 있는 아주 좋은 사람이다.
“다른 나라에 애인들이 많이 있겠지? 그럼 나는 한국 애인인가?”
내가 뱉은 애인이라는 말에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애인이라니 너무 거창하다.
하룻밤 상대가 되어 드립니다 1화
1장. 딱 한 가지, 성격이 흠인 그를 만나다 (1)
오랜만에 들른 회원제 호스트 클럽, W의 현란한 간판을 한 번 봐 주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클럽 안으로 들어서며 시간을 보니 9시 반이 약간 지나 있었다.
‘1부는 다 돌아갔겠지?’
W는 게이 호스트 클럽으로, 오전반과 오후반을 나눠 오전에는 음료와 간단한 디저트를, 오후에는 술을 판다. 여기서 일하는 호스트들은 모두 외모가 뛰어나고 센스도 좋은 엄선된 사람들뿐이라서 그들과 얘기를 나눌 때면 괜히 위축이 되곤 했다. 나와는 사는 세상이 다를 것 같은 호스트들을 빠른 걸음으로 스쳐 지나가며 오늘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인 2부 캡을 찾았다.
“우영아, 제이가 가벼운 접촉 사고 때문에 오늘 만나기로 한 회원님에게 가지 못하게 돼서 그러는데, 이거 가지고 가서 직접 사과 좀 하고 와라. 전화로 미리 연락은 해 뒀어.”
“그냥 이거 드리고 사과만 하고 오면 되는 거예요?”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종이 가방을 조심스럽게 건네받았다.
“응, 내가 사정은 잘 이야기해 뒀으니까 제이가 왜 안 오냐는 소리는 하지 않을 거야. 그나저나 너 요즘 잘 먹고 다니는 거야? 좀 마른 거 같은데?”
내 어깨를 잡아 이리저리 돌리며 몸을 훑은 2부 캡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요즘 저 일하는 곳이 정신이 없어서요.”
오랜만에 보는 2부 캡의 모습은 여전히 화려해서 이렇게 마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호피 무늬의 부피가 큰 털옷이 2부 캡의 화려함에 화려함을 더해 주는 것 같다.
‘2부 캡 자체가 화려한 크리스마스 같아.’
“실습이면 돈도 얼마 안 될 텐데 그냥 여기서 일하라니까.”
“그건 좀 곤란해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은 경험을 많이 쌓으면 쌓을수록 좋거든요. 곧 크리스마스에 연말이라 바쁘실 텐데 거들지 못해서 죄송해요.”
실습 때문에 W일을 제대로 거들지 못하는데도 나를 챙겨 주는 2부 캡에게는 진심으로 죄송했다.
“죄송하기는. 여기 일이 바빠서 너한테 일하라는 거 아니라는 거 잘 알잖아. 여기서 일하면 웬만한 곳보다 수입이 괜찮잖아. 편하게 돈 좀 벌어 놓으라고 권하는 거야, 나는.”
2부 캡이 안내 데스크에 상체를 기대며 고양이 눈이 매력적인 얼굴을 내게 가깝게 들이대었다.
‘2부 캡의 매력 포인트는 고양이 같은 눈 밑에 있는 점인 거 같아. 보고 또 봐도 예쁘네.’
키가 크고 늘씬한 데다 얼굴까지 화려한 2부 캡의 모습에 이런 사람이 바로 선택받은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돈은 적지만 그래도 동경하던 일이라 좀 더 노력해 보고 싶어요.”
“에효, 늘 똑같은 대답이구나? 여전히 형도 찾으러 다니고?”
“……네.”
형 이야기에 기분이 급격하게 우울해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게이라는 걸 들킨 형은 집에서 쫓겨났다. 나는 그 뒤로 형이 있을 법한 곳을 찾으러 다녔지만, 아직까지도 형을 봤다는 소리조차 들어 볼 수 없었다.
“형 찾는 것도 좋지만 몸 생각해서 잠은 푹 자 둬. 그리고 여기서 정식으로 일하는 것도 한번 생각해 보고.”
