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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의 호구 5화

1. 호구가 좋아하는 사람 (5)


계속했다가는 선호의 얼굴이 아예 그냥 빨간색으로 변해 버릴 것 같았다. 하준이 물음을 멈추고 음식을 먹었다. 그때 하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선호가 물었다.

“……너는?”

“난 얼마 전에 헤어졌어.”

그렇구나…. 선호가 하준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그렇게 침울해질 것까지는 없는데. 사실 하준은 좋아한다고 하면 다 받아 주고, 헤어지자고 하면 순순히 그러자고 하는 편이라서 누군가와 헤어졌다고 침울해하고 우울해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럼… 혹시 이상형은?”

갑작스럽게 선호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이런 얘기를 꽤나 좋아하나?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자기 얘기는 안 해 주면서 남의 연애에는 이렇게까지 관심이 많다니. 그 차이가 어이없었지만, 또 나쁘지는 않았다. 그냥 이런 얘기를 좋아하나 보다, 하고 생각할 뿐.

그나저나, 이상형이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문제였다. 뭐, 굳이 따지자면….

“나 좋다는 사람.”

매우 추상적인 대답이었다. 선호가 하준의 말에 더 묻지 않고 또다시 그렇구나, 하며 싱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호가 하준의 이상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듣는다고 해도 딱히 뭘 할 수 있는 건 전혀 없었으니까.

“넌?”

이상형에 대해 물어보고 대답한다면 그거로 추측을 해 볼 심산이었다. 그런 하준의 검은 속내를 아는지 선호가 또다시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

“…그 사람이 내 이상형이야.”

하준과 완전히 정반대의 대답이었다.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추측을 하라고. 하준이 허무하게 웃으며 어서 먹으라고 말했다. 선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앞에 놓인 음식을 먹었다.

이상형이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얼마나 좋으면 저렇게까지 행복하게 웃고, 또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이상형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사실 하준으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선물이야.”

밥을 다 먹고, 계산을 하고 나온 하준이 선호의 손을 잡고 무언가를 쥐여 주었다. 선호가 하준이 내민 것을 보고 이게 뭐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포춘 쿠키.”

가게 앞에서 싸게 팔고 있는 포춘 쿠키였는데 선호는 처음 보는 모양인지 쿠키라는 말에 무작정 입으로 가져다 댔다. 하준이 급하게 선호를 제지했다.

“이렇게, 뜯으면 너한테 행운이 되는 말이 나오는 거야.”

선호는 하준이 직접 뜯어 준 포춘 쿠키 안에 적힌 글귀를 보았다.

< 스스로를 사랑하세요. >

“너한테 딱 도움 되는 말이네.”

하준이 짧아진 선호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선호는 제 손에 놓인 그 종이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서 있었다. 하준이랑 있으면, 하루가 평소와는 다르게 행운으로 가득하다. 그건 오로지, 하준이라는 존재, 단 하나로 이루어진 행운이었다.

그동안 제대로 쳐다도 못 보고 말도 제대로 못 해 본 상대랑 밥도 먹었고, 정말 작지만 선호에게는 소중한 선물도 받았다. 선호는 먼저 앞서 걷고 있는 하준을 멍하니 바라봤다.

“데려다줄게.”

내가 널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선호는 하준 근처를 따라 걸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만약 나중에 하준이 선호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래서 좋아하지 말라고 한다면 그때는 어떡하지. 선호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걱정하며 고민했다.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인데, 하준은.

들키지 않는 게 중요했다. 선호는 다짐했다. 더 조심하고, 조심해야지. 하준이 불쾌하지 않게. 지금의 사이로 계속 남을 수 있게 말이다. 선호에게는 지금의 관계도 매우 과분했다.



***



하준과 함께했던 주말은 마치 한여름 밤의 꿈같았다.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마치 꿈을 꾼 것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하준이 없는 선호의 일상은 그대로였다. 선호는 열심히 학교를 다녔고,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 순간에도 하준을 생각했고, 하준이 준 포춘 쿠키의 행운의 글귀를 주머니 속에 넣고 힘들 때마다 종종 꺼내 보기도 했다.

선호는 내내 수요일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준과 둘이서 교양 수업을 듣는 수요일. 이번 과제는 선호가 하기로 했다. 하준이 하겠다고 말하는 걸, 선호가 기어코 자신이 하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너무 하준에게 받기만 하면 그건 그거대로 불편했다. 하준은 그런 선호의 단호한 반응에 순순히 그러라고 말해 주었다.

