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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과 세입자 1화

1.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램브란트 반 아슈엘 백작은 흑기사단 단장이다. 하지만 그는 두 번의 전쟁을 거친 후 기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10년 전, 이슈타르 왕국과 아레네스 왕국의 1차 전쟁이 발발했을 때 반의 아버지는 그에게 참전을 명령했다. 왕국에서 손꼽히는 대부호였던 아버지는 자작 지위를 돈으로 산 이였다. 반과 살가운 관계가 아니었던 아버지는 ‘진정한 귀족’에 대한 강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고, 아들이 기사로서 왕국을 위해 헌신하여 인정받기를 바랐다. 반은 전쟁에 나갔다.

아주 어릴 때부터 반은 검을 다루는 데 재능이 있었다. 자신은 그리 느끼지 못했지만 남들은 신동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냥 열심히 노력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순순히 아버지의 의지를 따라 전쟁에 나갔다가 어쩌다 보니 사람들을 구하고 여왕을 구했다.

1차 전쟁이 끝나고 수도로 돌아오니 사람들이 그를 전쟁 영웅이라 불렀다. 반은 그 말을 듣고 떨떠름하기만 했다. 백작 위와 영지를 하사받았다. 그리고 여왕의 명령으로 흑기사단에 입단하였다.

아슈엘 백작은 영웅이라고 불렸으나, 정작 그는 전쟁을 겪으며 기사는 할 게 못 된다는 걸 깨달았다. 1차 전쟁 후 20대가 된 그는 아버지에게 반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일단 기사를 그만두는 대신 여왕과 아버지 몰래 수도 서쪽에 땅과 주택들을 매입했다. 은퇴 후 안락한 생활을 위한 그만의 준비였다. 전쟁이 다시 발발하지 않는다면 은퇴하고 건물주로서 평온하고 안락한 삶을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운명은 그의 소망을 배신했다. 아레네스 왕국이 다시 이슈타르 왕국을 공격했다. 이슈타르의 영웅 아슈엘 백작은 기사단장으로서 다시 전장의 한가운데서 활약했다. 그가 스물일곱 살이 되었을 때 전쟁은 이슈타르의 대승으로 끝났다. 그리고 수도로 돌아오니 겨울을 넘기고 스물여덟 살이 되었다.

‘이번에야말로 은퇴하리라.’

은퇴하기엔 젊은 나이었지만 뭐 어떠하랴? 그는 왕국을 위해 할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했다. 제복에 달린 무공 훈장만 일곱 개였다. 이 정도면 특색 없이 변변치 못한 영지의 수익이라도 그럭저럭 살겠다 싶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수도에 땅과 주택을 마련한 간절한 이유가 있었다. 반은 1차 전쟁 때 그를 찾아오기로 약속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수도 서쪽 땅과 주택들을 어떻게 활용할까 생각하며 아주 잠깐 행복에 잠겼었다.

그리고 서쪽 지역의 자신의 땅에 갔을 때 그는 놀라고 말았다. 전쟁 전 그저 한적한 도시 외곽이었던 곳이…….

유흥가로 바뀌어 있었다.

그저 유흥가면 다행이었다. 망토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골목골목 돌아다녀 보니 각양각색의 유곽이 들어섰고, 더 깊숙이 파고드니 도끼파, 호랑이파……. 수도 내에서 유명한 범죄 길드의 본부가 세워져 있었다.

그의 땅이었다. 그의 건물들이었다.

아슈엘 백작은 기가 차서 검을 놓칠 뻔했다. 평범한 주거 공간과 안락한 건물주의 꿈은 와장창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인에게 관리를 맡겨 놓았던 자신의 집은 수도 서쪽 지역에서 유일하게 범죄 소굴화 되지 않았다. 유백색의 예쁜 삼층집. 백작은 비틀거리며 현관문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문을 열어 보니 확실히 잠겨 있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몸이 떨려 열쇠 구멍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몇 번이나 손이 미끄러졌다. 여러 번 시도한 끝에 집에 들어선 그는 문을 걸어 잠그고 창문의 가리개를 모두 내렸다.

