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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섹시한 폭군의 비밀



서울 강남구 엘르호텔 본관 68층.

드높은 초고층의 마천루가 수많은 건물 사이에서도 독보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안의 모던한 침실.

한 남녀가 야한 오라를 발산하며 뒤섞여 있었다.

“하아. 더 해 줘요.”

여자의 교태가 더욱 붉게 달아올랐다. 입술과 입술 사이로 투명한 타액이 교차했다.

그녀는 지금 몸이 달아올라 미칠 것만 같았다. 자신의 기가 모조리 빨리는 듯한 느낌에 두 팔을 배배 꼬아 대다가 결국 남자의 목덜미를 콱 끌어안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표현이었다.

여자의 오른쪽 드레스 끈이 반쯤 자극적으로 흘러내렸다. 이불의 끝자락을 던지듯이 펼쳐 낸 그녀가 남자의 풀어 헤쳐진 와이셔츠를 격정적으로 마저 벗길 때였다.

“멈춰.”

서늘한 목소리가 여자의 귓가를 때렸다. 동시에 자신의 와이셔츠를 벗겨 내겠다는 의지 가득한 그녀의 손길을 우악스럽게 잡아 냈다.

인상을 찡그린 여자가 고개를 들어 올려 반문했다.

“왜?”

남자는 정이 없어 보이는 무감한 얼굴이었다. 오히려 그런 싸늘한 표정까지도 잘 어울려 여자는 자꾸만 타오르는 본능에 그만 잡히지 않은 다른 손을 들어 그의 은밀한 곳으로 돌진했다.

결국 더욱 표정을 굳힌 그의 손아귀가 여자의 팔을 거칠게 잡아 냈다. 그녀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 비음 섞인 소리를 흘렸다.

“내가 욕심나지도 않아?”

반드시 그를 눕히고야 말겠다는 욕망에 가득 찬 목소리가 붉은 립스틱을 타고 흘렀다. 하지만 그러기도 잠시.

“꺼져.”

“뭐……?”

남자의 딱딱한 말에 여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그러나 남자는 한쪽 눈가를 좁히고 삐딱하게 그녀를 쳐다보며 냉정하게 대답했다.

“꺼지라고.”

“너 지금 미쳤지?”

그녀가 매섭게 입을 떼며 그를 노려보았다.

“너 내가 누군지는 알고 이딴 대접 하는 거야?”

“모르면?”

남자의 조소가 담긴 대답에 여자가 앙칼지게 소리쳤다.

“이 바닥에서 나를 보려고 안달 난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사실 그녀의 말은 맞을지도 몰랐다.

나라를 주름잡는 정치계의 이름난 거목들부터 유명 연예인들까지 그녀를 하룻밤 품으려 줄 서 있다는 소문까지 돌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남자는 그것에 일절 흥미가 없다는 듯이 문 쪽을 보며 무뚝뚝하게 이름을 불렀다.

“강선호.”

“예.”

그의 목소리에 금세 한 남자가 반응하며 문을 열었다. 블루 나이트의 단색 슈트 차림을 한 강선호는 이 상황이 매우 익숙한 듯이 기계처럼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남자는 자신을 쏘아보는 여자는 더 이상 쳐다보지도 않으며 강선호에게 냉철하게 명령했다.

“끌어내. 갖다 버리든지.”

“알겠습니다.”

“하. 어이 털리네?”

여자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보이다가 이내 헛웃음을 띄우며 눈가를 확 구겼다.

“야, 다니엘!”

다니엘이라고 불린 남자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너 내가 가만 놔 둘 줄 알아?”

순간의 사태는 짜 맞춘 듯이 흘러갔다. 머리를 세련되게 치켜올린 강선호가 다가와 여자의 팔목을 단숨에 낚아챘다.

“나오시죠.”

“이거 놔!”

반항하듯이 눈살을 찌푸리고 이를 악다물며 다니엘을 노려보던 여자가 끝내 강선호의 팔을 뿌리쳤다. 드레스 끈을 고친 그녀가 입매를 비틀었다.

“이럴 거면 나 왜 부른 거야? 이런 식의 대접이 어디 있어?”

“나오시라고 말했습니다.”

강선호는 기어이 여자의 두 팔을 잡아 내고는 끌어냈다. 그녀는 끌려가면서 자신의 구두 두 짝을 간신히 한 손으로 캐치하고는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너, 고자 맞구나?”

“뭐?”

여자의 말에 침대맡에 기대앉은 다니엘의 눈이 가늘어졌다.

“세간의 VIP들이 널 뭐라고 부르는 줄 알아? 다니엘은 고. 자. 다.”

“그런 소문도 있었나?”

다니엘이 피식 웃으며 강선호를 쳐다보았다. 그의 되물음에 강선호는 움찔했지만 아무런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다.

