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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형님! 정말입니까?”

서원호는 답답했다. 준영이 드디어 왜 양승수를 만나려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준영이 강한 건 알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급이 다르다. 양승수는 무려 S등급의 능력자였다. 그 안에서 어느 정도 위치인지는 모르지만, S등급이면 인간 병기 수준 정도가 아니다. 핵무기로 처리한 상급 천사와 맞붙을 수 있는 수준이 S등급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강자를 준영이 죽인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말이 안 됐다. 준영이 아무리 강하고 아무리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양승수를 이기는 것은 무리라고 서원호는 생각했다.

“형님, 이번에는 정말 무리예요. 진짜 계속 그러시면 저 그냥 돌아갈 겁니다.”

서원호가 되도 않는 협박을 했다.

“이제 떠나도 좋다.”

준영은 서원호를 이제 놓아주려 했다. 양승수에 대한 흔적을 찾았으니 더 이상 자신을 따라오지 않아도 됐다.

“허, 참?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서원호는 황당했다. 여기까지 끌고 와서 이제 와 떠나라니. 자신이 먼저 돌아간다 했지만, 저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정말 사회성 제로인 형님이었다.

물론 욜로회가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곳까지 혼자 다시 가기가 무서웠다.

“안 갑니다! 안 가요. 여기까지 끌고 와서 다시 가라니 정말 너무하십니다!”

“음.”

준영은 딱히 할 말이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강제로 데리고 온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오빠, 근데 정말 그… S등급이라는데 싸울 거예요?”

서원호가 눈짓으로 구원을 요청하자 은용이 나서서 물었다. 그녀도 내심 걱정되었다. S등급에 관한 얘기는 전설처럼 들어왔다. 모든 각성자들의 정점에 선, 수천의 괴물도 일수에 죽일 수 있다고 들은 게 S등급이기 때문이다.

“그래, 죽일 것이다.”

준영이 가라앉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에게 그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우선시되어야만 하는 것 이었다.

자신과 그녀를 배신한 동료들을 생각하면 속에서 불이 끓어올랐다. 다시 분노가 머리를 감싸자 준영의 눈이 천천히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앗차, 또 맛 간다!’

은용이 재빨리 눈치 채고 서원호에게 손을 휘저었다. 더 이상 건들지 말라는 얘기.

“자자, 빨리 갑시다! 빨리요!”

준영이 또 심각하게 생각에 빠져들기 전에 은용이 팔을 잡고 끌었다. 덕분에 준영은 자신을 잠식해 가는 분노에서 겨우 깨어날 수 있었다.

은용과 서원호는 더 말하지 못했다. 준영이 또 미치면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으으, 대장을 만나면 내가 잘 설득해 봐야겠어.’

서원호는 내심 굳게 마음을 다잡았다. 준영과도 몇 달을 지내며 꽤나 친해졌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사실 이런저런 덕도 많이 봤다. 그런 그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형님이 설사 S등급이라 해도 대장은 못 이기지. 암, 그렇고말고.’

서원호는 양승수가 키워 준 자였다. 그리고 그 힘을 약간이나마 옆에서 지켜봤다. 그가 누구한테 진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일행은 우선적으로 남쪽 해안가 위주로 찾아갔다. 다시 아래쪽으로 발걸음을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바다 쪽은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네요?”

은용이 궁금해 하며 서원호에게 물었다.

육지에서는 동물이 씨가 말랐다. 괴물들이 대부분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괴물에게 먹히지 않은 생선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이 바닷가 쪽에 많을 줄 알았는데 정착지는 아예 없었다.

“못 먹어요. 못 먹어. 방사능인지, 아니면 무슨 이유인지 물고기들도 다 정상이 아니에요.”

멸망 초기에는 물고기들이 죄다 배를 까뒤집고 죽었다. 핵의 여파라는 얘기도 있고 괴물들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아무도 정확한 이유를 몰랐다. 때문에 현재 바다에서 잡히는 물고기들은 대부분 기형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탁 트인 바다 쪽에 위험하게 정착지를 지어 놓고 살지는 않는 것이었다.

“다시 올라간다.”

꼼꼼하게 해안 지방을 살핀 준영은 북쪽으로 진로를 틀었다. 중간중간 만나는 소규모 정착지도 놓치지 않고 확인했다.

“양승수 대장님이요? 한 달 전에 떠났는데요?”

