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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진위대 3부 1권
1화 제1장 서울의 기억(1)
성내에 빼곡히 들어선 각양각색의 건물들.
장독대의 옹기마냥 둥글둥글한 지붕을 이고 있는 초가집 군락이며, 낭창낭창 흐르는 추녀와 용마루의 유려한 선을 뽐내는 기와집. 거기에 더해 세상이 쏜살같이 변모해 간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목 좋은 곳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선 양식 건물들까지…….
이들이 뒤범벅되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게 바로 1900년대의 서울, 즉 한성의 풍경이다.
지난 세기의 끝 무렵부터 시작된 격랑의 세파를 근근이 헤쳐 나온 도시였다. 노도와 같은 변화의 압력과 그 후유증을 맨몸으로 받아 내고, 외세의 집요한 탐욕에 시달리다 못해 끝내 커다란 비극적인 사건들도 겪었다.
하지만 오늘 한성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심하게 앓고 있었다.
꽈광!
고막을 찢을 듯한 폭음과 더불어 민가의 담벼락이 터져 나갔다.
[아아악!]
털썩!
병사들은 폭압에 휘말려 공중으로 붕 떠오르다 떨어져 내렸다.
담을 방어벽 삼아 고군분투하던 그들은 골목길을 돌아 불쑥불쑥 나타나는 적병을 상대로 차근차근 전과를 올리고 있던 대한제국 병사들이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일본군의 포탄에 의해 마지막 비명과 더불어 이승을 하직해야 했다.
[뭐, 뭐야! 이런!]
[아… 정식아! 김 참교님!]
옆집에 배치된 다른 동료들은 참변을 당한 전우들의 모습을 목격하고 목놓아 그들의 이름을 불렀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자 누구 하나가 뛰쳐나가려 했다. 하지만 소대장이 그의 팔을 붙잡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후퇴 명령이 내려왔어. 즉시 움직여야 해.]
타탕! 타탕! 탕!
시가전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한국군은 민가를 방어진지 삼아 용맹하게 일본군의 진격을 저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간이 갈수록 대한제국군 진영의 기세는 점차 꺾이기 시작했다. 탄약이 고갈된 탓이었다.
투투투투!
일본군의 기관총이 불을 뿜자, 또다시 몇 명의 한국군 병사들이 쓰러졌다.
“아, 어떻게…….”
“헉! 저런…….”
정장 차림의 관객들은 포탄이 터지고, 총성이 울릴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 몸부림을 쳤다. 이미 대한제국군에 깊이 감정이입이 된 여성 관객들은 병사들이 하나둘 쓰러질 때마다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눈이 퉁퉁 부어오르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였다. 심장이 약한 이들은 아예 눈을 감아 버렸다.
[빨리 물러나야지! 서둘러!]
[피하지 않고 뭐 해!]
이제 극장 안은 관객들의 고함 소리와 영화의 자체 음향이 범벅되어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사람들은 외마디 비명과 몸짓으로 자신의 감정을 거칠게 발산하고 있었다.
독일인 영화감독 라이(Stellan S. Rye)와 감독 겸 배우로 활약하고 있는 베게너(Paul Wegener)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영화에 몰입되어 있는 관객들의 반응을 살폈다.
“영화는 현실을 복사한 것처럼 이리도 생생한데, 오히려 이 공간의 모습이란…….”
베게너의 눅눅한 음색에 맞춰 라이도 같은 톤으로 반응했다.
“비현실적이지. 아니, 이 극장 분위기만이 아니라 모든 게 그래. 영화는 너무나 현실적이라 비현실적이고…….”
“후후, 정말 꿈처럼 느껴지는군.”
“아, 이제 클라이맥스네.”
클라이맥스 부분을 놓치기 싫은지, 두 사람의 의식은 다시 스크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벌써 몇 번이나 보았는데도 스크린은 이들의 시선을 강탈하는 마력을 부렸다.
지금껏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화질이 선명한데다, 음질도 전장의 소리를 그대로 옮겨 온 것처럼 실감이 났다. 모든 장면 하나하나가 생생하기만 했다.
