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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로 와라!”
“마스터. 그 이야기 하려고 나 불렀어요? 그리고 나한테 오라니! 다른 사람이 들으면 오해하겠어!”
흘끔 주변을 살피며 마스터에게 으르렁거리니 마스터가 허허허 사람 좋은 미소를 그린다.
“진짜! 내가 딴 놈들 유심히 살폈지만 너만 한 놈 없다! 응? 사람 한 번 살려 준다치고 제발 와 주면 안 되겠니?”
“아! 진짜 왜 이래요? 나 구박할 땐 언제고 지금은 나밖에 없대? 연석이 형도 있고 상협이 형도 있는데 왜 나한테 그래요? 헛소리 할 거면 얼른 가서 잠이나 자요! 제때 잠을 안 자니까 머리가 텅 비었잖아!”
“으악! 진짜? 진짜! 으악! 안 돼! 너 나한테 꼭 와야 돼! 당장 거기 때려치우고 나한테 와!”
……마스터 왜 이래?
그동안 바빠서 장난처럼 오라는 말인 줄 알았는데 정신착란 증세까지 보이는 마스터를 보니 뭔 일이 있어도 있는가 보다.
“왜 그래요? 뭔 일 있어?”
“영훈아! 흐어어엉~ 제발 와 주라! 응? 정 안 되면 3개월만! 흐어어엉.”
“왜, 왜 이래요? 아씨! 누가 본다니깐!! 울지 마요!”
“흐어엉~ 엉엉.”
내가 뭔 짓을 했다고 테이블에 엎드려 우는 거야? 주의를 둘러보니 게이 커플들이 나와 마스터를 흘끔거리며 흥미로운 눈빛으로 쑥덕이고 있다.
하하. 나 이 사람이랑 안 사귀어요~
하하. 내가 울린 거 아니에요~
이씨. 날 졸라 나쁜 놈으로 보고 있어.
나를 보는 시선들이 지가 뭐 잘났다고 사람을 울리냐는 아니꼬움 플러스 경악에 가깝다.
“이씨. 알았어요! 알았다니깐!! 울지 마요! 내가 울린 거 같잖아!”
“흑! 정말? 정말 다시 와 주는 거야? 응?”
“아씨. 지금은 안 돼!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요! 나 되게 나쁜 놈 된 거 알아요? 사람들이 내가 마스터 울린 줄 알잖아요!”
“칫, 훌쩍. 그런 거 상관없어! 난 지금 네가 나한테 오느냐 마느냐에 목숨을 걸었다고!”
탕! 탕!
뭐 얼마나 비장한 일한다고 테이블을 탕! 탕! 치며 목숨을 걸었다며 빽빽 소리를 질러 대는지. 그 덕엔 난 천하에 몹쓸 놈이 되고 말았다.
제길. 하아……. 피곤해. 집에 가고 싶어.
마스터 덕에 사람들의 원망이 담긴 눈빛을 마구 받은 뒤 카페를 나서니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으…… 피곤해.
“고마워! 고마워! 그럼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으…… 닥쳐요.”
“으하하하! 약속한 건 지키는 거 알아! 그럼 나중에 전화해!”
“윽. 빨리 가기나 해요!”
하아. 내 인생 왜 이러냐.
힘들어서 못 살겠다고 한탄하며 터덜터덜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툭! 하고 뭐가 하늘에서 떨어진다.
툭. 툭. 툭.
투두둑.
“아놔. 비까지 지랄이야.”
내 인생 참 서글프다, 서글퍼! 하늘까지 날 이리 힘들게 하나? 윽! 이 망할 하늘! 엿이나 먹어라!
열 받은 마음에 하늘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척 하고 날려 주니, 우르릉 쾅, 하고 천둥이 내리친다.
“엄마야!”
정말 신에게 버림받았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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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지직.
손에 너무 힘을 많이 준 건지 약한 기계가 으스러져 버리고 말았다.
“제길…….”
부서진 기계 때문인지 몰라도 귀에 꼽고 있던 이어폰에서 기계 오작동을 알리는 치지직거리는 듣기 불쾌한 소리가 흘러나와 이어폰도 매섭게 빼내어 바닥에 던졌다.
김영훈에게 붙여 놓은 도청 장치가 이젠 쓸 수가 없어진 거다. 자신과 약속을 걷어차고 기어이 마스터를 만나러 간다고 해서 사람을 시켜 영훈의 옷에다 도청 장치를 넣어 두었다.
