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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눈개비 10화
#2 (1)
도하는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대본 리딩 장소에 도착했다. 처음 본 현장은 어딘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메이킹 촬영을 위해 카메라가 몇 개 배치되고 벽에 붙은 좌석에는 출입증을 목에 단 기자도 몇 명 앉아 있는 평범한 리딩 현장이었으나 스태프들은 자기들끼리 무언가 수군수군 얘기를 나눴고 먼저 도착한 배우들도 어리벙벙한 느낌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싶어 기웃거리며 물어볼 타이밍을 쟀지만 겨우겨우 말을 꺼내도 다들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도하는 그냥 이해하기를 포기한 채 어색하게 서 있는 정군을 데리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윤도하 씨. 윤정군 씨.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이고, 우리 윤 배우들 잘 부탁드립니다.”
가장 중요한 주연 배우 확정에 어려움을 겪은 터라 심란할 것 같았던 감독님은 미소가 만개한 얼굴로 인사를 받아 주었다. 자신을 총알받이로 세운 사람이었지만 주연이라는 기회를 주었기에 밉기보다 고마웠다.
도하는 활짝 핀 얼굴에 대고 ‘왜 그렇게 기분이 좋으세요?’ 하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일부러 기분을 올리기 위해 저렇게 행동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았다.
감독의 어깨너머로 원작자는 안 보였지만 각본가가 대본을 들고 물어보는 배우에게 차근차근 설명하는 모습이 보였다. 말을 걸려다가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말았다.
캐릭터 이름으로 배정받은 자리에 앉아 조금 기다렸다. ‘하재영’이라고 적힌 도하의 옆자리는 아직 공석이었다. 대본을 받고 읽어 보면서 수십, 수백 번을 상상했던 재영이 어떤 얼굴을 하고 나타날지가 제일 궁금했다. 가장 많이 엮일 역할이었고, 감정적으로도 가까워야 할 상대였으니까.
대체 누가 올까.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왔으면 좋겠다. 빙의 장면도 있으니 경험이 적은 사람은 힘들지 않을까?
테이블 위에 놓인 간식을 뜯어 입 안에 조금씩 넣고 있는데 회의실 문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회의실 문을 바라보았다. 여성 스태프들은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문 가까이 걸어가더니 저들끼리 속닥속닥 얘기를 나누며 꺄르르 웃고 서로의 팔을 쳤다. 도하는 누구 유명한 사람이라도 오나 궁금해서 몸을 앞으로 숙여 목을 쭉 뺐다.
곧 문이 끼익 열리고, 키가 크고 연갈색 생머리를 가진 남자가 검은 마스크로 얼굴을 절반쯤 가린 채 안으로 들어왔다. 곱슬곱슬한 장발의 여성이 그 뒤를 따랐다. 조막만 한 얼굴이나 균형 잡힌 몸이 그가 연예인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려 주고 있었다.
순식간에 회의실이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도하는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입을 떡 벌렸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목을 한 번에 집중시킨 두 남녀가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했다. 조용한 회의실을 울리던 목소리가 잦아드니 정군의 옆에 앉아 있던 여배우가 어머, 어머 하며 입을 가렸다.
“진짜 강세진 씨랑 소하연 씨야!”
인기 아이돌 강세진과 같은 소속사 여배우인 소하연이었다.
이곳저곳에서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뒤섞여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뚫고 간혹 ‘뭐야, 진짜야? 이 둘이 여기를 왜?’ 하는 말이 들려왔는데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도하는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몰래 카메라인가. 아니면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아서 살이 없는 볼을 꼬집어 보았다.
‘아픈데?’
손을 내리고 다시 그 두 사람을 눈으로 따라갔다. 어찌나 반짝거리는지 지나가는 자리마다 별이 쏟아지는 착각마저 들었다.
하연은 끝자리에 앉았다. 옆에서 팬이라고 손을 내미는 배우에게 웃어 주며 악수도 해 줬다. 그녀는 2화 게스트 역할이었다.
세진은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지나갈 때마다 꾸벅꾸벅 인사를 하며 걸었다. 그럴 때마다 부드러운 연갈색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걸음의 끝은 도하의 옆자리였다.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아 입을 벌린 채 굳어 있던 도하가 하재영이라고 적힌 자리와 세진을 번갈아 보았다.
‘얘가 진짜 왜 여기 있어?’
인사를 마치고 고개를 돌린 세진의 연한 눈동자가 도하에게 옮겨졌다. 갑작스레 눈이 마주치자 잠깐 멈칫한 세진이 다른 사람들에게 한 것처럼 가볍게 목례하고는 의자를 끌어 앉아 검은 마스크를 벗었다.
