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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저런…….”

남자는 퍽 안타깝다는 듯 말했으나 그 목소리엔 분명한 즐거움이 섞여 있었다. 개는 구역질을 간신히 삼키며 눈을 치켜떴다. 원형 커피테이블 앞에 앉은 남자가 턱을 괸 채 개를 바라보고 있었다.

“독에 당한 지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멀쩡하군.”

독? 개는 목줄을 끊어 내기 위해 살갗을 긁어 대다가 우뚝 멈춰 섰다. 생각보다 몸이 너무 멀쩡했기에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이 있었다.



‘네가 죽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너의 탓이다.’



황제는 개를 죽이려 했다. 개는 자신의 코앞에 닥친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생각했고, 그 자리에서 죽게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개는 지금 해독까지 된 채 멀쩡히 살아 있었다. 개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혼란스럽나?”

개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앉아 있던 남자가 몸을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궁금한 게 있다면 물어봐도 돼.”

잠옷 위에 도포 같은 겉옷을 걸친 남자가 우아한 걸음으로 개에게 다가왔다. 개는 경계심 어린 얼굴로 남자를 노려보았지만, 사실 그를 공격할 의지는 상실한 지 오래였다.

……물론, 그게 누군가를 해칠 의향이 사라졌다는 말과 같은 건 아니었다.

와장창!

개는 침대 맡에 있던 화병을 집어 깨트렸다.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부서진 화병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쏟아진 물과 생화 사이로 깨진 사기 조각들이 서슬 퍼런 빛을 내뿜었다.

“지금…….”

남자는 개의 행동에 미간을 찌푸렸다가, 순간 무언가를 직감한 듯했다. 남자의 턱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나 깨달은 순간 개는 이미 날카롭게 벼려진 조각 하나를 손에 잡아챈 상태였다. 조각을 움켜쥔 손바닥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

황제는 개가 죽기를 바랐다. 그러므로 개는 죽어야 했다.

개는 조각을 쥔 손을 들어 자신의 목을 찔렀다. 날카로운 사기 조각이 무언가를 깊이 뚫고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읏……!”

그 순간, 우아한 몸짓을 보여 주던 남자가 난폭한 움직임으로 개의 손을 쳐 냈다. 그는 발칙하게도 자살을 꿈꾼 개의 머리를 침대 위로 강하게 내리눌렀다. 쿵. 개의 머리가 침대에 둔탁한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

“…….”

머리를 부딪친 개의 까만 눈이 흐릿하게 풀어지더니 이내 힘없이 감겼다.

남자는 개의 손에서 스륵 떨어지는 사기 조각을 보았다. 피가 덕지덕지 묻은 사기 조각은 보기만 해도 섬뜩함을 자아냈다.

“하…….”

남자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과 사기 조각이 박혀 들어갔던 두꺼운 가죽 목줄을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아무런 징조도 없이 자살을 하려 들 줄은 몰랐다.

“이건 못 풀어 주겠군.”

남자는 개의 목숨을 살린 두꺼운 목줄을 내려다보았다. 기절한 개는 자신에게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짐작하지도 못한 말간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무기가 될 만한 것도 다 치워 둬야겠어.”

개의 눈을 피해 숨어 있던 수하가 남자의 뒤로 홀연히 나타났다. 남자는 자신에게 고개 숙인 수하를 보며 머리칼을 이마 너머로 쓸어 넘겼다.

“죽지 않게 잘 감시해.”

“네.”

남자는 기절한 개와 수하를 자신의 방에 남겨 둔 채 문을 열었다. 문밖을 지나던 사용인들이 남자에게 깊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보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남자는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방문을 닫았다. 인사가 끝나자 사용인들은 흩어지고 비서만이 남자의 옆에 따라붙었다.

“공작 각하, 오늘은 황궁에서 회의가 있습니다.”

“늦지 않게 준비해야겠네요.”

긴 복도에 일정한 간격으로 놓인 창문에서 햇빛이 떨어져 내렸다. 옷방으로 향하는 남자의 얼굴 위로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가 이내 밝아지길 반복했다.

남자는 문득 따끔한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개의 손을 쳐 낼 때 베인 듯, 엷은 상처가 살갗 위에 남아 있었다. 남자는 무감한 얼굴로 그것을 바라보다, 이어지는 비서의 말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



개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방 안은 완연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 어슴푸레하게 들어오는 달빛이 아니었다면 방 안의 전경조차 볼 수 없을 만큼 완연한 어둠.

밤이구나.

개는 간단한 진실을 깨달았고, 목을 찔러 죽으려던 시도가 실패로 끝났음을 직감했다.

“…….”

죽는 게 한번 실패했으니 다음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개는 목을 매만지기 위해 손을 들었다.

절그럭.

그러나 목을 만지기도 전에, 수갑이 채워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개는 달빛을 받아 시퍼런 광택을 내뿜는 수갑을 바라보았다. 손목을 옥죄고 있는 수갑은 길이가 짧아 자해나 살해용으로 사용하긴 힘들어 보였다.

게다가…….

개는 손을 들어 목 주변을 만졌다. 날카로운 조각으로 목을 찔렀음에도 살아남은 건 이 목줄 때문일 것이다. 매끄러운 가죽이 손끝에서 불유쾌한 감각을 일깨웠다.