응접실 소파에 주저앉아 그는 이마를 짚고 고뇌했다.

건물에 들어찬 저 무법자들을 어떻게든 내쫒겠다. 그리고 정상적인 세입자를 받아 안락한 노후를 쟁취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지긋지긋한 기사단장직을 그만둘 수 없었다. 그는 기사단장의 권한을 빼앗긴 집과 땅을 되찾는 데 쓰겠노라 다짐했다.



***



“암굴 말인가? 그곳은 건드리지 않는 편이 이 왕국의 안위에 도움이 된다.”

알현 중에 여왕이 그에게 한 말이다. 반은 그 말이 정말 그다웠다고 평했다. 신뢰하는 자에겐 그 속내를 여과 없이 보여 준다. 하지만 그만큼 단단하며 약점이 없는 왕이었다. 신뢰를 준 자가 배신한다면 앞뒤 잴 것도 없이 잔혹해진다. 그런 여왕이었다.

그녀는 올해 나이 쉰이 되었다. 빛나는 은발에 청회색 눈동자. 아직 소녀 같은 느낌을 주는 또렷한 눈매가 전쟁 전이나 후나 변함이 없었다. 그는 피곤한 낯으로 아슈엘 백작의 청을 거절했다.

“그래, 네 표정을 보아하니 내가 왜 그 범죄 소굴을 그대로 두는지 의문을 갖고 있구나. 나 역시 마뜩치 않아. 기회만 된다면 그 땅을 밀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하나 그들이 있어서 다른 곳의 안전이 지켜진다면……. 하나하나 손에 쥘 수 없는 무형의 악보다는 정형화 되어 있는 악이 다루기 편하단다, 반.”

“하오나, 그곳의 땅과 건물들은 정당한 주인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 짐도 토지 매입서나 건물주를 알아봤다. 가명을 썼더군. 암굴왕이란 자가 분명해. 그는 범죄자들의 수장이다.”

백작이자 기사가 은퇴 후 노후 자금을 위해 건물을 사는 건 불명예로 여겨졌다. 영지도 있고 작위도 있고, 번듯한 직장도 있는데 토지와 건물을 대량 매입했다면 사람들은 가장 먼저 투기의 목적으로 생각하고 의심할 것이다.

가뜩이나 몸집을 불려 가는 이슈타르의 수도다. 한참 개발을 위해 동분서주할 때에 투기를 했다간 여왕의 눈 밖에 나거나, 법적으로 처벌받을 수도 있었다. 범죄자들까지 얽힌 암굴의 주인이라면 어쩌면 사형당할지도 모른다. 여왕은 주인을 죽여서라도 그 땅을 밀어 버리고 싶어 할지도 몰랐다. 여왕의 머릿속엔 땅 주인은 암굴왕이란 공식이 성립되어 있는데, 반이 진실을 밝힌다면 무사할 리 없었다.

여왕이 자신의 말을 믿어 준다 해도 차명 재산이라면……. 여왕의 ‘사형’이라는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선연하게 들렸다.

여왕은 흠칫 몸을 떠는 백작을 보며 암굴왕이 무섭긴 한가 보다 오해했다. 정작 백작이 무서워하는 이는 여왕이었지만…….

“암굴왕은 아무리 나라도 함부로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네. 그들을 몰아내고 싶은 흑기사단장의 충정을 내 알겠으나 이 일은 이후에 다시 얘기하도록 하세. 자네도……. 전장에서 돌아온 지 겨우 3일밖에 지나지 않았잖나? 모처럼의 휴식에도 나라를 걱정하고 짐을 걱정하는 마음이 갸륵하지만, 그대의 건강을 해칠까 염려돼. 이만 물러가서 휴가를 즐기게나.”

