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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따르릉. 따르릉.

타타타타타 타타타타탓.

똑똑똑!

“식사 왔습니다!”

“야! 똑바로 말 안 해?”

사람이 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리를 다 모아 놓은 듯 소란스러운 이곳 서울 중부 경찰서 강력계. 민주는 그렇지 않아도 시끄러운 장소에 소음을 하나 더 추가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정구 씨. 그렇게 모르쇠로 일관하시면 곤란하지요. 입을 꼭 닫고 있는다고 해서 그쪽을 지켜 줄 사람들이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빨리 입 여시지요. 이 새끼야. 하진경도 벌써 토꼈어. 이제 심부름꾼은 너 하나뿐이야.”

민주가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눈앞의 남자를 노려봤다. 호텔 로비에서부터 민주에게 질질 끌려온 남자는 가소롭다는 듯이 한쪽 입꼬리를 삐딱하게 치켜올리며 민주를 아래위로 훑었다.

“뭘 그렇게 보실까……. 내 몸매가 그렇게 훌륭해?”

남자의 입에서 피식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웃어? 왜 웃어!”

“왜 이러세요. 형사님. 저도 이상형이라는 게 있거든요.”

“야! 내가 어때서.”

“앞뒤가 똑같잖아요.”

“무슨 앞뒤?”

“앞판 뒤판이요.”

그제야 이정구의 말뜻을 이해한 민주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 새끼가 죽을라구! 너 진짜 앞판 뒤판 같게 해 줘?”

동시에 민주의 주먹이 위로 올라갔다. 정구는 또 한 대 맞나 싶어 얼른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다행히 주먹은 날아오지 않았다. 하긴, 경찰서 내 CCTV가 몇 댄데 사람을 치겠어.

퍽!

“악! 사람을 왜 때려요!”

하지만 민주는 CCTV 따위에 주눅 드는 인물이 아니었다.

“여기 사람이 어디 있어? 죄다 범죄자 개새끼 생양아치들뿐인데!”

“형사가 그렇게 욕해도 됩니까?”

“된다. 왜! 어쩔 건데!”

턱. 턱!

책상 위에 놓인 결재판으로 정구의 머리를 내리치는 민주를 옆자리의 최 형사가 말렸다.

“그만 때려. 그 성질 좀 죽이고. 때린다고 불 새끼도 아니고. 증거, 증인 다 있는데 뭐 하러 애를 써?”

최 형사의 말에 민주는 잠시 눈썹을 치켜떴다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하긴, 그 새끼들이 이정구 혼자 한 일이라고 이미 다 불고 하진경도 튀었는데 혼자 독박 쓰게 두고 깔끔하게 처리할까요?”

“그렇게 해. 뭣 하러 친절이 뻗쳐서 도와주려고 그래? 혼자 덤탱이 쓰고 한 십 년 있다 나오면 끝날걸.”

“시, 십 년이요?”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정구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하지만 민주와 최 형사는 못 들은 척 대화를 이어 갔다.

“에이, 십 년은 무슨. 성매매 알선도 있잖아요. 그거랑 불법 장기 매매 건도 이정구가 했다던데요. 그러면 더하기 오 년은 더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정구는 점점 사색이 되어 갔다.

“성매매라니요! 형사님! 저는 몰라요! 장기 매매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냥 심부름만 했는데 저만 십오 년은 너무 억울하잖아요!”

“아, 혼자 한 게 아니야?”

민주가 친절한 얼굴로 턱을 괴며 물었다.

“예! 당연하죠. 저 혼자 무슨 수로 그 많은 마약을 수입합니까? 전 돈도 없다고요.”

“그렇지. 그러니까 말하세요. 혼자 독박 쓰고 감방에서 환갑잔치하지 말고.”

“내, 내가 뭘 말해 주면 되는데요?”

정구가 고개를 푹 숙이자 민주는 상쾌한 얼굴로 팔을 쭉 뻗으며 스트레칭을 했다.

우두드득.

민주의 몸에서 나는 소리에 정구는 움찔하며 눈치를 봤다.

“안 때려, 안 때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과학수사 몰라? 나 과학수사 하잖아. 그니까 빨리 불어. 옥수수 털리기 전에.”

민주의 말에 최 형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로 돌아갔다. 멀어지는 최 형사를 감사한 눈빛으로 한번 바라보고는 다시 책상에 앉은 민주가 정구를 보며 싱긋 웃었다. 정구는 민주가 웃는 게 더 무서웠다. 정구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했다. 그때,

“야! 이민주! 이민주 어디 있어?”

민주를 찾는 반장님의 목소리에 있는 대로 날이 섰다.

‘아∼∼ 또 무슨 일이지?’

민주는 대답하기 전에 허리를 잔뜩 숙이고 덩달아 고개 숙인 최 형사를 보며 물었다.

“최 형사님! 반장님 또 왜 저러시는 거예요?”

“모르지 나는. 이 형사 또 사고 친 거 아니야?”

최 형사가 놀리듯 한 말에 민주는 오만상을 썼다.

