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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마취, 하겠습니다?”

하악!

“뭐? 마취하지 말고 그냥 하라고?”

설마. 그런데 내 해석이 맞았는지 녀석은 마취제의 기관 튜브를 삽입하기 위해 다가가자 이를 드러내며 콧잔등에 주름까지 만들어 냈다.

“미쳤어? 그러다 쇼크로 죽을 수도 있어.”

크르르릉…….

“그래 뭐,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아 죽든, 과다 출혈로 죽든.”

녀석과 실랑이를 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도 마취를 안 하는 만큼 조심할 필요는 있었다. 눈치를 보다 재빠르게 녀석의 사지를 묶기 시작하자 녀석이 하악대며 송곳니를 드러냈다.

“알아, 그래도 반사적으로 발길질을 하면 내가 바늘로 내장을 찌를 수도 있잖아. 놀라서 가위를 넣은 채로 봉합할지도 모르고?”

크르르르…….

끔찍한 소리 말라는 듯 목을 울렸지만 표범은 곧 얌전히 발을 내밀었다. 몸뚱이도 고정시켜야 하나 싶었지만 녀석이 상처를 누르는 정도는 제법 잘 참고 있기에 바로 수술을 시작해도 될 것 같았다.

다시 진료대에 알코올을 부어 소독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오늘 환축이 없어 진료대를 박박 닦으며 시간을 때웠다는 점이다.

녀석과 진료대를 얼른 유리벽으로 나눈 수술실로 밀어 넣은 후 나만 수술 준비실에 남았다. 아무리 닦아도 진료대는 멸균 유지가 되지 않는다. 오염된 채로 수술해야 하는 상황이 신경 쓰였지만 표범은 응급 환자였다. 그것도 남의 눈에 띄어서는 안 되는 특이한 종이다. 마음을 잡으며 제대로 손과 팔을 꼼꼼히 닦은 후 수술실로 들어갔다.

장갑을 끼고 수술 가운 팩을 뜯어 수술복을 입었다. 순서가 상당히 잘못되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나라도 최대한 멸균 상태를 유지해야 했기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고 새 장갑을 끼자, 흑표범이 크륵거리며 나를 흘겨보았다. 빨리 꿰매라고 닦달하고 싶은 모양이다.

“너 살리려고 이러는 거야. 수술 다 해 놓고 죽는 일은 없어야지.”

내가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녀석의 몸에 수술 포를 여러 장 덮어 주고 찢어진 부위 위에는 구멍이 있는 유창 포를 덮었다. 주기적으로 점검하지만 한동안 쓸 일이 없었던 반짝이는 수술 도구를 확인하고 표범이 누운 진료대 옆에 놓았다.

모든 준비를 마쳤지만 천장에 달아 둔 무영등을 켜자 불안감이 확 커졌다. 마스크 뒤에 숨어 크게 한숨을 쉬고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강한 빛을 찢어진 부위 위로 당겼다. 이제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나는 다시 수술용 장갑을 새것으로 갈아 끼우며 정신을 다잡았다.

깨끗하게 닦아 찢어진 피부를 눈으로 확인하고 부분 마취를 위해 주사기로 상처 부위를 찌르자 표범의 꼬리가 내 손목을 때렸다.

“죽고 싶지 않으면 수술 중인 수의사 건드리지 마.”

상처 부위는 깊었고 피도 너무 많이 흘렸다. 날카로운 것에 깨끗하게 찔린 상처가 아니라 무언가에 받쳐 안쪽에 충격을 입었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듯했다. 이놈처럼 심하게 다쳐서 온 야생 동물들은 트럭에 치여서 오는 게 대부분이라 곧 죽었다. 사람처럼 다량으로 수혈을 해 가며 수술한다면 살 가능성이 올라갔겠지만 여기는 가축 전용 병원이지 동물원 수의사실이 아니니까 표범에게 수혈할 것은 없었다.

국소 마취를 끝내고 녀석이 의식을 쥐고 있도록 했다. 일단 사람이었던 놈이니까 말은 통할 것이란 생각에 녀석에게 말을 걸며 다시 지혈을 했다.

“야, 고양이, 지금 자면 뒤져.”

크르르릉…….

