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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나는 평범하다.

물론 내 가족에게 나는 특별하고 내 스스로도 내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땐 나는 평범하다. 평범한 여대생. 어디 나가면 한 사람 걸러 한 사람인 스쳐 지나가면 기억도 안 남는 아주 평범한 사람.

하다못해 핸드폰 액정 깨진 것까지 평범하던 나는 방금 전 인생 통틀어서 가장 평범하지 않은 일을 당했다. 교통사고.

아, 뭔가 흔한 것 같기도 하고.

모처럼 가족끼리 외식을 하고 돌아오던 날,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밤에 과도하게 일을 많이 해 피로가 쌓인 대형 트럭 운전자는 하품을 하다가 실수로 우리 차를 밀어 버렸다. 말이 밀어 버렸다지 실제로는 아주 뭉개 놓았을 것이다.

눈앞 가득 트럭의 눈부신 헤드라이트가 비치고 가족의 비명 소리가 높게 울렸을 때, 나는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처음 본 것은 새파란 하늘이었다. 그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주위에서 마구 환호를 지르는 소리가 들리고 곧 맑았던 하늘이 흐려져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으, 눈에 빗물 들어갔어.

아무튼, 나는 정신 차릴 새도 없이 어느 방으로 모셔져 갔다. 사리 분별이 가능해져서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는 뭐라 설명하기도 진부한 커다랗고 비싸 보이는 서양식 방이었고 들어온 사람들은 응, 쟤는 시녀, 쟤는 시종, 쟤는 졸라 높아 보이는 사람. 응, 이제 다 알았다. 자세히 들어 보면 모르는 언어로 말을 하지만 뭐라는지는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그 졸라 높아 보이는 사람은 기깔나게 잘생겼다.

검은색 머리에 초록색 눈을 가진 남자는 키도 훤칠하고 때깔이 야들야들한 게 꼭 클리셰가 가득한 왕자님처럼 생겼다. 내가 그 사람을 보고 대놓고 침을 흘리고 있자 그는 무언가 이상한 듯 미간을 살풋이 좁히더니 금방 휙 나가 버렸다.

그래 봤자 우리 다시 만날 건데 뭘.

나는 마음 편하게, 팔자 편하게 사람들 시중이나 받았다.

“오렌지 주스가 마시고 싶어요. 아, 저 손톱 좀 깎아 주세요. 오늘 깎았어야 했는데 깜빡해서.”

지나치게 편안해 보이는 내 모습에 당황한 사람들이 몇몇 보였지만 뭐 어때! 나는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씻으며 보들보들한 새 옷도 입고 침대에서 뒹굴거렸다. 아마 주위 사람들이 보면 적응이 너무 빠르다고 내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미 이런 상황을 수십 번 간접 경험했단 말이지.

이거 완전 그거잖아?

사고 후에 다른 세계로 넘어가서 성녀가 되서 잘생긴 남자 꼬셔서 잘 먹고 잘 사는 이야기.

나는 후후 웃었다. 방금 그 검은 머리는 좀 무뚝뚝한 계열인 것 같고, 그러면 보들보들한 다른 남자도 있겠지? 역하렘 이야기려나? 아니면 일편단심, 후보 따위는 두지 않는 이야기인가? 에이, 보통은 둘 이상은 있지.

나는 둘 중에 하나를 택하는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돈과 남자는 많을수록 좋다! 나 좋다는데 마다할 일이 뭐람?

남자 친구라고는 고등학교 때 2주 사귀었던 것이 전부인 꿈도 큰 21세 여대생은 그렇게 첫날부터 태평하게 잘만 잤다.

그리고 그 생각을 곧 후회하게 되는 건 딱, 이틀 뒤였다.



다음 날, 나는 신전에 가게 되었다. 음, 신탁을 듣겠군. 시녀들이 흰색 천지인 옷을 입히고 여기저기를 손봐 줬다. 나는 거울을 보면서 흠, 하는 소리를 흘렸다.

뭔가 얼굴은 크게 바뀐 게 없었다. 그냥 원래 내 얼굴에서 조금 상향 조정된 정도? 어떻게 포샵을 좀 하면 그나마 나아 보이는 얼굴 정도다. 나를 아는 사람이 보면 나라고 바로 알아보고 예뻐졌네? 라고 말할 정도인데, 뭔가 몸이 좀 바뀐 것 같은데 말야……. 근데 자세하게 살펴볼 시간이 없었다. 다수의 남편들과 해피 라이프 계획을 세우느라고. 흐흐흐흫.

신전은 웅장했다. 거대한 기둥과 높은 천장이 경이를 느끼게 했다.

“여기서부터는 혼자 가셔야 합니다, 성녀님.”

“네, 고마워요.”

싱긋 웃어 주니 나를 안내해 주던 남자 사제의 뺨이 슬쩍 붉어진다. 거참 여자에 면역 없는 사람일세.

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넓은 방이 있었다. 방의 중앙에 있는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부터 색색깔의 빛이 스며들어 왔다.

「왔느냐.」

“오, 신이죠?”

「그래.」

그 빛 무리 아래로 서니 신성함이 절로 느껴졌다. 신의 음성은 귀를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를 울려 스며들어 왔다. 와, 4D 오졌다리 오졌고.

「여기는 책의 이야기 속이니라.」

“응……? 그냥 차원 이동물이 아니었어?”

