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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갑작스런 카트린의 행동에 놀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소대원들 역시 사래가 걸린 듯 마시던 술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과실주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맥주나 진저에일이었기 때문인지 게르 안이 이내 악취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내 손을 잡아끈 카트린이 대뜸 그걸 자신의 가슴에 갖다 대는 행동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부끄러운 듯 다시 내 손을 놓았다.

휴우, 천만다행이다.

하마터면 성군기 위반으로 영창 갈 뻔했네.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당황한 것은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던 루퍼스 병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어… 그, 그러면 두 분의 과거사는 다음에 듣는 걸로…….”

루퍼스의 병장의 당황스러워하는 말과 함께 카트린이 거리를 다시 벌렸다.

“야, 아멜! 너, 나랑 처음 만난 날 다짜고짜 가슴 만져 놓고, 그 다음에 한 말이 뭔지 기억은 나냐?”

기억날 리가 있겠냐.

내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자, 카트린은 ‘네가 그러면 그렇지’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이어지는 카트린의 과거 회상

“여자인 줄 알았는데 남자인가 보네? 이것도 기억 안 나?”

기억이 날 리가 없었다.

애시당초 그건 아멜과 있었던 일이지 나하고 있었던 일은 아니니까.

“그, 그런 말을… 미안하네, 카트린 하사. 잊어 달라고 말하기 힘든 건 알지만, 그래도 지금의 나는…….”

“그 다음에 한 말은 기억 안 나?”

식은땀이 미친듯이 흘렀다.

일분일초가 수십 시간처럼 느껴졌다.

아멜, 이 자식…….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처음 보는 여자의 가슴을 만져 놓고는 남자인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

만약에 심연세계, 뭐 이런 것을 통해 아멜을 만날 수만 있다면 한 대 쥐어패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 상황을 모면하는 게 먼저였다.

“그, 글쎄…….”

“얼굴은 진짜 예쁜데, 남자라니. 아쉽네. 남색에는 취미가 없어서. 솔직히 외모만 보면 제국 아니 대륙 최고의 미인인데 말이야.”

“그렇게 말했던가…….”

아멜 녀석… 나랑 취향이 비슷한가 본데.

차이가 있다면 아멜은 여성 편력이 화려하다는 거고, 나는 살아온 인생이 솔로인 기간과 일치하다는 점 정도.

이 다음에 카트린이 취한 행동이 조금 묘했다.

얼굴을 살짝 붉힌 후, 부끄러운 듯이 몸을 비비 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래. 너야 뭐, 그 말을 하자마자 나한테 쥐어 터져서 기억을 못하는 걸 테지만… 나 말야, 솔직히 조금 설렜어.”

“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과거 이야기에 소대원들이 다시금 흥미를 가졌다.

‘오’는 무슨!

이 녀석들, 무슨 드라마를 보는 것마냥 아주 신명이 나셨구만.

정작 무대에서 배우역을 하고 있는 나는 죽을 맛인데 말이야.

아, 진짜 어느 장단에 맞춰 줘야 하냐.

어렵다, 어려워.

그렇게 내가 쉽사리 카트린과의 대화를 이어 나가지 못하자, 카트린이 마저 이야기를 했다.

“솔직히 좋아한다고 표현했으면 뚝심 있게 나가야 하는 거 아니냐? 내가 한번 팼다고 해서 그 다음부터는 나 볼 때마다 못 볼 것을 봤다는 듯이 질색하는 건 너무 심했잖아! 나, 그런 거에 쉽게 상처받는다고!”

카트린이 혀 짧은 소리로 울먹거리며 말했다.

확실히…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여자애를 못 볼 거 취급하는 건 심하긴 하네.

“그, 그리고… 솔직히 책임지겠다고 하면 받아 줄 생각도 있었단 말이야. 근육이 빈약한 건 마음에 안 들지만, 후작님처럼만 늙는다면… 어느 정도 기대할 법도 하고… 일단은 내 취향의 얼굴이기는 하니까아…….”

“오홍?!”

소대원들은 재미있는 주말 드라마를 발견한 것마냥 흥미롭게 우리 둘의 대화를 들으며 즐거워했다.

아니, 이게 무슨 TV 연등이냐고요.

잠깐… 혹시 이것들이 짜고 몰래 카메라 하고 있는 거 아냐?

너희가 그렇게 나오시겠다면 나 역시 생각이 있지.

그래! 이 드라마! 시청률 50%는 거뜬히 찍게 해 주지!

혀 꼬부라진 소리로 앙앙거리며 말하는 카트린의 양어깨를 꽉 잡은 후, 그대로 포지션 변경을 시도했다.

“헤에?! 예에? 네에?!”

한창 부끄러운 말을 하던 카트린이 나와 눈을 직접적으로 마주치게 되자, 불안해하며 시선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해했다.

