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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마수?

마수가 뭐지?

이세계에 오고 처음으로 판타지스러운 단어를 듣게 되자, 나도 모르게 호기심이 생겨 심장이 쿵쾅거렸다.

“마수? 상황 보고하게, 중사.”

군인의 계급장에는 꺾인 작대기가 두 개 붙어 있었다.

“예! 5급 마수 열둘. 3급 마수 일곱. 그리고 1급 마수 한 마리 출현했습니다.”

중사의 보고를 들은 연대장의 미간이 찌그러졌다.

“그게 무슨 말인가? 분명 한 달 전에 선행 부대가 와서 야영지 탐색을 했을 때는 마석 채굴장 같은 건 없던 걸로 보고되지 않았나?”

“예, 맞습니다.”

“그럼 마수가 왜 나타난 건데!”

달리는 마차였기에 소리가 바람에 묻혀야 정상이었건만, 연대장의 말은 마치 스피커를 이용한 것마냥 귓가에 박혀 울려 퍼졌다.

“저희도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중사의 말에 연대장이 혀를 찼다.

“어쩔 수 없지. 언실리워커에 조사를 의뢰하는 수밖엔. 다른 건?”

“그게… 아직 상황이 종료되지 않았습니다.”

“뭐? 마수가 언제부터 출현했는데?”

“약 한 시간 정도 되었습니다.”

쾅!

연대장이 팔꿈치로 기대고 있던 마차 뚜껑을 세게 내리쳤다.

커다란 해머로 내리친 것마냥 온 마차가 충격에 진동했다.

이에 운전하고 있던 마부가 움찔거렸다.

“마수가 출현한 지 한 시간이나 지났는데, 아직 상황이 종료되지 않았다고?! 자네, 지금 나랑 장난치자는 건가?”

“아닙니다!”

“그러면 왜 아직도 상황이 종료되지 않았는지 내가 납득이 가게 말해.”

연대장의 목소리는 아까 나와 대화를 나눌 때와는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목소리 자체는 여전히 중저음이었으나, 그렇기에 오히려 화가 났다는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목소리만큼 변화가 있던 것은 표정이었다.

마차에서 나를 맞이했을 때, 팔근육은 잔뜩 화가 나 있었지만 표정만큼은 부처님을 연상케 하는 인자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표정도 지금은 부처님이 아닌, 사찰 대문에 세워진 사천왕상이나 인왕상을 연상케 할 만큼 무서운 것으로 변해 있었다.

“아직 대대인원들이 하나도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도착 완료한 인원들은 연대 본부중대 소속 행정병 일부와 취사병, 수송병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원중대 병력 일부뿐입니다.”

“흐음…….”

아직 병력이 다 도착하지 않았다는 중사의 보고에 연대장이 다시금 표정을 원래대로 되돌렸다.

그렇다고 해서 화가 풀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시간이 이리 지연된 이유는 1급 마수를 상대할 기사가 없어서인가?”

“예, 맞습니다! 부대에 복귀하시자마자 죄송하지만, 우리넬에 탑승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장교들은 아직 아무도 도착 안 했나?”

“예!”

“후우, 근데 우리넬도 2진으로 도착하기로 되어 있던 거 아니었나? 우리넬은 도착했나?”

“샤를 중위가 상황이 발생하자마자 빠르게 전이 마법진을 그려 우리넬을 불러오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마법?

방금 무시할 수 없는 단어가 들린 것 같은데.

여기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였구나.

“어디에 소환한 건가? 야영지 내에는 보이지 않는데?”

“샤를 중위가 이곳의 지맥이 불안정해 전이 마법진을 그리기 어렵다고, 조금 떨어진 개활지에 그렸습니다.”

연대장은 잠시 고민을 하는 것 같더니, 이내 마차 좌석 아래에 있는 짐칸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아멜 소위, 방금 들었지?”

“예.”

“미안하네만 이 마차는 우리넬을 소환한 곳으로 가야겠네. 내 서명이 적힌 임관명령서를 줄 테니 걸어서 가 줄 수 있겠나?”

“예, 알겠습니다.”

“이대로 속도를 줄일 수는 없으니, 자네에게 충격완화 스크롤을 붙여 주겠네. 옷에 흙먼지가 조금 묻기는 하겠지만, 다치는 일은 없을 걸세.”

그러는 사이, 중사가 갈고리를 마차 프레임에서 뗀 뒤 자리를 옮겨 마부석 바로 옆에 앉았다.