전투가 마무리되어 갈 무렵, 이제 한성의 시민들이 주인공이 되었다. 한국군을 응원하고, 일본군에게 돌팔매질이라도 하며 돕던 이들은 전투가 끝나자 눈물을 흘리며 망자들의 시신을 수습해 주고 있었다.
두 독일인은 이 순간을 오히려 클라이맥스라 평했다. 전투 신(Scene)은 사람을 흥분케 하지만, 이 장면은 깊은 감정의 울림을 주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평가처럼 관객 중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두 사람은 몇 번이고 읊조린 감상평을 다시 무의식적으로 줄줄이 늘어놓았다.
“이건… 정말이지, 혁명이야. 영화의 혁명. 꽤 오랫동안 어느 누구도 저 영활 흉내조차 내지 못할 거야.”
1910년대는 무성영화의 전성기였다. 영화는 그저 움직이는 그림일 뿐이고, 음향은 스크린 앞에 배치된 오케스트라가 담당하던 시대였다. 하지만 대한제국 측은 최신 영화 시스템―필름만 가져온 게 아니라 영사기와 음향 장비, 심지어 스크린까지 포함된―을 통째로 들고 왔다.
지금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곳은 작년, 즉 1913년에 설립된 마모어하우스(Marmorhaus) 영화관으로, 베를린 서부의 쿠르퓌르스텐담(Kurfürstendamm)에 자리해 있었다.
대한제국에서 건너온 영화인들은 이곳에서 사상 최초의 유성영화, 아니, 정확하게 말해 그다음 단계인 동시녹음 영화를 선보였다.
베게너의 시선은 다시 관객에게 향했다. 말쑥하게 신사복을 차려입은 남성이든, 화려한 드레스 차림의 여성 관객들이든 정신 줄을 놓지 않고 있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저러다 다들 쓰러지겠어.”
“관객들이 모두 지쳐 쓰러진다 해도 놀랄 일이 아니지.”
라이 감독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소리, 정말 저 사건의 현장 한복판에 들어와 있는 것 같지 않나?”
“정말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비록 흑백영화라 해도 실감 나는 음향 때문에 관객들은 현실과 영화 속의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천 석 가까이 되는 마모어하우스의 좌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모두가 실제 그 일을 겪은 사람들처럼 격하게 감정을 표출하며 영화에 빠져 있었다.
“서울의 기억? 이게 실제 현실에서 일어난 이야기라고 했지?”
베게너의 질문에 라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는군. 1906년에 벌어진 한성 전투를 영화로 만든 거라고 하던데, 일본의 농간으로 외교권을 상실한 대한제국이 그해부터 본격적으로 반격을 시작했다고 들었네. 아마 이 사건이 분기점이 된 모양이야. 대한제국 황제도 이 전투 덕분에 일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무사히 북쪽으로 파천했다던데?”
실제 역사에서 한성 시위대 봉기 사건은 1907년도에 일어나지만, 간도 세력의 개입으로 인해 전혀 다른 모습으로 1906년도에 발발했다. 대한제국 측은 이 한성 전투 장면을 35㎜ 필름을 사용해 90분짜리 극영화로 제작한 것이었다.
“배우들의 대사를 스크린 하단에 자막으로 처리하다니, 대담한 시도야.”
“후후, 그렇긴 해도 저 자막을 읽어 낼 수 있는 관객은 거의 없을 거네. 영화 장면이 워낙 강렬하니 말이지. 우리야 여러 번 봐서 이제 자막을 읽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지만…….”
“그게 중요한 점이지. 내 생각에 여기 있는 관객은 분명 몇 번이고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될 거야. 비싼 관람료를 기꺼이 거듭 지출하고서라도 말이지. 그럼 저들도 자막을 읽을 수 있게 될 테고, 그러면 더욱 이 영화의 매력에 빠져들겠지. 또 저 독특한 화면의 흐름에도 익숙해지지 않겠어?”
“정말 저런 기법을 고안한 감독은 천재일 거야. 어떻게 저런 발상을 했을까?”