TV에 자주 비치던 예쁘장한 얼굴이 드러나자 스태프들이 감탄했다. 거기까지 미동 없이 보던 도하는 긴장으로 굳은 목을 힘겹게 돌렸다.
“자, 다 모였으니까. 자기소개 한 바퀴 돌고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기다린 테이블 끄트머리에 앉은 감독이 손뼉을 한번 치고 말을 했다. 표정이 좋다. 그 순간 도하는 드디어 깨달았다. 들어오자마자 어수선했던 분위기와 어딘지 모르게 붕 떠 있는 감독. 모두가 하재영 역에 강세진이 확정돼서 그런 것이었다.
게다가 게스트로 소하연이라니! 그녀는 로맨스 드라마 여주인공이 아니면 거의 출연을 안 하는 배우였다.
갑자기 엄청난 폭풍이 몰려 왔다. 적어도 강세진과 소하연의 이름만으로 1,2화의 화제성은 떼놓은 당상이었다. 그런데 대체 갑자기 왜? 분명 저예산에 비주류 장르인 드라마에 왜 연기도 안 하던 인기 아이돌과 여배우가 들어온 거지.
도하는 눈가를 비볐다. 진짜 실감 나는 꿈이라도 꾸는 느낌이다.
“그럼 도하 씨부터.”
감독의 말에 정신을 다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형우 역의 윤도하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는데, 너무 유명하신 분들이 깜짝 등장해서 까먹어 버렸습니다. TV 드라마 주연은 처음이라 부족한 점이 많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도하의 솔직한 말에 작은 웃음소리가 일었다. 도하는 화기애애한 반응에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요란한 박수 소리가 멎자 옆에 앉은 세진이 뒤이어 일어났다.
“의도치 않게 서프라이즈를 열어 버린 하재영 역의 강세진입니다. 이번이 첫 드라마라 긴장이 많이 됩니다. 연기에 대해 스스로 깊게 생각해 보긴 했지만 내공이 많이 부족하기에 지적할 만한 점이 있으면 바로 알려 주세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세진이 깔끔하게 말을 마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박수 소리가 잠시 멎고 다음 순서의 배우가 자기소개를 했다. 순서대로 돌아가는 터라 자연스럽게 세진의 옆모습이 도하의 시야에 들어왔다.
세팅이 되지 않아 차분한 생머리에 화장기 없는 하얀 피부가 꼭 열아홉 살의 강세진을 그대로 앉혀 놓은 것 같았다. 다른 점이라곤 그때보다 조금 선이 굵어지고 키가 컸다는 것 정도였다.
‘아, 근데 진짜 얘가 왜? 강세진이 왜 여기에 온 거지?’
하얀 얼굴에 눈을 고정한 도하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의문만이 둥둥 떠다녔다.
반 바퀴 돌아 앞자리에 앉은 배우의 차례가 돌아오자 세진이 고개를 돌렸다. 시야에 자신을 집요히 바라보는 도하가 걸렸는지 고양이 같은 눈을 돌려 시선을 마주했다.
“…….”
화들짝 놀란 도하가 눈을 크게 뜨고 데굴데굴 굴려 앞자리 배우를 쳐다보았다.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한번 말이 터지면 멈추지 못하고 쏟아 낼 것 같아 지금 상황에 집중하기로 했다.
자기소개가 끝나고 초반에 받은 1, 2화와 어제 완성된 13화를 중심으로 곧바로 대본 리딩이 진행되었다. 배우들이 장면에 따라 상대역을 보며 대사를 읊으면 중간중간 감독과 각본가가 피드백을 던지는 식이었다. 그들은 연기의 디테일을 살려 주는가 하면 캐릭터 해석에 참고가 될 만한 부분을 집어 주기도 했다.
초반부터 부딪치는 형우와 세진의 대화는 대부분 말싸움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게 없는 둘이지만 일처리만큼은 깔끔했다. 전개는 전형적이었다. 귀신을 퇴마하기 싫어하는 형우와 그럴 거면 여기 왜 왔냐고 비꼬는 재영이 위기가 닥치면 투덜거리면서도 힘을 합쳐 적을 쓰러뜨린다.
중간 과정을 건너뛴 13화에서는 이미 서로를 파트너로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재영은 기억을 잃기 전 형우를, 형우는 불행했던 재영의 어린 시절을 알게 되며 차곡차곡 쌓였던 서로에 대한 감정들이 애틋함을 형성했다.
“재영이는 형우한테 좀 더 맹목적인 느낌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두 사람이 함께할 장면을 은근한 분위기로 표현할 거라서 대사가 덤덤해도 표정에 감정을 최대한 담아 주었으면 해요.”