연대장이 손수 마차의 탑승칸 문을 열어 줬다.

느낌이 불안했다.

비록 시속 4㎞의 저속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동차에 비하면 느리다는 것일 뿐, 빠른 속도라는 것은 분명했다.

다행인 것은 아스팔트 도로가 아니라 흙으로 된 비포장도로라 낙하시 충격이 덜할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떨어지면 아플 것은 확실해 보였다.

젠장.

언젠가 본 동영상이 떠올랐다.

달리는 차량에서 뛰어내려 몽골 초원에서 살아남는 해군 대위 출신의 군사 전술 전문가에 관한 영상이었다.

꽤 흥미롭게 봤는데, 설마 그걸 내가 직접 하게 될 줄이야.

그러는 사이, 연대장은 보라색 천을 내 팔뚝에 꽉 묶어 주었다.

팔뚝에 다이아 문양이 하나 그려져 있는 걸로 봐서는 계급장을 임시로 대체하는 물건으로 보였다.

“시간이 없네. 여기서 헤어지지. 아, 그리고 미처 말을 못한 부분인데, 자네는 이미 우리 서부 순회순찰대 1사단 3연대에 소속되어 있다네. 20시까지 부대에 복귀하지 않으면 탈영으로 간주되어 군사재판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잊지 말게. 자네가 친 사고를 생각하면 재판에 회부되자마자 즉결처형이겠지.”

연대장이 그렇게 말한 후, 내 팔을 잡아끌었다.

그 위에 종이 한 장을 내 등에 붙인 뒤, 나를 밖으로 던졌다.

나는 사람이 사람을 한 손으로 들고 날릴 수 있다는 것을 이때 처음 알게 되었다.

이걸로 내 인생 두 번째로 공중을 날게 되었다.

아마도 이런 경험은 쉽게 하기 힘들 것이었다.

물론 더 이상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기도 했다.



쿵!

흙먼지를 일으키며 내 몸이 땅바닥과 충돌했다.

몇 바퀴를 데굴데굴 구르고 나서야 간신히 자세를 다시 잡을 수 있었다.

천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얼굴에 모래가 덕지덕지 묻었다.

“으아아… 으아? 어라? 안 아픈데?”

내가 특수 훈련을 받은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연대장의 말처럼 스크롤에 의해 충격이 대거 완화되었는지 전혀 아프지 않았다.

근데 아멜 이 녀석은 대체 무슨 사고를 쳤길래 탈영했다고 즉결처형까지 당한다냐?

군부에 제대로 찍혔나 본데…….

나를 밖에다 던지자마자 마차가 속도를 올려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차가 가는 방향은 본부 야영지가 아닌 인근에 있는 숲.

언덕진 곳이라 숲 너머에 뭐가 있는지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고개를 반대로 돌리니 울타리 작업을 하고 있는 병력들이 대여섯 보였다.

현대 군대식의 철조망이 쳐진 간이벽은 아니었고, 일정 거리마다 말뚝을 박아 놓고 그 사이에 나무판을 덧대는 원시적 구조였다.

이 정도 거리면 그냥 내려다 준 다음에 가도 됐을 것 같은데, 굳이 여기다 내려놓고 간 걸로 봐서 상황이 매우 급박한 것 같았다.

뭐 나하고는 별 상관없으려나.

마수가 습격해 왔다고는 하지만, 한참 천막 설치 작업 중인 야영지에는 그런 전투의 흔적같은 게 전혀 보이지 않았기에 뭔가 체감이 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헨리가 챙겨 준 짐가방을 끌고 야영지 안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처음에는 점 수준으로 보이던 병력들을 이제는 이목구비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거리가 좁혀지자, 그들 역시 다가오는 나를 알아챈 듯했다.

“민간인 통제구역입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작업 병력 중 딱 봐도 어리버리해 보이는 병사 하나가 급하게 어딘가로 달려갔고, 이윽고 할버드로 무장을 한 병사 하나를 내 앞에 데려왔다.

병사가 입고 있는 갑옷이 판금 소재가 아니라 가죽 소재인 걸로 봐서 기사는 아닌 것 같았다.

아까 연대장이 써 준 명령서를 꺼내 그에게 보여 줬다.

“…….”

잠시 말을 망설였다.