“저는 그냥 대기조로 만족해요.”
대기조. 대기조는 W의 정식 호스트가 아닌 W의 스태프로, 이런 잔심부름을 하거나 일손이 부족한 곳에 투입되거나, 가끔 나 같은 외모와 몸을 찾는 회원님들의 지명이 있을 때 밤 상대를 하는 일을 했다. 호스트들 사이에선 심부름꾼으로 불리고 있는 듯했다.
“내가 보기엔 우영이도 충분히 호스트로 이름 올릴 만한데∼”
“그거야 캡이 절 좋게 봐주셔서 그런 거구요. 저는 호스트에 안 어울려요.”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외모를 가진 호스트들이 수두룩한 W에서 정식으로 호스트가 된다니, 아무리 무신경한 나라도 분명 다른 호스트들에게 위축이 될 게 빤했다.
‘그래도 오늘 같은 날은 지명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크리스마스가 성큼 다가와 온통 축제 분위기여서 그런지 다른 사람의 살결이 유난히 그립다. 눈치 빠른 2부 캡에게 쓸쓸한 표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표정을 관리했다.
“하여간 고집은……. 회원님에게 괜찮은 시간을 알려 주시면 당장 내일이라도 넘버 투라도 보낸다고 잘 이야기해 줘. 그리고 연말인데 이런 심부름을 시켜서 미안해.”
“아니에요. 오히려 전 고마운데요? 이런 알바라도 꼭 저 찾아 주시잖아요.”
“에이∼ 우리 사이에 너무 격식 차리지 말자고. 중요한 회원님이니깐 오늘 일 잘 부탁한다! 아, 얼굴 보고 너무 놀라지 마! 그래도 인마, 내가 오늘 너한테 크리스마스 선물 주는 산타 심정이라서 좋다! 정말 잘생긴 고객님이니까 얼굴이나 실컷 보고 와. 미리 크리스마스야∼”
싱긋 웃는 캡의 얼굴이 ‘정말 끝내주는 손님이야!’라고 말을 하는 것 같다. 표 나지 않게 감정이 붕∼ 떠오른다. 대체 얼마나 잘생긴 사람이길래 캡이 저렇게 들떠서 이야기하는 걸까?
“아! 우영아! 너 잘생긴 얼굴 밝히는 건 알지만 조심해라. 그 손님 무지 사납다.”
사납다고? 어디가 사나운 걸까? 그…… 밤일이 사나운 걸까? 아니면 사람 자체가? 그것도 아니라면 암흑가의 사람? 뭐, 나는 지금 사과 심부름으로 회원님의 얼굴만 보고 오면 되니까 잘생겼다면 그걸로 된 거다.
“네, 조심할게요. 그럼 가겠습니다.”
“응∼ 또 연락할게∼”
손을 들어 인사하는 2부 캡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W를 나섰다.
경찰이나 유단자를 보고도 피식 웃어 버리는 캡이 사납다고 말하다니……. 긴장으로 살짝 굳은 손으로 캡이 준 그 사람이 있다는 주소를 확인했다. 파라다이스 호텔 23층. 23이라는 숫자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만 같다.
‘난 고소공포증인데…….’
“하아, 그래도 일이니까, 말만 전해 주고도 십만 원을 받는 곳이 대체 어디 있겠어.”
한숨에 하얀 김이 뽀얗게 뱉어졌다. 입김이 생길 정도로 추운 날씨가 꼭 내 마음과 비슷한 것 같다.
“어? 우영이네? 일손 돕고 가는 거야?”
“아니요. 말 전해 주러 심부름 가는 길이에요.”
아무렇지 않은 척, 애써 무표정을 지으며 W 정식 호스트에게 인사했다.
“우웅∼ 오늘은 심부름 때문에 왔구나. 우영이도 얼른 호스트로 명단에 이름 올리면 좋을 텐데∼ 여기서 자리도 잡고, 님도 만나면 좋잖아∼”
“W의 정식 호스트가 되기엔 저는 너무 평범하잖아요. 전 학비 벌 정도면 돼요.”
