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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족혐오 2화

#1 (2)





아마 상당히 미남이었을 것이다. 눈매가 야살스럽고 입술이 도톰한 게, 웃으면 끼가 넘치고 애교 있어 보일지도 모른다. ‘원래의 얼굴’이었다면 말이다. 남들에 비해 머리 하나는 쑥 올라갈 만큼 큰 키에다 떡대도 당당한데, 얼마나 쥐어 터진 건지 꼴이 말이 아니다. 부어오른 입가와 눈가에는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어 있고, 그걸로도 다 가려지지 않은 피멍의 흔적이 군데군데 보였다.

“……조정오입니다.”

거의 다그침에 가까운 눈총을 받은 끝에 이름을 툭 내뱉는 얼굴이 분노와 불만으로 가득했다. 순간 주헌과 마주친 시선은 찌르는 듯 서슬이 퍼랬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조정오는 다시는 이 자리의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겠다는 듯, 탁자 위로 눈길을 처박은 채 날라져 오는 식사만 우적우적 입에 넣었다. 

꼭 자신을 향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노골적인 적의를 뒤집어쓴 주헌은 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결혼은 굳이 자신이 어쩌지 않아도 틀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서울 외곽의 한정식 집은 위치와 분위기에 비해 다소 소란스러웠다. 토요일 밤이라 그런지, 별채의 룸을 빌렸는데도 간간이 안마당 쪽에서 다른 손님들의 기척이 들려 왔다. 하지만 음식은 정갈하고 맛있었다. 주헌은 이 식당에 좋은 점수를 줬다. 운전해서 오면 회사에서도 금방이고, 좋은 일로 회식할 일이 생기면 적당하겠다.

조현구 의원은 점잖은 신사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대외적인 페르소나가 그렇다는 말이다. 지금 여기는 사실상 거래처 미팅과 다를 바 없는, 사적이면서도 가장 공적인 자리니까. 

주헌은 조현구 의원의 진면목이 어떤 것일지 그다지 알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신호들은 바라지 않는데도 굳이 찾아와 피부를 건드린다. 이를테면 고급스러운 한복을 차려입고 온 부인의 젊어 보이는 화장과 초조한 눈빛, 장남의 경직되고 작위적인 미소, 장녀의 꼭 다물어진 입술과 빈틈없는 몸가짐, 그리고 그 가운데서 홀로 지나친 여유와 과장된 온화함이 넘치는 조현구 의원의 모습 같은 것들. 

의원은 60대의 나이에도 두텁고 힘이 넘치는 체격의 소유자였다. 주헌은 말없이 눈동자만 움직여 흠씬 얻어맞은 정오의 얼굴을 보았다. 

“그럼 둘째 아드님께서도 지금 크레스트 엔터의 법무 팀에?”

갑자기 호출된 주헌은 얼른 고개를 돌렸다. 정오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꽂혀 있었다.

“아닙니다. 지금은 펌에서 근무 중입니다.”

“그래요. 연차가 낮을 때 송무를 배워 뒀다가, 어느 정도 경력이 되면 아버님 회사로 들어오는 것도 좋죠. 저희 처조카도 변호사 일을 하는데, 처음에 자문 일로 시작했다가 몇 년 지나서 송무를 처음 배우려니 꽤 고생을 하더라고요.”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그냥 오해를 하게 내버려 두었다. 얌전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마음에 들었던지, 배성이 웃으며 말했다.

“기왕에 어려운 공부를 했으니 지 뜻대로 이것저것 해 보라고 했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암만 금수저니 은수저니 해도, 저 살길은 결국 지가 찾아 가야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요즘 애들이 또 부모 맘대로 되는 애들입니까, 어디.”

단체 식사에서, 한정식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상 전체가 음식으로 가득 차 있어서 언제고 음식에 열중한 척 귀를 닫아 둘 수 있다는 것이다. 주헌은 상 위로 오가는 대화에 모르쇠로 일관하며 배를 채웠다. 경청하고 있는 시늉이라도 하다간 저도 모르게 어깃장을 놔 버릴 것 같아서.

