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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의 호구 2화

1. 호구가 좋아하는 사람 (2)


***



하준은 오랜만에 마주 앉은 아버지를 바라봤다. 딱딱한 얼굴로 앞에 놓인 음식을 씹는 아버지의 눈에서는 하준을 향한 애정이나, 사랑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애초에 왜 만나자고 한 건지. 하준은 어색한 분위기에서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음식을 씹었다.

아버지의 옆에는 언제나 그렇듯, 그 여자가 앉아 있었다. 하준이 새엄마라고 불러야 하지만 한 번도 그렇게 불러 본 적 여자. 자신과 나이 차이가 그렇게 많이 나지도 않는 여자. 하준은 이 집 안에 있는 모든 게 불편했다.

“살이 더 빠진 것 같구나.”

“그대로입니다.”

“……왔으면 먼저 찾아와야지, 꼭 이렇게 불러야 억지로 오는 거냐?”

전역하고 나서도 하준은 아버지를 찾지 않았다. 하준은 애초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이 집에 오는 걸 굉장히 꺼렸다. 어머니도 없는 집에, 아버지와 저 여자가 시시덕거리면서 살고 있는 이 집에, 굳이 찾아올 필요가 있을까? 하준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입 안에서 까글거리는 음식을 씹어 넘길 뿐이었다.

“아직도 그 쓰잘데기 없는 모델 일 하는 거냐?”

아버지는 언제나 자신을 만날 때면 이렇게 확인하듯이 묻곤 했다. 하준은 의식적으로 씩 웃으며 말했다.

“안 합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얼른 졸업하고, 회사 들어와서 일 배워야지. 자꾸 그런 쓸데없는 일 하지 말고.”

쓸데없는 일이라……. 하준은 포크로 앞에 있는 접시를 뒤적거리며 말이 없었다. 자신은 아버지 회사에 들어가 경영 일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애초에 경영학과에도 오고 싶지 않았다면, 아버지가 무슨 반응을 보일까? 하준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자주 연락하고, 가끔은 내가 부르기 전에 찾아오기도 해라.”

“예.”

빨리 이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은 마음뿐이다. 단지 그것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웃으며 대답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우욱…….”

집에 돌아오자마자 하준은 바로 답답한 셔츠부터 끄르며 화장실로 향했다. 그러고는 방금 먹은 것을 게워 내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집에서 저녁을 먹는 날에는 항상 체하곤 했다. 그건 목 끝까지 답답하게 잠기는 셔츠 때문이기도 했고, 혹은 의식적으로 만들어 낸 웃음 때문에 음식이 목으로 들어가는 건지 입으로 뱉어 내는 건지 모르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충 게워 내고 화장실을 나와 입을 닦고 하준은 핸드폰을 확인했다. 오늘 만나지 못한 윤아에게서 문자 몇 통이 와 있었다.

[끝까지 이기적이구나, 넌.]

[내가 억지로 붙잡고 있었던 거지.]

[잘 지내. 너도 너랑 똑같은 사람 만나기 바라.]

하준이 그걸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하준은 윤아에게 자신의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그를 이해하지 못할 게 뻔했다. 부잣집 아들이잖아, 배부른 소리하고 있네,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앓는 소리야. 그들이 하는 말이 맞다. 하준이 배부른 소리를 하는 것도, 앓는 소리를 하는 것도. 그렇기에 더더욱 말하고 싶지 않은 거였다.

어차피 잘되었다. 하준은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붙잡는 편이었다. 하준에게 윤아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을 뿐이다.



“날씨가 아직도 여름이다. 존나 덥네.”

주혁이 제 반팔을 펄럭이며 그렇게 말했다. 아직 9월 중순이니 더운 게 당연했다. 하준도 아직까지는 여름 하늘처럼 푸른빛을 띠는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햇빛을 가렸다.

“좀 떨어져 걸어, 새끼야. 너 때문에 내가 작아 보이잖아.”

“싫은데.”

떨어져 걸으라고 주혁이 하준을 밀었지만, 하준은 밀리지 않았다. 188cm의 장신인 그가 주혁의 옆에 서 있으니 스스로 꽤 큰 편이라고 자부하고 살았던 주혁의 키가 작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재수 없는 새끼. 빨리 밥만 먹고 따로 가야지.”

“네 키가 작은 걸 왜 내 탓해?”

객관적으로, 주혁의 키는 작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하준에 비해 작은 거였다. 너도 너보다 큰 놈 앞에서 망신당해 봐야 한다고, 주혁은 반박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야, 나 잠깐 과실 가야 해.”

