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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발코니로 올라간 민혁은 서둘러 로프를 회수하고는 자신이 올라온 흔적을 지웠다.

그러고 나서 조심스럽게 창문에 손을 가져다 댔다.

다행히도 2층의 창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창문을 타 넘기 전에 민혁은 손전등으로 방 안을 조심스레 비춰보았다.

마침 아무도 없는 빈방이라 들킬 염려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방심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들어간 후, 온 감각을 개방하며 하나씩 방을 수색해 나갔다.

고로롱―

그때, 건너편 방에서 미약하게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민혁은 살금살금 다가가서 방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그런 후에 슬쩍 손전등을 비춰서 자기가 찾는 목표인지를 확인했다.

역시나 곱상하게 생긴 양아치 놈이 맞았다.

잔뜩 술에 취했는지, 방 안은 놈이 내뿜는 술 냄새로 가득했다.

저 정도라면 도중에 잠에서 깨지는 않으리라.

민혁은 한결 마음을 놓으며 고양이 같은 걸음으로 천천히 그놈에게 다가갔다.

‘어휴, 술 냄새. 도대체 술을 얼마나 처마신 거야?’

놈은 술에 떡이 되어 옷도 벗지 않은 채 자고 있었다.

민혁은 슬쩍 손을 내밀어 툭툭 건드려 보았다.

하지만 놈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듯,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휴~”

나지막이 한숨을 내뱉은 민혁은 바로 다음 행동에 들어갔다.

퍽!

손날로 뒤통수를 힘껏 내려치자 놈은 잠깐 몸을 들썩이더니, 곧 몸을 축 늘어뜨렸다.

민혁은 로프로 손과 발을 단단히 묶고 입에는 재갈을 물렸다.

특전사 시절에 습득한 포박술을 이렇게 써먹게 될 줄은 민혁도 미처 생각지 못했다.

이제 놈이 정신을 차린다 해도 할 수 있는 것은 의미 없는 몸부림이 전부일 것이다.

“끙차!”

민혁은 놈을 어깨에 들쳐 메고는 조심스레 방을 빠져나왔다.

복도나 거실에는 불이 꺼진 상태 그대로였다.

민혁은 조심스럽게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갔다.

집 안에는 놈을 제외하고 아무도 없는 것인지 별다른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민혁은 혹시 몰라 집중을 흩트리지 않았다.

이윽고 현관까지 내려온 민혁은 놈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고는 아주 천천히 현관의 문을 열었다.

열기를 품은 바람이 순간 들어오며 집 안의 공기를 환기시켜 주었다.

민혁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놈을 다시 어깨에 들쳐 멨다.

“끙차!”

자신도 모르게 작은 신음 소리가 나왔다.

정원으로 나온 민혁은 현관문을 조심스럽게 닫았다.

이제 누구도 집 안에서 벌어진 일을 눈치채지 못하리라.

대문만 넘으면 오늘은 일은 모두 마무리되는 셈이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주변을 살폈다.

어두운 골목에는 아무도 없었다.

시간이 늦은 터라 주변의 집에서도 흘러나오는 빛은 한 점도 없었다.

민혁은 놈을 자동차 뒷좌석에 구겨 넣었다.

“아휴~ 뚱뚱하지도 않은 놈이 꽤나 무겁네.”

운전석에 올라탄 민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역시 몸이 달라졌어. 며칠 전만 해도 이 정도 움직임은 어려웠을 텐데, 지금은 숨도 안 차네.”

나지막이 독백을 내뱉은 민혁은 시동을 건 후 천천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첸나이 시내에서 돌아오는 데는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심야인 탓에 마주치는 차도 없고, 혹시라도 목격자는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무사히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온 민혁은 건너편에 자리한 건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덜컹!

약간은 큰 소리와 함께 나름 육중한 철문이 열렸다.

민혁은 불을 켜서 안을 살펴보았다.

원섭이 말한 대로 창고 안은 깨끗이 비워져 있었다.

민혁은 차에서 놈을 끄집어내 다시 어깨에 들쳐 멨다.

쿵!

창고 바닥에 거칠게 내동댕이쳤지만, 그럼에도 놈은 깨지 않았다.

민혁은 창고 문을 굳게 잠근 후, 게스트 하우스로 걸음을 옮겼다.



원섭이나 아주머니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문을 열고 방으로 올라가려니,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웬일이지? 아직 누가 사무실에 있나?”

민혁이 살짝 열어보니, 원섭 선배가 사무실 소파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선배.”

민혁은 원섭을 흔들어 깨웠다.

그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는지 힘겹게 눈을 떴다.

“으응~ 민혁이냐?”

“저를 기다렸던 거예요?”

“기다리긴 무슨.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넌 올라가서 잠이나 자.”

“방에 들어가 주무세요. 여기서 자다간 허리 나갈지도 몰라요.”

