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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내가 착각하고 있던 것 같군. 소림에서는 제자들을 개로 기르고 있는 것이라 여기고 있었더니, 사실은 그들을 기르는 자들이 개만도 못한 자들이었군. 과연 견부견자(犬父犬子)였음이야.”
자신의 검을 더욱더 깊이 찔러 넣으려 애쓰는 해표에게 여전히 등을 돌리지도 않은 채 석후가 이야기하였다.
몸에 검이 박혔음에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석후의 모습에서 중인들의 몸은 어째서인지 빙굴(氷窟) 속에 갇힌 것처럼 덜덜 떨렸다.
석후는 각법을 해주에게 격중시킴과 동시에 등 한가운데를 향해 다가오는 예리한 한기를 느꼈다.
이를 알아챈 석후는 호신(護身)하기 위해 다급히 기력을 끌어올렸지만, 해표의 검에 등이 꿰뚫리는 것은 막아 낼 수가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해표는 기척을 숨기고 접근하기 위해 어떠한 내력도 끌어올리지 않은 상태로 석후에게 다가섰고, 후방을 점하고 나서야 내력을 끌어올린 것이기에 육성에 불과한 출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해표의 출수는 육성에 불과한 내력만이 실려 있었기 때문에, 다급히 끌어올린 호신기(護身氣)만으로도 석후는 몸이 완전히 관통당하는 참사를막아 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해표의 검이 석후의 몸을 비집고 들어온 깊이는 예사롭지 않게 깊었고, 이로 인해 기혈이 뒤틀려 체내의 운기를 온전히 해낼 수 없는 치명적인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석후는 해표가 이를 알아차려 내력 싸움을 걸어올 것을 염려하였다.
‘동요해서는 안 된다.’
기습을 당했음에도 자신은 건재하다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표정, 음성에 어떠한 변화도 보이지 않아, 해표는 석후를 쓰러트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눈치채지 못하였다.
계속해서 내력을 주입하여 몸을 관통시키려는 해표의 검을 지금의 석후가 운기행공만으로 붙잡아 두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단지 검이 더 움직이지 못하도록 간신히 붙잡고 있는 상태였다.
해표는 깊이 찔러 넣지 못한 검을 반대로 빼내려고 해도 석후의 몸에 붙어 버린 것처럼 빠져나오지 않자, 호신기에 의해 피육의 상처만을 낸 것이라 판단하고 아예 검에서 손을 떼어 버린 채 일 장 뒤로 물러섰다.
석후의 허장성세(虛張聲勢)에 해표가 속아 넘어간 것이었다.
‘어디서 저런 괴물 같은 놈이 나타난 것이란 말이냐! 석가장은 무가(武家)가 아닌 상가(商家)일 텐데, 고작 상인의 피를 물려받은 놈이 저 정도의 성취를 보일 수 있단 말인가!’
비록 급히 끌어낸 내력이기에 육성의 공력밖에 담아내지 못한 출수였지만, 자신의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하여 무방비의 상태인 석후의 몸에 치명상을 입히지 못한 것은 해표에게 심리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육성에 달하는 자신의 공력이 담긴 출수라면 석후와 비슷한 나이의 소림 제자들 중 누구도 받아 낼 수 없을 것이 분명하였다. 하지만 석후는 무방비 상태에서 자신의 공격을 받고도 깊은 상처를 입지 않은 것 같으니, 해표에게는 기괴하다는 말 외에는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더불어 이번 출수의 실패로 한평생 쌓아 온 명예와 자부심이 일순간 무너지게 되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차, 지금이 석후를 쓰러뜨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냉정히 판단하지 못하고 해표 스스로를 물러나게 만든 것이었다.
해표가 자신의 검에서 손을 떼고 물러선 후에야 석후는 자신의 각법에 오른팔을 잃고, 바닥에서 허우적대는 해주에게서 시선을 옮겨 해표를 바라보았다.
얼굴을 잔뜩 찡그려 더욱 주름이 깊이 파인 해표의 얼굴을 보며 석후는 천천히 어깨너머로 손을 뻗어 자신의 등에 박힌 검을 뽑아내었다.
