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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그마저도 같은 소속사 배우 정미나가 여자주인공에 캐스팅될 때 끼워 팔기를 해서 가능했다. 그게 아니었으면 맡을 수 없었던 배역인지라 고민 끝에 출연을 결정했지만, 실수였다. 아무리 먹기 좋아 보이는 떡도 욕심을 부리면 체하는 것을.

“하긴 걔가 빌빌거리는 데 이유는 있지.”

“혹시 납치 사건?”

“알고 있었네. 하긴 그 유명한 촬영장 이탈 사건 때문에 숨기고 싶었던 과거마저 전 국민이 다 알게 되긴 했지.”

그녀의 연기 실력에서 6년 전, 스무 살 때 겪었던 사건으로 화제가 바뀌었다. 결국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거겠지만. 사실 6년 전 납치 사건은 앞뒤가 맞아떨어지지 않는 미스터리한 사건이었다.

유독 비가 많이 내렸던 날 영화 촬영장에서 그 사건이 있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다룬 영화로, 사령은 피 칠한 분장을 하고 교복을 입은 채 복도에 쓰러져 있는 장면을 촬영했다.

촬영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탈의실에 들어간 후 그녀가 사라졌다. 피 묻은 교복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사령의 모든 소지품은 대기실에 그대로 있었다.

주변의 CCTV를 뒤진 결과, 한 남성이 그녀를 질질 끌고 가는 장면이 어렵사리 발견되었다. 납치 사건으로 확인되어 경찰이 출동했고, 사령은 납치된 지 일주일 만에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의식이 없던 그녀는 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병실에서 눈을 뜬 사령은 일주일간의 기억을 모두 잃고 말았다. 기억이 나는 건 투둑투둑, 창가를 때리는 묵직한 빗소리, 창고 안의 꿉꿉하고 눅눅한 공기. 그리고 잠결에 들은 것 같은 음성 하나였다.

‘음력 정월 첫 사일에 태어난 아가씨. 이리 달콤하니 사특한 것들이 몰려들 수밖에요.’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그녀를 조사하던 수사관들과 진료하던 의사들에게서는 같은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정밀 검사를 받았으나 몸에 이상은 없었다. 폭행의 흔적도 없었기에 광적인 팬의 단독 범행이라고 결론이 났었다. 실제 현장에서 붙잡힌 용의자는 조현병을 앓고 있던 이십 대 초반의 남성이었다. 그 남성은, 평소 사령의 팬이긴 했지만 납치할 마음까지는 없었다며 자신이 왜 그녀를 데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진술했다.

그때부터 사령은 비가 오면 이유 없이 몸이 아팠다. 장마철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해졌다. 지독한 가위눌림에 시달렸고, 남에게 안 들리는 소리가 들리고, 죽은 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납치 후유증으로 미쳤다고 할까 봐. 무당의 딸이라더니, 결국 대물림했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서.

“그리고 이건 아는 사람만 아는데, 백사령 엄마가 무당이래.”

“어머어머, 정말?”

사령의 어머니는 신내림을 받은 뒤 그녀를 떠났다. 벌써 15년도 넘은 일이다. 매정하게 떠난 어머니를 그 뒤로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 사실을 숨기려고 해도 동네 사람과 학교 친구들의 입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소문은 알음알음 퍼져 나갔다.

“신내림은 유전 아니야?”

“사실, 아까 촬영 때 날 멍하게 쳐다보는데, 무섭더라고.”

그런 선입견이 그녀를 병들게 했다. 세상은 공인에게 내미는 잣대가 심하다. 자신들이 사랑해 줘서 먹고사는 직업이니 자신들의 기준에 맞추라고 한다. 나도 감정 있는 사람이에요, 라고 하소연하면, 연예인을 하지 말라고 비아냥거린다. 그런 걸 감수하고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다면서 배부른 투정이라고 하길래, 정신이 미쳐 가는데도 웃었다.

하지만 이들은 그녀가 참을 수 있는 선을 넘었다. 그녀의 연기력이나 인터넷에 떠도는 가십거리까지만 떠들었어야 했다. 그녀의 출생이나 가정사는 조롱하면 안 되는 거였다. 사령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는 듣고 있을 수 없었다.

지잉― 지잉― 사령의 손끝에서 자그마한 진동이 느껴졌다. ‘오빠가 날 찾나 보네.’ 이 시간에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낼 사람은 매니저 박 군밖에 없다. 사령의 계속되는 NG에 짜증이 난 여주인공이 잠시 쉬자고 해서 이뤄진 휴식이었다. 연락이 오는 것을 보니 주연배우가 다 쉬었나 보다.

그렇지 않아도 나가려고 했는데 잘됐다 싶었다. 사령은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눈치를 줄 요량으로 화장실 문을 발로 찼다. 저도 모르게 감정이 실렸는지 잠금 고리가 헐렁해져 흔들거릴 만큼 큰 소리가 났다.

인적이 드문 외각에 지어진 촬영 세트장, 자정이 다 되어 가는 고요한 공간을 가르는 충격음에 조잘대던 수다가 일시에 멈추었다. 제발 눈치껏 나가 주면 좋으련만.

“쥐새끼처럼 우리 얘길 듣고 있었던 거야?”

