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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그대에게(개정판)



<1부>


1화



프롤로그. 그녀


내 언니는, 아름답다.

언니는 아름다운 아버지와 아름다운 어머니 사이에서 특히나 더 아름다운 부분만을 골라 만들어진 것처럼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머리카락 한 올부터 발톱 끝까지 모두 아름다워 그야말로 눈이 부시다는 말이 뭔지를 알게 해 주는 사람이었다. 그 아름다운 외향에 비해 성격은 별로 좋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남들에겐 그것마저 언니가 가진 매력으로 여겨졌다. 그만큼 너무나 아름다웠다.

나는 천사 또는 여신에 비유되곤 하는 언니에 비해 지나치게 기가 센 인상이라는 평을 받곤 했다. 나도 부모님을 닮았다면 언니만큼은 아니더라도 꽤 유순한 인상이었을 텐데. 어째선지 내겐 부모님을 닮는 축복마저 빗겨 나갔다.

그럼에도 결국 가족이었으므로 나는 늘 타인의 시선에서 언니와 비교당해야만 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내 얼굴을 싫어하게 됐다. 거울을 보면 늘 불쾌함을 머금고 있는 내 얼굴이 더욱 못나 보였다.

그러니 내 성격은, 언니 이상으로 나빴다고 생각한다.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나란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참 별로였다.

아름다운 언니를 질투했다. 나는 비틀려 있었고 언니를 향한 부러움에는 어느새 가시가 돋아 있었다. 내 감정을 다스릴 수가 없었기에 언제나 우울증에 걸린 사람처럼 가벼운 웃음조차 짓지 못했다.

바깥에 나를 드러내는 것이 무서웠다. 모두가 언니와 나를 비교할 것이라는 피해 의식과 강박증에 가까운 심리 상태는 나를 방 안에 틀어박히게 했다. 참 못나기 짝이 없었다.

언니를 향한 마음은 늘 폭풍과 같았지만 실제로 언니와의 사이는 크게 나쁘지 않았다. 언니는 동생인 내게만큼은 상냥했다. 언니의 그런 면마저도 눈엣가시처럼 걸렸으나 특별한 잘못도 없이 언니를 상처 입히며 가슴속의 비틀림을 드러내는 짓은 할 수 없었다. 그러기엔 내 자존심이 너무 강했다.

우리의 사이는 필요 이상 나빠지지도, 좋아지지도 않았다.

“사랑해. 데본.”

“응. 나도 사랑해. 언니.”

언니의 애정 어린 말에 대답해 주면 언니는 꽃처럼 활짝 웃으며 나를 껴안았다. 그런 언니의 등을 나는 가볍게 쓸어 주곤 했다. 세상에 비친 우리 자매는 제법 사이가 좋아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연기는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희극 배우처럼 가면을 쓰던 우리가 서로에게 본색을 드러낸 건 한순간이었다.

잘 참여하지 않던 사교 파티에 나갔다가 한 귀족 남자를 만났다. 모처럼 언니가 없던 그 파티에서 그는 내게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그는 점잖았고 배려가 깊었으며 다정했다.

처음엔 나를 이용해서 언니와 잘 돼 보려는 수작인가 싶어 경계하고 다가올 때마다 단호하게 내쳤다. 하지만 그는 시간이 지나도 전혀 그런 낌새를 보이지 않았고 1년이 지나서야 겨우 의심을 버릴 수 있었다.

그 뒤로 그에게 빠져드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오다가다 몇 번 마주쳐 얼굴을 익히고 한두 번 데이트하다 보니 어느새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세상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아름답다 말하며 한결같이 사랑해 줬다. 시간이 더 흐르자 그는 반지를 건네며 내게 청혼했다.

행복했다.

청혼을 받아들인 뒤 그를 자주 집으로 초대했다. 약혼자로서 가족들에게 소개했고 그는 주로 내 방에서 담소를 나누다 돌아가곤 했다.

어느 날 언니가 물었다.

“그를 사랑하니?”

그렇다 답했다. 그때는 정말 언니를 질투할 여력도 없을 만큼 내 행복에 빠져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 대답에 언니는 그러냐며 아름답게 웃었다.

