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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Prologue





하루가 교차하는 자정 무렵. 살덩이가 뒤섞이고 신음이 들끓는 야만과 설움의 밤이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몸을 섞는 그 격렬한 움직임에 중심을 잃고 쓰러진 모던한 디자인의 스탠드 램프가 바닥에 둥근 주홍빛 원을 그리며, 정사를 나누는 남자와 여자의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는 노골적인 실루엣을 고스란히 비추었다.



오래전 수명을 다한 푹 꺼진 퀸사이즈 매트리스가 격정적인 정사를 감당하지 못하고 서럽게 삐걱거리며 애욕을 감내하는 이 순간.

신음에 슬픔이 뒤섞인 어두컴컴한 공간.

애욕과 슬픔만이 욕망을 반추하는 밤.

사랑일랑 기약 없는 허황한 꿈.

성욕과 밑바닥을 설설 기는 참담함으로 이어지는 지독한 악몽과도 같은 밤이다.



맨살에 후드득 떨어지는 땀방울이 남자와 여자의 속에 담긴 울화처럼 뜨거우면서도 차가운 순간이었다.

백유완의 늘씬하면서도 단단한 육신에 사로잡힌 영해주는 숨을 깔딱거리며 이성의 중심을 잃고, 이리저리 헤맸다.

그린 듯이 유려하며 기다란 손가락을 지닌 유완의 손은 해주의 여위고 가냘픈 몸을 거칠게 유린하며, 기어이 그녀의 입꼬리가 깊게 팬 도톰한 입술에서 달뜬 신음이 비어져 나오게 했다. 살을 품고 헤집는다는 것은 으레 아찔한 통증을 수반하는 법이다.

“으응, 응! 흐읏, 아아…….”

해주는 이성을 송두리째 흔드는 유완의 손길에 갈피를 잡지지 못하고 진저리를 친다. 유완의 두 손이 아담하게 부푼 그녀의 가슴을 우악스럽게 움켜쥐며, 부드러운 살덩이가 선사하는 뜨거움을 마음껏 탐닉했다. 작게 흔들리는 여자의 가슴에 남자의 손 모양 그대로 붉디붉은 흔적이 새겨졌다.

제 가슴을 주무르고 문지르는 백유완의 극진한 애무에 영해주의 유두는 금세 딱딱하게 솟는다. 유완은 그것을 과실을 탐하듯이 기꺼이 베어 물었다. 그리고 힘껏 빨았다가 혀끝으로 부드럽게 원을 그리며 핥았다. 끝부분을 혀끝으로 톡톡 두드리면서 말이다. 젖을 빠는 것처럼 남자의 입은 쉬이 멈추지 않는다.

유완의 손자국이 적나라하게 남은 해주의 가슴은 곧 유완의 타액으로 번들거리며 더욱더 탐스럽게 붉은빛으로 익어 갔다. 남자의 손목 움직임을 따라 물결처럼 출렁거리는 가슴이었다.

“아아, 응, 으응…….”

해주가 지독한 쾌락에 신음하며 머리를 세차게 저었다. 그녀는 백유완이 제 가슴을 주무르며 유두를 꼬집거나 비틀 때마다 눈앞이 새하얗게 번지는 것을 경험했다. 특히 유완의 뜨거운 입술이 그것을 핥고, 빨고, 깨물 때면 추락하는 듯한 아찔함마저 느꼈다. 이러한 아찔함을 알게 해 준 것이 바로 유완이다. 평생 성욕이라고는 없다시피 했던 여자가 천박하고 음탕한 말까지 하며 조르도록 섹스에 몰두하게 만든 남자, 백유완.

“하아…… 영해주, 다리 벌려. 싫은 꼴 당하기 싫으면.”

백유완이 영해주의 무릎을 두 손으로 쥐며, 강압적인 태도로 그녀를 밀어붙였다. 양 무릎을 바로 세운 해주의 늘씬한 다리는 좀처럼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가늘게 떨며 고집스레 붙어 있었다. 꼭 첫 경험인 것처럼 수줍어하면서.

그러나 백유완은 제 눈에 담은, 제 마음에 품은 이 서늘하고 단정한 여자가 발정이 난 짐승처럼 흥건하게 젖은 꼴도 눈에 담고 싶어, 강압적인 말을 아무렇지 않게 지껄였다. 잠자리에서 백유완은 이처럼 거칠고 적나라한 남자였다.

“그런 말…… 좀 안 하면 안 돼요?”

영해주는 유완과 시선을 마주하기 싫어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차가운 회색 벽에 자신과 유완의 그림자가 그을음처럼 묻어 있었다.