이들은 쇼트가 이렇게 잘게 나뉘어 있는 영화를 본 적이 없었다. 소련의 에이젠슈타인 감독에 의해 유명해진 몽타주 기법이 세상에 선보이려면 한참 더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보다 장면 전환 속도가 빠른데다, 편집 기법도 더욱 정교했다. 그러니 독일 영화를 대표하는 이 두 영화인은 그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이 영화를 처음 만난 건 첫 시사회 때였다. 당시에는 오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악했다. 놀람의 강도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더해 갔다.
* * *
살아남은 병사들은 부상당한 동료를 들춰 업고 계속해서 서소문 밖으로 후퇴했다. 병사들의 모습 하나하나에서 오늘의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
부상을 당해 피를 철철 흘리는 병사도 있고, 상태가 위중한지 들것에 실린 채 미동도 하지 않는 부상병도 화면에 나타났다. 상태가 괜찮은 병사들은 눈물을 흘리며 그들의 이름을 목놓아 불러 댔다.
[슬퍼하지 마라. 우린 해산을 당해 어깨를 늘어뜨린 채 군문을 나설 운명이었다. 하지만 왜놈들의 음모를 분쇄하고, 떨쳐 일어나 놈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더하여 우린 전우들과 일본을 상대로 하는 전쟁에 당당히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어떤가, 그런데도 우리가 오늘 졌다고 생각하나!]
박승환 참령의 피 끓는 목소리가 들리자, 병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향했다. 병사들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닙니다!]
[우린 승리했습니다!]
[비록 오늘은 이렇게 전략상 물러나지만, 내일은 다를 것이다. 한편으로 기쁘지 아니한가! 배신자에게 뒤통수 맞을 걱정하지 않고, 이렇게 마음껏 싸울 수 있다는 현실이!]
박승환 참령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고, 그만큼 그의 말에 동조하는 병사의 수도 늘어갔다.
[이제 서둘러 북쪽에 있는 아군과 합류한 다음, 오늘 희생당한 동료의 빚을 백배, 천배로 왜놈들에게 갚아 주자! 그땐, 우리가 이긴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렇습니다!]
[와! 우리가 이깁니다!]
병사들은 큰 소리로 그의 웅변에 화답했다.
이제 성 밖을 빠져나와 인왕산 산자락에 집결한 시위대원들은 붉게 불타는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북쪽으로 행군하기 시작했다.
* * *
“와아아아아!”
짝짝짝짝!
영화가 끝나자 독일인 관객들은 모두 벌떡 일어나 극장이 무너져 내릴 정도로 큰 박수갈채를 선사했다. 격한 감정 노동에 시달린 흔적이 역력했지만, 생전 처음 놀라운 경험을 하게 해 준 이 영화에 대해 모두가 진심으로 찬탄하고 환호했다.
극장 내부가 밝아지면서 사회자가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러분, 이 영화의 감독과 주연배우를 모시겠습니다. 멀리 대한제국에서 오신 분들입니다.”
“와아아!”
관객들은 영화가 끝났을 때보다 더 큰 갈채를 쏟아 냈다.
대한제국 최초의 영화감독인 현정건(玄鼎健, 1887년 대구 출생)과 박승환 참령 역을 맡은 배우 유동하(劉東夏, 1892년 함경도 원산 출신)는 무대 앞으로 걸어 나와 깊게 허리를 숙였다.
현정건은 훗날 작가로 이름을 날릴 현진건(玄鎭健)의 친형―혈연적으로 친형이나 현진건이 당숙 집안에 양자로 들어가는 바람에 법적으로는 재종간―이자 현재 송강주 주지사로 있는 현상건(玄尙健)과 역시 재종(육촌)간이기도 했다. 그는 실제 역사에서 상해에서 주로 활동한 독립운동 지사였다.
유동하는 안중근 장군의 하얼빈 의거에 동참한 독립운동가로, 이토 히로부미 처단 사건으로 인해 조도선 등과 함께 옥고를 치른 인물이었다. 그는 1918년 러시아 적백내전 당시, 시베리아에 주둔한 일본군에 체포되어 그만 총살을 당해 순국하게 된다.
관객들의 환호성과 박수 소리는 이 두 사람이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다.
타원형 얼굴형에 짙은 눈썹, 다소 가느다란 눈매에 총명해 보이는 눈동자, 몸매도 호리호리해 검은 연미복이 제법 잘 어울려 보이는 현정건이었다. 무대에 우뚝 선 그는 관객들의 이런 열화와 같은 반응을 예상 못 했는지 얼떨떨한 표정으로 객석을 둘러보았다.