하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기꺼이 주혁을 따라서 과실 쪽으로 걸었다. 그러나 안쪽으로는 들어서지 않고 과실 안으로 들어가는 주혁을 밖에서 기다렸다. 바깥에 살짝 벽에 기대서서 바라본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며칠 전부터 자꾸 신경 쓰이는 그 답답한 구선호의 옷자락 끝이 보였다.

“야, 우리 호구는 이렇게 여리여리해서 남자 구실 전혀 못할 것 같지 않냐?”

“맞아, 호구야 솔직히 말해 봐. 너 여친도 사귀어 본 적 없지?”

명백히 사람을 조롱하는 말이었다. 제3자인 하준이 들어도 기분이 더러운데 본인은 어떨까. 과실에는 저들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학년들도 있고, 지금 과실 안으로 들어선 주혁도 있는데 그들은 마치 상관없다는 듯이, 아니 오히려 들으라는 듯이 떠들어 대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도 안 봤던 저 유치한 짓거리를 성인이 되고도 한참 지난 지금 와서 보고 있어야 한다니. 어이가 없어서 하준이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호구라는 말을 듣고도 별말이 없는 구선호, 같이하는 팀플에서 아무렇지 않게 자기가 혼자 하겠다고 말하던 구선호, 그리고 지금 저런 쓰레기 같은 말을 듣는데도 가만히 있는 구선호.

“…없어.”

“푸핫, 봐 봐. 내가 딱 봐도 없을 것 같다고 했잖아!”

“누가 호구랑 사귀어 주냐? 우리 호구 어떡해? 호구 어차피 쓸 일도 없는데 그냥 떼어 버려야 하는 거 아니냐?”

그 말과 함께 커다란 웃음소리도 터져 나왔다. 밖에서 듣고 있자니, 그냥 웃어넘길 수위의 농담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선호는 그만하라거나, 기분 나쁘다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애초에 하준이 선호를 몰랐다면 이렇게까지 답답하고 짜증 나는 기분이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선호는 어제부터 자꾸 하준의 시선에 나타나서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다.

“야, 오랜만에 우리 호구가 사는 밥 어떠냐?”

“나는 찬성!!”

“선호구, 넌 어때?”

시끄럽게 들려오는 소리가 하준의 신경을 마구 긁어 댔다. 소리만 들어도 선호의 의견은 무시하고 밀어붙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저기서 설마, 알겠다고 하지는 않겠지, 아무리 호구라도…….

“…그래.”

“야! 가자, 가자! 호구가 쏜대!!”

하준의 예상을 뒤엎는 선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과실 밖으로 몇 명의 애들에게 둘러싸인 선호가 나왔다. 과실 앞에 기대서 있는 하준을 보고 몇몇 애들이 멈춰 서서 하준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야, 선하준 너는 점점 더 잘생겨지냐.”

“선하준, 너도 같이 밥 먹으러 갈래?”

선호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있는 동기의 이름은 김동우였다. 남에게 딱히 관심이 많지 않은 하준도 동우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그만큼 목소리도 크고, 존재감도 큰 애였다. 그러고 보니 항상 동우는 옆에 어떤 아이를 꼭 끼고 다녔던 것 같기는 하다. 그게 구선호였나.

저렇게 작고 움츠러든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마치 제 힘을 과시하듯이.

하준이 제 앞에 있는 선호와 동우를 보며 씩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커다란 안경을 살짝 매만지면서 선호는 하준을 흘끔 바라보다가 하준과 눈이 마주치자 바로 눈을 바닥으로 내렸다.

“그래, 가지 뭐.”

하준이 흔쾌히 가겠다고 말을 하자, 동우를 포함한 몇 명이 어리둥절한 눈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애초에 하준에게 한 말은 그냥 인사치레로 한 말이었는데, 하준이 정말로 그러겠다고 말할 줄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선호의 눈도 하준의 말에 크게 뜨였다. 하지만 하준은 선호 쪽은 보고 있지 않았기에 그 변화를 알아채진 못했다.

주혁이 그 틈에 과실에서 나와 하준의 말을 듣고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뒤에서 절대 자신은 이들과 밥을 먹지 않겠다고 몸짓 발짓 손짓을 다 동원해 가며 의견을 표력했는데, 하준은 그런 주혁을 무시하고 자신의 앞에 있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가자, 밥 먹으러 가자며?”

선호가 입을 약간 벌리고 하준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 멍한 시선을 하준은 무시하고 동우에게 씩 웃어 보였다. 동우의 표정이 하준의 웃음을 보자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원래 동우 같은 부류의 애들은, 약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강하고, 강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약한 법이다.

