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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혁은 아신의 진정한 신분을 알게 되어 정말 깜짝 놀랐다.

이건 마치 길가에서 우연찮게 돌멩이를 하나 주웠는데, 알고 보니 초대형 다이아몬드인 격이었다.

‘이야, 이건 정말… 그늘진 내 인생에 어쩌면 볕이 들 수도 있겠군.’

민혁은 문득 자신이 너무 속물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런 속마음을 결코 내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들에게 내가 멀쩡히 살아 돌아온 것을 어떻게 설명하지?’

짧은 시간 동안 맹렬하게 머리를 굴려봤는데, 마땅히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민혁은 그 순간 이들이 힌두교 신자라는 생각을 문득 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만약에 물어보면 인도 신화랑 엮어서 대충 둘러대야겠다.’

그때, 사제한 경찰총장이 주저주저하는 모습으로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커험, 민혁 씨, 사실 작은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뭐, 돈 들어가는 것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들어드리겠습니다.”

“그게… 민혁 씨를 우리가 먼저 찾았다고 하면 안 되겠습니까?”

민혁은 순간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정이 있다고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부탁이라는 것은 대개 하나를 받으면, 하나를 주어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따라서 무리한 부탁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들어주는 것이 현명한 처사였다.

방금 사제한 총수가 건넨 부탁은 민혁의 입장에서는 별거 아니지만, 경찰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부탁을 들어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혹시 이유를 말씀해 주시겠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희 전 경찰력이 동원돼서 민혁 씨를 찾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민혁 씨가 스스로 저희를 찾아온 것이 알려지게 된다면, 적어도 여기 있는 두 사람은 옷을 벗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네?! 고작 그런 것 가지고 옷을 벗긴단 말입니까?”

“우리 누나가 그렇게 무서운 분입니다.”

사제한은 예스민의 불같은 성정을 고려해 볼 때, 차라리 이렇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원만하게 일을 해결하는 방법이라 판단했다.

그녀는 지금까지 벌어진 일만으로도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다.

그런데 그 주인공이 제 발로 자신들을 찾아왔다는 것이 알려지면, 그 불똥이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면 절대 안 되지요. 제가 어떻게 해드려야 합니까?”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저희가 가장 좋은 시나리오를 짜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제가 어떻게 살아서 돌아왔는지부터 듣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래야 나중에 말을 맞추기도 쉬울 것 같은데…….”

“아차, 그게 훨씬 낫겠네요. 미처 그 생각을 못했습니다.”

순간, 사제한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뭔가가 맞지 않는다는 듯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더니 이윽고 놀라 민혁에게 물었다.

“어라? 그러고 보니… 민혁 씨 몸이 멀쩡하네요? 분명 동영상에서는 심한 구타를 당했는데…….”

그 의문을 이해한다는 듯이 민혁은 덤덤히 그때의 상황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제가 아신 아가씨를 구해준 일 때문에 보복 폭행을 당한 것은 다들 아시죠?”

사제한을 비롯해 원장실에 자리한 이들은 당연히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그놈들에게 얻어맞아서 거의 죽음 직전에 내몰렸어요. 뿐만 아니라 그놈들은 내가 죽도록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저를 던져 놓고 가버렸어요. 사실 저는 그때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던 것 같아요.”

원장실에 있는 사람들은 귀를 쫑긋 세워 저마다 민혁의 말에 집중했다.

꿀꺽.

긴장했는지 개중에는 마른침을 삼키는 사람도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문득 아침 햇살이 뜨겁다는 생각을 하면서 눈을 떴습니다. 여기서부터가 이상한 점인데요, 천천히 움직여 보니 제 몸이 멀쩡하게 돌아와 있었습니다.”

“네? 민혁 씨, 그게 다인가요?”

“아니요. 제가 쓰러져 있는 동안 이상한 꿈을 꾼 것 같아요.”

“…….”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지만, 하늘에서 커다란 독수리 형상을 하고 있는 커다란 새를 본 것도 같고, 팔이 네 개 달린 사람도 본 것 같아요. 그 새가 내게로 날아왔고요…….”

“그러고는요?”

“그 뒤로는 기억이 전혀 없어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제 몸은 그날 아침에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어요.”

사실 민혁조차도 자신의 상태를 확실하게 모르는데, 이들에게는 이 정도로만 설명해도 될 것 같았다.

얼핏 알고 있는 힌두신 이야기를 적절히 섞어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이 최선일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그때, 사제한이 민혁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민혁 씨, 혹시 힌두교에 대해서 아시는 것이 있어요?”

