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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 누리 리싸이클링




연극영화학과 3학년, 이시우.
그는 아버지의 고물상을 물려받지 않겠다고 뛰쳐나와 곧장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렇게 5년이 지난 지금.

― 오후 3시에 가마.

갑작스런 아버지의 통보에 급히 청소를 하는 중이었다.
아무리 둘 사이가 데면데면하다지만, 이런 지저분한 방에 아버지를 들일 수는 없었다.
애초에 부자 관계가 틀어진 이유는 고물상이나 아버지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함께 일하던 장성우 이사가 문제였지.
만약 그 사람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아버지에게서 열심히 일을 배우고 있을 수도 있었다.

‘뭐, 이미 지나간 얘기지. 그나저나 시간 약속은 철저하신 분인데…….’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던 그때.
위이잉―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광고전화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아버지가 떠오르니 왠지 모를 위화감이 들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혹시 이도운 님과 사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아들입니다. 그런데 누구시죠?”

답을 듣자마자 전화 너머에서 들려오던 여인의 목소리가 숙연해졌다.

[한성병원입니다. 3시 12분, 이도운 님께서 사망하셨습니다. 아직 경찰 측에서 연락을 받지 못하신 것 같네요.]
“…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장성한 목소리로 찾아오겠다고 말하던 아버지였다.
이시우는 동작을 멈추고 멍하니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아버님께서 일하시는 현장에서 사고가 있었다고 하네요. 자세한 건 병원에 오셔서 직접 경위를 들으시는…….]

이시우는 전화를 끊고 대충 겉옷을 걸쳤다.
그러고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다급하게 자취방을 나갔다.

***

사고였단다.
이시우의 아버지, 이도운은 고물상을 운영하는 사장이었다.
고철을 하차하던 도중 주변에 서서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화를 당했다고 한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상황이었기에 미처 피하지 못하고 날카로운 고철에 머리를 맞아 쓰러지게 되었다고.
급히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끝끝내 회생할 수 없었다.

3일 동안 이도운의 장례식을 치르고 고물상 앞에 선 이시우가 담벼락에 적혀 있는 글자들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누리 리싸이클링. 고철, 비철, 파지 최고가로 매입합니다.’

서툴게 페인트로 그려진 글씨들.
이도운이 처음 고물상 사업을 시작했을 때, 정성껏 이시우와 함께 적은 글자들이었다.
멍하니 그 글자들을 올려다보고 있던 이시우가 입술을 깨물었다.
3일 동안 상을 치르면서, 이시우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지금이 꿈인지 현실인지 도무지 분간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고물상 입구를 지나 들어가면 언제나 그랬듯이 아버지가 혀를 차며 잔소리를 할 것만 같았다.
이시우가 멍한 눈빛으로 고물상 안으로 들어가자, 아버지가 아닌 고물상의 이사였던 장성우가 담배를 입에 물고 서 있었다.

“왔냐?”
“…네.”

장성우의 입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
역한 담배 냄새가 이시우의 코끝을 찔렀다.
아버지는 담배를 좋아하는 장성우에게 항상 이런 경고를 했다.
일을 하면서 피우는 것까지는 관여하지 않겠으나, 이시우의 앞에서는 피는 것까지 용납하진 않겠다고.
그의 말대로 장성우는 절대 이시우의 앞에서 담배를 피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저도 모르겠어요.”

짝다리를 짚은 채 사무실을 바라보던 장성우가 비웃음을 흘렸다.
아버지와 장성우.
두 사람의 인연은 10년 전으로 흘러가야 할 정도로 꽤 깊은 관계였다.
고철상을 크게 하다가 망한 장성우에게 아버지가 손을 내밀어 줬다.
그렇게 10년 동안 아버지의 밑에서 장성우는 사업을 하며 진 빚을 대부분 갚을 수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빚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을 터였다.

“장 이사님, 고물상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차피 고물상에 너도 미련은 없잖냐. 적당한 가격을 받고 넘겨. 퇴직금은… 사정을 생각해서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챙겨 줬으면 하는데.”

이시우는 장성우가 싫었다.
장성우가 이곳에 발을 붙이기 전에 이시우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함께 고물상을 해 왔다.
굴삭기 자격증부터 1종 면허, 대형 면허는 물론이고, 지게차 자격증까지 가지고 있었다.
힘겹게 모은 돈으로 이 땅을 구입해 고물상을 만들 때까지만 해도 이시우는 아버지의 말에 고분고분하게 따랐다.
하지만 문제는 장성우와 이시우와의 관계가 급격하게 악화되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의 문제가 일어난 것은 이시우가 장성우를 의심하기 시작하면서였다.

‘이상했지. 들어오는 고철의 양은 정확하게 기록해 놨는데, 매번 나가는 고철의 양은 그것보다 더 적었으니까.’

이시우는 장성우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물건을 가져가는 중간상이라 불리는 업체도 장성우가 가진 인맥으로 연결된 곳이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려했을 때, 장성우가 업체와 손을 잡고 고철의 양을 고의적으로 줄였다고 밖에는 답이 없었다.
그래서 이시우는 아버지에게 장성우를 내쳐야 한다고 수없이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오히려 이시우를 나무랐다.