원래대로라면 나는 30대를 바로 눈앞에 두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하지만 여기는 지구가 아니었고, 지금 내 몸 역시 평범한 직장인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내가 평소 하던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게 맞는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얻은 정보는 이 몸의 원주인이 후작가의 자식이고, 사고를 쳐서 군대로 도망쳤다는 것.

그런 설정이라면 허세를 부려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왔다.”

최대한 내가 아는 귀족답게 목소리를 깔고 말하자, 병사가 움찔거렸다.

나는 그에게 바로 연대장이 써 준 명령서를 아예 건네줬다.

병사는 내가 건넨 문서를 받아 들고 천천히 읽었다.

병사가 글을 읽을 줄 아는 걸로 봐서 단순한 평민은 아닌 듯싶었다.

어쩌면 이 세계의 문맹률이 낮은 편이 아닐지도 모르고.

그런 거는 차차 알아가면 될 일이었다.

“단! 결!”

명령서를 읽다가 갑자기 병사가 나에게 경례를 했다.

“어, 그래. 단결.”

한국에서 군복무를 할 때는 일반 병사의 입장이었는데, 엄한 곳에서 장교의 입장으로 경례를 받게 되자 기분이 묘했다.

그러고 보니 장교 교육을 받지 못 했는데, 괜찮으려나.

아멜이 3일 전에 입대 지원서를 제출했는데, 그 기간동안 실전 압축으로 교육을 받았을 리가 없었다.

받았다 하더라도 그 정도 가지고는 교육받았다고 말할 수도 없겠지.

애시당초 사고를 치고 피난처로 군대를 택한 느낌이라 별 상관이 없으려나.

나름 군복무 시절에 특등사수 마크도 받을 정도로 열심히 했던 나인데, 이렇게 낙하산 장교가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그래 봤자 군대다.



한 번 잘 해낸 군생활, 두 번 못할 것도 없지.

그렇게 생각하며 부대 내를 걷고 있자니, 대략적인 배치도가 머리 속에 그려졌다.

시작은 비록 낙하산이지만, 전역할 때는 부대원들의 축하를 받으며 명예롭게 전역할 수 있다면 어떻게 군대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따위는 의미 없는 게 아닐까.

그게 바로 군대니까 말이지.

애시당초 군대라는 게 높은 곳을 바라보며 거기에 올라가려고 하면 정치에 신경을 써야 하지만, 그럴 생각이 없다면 실력만 보는 게 군대였다.

말뚝을 박으려면 여러 가지로 달라질 게 많겠지만, 어차피 단기인데, 뭐.

일반병으로 복무하던 때의 경험을 잘 살리면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야영지 한복판에 설치된 지휘부 막사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이따금씩 작업 공구와 목판을 챙긴 병사들이 지나가면서 나에게 경례를 했다.

확실히 현대의 군대가 아니라 근세 이전의 군대라 그런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이미지와 다른 부분이 꽤 있었다.

첫째는 부대에 목재가 상당히 많다는 점이었다.

우마차에 실어서 가지고 온 목재도 많았고, 직접 연장을 챙겨 인근 숲에서 벌목을 해 온 목재들도 상당히 많았다.

수북히 쌓여 있는 목재들을 보고 있자니, 여기가 군부대인지, 아니면 벌목소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두 번째로는 병사들의 장비 상황.

한국군이라면 군기가 빠졌다고 말할 정도로 복장 상태에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 있었다.

다만 이게 같은 소속인지도 모를 정도로 제각각이라는 건 아니었고, 제식 복장과 무장이 있고 거기에 커스텀이 가해진 느낌이었다.

보라색 띠가 모든 병력들의 팔뚝에 묶여져 있는 걸로 봐서 그게 피아식별의 역할을 하는 듯싶었고, 황색과 녹색이 적절하게 배색된 천옷에 가죽을 껴입는 게 순회순찰대의 군복인 걸로 보였다.

이 느낌을 유지하기만 하면 군복으로 인정해 주는 듯, 배리에이션이 상당히 다양했다.

무장의 경우, 전 병력이 공통적으로 허리춤에 단검을 착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외의 무장은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농민 출신이라는 걸 증명하듯 수확용 낫을 등에 메고 있었으며, 어떤 이들은 쇠로 된 봉으로 만든 창을 가지고 있었다.

각자가 소유한 무기는 그야말로 병기 박물관을 방불케 할 정도로 다양했다.



의외로 지휘부 막사를 지키던 병력들이 나를 딱히 제지하거나 그러지 않았다.