“네.”
#2 (1)
도하는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대본 리딩 장소에 도착했다. 처음 본 현장은 어딘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메이킹 촬영을 위해 카메라가 몇 개 배치되고 벽에 붙은 좌석에는 출입증을 목에 단 기자도 몇 명 앉아 있는 평범한 리딩 현장이었으나 스태프들은 자기들끼리 무언가 수군수군 얘기를 나눴고 먼저 도착한 배우들도 어리벙벙한 느낌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싶어 기웃거리며 물어볼 타이밍을 쟀지만 겨우겨우 말을 꺼내도 다들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도하는 그냥 이해하기를 포기한 채 어색하게 서 있는 정군을 데리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윤도하 씨. 윤정군 씨.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이고, 우리 윤 배우들 잘 부탁드립니다.”
가장 중요한 주연 배우 확정에 어려움을 겪은 터라 심란할 것 같았던 감독님은 미소가 만개한 얼굴로 인사를 받아 주었다. 자신을 총알받이로 세운 사람이었지만 주연이라는 기회를 주었기에 밉기보다 고마웠다.
도하는 활짝 핀 얼굴에 대고 ‘왜 그렇게 기분이 좋으세요?’ 하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일부러 기분을 올리기 위해 저렇게 행동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았다.
감독의 어깨너머로 원작자는 안 보였지만 각본가가 대본을 들고 물어보는 배우에게 차근차근 설명하는 모습이 보였다. 말을 걸려다가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말았다.
캐릭터 이름으로 배정받은 자리에 앉아 조금 기다렸다. ‘하재영’이라고 적힌 도하의 옆자리는 아직 공석이었다. 대본을 받고 읽어 보면서 수십, 수백 번을 상상했던 재영이 어떤 얼굴을 하고 나타날지가 제일 궁금했다. 가장 많이 엮일 역할이었고, 감정적으로도 가까워야 할 상대였으니까.
대체 누가 올까.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왔으면 좋겠다. 빙의 장면도 있으니 경험이 적은 사람은 힘들지 않을까?
테이블 위에 놓인 간식을 뜯어 입 안에 조금씩 넣고 있는데 회의실 문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회의실 문을 바라보았다. 여성 스태프들은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문 가까이 걸어가더니 저들끼리 속닥속닥 얘기를 나누며 꺄르르 웃고 서로의 팔을 쳤다. 도하는 누구 유명한 사람이라도 오나 궁금해서 몸을 앞으로 숙여 목을 쭉 뺐다.
곧 문이 끼익 열리고, 키가 크고 연갈색 생머리를 가진 남자가 검은 마스크로 얼굴을 절반쯤 가린 채 안으로 들어왔다. 곱슬곱슬한 장발의 여성이 그 뒤를 따랐다. 조막만 한 얼굴이나 균형 잡힌 몸이 그가 연예인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려 주고 있었다.
순식간에 회의실이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도하는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입을 떡 벌렸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목을 한 번에 집중시킨 두 남녀가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했다. 조용한 회의실을 울리던 목소리가 잦아드니 정군의 옆에 앉아 있던 여배우가 어머, 어머 하며 입을 가렸다.
“진짜 강세진 씨랑 소하연 씨야!”
인기 아이돌 강세진과 같은 소속사 여배우인 소하연이었다.
이곳저곳에서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뒤섞여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뚫고 간혹 ‘뭐야, 진짜야? 이 둘이 여기를 왜?’ 하는 말이 들려왔는데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도하는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몰래 카메라인가. 아니면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아서 살이 없는 볼을 꼬집어 보았다.
‘아픈데?’
손을 내리고 다시 그 두 사람을 눈으로 따라갔다. 어찌나 반짝거리는지 지나가는 자리마다 별이 쏟아지는 착각마저 들었다.
하연은 끝자리에 앉았다. 옆에서 팬이라고 손을 내미는 배우에게 웃어 주며 악수도 해 줬다. 그녀는 2화 게스트 역할이었다.
세진은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지나갈 때마다 꾸벅꾸벅 인사를 하며 걸었다. 그럴 때마다 부드러운 연갈색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걸음의 끝은 도하의 옆자리였다.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아 입을 벌린 채 굳어 있던 도하가 하재영이라고 적힌 자리와 세진을 번갈아 보았다.
‘얘가 진짜 왜 여기 있어?’
인사를 마치고 고개를 돌린 세진의 연한 눈동자가 도하에게 옮겨졌다. 갑작스레 눈이 마주치자 잠깐 멈칫한 세진이 다른 사람들에게 한 것처럼 가볍게 목례하고는 의자를 끌어 앉아 검은 마스크를 벗었다.
