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첸나이 경찰서의 대회의실에서는 일대 광풍이 불어닥치고 있었다.

“당신들, 도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야!”

“죄송합니다, 총수님.”

“스레얀 청장.”

“네, 총수님!”

“테러가 일어난 지 24시간이 넘었는데, 그놈들이 누군지도 모른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게… 동영상이 너무 짧아서…….”

“에잉, 쓸모없는 것들.”

사제한은 고개를 돌려 40대 중반의 건장한 체격을 가진 남자를 바라보았다.

“수리야(Surya) 국장.”

“네, 총수님.”

“중앙 수사국(CBI, Central Bureau of Investigation) 요원들은 투입했나?”

“네. 약 300명 정도의 인원들이 투입되어 있습니다.”

“자네는 이번 테러를 자행한 놈들이 누구라고 생각하나?”

“저희는 자이칸트(Jaikant)가 개입되어 있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자이칸트? 그놈이 왜?”

“얼마 전, 저희가 놈들이 밀수하던 마약 운반선을 덮쳐서 압수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번 건은 그 일에 대한 보복인 것 같습니다.”

“그놈의 본거지가 여기였나?”

“네, 그렇습니다.”

“그럼, 그 잡것이 감히 내 조카한테 보복을 한 거란 말인가?”

사제한은 순간 두 눈에 분노를 담았다.

감히 범죄 조직 따위가 자신의 소중한 조카에게 보복을 하려 들다니.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절대로 대충 덮을 일이 아니었다.

“저희들은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음, 내 조카가 첸나이에 와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을까?”

“자이칸트의 정보원들이 이 첸나이 바닥에 수천 명 넘게 깔려 있습니다.”

“그럼 아신의 행적이 노출됐다는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사제한은 주먹을 불끈 움켜쥐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럼 이럴 게 아니라 빨리 자이칸트를 덮쳐 버리자고.”

“…….”

그러나 수리야 국장은 뭔가를 주저하면서 답을 하지 못했다.

그 답답한 모습에 사제한의 언성이 높아졌다.

“수리야 국장, 내 말이 말 같지 않나?”

수리야 국장은 잔뜩 긴장한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닙니다, 총수님!”

“그런데 왜 내 명령을 안 듣는 건데?”

순간, 대회의실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사제한의 성격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한 번 성질을 부려 대면 막을 사람이 없었다.

잘못 찍혔다가는 그날로 옷을 벗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아무도 나서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것도 위험했다.

사제한이 집단 항명으로 받아들여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목을 쳐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수리야 국장은 자신이 총대를 메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총수님, 자이칸트는 언제든지 덮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지만 지금은 강민혁이란 한국인을 먼저 찾아야 할 때입니다.”

“아, 그렇지. 내가 그걸 잊어버리고 있었네.”

“내부무 장관님께서 말씀하신 시간이 채 열 시간도 남지 않았습니다.”

“알았어. 그럼 지금 당장은 강민혁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자이칸트 조직에 대한 자료도 준비해 놓도록 해.”

“알겠습니다!”



***



한편, 자신을 찾기 위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민혁은 원섭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강도를 만났다는 말이야?”

“네, 그래요.”

“그런데 좀 이상하잖아.”

“뭐가요?”

“옷은 넝마가 됐는데, 상처 하나 없는 이유가 뭐야?”

“그건… 제가 지갑을 확 던져 주고 도망가다, 나무에 걸려서 그래요.”

“그럼 그 피는 뭔데?”

“피요?”

“그래. 그 옷에 묻은 피.”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어딘가 넘어졌을 때 묻었나 봐요.”

“흐음, 그렇단 말이지?”

원섭은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손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그럼 핸드폰은 어쨌는데?”

“그놈들한테 도망치다가 잃어버렸어요.”

“너, 지금 나한테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민혁은 순간 죄책감이 들었으나,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에이, 내가 선배한테 거짓말해서 뭐 하게요.”

“휴, 알았다. 믿어줄게.”

“아, 그리고 저 무지 배고파요. 씻고 올 테니까, 밥 좀 주세요.”

민혁은 그 말을 하고는 마치 도망치듯이 자신의 방으로 후다닥 뛰어 올라갔다.

그 모습에 원섭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참 이상하단 말이야. 거짓말이 분명한데, 표정을 보면 거짓말이 아닌 것도 같고… 헷갈리네. 할 수 없지. 믿어달라고 하니 믿는 수밖에.”



민혁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한숨부터 내뱉었다.

“휴우~ 죽을 뻔했네.”