나는 황당해져서 말을 더듬었다.

“그, 그, 아니, 책에 빙의하거나 차원을 이동했거나 하면 내가 내용을 알아야 하는데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데요?”

「니가 읽은 적이 없겠지.」

“에?”

「꼭 니가 읽은 책에만 빙의되어야 하냐?」

반박 불가. 삐빅! 반박이 불가한 참인 명제입니다. 무, 뭐 그래도 어때! 어차피 다 그렇고 그런 책일 텐데!

“원작은 어떤 내용인데요?”

「여성향 떡타지.」

“…….”

「줄거리 같은 건 없어.」

“…….”

「떡 쳐. 그게 끝이야.」

“아니! 원래 있던 여자 주인공이 있었을 거 아니에요!”

「아아, 걔? 못해 먹겠다고 도망갔는데? 나도 첫 씬에 울면서 뛰쳐나올지는 몰랐지.」

“아니, 시벌! 그럼 날 여기 왜 떨군 거야?!”

「여러 남자들이랑 골고루 섹스하고 행복해지라고?」

“그냥 자기가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

「어라? 정답.」

답이 없다. 나는 자리에 주저앉아서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아악! 내가 미쳐!”

「아니, 생각해 봐. 여기 있으면 먹고살 걱정 없이 이놈 저놈 맛있게 먹으면서 즐겁게 살 수 있다고. 과제도 없고 취업난도 없어!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라고!」

솔깃.

「신이 내린 앞구멍와 뒷구멍과 입으로 남자들 거시기를……!」

“시발!”

잠시라도 솔깃했던 내가 병신이다.

「긴 자지, 대왕 자지, 흑 자지, 백 자지~ 떡떡떡~」

“하아…….”

더 이상 대꾸할 힘도 없다. 저렇게 좆같은 단어로 저런 좆같은 노래를 부르다니. 아, 좆에 대한 노래구나. 더 이상 듣다가는 자기 전에 누워서도 생각나고 화장실에서 똥 싸면서도 생각날 것 같아서 제발 그만하라고 말하려는 순간, 신이 무언가 떠올린 듯 아, 소리를 냈다.

「마지막으로 너 섹스 안 하면 죽어. 너가 죽으면 이 세계 멸망해.」

“아니, 그렇게 중요한 걸 왜 지금 말해!!”

「어차피 그런 건 교미하라고 만들어 놓은 핑계에 불과한걸?」

“아아아악! 시발!”

「화이팅 해 봐!」

변태 신 주제에 그렇게 상큼하게 말하고 사라지지 말라고! 이 대환장 파티야!



나는 비틀거리면서 방 밖으로 나갔다. 정신이 다 혼미하고 귀에서는 아직도 떡떡떡~ 하는 노래가 어른거렸다.

문 앞에는 나랑 같이 오지 않은 저번에 그 검은 머리 청년이 서 있었다. 그래도 얼굴이 익숙한 사람이라고 이름도 모르는 그 남자를 보니까 눈물이 왈칵 났다.

“괜찮으십니까?”

“나보고 신이…….”

“예.”

“떡 치래…….”

“네?”

아, 이 세계에는 떡이 없나? 그럼 떡은 영어로 라이스 케이크? 라이스 케이크도 철썩철썩 방아 찧어 만드나? 그렇다면 만국 공용어 바디 랭귀지로 간다.

“섹스하래! 안 하면 나 죽는대! 나 죽으면 이 세계 망한대!”

쑤컹쑤컹!

왼손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고 그 안에 오른손 검지를 넣었다 뺐다. 아아, 너는 이것을 처음 본다 하여도 네 머릿속에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는 음란 마귀가 너의 귓가에 속삭일 거야. 이것은 교미다, 이 우매한 백성아.

“……성녀님께서 신을 영접하신 뒤 정신이 혼미하신 것 같으니 어서 뫼셔라.”

“히히, 섹스다. 섹스! 히히!”

시발…… 내 인생 왜 이래…….

나는 정확히 2시간 후에 내가 했던 짓거리를 뼈저리게 후회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늦은 후였다. 나는 그사이에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와 시중인들에 의해서 옷도 갈아입혀지고 화장도 지워진 채로 곱게 침대 위에 앉았고 그제서야 나는 상황 파악이 되었다.

“어쩌자고……!”

아, 잠시만 근데 이게 여성향 떡타지면 그 검은 머리 청년과도 잣잣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떡타지면 다 그렇잖아, 눈만 마주치면 헉헉 거기 좋아 그만 아앗을 하게 되는 거.

나, 나, 나는 아직 거시기에 거시기를 넣어 본 적이 없는 생 아다인데?

하지만 나는 지식만은 그 어느 사람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내 하드와 컴퓨터와 폰에 가득한 응응 하고 이렇고 저런 텍스트 파일들과 이북들은 나의 교과서이자 참고서이자 논문이다. 그 수많은 자료들을 분석하고 통계 내어 봤을 때 약 99.98%로 그 검은 머리 청년은 나와 떡을 치게 되어 있으며 현자타임 따위는 없는 정력남이고, 쑤컹쑤컹 잘하고, 거시기 크기가 팔뚝만 하고, 아 잠시만, 이건 좀…… 내 몸 안에 팔뚝만 한 거시기가 들어올 것 같진 않은데……. 들어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