다시 흔적을 찾았다. 양승수를 알고 있는 정착지를 지금까지 두 군데나 만났다. 그는 일정 범위 안에서 계속 돌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한 번 머물면 최소 두어 달 이상은 머물기 때문에 쉬지 않고 돌아다니면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헥헥, 어후, 지겹네.”

두 달이 넘게 빙빙 돌아다니다 보니 서원호는 지겨워졌다. 통신 수단이 없으니 사람 하나 찾기가 정말 어려웠다. 처음 마음가짐과 달리 그는 준영이 양승수를 그냥 빨리 만나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중간중간 은용의 각성을 도우려 사냥까지 했으니, 서원호가 지루하게 느끼는 것도 이해 못 할 것은 아니었다.

서원호가 그러거나 말거나 소규모의 괴물이 보일 때마다 준영은 그녀가 잡을 수 있게 도와줬다. 마력은 정말 쥐꼬리만큼만 늘었지만.

“오늘은 이 주변에서 사냥을 하도록 하지.”

괴물이야 소규모라 그렇지 찾으려면 충분히 찾을 수 있었다. 그 정도로 넓게 번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준영이 마력을 넓게 퍼뜨렸다. 괴물을 낚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괴물 하나 나타나질 않았다.

“아예 없는 것인가?”

준영은 조금 더 멀리 마력을 뿌려 보았다. 그때서야 괴물이 한두 마리 나타나기 시작했다.

“음.”

하지만 준영은 다가오는 괴물을 보고 이상함을 느꼈다. 녀석들의 몸에 핏자국이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상처를 입은 흔적 같았다. 하지만 이미 재생이 되어 버려 정확히 어떤 상처인지 알기 힘들었다.

“이동한다.”

순식간에 다가오는 괴물을 날려 버린 준영이 바로 움직였다. 두 사람은 괴물을 잡을 준비를 하다 영문도 모른 채 그를 쫓아갔다.

어느 정도 이동하자 준영은 괴물의 기운을 느꼈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들과 싸우는 것도 느껴졌다.

“은영을 데리고 빠르게 쫓아와라.”

준영은 그 말만 남기고 바로 자리에서 사라졌다.

“으엑! 같이 가요!”

은용이 기겁하며 열심히 휠체어를 밀며 쫓아갔다. 말이 ‘빠르게’지 각성자도 아닌 그녀가 뛰어 봤자 그를 따라잡기는 어림도 없었다. 그런 그녀 옆에서 서원호가 설렁설렁 뛰며 웃었다.

“누님은 참 느리군요.”

참으로 얄밉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은용은 이를 악물고 뛰었다. 그래도 서원호는 여전히 설렁설렁 뛸 뿐이었다.



“막아!”

“찔러!”

준영이 싸움의 장소에 도착하자 일단의 무리가 괴물들과 싸우고 있었다.

“흠.”

괴물의 수는 다섯이고 인간의 수는 열 명이다. 그중 각성자의 수는 세 명. 세 명이 나머지 일곱 명을 이끌며 괴물들을 잡고 있었다.

싸우는 걸 보니 상당히 체계적이었다. 단단한 방패와 창을 들고 괴물들을 효과적으로 잡고 있었다. 각성자들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옆을 지키며 지휘하고 있었다. 괴물들의 수가 별로 되지 않아 가능한 방법이지만, 자신도 처음에 저런 식으로 괴물을 잡았다.

그렇다. 저 방법은 자신과 동료들이 초반에 괴물을 잡을 때 쓰던 방법이었다. 그것도 바로 그녀가 만든 전술이었다. 그 특징이 눈에 훤히 보였다.

“크큭.”

웃음이 나왔다. 확실하다. 이들은 양승수가 수련시키는 자들이 분명했다. 지금까지 거쳐 오면서 들은 말과도 일치했다.

준영은 참을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지금까지 충분히 인내하며 조용히 찾아다녔다. 이제는 더 기다리고 구경할 필요가 없었다. 참을성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파파팍!

크아아악!

순식간에 괴물들의 머리가 터지며 쓰러졌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 갑자기 나타난 준영을 바라보았다.

“무, 무슨 짓입니까? 이놈들은 우리가 사냥하고 있었는데! 충분히 잡을 수 있었습니다.”