말을 마치고 눈가를 꾹꾹 누르는 여왕을 보고 반은 뒤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여왕도 그들을 몰아내기엔 힘에 부치는 모양이었다. 그는 터져 나오는 한숨을 꾹 참으며 알현실 밖으로 나왔다.

그는 그저 아버지의 뜻에 반해 유산 상속을 받지 못하거나, 여왕의 심기를 거스르며 기사단을 나왔을 때를 위해 개처럼 일해서 번 돈으로 땅과 주택을 산 건 아니었다. 반은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이 있었다. 반은 전쟁터 한복판에서 헤어진 어떤 소년을 8년 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안타까운 사정을 세상은 알아주지 않을 것이다. 법전에는 눈도 귀도 달리지 않았다. 상인의 아들은 눈치가 빨랐다.

밖을 내다보기만 하면 암굴이라 불리는 그의 땅, 그의 건물들이 보였다. 소파에 쭈그리고 앉아서 우울한 휴가를 보내던 그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래. 저 많은 건물들은 저 망할 놈들이 점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집만은 라스퍼가 지켜 주었다. 내 땅은 천천히 되찾아 가고, 우선 2층을 세놓자.’

친구인 라스퍼가 어떤 방법으로 이 집을 지켜 냈는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이 돌아오고 집 열쇠를 받은 순간부터 저택 관리는 오로지 반의 몫이었다. 누가 감히 기사단장의 주거지를 침입하겠느냐마는 빼앗긴 들을 볼 때마다 속이 터지고 당장 이 집만 해도 불안하기만 했다. 그래서 그는 2층을 세놓기로 했다. 자신이 출근했을 때 비어 있을 집을 지켜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조금이라도 노후 자금을 모을 겸,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2. 착한 세입자


“2층입니다. 3층은 제가 쓰는 곳이니 올라오지 마십시오. 그리고 1층은 공동생활 공간입니다. 주방, 응접실, 제가 책을 모아 둔 서재가 있습니다. 편하게 이용하시면 됩니다. 아, 냉장고는 비지 않게 항상 채워 두겠습니다만, 혹시 없다면 암굴을 가로지르지 마시고 골목을 돌아 큰길에 있는 식자재상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열쇠를 하나 드리지만 잃어버리면 잠금쇠까지 바꿔야 하니 주의해 주십시오. 저는 아침 5시에 일어나 6시면 출근합니다. 퇴근은 오후 6시 전후이니, 전할 말이 있다면 쪽지를 남기거나 저녁때 전해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세입자는 순순히 답하였다. 반은 세입자를 꼼꼼히 훑어보았다. 평범한 갈색 머리카락을 길게 길러 뒤에서 하나로 묶었다. 새싹 같은 연녹색 눈동자가 집 계약서를 읽으며 반짝였다. 하얀 피부와 함께 순한 인상이 그를 세상에 나와 본 적 없는 학자처럼 보이게 했다. 오른손 중지에 박인 굳은살 또한 반의 추측에 무게를 더했다.

“학자이십니까?”

반은 범죄자라면 질색이었다. 애초에 범죄자가 아니며, 집을 관리해 줄 수 있는 사람이란 조건으로 세를 냈다. 당장 주말에 왕궁에서 열리는 승전 파티가 있다. 그리고 그다음 주부터는 흑기사단의 단장으로서 출근을 해야 했다. 종전 협상은 이미 끝났으나 논공행상과 주변국과의 외교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승전 파티 이후에는 외교관 호위다 뭐다 바빠질 예정이었다.