원섭에게 사실대로 말해봤자 믿지 않을 것이 빤했다.

사실 스스로도 아직 100% 납득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이해시킬 수 있겠는가.

우선은 지금까지의 일을 찬찬히 정리해 볼 필요가 있었다.

민혁은 샤워를 하면서 자신의 몸을 다시 한 번 꼼꼼히 살펴보았다.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해진 몸이 여전히 신기했다.

‘아직까지는 나한테 나쁠 일은 하나도 없었지? 아니, 나쁘기는커녕 완전 초대박이잖아.’

시원한 물줄기를 머리에 맞으니 한결 정신이 개운해지는 기분이었다.

그 상태 그대로 민혁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곰곰이 따져 보았다.

아무래도 원인은 전날 밤에 먹은 이상한 과일이 분명했다.

그 과일의 정체는 알 수 없지만, 그 이후로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몸이 낫고, 알지 못하던 언어를 듣고 말했지.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아, 머릿속 목소리…….’

민혁은 자신의 변화를 꼼꼼히 되새기며 샤워를 마쳤다.

다 좋은데, 우선은 너무 배가 고팠다.



민혁은 허겁지겁 밥을 입안으로 퍼 넣었다.

그 모습을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던 원섭이 문득 입을 열었다.

“으음, 아무래도 이상해.”

“또 뭐가요?”

“왠지 어제보다 완전 잘생겨 보여. 뽀얀 피부하며, 눈, 코, 입, 모두 다…….”

“에이~ 선배도 참. 방금 샤워하고 나왔잖아요.”

“그런가? 음, 그 정도가 아닌 것 같은데… 그나저나, 너 여기 무슨 일로 출장 왔는데?”

“어? 내가 어제 얘기 안 했어요?”

“어제?”

“네.”

“어제는 네가 지숙이 동생이라는 말밖에 안 했어.”

“그래요? 하도 정신이 없어서 그랬나 봐요. 사실 제가 여기를 온 이유는요…….”

민혁은 자신이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원섭은 이야기를 듣는 내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민혁의 이야기가 끝나자 원섭이 한심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민혁아, 인도 사람들이 제일 즐겨 먹는 고기가 뭔지 아냐?”

“네? 그야… 닭고기 아니에요?”

“그런데 인도산 닭고기가 맛이 없다고?”

“…H 자동차 공장 사람들이 먹는다고 했어요.”

“으이구, 이 순진한 강원도 촌놈아!”

“…….”

“너희 회사가 사기당한 거잖아!”

“네?! 뭐라고요?”

“내가 보기엔 분명 소고기를 수출했을 거다.”

“면장이랑 인보이스, 패킹 리스트를 전부 닭고기로 발급했는데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어차피 수출하는 사람과 수입하는 사람이 짜고 치면 끝인데. 그리고 원래 정부에서는 수출하는 물건에 대해서는 큰 간섭을 안 하는 편이야. 오히려 수입하는 물건에 대해서는 까다롭게 굴지만.”

“…….”

“그렇지 않아도 신 사장이 지난 4월에 소고기를 수입할 테니까, 많이 사 달라고 한 적이 있었어.”

“그럼… 커튼치기를 했단 말인가요?”

“당연하지 않겠냐? 그게 신 사장의 특유 수법인데.”

원섭은 자신이 알고 있는 신경섭 사장에 대한 얘기를 민혁에게 얘기해 주었다.

이미 인도 내의 교민들에게는 유명한 내용이라는 말과 함께.

“…그럼 신 사장은 전부 다 뇌물을 써서 통관을 한단 말이죠?”

“그건 사실 우리도 마찬가지야. 이 나라는 뒷돈이 없으면 아무 사업도 할 수 없으니까.”

“그럼 이번 소고기는 왜 통관을 못 시키고 있는 건가요?”

“아마 세관에서 걸렸겠지.”

“돈이면 다 해결된다면서요?”

“그게 말이야… 인도에서 돈으로 해결 안 되는 게 딱 하나가 있는데, 그게 바로 종교야.”

민혁은 이게 뭔 말인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자신의 이마를 때렸다.

“맞아. 힌두교! 소고기!”

“그렇지, 바로 그거야.”

“아이고, 정말 좆 됐네.”

“이번 소고기 수입 건은 이렇게 시간 좀 끌다가 결국 폐기 처분이나 당하는 게 수순이야.”

“그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나는 없다고 보는데…….”

순간, 민혁은 그야말로 넋이 나가 버렸다.

이곳에 올 때만 해도 일말의 희망은 있었다.