“후딱 갔다 와. 점심 먹게.”

“오! 사모님께서 또 맛있는 도시락을?”

최 형사가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오케이를 만들었다. 마르고 키가 큰 민주와 달리 최 형사는 키도 작고 살집이 좀 있었다. 하지만 겉으로 보는 것과는 달리 운동신경이 뛰어나 아주 민첩하게 움직였다.

“이민주! 빨리 안 와!”

민주가 최 형사와 속닥거리는 사이 좀 더 혈압이 오른 반장이 벌게진 얼굴로 민주의 이름을 목 놓아 불렀다. 최 형사는 명복을 빈다는 듯 성호를 그으며 얄밉게 웃었다. 민주는 약이 바싹 올라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반장님! 이민주 형사 여기 있습니다!”

대답 없는 민주를 대신에 최 형사가 씩씩하게 민주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와아. 진짜 개얄밉다. 선배만 아니면!”

“빨리 꺼져!”

손끝을 살살 흔들며 끝까지 약 올리는 최 형사를 민주는 한 번 더 째려본 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예! 반장님 여기 있습니다.”

민주를 발견한 반장이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신경질적으로 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다급하게 흔드는 손을 보니 귀찮은 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차렷 자세로 깍듯하게 대답하던 민주는 살짝 허리를 숙이고 이정구를 똑바로 보며 속삭였다.

“너, 나한테 해 줄 말. 곰곰이 생각하고 있어라. 내가 잘 알아들을 수 있게. 육하원칙에 의거해서 설명해. 알았어? 그리고 선배도!”

민주의 섬뜩한 미소에 이정구가 뻣뻣하게 얼어 가는 사이 짜증이 잔뜩 섞인 반장의 목소리가 강력계 내에 다시 쩌렁쩌렁 울렸다.

“이민주! 빨리 안 와?”

“갑니다!”

남겨진 정구를 뒤로하고 민주가 급하게 반장실로 들어갔다. 문을 닫자 시장통 같던 소음이 반으로 줄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민주는 최대한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물었지만 반장의 얼굴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너! 무슨 일을 이따위로 해?”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민주는 일 년 내내 아무도 잡지 못하던 이정구를 직접 여기까지 끌고 온 공로는 인정은 못 해 줄망정 다짜고짜 화를 내는 반장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너, 강승목이라고 알아?”

민주는 낯선 이름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뇨,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대답하는 와중에도 민주는 저가 때렸던 사람 중에 비슷한 이름이 있었나 떠올리려 애썼다.

반장의 눈썹 양쪽 끝이 이마를 가를 듯이 치켜 올라갔다.

“몰라? 모르는 사람이 널 명예훼손으로 고발을 해?”

“네? 하지만 전, 잘 모르…….”



‘너 내가 가만있을 줄 알아? 소속이 어디야?’



설마……. 그랬다고 진짜로 고발을 할 줄은 몰랐다.

“변호사를 통해서 정식으로 고소를 해 왔어. 어쩔 거야? 지금 맡은 사건도 이것 때문에 다 날아가게 생겼다고. 죽 쒀서 개 줄래? 이제 와서 다른 형사한테 넘기고 싶어?”

민주는 눈을 질끈 감으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무조건! 빌어!”

“이미 빌었는데요?”

“네 성격에 안 봐도 뻔하지. 또 인상 팍팍 써 가면서 겁이나 줬겠지. 요즘 제일 무서운 게 민원인 거 몰라? 무조건, 빌. 라. 고! 그래서 고소 취하시켜! 방법이 없어! 여기 그 사람 직장 주소 있으니까 당장 찾아가. 당장! 하필이면 신우그룹 아들을 건들이냐.”

민주는 반장이 종이에 적어 주는 주소를 주머니에 푹 찔러 넣고 씩씩 대며 경찰서를 나왔다.

주차된 자동차에 툴툴거리며 올라타는데 옆에 거대한 그림자가 느껴졌다. 민주의 파트너 형식이었다.

“뭐야, 너?”

민주가 영문을 알지 못해 눈만 꿈뻑거리는데 형식이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순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반장님이 형사님 따라가래요.”

“왜?”

“가서 꼬장 부리는 거 막으라고.”

“헐. 설마 내가 거기 가서 행패라도 부릴까 봐?”

“형사님 전적이 있으시잖아요.”

저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고 있는 형식이었기에 민주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멀뚱거렸다.

“아, 그리고 이거.”

잔뜩 인상을 쓴 민주에게 형식이 뭔가를 내밀었다.

“뭔데?”

“호두요.”

“먹으라고?”

“아뇨. 반장님이 이거 쥐고 있으래요. 성질나면 딴 데 풀지 말고 여기에 풀라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형식이 준 호두를 받아 든 민주가 한숨을 푹 쉬며 운전석에 올라타며 말했다.

“타.”

하긴 옆에 형식이라도 있으면 좀 낫겠지. 민주는 호텔 로비에서 만났던 반질하게 생긴 남자를 떠올리며 인상을 팍 썼다.