하준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선호가 저렇게 주눅이 들어 있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긴 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이유에서든, 딱히 보기가 좋진 않았다. 아니, 아예 그런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무척이나 더러웠다.



하준과 주혁까지 포함해 총 일곱 명의 대인원이 함께 먹을 수 있는 식당은 점심시간인 학교 근처에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학생 식당으로 향했다. 일단 주문을 하면서 결제를 해야 하는 시스템이어서, 선호에게 밥을 사라고 눈치를 주던 아이들은 하준이 뒤에서 말없이 쳐다보고 있자 별말 없이 자신의 돈으로 메뉴를 주문하고 결제했다.

“아니, 왜 갑자기 네 맘대로 정하고 지랄이야, 미친놈아.”

주혁이 뒤에서 하준만 들리게 속삭였다. ‘나 얘네 싫다고 시발’. 하준도 마찬가지였다. 이들과 밥을 먹는 게 하준이라고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왜 그런 밥 먹자는 말에 아무렇지 않게 수락을 했냐 하면…….

“그냥, 갑자기 그러고 싶었어.”

선호가 신경이 아예 쓰이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 쓰레기 같은 말을 듣고도 바보같이 웃고만 있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이런 행동이 모두 저답지 않은 행동이라는 걸 하준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리를 잡고 앉자 선호가 마치 평소 하는 일을 하는 양, 물을 가지러 일어나려는 걸, 하준이 옆에서 그의 팔을 잡아당겨 다시 앉혔다. 동우는 선호와 하준 앞에서 둘의 모습을 보고 굉장히 언짢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하준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이제 슬슬 제대하는 애들도 있고, 동기 애들 한번 만나야 하는데.”

“그러게.”

“아, 나도 슬슬 군대 가야 하는데 졸라 싫다 진짜.”

“역시 진작 가는 게 낫다니까.”

여기만 해도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 하준과 선호를 포함해 총 네 명이었다. 다들 빨리빨리 다녀와서 해치워 버리자는 분위기였는데, 아직도 군대를 가지 않은 몇 명이 한탄하듯 말했다. 하준은 그들의 대화에 대꾸하지 않고 그저 듣고만 있었다.

“야, 선호구. 너 군대 가서 비누 줍기 안 시키디?”

그때, 동우가 저급하게 킥킥거리며 웃더니 말했다. 만만한 게 구선호였다. 선호는 그런 동우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눈을 굴려 웃고 있는 다른 애들을 바라봤다.

왜 선호를 보면 답답한 기분이 드는지 알 것 같았다. 선호는 싫다는 얘기를 한 번도 안 했다. 기분이 나쁘다거나, 그러지 말라고 말을 하거나. 마치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보잘것없고 쓸데없는 일 치부하는 아버지 앞에서 아무 말 없이 밥만 먹는 하준처럼.

고개를 숙이고 국을 떠먹는 선호의 모습 위로, 어제의 하준 제 모습이 겹쳐 보였다.

“원래 얘같이 순진하게 생긴 새끼들은 딱 그런 일 당한다니까?”

“웩, 시발. 진짜 그랬냐, 호구야?”

선호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동우가 그런 선호를 보고 말했다.

“장난인데 왜 정색하냐? 웃어.”

그 말에, 선호가 어색하게 웃음을 지어 보이려는 그때였다. 하준이 옆에서 입을 열었다.

“김동우.”

“어?”

“밥 처먹으려면 아가리 처닫고 먹어. 더러운 새끼야.”

하준은 분명 웃으며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고 있는 말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험악한 하준의 말에 뾰족뾰족 가시가 돋아 있었다.

밥을 먹고 있던 아이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하준과 동우에게로 쏠렸다. 둘 사이에 차가운 공기가 맴돌았다. 선호가 하준의 옆에서 눈을 굴리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물론 앞머리가 워낙 길고 얼굴을 안경으로 거의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눈치 보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장난인데, 왜 그렇게 정색을 해?”

하준이 그렇게 말하자 주변에 있는 애들이 딱딱하게 굳은 분위기를 풀기 위해 과장되게 하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동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수저를 바닥에 던지더니, 이내 학생 식당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런 그를 따라서 나머지 애들 역시 자리를 떴다. 순식간에 하준과 선호, 주혁이 있는 테이블이 텅 비어 버렸다.

“장난이라니까, 존나 정색하네. 시발.”

하준이 웃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주혁이 그런 하준을 보며 역시 만만찮은 놈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마저 밥을 먹었다. 선호는 그 옆에서 수저를 그저 들고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넌 왜 그걸 시발, 듣고만 있냐?”