잘만 하면 통관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물품이 소고기라면 얘기가 180도 달라진다.

원섭의 말처럼 압류당해서 폐기 처분당할 것이 빤했다.

그렇게 된다면 회사의 손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일을 바로잡아야 했다.

우선 소고기를 닭고기라고 속인 신 사장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만약 회사가 소송을 건다면, 어찌 물건 값을 회수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데머리지 비용과 스토리지 비용은 수출자인 LK상사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

두말할 것도 없이 지금 상황에서는 이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정답이리라.

“선배님, 폐기처분하는 데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글쎄다. 빠르면 6개월, 길면 1년 이상 걸릴 수도 있어.”

“햐~”

민혁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현 상황을 얼른 회사에 보고해야겠지만, 그러기에는 걸리는 게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 성민호 과장과 고인선 부장은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자신을 이곳으로 보내놓고 자신들의 개입 사실을 지워 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감사실에 투서를 집어넣을 수도 없었다.

수출 계약과 서류 작업 등 수출에 관련된 제반 업무를 자신이 진행해 왔기 때문에, 결국 모든 책임은 민혁에게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다 여우 같은 성 과장과 고 부장의 계획이었을 것이다.

자신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그 두 인간은 도망갈 길을 만들어놓았으리라.

계획 없이 이 인간들에게 덤벼봐야, 자신은 백전백패할 게 빤했다.

오늘에서야 일의 전모를 제대로 파악하게 되었다.

이제 와 자신의 멍청함을 탓해본들 이미 늦은 뒤였다.

이미 사건은 벌어졌고, 자신은 현재 인도 땅에 있으니 말이다.

민혁은 이왕 이렇게 된 거,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를 한두 개라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코너에 몰린 쥐는 못할 것이 없으니까.

우선은 회사에 잘 도착했다고 보고를 하기로 했다.

“선배님, 전화 좀 써도 되나요?”

“응. 사무실에 인터넷 전화가 있으니까, 그걸 써.”



민혁은 호흡을 한 번 가다듬은 뒤, 서울의 회사로 연락을 했다.

다행히도 자신과 친한 민수가 전화를 받았다.

[반갑습니다. 유라시아 무역 1팀의 조민수입니다.]

“민수야, 형이다.”

[어, 형? 어제부터 기다렸는데, 왜 이렇게 늦었어?]

“응… 전화기를 분실했어.”

[그럼 형한테는 어떻게 연락해야 하는데?]

“내가 전화를 할게. 그리고 급한 일 있으면 메일로 보내놓고.”

[알았어. 별일 없는 거지?]

“응. 내일 아침에 신경섭 사장을 만날 예정이야.”

[부장님께 그렇게 보고하면 돼?]

“그래. 그리고 그 두 새끼 조심해라.”

[알고 있어. 내 걱정은 하지 말고, 형 걱정이나 잘하라고.]

“그래. 바쁠 테니, 나중에 다시 통화하자.”

[알았어, 형.]

민혁은 원섭에게 밤에 술 한잔하자고 약속하고는 다시 방으로 올라갔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걸어 잠근 민혁은 지금까지 상황을 천천히 노트에 적어 내려갔다.



― 성민호와 신경섭 공모. 고인선 방조 또는 가담.

→ 성민호, 고인선 : 신 사장에게 리베이트(?) 받음.



― 나는 성민호에게 이용당함.

→ 실제 작업은 성민호가 다 함. 나는 서류 작업 업무만 수행.



― 컨테이너 첸나이 세관에 억류됨. 폐기가 예상됨.



― 엄청난 손해 발생 예상됨.

→ 수출 대금 : 30만 달러(소송 걸면 회수 가능).

→ 부대 비용 : 전액 회사 손실.



― 차후 시나리오.

→ 나 : 해고 또는 권고사직.

→ 성민호 : 피해 없음(증거 말소 예정).

→ 고인선 : 경징계 예상.



아무리 고민해 봐도 자신은 살아남기 힘들 것 같았다.

“에이, 시펄. 어차피 가는 길은 정해져 있네.”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졌다.

자신은 그저 열심히 일을 했을 뿐인데도 그 결과가 이렇게 나오니 새삼 분노가 쌓였다.

“아니지. 이대로 혼자 갈 수는 없지. 갈 때 가더라도 성민호, 그 새끼는 반드시 데리고 간다.”

민혁은 각오를 다지며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죽을 때 죽더라도 찍소리는 내봐야 할 것 아닌가.

“그럼 내일부터는 증거를 확보해야겠다.”

복수를 다짐하며 잠시 눈을 붙이는 민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