“서, 성공인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혼잣말이 그의 긴장감을 덜어 준 모양인지, 경직된 그의 표정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현정건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연배우를 맡은 유동하를 바라보았다. 그는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거듭해서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반응이 궁금한지 자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감독님, 대성공인 모양이오.”
“그렇지? 하하! 다들 그럴 거라고 했지.”
두 사람은 굳게 손을 맞잡았다. 그들의 의식은 어느새 갖은 고생을 하며 이 영화를 만들던 작년 무렵으로 돌아갔다.
* * *
“어이쿠!”
일본군 복장을 한 배우 하나가 어설픈 비명을 지르더니, 그 소리에 걸맞게 비실거리며 넘어졌다.
“우하하하!”
“하하하! 저 냥반은 며칠 배를 곯았나, 왜 저리 비실거려!”
“요즘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나? 우리 구경꾼들 덕에 바짝 얼어붙은 모양이여!”
영화 촬영 장면을 지켜보던 시민들이 폭소를 터트리더니 놀려 댔다. 한성 사람들에겐 영화 촬영장 자체가 별건곤이었다. 모든 게 재미있고 신기해 보였다. 그래서 배우가 어떤 동작을 펼치기만 해도 공연히 웃음보를 터트렸다.
그런 구경꾼들이 남대문과 서소문 주변에 잔뜩 모여서 장면마다 반응하다 보니, 이 일대가 시장 바닥처럼 변해 버렸다. 사람이 모이니 엿장수도 나와 군중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영업에 열중했다. 커다란 반짝 시장이 열린 셈이었다.
“멈춰!”
현정건 또한 빙긋 웃으며 카메라를 멈춰 세웠다.
“총을 맞았는데 그렇게 넘어지면 되오? 조금 박력 있게 쓰러져 봐요.”
그가 지시를 내리고 다시 촬영을 재개하려다, 문득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손님들의 모습을 보고 황망히 고개를 숙였다.
“아! 어서 오십시오, 관찰사님.”
“허허, 수고가 많소. 하시는 일은 잘되고 있소?”
얼마 전, 경기도 관찰사로 임명된 김연성(金演性)―그는 작년까지 제국정보원 양주군 지부장이었다―이 만면에 미소를 띤 채 그를 격려했다.
“그럭저럭 잘되고 있습니다.”
“뭐, 도와줄 건 없소? 필요하면 언제든 말씀하시오. 시청 관리들이 다들 영화 이야기만 합디다. 어디, 관리뿐이겠소. 한성 장안이 이 일로 아주 시끌시끌하오.”
한성시장 이도표(李道杓)도 현정건을 치하하고 나섰다. 제국정보원 한성 지부장이었던 그는 작년에 한성시장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하하, 고맙습니다. 솔직히… 부탁드릴 게 많습니다. 저기 보시면…….”
현정건은 촬영장을 둘러싸고 있는 엄청난 규모의 인파를 가리켰다.
“아∼ 하하하하, 시민들 때문에 방해받는가 보오.”
“솔직히… 그렇습니다. 너무 산만한데다 화면에도 자주 잡히고, 이제 대사 녹음도 해야 하는지라…….”
현정건은 손을 들어 사람 머리통보다 훨씬 큰 마이크를 가리켰다. 이번에 백두산 연구소에서 새로 만들어 준 장비인데, 후세의 붐 마이크보다 훨씬 컸다.
그래도 이 시기에 만들어진 다른 음향장치에 비해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작은데다, 기술적으로 까마득히 앞서 있는 장비였다.
“하지만 저분들이 필요한 장면도 있고 해서 어찌해야 할지…….”
“허허, 알았소. 곧 순검과 관리들을 뽑아 보내 주겠소. 그 사람들을 통해 잘 관리해 보시오.”
정부는 경위원 조직, 즉 경찰 조직을 개편하면서 기존의 치안대 병력을 ‘순검(巡檢)’, 형사 이상의 간부들을 ‘경관’이라 호칭하기로 했다.
“고맙습니다. 그럼 한결 낫겠네요. 그런데 웬일로…….”
“아, 내 정신 좀 봐. 이거…….”
이도표는 품에서 서류 하나를 꺼내 현정건에게 건넸다.
“관찰사님이 현장을 보고 싶다고 하시기에 이걸 전달할 겸, 여길 찾게 되었소. 이건 전화로 들은 얘길 기술한 것이오.”
이도표가 건넨 서류는 서울의 대한영화진흥공사에서 보낸 전화 통신문이었다.
“아니, 이 작품을 들고 독일로 간다고요?”
현정건은 서류를 읽어 보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
1.북해도부(북도-동도-중도) 지역

2.라온달 금광지대 상세도

3.사할린북도 지역도

4.캄차카반도 지도

5. 북해도부(중도-남도) 지역도

6.연해주남부-간도주 동남부지역도

7.캄차카반도 남부지도

8.사할린남도 지도

9.북만주지역 주요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