목줄을 긁어내리던 개는 문득 송곳니의 뾰족한 단면을 혀로 핥았다. 목을 찔러 죽는 방법은 실패했으니 다른 방법을 택해야 했다. 그런 점에서 혀를 깨물어 죽는 것은 좋은 방법이었다.

개는 이 사이에 혀를 넣고 턱에 힘을 주었다. 말캉한 살덩이는 조금만 힘을 주어도 잘려 나갈 것 같았다. 얇은 표피에서 배어 나오기 시작한 붉은 피가 짙은 쇠 냄새를 풍겼다.

“……각하, ……단체 아직…….”

그러나 혀를 깨물지 못했다. 개는 어정쩡하게 혀를 내민 채 눈을 둥그렇게 떴다. 청각이 예민하게 곤두섰다.

두 명. 계단을 올라오는 두 명의 사람이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냥 둬.”

“네.”

남자다. 오늘 아침 사기 조각을 목에 박으려던 자신을 기절시키고, 독에 중독되어야 했던 자신을 살린 그 남자.

개는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목줄이 팽팽하게 당겨 침대 아래로 발을 디디기 어려웠다.

개는 목줄을 끊어 내기 위해 살갗과 목줄을 마구 긁어 내면서도, 한편으로는 문밖의 소리에 집중했다.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폐하께서는 오늘 어떠셨습니까.”

남자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을 때였다. 개는 우뚝 행동을 멈췄다.

폐하. 그것은 황제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짧게 깎인 손톱으로 긁어내린 피부 위에는 뭉뚝한 상처가 깊게 파여 있었다. 그러나 개는 자신의 몸에 새겨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멍한 얼굴을 했다. 피와 살점이 고인 손이 허벅지 위로 툭 떨어졌다.

황제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었던 건가. 그런데 의문의 남자는 왜 자신을 죽이지 않고 살린 걸까. 황제는 자신이 죽길 바랐을 텐데.

“폐하께선.”

문 너머로 들려오는 말을 하나라도 놓치면 안 된다는 직감이 머리를 후려쳤다. 개는 목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곳까지 기어갔다. 폐하께선. 그리고?

달칵.

“이런.”

개는 열린 문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문 앞에는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수하와 하얀 정복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개는 검찰 제복을 입은 남자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남자는 침대 위에 네발 동물처럼 선 개를 보더니 이내 눈을 휘어 웃었다.

“깨어 있었네.”

그는 손을 내저어 수하를 물렸다. 수하는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더니 홀연히 사라졌다. 개는 문 너머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남자에게 시선을 두었다.

“언제 일어났지?”

“…….”

개는 긴장 어린 얼굴로 남자를 보았다. 누군가 섬세하게 깎아내린 듯한 아름다운 얼굴은 사람을 홀리는 힘이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개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남자를 노려보았다.

남자는 경계하는 개를 향해 비식 웃음을 흘리고는, 태연한 얼굴로 정복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목까지 단정하게 채워졌던 정복이 풀어지며 남자의 흰 피부와 툭 튀어나온 울대가 옷가지 사이로 드러났다. 개는 눈을 가늘게 떴다.

저자는 황제와 대체 무슨 사이지.

“마음에 드나?”

의미 모를 말이 툭 떨어진 것은 그때였다. 개는 까만 눈을 들어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고개를 비스듬히 튼 채 웃음을 걸치고 있었다.

“오늘 아침부터 계속 날 훑어보기에 말이야.”

훑어보긴 했다. 아침엔 죽여야 할 것 같아서, 지금은 그가 황제와 무슨 사이인지 알기 위해서.

그러나 남자의 하얀 정복엔 정보를 알아낼 수 있을 만한 작은 얼룩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하얀 제복 탓에 그가 검찰청에 소속된 인간이라는 것만 추측할 수 있었다.

“시선이 좀 뜨거워야 모른 척을 하지.”

“…….”

개는 경계하듯 몸을 낮췄다. 남자는 위험한 인물이었다. 지금도 자신의 살의 섞인 시선을 알아보지 않았는가.

“……푸흐.”

그러나 개의 경계 어린 얼굴에 남자는 웃음을 터트렸다. 뜻밖의 일이었다. 개는 무방비한 남자를 보면서도 긴장을 풀지 않았지만,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농담도 못 하겠군.”

남자는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개를 보았다. 개는 풀어 헤쳐진 정복 사이로 보이는 남자의 흰 목을 보며 혼란스러운 듯 눈을 깜빡였다.

내가 자신을 죽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암습 같은 건 웃어넘길 정도로 실력이 있다는 자신감의 표출? 허세?

개는 난생처음으로 수많은 고민에 휩싸여 타인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입 벌려.”

아니. 남자의 기척을 느끼지 못한 건 이번이 두 번째 일이었다.

개는 자신의 양 볼을 움켜쥔 남자의 단단한 손을 느꼈다. 푸르스름한 기운을 띠는 검은 눈이 개를 향해 휘어져 있었다. 어느새.

개는 황급히 남자의 손을 쳐 낸 뒤 뒤로 물러서려 했다.

“재갈을 물릴지 말지 정해야 해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