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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혁은 신비한 과일을 먹고 난 후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하나하나 노트에 적어 나갔다.



― 언어 능력의 비약적 상승

― 거짓말 간파

― 지능 상승

― 외모 상승

― 활력 충만.



망가진 몸이 완벽하게 회복된 것은 둘째 치더라도 무려 다섯 가지 이상의 능력이 생겼다.

민혁은 신체 측정을 해볼 겸 간편한 옷을 입고 밑으로 내려갔다.

본격적인 운동에 들어가기에 앞서 가볍게 스트레칭을 해보았는데, 확실히 평소보다 몸이 가벼워진 걸 알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군대 시절보다 더욱 날렵해진 것 같아서 그 시절에 익혔던 특공무술을 시전해 보았다.

슈욱―

팟!

주먹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끊어 치는 주먹에 공기가 터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한창때의 동작보다 지금이 훨씬 자연스럽고 파괴력도 높아졌다.

전역을 하고 회사에 들어간 뒤로는 여유가 없어서 제대로 운동도 할 수가 없었다.

며칠 전, 비록 총의 위협에 굴복해 린치를 당하기는 했지만, 만약 지금과 같은 몸놀림이 가능했다면 절대 그렇게 쉽게 쓰러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창때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렇다면 역시 그날 먹은 과일이 원인이겠지.’

무술 시전을 끝내고 잠시 숨을 돌리는 찰나, 뒤에서 감탄성이 들려왔다.

“이야! 정말 대단해! 민혁아, 너 원래 무술을 배웠니?”

원섭 선배가 놀란 표정으로 말을 붙여왔다.

“아니요. 정식으로 뭘 배운 건 아니고… 몸이 찌뿌듯해서 군대에서 배운 걸 해본 거예요.”

“그러냐? 나는 네가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줄 알았다.”

“선배님도 참.”

“이야~ 몸매도 죽이는데? 근육도 죽이고…….”

“그래요? 선배가 봐도 멋져 보이나요?”

“응. 내가 봐도 반할 지경인데, 여자들이 너를 보면 아주 환장하겠다.”

“그래도 저는 남자는 절대 사양입니다.”

“하하하!”



딸깍!

운동을 마친 민혁은 원섭과 함께 사무실로 돌아와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따서 마셨다.

“크으~ 시원하다!”

“역시 맥주는 이 맛에 마시는 거죠?”

“…그런가?”

“선배님, 그런데 이렇게 장사 밑천을 까서 마셔도 돼요?”

“에이, 내가 아무리 돈이 없어도 500원이 없을라고?”

“네? 맥주 한 캔에 500원밖에 안 해요?”

“내가 밀매업자에게 공급받는 가격이 그래.”

“그렇게 싸요?”

“한국과 비교해서 싸 보이는 거지, 인도 물가에 비하면 결코 싼 가격은 아니야.”

“음, 인도 물가 수준이 어떤데요?”

“인도 사람들 하루 점심 값이 얼마인 줄 알아? 고작 4~50루피 정도야.”

민혁은 순식간에 환율 계산을 끝냈다.

“그럼 1,000원도 안 된단 말이에요?”

“아마 그럴걸?”

덜커덩!

원섭은 어느새 맥주 한 캔을 다 마셨는지, 빈 맥주 캔을 손으로 찌그러트리고는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딸깍.

그런 후에 맥주 캔 하나를 더 따서 벌컥벌컥 마셔 댔다.

민혁은 맥주를 마시면서 원섭의 표정을 자세히 살폈다.

심각하고 우울한 표정.

분명 뭔 일이 있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선배님, 무슨 고민 있어요?”

“응? 아니, 아무 일 없어.”

[거짓말!]

민혁의 머릿속에 거짓말이라는 음성이 울려 퍼졌다.

원섭은 지금까지 민혁을 대하면서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는데,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분명 민혁이 알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확실했다.

민혁은 원섭이 기분 상하지 않도록 의뭉스럽게 물었다.

“에이, 선배 얼굴에 ‘나 고민 있어’라고 써져 있는데요?”

“농담하지 마. 나 지금 심각하단 말이야.”

“거 봐요. 고민 있는 거 맞잖아요. 우리나라 속담 아시죠?”

“백짓장?”

“네.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어떻게 알아요. 그런데 미리 말씀드리는데, 돈 드는 거는 못 도와드려요.”

“하하, 내가 아무리 없이 살아도 고향 후배를 등쳐 먹지는 않아.”

“그럼 얘기해 보세요.”

잠시 망설이던 원섭은 현재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어렵사리 얘기해 주었다.

내용은 별거 없었다.

이곳, 뿌나말리에는 지역을 주름잡는 갱단이 있다고 했다.

그놈들은 이 지역에 있는 업소들에 매달 보호비 명목으로 일정 금액을 갈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오늘 아침에 금액을 두 배로 올렸다는 것이다.

“한 달에 얼마를 줬는데요?”

“2만 루피.”

“그럼 80만 원으로 올려 달라는 말인가요?”

“그래.”

“경찰들은 뭐라는데요?”