검을 뽑아낸 석후의 등에서는 붉은 선혈이 흘러나왔다.
무표정한 얼굴의 석후가 자신의 선혈이 잔뜩 묻어 흐르는 검을 해표의 두 치 앞 땅을 향해 던졌다.
“당신의 의지는 잘 받아 보았소. 이제 내 차례로군.”
말을 마친 석후가 인상을 잔뜩 구긴 채 서 있는 해표를 향해 뛰어들었다.
석후는 정상이 아닌 지금의 몸으로 싸움을 오래 끌고 싶지 않았다.
싸움이 길어진다면 자신의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상대방들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그럴 경우 도화원 내의 모두를 해치고 이곳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하더라도 낙양 곳곳에서 대기하고 있을 소림과 개방의 수하들에 의해 추격을 당하며 위기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석후는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고, 모두의 의지를 꺾을 수 있는 독수(毒手)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해표는 땅에 박힌 자신의 검을 수습하기도 전에 석후가 엄청난 속도로 거리를 좁히며 다가오자, 나한십팔수의 수비 초식인 선장추운세(仙掌推雲勢)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해표의 양손에서 팔성의 내력이 실린 선장추운세가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는 석후의 진로를 방해하고, 속도를 늦추기 위해 펼쳐졌다.
이 초식은 본래 여섯 번의 장을 출수하여 상대의 접근으로부터 시전자를 보호하는 초식이었으나, 절정에 달한 해표의 손에서 나오는 선장추운세는 무려 아홉 번의 장을 펼쳐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석후는 아홉 개에 달하는 선장추운세의 수영(手影)을 너무나 간단히 지나쳐 해표의 뒤를 점하였다.
석후가 신법의 속도를 늦추지도 않고 해표의 수영을 여유롭게 지나쳐 뒤에 멈추어 섰을 때, 갑자기 해표의 몸에서 혈화(血花)가 터져 나왔다.
도화원 내의 모든 중인들의 눈에는 석후가 해표의 수영을 단순히 회피한 것으로만 보였으나, 실은 오른팔을 몸에서 뜯어냄과 동시에 후방을 점한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은 석후의 계획대로 이루어졌다.
자신의 등에서 검을 뽑아 해표에게 던져 주고, 그가 검을 채 수습하기도 전에 빠르게 접근한다면, 해표는 다급히 수비 초식을 펼쳐 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을 석후는 예견하였다.
단순히 석후가 다가오는 것을 늦추기 위해 다급히 펼쳐 낸 해표의 선장추운세에는 강한 내력이 실려 있지만 어떠한 예리함도 찾아볼 수 없었고, 허공을 향해 아무렇게나 휘둘러진 해표의 오른손을 우습게 지나쳐 가며 석후는 그의 몸에서 오른팔을 뜯어내 버렸다.
해표가 왼손으로 끊임없이 피가 쏟아져 나오는 오른쪽 어깻죽지를 틀어막고 있을 때, 해표의 상반신 한가운데를 뭉툭한 무언가가 꿰뚫고 나왔다.
그것은 해표의 오른팔이었다.
해표는 상체를 관통하여 나온 자신의 오른팔을 멍하니 쳐다보더니, 이내 땅으로 고개를 처박으며 쓰러졌다.
쿵!
“형님!!!”
바닥에 쓰러진 채 둘의 싸움을 지켜보던 해주가 목숨이 끊어진 해표를 보며 울부짖었다.
해주 외에 나머지 인물들은 어떠한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자신들 앞에 서 있는 석후는 자신들이 어쩌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 단숨에 깨닫게 되었고, 뒤이어 엄청난 두려움이 그들을 엄습하였다.
해표는 기습을 통해서 후방을 점할 수 있었지만, 석후는 정면에서 접근하더라도 그의 후방을 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또한 단순히 후방을 점하는 것이 아닌, 팔 한쪽을 뜯어낸 채로 후방을 점할 수도 있으며, 석후의 몸을 관통하지 못한 해표의 검과는 달리 자신은 예기(銳器)가 없는 뭉툭한 팔로도 그의 몸을 관통시킬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해표가 유리한 조건에서도 성공시키지 못한 수법을 자신은 더욱 뛰어나며 잔혹한 방법으로 성공시킬 수 있다는 것을 도화원 내의 모든 중인에게 각인시킨 것이었다..