정말 별거 없는 레포트였다. 딱 한 장만 채우면 그만인 그런 레포트. 그런데도 하준의 맘에 들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에 선호는 밤을 새워서 레포트를 썼다. 이건 선호 혼자만의 과제가 아니라 하준과 선호, 둘의 과제니까.

“선호구~!”

전공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선호가 괜히 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은 강의실 앞에 서 있었다. 그때, 그런 선호에게 동우가 나타나서 선호의 목에 제 팔을 감고 짧은 선호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머리 잘랐네, 우리 호구. 더 호구 같아졌네!”

동우의 말에 주변에 있는 아이들이 마치 선호를 비웃듯이 웃었다. 그런데 선호는 평소처럼 아이들을 따라 웃을 수가 없었다. 하준의 추천으로, 하준이 괜찮다고 한 머리인데. 평소와 다르게 선호가 따라 웃지 않자 동우가 선호를 살짝 흔들며 말했다.

“왜 정색해. 장난인데?”

학생 식당에서의 일은 완전히 잊은 모양인지 동우가 선호를 보며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는 말했다. 동우의 말에 아이들이 웃는다. 아이들의 태도도 그때와 전혀 다를 바 없었다.

이 어색한 상황 속에서 선호가 그제야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제야 동우도 낄낄거리며 선호의 머리를 기분 나쁘게 툭툭 쳤다.

“새끼, 장난인데 정색하기는. 참, 너 저번에 사회학의 이해 수업 들었다고 하지 않았냐?”

“…응.”

“그럼 잘됐네. 민수 쟤가 이번에 그 수업 듣는데 워낙 빡세다잖아. 야, 얘한테 도와 달라고 그래.”

“그래도 돼?”

“그럼 당연하지, 얘 웬만하면 다 잘 도와줘. 그치?”

동우가 선호를 흔들며 대답을 종용했다. 그 상황에서 안 된다고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선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이 자리에 하준이 없는 게 다행이었다. 하준이 있었다면, 또 자신을 한심하게 볼지도 몰랐다.

“아싸, 잘됐다. 안 그래도 그거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했거든. 그냥 자료만 부탁할게, 선호야.”

“뭘 자료만이야. 얘 레포트 존나 잘 써. 나 얘 덕분에 저번에 법 심리학에서도 A+ 받았잖아. 그치, 호구야?”

법 심리학만일까. 교양 수업뿐만 아니라 동우의 과제 중에 선호가 해 주지 않은 강의가 없었다. 물론 그만큼 선호의 레포트 쓰는 능력도 늘었다. 자신의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 것도 해 주니, 늘 수밖에.

하지만 구태여 그런 말까지 덧붙이지는 않았다. 여기서 동우가 바라는 것은 딱 하나이다. 바로 선호의 복종. 선호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면 동우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이고, 곧 평화가 찾아온다.

“들어가자.”

그제야 수업이 끝나고, 동우가 강의실 안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선호에게 옆에 앉으라고 어깨를 눌렀다. 선호가 여느 때처럼 아무렇지 않게 그 옆에 앉으려는 순간이었다.

“여기 앉아도 되지?”

선호의 옆자리에 누군가 가방을 올리며 물었다. 하준이었다. 선호는 멍청히 하준을 바라봤다. 하준은 이상했다. 보고 싶다고 생각할 때쯤 마치 자신의 생각을 읽는 것처럼 짠하고 나타나는 게. 하긴, 생각해 보면 선호가 하준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때가 거의 없었지만.

하준의 등 뒤로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물론 선호의 착각일 뿐이겠지만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어, 여나 안녕.”

동우가 약간은 날이 선 눈빛으로 하준을 보다가 이내 헤벌쭉 웃으며 하준의 뒤에 있는 여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여나는 동우를 보자 인상을 찡그리며 남은 자리를 확인하더니 선호의 바로 앞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랜만에 보네. 여나 너는 더 예뻐진 것 같다.”

동우가 여나를 좋아한다는 건, 선호도 알고 여나도 알고, 과 애들 대부분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여나만 보면 표정을 싹 풀고 순한 얼굴로 변하는 걸 선호는 잘 안다. 그래도 여나가 오면 동우의 관심이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건 좋았다.

“머리가 왜 그래?”

동우가 한참 여나에게 말을 걸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 사이에 하준이 부스스한 선호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그제야 선호가 하준을 똑바로 바라봤다. 계속 옆에 앉아 있었는데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어서 계속 다른 쪽으로 시선을 두고 있던 선호였다.