“그놈들도 똑같은 놈들이야. 단지 제복을 입은 조폭이라고 생각하면 돼.”

“경찰들한테도 보호 비용을 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술 파는 거 단속 무마 비용이지, 보호 비용은 아니야.”

“선배는 어떻게 하실 생각인데요?”

“그래서 고민 중이야. 게스트 하우스를 그만 둬야 할지, 아니면 보호비를 올려줘야 할지.”

“언제까지 결정해야 하는데요?”

“이번 달까지 답을 줘야 해.”

민혁은 맥주 캔을 찌그러트린 후,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그러고는 냉장고에서 맥주 캔 하나를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도저히 갈증이 가시질 않았다.

자신이 도와줄 방법이 전혀 없기에 더욱더 안타까웠다.



쾅!

방으로 돌아온 민혁은 애꿎은 벽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에이, 세상이 왜 이리 좆같냐!”



***



민혁이 세상을 향해 울부짖을 때, 아신과 락시미 회장, 그리고 예스민 내무부 장관은 첸나이 경찰서에 도착했다.

이들은 사제한과 스레얀, 수리야 등으로부터 성대한 영접을 받았다.

그런데 이들은 뭔가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표정들이 다소 어두웠다.

“외삼촌, 강민혁 씨는요?”

“으응… 급한 일이 있다고 해서 숙소로 돌아갔어.”

예스민은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부터 뭔가 잘못됐다는 눈치를 챘다.

그래서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사제한에게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사제한은 예스민의 눈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엉뚱한 곳을 쳐다봤다.

그 순간, 예스민은 어떻게 일이 돌아가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일단 자리를 옮기도록 하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VIP 응접실로 들어간 예스민은 자리에 앉자마자 차가운 시선을 날렸다.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한마디라도 거짓말을 하는 인간이 있으면, 절대 용서를 안 할 거야. 그러니까 모두 솔직하게 불어.”

대놓고 본성을 드러내며 협박을 가해오는 예스민이었다.

사제한을 비롯한 경찰 3인방은 추상과도 같은 예스민의 기세에 바짝 얼어붙었다.

사실 세 사람은 예스민의 추궁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전에 말을 맞춰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예스민 장관은 이들의 짬짜미를 귀신같이 알아채고 먼저 선제공격을 해온 것이었다.

“하하, 누나는 우리가 언제…….”

“어허, 이놈이! 여기가 집이니! 공사 구분 확실하게 못해? 애가 왜 이렇게 정신머리가 없어?”

본인 역시도 사제한을 동생 다루듯 하지만, 감히 거기에 딴지를 걸 만큼 간이 부은 이는 없었다.

당연히 사제한은 얼른 꼬리를 말았다.

“…죄송합니다, 장관님.”

“내가 네놈들이 말을 맞췄으리란 것을 모를 것 같아! 있는 사실대로 얘기해!”

“장관님, 저희가 첸나이에 있는 모든 CCTV를 뒤지다가 승합차에 대한 단서를…….”

“어허, 이게 자꾸 어디서 거짓말이야!”

예스민이 한눈에 거짓말을 간파하고는 강하게 질책했다.

“…….”

“안 되겠어. 너 말고… 수리야 국장.”

“네, 장관님!”

수리야 중앙수사국 국장은 바싹 얼어붙었다.

평소에도 그는 예스민과 자주 독대를 해봤기 때문에 지금 그녀가 어떤 심리 상태인지 잘 알고 있었다.

만약에 이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실수를 한다면, 자신은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당신이 얘기해 봐.”

수리야 국장은 두 손을 공손히 맞잡고는 마치 선생님에게 대답하는 학생처럼 조곤조곤 입을 열었다.

“사실 장관님의 생각대로 저희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데 병원에서 강민혁이 나타났다는 연락이 와서 서둘러 달려간 것밖에 없습니다.”

“병원에는 왜 왔다고 하던가?”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아가씨를 문병하고 치료 보증금을 찾으려고 들렀답니다.”

“그런데 왜 이 자리에 강민혁이 없는 거지?”

수리야 국장은 정말 괴로운 듯이 지금까지 벌어진 일에 대해 털어놓았다.

자신들이 어떻게 강민혁을 의심했고, 싸움이 붙었으며, 결국 화가 난 강민혁이 그냥 떠나 버린 일까지 모두 다.

“내 이놈의 새끼들을…….”

촤악!

예스민 장관은 컵에 담긴 물을 다짜고짜 사제한의 얼굴에 끼얹었다.

졸지에 물벼락을 맞은 사제한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여기서 잘못 말을 꺼냈다가는 진짜 목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제한의 불행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금껏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락시미 회장도 어이가 없다는 듯이 분노를 드러냈다.

“당신들은 정말 무능할 뿐만 아니라 염치도 없구먼!”

“…….”

“이거, 당신들을 죄다 잘라 버리지 않으면, 내가 화병 걸려서 못 살겠어.”

“…죄송합니다.”

“처남, 이 일이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로 끝날 일인가?”

“…….”

“정부 쪽 일이라 가급적 관여를 안 하려고 했는데,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는구먼.”