영원할 것 같았던 행복이 끝난 것은 그와 결혼하기 일주일 전이다. 그날도 그를 집에 초대했고 그가 오기 전 언니가 내 방을 찾았다. 우리는 차를 마시며 잠시 수다를 떨었는데 그 중간부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정신을 차렸을 때 언니는 이미 자리에 없었다. 나는 테이블에 엎어져 있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눈을 뜨자 벌써 두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놀라서 다른 생각 할 겨를도 없이 머리와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급히 방을 나섰다. 복도에서 마주친 고용인에게 그가 아직도 오지 않았냐고 물었다.

고용인은 그가 이미 한참 전에 왔고 나 대신 언니가 그를 맞아 줬다고 답했다. 그리고 언니가 내게 깨는 대로 자기 방으로 오라 했다고도 전했다. 어딘지 당황해하는 듯한 고용인의 모습에 이상함을 느끼긴 했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언니 방 문을 두드리자 들어오라는 나긋한 목소리가 들렸다. 한 번 더 차림새를 정돈한 뒤에 문을 열었고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그대로 할 말을 잃었다. 옷가지들이 바닥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언니와 그 사람이 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이게 뭐야.”

문 앞에서 한참이나 얼이 빠져 있다가 겨우 한마디 물을 수 있었다. 이게 뭐야. 슬립 차림의 언니는 천천히 일어나 침대 가에 걸터앉았다. 언니는 나를 보았다가 아직 잠들어 있는 그에게 눈을 돌렸다. 애석하다는 표정이었다.

“이 남자도 결국 어쩔 수 없었어. 데본.”

언니는 나를 향해 서서 눈을 똑바로 마주쳐 왔다. 그 모습이 죄악감이라곤 없는 악마 같았다.

“결국 그도 네 사랑이 아냐. 그냥 네가 속은 거지.”

“무슨 짓을 한 거야.”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목소리를 떨며 애써 더듬더듬 물었다. 참으로 볼품없었을 테지만 그것도 무던히 애쓴 거였다. 언니는 미묘하게 웃었다.

“왜 나만 무슨 짓을 했을 거라 생각하니?”

“그야!”

그간 잊고 있던 감정들이 순식간에 차오르며 눈앞이 시뻘게지는 걸 느꼈다. 그래서 언니를 독한 말로 상처 입히려 했다. 하지만 언니가 좀 더 빨랐다.

아마 나만큼이나 언니 역시 날 싫어했던 게 아닐까.

“그가 잠들기 전까지 뭐라고 했는지 아니?”

언니는 정사에 흥분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격정적으로 소리쳤다.

“아! 아―! 어째서 당신은 이리도 아름다운 거지? 아! 사랑해! 사랑합니다! 아아!”

언니는 마치 창부라도 된 양 허공을 향해 천박한 표정을 지으며 절정에 다다른 시늉을 했다. 그리고 금세 식은 얼굴로 돌변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는 나와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너를 떠올리지 않았단다.”

언니를 상처 입히려다 되레 호되게 얻어맞은 꼴이 되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극심한 답답함에 목을 감싸고 숨을 헐떡였다. 결국 분노가 참을 수 없을 만큼 차올라 터졌다. 나는 목구멍을 쥐어짜듯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아악!”

비참한 기분을 막을 수가 없었다. 살의가 참을 수 없이 피어올랐다. 비명을 듣고 달려온 고용인들이 아니었다면 분명 나는 언니를 죽였으리라. 화병을 든 채 달려드는 나를 고용인들이 막아섰다.

언니는 아무렇지 않게 돌아서더니 의자에 걸려 있던 숄로 어깨를 감쌌다. 머지않아 눈을 뜬 내 약혼자는 나를 보며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 얼굴에 스쳐 지나가는 죄책감이 가증스러워 들고 있던 화병을 언니가 아닌 그에게로 집어 던졌다.

날아간 화병은 그의 머리를 세게 때리며 깨졌다. 그의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렸지만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나는 온갖 증오를 담아 두 사람에게 소리쳤다.

“죽어 버려! 죽어 버려! 너희 같은 것들은 사람도 아냐! 죽어 버려!”

그가 찢어진 상처를 손으로 덮으며 신음했다. 언니는 말없이 창밖을 보고 있었다. 누구도 변명하지 않았다. 끝까지 오해라는 말은 없었다. 절망감에 얼굴을 감싸고 주저앉아 비명을 내질렀다. 정신이 나가 버릴 것 같았다. 나를 멈출 수가 없었다.