하준은 날이 갈수록 잘생겨지는 것 같았다. 원래 대부분 군대에 다녀오고 나면 다들 아저씨 태가 난다고 하는데 하준은 그런 게 전혀 없었다.

한참 하준의 얼굴을 보고 있는 선호에게 하준이 왜 대답이 없냐는 듯 살짝 선호의 얼굴 앞에 손을 흔들어 보였다.

“머리… 왜?”

“너무 부스스한데.”

나오기 전에 단정하게 빗었는데 아까 동우가 마구 헝클어트리고 난 후 부스스해진 것 같았다. 선호가 하준의 말에 손으로 머리를 단정히 빗었다. 그 모습이 마치 제 털을 그루밍하는 동물 같아서 하준은 입꼬리를 올려 씩 웃었다.

선호는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그 나이대보다 더 어려 보이긴 한 것 같았다. 저렇게 머리를 자르니 고등학생처럼 보이기도 하고. 사람은 다 제각기 액면가가 있고 분위기라는 게 있는 거니까. 하준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스스로 납득하고 있었다.

“어, 선호 머리 잘랐네. 귀엽다.”

앞에서 동우가 말을 거는 것을 매우 귀찮다는 표정으로 무시하고 있던 여나가 선호의 머리를 보고 말했다. 선호가 그 말에 얼굴을 붉혀 웃었다. 하준이 괜찮다고 한 머리니까. 선호는 순전히 그것 때문에 기분이 좋아서 웃은 것이었다.

그런데 옆에서 그런 선호를 보고 있는 하준은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나의 툭 던진 말에 얼굴을 붉히는 그 모습을 보자니…….

구선호가 좋아한다는 사람이 강여나인가? 하는 생각.



“밥 먹으러 갈까? 여나야, 너도 갈래?”

“아니.”

동우의 물음에 여나가 단호하게 거절했다. 여나의 단호한 목소리에 주변에서 피식 웃는 소리가 들리자 동우가 기분 나쁘다는 얼굴로 타겟을 선호에게 바꾸어 물었다.

“갈 거지, 구선호?”

그 자리에 가면, 또 선호를 가지고 뭐라고 할지 모를 노릇이었다. 선호는 동우와 밥을 먹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선호는 또 동우에게 단호하게 거절하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선호가 가방을 메면서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 하준이 선호의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같이 도서관 가자.”

그런 선호의 팔목을 잡으며 옆에서 하준이 말했다. 동우는 그런 하준을 보고는 더욱 얼굴을 찌푸렸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신호였다.

“안 갈 거냐?”

“못 들었냐? 도서관 간다니까.”

귀 없는 거 아니잖아? 선호에게 물은 말을 하준이 그대로 받아치며 말했다. 웃으며 말하고 있지만, 하준은 명백히 비꼬고 있었다. 그런데 웃기게도 동우는 그거에 대해 아무 말도 못했다.

“야, 가자.”

동우가 다른 애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민수가 동우에게 끌려가면서 선호에게 연락하겠다며 소리쳤다.

“가자.”

그제야 하준도 선호의 팔을 잡고 끌었다. 선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하준의 뒤를 따라 걸었다. 바보 같지 않을까. 분명 그때 하준은, 저들에게 바보처럼 당하기만 하는 자신을 보고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욕을 했었다. 지금도 그런 기분이지 않을까.

“……답답하지 않아?”

“뭐가?”

“나 말이야….”

선호의 시무룩한 목소리와 표정을 보며, 하준은 덩달아 고민에 빠졌다. 확실히 선호에 대한 하준의 생각과 태도가 많이 달라지긴 했다. 분명 처음에는 답답하다고 생각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별생각이 들진 않았다. 선호가 거절하지 못하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그걸 금방 고칠 수 있었다면, 지금까지 저렇게 호구 잡혀 있지는 않았겠지.

“내가 말했잖아. 같이 고쳐 준다고.”

“…응.”

“그래도 다음엔 싫으면 싫다고 말해야 돼. 오늘은 내가 도와줬지만, 나 아니었으면 또 쟤네 따라서 호구처럼 밥 먹으러 갔을 거잖아.”

선호가 하준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안 그러겠다는 표시였지만 하준은 믿지 않았다. 퍽이나 잘 거절했겠다. 아까만 해도 그 싫다는 말을 하기 힘들어서 우물쭈물거리더니.

도서관 앞에 신호등 아래에서, 하준은 선호가 도서관에 들어가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선호가 의문을 가득 담은 눈으로 하준을 바라봤다. 왜, 같이 안 가? 하는 눈빛. 선호는 순수했다. 그리고 그만큼 숨기는 게 없었다. 처음엔 그 순수함이 그저 답답함으로밖에 비춰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어느 정도 그에 대해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지금도 선호를 만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난 약속 있어서, 가 봐야 해.”