눈앞의 남자는 두 달이라는 긴 휴가 끝에 겨우 찾아온 세입자였다. 반의 집은 암굴 경계 안쪽에 있는 주택이었다.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을 기대한 그 스스로가 어리석었다. 휴가가 끝나 가자 그는 공주님께 받은 손수건을 물어뜯으며 월세를 내렸다. 수도, 게다가 사람 살 만한 모양새는 다 갖춘 집 한 층 월세가 15골드라니! 성벽 밖 몸 하나 뉘일 자리밖에 없는 방도 30골드는 되었다. 그래도 반은 필요에 의해 세를 놓았다.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눈앞에 있는 학자가 하루하루 목숨을 걸어야 할지 모르는 곳이 암굴이었으니.

“네, 학자, 그 비슷한…….”

“실례지만, 어떤 직업입니까?”

“저는 사람에 대해 연구합니다. 감정, 영혼, 행동 양식을요.”

“대단합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하지 않습니까? 그런 것을 연구하다니 인간에 대한 통찰이 깊으신가 봅니다.”

반의 칭찬에 세입자의 얼굴이 빨갛게 타오르는 듯 보였다. 비록 이 세입자를 잡아야 해서 평소 하지 않던 칭찬을 했지만 대단하다고 생각한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학자라면 더욱 환영이었다.

“사정이 있어서 수도에 지내야 했는데 집세가 비싸서 걱정이었어요. 15골드라니 제가 운이 좋았나 봐요.”

“저도 세가 나가지 않아 걱정이었습니다. 학자님을 만나 다행입니다.”

반은 굳이 암굴 앞이니, 범죄자가 많다느니 덧붙이지 않았다. 분명 상대도 그 정도는 알고 있을 터였다. 세입자는 맑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기사님. 오웰이라고 불러 주세요.”

“란트나 반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같이 악수를 하면서 반은 고개를 기웃거렸다. 언제 자신이 기사라고 소개한 적 있었나? 하지만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는 왕국에서 흔한 조합이 아니니 어렴풋이 유추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전쟁 영웅이면서 흑기사단장이라는 위명과 꼭 맞게 반은 머리도 눈동자도 검은색이었다. 여왕은 반의 그런 특징까지 생각하며 흑기사단장으로 그를 임명했다. 이슈타르 왕국에서 그는 흑기사단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되었다. 그랬기에 더욱더 여왕은 자신을 놓지 않을 것이다. 평온한 탈주를 원하는 반에게는 비극인 일이었다.

그의 유명세가 이제 막 수도에 온 학자까지 알 정도라니, 암굴왕도 이미 자신의 존재를 알아챘으리라 생각되었다. 왕실 기사단과 암굴은 적대 관계였으니 반은 이 예쁜 유백색 집에서의 삶이 막막해졌다.

언제나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반이었기에 오웰이라는 세입자는 그의 고민을 모른 채 손가방 하나만 들고 2층으로 향했다. 반은 뒤늦게 그가 가져온 짐이 그 작은 가방 하나뿐임을 눈치챘다. 반이 재빨리 그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오르며 물었다.

“이삿짐은 언제 옵니까?”

“아…….”

오웰이 무언가 생각난 듯 층계 위에서 뒤돌아 반을 내려 보았다.

“짐은 없어요. 이게 전부입니다.”

그는 손가방을 반의 눈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수도에 오다가 강도를 만났거든요.”

“네? 무사한 겁니까?”

반은 말실수를 했다. 이미 강도에게 짐을 빼앗긴 마당에 무사한 일은 아니었다. 분명 큰 실례였다. 하지만 상대는 잘 알아들은 듯 유쾌하게 웃으며 답했다.

“네, 아마도요.”



3. 아침 식사 (1)


반은 오전 5시면 일어나 6시에는 출근한다. 그러면 오웰은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퇴근하여 식탁 앞에 앉는다. 그는 반이 해 준 음식이라면 뭐든지 가리지 않았다.