키 178에 평범한 외모, 게다가 옷 스타일에 센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 꾸미는 거엔 더더욱 센스가 없다. 고르고 고른 회원만 받는 W의 정식 호스트가 되는 건 나 스스로가 자신이 없다.
지금도 나는 라운드 니트에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은 평범한 스타일로, 눈앞의 W 호스트와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경험할 수 있는 실습을 하면서도 학비 낼 정도로 돈을 벌 수만 있다면 되었다. 그러니까 W 스태프 겸, 대기조로 있는 것에 만족한다.
거기다 탑이라면 그나마 정식 호스트가 되어도 지명해 줄 사람이 있을 것 같은데, 이런 내가 바텀이라 정식 호스트가 되어도 대기조와 비슷한 수준으로 지명을 받을 게 빤하니 정식 호스트는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다.
“아∼ 아쉽다∼ 하긴 나도 간당간당하게 들어왔으니. 에이! 우영이는 착해서 좋은데∼”
착해서 좋다라……. 하룻밤을 근사하게 보내고 싶은 회원님들이 착하다고 지명을 해 줄까?
“전 별로 착하지 않아요. 저 심부름 때문에 이만 가 볼게요.”
“응∼ 나중에 또 봐∼ 안뇽∼”
말에 애교가 철철 넘치는 사람이다. 이곳에 와서 다섯 번쯤 본 사람. W의 호스트들의 입장에선 나 같은 건 아주 우스울 텐데도 어느 누구 하나 나를 멸시하는 사람이 없다. 모두 이렇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챙겨 준다. 그래서 난 더욱 W에선 호스트가 될 수 없다고 느낀다. W의 호스트들은 호스트가 천직인 사람들이라는 게 느껴지니까.
‘약속 시간이…… 11네.’
지금이 10시 좀 안 됐으니 버스를 타고 가도 11시 전엔 도착할 수 있을 거다. W에서 조금 떨어진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파라다이스 호텔에선 한참 떨어진 정류장에 내려서 느릿느릿 걸었다.
‘가만, 생활비가 이제 거의 바닥이지? 내일 어머니께 전화를 해 봐야 하나? 매월 보내 주시는 날에 용돈이 안 들어왔던데.’
“휴학하고 그냥 아르바이트나 할까?”
방학이긴 하지만 3학년 실습 기간인지라 월급이 짠 출판사에서 실습을 하고 있다. 월급이라고 해도 세끼 밥을 다 챙겨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는 받지 못해 괜히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형이 서울로 칵테일을 다루는 쇼 플레이어를 배우러 가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 어려운 생활임에도 서울살이를 포기할 수가 없다.
‘오늘 지명이 들어왔다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슬금슬금 자라난다. 그래도 십만 원 벌었으니 김밥이랑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 당분간은 살 수 있을 거다.
느릿느릿하게 걷길 10분쯤, 저 멀리 휘황찬란한 호텔이 눈에 들어왔다. 밤에 보니 더 예쁜 호텔이다. 생활고를 겪고 있어서 그런지 저길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이 부러워졌다.
화려한 장식과 전구들이 반짝거리며 연말을 알리고 있다. 만인의 축제 기간. 그런 축제의 틈에서 무표정을 짓고 있는 내가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별로 익숙하지 않지만 익숙한 듯 호텔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 나를 돌아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처음에 이 호텔 문을 열었을 땐 차림새가 평범해 호텔 측 경비원에게 잡힐까 봐 걱정했었다. 너무 낡은 복장이 아니고선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걸 알고는 얼마나 맥이 빠졌었는지…….
승강기에 올라 23층 버튼을 찾았다. 그러나 두세 번 훑어봐도 보이지 않는 23층 버튼.
결국 승강기에서 내려 안내 데스크로 갔다.