“아. 잊고 있었군.”

그가 미간을 슬쩍 구기며 침대맡 금고에서 거액의 수표 한 장을 꺼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몸을 뒤척였다.

다니엘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가린 이불자락이 기다렸다는 듯이 흘러내렸다. 여자는 강선호의 팔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치다 말고 다니엘의 군살 하나 없이 탄탄한 몸을 보며 눈가가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어 살짝 벌어진 그녀의 입에 수표를 꽂아 넣은 다니엘이 비웃으며 대답했다.

“수고비치고는 너한테 좀 과할 거야.”

그녀는 순간 온순하게 입을 앙다문 채로 눈만을 밑으로 미끄러지듯이 옮겨 기어이 0의 개수를 목격하고는 움찔 떨었다.

“이거 놔! 내 발로 나갈 거야.”

다른 손에 든 구두 굽으로 강선호의 팔을 내리쳤음에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것을 지켜보던 다니엘이 한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놔줘.”

“알겠습니다.”

그녀는 성큼성큼 걸어가다 말고 문을 열며 옆으로 신경질적으로 눈을 옮겼다. 그곳에는 보기에도 야한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다니엘이 보였다. 살면서 겪어 본 적 없는, 황홀할 정도로 섹시한 그를 순순히 인정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더욱 싫어 여자는 앙칼지게 소리쳤다.

“네가 섹시하면 뭐 해? 어차피 고자인데.”

“생각은 자유지.”

“너, 이 바닥에서 얼굴 못 들고 다니게 만들어 줄 거야. 알아?!”

“그것도 자유고.”

“하. 진짜 어이없어.”

피식 웃으며 말하는 그를 노려보던 여자가 바람 빠진 소리를 내고는 문을 콰앙―! 닫았다.

“…….”

강선호는 죄라도 지은 듯이 눈을 땅 밑으로 처박고 있었다. 엄연히 자신의 실수였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여자는 키스만 한 뒤 돈을 받고 조용히 나갔어야만 했다.

“강선호.”

“예.”

강선호는 곧 이 남자의 살갗을 파고드는 말을 억지로 귓가에 박아 넣어야 할 것이라 강렬하게 직감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너라도 있어서 다행이야.”

“……?”

강선호는 숙였던 고개를 슬쩍 들어 올렸다. 다니엘이 피식 웃고 있었다.

“별말씀을요.”

강선호의 두 눈이 약간의 떨림을 안고 흩어졌다. 다니엘이 이토록 따뜻한 말을 해 준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어안이 벙벙했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만 같은 냉혈한이 저런 웃음을?

문득 강선호의 눈가가 흔들렸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다니엘은 남자가 보기에도 섹시한 붉은 기를 잔뜩 풍기고 있었으니까.

그는 그 자체만으로도 색기가 넘쳐흘렀다.

머리칼은 암흑천지였지만 그 안에서도 붉게 빛났다. 적당한 길이의 가르마는 이마 한쪽 끝에 머물러져 있었다.

조막만 한 얼굴은 그렇다 치더라도 눈매는 고고하게 하늘 위로 치켜 올라가 있었고, 중력을 거스르는 코는 서구적으로 오뚝했다. 눈동자는 최고급의 파란 에메랄드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했다.

입술은 또 어떤가?

고집스럽게 다물려진 그의 입술은 매끄러운 직선을 나타내고 있었다. 당장 저 입술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확인하고 싶을 정도로 묘한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그중에서도 뚜렷한 그의 매력은 모성 본능을 일으키는 그만의 마성의 눈빛이었다. 어딘가 모르게 심연의 본능을 자극하는 그의 눈은 슬픔을 진득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그런 그가 반나신으로 푸른 달빛을 받아 조각처럼 서 있었다.

“강선호.”

강선호가 물끄러미 쳐다보던 시선을 서둘러 거두고는 익숙한 듯이 대답했다.

“양주, 가져올까요?”

“역시 넌 너무 나를 잘 안다니까.”

다니엘이 피식 웃었다.

“알겠습니다.”

그가 물러나자마자 다니엘은 강선호에게 짧게 눈짓하고는 버릇처럼 양주잔을 가져와 남은 액체를 벌컥 마셨다. 목울대가 탐스럽게 일렁거렸다.

그는 문득 강선호가 자신의 사람이라는 것이 꽤나 위안이 되었다.

자신에게 있어서 그는 유일한 제 편이었다. 또한 다니엘의 치부를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의 치명적인 약점은 이것이었다.

키스하지 않으면 산 사람을 마구 물어뜯어 버릴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은 치명적인 저주였다.

또한 그 저주를 남기고 간 한 명의 인물이 떠오르자마자 다니엘은 이를 바득 갈았다.

“반드시 찾아낸다.”