“씨발, 누구야!”

앙칼진 목소리에 머리가 아팠다. 사령이 먼저 화장실에 들어왔고, 사람이 있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뒷담화를 시작한 건 그녀들이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아무래도 한바탕하는 걸 피할 수 없겠다 싶어 사령은 잠시 숨을 골랐다. 순간 휴대폰에서 메시지 알림 음이 울렸다. 설정을 바꾼 적이 없는데 진동이 아닌 소리가, 그리고 익숙한 전자음이 아닌 딸랑딸랑― 소름 돋는 방울 소리가 울렸다.

손끝이 바르르 떨렸다. 십자가 목걸이를 움켜쥐었다. 살기 위한 발버둥이 시작되었다. 그녀가 진정으로 무서워하는 건 이런 거였다. 자신에게만 보이고 들리는 것. 그녀는 이를 악물고 휴대폰 액정을 쳐다보았다.

(알 수 없음) [거슬리지?]

(알 수 없음) [혀를 뽑아 버릴까?] - 오후 11:35

(알 수 없음) [죽이는 게 나을까?] - 오후 11:36

↻ X 오후 11:36 - [누구야]

사령은 떨리는 손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메시지는 전송되지 못했다. 사령이 보낸 메시지 옆으로 전송 실패 표시가 달렸다. 사령은 방울 소리도 문자메시지도 자신이 피곤한 탓에 착각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이라는 숫자가 사라지고 곧바로 답변이 왔다. 손끝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알 잖아) [기억해 내렴. 상을 내릴 테니.] - 오후 11:40

사령은 양변기 위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문밖에서 귀를 째는 듯한 비명이 들려왔다. 주변이 어두워지고 무거워진 공기가 그녀를 내리눌렀다. 사령은 두 다리를 끌어 모아 변기 위에 무릎을 세우고 두 귀를 막았다. 이건 환청일 거다. 언제나처럼 들리는.

그녀는 겁이 났다. 이렇게 미쳐서 죽을까 봐. 메시지의 알림 음이 다시 울렸으나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자 귓가에 생기 없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알 잖아) [셋 셀 때까지 시간을 줄게.]

(내가 누군지) [하나, 두울, ……둘의 반.] - 오후 11:41

“하아, ……하.”

숨이 막혀 왔다. 힘 빠진 손에서 휴대폰이 떨어졌다. 타일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은 쩍― 소리를 내며 액정에 금이 갔다. 거미줄처럼 얼키설키 실금이 간 휴대폰에서 검은 연기가 새어 나왔다. 그 연기와 함께 지직거리는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 셋! 아가야, 벌을 받아야겠구나.

그녀는 두 팔로 머리를 감쌌다. 휴대폰을 쥐고 있었던 손에서부터 살갗이 타들어 가는 아픔이 시작되었다. 하아, 하아, 숨이 막혀 왔다. 온몸의 장기들과 피부가 뜨거운 불길에 휩싸인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이 또한 제발 환영이길.

사령은 한 해 한 해 수명이 줄어드는 것 같았다. 대한민국 국민의 기대수명이 80세가 넘은 지 오래되었다고 하지만, 하루를 버티는 것도 힘든 그녀에게는 딴 세상 이야기였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죽는구나, 이렇게 생을 마감하는구나 싶어 서글펐다.

여기서 죽으면 지금 찍고 있는 드라마는 어떻게 될까? 주연이 아니라서 상관없으려나? 그래도 나름 꽤 비중 있는 역할인데 조금은 타격이 있으려나?

사령은 비참한 상황 속에서 쓸데없는 걱정이나 하는 제 모습에 실소가 새어 나왔다. 이런 게 익숙해진다는 건가? 인기와는 거리가 먼 비호감으로 낙인찍힌 만년 조연배우의 삶은 고달프긴 했지만, 죽는 것보다야 나았다. 아니, 오늘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삶이었기에 인기에 연연하지 않았다는 게 맞다. 인기보다는 생존이 우선이었다.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항상 묻곤 했다. 다른 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지만, 그녀는 바둥거려야만 했다.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이 표정을 숨기는 거였다. 모든 연기 장면이 똑같은 표정이라고 욕을 먹어도 어쩔 수 없었다. 두려움의 감정을 몇 겹씩 꽁꽁 싸매 깊숙이 감추어야만 내 눈에만 보이는 저것들이 더는 나타나지 않으니까.

“나는 죽고 싶지 않아!”

사령의 외침에 무거운 공기가 들썩거렸다. 살고자 하는 집념이 어두운 공기를 뚫고 퍼져 나갔다. 공간이 일그러지고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세상이 고요해졌다. 습기를 머금은 꿉꿉한 먼지 냄새가 느껴졌다. 어설프게 내린 비로 촉촉해진 땅 냄새.

그녀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가늘게 내리는 비 사이로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따스한 햇볕이 그녀에게 내리쬐고 있었다. 이랬던 적이 없었기에 사령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비가 부슬부슬 날리는데도 따스한 볕이 드는 공간, 마음이 편해지는 낙원과도 같은 한옥 대청마루 끝자락에 그녀가 웅크리고 있었다. 사령은 자신이 왜 여기에 와 있는지 어리둥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