“안 돼. 새벽에 싱가포르에서 손님들이 오기로 했거든.”

[거짓말!]

민혁의 머릿속으로 오랜만에 그 ‘음성’이 들려왔다.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 원섭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말과 달리 원섭의 표정에서는 민혁에 대한 걱정이 묻어 있었다.

그리고 무사히 돌아온 모습에서 안도하는 기색이 확연히 느껴졌다.

비록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세심하게 신경을 써주는 원섭의 마음이 새삼 고마웠다.

“알았어요. 저는 그럼 올라가서 잘게요.”

“민혁아, 깔끔하게 잘 처리했지?”

끝내 묻지 않을 수 없었는지, 원섭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그럼요. 내가 누굽니까, 대한민국 특전사 출신 강민혁 아닙니까.”

“객쩍은 소리 하지 말고 올라가라. 고생했다.”

민혁은 원섭의 따듯한 한마디를 뒤로하고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그래도 나름 긴장을 했던 건지, 일을 마치고 나니 피로가 몰려왔다.

간단하게 샤워를 마친 민혁은 그대로 침대 위에 몸을 던졌다.



다음 날 아침.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민혁은 일어나자마자 뒤뜰로 나가 가볍게 몸을 풀어주었다.

이제 아침 운동은 민혁에게 일상이 되어 있었다.

몇 년간의 직장 생활 동안 굳어진 몸이 다시 현역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운동을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가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을 때, 원섭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제대로 잠을 못 잔 듯 얼굴이 푸석푸석해 보였다.

“일찍 일어났네?”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그럼 다른 놈들까지 오늘 손 보게?”

“네. 그래야 마음이 편 할 것 같아서요.”

“으이구, 네 마음대로 하세요, 대한민국 특전사 사나이님.”

“선배님, 앞으로는 기다리지 마시고 방에서 편히 주무세요.”

“무슨 소리야? 싱가포르에서 오는 손님을 기다렸다는 말 못 들었어?”

“선배님, 거짓말을 하려거든 입술에 침이나 바르고 하세요.”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싱가포르에서 첸나이로 들어오는 비행기는 밤 열 시에 도착하거든요?”

“응? 그, 그래? 알고 있었어? 이상하다. 알 리가 없는데…….”

원섭은 겸연쩍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선배님, 내가 이곳으로 올 때 타이항공 항공편만 알아봤을까요?”

“아이고, 내가 그 생각을 못했네. 역시 후배님은 철저하시구만.”

“슬슬 이놈들이 올 시간이 됐네요. 전 손님맞이하러 나가볼게요.”

“그래. 대신 몸조심해. 다치지 말고.”

“걱정하지 마세요.”

민혁은 사무실 문을 향해 가다 말고, 뒤로 돌아 차렷 자세를 했다.

그러고는 원섭을 향해 거수경례를 올려붙였다.

“특공!”

“그래, 특공. 수고하라고.”



***



민혁은 창고에서 필요한 물품을 챙긴 후, 게스트 하우스로 들어서는 큰길가까지 걸어 나왔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약 250~300m 정도 떨어져 있는 큰길이지만, 트럭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협소했다.

민혁은 느긋하게 돌아다니며 주위에 떨어져 있는 큰 돌들을 모아 한 켠에 쌓아두었다.

드디어 양아치 놈들이 탄 자동차가 게스트 하우스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민혁은 풀숲으로 얼른 몸을 숨겼다.

양아치들이 탄 차량이 게스트 하우스 앞에 멈춰 선 것을 확인한 민혁은 돌멩이들을 도로 위에 듬성듬성 쌓았다.

그러고는 어젯밤과 마찬가지로 복면을 쓰고 손에는 장갑을 꼈다.

마지막으로 알루미늄 야구방망이를 손에 쥔 민혁은 길가에 숨어 놈들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약 10여 분 정도 지났을까.

양아치 놈들의 소형 자동차가 덜컹덜컹거리며 민혁이 몸을 숨긴 곳까지 다가왔다.

끼이이익!

순간, 자동차 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들리며 욕설이 터져 나왔다.

“어떤 개새끼가 돌멩이들을 길 위에 올려놓은 거야!”

양아치 중 한 놈이 자동차 문을 거칠게 열더니, 돌멩이가 쌓인 곳까지 다가왔다

“나다, 이 새끼야!”

그와 동시에 민혁이 비호같이 달려들며 다짜고짜 놈의 뒤통수를 노리고 방망이를 휘둘렀다.

휘익!

사납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이어…….

퍽!

수박 깨지는 소리가 마무리를 장식했다.

“크악!”

놈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길바닥에 고꾸라졌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경련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아 죽지는 않은 듯했다.