“아아아!”

소란은 머지않아 부모님이 들이닥치며 끝났다. 나는 내 방으로 끌려갔지만 내 마음은 아무것도 해소되지 않았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하고 괴로워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나는 그에게 선물로 받았던 머리 장식을 빼 들어 손목을 찍었다. 장식 끝은 송곳보단 뭉툭했지만 억지로 쑤시면 살을 찢을 만큼은 날카로웠다. 아무렇게나 찢어 벌린 상처에서부터 피가 마구 흘러내렸고 그제야 팔을 늘어뜨리며 머리 장식을 바닥에 버렸다.

울음이 그쳐지지 않았다.



1. 침닉되다


눈을 뜨자마자 절망했다. 한심한 나는 자살마저 어설펐고 다시 현실로 내던져졌다.

“데본! 데본! 정신이 좀 드니?”

어머니가 우는 모습을 보면서도 죄책감보다는 원망이 앞섰다. 왜 나는 언니처럼 태어나지 않은 건가요. 내가 언니보다 아름답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는 생각만 들었다. 한없이 이기적이고 꼬였다는 것을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치미는 못난 생각을 멈추지 못했다.

“괜찮으냐.”

아버지의 얼굴에도 걱정이 비쳤지만 외면했다. 아무런 대꾸도 않고 붕대 감긴 손목을 들어 바라보았다. 정말 한심해. 멍청하고 나약한 나를 욕하다 문득 기분 나쁜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부모님 뒤로 언니가 보였다. 언니는 방문에 등을 붙이고 서선 바닥을 쳐다보고 있었다. 불안한 듯 연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에서 또 울화가 치밀었다.

“나가…….”

“데본?”

부모님이 의아한 표정으로 내 눈길을 따라 뒤를 돌아보았다. 두 분은 이내 화들짝 놀라더니 금세 내 눈치를 보았다.

“헤븐……! 여긴 왜…… 당분간 얼굴 비치지 말라고 했잖니!”

어머니는 화가 난 듯했지만 내가 있어 그런지 최대한 목소리를 낮췄다. 내 호흡은 눈에 띄게 거칠어져 목에서부터 바람 통하는 소리가 났다. 결국 어머니의 말을 끊으며 소리쳤다.

“나가! 나가아! 아악! 나가! 나가! 나가!”

“데본! 데본! 진정해라. 헤븐! 얼른 나가지 못하겠느냐!”

아버지가 들썩이는 내 몸을 침대에 누르며 언니에게 소리쳤다. 어머니는 손수건으로 입가를 가린 채 눈물만 흘렸다. 언니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지만 아버지의 다그침에 벌렸던 입을 도로 다물었다. 언니는 입술을 물었다가 풀기를 반복했다.

“죄송해요.”

언니는 그 한 마디만을 남기고 급히 방을 나갔다. 나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던 언니가 마치 죄책감이라도 가진 사람 같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을 신랄하게 비웃으며 부정했다. 설령 언니가 내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한들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단지 괴로웠다. 언니로 인해 속절없이 무너지는 내가 너무나 비참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언니라는 그림자를 절실하게 벗어나고 싶은데도 벗어나지 못하는 내가 더 싫고 미워서 손톱을 세워 난도질하듯 얼굴을 긁었다. 괴로움을 풀어낼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아아아!”

그러지 말라며 내 손을 붙잡는 부모님에게 발버둥을 쳤다. 한참 동안 진을 빼고서야 힘없이 늘어져 버린 날 부모님이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 눈길조차 견딜 수가 없어서 제발 나가 달라고 소리치고 짜증을 냈다.

간호할 고용인들만 두고 부모님은 쫓기듯 방을 나갔다. 뒤집혀 버린 속을 달랠 길이 없어서 울음만 터뜨렸다.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망연한 흐느낌은 나도 듣기 싫었지만 그쳐지질 않았다.

이 상처가 결코 치유되지 않을 거라고 단정했다. 이 아픔을 딛고 다시 웃는 내 모습 같은 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아파서, 전부 버리고 싶었다. 그와 만났던 사실뿐만 아니라 언니의 동생으로 태어난 것 자체를 지워 버리고 싶었고 내가 나인 것 자체를 버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