눈을 꿈뻑이며 의식을 잃고 싶어 하던 흑표범의 머리가 벌떡 올라왔다. 내 덩치를 가지고 비웃었으니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고양이란 말에 이까지 드러내며 싫어했다. 같은 고양잇과면서 덩치가 작은 동물을 하찮게 여기는 꼴이 인간으로서 우스웠다.

피가 어느 정도 멈춘 것을 확인하고 흡인 카테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체액을 제거하자 꾸벅 졸려던 표범이 다시 눈을 떴다.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리면 잠이 와. 죽으려고 잠이 오는 거야.”

큰 소리로 협박하며 내장을 확인했다. 드러난 내장에도 약간의 상처가 보였다. 완전히 뚫린 것이 아니라 녀석이 살 가능성이 높아져 이번엔 안도의 한숨을 짧게 뱉었다. 환부의 모양을 보건대 예상대로 총이나 칼에 다친 상처는 아닌 듯했다. 그래도 만일을 위해 상처를 벌려 총알이나 쇳조각 등이 있는지 확인하는 동안 녀석은 목을 울리며 참아 냈다. 대단한 놈.

“혹시 총이었어? 총알을 꺼내야 봉합할 수 있어.”

녀석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으니, 그대로 봉합하기로 했다. 긴장으로 식은땀이 흘러 눈썹에 맺혀 몇 번이고 눈을 깜빡여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주저 없이 물컹한 내장에 꽂아 버린 니들은 뽑아낼 때 흔들렸다. 다행히 표범은 마취가 도는지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축 늘어져 있었다.

봉합을 반복하며 나는 점차 안정을 찾아 갔지만 매듭을 지을 때는 다시 긴장의 끈을 꽉 잡았다. 마무리에서 실수를 하면 가장 허무하게 생명을 떠나보내게 된다.

피가 묻은 장갑을 수건에 닦으려 했으나 이미 녹색 수건은 검붉은색이 되어 버렸다. 소독약과 표범의 피가 뒤섞인 액체가 바닥의 하수구 구멍으로 천천히 흘러갔다.

흡인을 해서 안쪽을 확인하면서도 쌕쌕대는 표범의 머리를 계속 확인했다. 녀석의 심박수가 낮아지고 있었다.

“자지 말라고 이 고양이 새끼야!”

크륵…….

화를 내기도 힘들 것이다. 활짝 벌어진 살갗으로 짧은 내시경을 넣어 안을 비추자 다행히 모두 건강한 색을 띠었다. 이대로 피부까지 봉합을 하면 된다. 하지만 나는 몇 번이고 속으로 되묻다가 또다시 떨어지는 심박수를 보았다.

“이, 이제 피부를 봉합한다. 아, 가위가 어디 있지? 뭐, 상관없나?”

크륵! 큭……!

기겁을 한 놈이 고개까지 들었다. 내가 실실 쪼개며 가위를 접었다 폈다 하자 녀석이 송곳니를 드러냈다. 확실히 사람이구나 싶었다. 말을 정확히 알아듣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손이 떨렸다. 자꾸 이 자리에 아까 누워 있던 남자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표범이다, 표범. 덩치만 큰 고양이.”

크르르르…….

짐승의 울음소리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녀석의 복근에 흉한 상처가 조금이라도 남지 않도록 꼼꼼하게 꿰맨 후 매듭을 만들었다. 길게 남은 봉합사를 가위로 잘라 냈다. 다시 소독약을 붓고 약을 바른 후 거즈를 붙여 수술을 마무리했다.

“끝난 거 아니야. 자면 안 돼, 고양아.”

붕대를 감기 위해 장갑을 벗고 녀석의 뒷발에 묶인 벨트를 풀어냈다. 녀석은 이제 내 말을 완전히 무시하기로 했는지 눈을 감았다.

“핥지 못하게 넥칼라를 씌워 줄까. 대형 사이즈가 어디 있더라. 소나 돼지가 금식할 때 쓰는 거라 표범에게도 잘 맞겠네.”

말을 알아듣는 녀석에게 씌울 필요는 없었지만 계속 말을 시켜야 했다. 녀석은 송곳니를 드러냈지만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슬며시 녀석의 뒷발을 만지작거렸다. 그제야 눈을 떴다. 검은 동공 주변으로 녹색이 도는 눈동자를 희번덕댔다.

“고양이 젤리 진짜 오랜만이다. 동물 병원엔 고양이 아프다고 찾아오는 분들이 거의 없어서 말이야.”