“저, 23층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결국 촌티를 내고 말았다. 호텔이라는 공간에 기가 죽어 목소리가 시원치 않게 나왔다.
“몇 호 가십니까?”
“2304호요.”
쪽지를 보며 호수를 알려 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라며 투숙자 명단을 확인했다.
“전화로 여쭤 보겠습니다.”
지금 만나러 가는 사람이 대단한 사람인가 보다, 승강기가 따로 설치되어 있는 방을 잡은 걸 보면 말이다. 발끝을 세워 바닥을 툭툭 쳤다. 왠지 저 직원들이 내가 밤일을 하러 다니는 걸 알 것만 같다. 고개를 푹 숙이고 발끝을 계속해서 툭툭 치고 있으니 직원이 승강기 하나를 가리키며 올라가 보란다. 쭈뼛쭈뼛 안내 받은 승강기를 타고 23층으로 올라갔다. 유리로 되어 있어 훤히 보이는 승강기 밖 풍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으려 애를 쓰며 23층 도착 소리가 들리자마자 후다닥 내렸다.
‘난 높은 곳은 딱 질색이라고.’
쪽지를 보며 방 호수를 확인했다. 쪽지의 숫자와 일치하는 방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벨을 누르는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오늘은 밤일을 하러 온 게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은 항상 긴장이 된다.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잘생겼을까? 몸이 좋을까? 혹은 얼굴을 알 정도로 유명인이 아닐까? 혹은 반대로 오늘 잘못 걸리진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었다.
안에서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은 것 같았는데 문이 스르륵 열렸다. 문을 연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지만 사과가 우선이라 2부 캡이 쥐어 준 종이 가방을 앞으로 내밀며 고개를 숙였다.
“W에서 왔습니다. 전화를 받으셨겠지만 회원님께서 찾으셨던 넘버 원 제이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90도 사과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기분이 나쁜지 인상을 잔뜩 쓰고 나를 내려다보는 남자의 익숙한 얼굴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최석진이다.
아이돌 가수 출신으로 지금은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최석진이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이래서 2부 캡이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하셨던 거구나.’
실제로 보니 더 잘생겨 보이는 최석진 씨의 모습에 그가 인상을 쓰며 나를 보든 말든 내 기분은 붕 뛰어올랐다.
‘캡한테 너무 고맙네.’
심부름을 마치고 나가면서 캡에게 연락을 해야겠다. 이런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을 미리 챙겨 줘서 너무 고맙다고. 이대로 보고 있다가는 넋을 놓을 것 같아 살짝 고개를 숙여 그에게서 시선을 뗐다.
“내일 괜찮으시다면 넘버 투 윤이를 보내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건 죄송하다는 뜻으로 W에서 드리는 작은 선물입니다.”
선물을 건네면서 다시 슬쩍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봤다.
‘넋을 놓고 보면 안 돼!’ 속으로 그렇게 외쳤지만 눈은 자꾸만 그의 얼굴을 훔쳐봤다. 분명 내 눈길에 그에게 안겨 봤으면 하는 끈적끈적한 감정이 담겨 있을 거다. 안 그래도 기대한 저녁을 망쳤는데, 나 같은 놈이 끈적끈적한 시선으로 본다면 분명 그의 심기는 더 뒤틀릴 게 빤하다.
그러나 어서 시선을 거둬야 하는데 좀처럼 볼 수 없는 잘생긴 얼굴이라 쉽사리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
턱 선이 예술이다. 얼굴이 제일 변하지 않은 아이돌 중의 한 사람. 아이돌은 나이를 먹으면 거의 아저씨처럼 얼굴이 커지고 턱 선이 뭉툭해지는데 이 사람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그저 얼굴에 늘어 가는 연륜의 흔적 말곤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얼마 전에 티브이에서 보기론 밝은 갈색 머리였는데 어느새 검은 머리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역시 검은 머리가 제일 잘 어울린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넋이 나간 정신을 다잡아 다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W 스태프? 하? 너 같은 게? W도 한물갔군! 너 같은 걸 호스트로 두다니 말이야!”