사람이 싫어 죽었던 그였다. 죽음 직전의 기억마저 생생하게 기억났다. 오히려 때 이른 안식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여기던 비열한 만족감에 몸서리까지 쳤던 것이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었다.

그런데 웬 이름도 모르는 사악한 마녀가 살린 것이었으니 그 헤아릴 수 없는 분통이 어찌나 크던지.

처음에는 다시 죽으려 목을 매달거나 무작정 바다로 뛰어들기도 했지만 아무런 고통조차 느낄 수가 없었다. 죽는 것 또한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는 미칠 듯한 심정이었다.

더군다나 절벽에서 뛰어내리면 곧 새로운 살이 재생되는, 웃기지도 않는 저주를 깨닫고는 허탈함에 뜬눈으로 서서 밤을 지새우기도 했었다.

단 하나 건진 것은 그녀가 놓고 간 알 수 없는 활자들이 담긴 책 한 권이었다.

다행인 것은 좀비가 되어 깨어났을 때 총명했던 머리는 어떤 이유에선지 그대로 유지가 된다는 점이었다. 덤으로 인간의 5배에 달하는 신체적 능력을 얻게 된 것도 추가로.

아직도 잊지 못한다. 묘지 관리인인 스튜어트가 잠에서 깨어나 자신을 보며 우스꽝스럽게 엉덩방아를 찧었다는 사실을.

그 후에 알음알음 위조 신분증을 만들고 돈으로 진짜 신분을 사기에 이르렀다. 지금은 전 세계 58개국에 엘르호텔을 가진 명실상부 호텔 갑부였다.

엘르호텔을 지금껏 키운 이유는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돈이 많아지면 그녀를 더욱 손쉽게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 때문이었다.

물론 더는 그녀를 볼 수 없었다. 돈으로 사람을 시켜 그렇게 찾았는데도 감쪽같이 땅으로 꺼져 버렸던 것이다. 아니면 증발했든지.

한국이라는 나라가 벌써 자신이 돌아다닌 지 33번째 나라라는 것을 다니엘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웃긴 점은 이곳이 꽤나 친숙하다는 점이었다. 흥미로운 나라였다. 철새처럼 지내 왔던 그가 어언 2년째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으니까.

덕분에 기존에 두던 비서를 자르고 강선호까지 채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사람을 혐오하는 다니엘로서도 믿을 수 있는 남자였다.

“가져왔습니다. 임페리얼 로얄 24년산입니다.”

마침 강선호가 50미터는 걸어가야 있는 최고급 진열대에서 양주를 가져와 건넸다.

“놓고 가.”

“예.”

다니엘은 시선조차 주지 않으며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강선호는 이런 일이 일상다반사였는지 금세 반대쪽으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아.”

문을 열기 전 강선호의 멈칫하는 신음이 들렸다.

“오늘 로엔그룹의 김로하 이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오셨습니다. 급한 일이 있으니 연락 달라고요.”

“연락?”

다니엘은 뒤돌아보지 않으며 시큰둥하게 물었다.

“예.”

“알았어. 내가 따로 연락하지.”

“네, 그럼.”

강선호가 문을 닫고 나가자마자 다니엘은 그제야 그가 나간 문을 슬쩍 눈짓하고는 양주병을 들었다.

잔을 소파 한구석에 던진 그가 병을 들어 입안으로 털어 넣기 시작했다.

“취하지도 않는 몸이라니.”

다니엘은 씁쓸하게 웃으며 무식하게 반쯤 비운 양주병을 애닐린 탁자에 느릿하게 내려놓고는 소리 나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매일 밤이 되면 사람을 물어뜯고 싶다는 충동을 이기기가 힘들었다. 다행이란 점은 여자의 타액으로 그것을 어느 정도 무마시킬 수 있다는 거였다.

하루마다 여자의 입술을 취해야만 살 수 있다는 저주를 다니엘은 스스로도 매우 혐오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미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지.”

그 이유 때문인지 전 세계적으로도 이슈를 몰고 다니는 다니엘이 매일 밤 여자의 입술을 탐하고 다닌다는 소문은 세간에 공공연하게 돌고 있었다.

그는 어느샌가 색을 밝히는 남자로 명성이 자자했다.

“싸구려 인간들이 내뱉는 소문 따위야.”

그는 피식 웃으며 한쪽 손가락으로 자신의 아랫입술을 야하게 쓸었다.

문득 휴대폰을 들어 올린 그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은 몇 초도 안 되어 금세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 다니엘! 어디 숨어 있다가 지금 연락했어?

그는 로엔그룹의 명함뿐인 이사를 달고 있는 김로하였다.

전형적인 재벌 2세의 낙하산 인사로서 쓸모없는 철부지 인간.

