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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부, 분대장님! 3소대 놈들이 찢어졌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발생한 3소대의 움직임에 2소대원들이 당황했다.

2소대장인 샤를은 마법사관학교 출신답게 뛰어난 실력과 명석한 두뇌를 지닌 엘리트였다.

다만, 엘리트이기 때문인지 샤를은 부하들이 통제되지 않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어떡하지? 소대장님이 내린 명령은 자신을 지켜라.’

‘하지만 가만히 놔두면 2소대가 산개된 것 때문에 마법이 빗맞았다고도 지랄할 사람이데…….’

‘그렇다고 마법술식 계산하느라 바쁘신 소대장님을 부르면 그건 또 그거대로 지랄할 테고…….’

2소대 소속 분대장들이 난감한 상황에 골머리를 앓았다.

그러는 동안 3소대의 좌익과 우익은 날개를 거의 다 편 상황.

“아, 몰라! 일단 막아!”

답답한 상황에서 2소대 1분대장은 그나마 가장 혼날 가능성이 적은 선택지를 골랐다.

샤를 중위는 자신의 생각대로 전황이 흘러가는 것을 선호하고, 그 반대로 예상 밖의 변수가 발생하는 것을 싫어하는 인물이었다.

대신, 그런 만큼 확실히 승산이 있는 싸움에서는 거의 져 본 적이 없기도 했다.

“우리도 좌우로 펼쳐! 녀석들이 산개하지 못 하게 몰아!”

샤를을 가로막고 있는 2소대의 방벽의 두께가 서서히 얇아지기 시작했다.



***



[잭스! 놈들이 날개를 편다!]

눈가에 자상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애꾸눈은 아닌 발터 병장이 잭스에게 자신이 본 것을 보고했다.

[발터 병장님! 알렉스 병장님! 양익의 선두부터 머리에 합류하십시오! 소대장님! 지금 입니다! 적의 심장을 꿰뚫어 주십시오!]

평소 <하르마 로얄>에서 내가 즐겨하던 포지션.

그것은 바로 근거리 돌격전사였다.

공격적인 성향이 워낙에 강하다 보니 앞뒤를 가리지 않고 상대가 보이면 일단 싸움부터 거는 나에게 있어 기본적으로 능력치가 좋고 방어 아이템을 두르는 근거리 돌격전사는 나에게 가장 안성맞춤인 역할 군이었다.

저 멀리 적의 공격이 닿지 않는 곳에서 공격하는 원거리 딜러의 야비한 플레이보다는 근접에서 정신없이 벌어지는 근거리 전투가 훨씬 플레이하는 맛이 있었다.

보통 전사라 하면 전황을 보며 오더를 내리는 지휘관형 퓨어 탱커를 연상하는 경우가 많았다.

팀원들에게 오더를 내리면서 유기적으로 개전을 하는 지휘관형 퓨어 탱커도 재미있는 포지션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게임 외적으로의 재미일 뿐.

게임 내적으로 퓨어 탱커는 이동속도든 공격속도든 뭐든지 느린 경우가 많아 플레이할 때는 답답한 경우가 많았다.

내가 말한 근거리 돌격전사는 그런 퓨어 탱커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내가 말하는 것은 흔히들 딜탱이라고 말하는 포지션.

‘딜’도 어느 정도 나오고 ‘탱’도 어느 정도 되는 그런 포지션을 말하는 것이었다.

[학익을 추행으로 전환! 최선두에는 내가 서겠다!]

부우우웅—

내가 탄 기간트의 각부 아래에 설치된 바퀴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구구!

선두에는 내가, 내 뒤로는 카트린과 네드, 그 뒤로는 다른 소대원들이 따라가면서 자연스레 삼각형 모양의 돌격 진형이 형성되었다.



***



[뭐, 뭐야?! 대장기가 움직인다!]

중앙을 맡은 2소대 1분대장이 크게 당황해 하며 소리쳤다.

[다니엘 병장! 어떻게 해? 우리 복귀해?]

우익을 맡은 3분대장이 급하게 1분대장에게 물었다.

1분대장, 다니엘은 2소대의 왕고이자 선임분대장이었기에 유사시에는 네드처럼 소대장 대리를 맡아야 하는 인물이었다.

[자, 잠깐!]

다니엘에게 있어 지금껏 가만히 있던 3소대 중앙의 움직임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펼친 날개를 다시 좁힐 수는 없었다.

3소대 양익의 머리를 맡았던 발터와 알렉스가 중앙으로 복귀해 합류하기는 했지만, 그 둘만 합류했을 뿐 나머지 날개들은 여전히 펼쳐져 있는 상태였다.

‘심리전인가? 심리전을 거는 건가? 아, 어떻게 하지?’

다니엘은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비록 분대장 교육을 받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휘관이 내리는 전술 명령을 이해하기 위해 받는 교육일 뿐.

