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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웬가의 소년들: 제이미 편 1화

01. 제이미 오웬과 쌀쌀맞은 선생님 (1)



“올해 신입생 중에 내 동생이 있어.”

“그렇군요. ……몰랐어요. 선배에게 동생이 있는 줄은.”

“겨울제국에서 오래 살았어. 더위를 많이 타거든. 건강하고 영리한 녀석이야. 다만 아델라이데 문화엔 익숙하지 않으니 그게 좀 걱정돼. 어린애가 아니니 알아서 잘할 테지만, 나이 차이가 나다 보니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서. 선배가 웃었다.

“네가 잘 돌봐 줬으면 좋겠어.”

“그럴게요.”

“믿는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성적을 봐 달라거나 그런 얘긴 아니야. 그냥 사고가 나지 않게만 돌봐 줘. 선배가 손을 저었다. 알아요. 짧게 대답하니 민망한 듯 코를 찡긋한다. 나를 사랑에 빠지게 했던 미소는 10년이 지나도 여전하다. 나는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



아델라이데 왕국엔 여섯 개의 명문 학원이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왕립 아델라이드 학원이지만, 어릴 때부터 지방의 섬에 갇혀 외출하지 못한다는 단점 때문에 다른 학원을 택하는 귀족들도 많다. 예를 들면 수도 근교에 위치한 팡셰트 같은.

내가 선생으로 있는 이곳 팡셰트 학원은 기숙사제 남학교로 상급반만 운영한다. 졸업생들은 수도에 있는 같은 재단의 대학에 가거나 왕실에서 일하는 기사 혹은 공무원이 된다. 나는 귀족 학생이 절대다수인 이곳에서 평민 출신 졸업생이자 연구자로 약초학을 가르치고 있다. 윌프레드 오웬은 두 살 연상으로 같은 기숙사를 쓰던 선배였다. 이후 팡셰트 대학을 졸업하여 법관이 되었고, 지금은 대표적인 일왕자파 귀족이다.

다정하고 성실한 사람이다. 기숙사에서 유일한 평민으로 천대받던 나를 도와주었고, 난생처음 짝사랑을 경험하게 했다. 졸업할 때는 학교에 남아 연구자가 되고 싶어 하는 나를 위해 제 책을 물려주기도 했다. 행여나 저쪽도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무수히 착각하게 만들었던 남자. 그런 그가 졸업하자마자 연인과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열병을 앓았다. 사정 모르는 그는 나를 친절히 결혼식에 초대했고 나는 그가 아내의 손을 잡고 반지를 교환하는 것까지 지켜봤었다.

그 자리에 선배의 동생이 있었던가. 있었다 해도 지금과는 많이 다를 터였다.

‘그렇겠지. 그때는 어린아이였고 지금은 다 자랐을 테니까.’

속으로 한숨 쉬었다. 정면의 벽에 걸린, 요정왕을 묘사한 두 점의 템페라화가 연회장을 굽어본다. 귀족이 대부분인 팡셰트는 입학식 같은 건 하지 않는다. 대신 신입생이 들어오는 첫날 전교생을 모아 저녁 식사를 한다. 산 하나를 통째로 쓰다시피 하는 학교의 규모에 비해 학생들의 수는 적은 편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1층의 거대한 홀에 학생들 전부를 밀어 넣을 수 있을 정도. 두 그림 사이의 문이 열리고 올해의 신입생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선두에 선 아이의 겁에 질린 표정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압도되겠지. 근 2백 명의 사람들이 전부 자기만 보고 있는데. 뻣뻣한 동작과 달리 아이의 키는 꽤 컸다. 소년이라기보단 청년이란 말이 어울리는 나이긴 했다. 그러나 아홉 살이 많은 내게는 그저 어린 소년들로만 보인다. 특히 저렇게 빳빳한 새옷을 입고 경직된 눈으로 이곳저곳 두리번거리고 있는 데서야.

9년 전의 나도 저랬을까. 카디건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 썼다. 잘 보이지 않아 소매로 대충 문질러 닦고 다시 썼다.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들었다.