해표는 도화원 내에 있는 인물들 중에서는 단연 최고의 고수였고, 그런 그가 이토록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자 중인들 모두는 석후의 의도대로 단번에 전의를 상실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과는 별개로 석후 체내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혈맥을 다쳤음에도 기운을 무리하게 운기하여 해표를 향해 출수를 펼친 이후, 내부가 진탕이 되어 당장이라도 입 밖으로 피를 토할 것만 같았다.
입안에 가득 머금은 핏물을 억지로 삼킨 석후가 금세 쓰러질 것만 같은 몸뚱이를 이끌고 우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터벅터벅.
총 열다섯 번의 걸음 동안 우재는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만 했다.
“당신이 세운 계획에는 지금의 상황 또한 포함되어 있었소?”
자신의 한 치 앞에서 묻는 석후의 질문에 우재는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우재는 결코 이러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상상조차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의 무위에도 자신이 있는 우재였지만, 이번 계획에는 무려 소림의 삼장로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일은 이미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이후였다.
“나 혼자만의 계획이었소… 개방 모두의 결정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해두고 싶소…….”
목숨이 경각에 달해 온몸을 떨고 있으면서도 우재는 최선의 계산을 하여 입을 열었다.
모든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려 개방 전체에 미치는 피해가 없기를 바랐다.
“당신은 지금까지도 머릿속에서 주판을 굴리고 있구려.”
석후가 무서운 미소를 지으며 우재에게 말했다.
잠시간 우재를 바라보고만 있던 석후의 몸이 움직였다.
“크악!!!”
털썩―
석후의 각법이 우재를 향해 펼쳐짐과 거의 동시에 그에게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우재는 양다리가 모두 잘라져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나의 과거를 이용하여 간악한 계책을 만들어 낸 당신의 목숨을 가져가는 것이 마땅하겠으나, 장건의 정체에 대한 의뢰 비용으로 목숨만은 남겨두겠소. 하나 이곳 도화원에서 오늘 당신이 실행하고자 하였던 악독한 계책에 대해 거짓 없이 서술하여 무림 곳곳에 방을 붙이도록 하시오. 만약 사실과는 다른 엉뚱한 내용이 쓰여져 있다면, 그때는 내가 직접 당신의 목숨을 취하러 가겠소.”
기혈이 뒤틀려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석후였으나 흐트러짐 없는 발걸음으로 도화원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목숨이 끊어진 것은 해표, 단 한 명이나,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석후의 걸음을 멈추려는 자는 없었다.
석후는 도화원을 떠나 낙양을 벗어나고 나서야 자신의 등에서 여전히 피가 흘러나오고 있는 상처를 지혈하였다.
쿨럭―
지혈을 마친 석후의 입에서 참아 왔던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와 흙바닥을 적셨다.
주변의 흙으로 혈흔을 덮은 석후는 조금의 휴식도 없이 사천을 향해 무거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그의 복수를 위한 첫 걸음이 암월련의 련주(聯主)이자, 혈교의 혈수천자(血手天子)인 장건을 향하고 있었다.
도화원 혈사가 벌어진 이틀 뒤, 무림의 방방곡곡에는 개방에서 써 붙인 방이 돌기 시작했다.
정과 사의 백년지약을 깨뜨려 사적인 복수를 행하고자 하는 파렴치한이 있기에 본 방을 붙여 전 무림에 고한다. 석가장 최후의 생존자 석후는 암월련주에 대한 사적 복수를 위해 소림과 암월련을 이간(離間)하였고, 자신의 정체를 파악한 개방과 소림의 제자들을 향해 살행(殺行)을 하였다. 이에 정도연합(正道聯合)은 석후가 암월련의 제자들을 해(害)한 흉수임을 밝히고, 그를 공적(公敵)으로 표하는 바이다.
개방주(丐幇主) 타백(打伯) 추일.