각성자 하나가 나서서 항의했다. 물론 준영의 일수에 괴물들이 터진 것을 보고 자신보다 윗줄인 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믿는 구석도 있고 그저 지나가다 자신들을 도와준 각성자 정도로만 생각했다.

준영은 악마 같은 미소를 지으며 그 각성자 앞에 섰다. 그리고 음산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양승수 알지?”

“우, 우리 대장님을 왜?”

휙!

“컥, 커억!”

준영의 손이 번개 같은 속도로 그 각성자의 목을 잡았다. 각성자는 몸을 버둥거리며 빠져나오려 하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안내해라. 지금 당장.”

“멈춰!”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전부 준영을 노렸다. 다짜고짜 나타나서 폭력을 휘두르니 악당으로밖에 안 보이는 것이었다.

준영의 눈이 붉게 물들고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슬슬 맛이 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양승수에게 안내해라.”

그 모습에 사람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준영에게서 풍기는 기운이 심상치가 않았다. 자리에 있는 모두는 덤비면 당장 죽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오빠앗! 멈춰욧!”

“형님, 안 됩니다!”

그때서야 두 사람이 도착했다. 두 사람은 상황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준영이 맛이 좀 갔다는 것을. 다급하게 달려온 두 사람이 손짓, 발짓해 대며 말리기 시작했다.

“헥헥, 잠시만요. 잠시만요.”

은용이 숨을 헐떡이며 준영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만하라는 뜻이었다.

털썩.

“콜록, 콜록!”

준영이 손을 놓자 남자는 바닥에 주저앉아 심하게 기침했다.

“미안하게 됐군. 하지만 내 인내심이 지금 바닥에 이르렀다. 더 참기가 힘들군.”

“……?”

남자는 도대체 준영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그러니까 이 오빠랑 그 양승수란 분하고 친구에요, 친구! 빨리 보고 싶어서 그래요!”

은용이 나서서 다급하게 변명을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세상에 그 어떤 친구가 저런 식으로 행동한단 말인가. 남자가 생각하기에 자신의 대장은 품격 있는 의인 중의 의인이었다. 저런 시정잡배 같은 놈과 친구일 리가 없었다.

바닥에 앉은 사내는 주변의 같은 편에게 눈짓을 보냈다. 어찌하면 좋겠냐는 뜻이다. 하지만 다들 겁에 질려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

“좋아. 안내해 주지. 하지만 후회할 거다.”

남자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양승수는 S등급이다. 과연 대장을 만나고도 저렇게 패악하게 굴 수 있을지 궁금했다.

준영이 그 말을 듣자 눈을 감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드디어 만난다고 생각하니 미치도록 흥분되고 떨렸다. 수백 년의 세월 동안 기억이 갈기갈기 찢길 정도로 곱씹고 곱씹던 얼굴들이다. 그중 하나를 드디어 만나게 된다.

오랜 세월이 지나며 어느 순간부터 기억이 희미해져 갔다. 죽었을 거란 생각에 마음은 포기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걸 안 순간, 기억은 선명해졌고 분노는 끝없이 차올랐다.

지금 느끼는 이 희열은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리라. 그리고 직접 만나게 된다면 이 희열은 더욱더 배가 될 것이었다.

사내의 무리는 조심스럽게 정착지로 이동했다. 이놈이 어떤 놈이든 겁날 건 없었다. 자신들의 대장은 S등급이었으니까.

정착지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다들 뭐가 좋은지 가운데 선 남자의 얘기를 들으며 웃고 있었다.

일장 연설을 하는 남자는 중년의 나이로 보였고 키와 덩치가 상당히 컸다. 곽주식이나 조재도 같은 살덩이가 아니라 단단한 근육으로 이루어진 덩치였다. 겉모습만 봐도 산과 같은 거대함과 단단함이 느껴졌다.

남자는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 정착지로 들어선 무리를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못 보던 자들이 있었다. 새로 구조해 온 사람인가 싶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데 한 남자가 자신에게 내뿜는 기운이 너무나 따가웠다. 각성자는 분명한데 살기까지 느껴졌다.

남자는 몸을 완전히 돌렸다. 그가 바로 서자 태산과도 같은 거대한 기운이 남자에게서 느껴졌다.

진중한 목소리로 남자는 준영에게 물었다.

“자네는 누구지? 나에게 볼일이 있나?”

준영이 희열에 찬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다, 양승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