“아이씨, 진짜 고소를 했어? 미치겠네. 재빠르기도 하셔라.”

소속이 어디냐고 물어볼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하필이면 범인이랑 머리 모양까지 비슷해서.

민주는 저를 유심히 살피는 형식의 눈빛을 애써 외면하며 핸들을 움켜쥐었다.

“빌자, 빌어. 빈다고 손이 없어지기라도 하겠냐.”

민주가 푸념처럼 하는 말에 형식은 안심이라는 듯 조수석에 등을 기대며 확인받듯 한 번 더 물었다.

“절대 흥분하시면 안 됩니다. 아셨죠?”



* * *



승목은 너덜너덜한 명함 한 장을 주고 유유히 사라진 형사를 개인 변호사를 통해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고 나자 기분이 좀 좋아졌다. 이유도 모르고 당했던 치욕스러운 순간 때문에 생긴 모멸감이 조금은 사그라지는 것 같았다.

만약, 그 호텔 로비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어떤 오해를 했을까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 게다가 그곳에는 여자들도 많이 있었는데. 그 짐승 같은 여자에게 이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서라도 고발한 것은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목은 운영하던 웹디자인 사무실을 정리하고 신우그룹 홍보팀으로 들어온 지 벌써 삼 년째 접어들고 있었다. 문란한 사생활과는 달리 이쪽 분야에서 꽤 이름을 날린 승목이었기에 그가 홍보부 실장으로 발령받은 것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여자들은 물론이고 회사 내 누구에게서도 그따위 대접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평소 같으면 말도 섞지 않았을 부류의 여자에게 그런 대접을 받다니.

강승목 사전에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여자에겐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가르쳐 줄 필요가 있었다. 승목은 뒤늦게 세워진 자존심에 마음이 흡족해졌다. 마음이 가벼우니 일도 더 잘 되는지 능률이 쑥쑥 올라 서류를 보는 것에도 속도가 붙었다.

“어? 레이아웃 변경하라고 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그대로야?”

승목은 이마에 주름을 만들며 손가락으로 눈썹 근처를 긁적였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할 때마다 나오는 버릇이었다.



* * *



옆자리에 형식을 태운 민주는 반장님이 가르쳐 준 곳으로 구닥다리 SUV를 몰고 미친 듯이 달려갔다.

“우어어어! 형사님, 좀 살살 가면 안 될까요?”

형식이 조수석 차창 위에 달린 손잡이를 두 손으로 움켜쥐며 목소리를 높였다.

“참아. 지금 도로에 내 성질 흘리는 중이니까.”

“옙!”

민주의 단호한 목소리에 형식은 언제 그랬냐는 듯 짧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릉 부릉 트르르륵.

자동차는 수명이 다해 가니 이제 그만 좀 괴롭히라고 시위라도 하듯 요란한 소리를 냈다. 오래되긴 했지만 그만큼 민주의 손에 잘 익었고 운전하기도 편했다.

이 차의 가장 좋은 점은 아무리 험하게 타도, 어디에 박더라도 별로 표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워낙 긁힌 곳도 많고, 찌그러진 곳도 많아 길거리에 자동차 키를 꽂아 놓고 내리더라도 훔쳐 가는 사람이 없었다.

회사 로비에 들어서자 죄다 양복쟁이들뿐인지라 청바지에 낡은 청 재킷을 걸친 민주와 거구의 형식은 의도치 않게 눈에 띄는 사람이 되었다. 민주는 저를 흘끔거리는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쳐 안내 데스크 앞에 섰다.

“어서 오십시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래위로 깔끔한 유니폼을 입은 여자가 민주를 향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그러면서도 옆에 두 손을 다소곳이 모으고 선 형식을 곁눈질로 흘끔거렸다.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서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위협적이었기 때문이다.

머리카락 한 올도 흐트러지지 않도록 단정히 묶은 여자를 보고 있자니 민주는 저가 더 답답해져서 일부러 자신의 짧은 머리카락을 한 번 더 손바닥으로 쓱 훑었다.

“강승목 씨 만나러 왔습니다.”

민주에게서 나온 이름에 마네킹같이 미소를 짓고 있던 여자가 의외라는 듯 눈썹을 약간 올렸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민주는 여자의 표정이 바뀌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약속하고 오셨습니까?”

민주는 여자와 몇 마디 나누지는 않았지만 잘 훈련된 진심이 담기지 않은 친절한 목소리가 피곤하게 다가왔다.

“아뇨. 약속은 하지 않았습니다.”

민주의 대답에 여직원이 빙긋 미소를 지으며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미안하다는 듯 눈썹을 아래로 축 늘어뜨렸지만 입술 양끝은 좀 전과 마찬가지로 기계적으로 위로 올라갔다.

“죄송합니다. 미리 약속을 하고 오시지 않으면 강승목 실장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민주는 하는 수 없다는 듯 지갑 안에서 형사 신분증을 꺼내 데스크에 올렸다.

“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