TV에 자주 비치던 예쁘장한 얼굴이 드러나자 스태프들이 감탄했다. 거기까지 미동 없이 보던 도하는 긴장으로 굳은 목을 힘겹게 돌렸다.
“자, 다 모였으니까. 자기소개 한 바퀴 돌고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기다린 테이블 끄트머리에 앉은 감독이 손뼉을 한번 치고 말을 했다. 표정이 좋다. 그 순간 도하는 드디어 깨달았다. 들어오자마자 어수선했던 분위기와 어딘지 모르게 붕 떠 있는 감독. 모두가 하재영 역에 강세진이 확정돼서 그런 것이었다.
게다가 게스트로 소하연이라니! 그녀는 로맨스 드라마 여주인공이 아니면 거의 출연을 안 하는 배우였다.
갑자기 엄청난 폭풍이 몰려 왔다. 적어도 강세진과 소하연의 이름만으로 1,2화의 화제성은 떼놓은 당상이었다. 그런데 대체 갑자기 왜? 분명 저예산에 비주류 장르인 드라마에 왜 연기도 안 하던 인기 아이돌과 여배우가 들어온 거지.
도하는 눈가를 비볐다. 진짜 실감 나는 꿈이라도 꾸는 느낌이다.
“그럼 도하 씨부터.”
감독의 말에 정신을 다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형우 역의 윤도하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는데, 너무 유명하신 분들이 깜짝 등장해서 까먹어 버렸습니다. TV 드라마 주연은 처음이라 부족한 점이 많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도하의 솔직한 말에 작은 웃음소리가 일었다. 도하는 화기애애한 반응에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요란한 박수 소리가 멎자 옆에 앉은 세진이 뒤이어 일어났다.
“의도치 않게 서프라이즈를 열어 버린 하재영 역의 강세진입니다. 이번이 첫 드라마라 긴장이 많이 됩니다. 연기에 대해 스스로 깊게 생각해 보긴 했지만 내공이 많이 부족하기에 지적할 만한 점이 있으면 바로 알려 주세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세진이 깔끔하게 말을 마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박수 소리가 잠시 멎고 다음 순서의 배우가 자기소개를 했다. 순서대로 돌아가는 터라 자연스럽게 세진의 옆모습이 도하의 시야에 들어왔다.
세팅이 되지 않아 차분한 생머리에 화장기 없는 하얀 피부가 꼭 열아홉 살의 강세진을 그대로 앉혀 놓은 것 같았다. 다른 점이라곤 그때보다 조금 선이 굵어지고 키가 컸다는 것 정도였다.
‘아, 근데 진짜 얘가 왜? 강세진이 왜 여기에 온 거지?’
하얀 얼굴에 눈을 고정한 도하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의문만이 둥둥 떠다녔다.
반 바퀴 돌아 앞자리에 앉은 배우의 차례가 돌아오자 세진이 고개를 돌렸다. 시야에 자신을 집요히 바라보는 도하가 걸렸는지 고양이 같은 눈을 돌려 시선을 마주했다.
“…….”
화들짝 놀란 도하가 눈을 크게 뜨고 데굴데굴 굴려 앞자리 배우를 쳐다보았다.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한번 말이 터지면 멈추지 못하고 쏟아 낼 것 같아 지금 상황에 집중하기로 했다.
자기소개가 끝나고 초반에 받은 1, 2화와 어제 완성된 13화를 중심으로 곧바로 대본 리딩이 진행되었다. 배우들이 장면에 따라 상대역을 보며 대사를 읊으면 중간중간 감독과 각본가가 피드백을 던지는 식이었다. 그들은 연기의 디테일을 살려 주는가 하면 캐릭터 해석에 참고가 될 만한 부분을 집어 주기도 했다.
초반부터 부딪치는 형우와 세진의 대화는 대부분 말싸움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게 없는 둘이지만 일처리만큼은 깔끔했다. 전개는 전형적이었다. 귀신을 퇴마하기 싫어하는 형우와 그럴 거면 여기 왜 왔냐고 비꼬는 재영이 위기가 닥치면 투덜거리면서도 힘을 합쳐 적을 쓰러뜨린다.
중간 과정을 건너뛴 13화에서는 이미 서로를 파트너로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재영은 기억을 잃기 전 형우를, 형우는 불행했던 재영의 어린 시절을 알게 되며 차곡차곡 쌓였던 서로에 대한 감정들이 애틋함을 형성했다.
“재영이는 형우한테 좀 더 맹목적인 느낌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두 사람이 함께할 장면을 은근한 분위기로 표현할 거라서 대사가 덤덤해도 표정에 감정을 최대한 담아 주었으면 해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