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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심장이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쿵쾅거렸다.

그리고 나의 이런 울림에 호응이라도 하듯 압박감이 내 몸을 조여 왔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나를 살짝 끌어안는 듯한 느낌.

하지만 그다지 신경을 쓸 정도는 아니었기에 그저 내가 너무 긴장하고 흥분해서 그런 거라 넘겨 짚었다.

[반응부터 체크하겠습니다. 왼주먹을 앞으로 뻗어 주십시오.]

실버하운드 조종석 정면 중앙에 위치한 판넬 아래에서 오퍼레이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테스트 유도를 하는 것은 정비반장이 아닌, 네드 분대장이었다.

“네드 분대장, 관제를 하러 온 거였나?”

[예, 소대장님. 원래 주특기 관제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소대장 자리가 비어 있다보니 지금까지 어쩔 수 없이 기간트에 탄 겁니다.]

“분대장이기 때문이군.”

[정확하십니다. 역시 소대장님!]

네드 분대장은 관제실에 있기에 모습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이번에도 쌍따봉을 날렸을 가능성이 컸다.

기간트 내부와 관제실에 연결된 간이 채팅창이 있다면 이모티콘을 날렸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네드 분대장이 나한테 잘 보이고 싶어 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겠다.

군대도 엄연히 사회 생활인 만큼 라인을 타는 게 나쁜 것은 아니었다.

내외 정치에 신경을 쓰지 않고 오직 자기 할 일만 하는 것도 분명 멋진 모습이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같은 직장 동료와의 커뮤니케이션 따위는 담을 쌓겠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렇다고 또 너무 정치질만 하는 것도 문제고.

결론은 밸런스가 중요하다.

아직 전입을 온 지 이틀밖에 안 되었기에 네드 분대장이 입만 잘 터는 간신배일지, 아니면 이 오묘한 밸런스를 잘 타는 우수한 동료일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네드 분대장에 대한 평가는 잠시 접어 두기로 했다.

일단은 그가 시키는 대로 기간트를 조종했다.

아날로그 조작계를 지닌 치리공공과는 달리, 실버하운드는 인체가 보내는 전기를 신호로 감지하는 하이테크 기간트로 보였다.

조종간 역할을 하는 수정구를 움직이지 않고 그저 살짝 힘을 주었을 뿐인데 이에 반응해 기간트가 내 생각대로 움직였다.

[좋습니다. 이제 엄지부터 소지까지 차례대로 펴 주시기 바랍니다. 이쪽에서 신호를 드릴 테니, 그 이후에 펴 주시면 됩니다.]

아무래도 각 파츠별 운동 반응성 및 관절 유연성을 체크하는 테스트인 듯했다.

일단은 네드 분대장이 요구하는 대로 움직여 보였다.



이런 식으로 네드 분대장이 관절과 연관이 있는 기간트의 모든 파츠를 다 체크했다.

[파츠 운동 반응속도, 평균 0.27초입니다.]

“그 수치는 어떤 의미를 나타내는 거지?”

[정상입니다. 다만 표준치보다는 조금 더 빠르게 반응하는 편입니다.]

“나쁘지 않군.”

[좋다 안 좋다를 말하기는 힘듭니다. 기사들마다 각자의 템포와 루틴이 있으니 말입니다. 다만, 향후 소대장님이 타시는 모든 기간트는 이 운동 반응속도에 맞춰 조정될 예정입니다.]

마치 리듬 액션 게임을 막 켰을 때 입력 지연 타이밍을 조정하는 것과 유사하다는 기분을 받았다.

전투기 파일럿들도 이런 운동 반응속도 테스트를 받나 싶었다.

하지만 현실의 전투기 파일럿은 파일럿에 맞춰 맞춤형으로 전투기를 제조하기보다 전투기에 맞춰 파일럿이 훈련을 받는 만큼 이런 식의 테스트는 없으리라 생각되었다.

물론, 에이스 전투기 파일럿은 추정 가치가 최신형 전투기 한 대보다 더 비싸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몇 년간 뛰다가 전역하거나 보직을 변경할 에이스 파일럿을 위해 전용기를 만들어준 나라는 별로 없었다.

[소대장님, 이 정도 루틴으로 괜찮으시겠습니까?]

핑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운동 반응속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늦게 반응한다는 느낌도 없고, 그렇다고 예민하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템포적으로도 기분 나쁜 면도 안 느껴지니, 이대로 가도 될 것 같았다.

다만…….

“정적인 반응속도 체크도 좋지만, 동적인 반응속도도 체크하고 싶은데.”

[알겠습니다. 그러면 다음 테스트로 넘어가겠습니다.]

부이이이잉―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나더니, 실버하운드를 붙잡고 있던 구속구가 풀어졌다.

쿵! 쿵!

커다란 덩치에 걸맞게 조용하기 그지없던 격납고에 발소리를 울리며 실버하운드가 움직였다.