“카트린.”

“네, 네!”

카트린이 깜짝 놀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모습이 묘하게도 귀엽게 느껴졌다.

“카트린, 잘 들어라. 난 자네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줄 몰랐네.”

얼굴이 붉어진 채 열기를 온몸으로 발산하고 있는 카트린 덕분에 나 역시 몸이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네, 네에…….”

잔뜩 부끄러워하며 안면의 체온을 높히는 카트린.

분위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극적인 장면을 통해 시청률을 높히고 싶은 프로듀서의 마음일까.

나도 모르게 카트린의 볼에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그리고 손을 대자마자 깨달았다.

이거… 선을 넘는 게 아닌가?

하지만 여자들이 항상 말하는 분위기의 힘이란 것은 대단했다.

카트린이 파르르 떨며 눈을 살짝 감은 채 입술을 살짝 내민 것이었다.



‘뽀뽀해! 뽀뽀해! 뽀보해!’



갑자기 뒤쪽에서 소대원들의 열화와 같은 응원소리가 전달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분위기상 키스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상황이 되었다.

지난 29년간 모태솔로로 살아와서 키스 같은 건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데, 잘할 수 있을까?

하드웨어가 경험이 많다고 해도, 소프트웨어가 초기화되었는데, 괜찮을까?

여자들은 키스 못하는 남자 엄청 싫어한다던데…….

등등의 오만 가지 생각이 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생각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레 행동에도 딜레이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고작 키스 따위를 가지고 왜 그리 호들갑을 떠냐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아니었다.

나, 송창수에게 있어 첫키스이기 때문이었다.

여자와의 썸?

그런 것은 내 인생에 존재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렇기에 30대에 접어드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자에 대한 면역력이 제로에 가까웠다.

하지만 분위기라는 것은 상당히 강력한 힘이었다.

소대원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적극적으로 응원을 하자, 생애 첫 키스임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용기가 나기 시작했다.

아, 들린다, 들려.

시청률 올라가는 소리가 들린다!

좋아! 시청률 50%를 향해 가즈아아아!

카트린을 꽉 잡아 끌어당겼다.

여군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슴팍에 안겨 오는 카트린의 몸은 아담하고 포근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카트린의 입술 위에 내 입술을 포개려는 순간.

남자라면 누구나 다 그렇듯, 참지 못할 호기심이 발동했다.



‘지금 상대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물론, 키스 도중에 눈을 뜨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눈을 살짝 뜨고 카트린의 표정을 살폈다.

카트린은 나처럼 얼굴이 붉은 상태였다.

다만, 긴장한 나와 다르게, 어딘가 괴로운 듯 인상을 쓰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카트린이 헛구역질을 했다.

순간적으로 대학교 신입생 때가 생각났다.



바야흐로 9년 전, 처음으로 대학교 신입생 오티에 참석했을 때.

행사가 끝나고 동기끼리 술자리를 가졌다.

그때, 동기들 중에서 공주님 취급을 받는 퀸카가 하나 있었다.

내 생애에 있어 첫 짝사랑이라고 한다면 당연코 그녀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가장 끔찍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여자 역시 그녀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에에엑!’



그녀는 퀸카다 보니 동기들이 술을 많이 권했고, 거절을 잘 못하는 그녀의 성격상 주는 대로 다 받아 마셨다.

그러다 보니 한계치를 넘어갔고, 결국 그녀는 술자리 도중 밖으로 나와 몸 안에 들어 있던 내용물로 전(?)을 부치게 된 것이었다.

첫눈에 반할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가 토를 하는 모습은 나에게 엄청 큰 충격을 다가왔다.

그런데 왜 지금 그 이야기를 꺼내냐…….

이유야 간단했다.



카트린이 헛구역질을 잠시 참는 듯 하더니 이내 볼을 빵빵하게 부풀기 시작했다.

언뜻 보기에는 햄스터마냥 귀여운 모습.

하지만 난 본능적으로 이 다음에 벌어질 위기 상황을 직감할 수 있었다.

“보, 봉투! 비닐 봉투를 가져와라!”

다급하게 봉투를 가져오라고 소대원들에게 지시했다.

“예?”

당연히 소대원들은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 했다.

비닐 봉투는 이 세계에서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물품이니까.

“뭐라도 받을 것을 가져와!”

“아! 예!”

그제야 소대원들이 말귀를 알아듣고 급하게 토사물을 받을 만한 물건을 찾아 밖으로 나갔다.

“우욱!”

창백해진 얼굴로 금방이라도 토사물을 몸 밖으로 배출하려는 카트린.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여기는 내가 개인 숙소로 사용하는 전용 게르.

만약 여기서 카트린이 토한다면, 아마 오늘 밤 나는 제대로 된 수면을 취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소대장님! 여기 있습니다!”

