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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사뿐히 미소 짓는 얼굴을 보고서도 심란함을 감추지 못한 미슐레의 낯빛이 어두웠다. 금방에라도 누군가를 산 채로 지옥에 집어 처넣을 것만 같은 얼굴이 그저 걱정하는 표정이라는 걸 그녀 외에 그 누가 알아줄까.

미슐레는 그 음산해 보이는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깍듯하게 고개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아니에요, 구르디예프 경께서 저를 찾아오지 못할 이유는 없죠. 가주의 자리가 비었으니 남은 저희라도 마음을 모아야 공작가를 온전히 이끌지 않겠어요?”

“부인…….”

미슐레는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기색으로 그녀를 애처롭게 불렀다. 그의 머릿속에서 어떤 착각이 벌어지고 있을지는 불 보듯 뻔했지만 구태여 바로잡지 않은 리비아가 제 턱선 언저리를 손으로 톡톡 치며 생각에 잠겼다.

“미셸.”

“예, 부인.”

“별채에 아직 손님께서 계시던가요?”

“……예, 그렇습니다.”

“저런, 어서 그분을 배웅해 드리도록 말을 전해 주겠어요?”

“예?”

남자는 당혹하여 저도 모르게 반문하고야 말았다. 저와 같은 입장인 고용인들과 그녀 자신을 제외한 사람, 그러니까 손님으로 명명될 만한 사람은 윌리엄 크롬헬밖에 없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아.”

그의 귓불이 뜨끈하게 달아올랐다. 스스로도 당혹할 만큼 선명하게 얼굴이 빨개졌으나 자각하면 할수록 꼴사나운 모양새가 되었다. 어젯밤 순찰하며 벌어진 문틈 사이로 엿보았던, 바닥을 기는 남자의 나신, 추잡한 숨소리, 헐떡이며 홀로 사정하던 꼬락서니. 그 모든 것을 달뜬 낯과 냉소적인 눈으로 깔아 보던 리비아의,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녀의 진짜 얼굴.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윌리엄 크롬헬이 수캐처럼 헐떡댔던 것까지 생각이 닿자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 기분이었다. 그는 부디 자신의 표정이 괴상하지 않길 바라며 고개를 살짝 틀어 숙였다.

“미셸?”

“그 가수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 하셨던 것 같아 의아하여…….”

“아.”

리비아는 그의 조잡한 변명을 다행히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인 듯 여상스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모습을 본 미슐레는 안도의 한숨을 삼키며 스스로를 다독였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예뻐했던 건 그의 몸이지, 노래가 아니에요.”

미슐레가 그녀의 말에 놀라 고개를 퍼뜩 들자 여상스러운 미소로 그를 바라보고 있던 리비아가 즐거이 눈매를 휘었다.

“봤구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니라는 말도, 변명도, 그 무엇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천치처럼 뻣뻣하게 굳어 입술을 달싹거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리비아 모브레이에게만큼은 이런 한심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으면서도, 밤중에 보았던 그 얼굴과도, 평소에 보이는 그림처럼 음전한 얼굴과도 다른, 일견 천진해 보이기까지 하는 순수한 잔혹성이 묻어나는 즐거워 보이는 얼굴에 말문이 절로 막혔다.

“어디까지 봤나요?”

“저, 는…….”

“시침 떼지 말아요, 미슐레. 쭉 날 보고 있었죠?”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축축하게 젖은 주먹을 한층 더 억세게 움켜쥐며 떨리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녀의 입에서 애칭이 아니라 이름이 나왔는데도 감히 기만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그녀는 깍지를 낀 제 손가락에 턱을 얹으며 나른하게 속삭였다.

“방을 나서며 문을 닫지 않는 고용인은 없어요.”

벌벌 떨리는 눈이 다시 그녀에게 꽂힌다. 요컨대 자신을 유인하기 위해 일부러 안배했단 말인가. 웃음을 머금은 그녀가 미슐레에게 까딱 손짓했다. 남자는 어쩔 줄을 모르면서도 감히 주인의 부름에 답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는지 재깍 다가와 그녀의 손끝이 시키는 대로 발치에 무릎을 꿇었다.

“당신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는 걸 아나요?”

“왜…….”

그녀의 얄따란 손끝이 미슐레 호엔베르크의 턱을 들어 올렸다.

리비아는 깊게 팬 눈두덩을 지긋이 바라보다 늘 음영에 가려져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그의 처진 눈매를 핥듯이 감상했다.

“왜겠어요?”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숨통을 틀어잡힌 힘없는 짐승처럼 매가리 없이 입만 몇 번 달싹거리다 침묵했다. 눈을 피할 수도, 일어날 수도, 감히 변명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절대자였다. 물리적인 힘이 없더라도 누군가에게 짓눌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미슐레 호엔베르크는 자신이 이렇게나 무력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기분에 경악하며, 동시에 매료됐다. 그는 멍하게 리비아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잔혹한 말들이 뚝뚝 떨어져 내리는 그 입술을.