분명 기분이 나쁠 만한 말이지만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에 대수롭지 않게 흘려버렸다.
“W의 호스트는 아닙니다.”
대답을 하며 다시 본 최석진의 모습은 보고 또 봐도 정말 잘생긴 것 같다. 바람둥이 외쌍꺼풀이 참 매력적이다. 하지만 잘생긴 얼굴에 깃든 거만한 표정을 보니 그의 성격이 듣던 대로 싸가지가 참 많이 없는 것 같다. 소문으로 돌던 매니저 폭행 사건과 조폭이 뒤를 봐주고 있다는 이야기가 정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얼굴을 좀 더 보고 싶지만 이젠 발길을 돌려야 할 때다.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오늘 저희 W에서 실례가 많았습니다! 모쪼록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고 저희 W에 다시 연락 주십시오!”
사인이라도 받고 싶었지만 사인 이야기를 꺼낼 분위기가 아닌지라 그저 사과의 말만 줄줄 뱉어 냈다.
“나보고 좀처럼 오지 않는 황금 같은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라는 거야?”
이젠 가도 되겠지, 하며 슬쩍 걸음을 뒤로 물리려고 할 때 이를 가는 듯한 그의 목소리에 쉽게만 느껴졌던 오늘 심부름이 간단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저, 다른 곳의 호스트를 알아봐 드릴까요? 하지만 연말이라 다른 곳도 상황이 비슷할 것 같은데…….”
내 말에 더욱 구겨지는 최석진의 표정을 보니 많이 굶주려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연말이라 불러낼 수 있는 호스트가 없는 걸 어떡한단 말인가? 시간 많고 기꺼이 엉덩이를 내어 줄 수 있는 눈앞의 나로는 눈에 차지 않을 테니, 차마 나로도 괜찮겠냐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사과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내가 죄송할 건 없지만 그래도 W의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라 앵무새처럼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칫. 썩 내키지는 않지만, 너, 뒤 뚫렸어?”
탐탁지 않은 목소리지만 나는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두근거리고 말았다.
‘평범하디 평범한 내가 배우 최석진 씨와 관계를 가질 수도 있는 걸까?’
“그렇긴 하지만, 저는 호스트가 아니라서 회원님을 만족시켜 드릴 수가 없을 겁니다.”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나는 그가 만난 호스트들처럼 잠자리를 만족시킬 애교도 없고 그렇다고 잘난 얼굴을 하고 있지도 않다. 나는 그냥 뒤만 대 줄 수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섣불리 뒤를 대 줄 수 있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W로 돈 보낼 테니 받아 가.”
생각지도 못한 그의 말을 끝으로 뒷덜미가 잡혀 파라다이스 호텔에서도 최고급일 게 분명한 특실 안을 구경하게 되었다. 전용 승강기까지 있는 룸은 얼마나 좋을지 궁금해 둘러보는 순간 구역질이 날 것만 같은 엿 같은 상황에 처했다. 한쪽 벽이 온통 유리로 되어 있는 아주 무시무시한 풍경에 몸이 절로 굳고 식은땀이 등 뒤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침실로 가면 이 엿 같은 풍경을 보지 않아도 될 거라고 위로하며 긴장된 마음을 애써 진정시켰다.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조금만 참으면 괜찮을 거야.’
“씻어야 하나?”
“아닙니다.”
W로 호출을 받았을 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씻고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옷을 벗어 소파 위에 가지런히 두었다.
“흐음. 뭐, 몸은 그런대로 쓸 만하네.”
최석진 씨 자신이 나를 안기로 결정했으면서 여전히 탐탁지 않은 말투를 뱉는 그가 아주 조금 얄밉다. 말투는 탐탁지 않아도 많이 쌓인 모양인지 가운을 입은 그의 앞섬은 눈에 띄게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설마 풀어 주고 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크기가 크시면 풀어야 할 겁니다.”