뭐? 다시 나한테 오면 안 돼? 구박을 받았다고? 구박을 할 땐 언제고 다시 오라고? 뭐? 누구? 연석인가, 상현인가, 상협인가 둘이나 있다면서 누굴 보고 오라 가라야!
확 뻗쳐 올라오는 열에 당장 카페 안으로 뛰어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흐어어엉.]
도청기를 타고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도청 같은 건 애초에 할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찌질하게 질질 짜는 놈을 누가 좋아한단 말인가? 정나미 뚝뚝 떨어진 영훈이 알아서 카페를 나오겠지 싶었다.
[아, 알았다고요.]
뭐……? 알아? 뭘 알아?
“제길. 김영훈. 저딴 새끼한테 가겠단 거냐? 저런 찌질이한테?”
열이 받다 받다 못해 이성을 상실할 정도로 빡 돌아 버렸다.
“김 기사, 저놈 잡아 와. 오늘 저녁 11시쯤.”
“알겠습니다, 사장님.”
누가 저딴 놈한테 가게 둘 줄 알고? 김영훈, 보자보자 하니까 나를 물로 보는군.
촤악 하며 시원스레 내리는 빗소리가 짜증난다. 우산도 없던 거 같던데…….
“쳇, 내가 그딴 놈을…….”
하지만 자꾸만 눈은 영훈이 걸어가던 곳으로 옮겨진다.
“그냥 불쌍해서 신경 쓰이는 거겠지.”
입안이 또 쓰다. 라이터를 켜고 또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가 느셨습니다.”
“아아. 그렇게 됐군. 가지.”
“네.”
일단 Bar에 김영훈의 사직 의사부터 전달해야겠다.
문득 쳐다본 차창에 무서운 얼굴을 한 내가 비쳤다. 정말이지, 이런 얼굴을 할 정도로 저딴 놈을 왜 신경 쓰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 딴 놈에겐 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2. 나 갖기는 싫고 남 주기는 아깝다?


“무슨 소립니까? 제가 그만두겠다고 했다니요?”
“글쎄, 전화가 왔었다니까. 내가 묻고 싶다! 어떻게 된 거야?”
내 대신 연장 근무를 하던 참이었던지 선임이 내 팔을 확 잡아채 다다다 구석으로 몰고 가 이것저것 물어본다.
뭐래? 그만둬? 누가? 내가?
“글쎄, 나도 모른다니까요? 전화가 왔었다고요?”
“그래! 그리고 이 말도 하던데? 네가 오늘 출근해도 어차피 일 못 할 거니까 일시키지 말고 집으로 보내라고.”
어차피 일을 못 해? 대체…….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긴 했다. 하지만 설마…….
“실례합니다, 김영훈 씨?”
“에?”
갑자기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의아해 고개를 돌렸다가 흠칫 하고 놀랐다. 어디 조직을 연상시키는 검은 양복을 입고서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남자의 시선에 모르는 새 빚이라도 졌나 싶어진다.
“왜, 왜 그러십니까?”
“가시면서 이야기 드리겠습니다.”
“어, 어디를요?”
“가 보시면 아십니다.”
“호, 혹시 전화해서 제가 그만둔다고 말한 게 이것과 관계가 있습니까? 댁들 누구야?”
열이 받아 위험해 보이는 사내에게 버럭 소린 지르긴 했는데, 뭔가 무섭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시선을 슬쩍 옆으로 돌렸다.
“제가 모실까요, 스스로 걸어가시겠습니까?”
“……걸어가겠습니다.”
칫, 인상 쓰면 어쩔 건데? 어쩔 거야! 간다! 가!
날 퇴직시킨 놈이 그놈인지 확인하겠어!
으…… 주한석!!!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

부글부글, 부글부글.
속이 탄다, 속이 타. 이런, 썩을 놈!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커다란 창밖을 내려다보며 술잔을 기울이는 주한석을 보니 속이 뒤틀리고 입이 저절로 삐죽여진다.
“뭐하는 짓입니까?”
주한석의 생각이라도 들어 봐야 할 거 같아 부글거리는 속을 달래며 손님을 대하는 듯이 정중히 물었다. 그러자 슬로우 모션처럼 내 쪽으로 몸을 돌리는 주한석.