다행히도 늦지 않게 소대원 중 하나가 통을 가져왔다.

급하게 카트린의 발 앞에 통을 가져왔다.

“그런데… 이건 무슨 통인가?”

“예? 염소 우유통입니다.”

여기 복식은 개혁 후 프로이센 군이 생각나는 복장이던데, 의외로 유목 민족이었나?

“그러면 내일 아침에 우유를 못 짜내는 건 아닌가?”

“걱정 마십시오. 이미 다 쓴 우유통이라 재활용할 일이 없습니다. 게다가 안에 있던 것들 때문에 재활용을 할 수도 없습니다.”

“…안에 뭐 들어 있었나?”

“예! 거의 치즈처럼 발효된 오래된 우유가 조금 남아 있었습니다.”

느낌이 불안했다.

“우웨에에엑!”

카트린이 통에 머리를 박으려다가 드래곤이 브레스를 쏘는 것마냥 급하게 통 밖으로 머리를 내밀면서 토사물을 게워 냈다.

문제가 되는 게 있다면 허우적거리던 카트린이 두 팔로 내 양팔을 잡은 채로 내 몸통에 그걸 게워 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그저 입술을 꽉 닫은 채 구토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야! 야! 부소대장님 떼어 드려!”

카트린의 입에서 나온 토사물이 내 몸을 타고 흐르는 것을 본 소대원들이 급하게 달려와 나를 도와주려 했다.

카트린이 생각보다 완력이 세기는 해도 장정 여럿이 달라붙으니 결국 떨어트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양의 토사물이 내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소대장님, 괜찮으십니까?”

급히 달려온 소대원들이 내 가슴과 허리에 묻은 토사물을 수건으로 닦아 내기 시작했다.

“…씻고 오겠다. 상황 정리하도록.”

하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미녀의 토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다니.

그중에서도 두 번째는 내가 몸으로 직접 그녀의 토사물을 받아 내다니.

미녀와 키스를 할 뻔했다는 설레임 따위는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저 지금은 내 머리속에는 그저 빨리 씻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부소대장님, 괜찮으십니까? 그러게 뭔 놈의 술을 그리 많이도 드셨습니까?”

소대원들이 토사물을 입가에 묻힌 채 인사불성이 된 카트린을 흔들어 깨우며 안부를 물었다.

비록 예상치 못한 사고를 당하기는 했어도, 막상 카트린이 술에 취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까 안쓰러운 마음이 온몸을 감쌌다.

“소대장님, 씻고 오십시오. 저희가 정리하겠습니다.”

어깨 위에 녹색 견장을 단 소대원 하나가 말했다.

“자넨…….”

“분대장 상병 네드입니다.”

네드 분대장은 그후에 로이 일병에게 지시를 내렸다.



로이 일병의 도움을 받아 나는 세척장으로 가 몸을 씻었다.

다 씻고 게르로 돌아오니 소대원들이 이미 술자리를 정리하고 카트린을 밖으로 옮긴 상황이었다.

탈취제… 비스무리한 것을 뿌렸는지 게르에는 구토물 특유의 하수도 냄새가 아닌, 사과향이 실내를 감싸고 있었다.

문제는 탈취제를 뿌렸음에도 악취가 사라지지 않아 둘이 섞여 시너지를 이루며 더욱더 괴상한 냄새로 변해 버렸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이 너무나도 피곤했기 때문에 게르에 돌아오자마자 급격하게 졸음이 쏟아졌다.

하아… 오늘 진짜 많은 일이 있는 하루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침낭 안으로 들어가 애벌레마냥 몸을 돌돌 말고 잠을 청했다.



***



다음 날.

아, 미쳤지, 미쳤어.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머리를 팍팍 긁으며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자책했다.

아, 진짜 술이 웬수지.

평소에도 술을 잘 못하기는 하지만, 어제는 오랜만에 아멜 루겐바인을 봐서인지, 아니면 최근 몇 달 동안 우리 순회순찰대를 괴롭혀 왔던 스틸 브리드 중 하나인 토파즈에게 한 방을 먹여서인지 기분이 좋아서 오버페이스로 술을 마셨다.

하지만 기분이 좋아 술이 잘 들어가는 것과는 별개로 부사관학교를 졸업할 때 했던 동기들 간의 회식 때도 그랬듯, 난 알콜에 매우 취약했다.

기간트 파일럿이라서 그런지, 정신줄을 놓고 미친 짓을 하며 술주정을 하는데, 얄궂게도 기억만큼은 다 남아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적지에서 포로로 잡혔을 때를 대비한 의식 강제 각성 시술은 받지 말 걸 그랬나 보다.

잊고 싶은 일이 있어도 무조건 기억이 남아 버리니…….

게다가 어제 씻고 자지 않아서 그런지, 머릿결이 푸석거렸다.