크기가 얼마 정도 될까? 얼굴과 몸이 완벽하다 해도 거기가 작다면 게임 오버다. 타올랐던 두근거림이 푹, 하고 꺼져 버리고 말 거다.
“그럼 풀어야겠네. 내 건 다들 버거워하거든.”
그는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자랑스럽게 가운을 열고 당당하게 자신의 페니스를 내게 보였다.
꿀꺽하고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울렸다. 자랑스럽게 보일 만한 물건이다. 저렇게 모양 좋고 큰 걸 실물로 보는 건 난생 처음이었다.
“어서 풀어. 난 지금 얼른 해치우고 자고 싶은 마음뿐이니까.”
그는 턱짓을 하며 거만하게 명령을 내렸다. 역시나 풀어 주지 않는구나, 생각하고 룸 안을 둘러보며 적당한 곳을 찾았다.
“여기서 하는 겁니까?”
침실로 갈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의 말에 소파가 적당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아, 그래.”
퉁명스러운 대답에 상처 같은 건 받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윤활제와 콘돔에 살짝 난감해졌다. 나는 호스트들과 달리 윤활제도 콘돔도 소지하고 다니지 않았다. 옷을 올려놓은 소파에 한쪽 다리를 올리곤 퉤! 소리가 날 정도로 손바닥에 침을 뱉어 다리 사이를 비볐다. 추운 날씨에 차가워진 손가락이 애널에 닿으니 움찔움찔하며 입구를 닫아 버렸다.
“하아∼”
시린 손끝에 애널은 움츠러들었지만 오랜만의 감촉에 기분 좋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잔뜩 움츠러든 입구를 빠르게 넓혔다. 서두르느라 뒤가 아파 왔지만 최석진 씨의 그것을 받아들일 생각을 하면 이쯤은 참아 낼 수 있다. 다만, 그의 테크닉이 실한 물건만큼 나를 흥분시켜 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너무 오래 걸리잖아!”
그의 날카로운 외침에 서둘러 손가락 하나를 늘렸다.
“아, 흣! 이제 거의…… 악!”
신음이 아닌 비명을 지를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갑자기 나를 잡고 아직 풀리지 않은 애널에 멋대로 자기 페니스를 억지로 구겨 넣어 내 입에서 비명이 터지게 만들었다. 힘 있게 꾸역꾸역 들어온 실한 페니스는 자리를 잡는 듯 잠시 살짝살짝 움직이더니 곧 내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사정없이 내 안을 헤집으며 성을 냈다.
유두를 만지지도, 페니스를 만지지도 않았는데 찌르르거리는 전율이 몸속에서 피어났다. 입술이 꽉 깨물려지는, 미치도록 황홀한 상황이었다.
애널이 살짝 찢어진 듯 쓰라렸지만 오랜만의 섹스라 그런지, 최석진 씨의 물건이 실한 덕분인지, 아픔보다 흥분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가 흥분에 달뜬 내 엉덩이를 꽉 잡곤 허리를 힘 있게 움직여 찰싹찰싹 살 붙는 소리를 냈다.
찰싹찰싹, 쿨적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세차게 움직여 대는 그의 행위에 찌르르한 느낌이 점점 거세져 허리가 절로 움직일 정도로 흥분해 버렸다.
“아아! 흣, 거기! 거기 좀 더!”
결국 내 입에서 더 해 달라는 소릴 뱉어 냈다. 상대에게 내가 많이 굶주려 있다는 걸 알게 하는 거 같아 웬만하면 잘 쓰지 않은 말인데, 이렇게 흥분해 제정신이 아닐 때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튀어나오곤 했다. 나에 대한 배려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빨리 끝내고 싶지가 않다.
“얌전한 척 굴더니 뚫어 주니 사람이 변하는군.”
어쩔 수 없이 품은 내가 흥분에 젖어 있으니 괜히 아니꼬운 모양이다. 나는 대답하듯 엉덩이에 힘을 주었다.