쳇! 그래 너 잘났어! 잘나셨어! 여기가 광고 찍는 곳인 줄 알아? 폼 잡고 있게? 집에서 수트가 웬 말이냐고! 설정이냐? 설정이지? 이놈의 집구석에 올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뭐? 최상층? 거기다 전용 승강기? 누구 약 올리냐? 너 부자라고 과시하는 거냐고! 오늘부터 네 집 파출부나 하라고 Bar에 나 자르라고 시킨 거냐? 엉? 뒤 대 주고, 밥해 주고, 자고, 뒤 대 주고?
라고 지껄이고는 싶으나, 주한석이 무서운 걸 어쩌겠는가? 그리고 없던 고소공포증도 생길 것 같은 20층의 높이에 창가에 앉은 주한석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겠다.
“오늘 보기로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집으로 부른 건데?”
명백히 나를 비웃고 있는 주한석의 입을 꽉 비틀어 찢어 놓고 싶지만 힘도 딸릴뿐더러 여긴 주한석의 집이지 않는가? 설마 집에 안 보내 주진 않겠지?
“그건 제 집을 이야기한 건데 잘못 알아 들으셨나 봅니다. 그럼 전 이만.”
“마.스.터.라고 했나? 그 녀석을 만나러 가는 건가?”
뭘 떠보려는 주한석의 말투에 슬금슬금 열이 받는다.
“제 사생활에 왜 이리 관심을 주십니까? 저 좋아하십니까?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에게 왜 이리 집요하게 구십니까? 주한석 씨 곁에 잘나고 잘난 사람들 쫙 깔렸는데 정말 저한테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화가 난다. 화가 나. 자기는 장난으로 그러는 거겠지만 나는 관계 후에 쓸쓸해진단 말이다. 이 망할 놈!
“그놈들은 만나 달라 부탁하면 만나 주고 나는 2주에 한 번? 하! 네까짓 게 뭔데 이 주한석을 물 먹이는 거지?”
물? 지금 물 먹인다고 했어?
하! 어이없어라~ 정말 어이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게다가 뭐? 네까짓 게?
“지금…… 물 먹이다고 했어요? 나 지금 바에서 잘리면 아파트 관리비랑 식비랑 당장 급한데 누가 누굴 물 먹였다 그럽니까? 하! 정말 생각할수록 열 받네! 야! 주한석! 내가 그렇게 만만한 변기로 보이냐? 잘난 새끼들이 하는 말은 다 들어주면서 나한테는 왜 이러는데? 한쪽이 싫다면 끝나는 게 원나잇 아냐? 싫다고! 나는 정말 싫어! 잘난 놈들! 특히 너같이 아주 잘난 놈들은 정말 싫어! 주변에서 네 추종자들이 뭐라는 줄 알아? 내가 네 약점 잡아서 어쩔 수 없이 같이 다니는 거래더라. 하! 또 뭐라더라? 내가 숨겨진 갑부 아들이라던가? 그래서 네 놈이 잘 보여야 해서 나한테 잘해 주는 거라고! 내가 왜 그런 드러운 이야기 들으면서 네 놈 곁에서 변기 노릇해 줘야 하는데? 네놈 때문에 내 구멍이 헐거워져서 이젠 다른 건 성에도 안 차는데 평생 나 데리고 네가 살 거야? 그런 거 아니잖아! 그러니까 내 엉덩이가 정상적일 때 그만 보자고! 제길! 내가 왜 이런 부탁을 해야 하는 거야! 정말! 아악!! 당신 때문에 되는 일이 없어! 잘난 놈들 질색이야! 질색이라고오!!!”
눈이 확 돌아 숨이 가쁠 정도로 다다다 뱉어 내고 나니 뭔가 아차 싶었다.
제길……. 엉덩이 이야긴 왜 한 거지?
“나 갑니다. 다신 이딴 일로 사람 염장 지르지 마십시오. 못생긴 놈이면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법 어디에도 없습니다. 저는 저 좋아해 주는 사람 만나서 평생 하나만 보고 살 테니 다신 우리 만나는 일 없도록 합시다.”
제길!
쿵! 쿵! 쿵!
땅이 꺼져라 힘 줘서 발을 내딛어 문 앞으로 가 화가 잔뜩 났다는 표시로 거칠게 문을 열어젖히려 했다.
철컥, 철컥.
젠장! 문이 잠겨 있다니.
“이것 좀 열어 주죠?”
어떻게 여는 줄 모르겠다, 제길.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주한석이 천천히 내게 다가온다. 쳇, 자기도 나한테 미안은 한가 부지? 얼른 열엇! 당신 얼굴 따윈 이젠 절대 안 볼 테니깐!!
퍽!
“큭! 무슨!”