― 10년이라는 인연이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다.

사람을 그리 쉽게 의심하는 게 아니라며 역정을 내던 아버지.
이시우는 속상했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말을 듣고 한 번이라도 살펴보고 그런 말을 했더라면 억울하지도 않았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장성우가 아버지의 신임을 받고 날뛰는 꼴을 지켜볼 때면 열이 뻗쳤다.
그 이후로 이시우는 고물상 일을 도와주지 않고 대학 생활에만 전념했다.
괜히 장성우와 마주쳐 화가 날까 봐 고물상에도 명절이나 중요한 날이 아니면 오지 않았다.

“지금 고물상의 재정이 많이 좋지 않다고 들었어요.”
“다행히 빚은 없지만, 기존에 있던 자금을 대부분 까먹었으니까.”
“시기를 놓쳤다죠? 이사님이 가지고 있으면 더 큰 이득을 낼 수 있다고 해서 아버지께서 일부러 판매하지 않고 지금까지 쌓아 놓았다고 들었는데요.”
“하, 그래서? 재정 상태가 이 지경이 된 게 내 탓이라는 거냐?”

장성우가 인상을 구기며 손에 든 담배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그러고는 발로 담뱃불을 끄고 이시우를 노려보았다.
이시우는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결정은 아버지가 내린 거죠. 그냥 그렇다는 거예요.”
“상심이 크다는 것도 알고, 힘든 상황이라는 것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시우 네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내가 무슨 생각으로 10년이나 도운이 형님이랑 같이 일했다고 생각하는 거냐?”
“죄송합니다.”

할 말은 많았지만, 이시우는 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저 심증만 있을 뿐이지, 장성우가 비리를 저질렀다는 정확한 물증이 없었기 때문이다.

“괜히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고물상이나 정리해. 형님이 돌아가셔서 그런지, 직원들이 전부 퇴사 신청을 했으니까 말이야. 2년에서 3년 동안 일한 사람들이니, 퇴직금을 지급하려면 고물상을 처분하는 게 좋을 거다.”

3일이었다.
고작 3일 만에 직원들은 퇴사를 결정했다.
1,000평 남짓한 고물상에서 직원으로 생활하던 이들은 총 세 명.
마당을 관리하는 사람 둘과 집게차를 운전하는 기사 한 명.
그리고 장성우까지 포함하면 총 네 명의 직원에게 퇴직금을 챙겨 줘야 했다.

“다른 직원분들의 퇴직금은 챙겨 드릴 수는 있어도, 이사님의 퇴직금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뭐? 그게 무슨 소리냐?”
“아버지가 이사님의 사정을 생각해서 세금도 공제하지 않고 현금으로 월급을 주셨죠. 그 때문에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서 이사님에게 지급될 퇴직금을 세금 처리를 할 수가 없네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이시우의 말을 듣던 장성우가 헛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세금 처리는 필요 없잖냐. 고물상을 그대로 이어받을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넘길 거면…….”

장성우의 말을 가만히 듣던 이시우는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것 같았다.
본래는 장성우가 남아 고철을 하차하는 일을 책임졌어야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사고 나던 날, 장성우는 무단으로 결근했다.

‘원래라면 일을 일찍 마무리하고 오셨어야 할 아버지가 마당에 남아 있었던 이유기도 하지.’

으득.
눈에서 천불이 일어나는 것만 같았다.
심지어 이틀 전부터 아들에게 다녀온다고 미리 장성우에게 신신당부했다고 아버지에게 전해 들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가 이렇게 세상을 떠난 것이 장성우의 탓처럼 느껴졌다.

“전 아버지가 일궈 놓은 이 고물상을 다른 사람에게 넘길 생각이 단 일도 없어요, 장 이사님.”
“뭐?”
“제가 고물상을 이을 거라고요.”

당연히 이시우가 고물상을 판매할 것이라 여긴 장성우가 예상외의 말을 듣고 당황했다.

‘엿이나 먹어라. 아버지는 당신을 끝까지 믿었지만, 난 절대 믿지 않아.’
“경험도 없는 놈이 무슨 고물상을 운영하겠다고 그러냐? 그러지 말고…….”

경험이 없다는 장성우의 말에 이시우는 콧방귀를 뀌었다.

‘경험이 없기는 무슨.’

이시우는 중학교 시절부터 아버지를 도와 고철과 파지, 비철 등, 다양한 물건들을 보고 경험해 왔다.
그 수 년간의 기억과 경험이 있었다.
심지어 굴삭기를 운전할 수 있었으며, 집게차도 운전이 가능했다.
자신이 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고물상을 운영하는 데 무리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이시우는 상황이 장성우의 뜻대로 흘러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퇴직금은 드릴게요. 원래대로라면 절대 지급하지 않겠지만, 아버지와 이사님과의 인연을 생각해서 드리는 거예요.”

