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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차강현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흰색 헨리 넥 셔츠에 두드러진 널찍한 어깨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소매를 반쯤 걷어 올린 탓에 견고한 팔뚝이 한층 더 부각되어 보였다. 고강도 근력 운동으로 단련된 다부진 체격과 반듯한 자세는 잘 훈련된 용병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180 중후반쯤 될까. 늘씬하게 뻗은 신장은 한참 시선을 올려야 겨우 닿을 정도였다. 우월한 피지컬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배합이다.

“아, 선배. 오셨어요?”

뒤에서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2팀 막내 세찬이 반갑게 해성을 맞았다.

“아, 응.”

해성은 애써 강현의 시선을 피하며 세찬을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찬은 평소답지 않게 공포에 질린 얼굴로 남자를 가리키며 입을 벙긋거렸다.

‘성격 진짜 장난 없음.’

그 뜻을 전달받은 해성이 시선을 내려 손목을 확인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지각인가 싶었다. 역시나, 출근 시간까지 아직 15분이나 더 남아 있었다.

그때, 강력 2팀 사무실에서 작정하고 빈정거리는 음성이 넘어왔다.

“세상이 말세다, 말세. 한 달 전에는 웬 햇병아리 같은 게 들어오질 않나, 이번에는…….”

“아이고, 우리 조 경위님 오늘따라 이상하게 예민하시네!”

눈치껏 끼어든 세찬이 말을 싹둑 끊어 냈다. 올해 마흔하나인 조형운 경위는 우회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세워 둔 기준에 조금이라도 미달이거나 도움이 안 될 것 같다 싶으면 누구든 가차 없었다.

상사의 말을 잘라먹은 세찬의 건방진 선택은 백번 옳았다.

“경위님 설마, 수당 나온 거 또 사모님한테 말씀 안 드렸어요?”

형운이 흠칫하며 버럭 소리쳤다.

“야, 인마! 너 누가 상사 개인 집안 사정을 그렇게 예고도 없이 무차별로 발설하래. 어? 너 요즘 귀엽다, 귀엽다 해 주니까 점점 기어오른다? 밥풀만도 못한 놈이.”

“에이, 맞네. 비자금으로 쓰려고 수당 숨겨 뒀다가 사모님한테 딱 걸리셨네. 목 안 마르세요? 제가 얼른 가서 커피라도 뽑아 올까요?”

“마시고 입 닥치란 소리냐?”

“아닌 거 아시면서 그런다.”

사실 일개 순경이 경위에게 저런 말장난을 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만큼 좋고 싫음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조형운 경위의 마음에 들기까지의 과정은 어려울지 몰라도 한번 품으면 진한 유대감을 드러냈다.

붙임성 좋은 세찬이 싫지 않았던 조형운 경위는 휘휘 손을 내저으며 다시 모니터를 응시했다.

사무실에 들어가지도, 그렇다고 뒤돌아 나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멀뚱히 서 있는 해성을 구제해 줄 사람은 세찬뿐이었다.

“선배, 저희 강력 2팀 새로운 팀장님이세요. 차강현 경감님.”

“아…….”

면전에 와 닿는 남자의 집요한 눈빛이 슬슬 따갑다 생각될 때쯤, 세찬이 말을 덧붙였다.

“서울청 광수대 광역 1계 에이스셨대요, 팀장님. 완전 대단하죠.”

세찬은 오늘 아침 3팀 팀장님에게 들었다며, 굉장한 비밀을 털어놓듯 쓸데없이 비장하게 굴었다.

광역수사대는 한국판 FBI로 알려져 있으며, 이슈에 오르거나 비교적 규모가 큰 사건을 주로 맡는다. 그만큼 유능한 엘리트들이 모인 곳이었다. 이미 은영에게 전해 들었기에 세찬의 부연 설명은 조금 늦은 감이 있었지만 해성은 어색하게 웃음 지으며 말을 얼버무렸다.

“김세찬 순경.”

나직한 음성이 엄숙하게 흘러나왔다. 정이라곤 반 푼어치도 찾아볼 수 없는 말투는 어딘가 고압적이기까지 했다.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건 해성뿐만이 아니었다. 생글거리며 오지랖을 부리던 세찬 역시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자세를 똑바로 고쳐 섰다.

“예. 팀장님.”

“아까부터 한가해 보이는데.”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가서 일 봐요.”