열라는 문은 안 열어 주고 문으로 매섭게 밀어 버리는 주한석의 행동에 등에 문고리가 퍽 소리가 날 정도로 찍힌다.
“아파라……. 뼈 부러진 거 아냐? 무슨 짓입니까? 으악! 뭐하는 거야! 옷은 왜 벗겨? 내 말 못 들었습니까? 당신은 싫다고! 싫단 말이야!”
“닥쳐. 안 그럼 여기서 집어 던져 버릴 테니까.”
창밖을 응시하며 이야기하는 주한석의 태도에 입을 꾹 다문다.
무서운 걸 어찌하리오.
현관 앞에서 바지가 주륵 내려가는 것을 막지 못하고 엉덩이가 까인다.
“읏!”
반항할 새도 없이 바로 그의 페니스가 삽입되었다.
“큭. 이게 변기가 아니고…… 응!”
퍽! 퍽! 퍽!
사정없이 찔려 올리는 행위에 질끈 눈을 감고 입도 닫아 버린다.
제길! 문 여는 법 따위, 내일 몰래 익혀 둘테닷!
읏! 제길……. 너무 좋잖아. 으흣!

아랫도리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다. 손끝도 저릿저릿한 게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는 거 같아 힘겹게 손을 조물조물 마사지해 본다.
“힘이 있어야 마사지지. 힘이 없으니 시원하질 않네.”
주위를 슥 훑어보니 무지 커다랗다.
“쳇, 거실이 내 집만 하네. 부자라 좋겠다!”
현관 앞에 그대로 있는 내 바지와 팬티.
아랫도리에 뭔가 찝찝한 것들이 많이 묻어 있지만 주한석이 없는 지금 나가는 게 좋을 거 같아 그냥 바로 옷들을 꿰어 입곤 슬금슬금 현관에 귀를 댄다. 밖은 기척 하나 없이 조용했다.
이때가 기회다 싶어 문의 잠금장치를 붙들고 매달렸다.
제길! 이거 어떻게 여는 거야? 나갈 때도 비밀번호 눌러야 되는 거야? 번호 같은 건 없는데? 열림? 이건가? 열림 버튼을 꾹! 누르니 소리가 나긴 하지만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으! 뭐야, 뭐냐고! 열이 받아 문고리를 훽! 하고 잡아내리니 철컥 하고 너무나 쉽게 문이 열린다.
음하하하하! 이리 쉬운걸!
신나는 마음에 저벅저벅 밖으로 나오니 이리 좋을 수가 없다! 아~ 천국이야 천국! 좋아! 좋아! 이대로 나가서 마스터 집에 숨어 살면서 마스터네서 일하면 되는 거다! 그 미친놈 눈에 띄지만 않으면 될 것 아닌가?
훗! 신난다! 신나! 기쁜 마음에 승강기의 내림 버튼을 꾹 누르고 기다린다.
6층? 6층에서부터 올라오는 승강기를 조금 이상하다 여기면서도 자유가 된 게 기뻐 마음 편하게 승강기 문이 열리길 기다린다.
땡!
좋았어! 탈출이다! 음하하하, 하…… 하…….
“뭐하는 거지?”
승강기에서 내린 주한석이 기쁨에 환호하던 나를 한껏 째린다.
“지, 집에 가려고…….”
“흐음? 들어와.”
“에?”
저벅 저벅 저벅.
끌고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들어오라는 말 한 마디라니! 쳇, 웃기고 자빠졌어 아주!
그러나 나는 걷고 있다, 주한석의 집으로. 젠장, 저놈의 인상이 조금만 선량하게 생겼더라면 바로 튀었을 텐데!
“왜요?”
입을 굳게 다물고 소파에 앉아 바닥만 노려보고 있는 주한석의 얼굴이 심각하다.
“할 말 없음 가요.”
이젠 경어고 뭐고 없다. 이놈한텐 반말이 최고야! 하지만 반말을 하기에는 주한석의 포스가 너무 무섭다. 크흑. 눈물 날 거 같아.
간다는 말에도 고갤 들지 않는 주한석의 행동에 뭐 잘못 먹었나 싶어 얼굴을 들여다보려다가 내가 왜 신경을 써 줘야 하나 싶어 문으로 척척 걸어간다.
열림 버튼 누르고! 문고리 내리고! 음하하하! 그리웠던 바깥공기여!
“사귀자.”
……응?
이건 뭔 자다 남의 다리 긁는 소린가 싶어 주한석을 돌아본다.
“사귀자고.”