“내가 착각하고 있던 것 같군. 소림에서는 제자들을 개로 기르고 있는 것이라 여기고 있었더니, 사실은 그들을 기르는 자들이 개만도 못한 자들이었군. 과연 견부견자(犬父犬子)였음이야.”
자신의 검을 더욱더 깊이 찔러 넣으려 애쓰는 해표에게 여전히 등을 돌리지도 않은 채 석후가 이야기하였다.
몸에 검이 박혔음에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석후의 모습에서 중인들의 몸은 어째서인지 빙굴(氷窟) 속에 갇힌 것처럼 덜덜 떨렸다.
석후는 각법을 해주에게 격중시킴과 동시에 등 한가운데를 향해 다가오는 예리한 한기를 느꼈다.
이를 알아챈 석후는 호신(護身)하기 위해 다급히 기력을 끌어올렸지만, 해표의 검에 등이 꿰뚫리는 것은 막아 낼 수가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해표는 기척을 숨기고 접근하기 위해 어떠한 내력도 끌어올리지 않은 상태로 석후에게 다가섰고, 후방을 점하고 나서야 내력을 끌어올린 것이기에 육성에 불과한 출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해표의 출수는 육성에 불과한 내력만이 실려 있었기 때문에, 다급히 끌어올린 호신기(護身氣)만으로도 석후는 몸이 완전히 관통당하는 참사를막아 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해표의 검이 석후의 몸을 비집고 들어온 깊이는 예사롭지 않게 깊었고, 이로 인해 기혈이 뒤틀려 체내의 운기를 온전히 해낼 수 없는 치명적인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석후는 해표가 이를 알아차려 내력 싸움을 걸어올 것을 염려하였다.
‘동요해서는 안 된다.’
기습을 당했음에도 자신은 건재하다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표정, 음성에 어떠한 변화도 보이지 않아, 해표는 석후를 쓰러트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눈치채지 못하였다.
계속해서 내력을 주입하여 몸을 관통시키려는 해표의 검을 지금의 석후가 운기행공만으로 붙잡아 두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단지 검이 더 움직이지 못하도록 간신히 붙잡고 있는 상태였다.
해표는 깊이 찔러 넣지 못한 검을 반대로 빼내려고 해도 석후의 몸에 붙어 버린 것처럼 빠져나오지 않자, 호신기에 의해 피육의 상처만을 낸 것이라 판단하고 아예 검에서 손을 떼어 버린 채 일 장 뒤로 물러섰다.
석후의 허장성세(虛張聲勢)에 해표가 속아 넘어간 것이었다.
‘어디서 저런 괴물 같은 놈이 나타난 것이란 말이냐! 석가장은 무가(武家)가 아닌 상가(商家)일 텐데, 고작 상인의 피를 물려받은 놈이 저 정도의 성취를 보일 수 있단 말인가!’
비록 급히 끌어낸 내력이기에 육성의 공력밖에 담아내지 못한 출수였지만, 자신의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하여 무방비의 상태인 석후의 몸에 치명상을 입히지 못한 것은 해표에게 심리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육성에 달하는 자신의 공력이 담긴 출수라면 석후와 비슷한 나이의 소림 제자들 중 누구도 받아 낼 수 없을 것이 분명하였다. 하지만 석후는 무방비 상태에서 자신의 공격을 받고도 깊은 상처를 입지 않은 것 같으니, 해표에게는 기괴하다는 말 외에는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더불어 이번 출수의 실패로 한평생 쌓아 온 명예와 자부심이 일순간 무너지게 되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차, 지금이 석후를 쓰러뜨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냉정히 판단하지 못하고 해표 스스로를 물러나게 만든 것이었다.
해표가 자신의 검에서 손을 떼고 물러선 후에야 석후는 자신의 각법에 오른팔을 잃고, 바닥에서 허우적대는 해주에게서 시선을 옮겨 해표를 바라보았다.
얼굴을 잔뜩 찡그려 더욱 주름이 깊이 파인 해표의 얼굴을 보며 석후는 천천히 어깨너머로 손을 뻗어 자신의 등에 박힌 검을 뽑아내었다.