강현의 미미한 턱짓 한 번에 세찬은 빛의 속도로 뛰어 들어갔다.

정중하면서도 무례한, 그 어딘가 중간쯤. 존대와 반말이 섞인 말투는 묘하게 어긋나 있어, 이질적인 풍경을 선사했다.

차강현은 형사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번듯한 검은색 슈트를 차려입고 경영을 진두지휘하는 고상한 대기업 임원 쪽에 가까웠다. 아니라면, 범죄자를 처단하는 냉철한 판검사도 어울리겠다. 뭐가 됐든 은영의 말처럼, 차가운 왕자님 타입에 더 가까웠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매혹적이면서도 남성적인 그의 외모에 적잖게 당황한 듯, 해성은 조그맣게 입술을 벌리고 강현을 올려다보았다.

“이름이.”

눈이 마주치자 멀어진 정신이 번쩍 돌아왔다. 질문에 대답하려는데, 강현이 더 빨랐다.

“……이해성?”

호흡이 덜컥 멎었다. 거센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입안에서 질척한 혀가 느리게 굴러가며 고요히 발음되는 순간, 해성은 자신의 이름이 먼 타인의 것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어떻게 알았을까. 추론은 쉬웠다. 짙게 깔린 시선은 해성의 목에 걸린 경찰증에 고정되어 있었다.

“신기하네.”

그것만으로는 만족이 안 됐는지 강현은 거리낌 없이 손을 뻗었다.

“잠시 실례.”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해성의 경찰증을 확 잡아 올렸다. 강한 힘에 팽팽하게 당겨진 목걸이 끈이 뒷목을 꾹 짓눌렀다.

직접적인 접촉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발가락부터 정수리까지 일련적으로 소름이 쫙 돋았다. 간신히 발가락에 힘을 주어 버티는 게 전부였다. 그는 마치, 목줄을 움켜쥔 주인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해성은 겨우 입을 열어 대답했다.

“한 달 전 강남경찰서 강력 2팀으로 인사 발령 받은 경장 이해성입니다. 그리고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어깨에 이마를 부딪힌 것에 대한 사과였다. 돌아온 말은 없었다. 철저한 무시로 답하며, 강현은 천천히 해성의 얼굴을 훑어 내렸다.

심해처럼 검고 깊은 눈동자의 움직임은 더없이 느렸고 신중했다. 도마 위에 놓인 생선이 된 기분이었다. 생살을 도려내고 몸 전체를 해부당하는 것처럼. 두려우면서도 꺼림칙했다.

“이해성…….”

남자의 눈이 가느다래졌다.

이름을 곱씹는 의미를 알 수 없어 해성은 목이 바싹 타들어 갔다.

하지만 남자를 관찰하는 것을 멈추진 않았다. 내심 궁금했으니까.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직접 마주한 차강현의 실물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훌륭했다. 너무하다 싶게, 비현실적인 외모였다.

깔끔하게 올려 넘긴 포마드 헤어스타일이 그의 성향을 대변했다. 자로 잰 듯 높고 곧게 뻗은 콧대와 정교한 눈매. 그 속에 박힌 날카로운 눈빛은 감히 쉽게 대적할 수 없을 만큼 그 기세가 실로 대단했다.

차갑고 냉정한 분위기를 극대화시킨 것은 남자가 가진 특유의 분위기였다. 흔들림 없는 차분함. 가만히 상대를 주시하는 것뿐인데 그 압도적인 위압감에 짓눌려 숨 한번 제대로 쉬는 것조차 힘겨웠다.

“흔한 이름이네.”

경찰증에서 손을 떼며, 강현이 슬쩍 고개를 추켜들었다.

“그래서, 소감은?”

“……예?”

손이 참 크다. 길쭉한 손가락에 잘 정돈된 손톱마저 빈틈이 없다. 멍청한 생각을 하는 바람에 이상한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강현의 한쪽 눈썹이 슬쩍 올라섰다.

“그쪽도 나 봤잖아요. 공평하게.”

마치,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다는 말투였다. 강현은 여전히 턱을 기울인 채, 해성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냥. 새로 온 팀장님이시구나, 생각했습니다.”

입 닫고 있는 편이 백번 나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이가 없었는지, 그의 잇새로 바람 빠진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새어 나왔던 것 같기도 하다.