이번에는 하준의 화살이 선호에게 향했다. 하준의 말에도 선호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하준은 그 점이 가장 짜증이 났다. 천대를 당하고 모욕을 당한 당사자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그저 눈치만 보고 있다는 점이.

“야, 나 간다.”

주혁이 싸늘한 두 사람 사이에서 빠져나가고, 하준은 이미 입맛을 잃어 밥이고 뭐고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준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선호가 그런 하준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준은 자신의 뒤를 졸졸 쫓아오는 선호를 느꼈다. 선호는 하준의 다섯 걸음 정도 멀찍이 떨어져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하준이 뒤를 돌자, 하준의 등만 쳐다보고 걷던 선호가 멈춰 서서 고개를 푹 숙였다. 답답하기 짝이 없는 저 모습에 하준이 결국, 폭팔했다.

“야, 네 이름이 진짜 호구야? 저 새끼들이 하는 말을 왜 그냥 처듣고만 있어.”

선호는 그 말에도 눈을 크게 뜨고 하준을 바라볼 뿐 대답이 없었다. 그에 하준의 말의 수위가 더욱 높아지기 시작했다.

“저 개새끼들이 지들 좆대로 함부로 말하잖아. 그럼 싫다고, 하다못해 그만하라고 말이라도 해. 왜 그렇게 호구처럼 당하기만 해, 시발 보는 사람 답답하게!”

선호에게 뱉어 내고 있는 그 모든 말들은, 하준이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그렇게 웃지만 말고,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아버지 집에 가는 게 싫다고.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 집에서 아버지랑 웃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게 힘들고 싫다고. 아버지 사업 따위 물려받고 싶지도 않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적어도 시발… 말이라도…….”

“…….”

“…구선호.”

“…….”

“…울어?”

하준이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내 웃는 표정이었던 선호가 눈꼬리가 축 처지고 입꼬리도 내려간 채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그저 뚝뚝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둘 사이에, 처음 대화를 나누었던 그 술집 뒤쪽 건물에서처럼 차갑고 어색한 공기가 맴돌았다. 선호의 눈에서 좀처럼 눈물이 그치지 않고 뚝뚝, 처연하게 흘러내렸다. 선호는 그것을 닦아 낼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울고만 있었다.

선호는 선호대로 슬프고, 하준은 또 하준대로 당황한, 그런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



누군가 선호에게 하준을 왜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선호는 망설임 없이 말할 것이다. 그냥, 하준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니까. 만약 이유를 꼭 대야 한다면, 선호는 하준이 자신과 너무나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이유로 들 것이다. 어딜 가나 홀대를 받고 무시당하는 자신과는 달리 하준은 어디를 가도 반짝반짝 빛이 나는 사람이니까.

말 한번 제대로 못 해 보고 누군가를 이렇게까지 좋아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하준이라는 사람이 좋아지니, 그를 이루는 모든 게 좋아졌다. 선하준이라는 이름도 좋았고, 웃을 때 예쁘게 보조개가 생기는 것도 좋았고, 밝은 갈색 머리가 잘 어울리는 것도 좋았다. 하준의 곁에는 언제나 사람이 넘쳤다. 선호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는 게, 이상하게 그 사실이 무척이나 좋았다.

선호는 항상 다섯 발자국 멀리에 서서 하준을 바라봤다. 하준에게 말을 걸어 보거나, 얘기를 해 볼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자신이 다가가면 하준이 싫어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구선호는 보잘것없고, 바보 같은 사람이니까.

“군대 간다고?”

“응.”

“빨리 가네.”

“빨리 가는 게 맘 편하지.”

선호는 하준과 그의 친구 주혁이 과실에서 하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때 선호도 군대를 가기로 결심했다. 하준이 없는 학교는, 선호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군대를 간다고?”

“네.”

“그래, 어서 군대 갔다가 졸업하고 취직해서 제대로 돈 벌어야지.”

선호가 결심을 하고 나서 엄마에게 군대를 간다고 말했을 때, 선호의 엄마는 그렇게 말할 뿐 별다른 말이 없었다. 어차피 가야 하는 거니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하셨을 것이다.

“너 군대 가면 누가 돈 보내 주냐.”

우리 아들, 군대 가면 보고 싶어서 어떻게 해. 이런 말까지는 바라지도 않아도 그래도 엄마가 잘 다녀오라고, 수고 많다고 어깨를 두드려 주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애초에 그런 걸 바랄 수가 없는 사람인데, 선호는 괜한 생각을 했다고 스스로를 타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