가뜩이나 진저라서 사람들이 편견 어린 시선으로 보는데, 여군이라고 머릿결 관리도 안 하면 욕 먹고 무시당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급하게 머리를 씻고 빗질을 했다.

여군이라서 무시받는 건 싫으니까.

군인으로서도 여자로서도 모든 것을 다 수행해 내야 했다.

그래야만… 나는 그래야만 해.

그렇게 마음가짐을 다시 다지고 게르 밖으로 나왔다.

“좋은 아침이군, 카트린 하사. 잘 잤나?”

으아아아악!

얼굴이 괜히 화끈거렸다.

하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보는 게 아멜이었다.

왜 이렇게 젠틀해?

정말 내가 알고 있던 그 망나니 아멜 루겐바인이 맞나?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던데, 혹시 죽을병에라도 걸린 거 아냐?

아, 진짜… 진 후작님을 쏙 빼닮은 얼굴로 웃지 말라고!

후우, 잊지 말자.

이렇게 젠틀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여자를 막 건드리고 다니던 망나니니까.

게다가 군대에 온 것도 여자를 잘못 건드려서 온 거잖아?

어쩌면 감형받기 위해서 연기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어.

조금 더 지켜보자.

“아… 아, 예에. 소, 소대장님도 잘 주무셨습니까?”

하지만 아멜의 얼굴을 다시 보자, 얼굴이 너무 화끈거렸다.

눈을 제대로 마주칠 수 없어 고개를 아래로 푹 숙인 채 겨우 대답을 했다.

아이구, 이년아.

그런 일을 당하고도 이러니…….

진짜 미쳤지, 미쳤어.

“그래. 그러고 보니 어제…….”

“아, 죄송합니다, 소대장님. 어제 너무 빨리 취한 탓인지, 중간부터 기억이 없습니다.”

“흠?”

“혹시 제가 무슨 실례라도…….”

“아니,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멜이 턱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거기에 아니라고 슬쩍 배려해 주기까지.

내가 알던 아멜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취향인 얼굴인데, 젠틀한 모습을 보이니 괜히 더 설레는 것 같았다.

아멜의 손가락이 그의 턱선을 지나갔다.

날렵하고 갸름한 턱선을…….

아니!

왜 이런 것만 보는 거야 왜!

어차피 다 나이 들면 수염나고 지저분해질 건데.

아멜도 늙으면…….

늙으면 진 후작님 같이 멋진 얼굴이 되려나…….

같은 피가 흐르고 있으니까 그렇겠지?



“…트린 하사. 카트린 하사,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숙취가 남아 있나?”

아멜의 말에 급하게 입가에 흐르고 있던 침을 닦았다.

“아,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조금 숙취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군. 이건 네드 분대장에게 받은 건데, 숙취에 도움이 될 거라고 하더군.”

아멜이 작은 병 하나를 건넸다.

확실히 네드 분대장이 어제 술자리를 준비하면서 챙겨 온 숙취해소제였다.

이런 세세한 것까지 챙겨 줄 거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고 보니 하사, 올해로 스무 살이라고 했던가?”

“예? 예에…….”

“흐음, 분명 어제 일이 기억에 안 난다고…….”

아!

걸렸다.

그러고 보니 어제 취한 상태에서 나이를 말했지.

이 위기를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지 깊은 고민에 잠겼다.

“네? 네네… 기억이 잘 안 납니다.”

“흐음…….”

아, 진짜 어쩌지.

하아…….

깊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무튼 다음부터는 무리하게 마시지 말도록.”

“네… 예에?”

“뭘 그리 놀라나?”

“아, 아니, 그게… 그러니까…….”

“어제 술에 취해 본인의 나이를 공개했다는 게 그리 놀란 일인가?”

“아, 아아! 그 이야기셨군요.”

괜히 다른 생각하다가 아멜의 얼굴에 빠졌다가 하는 바람에 대화를 계속 놓치고 있었다.

“전입은 어제였지만, 본격적인 소대장으로서의 일과는 오늘부터가 시작이 되겠군. 앞으로 잘 부탁하지, 카트린 하사.”

아멜이 그렇게 말하며 나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어제 일에 대한 창피함 때문에 땀에 흠뻑 젖어 있던 손바닥을 슬쩍 옷에 문질러 닦은 후, 그의 악수를 받아들였다.

“예.”

“그러면 식사 후, 일과시간에 보지.”

아멜이 그렇게 말하며 먼저 연본 3소대장 전용 게르로 향했다.

나도 꽤나 빨리 일어났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다 씻었나 보네.

아멜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니 어깨가 많이 왜소해 보였다.

흐음, 하지만 진 후작님의 핏줄이 흐르니 충분히 넓어지겠지.

진 후작님처럼 중후하게 늙은 아멜의 모습을 상상하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다시 귀에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