검을 뽑아낸 석후의 등에서는 붉은 선혈이 흘러나왔다.
무표정한 얼굴의 석후가 자신의 선혈이 잔뜩 묻어 흐르는 검을 해표의 두 치 앞 땅을 향해 던졌다.
“당신의 의지는 잘 받아 보았소. 이제 내 차례로군.”
말을 마친 석후가 인상을 잔뜩 구긴 채 서 있는 해표를 향해 뛰어들었다.
석후는 정상이 아닌 지금의 몸으로 싸움을 오래 끌고 싶지 않았다.
싸움이 길어진다면 자신의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상대방들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그럴 경우 도화원 내의 모두를 해치고 이곳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하더라도 낙양 곳곳에서 대기하고 있을 소림과 개방의 수하들에 의해 추격을 당하며 위기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석후는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고, 모두의 의지를 꺾을 수 있는 독수(毒手)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해표는 땅에 박힌 자신의 검을 수습하기도 전에 석후가 엄청난 속도로 거리를 좁히며 다가오자, 나한십팔수의 수비 초식인 선장추운세(仙掌推雲勢)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해표의 양손에서 팔성의 내력이 실린 선장추운세가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는 석후의 진로를 방해하고, 속도를 늦추기 위해 펼쳐졌다.
이 초식은 본래 여섯 번의 장을 출수하여 상대의 접근으로부터 시전자를 보호하는 초식이었으나, 절정에 달한 해표의 손에서 나오는 선장추운세는 무려 아홉 번의 장을 펼쳐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석후는 아홉 개에 달하는 선장추운세의 수영(手影)을 너무나 간단히 지나쳐 해표의 뒤를 점하였다.
석후가 신법의 속도를 늦추지도 않고 해표의 수영을 여유롭게 지나쳐 뒤에 멈추어 섰을 때, 갑자기 해표의 몸에서 혈화(血花)가 터져 나왔다.
도화원 내의 모든 중인들의 눈에는 석후가 해표의 수영을 단순히 회피한 것으로만 보였으나, 실은 오른팔을 몸에서 뜯어냄과 동시에 후방을 점한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은 석후의 계획대로 이루어졌다.
자신의 등에서 검을 뽑아 해표에게 던져 주고, 그가 검을 채 수습하기도 전에 빠르게 접근한다면, 해표는 다급히 수비 초식을 펼쳐 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을 석후는 예견하였다.
단순히 석후가 다가오는 것을 늦추기 위해 다급히 펼쳐 낸 해표의 선장추운세에는 강한 내력이 실려 있지만 어떠한 예리함도 찾아볼 수 없었고, 허공을 향해 아무렇게나 휘둘러진 해표의 오른손을 우습게 지나쳐 가며 석후는 그의 몸에서 오른팔을 뜯어내 버렸다.
해표가 왼손으로 끊임없이 피가 쏟아져 나오는 오른쪽 어깻죽지를 틀어막고 있을 때, 해표의 상반신 한가운데를 뭉툭한 무언가가 꿰뚫고 나왔다.
그것은 해표의 오른팔이었다.
해표는 상체를 관통하여 나온 자신의 오른팔을 멍하니 쳐다보더니, 이내 땅으로 고개를 처박으며 쓰러졌다.
쿵!
“형님!!!”
바닥에 쓰러진 채 둘의 싸움을 지켜보던 해주가 목숨이 끊어진 해표를 보며 울부짖었다.
해주 외에 나머지 인물들은 어떠한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자신들 앞에 서 있는 석후는 자신들이 어쩌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 단숨에 깨닫게 되었고, 뒤이어 엄청난 두려움이 그들을 엄습하였다.
해표는 기습을 통해서 후방을 점할 수 있었지만, 석후는 정면에서 접근하더라도 그의 후방을 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또한 단순히 후방을 점하는 것이 아닌, 팔 한쪽을 뜯어낸 채로 후방을 점할 수도 있으며, 석후의 몸을 관통하지 못한 해표의 검과는 달리 자신은 예기(銳器)가 없는 뭉툭한 팔로도 그의 몸을 관통시킬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해표가 유리한 조건에서도 성공시키지 못한 수법을 자신은 더욱 뛰어나며 잔혹한 방법으로 성공시킬 수 있다는 것을 도화원 내의 모든 중인에게 각인시킨 것이었다..