탕평채를 개인 접시로 덜어 오려다가, 접시 위에서 진우와 젓가락이 부딪쳤다. 고개를 들자 진우는 경멸이 어른거리는 시선으로 이쪽을 보고 있다. ‘네가 잘되는 꼴은 못 봐 주겠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듯한 얼굴.

화려한 셔츠에 더러운 낯짝 하며, 이진우의 행색은 일수가 쏠쏠한 날의 양아치나 다름없었다. 원래 그런 인물이니 오늘이라고 딱히 악의가 있어서 저러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진우의 옆에 앉아 있는 둘째 영우, 배성의 아내인 수진, 그리고 배성과 주헌까지, 상대방 눈에 이쪽 가족들이 진우와 딱히 다른 종류의 인간으로 보일지는 의문이었다. 

배성이 처음부터 연예 사업을 하려고 시작했던 건 아니었다. 주헌의 조부는 경기도 남부에서 부말 막걸리라는 상표를 달고 양조장을 하던 사람이었다. 규제가 오래 이어졌기 때문에 지역 독점 막걸리로 문제없이 자리매김하며 사업을 이어 오다가, 2000년대 초반 변화의 시기에 기세를 잘 탄 공격적인 영업과 부동산 투자가 대박을 내면서 부말 막걸리는 일약 전국적 브랜드로 성장하게 된다. 이때 결정적으로 사업 수완을 발휘한 사람이 배성의 큰 형인 이주성이었다. 엄청나게 덩치가 커진 사업체의 경영권은 자연스럽게 장남에게로 넘어간다. 

집안에 돈은 넘쳐나게 되었지만 3남 2녀의 나머지 자식들에게 감투는 분배되지 않았고, 남매들은 불만을 품은 채 집안의 자본으로 각자 도생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중 우연히 대박을 낸 사람이 배성이었다. 

배성은 그간 사업상 이런저런 도움을 주고받으며 지낸 건달 지인들 중 한 명의 권유로 연예 기획사에 투자했으나, 사실상 사기를 당한 수준으로 대차게 손해 보게 된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건달 지인은 모든 것을 버리고 미국으로 도망쳐 버린 후였다.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고 인정하기 싫었던 배성의 황소 같은 기질이 여기서 발휘된다.

기획사를 인수한 배성은 거의 엎어졌던 드라마에 거액의 제작 지원비를 투자했는데, 이 드라마가 폭발적인 흥행에 성공하면서 중국에도 수출되어 기획사를 일으켜 세우는 초석이 되었다. 여기까지가 대략 2005년도 전후의 일이다.

주헌이 느끼기에, 이 집안의 가풍은 완전히 졸부의 그것이었다. 그리고 조현구 의원은 실제야 어떻든 2000년대에 들어와 사업 성공으로 돈방석에 앉은 사람이었으니, 간단히 졸부라고 불릴 법했다. 자신이 이 만남의 당사자만 아니었더라면, 양가의 레벨이 적절한 매칭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막내 아드님께서는 어쩌다 얼굴이 그렇게……?”

배성이 눈치 없이 정오의 얼굴에 난 상처를 입에 올렸다. 조현구 의원이 어색하게 웃으며 막 둘러대려던 참이었다.

“아부지한테 죽도록 얻어맞았어요. 여기 오기 싫다고 했다가.”

꿍얼꿍얼 이름을 말한 것 빼고, 그것이 정오의 첫마디였다. 

기이한 침묵이 식탁을 천천히 가로질러 갔다. 서로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눈만 껌뻑거리는 사이, 정오는 묵묵하고 성실하게 젓가락을 놀려 접시를 비워 나갔다. 이 많은 사람들을 앞에 두고 혼밥 먹방이라도 하는 양 거침없는 기세다. 아까 터뜨리려다 불발된 조현구 의원의 연극적인 웃음이 뒤늦게 튀어나왔다.