중앙 통로로 이동시켰다.

[동적 테스트는 실내에서 하기 힘들기 때문에 밖으로 나와서 하겠습니다. 먼저 이동해 주십시오.]

네드 분대장의 말에 실버하운드를 격납고 밖으로 움직였다.

정비반 한 명이 노란 연막이 흘러나오는 막대기를 들고 유도를 했기에 그걸 보고 따라갔다.



잠시 후, 관제실에서 나온 네드 분대장이 장비를 바리바리 들고 나와서는 반대 방향의 출구를 통해 나가는 게 후면 카메라에 들어왔다.

정비병의 유도에 따라 격납고의 밖으로 나오니, 이미 다수의 기간트들이 제식 훈련을 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굳이 기간트로 제식훈련을 하는 것은 멍청한 짓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각이 칼 같지도 않은데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걸로 봐서, 말만 제식훈련이지 실제로는 팀워크 강화훈련으로 보였다.

“잠깐! 벨퍼트 형, 저거 뭐예요?”

죄다 치리공공으로 훈련을 받고 있는 가운데, 실버하운드가 격납고에서 나오고 있는 걸 본 샤를 중위가 우리 쪽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 샤를 중위님. 3소대장 파일럿 테스트 중이었습니다.”

실버하운드의 전두부를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전면부 카메라에 대화를 나누고 있는 정비반장과 샤를 중위의 모습이 잡혔다.

이윽고 메인화면 좌측에 사각으로 된 화면이 뜨더니 본 화면과 전환되며 둘이 줌인되었다.

“뭐? 뭐야! 지금 대귀족의 자식이라고 해서 특별 대우를 하는 거야, 뭐야!”

보조화면과 주화면이 전환되자, 마이크도 증폭이 된 건지 둘의 대화가 매우 잘 들렸다.

“그런 거 아닙니다. 샤를 중위님.”

잔뜩 역성을 내는 샤를 중위와 난처한 표정을 짓는 정비반장.

“루겐바인가가 제국 서부의 왕가나 다름없다더니, 진짜 서부 사람들은 루겐바인가 사람들 눈치를 엄청 보나 보네. 내가 이런 건 못 참지! 감히 관군에 특별 대우를 요구해? 이런 건 나처럼 서부 사람도 아니고 순회순찰대 소속도 아닌 사람이 따금하게 혼내야지!”

샤를 중위가 씩씩대며 실버하운드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그러고는 내리라는 듯한 신호를 보냈다.

금방이라도 실버하운드로 달려오려고 했지만, 정비반장이 온몸으로 막아서 그러지는 못했다.

“아이고, 샤를 중위님. 그런 거 아닙니다.”

“이게 특혜가 아니면 뭡니까! 누구는 B급 탈 줄 몰라서 D급으로 테스트 합니까?”

“중위님은 기사가 아니라서 B급 못 타시잖아요.”

“크흠, 말이 그렇다는 거죠.”

“마감슬이 보라색으로 변했습니다.”

마감슬?

마감슬이 뭘까 하고 잠깐 생각했다.

아, ‘마력 감응용 슬라임’을 줄여서 ‘마감슬’이라고 하는구나.

별걸 다 줄인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줄임말이기는 했다.

그냥 슬라임으로 하면 너무 범위가 넓고, 그렇다고 안 줄여 부르기에는 너무 길었다.

아무튼 마감슬이 보라색으로 변했다는 말을 듣자, 샤를 중위가 적잖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위님도 아시잖습니까. 규정상 그럴 경우 상위 등급 기간트로 옮겨 타 테스트 이어 받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지금 C급 기간트는 운용할 수 없어 바로 B급으로 올린 겁니다.”

“아니, C급으로 받는 게 어때?”

“예?”

“아멜 소위!”

정비반장과 대화를 하던 샤를 중위가 다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나를 크게 불렀다.

실버하운드를 조종해 안광을 한 번 반짝여 신호를 보냈다.

장교수첩에 적혀 있는 군신호 중 하나였다.

“지금 밖으로 나온 것을 보니까 운동성 테스트 중인가 본데! 그러면 차라리 모의전으로 테스트를 하는 게 어때? 어차피 과격한 운동을 해야 하니까 말이야! 설마 마감슬이 보라색으로 변하게 할 정도의 천재 기사께서 고작 마도학자와의 모의전을 회피하지는 않으시겠죠?”

[소대장님, 모의전은 동일 기체로 약간의 커스텀으로만 진행하는 게 룰입니다. 대전 방식도 일대일이 아니라 팀전이고 말입니다. 아직 저희와 소대장님과의 손발을 맞춰 보지 않았으니 굳이 도발에 넘어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통신을 통해 네드 분대장이 자신의 생각을 전해 왔다.