민혁은 올 게 왔다는 생각에 정색을 하며 시치미를 뗐다.

“아니요! 전혀요! 인도 사람들이 많이 믿고 있는 종교라는 것과, 소를 숭배한다는 것 정도밖에 몰라요. 진짜 몰라요.”

“음~ 정말 기적 같은 일이지만, 제가 보기엔 민혁 씨가 비슈누 신을 만난 것 같아요. 어쩌면 민혁 씨가 우리 아신을 구해준 것을 알고 그분이 도우셨을지도 모르죠.”

“진짜로요?!”

민혁은 일부러 과장되게 놀라는 척을 했다.

“우리도 민혁 씨가 폭행당하는 동영상을 봤어요. 그때, 피투성이가 되어 축 늘어진 채 승합차에 실려 가는 것까지만 확인했지만… 그때 온갖 흉기로 무진장 얻어맞았는데, 지금은 흉터 하나 없잖아요.”

“그럼… 그게 꿈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잖아요.”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말하는 민혁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내뱉고 있지만, 듣는 사람들로서도 이해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세히 생각해 보니, 꿈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다만, 민혁은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민혁 씨가 버려진 곳이 어디였나요?”

“저를 태워준 트럭 운전기사에게 물어봤는데, 마라카람이라는 곳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알았습니다. 우리도 마라카람 인근에서 찾았다고 할게요.”

“그래도 되시겠어요?”

“저희가 여기에다 살을 붙이면 더 이상해집니다.”

“그럼 저는 그곳에서 발견되었고, 이곳으로 실려와 검진을 받았다고 하면 되겠네요?”

“그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겠네요.”



민혁이 확인 차 검진을 받는 사이, 사제한과 스레얀, 수리야는 보호자 대기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자네들은 저자의 말이 사실이라고 보는가?”

“사실 여부를 살피기 전에 이게 말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먼저 따져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총수님은 진짜로 비슈누 신이 저자를 치료해 줬다고 보시는 겁니까?”

“물론 말이 안 되기는 한데, 신 말고 저렇게 완벽하게 치료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긴 하겠네요.”

“일단 검진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려 보자고.”



한편, 아신과 그녀의 부모는 전용기를 타고 첸나이로 향하는 중이었다.

“엄마, 아까 외삼촌이 뭐라고 했어요?”

“강민혁이라는 사람을 찾았는데, 건강하다고 하더라.”

아신은 그 말에 먼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음, 엄마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나도 이해는 안 되는데… 네 외삼촌이 거짓말을 할 리도 없잖니.”

“그래, 아신아. 첸나이 종합병원에 가보면 모든 것을 알게 되겠지.”

어쨌든 강민혁이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신은 신께 감사했다.

“그 사람한테 무슨 보답을 해줘야 할까요?”

“글쎄다. 일단 만나서 물어보자꾸나.”



***



민혁은 병원장실에서 검진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중이었다.

“이거… 비슈누 신이 민혁 씨에게 기적을 내려주었다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겠네요.”

“원장님, 그렇다면 민혁 씨의 말이 사실입니까?”

“그렇지 않고서는 설명할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이 검진 자료를 보면 아시겠지만, 현재 민혁 씨의 몸은 퍼펙트한 상태입니다.”

민혁을 제외한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놀라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사실 사람의 몸은 한 번 다치면 100% 완벽하게 회복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하다못해 몸에 작은 흉터라도 남겨놓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만신창이가 될 만큼 폭행을 당한 사람이 흉터 하나 없이 멀쩡하다는 것은 기적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현대 의학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흉터 하나 없다고요?”

“네. 갓 태어난 아기마냥 아주 깨끗합니다.”

“그럼… 원장님은 비슈누 신이 정말 현신했다고 보시는 겁니까?”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때, 스레얀 총장이 지금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전혀 엉뚱한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혹시… 강민혁 씨가 쌍둥이일지도…….”

“맞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겠군.”

사제한도 스레얀 총장의 말에 나름 타당성이 있다고 보았다.

그럴 만큼 민혁의 신체는 불가사의하다고 할 수 있었다.

사제한이 거들고 나서자 신이 난 스레얀 총장은 좀 더 상상의 나래를 펼쳐 나갔다.

“그렇다면 진짜 강민혁은 이미 죽었고, 다른 쌍둥이가 보상금을 받으러 왔을 수도 있겠군요?”

“흠, 논리가 조금 허접하지만, 전혀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야.”