손만 뻗으면 깊숙이 한가운데에 감춰져 있는 심장을 꺼내 버릴 수도 있는 나약한 인간을 멀리하는 다니엘이지만 때로는 예외적인 부분도 존재했다.

주변과의 왕래와 교류가 너무 없어도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다니엘은 잘 알고 있었다. 때로는 과감하고 또 공격적으로 사람을 만날 필요성이 있다는 것까지도.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는 신비로운 이미지가 잔뜩 박혀 있는 남자였다. 오죽하면 다니엘을 보는 날에는 그날 복권을 사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고 있었으니까.

다니엘은 기억 속에 있는 김로하의 이미지를 떠올리고는 건성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 급한 일이 있어서.

“급한 일?”

다니엘이 침대 끝에 앉아 한쪽으로 삐딱하게 고개를 늘어뜨리며 휴대폰을 귀에 바짝 갖다 댔다.

― 우리 친구들이 자꾸 너 보고 싶다고 성화지 뭐야. 호텔 왕을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삽시간에 눈동자가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난 또 뭐라고.

아마도 철없는 재벌가의 자제들이 자신을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관심 없어.”

― 그 잘난 얼굴로 잠수 타는 거 아깝지도 않아? 내가 네 얼굴이었으면 이미 전 세계 여자들 다 유혹하고 다녔어.

별 영양가 없는 대답들. 더군다나 술까지 마셔 혀 꼬인 말투다. 다니엘은 거슬린다는 듯 무감정하게 대답했다.

“끊는…….”

그때였다.

― 와 주면 우리 로엔그룹이 가진 호텔, 너한테 매각할게.

“뭐?”

갑작스러운 제안에 그의 가늘어진 눈가가 살짝 커졌다.

로엔그룹이 가진 호텔이라면 강남의 노른자위 땅에 있는 곳이었다. 업계에서 영업 잘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곳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곳을 왜?

― 이번에 매각처를 구해 봤는데 영 구미에 당기지 않더라고, 그 순간 네가 떠올랐고. 어때? 그 호텔, 가지고만 있어도 미래적인 가치는 설명하지 않아도 네가 더 잘 알 텐데.

은근슬쩍 말꼬리를 잡아당기는 모양새에 다니엘의 눈가가 실룩였다. 침대맡에 있는 새 양주잔을 집어 들어 빙그르르 돌린 그의 입가 한쪽이 비틀어졌다.

로엔그룹은 한국보다도 중국에서 더 유명한 화장품 회사였다. 이번에 야심차게 준비한 유기농 화장품 브랜드를 한류 스타들까지 잔뜩 섭외해 일을 벌여 놓았었는데, 문제는 그 후였다.

국가 간의 은밀한 분쟁이 생겨 이번 중국에서의 한국 제품을 향한 불매 운동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 덕분에 출시하자마자 직격탄을 맞은 로엔그룹의 화장품 자회사 레이블은 휘청거리게 된 것이겠고.

긴급하게 자금 수혈을 해야만 하는 그들은 로엔그룹의 초대 창설자였던 김병식 회장이 그렇게나 팔지 말라고 목청을 높였던 로엔글로벌호텔을 매각해야만 하는 처지에 몰린 것이다.

“귀찮은데.”

다니엘은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대답했다. 물론 말꼬리를 살짝 흐리는 것은 덤으로.

― 아, 싫으면 말고!

“잠깐.”

그는 미간을 은근하게 문지르며 웃었다.

“이번에 출시된 유기농 화장품, 남성용으로 한 박스 갖다주면 생각해 보고.”

농담을 덧붙여서.

“물론, 로엔글로벌호텔의 가계약은 오늘 클럽에서 진행하기로.”

계약을 이끌어 낸다.

― 진짜 못 말리는 인간, 알았어. 내가 졌소!

빙고.

다니엘의 눈매가 확신으로 가득 찼다.

돈을 벌어들이는 것은 일종의 취미였다. 죽지 않는 신체로 무료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다니엘의 일종의 유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돈은 많을수록 좋다.

“거기가 어디라고?”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난 후에 가차 없이 휴대폰을 끊은 다니엘의 입가가 냉소를 자아냈다.

그는 느릿하게 일어나 제 몸에 맞춰 제작된 백색의 슈트를 걸쳤다. 185센티를 자랑하는 그의 큰 키에 맞게 라인은 구김조차 없이 금세 환상적으로 맞추어졌다.

그러고는 수없이 많은 최고급 시계 케이스 진열장으로 가 1년에 단 하나밖에 생산되지 않는 장인의 수제 시계를 팔목에 걸쳤다.

다니엘은 거울로 다가가 옷매무새를 살짝 고친 후에 무표정하게 벽면에 걸려 있는 비서용 수화기를 집어 들고는 감정 없이 입을 열었다.

“강선호.”

― 예.

그의 눈빛이 번뜩였다.

“차 대기시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