지금껏 유완에게 한 번도 솔직하게 말한 적은 없지만, 해주는 그의 그림자를 좋아한다. 그와의 관계를 좋아한다. 아니, 좋아하다 못해 갈구한다. 그리고…….

그런데도 이미 수십 차례 배를 접붙이고, 몸을 섞었음에도 해주는 매번 처음인 것처럼 서먹하게 유완을 대했다.

백유완은 해주가 이처럼 자신을 마음에 둔 것을 몰랐으므로, 오로지 욕망만을 추구하는 짐승처럼 해주를 안는 걸 좋아했다. 그것은 일종의 분풀이기도 했다. 제 안에 차오른 여자를 온전히 갖지 못한 절망감에 대한.

영해주의 육신을 탐할 때마다, 백유완은 그를 잠식한 잡념이 송두리째 무너져, 오로지 짜릿한 전율만이 전신에 감돌았다. 그리고 이제는 잃어버린 과거의 찬란한 순간의 조각을 언뜻 쥐는 듯도 했다. 그래서 더더욱 해주를 거칠고 잔인하게 탐하는 것이다. 과거란 결국 흘러 버린 것, 두 번 다시 손에 쥘 수 없는 것이므로.

그들의 섹스는 언제나 발정기에 물이 오른 짐승처럼 적나라하고 외설적이다. 그런 한편으로 무엇으로도 치유할 수 없는 상처투성이 사람들이 서로의 상처를 뜯어내고, 또다시 후벼 파는 것처럼 처절하다.



애달픈 신음이 비명처럼 어두컴컴한 허공에 울려 퍼지는 그런 나날.



굴러떨어진 가엾은 스탠드 램프에서 찌릿찌릿 스파크가 튀며 얼마 남지 않은 수명을 암시하는 듯했다. 그리고 곧이어 들이닥칠 남자와 여자의 거대한 파도와도 같은 절정의 순간도.

“왜?”

백유완은 해주의 둥근 가슴에 대고 뜨거운 숨결을 토해 내는 것과 달리, 냉랭한 어조로 물었다. 해주의 불안과 수줍음일랑 자신과 아무런 관계없다는 그런 태도였다. 하지만 그 차가운 서리가 서린 빙하 아래는 사무치는 애틋함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부끄러워서…….”

말과는 달리 영해주의 얼굴은 차갑다. 지금 이 순간도 멈추지 않고 제 허리와 다리를 쓸어 대는 유완의 거침없는 집요한 애무에 전신이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렸지만, 그녀는 곧 끊어질 것처럼 가냘픈 이성이 무너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며 붙들고 있었다. 제 속내를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개소리하고 있네. 영해주, 그거 알아?”

백유완은 기어이 해주의 다리를 우악스럽게 벌리며 물었다. 해주의 늘씬하고 탄력 있는 허벅지 안쪽을 유완이 손끝으로 꾹 눌렀다. 해주는 대답 대신에 고개만 내저었다. 유완이 자신에게 선사하는 쾌감만으로 벅차서 그 무엇도 생각할 수 없었다.

이어서 백유완이 해주의 허벅지 안쪽을 손등으로 가볍게 쓸어내렸다. 뼈마디가 불거진 남자의 손길이 스치자 해주는 짜릿한 쾌감에 머리를 세차게 저었다.

가늘게 경련하는 여자의 허벅지 가운데 붉게 벌어진 속살이 푹 젖어 미끈거렸다. 태곳적 날것 그대로. 유완은 그 가운데 동그랗게 솟은 클리토리스를 검지로 문지르고 비볐다. 그 속도는 점차 빨라졌다. 클리토리스를 감싸고 있던 음순이 벌어지며 그 사이로 고인 물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아응, 응! 읏, 으응…….”

강렬한 쾌감을 이기지 못한 해주의 입에서 비음 섞인 신음이 흘러나왔다. 유완은 빠끔거리는 해주의 좁은 질구에 손가락 마디 하나를 집어넣어 빙글빙글 돌렸다.

“하아…….”

여자의 좁은 입구가 제 손가락을 꽉꽉 물어 대는 것에 유완의 입에서도 신음이 흘러나왔다. 유완은 아예 손가락 두 개를 집어넣고 좁은 구멍을 무자비하게 쑤셔 댔다. 그대로 손목까지 쑥 집어넣을 사나운 기세였다. 해주의 붉은 속살이 유완의 손가락을 흡입하듯 오물오물 빨아 대며 반겼다.

“으응! 아, 아으응, 응!”