처음 오웰이 새벽에 들어왔을 때 반은 갑자기 열린 현관문에서 비척비척 들어오는 그를 보고 놀라고 말았다. 밤새 어디선가 일하고 왔는지 굉장히 피곤한 낯으로 다가오는 오웰을 보며 반은 그의 안위를 걱정했다. 오웰은 반이 원하는 조건과 꼭 맞게 낮에는 집에 있었는데, 그 말은 곧 밤에 일한다는 뜻이었다. 오늘도 피곤에 절어 어깨를 늘어트리고 들어온 오웰은 토스트와 베이컨 굽는 냄새에 새싹 같은 눈동자를 반짝였다.

“……아침 드시겠습니까?”

반의 말에 오웰이 단숨에 식탁에 와 앉았다. 반은 작게 웃으며 식빵 하나를 더 꺼내 팬에 얹었다. 기름 튀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1층에 가득 퍼졌다.

“요리도 할 줄 아나요?”

“기사로서 살다 보니 간단한 식사 정도는 할 줄 알게 되더랍니다. 이상합니까?”

“아뇨. 누구나 자기 먹고 살 건 할 줄 알아야죠. 다만…….”

남은 한 손으로 그릇 하나를 더 꺼내 식탁에 올리는 반을 오웰이 집요하게 훑어봤다. 식탁을 차리면서도 반은 기사의 기가 막힌 감으로 그 눈길을 알아챘다.

‘사람을 공부한다더니 나도 관찰 대상인가?’

반은 괜히 민망해져서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렇게 생기지 않았단 얘기는 많이 듣습니다.”

“……실례했습니다.”

시선을 들킨 오웰이 귀를 붉게 물들이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실례랄 게 뭐 있나.’

여태껏 반이 만나 온 기사들에게 한 번씩은 꼭 듣는 말이었다. 반은 자신의 차가운 인상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어느 정도 맛있기까지 해서 반의 요리는 병영에서 인기가 있었다.

반이 어린 기사였던 시절, 그가 취사병이 아님에도 기사들은 그에게 주구장창 요리를 맡겼고, 반의 직급이 높아지고 더 이상 그가 음식을 만들지 않자 ‘군대 짬밥’은 맛이 없다는 불평불만이 난무했다. 기사들과 병사들의 사기가 맛있는 음식으로 좌우되기도 하니, 요리는 기사가 꼭 갖춰야 하는 능력이었다. 취사병의 잘못된 선택으로 배탈이 날 수도 있다. 인간이란 원래 의식주와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

반은 오웰의 맞은편에 가서 앉았다. 얌전하게 토스트를 먹는 오웰을 보며 반은 문득 그가 위험한 암굴의 밤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연약한 세입자의 안전 문제가 머릿속에 대두되었다. 반으로서는 상냥하고 얌전한 세입자가 부디 다치지 않길 바랐다.

“오웰, 이 주변은 밤에 다니면 위험합니다. 그러니 호위를 두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 말에 오웰은 토스트를 문 채 회청색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토스트를 그릇에 올려놓은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어두운 표정의 그를 보고 반은 아차 싶었다. 15골드도 버거워하는데 누군가를 고용한다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짧은 생각을 말해 미안한 마음이 든 반은 오웰의 눈을 피하며 자기 몫의 토스트를 들었다.

“……호위라면 용병이나 자유 기사를 고용해야겠지요?”

“용병보다는 자유 기사를 추천합니다. 용병들은 워낙에 거칠어서 학자님께 오히려 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제가 소개해 드릴까요?”

“기사님……. 반의 말은 고맙지만 그분들은 호위 대상과 꼭 붙어 다니겠지요? 그런 건, 부담스러워요.”

반은 그의 안전이 걱정됐지만 오웰은 호위를 데리고 다닐 생각이 없어 보였다. 반은 토스트를 우물우물 씹으며 오웰을 바라보았다.

‘정말 괜찮을까?’

전에 강도를 만났다고도 한 터라 반은 그가 걱정되었다. 어느 간 큰 놈이 기사단장의 주택을 습격하겠느냐마는 세입자를 위해 경비라도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반은 업무가 끝난 뒤 라스퍼를 찾아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