“역시 좀 더 치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스레얀 총장은 이제는 한술 더 떠서 민혁을 의심하는 뉘앙스의 말을 늘어놓았다.

물론 스레얀 총장이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당사자를 눈앞에 두고 할 말은 아니지 않은가.

민혁은 눈앞에서 두 인간이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며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신은 순수한 마음으로 아신이 걱정되어 병원을 찾아왔는데, 자신을 마치 범죄자 취급을 하고 있었다.

괜히 이 자리에서 그런 취급을 당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민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사람들이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 말이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총수님, 화를 내는 것도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민혁의 항의에 스레얀 총장은 한발 더 나아갔다.

사제한이 편을 들어주자 신이 나서 자신의 상상력에 점점 더 살을 붙여간 것이다.

“뭐가 어째요?”

“막말로 당신이 강민혁이라는 증거가 있나?”

점점 상황이 이상한 쪽으로 흘러갔다.

이대로라면 완전히 범죄자로 낙인찍힐 판이라 민혁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

“내가 쌍둥이인지 아닌지는 한국 대사관에 물어보면 금방 나오는 거 아닙니까! 내가 당신들이 나를 찾는지 어떤지 뭘 안다고 사칭을 한단 말입니까!”

그제야 사제한 총수도 자신들이 너무 나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막말로 민혁이 사칭을 한다 해도 어차피 아신이 오면 바로 드러날 일이었다.

민혁의 기분이 더 상하기 전에 사제한은 얼른 수습에 나섰다.

“험험, 워낙 황당한 일이 벌어져서 스레얀 총장이 좀 오버를 한 모양입니다. 부디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민혁으로서는 참을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됐습니다. 더 이상 댁들하고 이야기 나누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그만 가보겠습니다.”

“네? 뭐라고요?”

“저를 못 믿는 사람들하고 무슨 대화를 나누겠습니까? 내가 낸 병원비나 되돌려 주세요.”

“…….”

“나참, 병원비도 됐습니다. 불우 이웃 도운 셈 치죠, 뭐.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민혁은 그 말을 남기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원장실에 있던 사람들은 민혁이 그냥 떠나 버리자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서로 얼굴만 바라보며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 한쪽에서 재미있다는 듯이 지켜보고 있던 아쇼크가 한마디를 꺼냈다.

“총수님, 강민혁 씨를 저대로 그냥 보내도 되는 겁니까? 예스민 장관님이 오셔서 지금 상황을 알게 되면 가만있지 않으실 것 같은데요?”

그야말로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발언이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제한은 허둥지둥 문을 열고 복도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민혁은 이미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사제한을 비롯한 사람들은 얼른 계단을 뛰어 내려갔지만, 민혁은 결코 기다려 주지 않았다.

지나가던 오토릭샤를 잡아타고는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었다.

사제한은 이 난감한 상황을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대형 사고가 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일단 급한 불부터 처리하고 뒷수습은 나중에 해야지.’

“수리야 국장.”

“네, 총수님!”

“강민혁을 얼른 뒤쫓아가서 숙소가 어딘지 확인해.”

“알겠습니다!”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온 민혁은 자신의 방으로 가서 침대에 몸을 던졌다.

생각할수록 화가 나고 분통이 터졌다.

“아니, 사람을 뭘로 보고. 에이, 생돈 100만 원만 날렸네.”

한참이나 씩씩대던 민혁은 온갖 불만을 쏟아냈다.

그러고 나자 겨우 마음을 좀 가라앉는 것 같았다.

이제 와 다시 밖으로 나가 포워딩 회사로 가기에는 기분이 내키지 않았다.

결국 민현은 인터넷에 접속해 회사에서 보내온 메일들을 살펴보기로 했다.

인터넷 속도가 너무 느려서 메일 하나 여는 데도 1분 이상 걸렸다.

정말 오늘은 어제와 달리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듯했다.

기껏 메일을 열어봤지만, 별다른 내용들은 없었다.

괜히 시간만 낭비한 꼴이었다.

특별히 할 일이 없어진 민혁은 TV를 켰다.

한국 방송은 YTM과 KBC World 두 개뿐이었는데, 하나같이 재미없는 프로그램만 하고 있었다.

그때, 문득 자신의 능력에 생각이 미친 민혁은 서둘러 다른 채널로 돌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모든 언어가 자연스럽게 해석되었다.

“이야~ 이건 진짜 대박 능력이네. 진짜 할 거 없으면 통역이나 번역 일만 해도 먹고살겠는데? 정말로 힌두신이 내게 내려준 선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