더군다나 분대장 교육을 저조한 성적으로 수료한 다니엘에게 전략적인 두뇌란 사실상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그는 순수 평민 출신이었다.

평생을 그저 체스 말로 살아온 그에게 있어 지휘 능력을 요구하는 이 상황은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다니엘은 혹시나 샤를 중위에게서 명령이 내려올까 싶어 통신기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통신기는 여전히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니엘 병장! 어떻게 해?]

[자율로 넘어가?]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2분대장과 3분대장이 계속해서 방안을 요구했다.

[너희는 그냥 계속 좌우를 견제해! 중앙은 우리 1분대가 맡는다!]

[오케이, 확인.]

[확인.]

전략전술에 있어 일반 병사가 부족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단순히 싸우는 것에 있어 그들은 프로였다.

순회순찰대는 전투만큼은 다른 그 어떤 부대와도 무력에서 밀리지 않았다.

군대가 강성해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병기와 경험이었다.

매일이 국지전 상황인데다, 그 적들이 마깅법국과 룬드래곤 왕국인 국토방위군보다 쌓이는 경험치는 작을지언정, 순회순찰대 역시 실전 상황이 끊이지 않는 부대였다.

그러다 보니 순회순찰대의 지휘관들이 병사들에게 자주 내리는 명령은 자율 전투였다.

지금 모의전이 펼쳐지는 장소는 개활지.

다니엘은 순수하게 힘과 힘의 충돌로 승패가 결정이 난다 생각했기에 자신의 결정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애당초 난 지휘관이 아니라고!’

만약에 모의전에서 안 좋은 결과를 낳게 되더라도, 그것은 마법을 쓸 생각에 지휘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샤를이 문제라고 굳게 믿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디스플레이 화면을 통해 보이는 전면.

삼각편대를 이뤄 3소대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꼭짓점에 있는 것은 새로이 3소대장으로 부임한 아멜 소위였다.

‘나름 기사 교육을 받으셨나 보네? 그래 봤자, 샌님이지!’

다니엘은 아멜의 모습을 떠올렸다.

피는 못 속이는지 훈훈한 외모와 근엄한 목소리.

제국제일검 검성 진 루겐바인 후작의 자식답게 실력도 준수한 것 같았다.

잘 모르지만, 입대하자마자 전공을 올렸으니까.

그럼에도 다니엘은 아멜이 전혀 강해 보이지 않았다.

옛적에 멀리서 봤던 진 후작은 거리가 꽤나 됨에도 불구하고 10만 관중을 압도할 만큼의 기세를 지니고 있었다.

반면에 그의 자식인 아멜은 이렇다 할 위엄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다가 좋지 못한 소문과 수식어 등이 꼬리표처럼 달려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 본 결과, 다니엘은 아멜이 기사로서 그리 뛰어나 인물이 아니라 판단한 것이었다.

‘필드와 훈련소는 전혀 다른 곳입니다, 소위님! 제가 실전이 뭔지 제대로 보여 드리죠!’

다니엘은 평소에도 동일한 기체로 오러 블레이드 없이 질량 병기로만 싸운다면 자신이 기사들에게 밀릴 게 없다고 생각해 왔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다니엘은 스스로 2소대의 최강자를 자처할 정도로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애초에 직업군인인 이상 실력과 실적이 어느 정도 입증이 되지 않고서는 병장까지 진급할 수 없었다.

[1분대, 나를 따라와라! 새로 오신 신임 소대장님께 현장의 혹독함을 알려 드리도록 하자!]

[오오!]

[좋습니다!]

다니엘이 탄 C급 기간트 발밑에 달린 바퀴가 요란하게 돌기 시작했다.

이윽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아멜이 탄 대장기를 향해 돌진하는 다니엘의 기간트.

2소대 1분대원들이 횡열 대형을 유지한 채 3소대와 교전을 하기 위해 진군을 개시했다.



추행진과 일자진의 충돌.

기갑이라고는 해도 기동성을 중시한 타입이 아니라 백병전에 사용되기 위해 제조된 기간트이기 때문에 다니엘은 2소대 1분대가 뚫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양자 간의 좌우익이 서로 겹치게 될 터.

변수 없이 전면전으로 붙으면 자신들이 무조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다니엘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까지 항상 그렇게 수적 우세를 앞세워 3소대를 이겨 왔으니 잘못된 생각은 아니었다.

다만, 변수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새로 온 3소대장의 존재뿐.

‘그렇다면 그 변수를 빠르게 차단하는 게 제일이지!’

다니엘의 자신이 내린 결론에 흡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그의 눈에는 아멜이 탄 대장기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아멜의 대장기를 쓰러트려 놓고 다른 소대원들과 함께 3소대를 압박해 몰아넣으면 캐스팅을 다 끝낸 샤를의 마법이 해당 지점을 타격할 것이었다.

[흐랴아아앗!]

기합 소리와 함께 기간트의 속도를 올려 아멜에게 접근을 시도하는 다니엘.