한편, 자동차에 타고 있던 나머지 두 명은 방금 전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돌멩이를 치우러 간 동료가 갑자기 튀어 나온 놈에게 얻어맞아 한순간에 뻗어버렸기 때문이다.

깜짝 놀란 둘은 차에서 얼른 튀어나와 트렁크에서 쇠파이프를 꺼내 들었다.

민혁은 두 놈이 차에서 내려서 쇠파이프를 들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과일을 먹기 전에도 두 사람쯤은 민혁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하물며 지금이야 상대가 칼을 든다 해도 두려울 게 없었다.

총이라면 사정이 좀 다르겠지만, 고작 쇠파이프 정도는 한 손으로도 감당이 가능했다.

민혁은 오른손에 쥔 야구방망이를 왼손 바닥에 가볍게 두드리며 놈들이 달려들기를 느긋하게 기다렸다.

그 태연한 모습에 겁을 집어먹었는지, 한 놈이 과장되게 욕설을 내뱉었다.

“이 개새끼야! 너 오늘 죽어봐라! 감히 우리를 건드려!”

그와 동시에 둘은 무질서하게 쇠파이프를 휘둘러 대며 민혁에게 달려들었다.

부웅!

민혁은 머리를 노리고 날아오는 쇠파이프를 가볍게 고개 숙여 피하며 풀스윙을 하듯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놈의 옆구리에 야구방망이를 쑤셔 넣었다.

퍽!

“크억!”

양아치 놈은 온몸을 비틀며 옆구리를 부여잡았지만, 이번엔 반대쪽 옆구리에 야구방망이가 작렬했다.

퍽!

“으악!”

결국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놈의 머리통 위로 마치 수박 깨기라도 하듯이 방망이가 내리꽂혔다.

딱!

“히끅!”

민혁에게 3단 공격을 허용한 놈은 그대로 눈자위가 돌아가더니, 스르륵 허물어지듯 바닥에 엎어졌다.

불과 10초도 되지 않을 만큼 짧은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앞선 동료가 너무도 허무하게 쓰러지자 홀로 남은 양아치는 악을 쓰듯 쇠파이프를 휘둘러 댔다.

휘익!

하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탓에 민혁에게 위협이 될 만한 유효타는 하나도 없었다.

민혁은 가볍게 뒤로 물러서며 놈이 하는 양을 지켜봤다.

고작 몇 번의 휘두름만으로도 지쳤는지, 쇠파이프의 속도가 확연히 느려졌다.

부웅!

깡!

민혁은 야구방망이를 휘둘러 쇠파이프를 날려 버린 후, 올려차기로 놈의 급소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커~억!”

놈은 그 순간 무릎을 꿇고 달팽이처럼 몸을 말면서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칠 민혁이 아니었다.

며칠 전, 자신이 당한 모습을 떠올린 민혁은 웅크린 놈의 등짝 위로 몽둥이세례를 퍼부었다.

퍽, 퍽, 퍽!

“억, 크악, 아악, 컥…….”

무지막지한 폭력에 놈은 정신을 잃으며 가랑이 사이로 노란 액체를 쏟아냈다.

세 놈을 골로 보내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분도 걸리지 않았다.

민혁은 두건을 벗으며 한숨을 토해냈다.

“어휴~ 더러운 놈. 여기서 오줌을 지리면 어쩌자는 거야?”

그러나 말과는 다르게 민혁은 전혀 거리낌 없이 세 놈을 차곡차곡 자동차에 욱여넣었다.

그런 후, 돌들로 어질러진 도로를 깨끗이 정리했다.

싸움의 흔적을 모두 지운 민혁은 앞서 곱상한 놈을 처박아둔 창고로 차를 몰고 갔다.

뺀질뺀질한 놈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 미동도 없었다.

민혁은 양아치 놈들을 차에서 꺼내 사지를 결박한 후, 재갈을 물렸다.

그러고는 사이좋게 한 곳에다 처박았다.

아마 정신을 차린다 해도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쿵!

육중한 지하실 문을 굳게 닫고 잠금장치를 꼼꼼히 확인한 후, 민혁은 차로 다시 돌아왔다.

이제는 이 차를 해결할 차례였다.



부르릉!

운전석에 앉아 키를 돌리자 부드럽게 시동이 걸렸다.

민혁은 게스트 하우스와 정반대 방향으로 차를 몰고 가며 주변을 살폈다.

“음~ 어디가 좋을까?”

30여 분가량 헤맨 끝에 아주 적당한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에 차를 세운 민혁은 트렁크를 열고 미리 준비해 둔 시너와 휘발유를 꺼냈다.

민혁은 우선 자동차 번호판을 제거했다.

그런 뒤에 시너와 휘발유를 잔뜩 뿌린 다음, 라이터에 불을 붙여 자동차 안에 집어 던졌다.

화르르륵!

시너와 휘발유를 잔뜩 머금은 자동차는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잘 타는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