혼자서 이 일을 하게 되더라도 절대 장성우와 다시는 엮이고 싶지 않았다.
단호한 이시우의 말에 장성우가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후우, 네 마음대로 해. 과연 젊은 놈 혼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쯧, 이건 오랜 시간 널 봐 온 삼촌으로서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네.”
“괜찮아요. 어떻게든 꾸려 나갈 거니까요.”
“아, 그리고 그것도 알고 있어라. 더 케이 베스틸에서 더는 여기 물건을 가져가지 않는다고 하더라. 어휴, 인맥도 없는 네가 이 바닥에서 새로운 거래처를 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

더 케이 베스틸.
현재 누리 리싸이클링의 물건을 떠 가는 중간상이었다.
보통 고철을 취급하는 고물상의 종류는 네 가지가 있었다.
도보꾼, 바닥 고물상, 중간상, 대상.
1t 차량을 끌고 개인적으로 움직이는 이들을 ‘도보꾼’이라 불렀다.
그리고 도보꾼이 가져오는 물건을 모아 넘기는 것이 바닥 고물상이었다.
제철소로 직접 들어갈 수 있는 코드를 빌려 수수료를 내는 것이 중간상.
마지막으로 제철소와 직접 계약을 하고 납품할 수 있는 코드를 딸 수 있는 대상이 있었다.
더 케이 베스틸은 중간상이었다.
더 케이 베스틸에게 들어가는 고철의 가격은 제철소로 들어가는 것보다 20원 정도 낮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더 케이 베스틸과의 거래를 중단하지 않았다.
평소 그가 중시하던 ‘신뢰’라는 것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더 케이가 먼저 우리를 버린 거라면, 새로운 곳을 알아보면 그만이야. 하지만… 뭔가 이상하네. 대상도 아닌 중간상 정도 되는 규모면서 매달 30톤 정도 나오는 거래처를 쳐낸다니…….’

“제 앞날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이사님.”

으드득.
장성우는 한동안 이를 갈더니, 이내 실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어차피 새로운 직장이 될 곳은 이미 정해진 상태였다.
공교롭게도 장성우는 내일부터 더 케이 베스틸로 출근할 예정이었다.

“그래, 알았다. 잘해 봐라. 아, 그리고 보니 민원이 몇 년 동안 계속 빗발치고 있어서 그것도 조치해야 할 거다.”
“그것도 제 선에서 해결해 보도록 할게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시우는 빨리 장성우를 여기서 떠나보내고 싶었다.
괜히 그가 여기에 남겠다고 할까 봐 걱정이 됐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장성우는 뒤도 안 돌아보고 고물상을 떠나 버렸다.
홀로 남은 이시우는 잠시 고물상을 둘러보았다.

‘해 보다 정 안 되면… 그때 생각하면 돼. 고철이 저렇게 쌓여 있는데. 저게 다 얼마야. 저것까지 통째로 넘길 수는 없지.’

마당에 가득 쌓여 있는 고철들.
만약 제대로 처리만 했다면 적어도 20원에서 30원까지는 이득을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장성우를 믿고 기다렸다.

‘욕심을 부리다 마이너스를 타기 시작했겠지. 후우, 능력도 없는 사람에게 신뢰 하나만으로 고물상의 모든 것을 맡겼으니까.’

이시우는 복잡한 시선으로 고물상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 그리움, 그리고 앞날에 대한 걱정까지.
이제 아버지의 흔적이라고는 이 고물상과 고철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괜히 눈물이 차오르는 것 같아 이시우는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결국 눈틈을 비집고 눈물이 흘러나왔다.

한동안 어린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 넓은 고물상을 작게 울려 퍼졌다.

***

이시우는 눈가의 물기를 닦으며 고민했다.

‘승산은 있어. 직원 없이 나 혼자서 어떻게든 꾸려 나가면서 버티면 돼. 고철 가격도 언젠가는 오를 테고.’

문제가 있다면 직원들의 퇴직금이었다.
세금을 공제하고 법인 계좌에 남아 있는 금액으로 처리하면 될 일이었지만, 승계 부분을 마무리해야 했다,

‘우철이 삼촌이라면 날 도와주실 거야. 분명히.’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본 얼굴.
아버지의 오랜 친구 중 유일하게 변호사가 된 이었다.
그리고 이시우와도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이기도 했다.
이시우는 전화를 걸기 위해 핸드폰을 꺼냈다.

― 우철이 삼촌.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달라며 장례식장에서 이시우를 부둥켜안고 오열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또다시 코끝이 시큰해지던 것을 느낀 이시우은 서둘러 고개를 저어 상념을 떨쳐 내고 전화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통화음이 그쳤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우야?]
“우철 삼촌, 잠깐 시간 좀 내주시면 안 될까요?”
[얼마든지 내 줄 수 있지. 나도 할 말이 있던 참이었는데 잘됐네. 으음, 4시쯤에 괜찮을까? 어디로 가면 되니?]
“4시에 고물상으로 오시면 되요. 오시는 길은 아시죠?”
[물론이지. 금방 갈 테니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고마워요, 삼촌.”
[그런 말 하지 마. 이런 걸로 고맙다는 소리 들으면 도운이 녀석한테 내가 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