“당신은 늘 나를 보고 있었죠.”

사실이다.

“단순히 모든 귀부인의 교본이라는 완벽한 레이디를 동경해서.”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스스로 욕망을 깨달았을 거예요. 이 눈이…….”

턱을 들어 올리고 있던 손가락이 덩굴처럼 유연하게 뺨을 타고 기어올라 감싸 쥐었다. 미슐레의 눈꼬리를 검지 끝으로 짚은 그녀가 선고처럼 속삭였다.

“내 등이 아니라, 손으로 옮겨 갔을 때.”

아.

전부 알고 계셨구나.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강박이 한순간 쓸려 나갔다. 그 핏기 없는 얼굴을 흘긋 일별한 리비아는 손을 거두었다. 힘없이 그의 고개가 아래로 뚝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입을 멈추지 않았다.

“연이어 깨달았겠죠, 스스로가 가진 열망이 단순한 경애가 아니라 욕정이라는 걸.”

“저, 는…….”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요? 그 눅눅한 눈.”

“죄송, 죄송합니다. 부인, 저, 저는.”

방언처럼 터져 나온 사죄를 그녀가 구태여 막지 않자 그는 꼴사나울 것을 알면서도 더듬더듬 지껄여 나가기 시작했다.

“단언컨대 단 한 번도 구체적인 생각 따윈 한 적이 없었습니다, 깨달은 그 순간부터 쭉 어떻게든 마음을 죽이려고 노력했는데, 가, 각하께서도 계시니. 그게.”

“애당초 날 여자로 본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걸요.”

“아…….”

“당신의 임무는 날 보좌하고 호위하는 것. 신변의 안전에만 신경을 쓰면 될 일이었어요. 과도하고도 의미 없는 감정 따윈 오히려 민폐랍니다.”

“죄송……합니다.”

“물론 그건 인간일 때의 이야기죠.”

리비아는 잠깐 텀을 두고 남자의 귓바퀴를 만지작거리다 말을 이었다.

“나는 인간의 죄에는 비정하지만, 개의 죄에는 한없이 관대하답니다.”

개.

미슐레 호엔베르크는 저릿하게 조여드는 제 가슴팍을 더듬으며 눈을 올렸다. 그날 밤, 그 남자를 저속한 짐승으로 전락시켰던 잔혹한 눈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피가 죄 낯짝에 몰린 듯 홧홧하게 달아오른다. 그는 형언할 수 없는 유혹을 붙잡기 위해 더듬더듬 그녀의 복사뼈 언저리를 쥐었다가, 자리를 고치듯 아래로 내려가 구두를 받쳐 들었다. 남자는 망설임 없이, 오히려 완전히 도취한 듯 떨리는 고개를 숙여 끄트머리에 입 맞추었다.

“말귀가 밝아서 좋군요, 나의……”

남자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억세게 그러쥐어 당기는 손길에 순응한다. 딸려 올라가 마주한 비정한 주인의 얼굴에 속절없이 아랫도리를 뻣뻣하게 세우며 헛숨을 들이켰다.

“미셸.”

리비아는 달콤하게 이름을 속삭인 것과 달리 미련 없이 그의 머리채를 놓아주고는 구둣발로 그의 가슴팍을 밀쳐 내며 다리를 꼬았다. 얼떨결에 등 뒤로 손을 짚고 주저앉은 미셸은 압도적인 위압감에 사로잡혀 넋을 잃었다.

“벗어요.”

“예?”

“두 번 말해야 하나요?”

빙그레 미소 지으며 속삭이는 목소리가 일견 싸늘했다. 미슐레 호엔베르크는 움찔 떨며 자세를 고쳐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채 제복 재킷에 손을 댔다. 단추를 풀면서도 이렇게 하란 말이 맞는지 줄곧 의아했으나, 그녀가 입술을 핥으며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턱을 괴는 것을 보면 정확히 들은 듯했다. 정말로, 희롱당하고 있었다. 자신이.

손끝에 열기가 올랐다. 그녀의 고아한 눈이 제 손길을 따라 몸뚱이를 핥아 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아찔한 희열이었다.

남자는 옷가지를 벗어 내리는 손길에 박차를 가해, 하나하나 벗어 옆에 가지런히 개키며 어느덧 일어나 바지를 벗어 내리는 데에 이르렀다. 지퍼를 내리자마자 남사스러울 만큼 툭 하니 불거진 샅이 드러났다. 자신의 추태에 마른침을 삼키며 바지를 벗어 다른 옷가지 위에 올려 두자, 그녀가 턱을 괸 손으로 본인의 뺨을 톡톡 두드리며 소리 없이 채근했다. 그는 신발까지 벗은 뒤, 양말과 속옷밖에 남지 않은 모습으로 바르게 서 눈을 질끈 감은 채 그녀의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