“인사팀을 뒤집어 놓을 수도 없고…….”

강현은 위험한 발언을 거리낌 없이 터놓았다. 아무리 팀장이라지만 한 달이나 먼저 발령받아 온 건 해성이었다. 그런데 강현은 해성을 굴러 들어온 돌 취급 하는 것으로 모자라 인사이동 선정에 불만을 드러냈다. 해성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적당히 놀다 가요. 가능하면, 조용히.”

그게 끝이었다. 강현은 대충 손에 들고 있던 검은색 항공 점퍼를 단숨에 돌려 입고서 그대로 해성을 스쳐 지나갔다. 외부 사람을 대하는 듯한 태도와 대놓고 선을 긋는 존대는 마치,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는 것처럼 들렸다.

해성은 다급히 몸을 돌려세웠다.

“팀장님.”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던 길쭉한 두 다리가 우두커니 멈췄다. 무심한 얼굴이 살짝 옆으로 돌려지자, 해성은 조심히 본론을 꺼냈다.

“사건 배당은 어떻게…….”

“이해성 씨가 맡게 될 사건은 없습니다. 앞으로도, 없을 거고.”

이해성 씨라니. 경찰 직원 취급조차 받지 못했단 사실만으로도 황당한데, 사건 배당에서 완벽히 제외하겠단 발언은 더욱 기막혔다. 해성이 약하게 인상을 구겼다.

“제가 여자라서 못마땅하신 건 압니다. 하지만.”

“여자라서?”

“아닙니까?”

강현이 비스듬히 해성을 응시했다.

“원래 그렇게 판단이 성급한 편입니까.”

“그게 무슨…….”

잠시 내려가는가 싶던 그의 눈꺼풀이 날렵히 떠밀려 올라갔다.

“난 단순히 이해성 씨 자체가 마음에 안 들었던 것뿐인데.”

말문이 턱 막혔다.

“경찰, 왜 됐지?”

면접에서나 물을 법한 이상한 질문이었지만 해성은 다른 의미로 정곡에 찔려 대답할 수 없었다.

“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떠안고 싶지 않아요. 어린애 돌보는 취미는 더욱 없고. 알다시피 겸직은 불법이니까.”

독설을 뱉는 사람치고는 지극히 나른한 얼굴이었다.

오만한 시선이 거만하게 내리깔렸다.

“이만하면, 대답 됐습니까?”

언성을 높이는 일은 없었다. 관심도,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강현은 잠긴 음성으로 차분히 상황을 마무리 지었다.

해성은 잡을 새도 없이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넋 놓고 바라봤다.

미처 건네주지 못한 그의 경찰증을 부서질 듯 억세게 손에 쥔 채.



* * *



“하여튼. 누가 광수대 소속 아니랄까 봐. 폼이란 폼은 혼자 드럽게 잡아요, 아주.”

팀장이 자취를 감추자, 조형운 경위는 기다렸다는 듯 구시렁거리며 강현을 야멸차게 씹었다. 해성의 곁으로 다가온 세찬이 작게 속삭였다.

“신경 쓰지 마요, 선배. 조 경위님 성격 알잖아요. 상황도 그렇고.”

“상황?”

“팀장님은 경찰대 출신이고, 경위님은 우리처럼 공채 출신이니까.”

아, 답 나왔다.

“아무리 차 팀장님이 직급도 높고 엘리트라 해도, 조 경위님 경력이 얼만데요. 예정대로라면 정년 퇴임 하신 팀장님 자리에 조 경위님이 앉는 걸로 내정됐었는데, 뜻하지 않게 차 경감님이 오시는 바람에. 어휴.”

“아…….”

세찬의 말처럼 어느 정도 경력을 인정받은 공채 라인 직원들은 경찰대 출신 경찰을 달갑지 않게 생각한다.

경찰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현장 경험인데, 공부 머리가 우월하단 이유로 간부 자리에 덜컥 올라서는 모양새가 곱게 보일 리 없었다. 자리까지 빼앗겼으니 속에서 천불이 날 만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꼭 저렇게까지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며 같은 팀 동료끼리 얼굴 붉힐 필요가 있을까, 답답하기도 했다.

세월 좋게 누굴 걱정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망한 것 같네.”

정신없이 스쳐 지나간 방금 전 상황이 떠올라 절로 한숨이 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