[다니엘 병장님!]

그때, 분대원 중 한 명이 급하게 다니엘에게 통신 연결을 시도했다.

[뭐야?]

[병장님, 지금 혼자 들어가시려는 겁니까?]

[왜?]

지금 다니엘은 골치 아프게 머리 쓰는 일은 사양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분대원이 괜히 뭔가를 물어볼까 봐 짜증부터 났다.

[저희 몫 좀 남겨 주시지 말입니다.]

[흥!]

다니엘은 콧방귀를 뀌고는 기간트의 속도를 오히려 더 올려 달리기 시작했다.

분대장의 역할을 아는지 모르는지, 분대원들은 알아서 따라오게 내팽개쳐 두고 무작정 아멜을 향해 돌진하는 다니엘.

다니엘의 이런 움직임에 당황한 건지, 3소대의 좌익 중 한 기가 아멜에게 합류하려고 했다.

하지만 모두가 다 동일 기체를 사용해 기동성의 차이가 조금밖에 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다니엘이 아멜에게 접근하기 전에 그 기간트가 앞을 막아서기란 어려워 보였다.

[선수는 제가 가져갑니다! 3소대장님!]

다니엘은 모두가 다 들을 수 있게 마이크를 전체 공개로 전환했다.

그러고는 기세등등한 목소리와 함께 무기를 거합해 금방이라도 아멜을 내려찍을 듯한 기세로 다가갔다.



***



[소대장님!]

빠른 속도로 좌익에서 합류하던 쉐인 상병이 급하게 아멜을 불렀다.

쉐인이 탄 기간트의 디스플레이에는 삼각편대를 이루며 전진하고 있는 아멜과 다른 분대원들, 그리고 그런 그들을 향해 매우 빠른 속도로 접근 중인 2소대 기간트가 잡히고 있었다.

아멜은 최선두에 있었기 때문에 급하게 뒤로 돌아가면 뒤따라오던 다른 분대원들과 부딪칠 염려가 있는 상황.

좋든 싫든 그대로 전진해야만 했다.

결국 2소대의 기간트와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아멜이 치리공공으로 토파즈가 탄 신형 기간트를 잡았다고는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연대장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기간트 조종에 있어 수비력은 어느 정도 입증이 되었으나, 공격력은 아직 입증이 안 된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승부의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쉐인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은 있어도 위태로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작전 성공입니다! 놈들이 미끼를 물었습니다!]

[좋아! 다음 작전으로 넘어간다!]



***



부웅! 부웅!

대장기를 향해 접근하고 있던 다니엘은 갑작스런 아멜의 행동에 살짝 당황했다.

갑자기 아멜이 속도를 늦추더니 그대로 제자리를 돌며 모래바람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원래 이런 상황이라면 관측병이 마도구를 사용해 대상의 위치를 실시간 스캔으로 알려 줘야 했다.

하지만 이번 모의전은 개활지에서 펼쳐지기 때문에 관측병 역시 죄다 기간트에 올라탄 상황.

그리고 자기과시욕이 강한 샤를은 관측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 보직으로 사용하는 일이 없었다.

‘3소대장님, 실망입니다. 연막을 쳐서 도망치려는 겁니까? 검성의 아들이면 아들답게 당당하게 맞서 싸우란 말입니다! 기사면서 고작 십인대장이 무서워 대결을 회피하시는 겁니까!’

다니엘이 인상을 살짝 구기며 혀를 찼다.

호승심이 강한 다니엘 입장에서는 대결을 회피하려는 듯한 아멜의 움직임이 매우 아니꼬웠다.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연대장부터 헬창인 서부 순회순찰대에 있어 이런 겁쟁이 같은 행동은 은연중에 금기시되고 있었다.

‘도망가게 놔둘 생각은 없습니다!’

가뜩이나 기사를 이겨 볼 수 있는 기회에 신나 있었는데 상대가 대결을 회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열기가 꺾이기는커녕, 다니엘은 더욱더 강한 투쟁심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흐아아아아아!]

다니엘은 모래바람 속으로 들어가 아멜을 찾기 시작했다.

끼긱—

바로 그 순간, 바닥에 바퀴가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입니까?!]

오른 어깨로 모래바람을 뚫고 달려가 왼손을 뻗어 상대의 전면 두부를 잡은 후, 빠른 속도로 적의 기간트를 밖으로 끄집어내는 다니엘.

모래바람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자마자 그는 끌고 왔던 기간트를 바닥에다 던져 버리고는 들고 있던 무기로 목을 겨눴다.

[자, 잠깐! 어, 뭐야? 다니엘 병장, 아냐?]

눕힌 기간트의 오픈 마이크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안타깝게도 아멜이 아니었다.

[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3소대원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들려온 목소리는 다니엘에게 있어 매우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 정체는 바로 우익으로 진형을 펼친 3분대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