해주의 신음이 높다랗게 허공에 울린다. 절정에 가까워졌음을 암시하는 목소리다. 유완은 해주의 아랫배가 잘게 경련하는 아슬아슬한 순간, 해주의 구멍을 쑤셔 대던 제 손가락을 빼냈다. 그의 손목까지 애액이 흘러내려 엉망이었다.

해주는 헐떡이며 숨을 골랐다.

유완도 낮게 신음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유완의 손가락으로 희롱당해 벌어진 해주의 작은 구멍에서 흘러나온 애액은 유완뿐만 아니라 구겨진 시트까지 흠뻑 적셔, 비릿하면서도 남자의 욕망을 부추기는 진한 냄새를 풍겼다.

“지금 홍수 난 것처럼 젖었어, 너. 영해주. 내가 네 보지 쑤셔 주니까 좋았나 봐?”

백유완이 차갑게 미소 지으며 낮은 음성으로 툭 내뱉었다.

지저분하고 적나라한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남자의 얼굴은 괴로움과 서러움으로 가득하다. 여자에게 작정하고 상처를 주겠다는 것처럼, 여자의 작고 봉긋한 가슴 아래 지울 수 없는 흉터를 남기리라 각오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영해주는 부끄러움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유완의 말대로다. 그가 제 몸을 난잡하게 쑤셔 주는 것이 좋아도 너무나도 좋았다. 절정의 순간이 다가올 무렵 유완이 멈춘 것이 야속할 정도다.

백유완은 자신의 기둥 끝부분을 잡고 해주의 다리 사이에 맞췄다. 해주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언제나 고대하는 순간이다. 유완은 꽃잎처럼 벌어진 해주의 성기에 귀두를 대고 문질렀다. 긴장감 탓에 해주의 가슴이 크게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녀의 유두는 여전히 꼿꼿하게 서 있다. 언뜻 남자의 잇자국이 보이기도 했다. 뾰족한 송곳니. 유완의 남근은 금세 해주가 흘린 애액으로 젖어 미끈거렸다.

이윽고 굵은 핏줄이 도드라진 백유완의 길고도 단단한 성기가 영해주의 좁은 구멍을 뚫고 그 안으로 단숨에 쑥 들어갔다.

“아, 아앗! 앙, 아응!”

해주가 온몸을 뒤틀며 신음했다. 수십 번 겪어도 낯선 감각이다. 자신의 오감이 오로지 제 몸속을 헤집는 이 남자를 위해 존재하는 듯한.

해주의 선홍빛 내부에 오돌토돌 돋아난 것이 빨판처럼 유완의 성기에 쩍쩍 들러붙으며, 유완에게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아찔한 쾌감을 선사했다. 백유완의 의식은 송두리째 심해와도 같은 영해주에게 빨려들어 갔다.

“하아, 하읏, 읏…….”

유완도 짜릿한 쾌감에 신음을 토해 냈다.

풍만하지도, 육감적이지도 않고 그저 마르고 앙상한 가냘픈 해주의 몸이 땀으로 젖어 번들거리는 모양새가 백유완의 내면에 깔린 지저분한 욕망과 충동을 마구 저울질했다. 여자의 나른한 얼굴은 그 자체로 야릇하다.

“하아…… 영해주. 넌 진짜 개같은 인간이지만. 사람 기분 더럽게 잡치게 하는 데는 뭐가 있지만.”

유완은 욕망과 분노로 충혈된 눈으로 해주를 노려보았다. 가시 돋친 그의 말씨에는 은밀하게 간직한 음울한 애정이 내포되어 있었다.

언제나 울적한 인상의 여자, 영해주. 기쁨일랑 평생 모르고 산 것처럼 우울함을 달고 사는 여자. 백유완의 자아를 모조리 잡아먹는 애욕과 서글픔의 대상.

“영해주.”

백유완이 잔뜩 쉰 음성으로 해주의 이름을 애절하게 불렀다.

“네 몸 진짜 좋아. 너랑 이 엿 같은 짓거리 할 때마다 마음속에 울분이 전부 흐지부지 흩어지고 말아. 그래서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어. 나, 너 때문에 진짜 돌아 버릴 것 같아.”

성이 잔뜩 나서 치켜뜬 유완의 반듯한 눈썹 아래, 옅은 황금빛이 도는 투명한 동공은 뜨거운 눈물로 가득 차 있었다.

퍽퍽 치닫는 소리가 커진다. 거칠고 메마른 소리다. 해주의 엉덩이 아래는 이미 더는 젖을 수 없을 정도로 번들거렸다. 유완의 성기는 해주의 깊숙한 곳까지 마구 찔러 댄다. 뭉툭한 끝이 여린 속살을 흐물흐물하게 짓뭉개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