왠지 최석진 씨가 곧 내 안에서 절정에 달할 것 같은 느낌이라 그가 자신의 실한 페니스를 빼내어 가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엉덩이를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도 뺄 거면 그 전에 내가 먼저 사정할 정도로 기분이 좋길 바라며 있는 힘껏 엉덩이를 흔들어 대고 있으니 나지막이 뒤에서 욕설이 들려왔다.
“씨발.”
내가 너무 힘을 준 것일까? 아니면 너무 못한 것일까? 그래도 섹스 중인 상대방에게 욕을 날리다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설에 쾌락을 좇아 열심히 움직이던 허리를 우뚝 세웠다.
“흣, 뭐야?!”
내 움직임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해 멈춘 허리 돌림에 이번엔 움직임을 멈췄다고 타박했다.
“움직이란 말입니까? 말라는 말입니까?”
“장난해?”
말라는 말인가? 그의 대답이 애매모호해서 제대로 뜻을 파악할 수가 없다. 소파에 걸친 한쪽 다리가 슬슬 저리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아쉽지만 내 뒤에 콱 박힌 최석진의 페니스를 빼낸 후 저린 다리를 소파에서 내리고 뒤를 돌아봤다.
미간에 주름이 잔뜩 잡힌 그의 얼굴을 보니 그가 아직도 내 애널을 원하긴 하나 보다 생각했다.
“자리 좀 옮기면 안 됩니까?”
도저히 다리가 아파서 안 되겠다. 최소한 소파에 손을 짚을 수 있도록 소파 등받이로만 이동할 수 있도록 해 주었으면 했다.
“자리? 좋지. 다른 놈들이 유독 여기를 좋아하더군.”
그가 또 내 뒷목을 잡아 자리를 이동시켰다. 점점 다가오는 밖의 풍경들. 그가 원하는 곳으로 걸음을 걷고 싶지 않았다.
‘제길, 토 쏠릴 것 같아! 나는 고소공포증이란 말이야!’
너무 깨끗한 유리라 손을 대면 그대로 아래로 추락할 것 같은 공포에 흥분으로 달떴던 몸이 순식간에 식어 버렸다.
‘당장…… 도망치고 싶어! 살려 줘!’
“손대. 하던 거 마저 해야지?”
최석진 씨의 명령에 두려워 굳어 버린 몸을 천천히 움직여 손을 뻗으면 통과할 것만 같은 아주 깨끗한 유리에 손을 대었다. 차가운 유리가 손바닥을 시리게 했다. 차가워진 손바닥만큼 마음도 고소공포증으로 싸해졌다. 무서움에 잔뜩 수축한 애널을 최석진 씨가 마구 헤집으며 자리를 잡았다.
“웃.”
내장이 한껏 쓸려 올라간 기분이 들어 이가 저절로 물렸다.
“빨리 끝내게 움직여.”
욕이 저절로 나올 것 같다. 이렇게 무서운 곳에 날 세워 놓고 그런 소릴 하다니. 두 눈을 질끈 감고 허리를 미친 듯이 흔들어 댔다. 아까까지는 내 여흥을 위해서. 지금은 이 지옥 같은 곳을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
“제길, 큭!”
또 최석진 씨의 입에서 낮은 욕설 뱉어졌다.
“흐읏, 앗! 응! 응!”
고소공포증으로 심장은 무서워 미치겠는데 어쩐지 뒤로는 좋아 미치겠다. 그가 흔들어 대던 내 엉덩이를 꽉 잡곤 마지막을 향해서 허릴 마구 움직였다. 고막을 자극할 정도로 굉장한 소리가 울렸다.
“읏! 욱!”
참으려고 해도 참아지지 않는 비명 같은 신음이 터졌지만 그는 그만둘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크흑!”
머리를 새하얗게 만들어 버리는 쾌락과 아픔이 지나고 속이 따뜻해지는 게 느껴졌다. 싸가지가 없는 건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지만 이 남자, 매너도 없다. 안에다 싸 버리다니.