크르릉…….

사람 손을 타지 않은 고양이들은 이렇게 건드리는 걸 싫어하니까. 녀석은 제 발을 함부로 만지는 내게 싫은 티를 팍팍 냈지만 꼼짝할 수는 없었다. 그 덕분에 오랜만에 고양이 힐링을 받은 나는 혈압과 체온이 돌아온 녀석의 배에 붕대를 감았다.

“이제 자도 돼.”

녀석이 누워 있는 진료대를 다시 진료실로 옮긴 후 담요를 덮어 주었다. 녀석은 또렷한 눈으로 나를 좇다 꼬리를 살랑 움직였다. 고양이보다 훨씬 도톰하고 긴 꼬리를 주저 없이 잡아채서 조물거렸다.

“최고야, 이 촉감. 표범 털이 이렇게 부드러울 거란 생각은 못 했는데.”

짧고 윤기가 흐르는 검은 털은 고급스러워 보였다. 야생 동물이니 적당히 뻣뻣할 줄 알았으나 결대로 만져 주면 부드러웠다. 긴 꼬리를 내 뺨에까지 비벼 대자 녀석이 꼬리 끝으로 내 이마를 꾹꾹 눌렀다. 그래도 놓을 수 없어 황홀경에 빠져 가던 때였다.

“놔.”

꼬리와 귀를 제외한 모든 몸이 사람의 것으로 둔갑했다. 갑자기 등장한 조각 같은 얼굴과 그 위에 쫑긋 달린 둥근 귀를 하얀 전등 아래서 보고 있으니…… 현실감이 급격히 떨어진 귀여움에 입이 벌어졌다. 저게 수납이 가능했다니!

진한 검은 눈썹이 구겨지는 모습에 정신을 차렸다. 담요를 치우고 녀석의 상처를 확인했다. 감아 둔 붕대가 허리를 조이다 못해 풀리고 있었다.

“막 변하지 마. 상처 벌어지면 어쩌려고!”

다행히 수술 부위 위에 붙여 둔 거즈까지 움직이진 않았다. 다시 붕대를 감으려 했으나 남자가 상체를 일으키려 했다.

“안 돼, 누워!”

내가 말하기도 전에 남자는 늘씬하게 뻗은 허리를 구기다 다시 진료대 위로 쓰러졌다. 그것 봐라. 피를 엄청나게 흘려 어지러울 터였다.

“……배고프다.”

“수술 직후엔 아무것도 못 먹어.”

“나를 이렇게 만든 그 멧돼지의 숨통을 끊어서 먹어 치우고 내려올 것을.”

육식 동물로서 자존심이 적잖이 상했던 모양이었다. 꼬리까지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나 고양잇과의 사냥 성공률은 생각보다 낮았으니 상할 자존심도 없어야 정상이다.

“그랬다면 돼지고기가 터진 옆구리로 줄줄 나와서 황천길까지 흘리며 갔을걸?”

“……그 얼굴로 잔인한 소릴 잘도 하는군.”

“인간은 원래 지구상에서 가장 잔인한 동물이지. 잘 알잖아.”

차마 노인분들껜 대거리할 수 없었던 주둥이가 조금 풀리니 살 것 같았다. 남자는 상체만 진료대 위에 누워 긴 다리를 늘어뜨린 채로 눈을 깜빡였다. 검은 머리카락에 갈색 피부를 갖고 있으면서 눈동자는 짙은 녹색으로, 사람의 모습도 표범을 닮아 있었다.

외국에서 왔거나 혼혈인가. 하긴 우리나라의 표범은 예전에 멸절했으니까.

특히 속눈썹이 풍성하고 진한 반면 눈 밑은 밝은 편인 점이 고양잇과의 눈과 같았다. 긴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 화를 내면 위협적으로 보일 듯싶었다.

만나자마자 수술을 해 버린 이 남자의 존재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말았다. 뒤늦게 호들갑을 떨기엔 늦었다. 게다가 남자는 뭘 물어보기도 전에 잠이 들었다. 아주 불편한 자세로.

긴 몸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간이 의자를 가져와 발을 올려 주었다.

“떨어져도 어쩔 수 없지. 재수술해야지.”

분명 잠이 든 것 같은데, 남자는 흠칫거리며 넓은 어깨를 웅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