아까와는 달리 차분한 목소리인 것이 진지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한 듯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네드 분대장이 말이 맞았다.

파일럿 테스트를 굳이 모의전으로 대체할 필요는 단 1도 없었다.

그래도…….

“아니. 분대장, 소대원들을 준비시켜라.”

[…잘못 들었습니다?]

“파일럿 테스트를 보는 김에 지휘관으로서의 역량 또한 테스트를 할 생각이다.”

[아…….]

통신임에도 불구하고 네드 분대장이 당황한 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긴, 일반적으로 보면 미친 짓거리겠지.

이제 전입 2일 차에 접어든 소대장이 낯선 소대원들을 데리고 모의전을 벌인다니.

무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겠지.

[역시 소대장님! 과연 저 같은 범인하고는 가슴 속에 담아두고 있는 불꽃이 다르지 말입니다. 멋지십니다.]

…….

컨셉인지, 아니면 실제 성격인지, 그것도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네드 분대장은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아직까지는 내 말에 뭐든 동의만 하고 있어 좋게만은 보이지 않았다.

무조건 예스만 외치는 예스맨은 한국에서 지낼 때도 별로 좋지 않게 봤다.

뭐, 그래도 아직 이것만으로 그를 판단할 수는 없으니까.

모의전에서 그의 능력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면 나는 여기서 대기하고 있으면 되나?”

[아닙니다. 2소대장님은 마도학자라 B급 이상 기간트를 타실 수 없으니, 소대장님이 C급으로 갈아 타셔야 합니다.]

“C급?”

[D급은 내구도 문제도 있어서 과격한 훈련을 하면 파손되니, 내구도 적당하고 범용성도 높은 C급으로 합니다. 영방군의 경우는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보급을 크게 기대할 수 없는 저희 관군, 특히 순회순찰대는 그렇게 합니다.]

보급에 관해서 꾸준히 여러 사람들이 언급하는 걸로 봐서 부대 내에 그에 대한 불만들이 가득 쌓여 있는 듯했다.

하긴, 1년 한 번만 보급받는다는데, 불만이 안 쌓인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그러면 내려야겠군.”

[예에… 죄송하지만 그러셔야 할 것 같습니다. 대신에 C급은 저희도 몰 수 있으니까, 소대장님은 그냥 실버하운드만 주차시키면 될 것 같습니다. 소대장님이 타실 건 저희가 몰고 오겠습니다.]

“그러면 나는 실버하운드를 주차하고 곧바로 모의전 훈련장으로 가도록 하지.”



실버하운드의 몸을 돌려 격납고로 다시 향했다.

“호오! 받아들이시겠다? 대단한 자신감이신데! 뭐, 좋아, 그런 자신감. 절망으로 바꿔 주지. 벽을 느끼게 해 주겠어!”

실버하운드가 방향을 튼 것을 본 샤를 중위가 자신의 도발을 받아들인 것으로 판단했다.

반면에 정비반장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왼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후우… 저는 중대장님께 훈련 신고하고 오겠습니다.”

“벨퍼트 형, 형이 심판 볼 거야?”

“그래야지 말입니다.”

“편파 없이 공정하게 해 줘. 편파 없어도 우리 2소대가 이길 거니까. 지금까지처럼 말이지. 3소대에 고작해야 신임 소위 하나 추가되었을 뿐이야. 그것도 난봉꾼으로 유명한 망나니가.”

들리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지,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말하는 샤를 중위.

아쉽게도 격납고로 들어가는 내 귀에도 아주 잘 들렸다.

네드 분대장에게서 그 어떤 말도 들려오지 않는 것을 보니, 이미 관제실을 나와 소대원들에게 간 모양이었다.

이러면 더더욱 질 수 없지.

그대로 실버하운드의 콕핏에서 나와 실버하운드에 페어리클로를 건 후, 주먹에 쥔 힘을 풀었다.

그러자 중력에 의해 몸이 자동으로 아래로 내려왔다.

생각 외로 중력가속도의 영향을 크게 받아 제법 빠른 속도로 몸이 하강했다.

실버하운드는 아파트 4층 높이였지만, 콕핏이 위치한 곳은 약 3.5층 정도의 위치.

결코 낮다고 볼 수는 없는 위치였기에 이대로 떨어진며 크게 다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페어리 클로를 회수해 충격을 완화하려고 했다.

“흡.”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자세를 바로잡으며 착지할 수 있었다.

땅에 발을 딛고는 페어리 클로를 완전히 회수했다.

“헉!”

그때, 정비병 하나가 내 모습을 보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3소대장님, 괜찮으십니까?”

혹시 내 수치스러운 모습을 본 걸까?

괜히 창피해지려던 찰나, 정비병이 입을 열었다.

“아니, 마갑도 착용하지 않고 B급 이상 기간트에 타는 기사님이 어디 있습니까?”

어? 잠깐… 그러고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