인상을 팍 쓰고 곧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 암울함을 잔뜩 그려 내며 사귀자고 말하는 주한석.
익! 더 기분 나빠!
“내가 왜! 이 빌어먹을 자식! 나랑 사귀는 게 죽으러 가는 거ㅤㄴㅑㅅ! 그런 얼굴 하는 놈하고 내가 왜 사귀어!! 절~대 안 사귄다고!!”
그대로 쾅! 소리 나게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사귀자는 말을 들었는데도 기분이 이렇게 드러울 수가! 아악! 주한석 정말 싫어!

+

“아악!!!”
“히엑! 왜 소릴 질러 대?!”
마스터가 깜짝 놀랐는지 펄쩍 뛰며 내게서 한 걸음 물러난다.
“윽! 짜증나는 걸 어떻게 해요! 뭐 그딴 놈이 다 있어!”
마스터에게 이런저런 일 다 까발리고 무턱대고 재워 줘! 라며 짐을 바리바리 챙겨 내 낡은 아파트를 뛰쳐나와 버렸다.
그렇게 주한석에게 도망쳤는데도 그놈만 생각하면 열이 뻗쳐 혼자서 머리를 쥐어뜯고 발광을 하게 되는 거다.
“하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좀 그렇다, 어떻게 사귀자고 한 사람 면상에 대고 암울한 표정을 짓냐?”
“아무리 해도 잊히지가 않아! 아악!”
마스터가 날 미친놈으로 보든 말든 도저히 울분이 쌓여서 안 되겠다! 이렇게 소리라도 안 지르면 나 진짜 미칠 거야!
크윽, 망할 주한석 때문에 당분간 내 컬렉션은 못 쓰겠구나. 흑.
물끄러미 컬렉션이 든 짐 가방들을 보며 이게 다 주한석 때문이야!! 라고 속으로 울부짖었다.
“아! 영훈아! 흐흐흐.”
뭐야? 이 허파 터진 것 같은 웃음은? 경계심이 마구 들게 하는 음흉한 웃음소리에 몸이 절로 뒤로 젖혀진다.
가만 보니 음흉한 미소에 미안함이 서려 있다. 그렇다면 이건, 필시…….
“부탁한다!! 가게 삼 개월만 맡아 줘!”
윽. 그럴 줄 알았어.
이때가 기회다! 싶은 마스터가 내 앞에서 넙죽 엎드려 부탁을 한다.
망할.
“뭐예요? 내가 마스터 가겔 왜 맡아요?”
“윽, 그게…….”

“푸하하하. 그래서? 그래서 나보고 일 좀 해 달라고 그렇게 조른 거예요? 으하하하! 나 웃겨 죽겠어! 큭큭큭!”
속이 뒤틀릴 정도로 웃겨 마스터에겐 미안한 줄 알지만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으하하하 나 웃겨! 어떡해!”
탕! 탕! 탕! 탕!
데굴데굴 구르는 걸로도 모자라 바닥을 탕탕 치며 폭소하니 마스터가 흠흠거리며 진정하라 눈치를 준다.
“흠흠!! 너무 웃는다? 나는 절박한데!”
“풉! 서, 서른 살에 대머리! 푸하하하! 탈모! 큭큭!”
스트레스성 탈모가 진행 중이라는 마스터. 얼굴은 한 가게의 마스터답게 멀끔하고 젠틀하게 생겼는데 탈모가 진행 중이란다!
풉!
“푸하하하!”
“야! 이 자식! 가게고 뭐고 너 죽어라! 그냥 죽어! 이 자식 남의 고통을!”
“으악! 미안해요! 미안! 잘못했어!”
진심으로 화를 내는 마스터의 모습에 웃음을 그치고 이야기를 들었다.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여자 집의 아버님이 대머리라 장모되시는 분이 대머리라면 아주 치를 떠셔서 자꾸만 빠지는 머리에 마스터도 마스터의 여자 친구도 고민이 많은 듯했다. 게다가 장모님 이야길 하는 마스터의 눈과 입이 달달거리는 걸로 봐선 장모님의 포스도 대단한 모양이다.
“그래서 나한테 가게 맡겨 놓고 뭐하게요?”
“쉬면서 스트레스도 좀 해소하고 치료도 좀 받고 하게.”
“흐음, 그럼 삼 개월만 맡아 주면 되는 거죠? 으! 나한테 마스터 일 떠맡기고 튀면 죽을 줄 알아요!”
“고마워! 고마워! 진짜 넌 내 구세주다! 구세주!”