해표는 도화원 내에 있는 인물들 중에서는 단연 최고의 고수였고, 그런 그가 이토록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자 중인들 모두는 석후의 의도대로 단번에 전의를 상실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과는 별개로 석후 체내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혈맥을 다쳤음에도 기운을 무리하게 운기하여 해표를 향해 출수를 펼친 이후, 내부가 진탕이 되어 당장이라도 입 밖으로 피를 토할 것만 같았다.
입안에 가득 머금은 핏물을 억지로 삼킨 석후가 금세 쓰러질 것만 같은 몸뚱이를 이끌고 우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터벅터벅.
총 열다섯 번의 걸음 동안 우재는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만 했다.
“당신이 세운 계획에는 지금의 상황 또한 포함되어 있었소?”
자신의 한 치 앞에서 묻는 석후의 질문에 우재는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우재는 결코 이러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상상조차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의 무위에도 자신이 있는 우재였지만, 이번 계획에는 무려 소림의 삼장로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일은 이미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이후였다.
“나 혼자만의 계획이었소… 개방 모두의 결정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해두고 싶소…….”
목숨이 경각에 달해 온몸을 떨고 있으면서도 우재는 최선의 계산을 하여 입을 열었다.
모든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려 개방 전체에 미치는 피해가 없기를 바랐다.
“당신은 지금까지도 머릿속에서 주판을 굴리고 있구려.”
석후가 무서운 미소를 지으며 우재에게 말했다.
잠시간 우재를 바라보고만 있던 석후의 몸이 움직였다.
“크악!!!”
털썩―
석후의 각법이 우재를 향해 펼쳐짐과 거의 동시에 그에게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우재는 양다리가 모두 잘라져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나의 과거를 이용하여 간악한 계책을 만들어 낸 당신의 목숨을 가져가는 것이 마땅하겠으나, 장건의 정체에 대한 의뢰 비용으로 목숨만은 남겨두겠소. 하나 이곳 도화원에서 오늘 당신이 실행하고자 하였던 악독한 계책에 대해 거짓 없이 서술하여 무림 곳곳에 방을 붙이도록 하시오. 만약 사실과는 다른 엉뚱한 내용이 쓰여져 있다면, 그때는 내가 직접 당신의 목숨을 취하러 가겠소.”
기혈이 뒤틀려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석후였으나 흐트러짐 없는 발걸음으로 도화원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목숨이 끊어진 것은 해표, 단 한 명이나,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석후의 걸음을 멈추려는 자는 없었다.
석후는 도화원을 떠나 낙양을 벗어나고 나서야 자신의 등에서 여전히 피가 흘러나오고 있는 상처를 지혈하였다.
쿨럭―
지혈을 마친 석후의 입에서 참아 왔던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와 흙바닥을 적셨다.
주변의 흙으로 혈흔을 덮은 석후는 조금의 휴식도 없이 사천을 향해 무거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그의 복수를 위한 첫 걸음이 암월련의 련주(聯主)이자, 혈교의 혈수천자(血手天子)인 장건을 향하고 있었다.
도화원 혈사가 벌어진 이틀 뒤, 무림의 방방곡곡에는 개방에서 써 붙인 방이 돌기 시작했다.
정과 사의 백년지약을 깨뜨려 사적인 복수를 행하고자 하는 파렴치한이 있기에 본 방을 붙여 전 무림에 고한다. 석가장 최후의 생존자 석후는 암월련주에 대한 사적 복수를 위해 소림과 암월련을 이간(離間)하였고, 자신의 정체를 파악한 개방과 소림의 제자들을 향해 살행(殺行)을 하였다. 이에 정도연합(正道聯合)은 석후가 암월련의 제자들을 해(害)한 흉수임을 밝히고, 그를 공적(公敵)으로 표하는 바이다.
개방주(丐幇主) 타백(打伯) 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