만약에 내가 첩자나 간자라면 어쩌려고 저러는 걸까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그 걱정은 지휘부 막사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말끔히 사라졌다.

왜 잊고 있었던 걸까.

연대장이 근육이 빵빵한 노기사였다는 것을.

지휘부 막사 안에는 연대장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일반인보다는 꽤 큰 편에 속하는, 우람한 근육을 자랑하는 헬창들이 덩치에 안 맞게 서류를 들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응? 어디 소속이십니까? 도착 인원이 어떻게 되십니까? 혹시 물자표 가지고 오셨습니까?”

마치 헬스장에 헬린이가 방문하자 신이 나서 다가오는 관장마냥 내가 지휘부 막사 안으로 들어가자 꺾인 작대기가 셋 달린 상사 한 명이 노트를 손에 든 채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폭풍같이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음?”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외마디로 되질문 하는 내 목소리에 그는 내 팔뚝에 매인 보라색 천을 살폈다.

“야영지에 부대가 도착해서 보고하려고 방문하신 거 아니십니까, 소위님?”

“아, 그게 아니라…….”

나는 초병에게 보여 준 것처럼 이번에도 상사에게 연대장이 작성해 준 명령서를 보여 줬다.

“아, 이번에 새로 오시기로 한 ‘그 소위’님이시구나.”

말에 뼈가 조금 섞여 있었다.

살짝 기분 나쁘기는 했지만, 앞뒤 사정을 하나도 모르니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이어진 일로 인해 항의할 틈이 없었다.

“단결. 임무 투입 전에 보고하러 왔습니다.”

상남자들만 가득한, 땀내 나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게 실내에 아름다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절로 기대가 되는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입구로 향했다.

“오, 마침 잘 왔다, 카트린 하사.”

카트린?

카트린이면 여자 이름인데.

행여 목소리만 여자처럼 아름다운 남자가 아닐까 쓸데없는 걱정을 했지만, 이름을 들어 보니 확실히 여군이 맞는 듯했다.

“예, 해럴드 상사님. 무슨 일 있습니까?”

“어. 출발하기 전에 연대장님이 하셨던 말씀 있잖아.”

“뭐 말씀이십니까?”

“너희 소대에 새로운 소대장 온다는 거.”

“아, 그거 말씀이십니까? 혹시 이분이십니까?”

카트린이라 불린 여군이 내 어깨를 두드리는 게 느껴졌다.

그녀의 손이 나에게 닿자, 알 수 없는 찌릿한 전류가 내 몸을 타고 흐르는 게 느껴졌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몸을 돌려 카트린을 확인한 그 순간, 몸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태양처럼 정열적으로 빛나는 붉은 머리카락.

그리고 진저라고 하면 마땅히 따라오는, 주근깨 하나 없이 도자기처럼 맑고 고운 피부.

오똑한 콧날과 립을 바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선명한 색을 띄고 있는 입술.

얼굴이 작아서 그런지 몰라도 유난히도 더 크게 느껴지는 매력적인 입.

자신감 넘치는 강렬한 눈빛과 그것을 담고 있는 큰 눈.

그리고 마치 빨래판마냥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납작한 가슴.

…….

크흠.

군복이라서 압박 붕대를 착용한 거라 생각하자.

비록 작기는 하지만, 몸매 자체는 슬렌더의 정석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군인임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이었다.

군대에서 이렇게나 빼어난 미녀를 볼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카트린을 보자마자 그 아름다움에 취해 버렸다.

아니 정정해야겠다.

이 정도 외모는 현대 사회였다면 배우라 착각해도 될 정도였다.

아무튼 뜻밖에 훅 들어온 카트린의 미모에 반해 어버벙한 표정을 하고 있자, 카트린이 눈살을 찌푸리며 나를 경멸하듯이 쳐다봤다.

“아, 미안하네.”

시선을 급하게 돌려 카트린의 계급장을 확인했다.

“카트린 하사…….”

“아씨! 새로온 소대장이 너였어?!”

분노, 아니, 증오에 가득 찬 목소리로 앙칼지게 내 이름을 부르는 카트린.

“…나를 아는가?”

이 몸의 원주인을 아는 것 같자 순간 나도 모르게 당황했다.

하지만 나를 더욱더 당황케 한 것은 이후에 이어진 카트린의 행동이었다.

그녀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내 멱살을 잡아당겼다.

“너라면 잊겠냐!”

그러고는 다짜고짜 주먹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