사제한은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으면서 연신 사과했다.

또 다른 의미로 슈퍼 파워를 갖고 있는 락시미 회장이었다.

아무리 사제한이 경찰 총수라지만, 그런 사제한의 목을 날리는 것은 락시미 회장에겐 일도 아니었다.

“…잘못했습니다, 회장님!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제 조카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을 사기꾼으로 몰다니, 그러고도 자네가 인도의 경찰 총수인가? 그러고도 국가의 녹을 먹고 있단 말이야!”

“여보, 진정하세요. 당신이 안 나서도 저놈들은 언제든지 잘라 버릴 수 있어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조금만 참아주세요.”

예스민은 불같이 화를 내는 락시미 회장을 겨우겨우 달랬다.

“만약에 당신이 일처리하는 것이 신통치 않으면, 그땐 내가 직접 나서리다.”

“네, 알겠어요. 미안해요, 여보.”

사제한은 속으로 이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런데 그때, 또 한 번의 미사일이 날아들었다.

“외삼촌, 정말 실망했어요. 제 목숨을 구해주신 분을 사기꾼으로 몰아가다니요.”

지금까지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아신이 원망스럽다는 듯이 사제한을 바라보았다.

“…아신아, 미안하다. 이 외삼촌이 뭐라 할 말이 없다. 이게 다 스레얀 총장이…….”

스레얀 총장은 갑자기 화살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당황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를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됐어요. 민혁 씨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그분이 제 생명을 구해준 것은 사실이잖아요.”

“…….”

“그러면 정중하게 대해줬어야죠. 그런 분을 사기꾼으로 몰아댔으니, 인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미안하다, 아신아. 내가 진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사제한은 미안하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수리야 국장.”

“네, 장관님.”

“강민혁이 머물고 있는 숙소가 어디라고?”

“네. 첸나이 외곽, 뿌나말리라는 지역에 있는 꽃송이라는 게스트 하우스입니다.”

“여기서 얼마나 걸리지?”

“차가 막히지 않으면 30분 정도면 충분한데, 지금이 퇴근 시간대라서 종잡을 수 없습니다.”

“준비해.”

“네? 무엇을요?”

“강민혁에게 가봐야 할 거 아냐.”

“네, 알겠습니다.”

“10분 내로 출발할 거야.”

그때, 철없는 사제한이 다시 또 끼어들었다.

“누나, 우리도 따라가요?”

“이놈아, 당연한 소릴 왜 해? 네놈들은 가서 무릎 꿇고 용서를 빌어야지!”

“…네, 알았어요.”

사제한은 한없이 풀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



아신 일행은 민혁을 만나기 위해 첸나이 외곽의 뿌나말리로 향했다.

“누나, 우리가 거짓말한다는 것을 언제 알았어요?”

“이놈아, 내가 너를 모르겠냐? 네가 말 더듬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 누나.”

“왜?”

“진짜로 강민혁이 비슈누 신을 만났을까요?”

“병원장이 확인시켜 줬다며?”

“암만 그래도 잘 믿기지 않아서 그래요.”

“세상에 기적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하는 거냐? 조금 후에 그 사람을 보면 확실히 알게 되겠지. 내가 그래도 사람 보는 눈은 있거든.”

사제한은 생각에 잠겨 있는 아신을 보고는 슬쩍 말을 걸었다.

“아신아, 너도 엄마 말에 동의하니?”

“네? 아… 저도 잘 믿기지는 않는데, 그게 아니라면 설명할 방법이 없잖아요.”

아신은 자신의 이마에 난 상처를 만져 보고는 말을 이었다.

“제 머리에 난 상처도 아직도 남아 있는데 훨씬 심하게 당한 그분에게 아무런 상처도 없다면, 정말 신의 가호가 분명하겠죠.”

“뭐, 딴에는 그렇다만…….”

“그리고 저는 그 사람에게서 사기꾼 같은 인상은 전혀 받지 못했어요.”

“하하, 아신아. 그건 네가 사람 볼 줄을 몰라서 그래. 자고로 사기꾼이란…….”

“이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예스민 장관은 다시금 사제한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놈아, 너는 그 사람에게 어떻게 사과할 것인가부터 궁리해. 괜히 쓸데없는 소리 늘어놓지 말고.”

“…알았어요, 누나.”

아신은 어둑어둑해져 가는 차창 밖을 바라보며 걱정스레 한마디를 흘려냈다.

“민혁 씨가 나를 얼마나 미워할까요? 정말 은혜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죠?”

예스민이 괴로워하는 아신의 머리를 조용히 감싸 안으며 다독여 주었다.

“미안하다. 이 어미가 너한테 뭐라 할 말이 없다.”

“애당초 그냥 나를 모른 척하고 지나갔으면 이런 일에 휘말리지도 않았을 텐데.”

“아신아…….”

“엄마, 그랬다면 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겠죠?”

아신은 슬픔이 북받치는지 그 큰 눈동자에 눈물이 살짝 맺혔다.

예스민은 손수건을 꺼내 조용히 닦아주며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아신아,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 감사를 전하자.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 같다.”

“네,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