“아하하, 그 녀석이 참, 그거 때문이 아니래도. 아직도 화가 나 있는지, 하하.”

“아이 뭐, 자식 키우다 보면 그럴 일이 또 생기고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해합니다, 하하.”

“어제 제가 다른 일로 좀 야단을 쳤는데, 아무래도 저 녀석이 오해를 해서는 아직도 속 좁게.”

“뭔 오해를 해요? 죽어도 결혼 안 한다 했더니 덮어놓고 두들겨 팼잖아요.”

정오가 다시 대거리를 했고, 이번엔 수습할 수 없었다. 조현구의 얼굴이 너무 급하게 말리느라 갈라져 버린 석고상처럼 변했다. 실내의 온도가 순식간에 5도쯤 내려간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였다. 좌중은 빙하기처럼 찾아온 두 번째 침묵을 속수무책으로 흘려보냈다.

“거의들 다 드신 것 같은데, 디저트를 달라고 할까요?”

수진이 가까스로 돌파구를 찾아내자, 모두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꿋꿋하게 먹고 있는 정오에 대해서는 아무도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수진이 주헌을 향해 손짓했다.

“얘, 사람 좀 불러 봐라.”

“……네!”

주헌은 기어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해 끅끅거리며 대답하고 말았다. 차가운 시선이 날아와 꽂혔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맘 같아서는 폭소를 터뜨리고 싶을 만큼 이 상황이 우스운 것이다.



“너 미쳤니? 조 의원 식구들 앞에 두고 그 상황에 웃음이 나와?”

돌아가는 차 안에서, 결국 폭발한 수진이 날카롭게 짜증을 부렸다. 

“죄송합니다.”

“하여튼 머리에 정신이 제대로 박힌 인간이 하나도 없어. 의원 아내라는 건 대놓고 사람 무시하는 눈으로 꼬나보지를 않나. 지 남편이 국회의원이지 지가 의원이야? 막내아들 놈은 대체 뭐 하는 놈이야? 무슨 깽판 놓으러 온 양. 맞았다는 것도 뻥이고 그 새끼도 어디서 건달 놀음 같은 거 하고 돌아다니는 거 아냐? 꼴값들하고는, 아주 단체로 사람을 우습게 보지 않고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그만해라, 시끄럽다.”

“당신이 도대체 어떻게 얕보이고 다녔길래 이러냔 말야!”

“그만하라고 했다!”

배성과 수진이 서로 성질내는 소리를 들으며, 주헌은 속으로 생각했다.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은 아버지와 조현구 의원님이 결혼을 하시는 거 아닐까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다시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아서 입술을 꾹 깨물어야 했다.



***



월요일에 출근하자마자 현아가 사무실 건물 1층의 카페로 주헌을 납치하다시피 끌고 갔다.

“너 상견례한다던 거 어떻게 됐어?”

반짝이는 두 눈에 미안하게도, 전해 줄 만한 희소식이 없었다.

“상견례 아니라니까 그러네.”

“아니, 뭐가 됐든 네 배우자 후보 비슷한 게 나왔을 거 아냐. 어떻든?”

어땠더라. 얼굴을 평가하자니 부상으로 인해 판정 불가, 몸매를 평가하자니 내내 앉아만 있어서 판정 불가, 태도를 평가하자니 좀 똘끼가 있어 보이더라는 말을 하기엔…….

“그쪽은 결혼하기 싫은가 보더라.”

최대한 중립적인 정보를 찍어서 전달했다. 현아는 더욱 상반신을 숙이며 관심을 보였다.

“넌 어떤데?”

“나? 글쎄…….”

주헌은 고개를 갸웃했다. 애초에 자신의 희망으로 얘기가 시작된 혼사가 아니다. 그럼 자신의 희망으로 중단을 하는 건 가능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