“하아, 하아.”
격하게 숨을 몰아쉰 최석진 씨가 스르륵 자기 페니스를 빼냈다. 페니스가 빠져나가자 그것들도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번엔 내가 제길이라고 내뱉고 싶다. 많이 쌓인 것 같더니 참 많이도 쌌다.
“욕실 좀 쓰겠습니다.”
흘러내리는 그의 분신에 서둘러 욕실로 향했다. 샤워기를 잽싸게 잡고 물 온도를 맞춰 가랑이 사이로 분사시키며 안을 손가락으로 긁어 최대한 많은 정액을 빼냈다.
며칠간은 고생하겠다. 양이 너무 많아 한참을 긁어내도 안에 남아 있다. 그래도 어떠하리, 가까이서 봐도 흠 잡을 곳 하나 없는 천하의 최석진이랑 섹스 했는데 설사병이 걸려도 행복할 거다.
정액을 긁어내고 나오니 최석진 씨는 자러 들어간 모양인지 거실에선 찾아볼 수가 없다. 침실로 들어갈까 하다 숙면에 방해만 될 것 같아 옷을 주워 입고 조용히 룸을 나섰다.
“쪽지라도 남겨 놓을 걸 그랬나? 뭐, 신경도 안 쓸 테니 상관없나? 그나저나 최석진 씨가 게이였다니 놀랍네.”
정말 캡틴이 나에게 산타클로스가 되어 준 것 같다.
오늘은 최석진 씨를 만난 날. 아주 특별하고 기분 좋은 밤이 될 것 같다.
* * *
“먼저 가 보겠습니다.”
고개도 들지 않고 가 보라며 손을 휘휘 내젓는다. 출판사도 연말의 영향을 받는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 덕에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는 실습을 나오자마자 커피며 프린트 같은 잡일만 하고 있다. 나 또한 조금 늦은 시간에 퇴근하는 건데도, 피곤에 쩔어 있는 직원들의 모습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언제 졸업해서 언제 취업하지?’
앞으로 살아가는 데 대학교 졸업장은 꼭 필요할 것 같은 데다 취업하는 데 경험은 더더욱 필요할 것 같아서 출판사 실습을 하고 있는 거지만, 현실이 너무 팍팍해서 그런지, 힘이 들어서 그런지, 졸업을 한 후 출판사에서 일하는 내 모습이 지금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출판사를 나오자마자 온몸을 휘감는 냉기에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최석진 씨와 기적 같은 만남이 있고 이틀이 지났다. W에서 받은 삼십만이란 돈이 내가 최석진 씨에게 안겼다는 걸 증명할 뿐, 내가 최석진 씨를 만났다는 걸 입증할 수 있는 건 어디에도 없다.
“아, 최석진 씨에게 배탈을 선물 받았었지.”
배가 꾸르륵 하고 신호를 보낼 때면 최석진 씨가 살짝 얄밉지만, 콘돔을 소지하지 않은 내 탓이지 했다.
오늘은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L호텔로 향했다. 오랜만에 2차 일이 들어왔다. 때마침 배탈도 잦아들었고 타이밍이 딱 좋다. 그리고 더욱 좋은 건 나를 가끔씩 찾아 주는 회원 중 한 분이라 얼굴을 확인할 때까지 마음 졸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수입 및 수출 일을 하시는 분으로, 가끔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면 이렇게 종종 나를 찾아 주시곤 한다. 외모도 그럭저럭 준수한 편이고 몸도 잘 단련된 무술인 뺨칠 정도로 매우 좋다. 외모에서 까인 점수가 몸에서 만회되는 사람이랄까?
L호텔 801호. 고층을 싫어하는 나를 위해 최대한 저층으로 잡아 주는 배려까지 있는 아주 좋은 사람이다.
“다른 나라에 애인들이 많이 있겠지? 그럼 나는 한국 애인인가?”
내가 뱉은 애인이라는 말에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애인이라니 너무 거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