“…아까는 도서관….”

“너가 또 걔네랑 밥 먹으러 갈까 봐.”

거짓말 친 거야. 장난스럽게 속삭이고는 웃는 얼굴로 하준이 말했다. 아… 그렇구나… 거짓말이었구나…. 그걸 또 진지하게 끄덕이는 걸 보고 하준이 크게 웃었다. 선호가 그런 하준을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연락해.”

짧은 선호의 머리는 자꾸 만지고 싶어진다. 만지면 밤톨 같고, 귀여우니까. 하준이 선호의 머리를 살짝 만지고 뒤돌아 걸었다.

선호는 뒤돌아 걷는 하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락하라고, 연락…. 선호가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려 쑥스럽게 웃었다. 하준이 그 웃음을 봤다면 분명 자신을 좋아한다고 확신할 수 있을 만한 그런 사랑에 빠진 사람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데?”

“너랑 사촌인 거 알려지면 쪽팔려서 죽을 거야, 난.”

하준은 제 옆자리에 앉은 여나를 보고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여나는 하준의 조수석에 거의 몸을 내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지나가던 애들이 보면 오해하기 딱 좋을 거라면서. 저럴 거면 아예 자신의 차를 타지 말지. 하준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여나를 한심한 눈으로 바라봤다.

근데 또 그렇게 말하면 여나는 집까지 가는 길이 얼마나 먼데 그것 때문에 이 편한 것을 포기할 순 없다고 소리쳤, 아니 의견을 표력했다. 그래서 항상 이렇게 여나는 조수석에 거의 찌그러지다시피 누워 가고는 했다.

“나 오늘 집으로 안 가는데.”

“그럼 그냥 가다가 근처에 내려 주면 되지, 새끼야.”

학교에서 조금 벗어나고 나서야 여나가 다시 편하게 조수석에 앉았다. 하준과 여나가 탄 차가 잠시 신호에 걸린 사이에 하준은 그런 여나를 빤히 바라봤다.

“재수 없게 뭘 봐?”

물론 생긴 건 하준과 닮아서 봐 줄 만하지만, 여나는 아무리 봐도 전혀 선호와 어울리지 않았다. 하준은 여나의 얼굴을 한참을 뜯어보며 생각했다. 구선호가 강여나 같은 애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 사촌이지만 거의 남매처럼 자라 온 하준은 ‘저런 애’를 좋아하는 선호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준의 머릿속에는 이미 선호가 여나를 좋아하는 것으로 단정 지어졌다.

“너 선호랑 친해?”

“구선호? …아니, 얘기도 별로 안 해 봤는데. 오늘 말 한 번 건 게 다야.”

둘 사이에 어떤 접점이 있는 것도 아닌데 선호는 어떻게 강여나를 좋아하게 된 걸까. 평소에는 궁금하지도 않을 남의 연애사가 이상하게도 자꾸 흥미가 갔다. 하긴, 그렇게 소심하고 조용한 애가 누구를 그렇게까지 좋아한다는 거 자체가 하준에게는 흥미로운 일이었다. 애초에 누군가를 그렇게까지 좋아해 본 적 없는 하준이라 더욱 그랬다.

좋아하는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이상형이 될 정도면 대체 얼마나 좋아하는 걸까. 선호의 이상형은 하준의 이상형과는 완전히 반대였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과, 내가 좋아하는 사람.

“머리 자른 거 귀엽던데.”

“관심 있어?”

“선호한테? …음, 선호 정도면 귀여워서 좋지.”

하준이 보기에는 여나의 취향은 전혀 선호가 아니었다. 여나가 여태까지 사귀었던 남자들을 보면 대부분 덩치가 있고 우람한 타입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선호는 완전히 정반대였다. 지금 저렇게 별생각 없이 대답하는 걸 보면 하준이 보기에 여나는 딱히 선호를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안됐네, 그렇게 좋아하는데. 하준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다고 하준이 억지로 둘을 이어 주려고 한다거나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남의 연애사에 참견하는 건 꼴불견이니까.

“근데 그건 갑자기 왜?”

“그냥 물어본 거야.”

“그러고 보니까 넌 요새 선호랑 친해진 것 같더라? 아까 보니까 아주 눈에서 꿀이 떨어지던데.”

“무슨 헛소리야.”

“지 여친도 그렇게 안 쳐다보던 새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