“쳇, 부려 먹기 좋을 뿐이죠?”
“에이! 무슨 섭한 말을! 그럼 영훈아, 나는 간다! 삼 개월 동안 여긴 네가 써. 나 치료하러 시골에 간다!”
“어? 마스터! 마스터! 정말 가요? 벌써 가는 거야? 인수인계도 안 하고?”
“너 나가고 나서 달라진 거 하나도 없으니까 걱정 마, 간다! 잘 부탁해!”
“으악! 마스터! 정말 가? 마스터!”
그렇게 마스터는 휑 하니 가게를 떠맡기고 가 버렸다.
쳇, 내가 부려 먹기 좋은 일꾼이라 이거지?
에효. 그나저나 삼 개월 동안 살 곳은 생겼네? 주한석 때문에 아파트 나와서 어쩌나 했는데. 근데 제길! 내 집 놔두고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이지?
익! 주한석! 천하에 나쁜 놈!
“그나저나 마스터는 정말 간 건가?”
정말 간 모양인지 조용하기만 마스터의 집.
내 사랑스런 컬렉션이 들어 있는 짐 가방에 슬금슬금 손을 뻗었다. 입가에 씨익,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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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딱까딱 사무실의 푹신한 의자에 앉아 창밖을 보며 오늘 아침 일을 회상한다. 화를 잔뜩 내며 나가 버린 영훈의 뒷모습이 눈에 선명하다.
‘젠장, 사귀자고 했는데 왜 화를 내는 거지? 이 내가 백번 양보해서 한참 부족한 저 같은 놈한테 먼저 사귀자고 이야길 꺼냈는데도 화를 내다니!’
정말이지 김영훈은 알다가도 모를 놈이야. 바를 그만두게 했으니 아파트로 가야 하는 건가?
“Bar를 괜히 그만두게 했군.”
대체 이 내가 왜 싫다는 거지?
아무래도 집으로 가 봐야 할 거 같아 인터폰을 눌렀다.
[네, 부르셨습니까? 사장님?]
“김 기사, 차 대기 시켜.”
[알겠습니다.]
김영훈에게 가는 도중에도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생각을 정리해 보지만 이 내가 사귀자는데도 마다하는 놈에게 뭐라고 이야길 해야 한단 말인가?
뚜루루루 뚜루루루.
김영훈의 집 앞에서 김영훈에게 전화를 건다. 김영훈 집 창문을 보고 있으니 예전 일이 떠오른다.
“쿡, 아랫도리를 홀딱 벗고 나오다니, 신고하면 잡혀갔을 거라고~”
전화를 받지 않는다. 슬금슬금 화가 나기 시작한다. 설마…… 내 전화라고 받지 않는 건가?
저벅저벅 아파트로 쳐들어가 김영훈의 집 문을 벌컥 연다.
너무나 어이없이 쉽게 열리는 문.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뭐야, 기다렸던 건가?”
그럼 그렇지 하며 신발을 벗고 여유롭게 김영훈을 찾아 모든 방문을 열어젖혔다.
그러나 문을 열 때마다 텅 비어 있는 방과 텅 비어 있는 서랍장만 보였다.
“튀었군.”
저절로 인상이 구겨지고 이가 악물린다.
“이 내가 사귀자고 했는데 튀어? 쿡, 김영훈. 좋아.”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부글부글 속을 끓이게 만드는 김영훈을 어찌해야 할까?
“일단은 잡아야겠지? 지금은 어떤 놈한테 안겨 있는지 몰라도…… 각오하라고.”

“시안의 마스터의 집이라…….”
나를 뭘로 아는 거지? 나한테 소리치고서는 마스터 집으로 도망을 가? 젠장! 김영훈! 어떻게 해서든 나와 사귀게 만들겠어!
“이 주한석의 자존심을 건드렸겠다.”
바드득. 저절로 이가 갈린다. 어찌할까? 이대로 머리채를 잡아 질질 끌고 올까? 아니면 잡아 오라 시킬까? 그럼 그다음은?
제길……. 열이 확 뻗친다. 머리까지 뻗친 화가 열기로 변한 건지 목이 갑갑해 넥타이를 확! 내린다. 조금 열기가 식혀지는 듯했다. 답답한 마음에 바깥구경이라도 좀 하자 싶어 창문가에 선다. 창가에 비친 얼굴이 가관이다.
“쯧.”
저절로 쳐지는 혓소리에 입 안이 쓰다.
“왜…… 내가 싫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