단번에 찾을 수 있었다. 선배의 동생이 누군지는.

아이는 정확히 9년 전 윌프레드 오웬의 얼굴로 문을 넘어 걸어오고 있었다. 아흔 명의 신입생 중 가장 큰 키,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흑발, 반짝이는 회색 눈. 얼굴 중앙에서 단연 돋보이는 콧대. 내가 사랑에 빠졌던 얼굴. 홀의 오른쪽부터 찬찬히 쓸어 보던 시선이 내게 멈췄다. 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하더니 코를 찡긋하며 미소를 보낸다. 소년과 청년의 경계에 선 얼굴로.

그것마저 선배와 같았다.

숨이 막혔다.

소매로 입을 가리고 눈을 돌렸다. 돌아가는 시야로 아이가 의아해하는 것이 보였지만 무시했다. 당황한 입술에서 마른기침이 새어 나왔다. ‘왜 그래요?’ 걱정스레 묻는 동료 선생에게 별일 아니라며 고개를 젓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모두가 홀 안으로 들어오는 가운데 홀로 반대 방향으로 가는 나를 쭉 따라오는 시선이 느껴졌다. 회색이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남동생에 대한 윌프레드 오웬의 표현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더위를 많이 탄다기에 마르고 얼굴이 흰 병약한 소년을 상상했었다. 사시사철 추운 겨울제국에서 벽난로를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그러나 선배의 동생, 제이미 오웬은 그저 혈기가 지나쳐 더위를 타는 것뿐이었다. 아이는 제 몸에서 넘치는 기운을 주체하지 못했다. 두터운 갈색의 피부를 잡으면 속에서부터 발산하는 열로 뜨끈뜨끈할 게 분명하다. 저렇게 미친 말처럼 굴지만 않아도 더위가 가실 텐데. 열 살가량 차이가 나는 형이 찾아와 굳이 부탁하기엔 지나치게 건강한 아이였다.

아팠지만 이제는 괜찮다는 의미로 건강하다는 수식어를 붙인 줄 알았는데, 말 그대로 건강한 거였다. 불편한 데라곤 조금도 없이.

아이는 학창 시절의 선배와 내가 썼던 기숙사에 배정되었다. 학기가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 애를 볼 일이 없었다. 나는 평소와 똑같이 수업 준비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학생들이 밥을 먹는 식당에는 가지 않고, 복도로 나설 때마다 아직 인사조차 나누지 않은 제이미 오웬을 떠올리며 걱정하고, 하루에 한 번은 도망갈까 생각하면서.

선배는 내게 제이미 오웬에 대해 부탁한 것처럼 동생에게도 나에 대해 언급한 걸까. 제이미 오웬은 처음부터 내게 호감을 가진 사람처럼 굴었다.

1학년은 일주일에 두 번 내 교실로 찾아와 약초학에 대해 배운다. 한 번은 볕 좋은 낮에, 한 번은 어둑한 저녁에. 교재로 쓸 책을 안고 교실로 들어가자 좌중이 조용해졌다. 처음 만난 선생의 등장에 아이들이 긴장하며 집중했다. 제이미 오웬은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아 턱을 괴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스치듯 시선을 주고 뒤돌아 칠판에 이름을 썼다. 그리고 수업이 끝날 때까지 그쪽을 보지 않았다.

“약초학은 상식입니다. 여러분이 졸업 후에 기사가 되든 마법사가 되든, 혹은 다른 어떤 직업을 갖든 위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비상약에 대한 지식은 필요해요. 도시 바깥에는 드물지만 괴물이 돌아다니고, 최근엔 좀비가 된 사람들까지 출몰하니까요. 첫 수업은 약초학의 역사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해마다 내용을 고치고 다듬으며 벌써 몇 년이나 반복해 온 수업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중간중간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고 답을 맞히면 칭찬했다. 특출난 아이에게는 이름을 묻기도 했다. 마무리로 10분이면 할 수 있는 분량의 숙제를 내고 질문을 받았다. 몇몇 아이가 손을 들었다. 제이미 오웬을 포함해서. 다른 아이들의 질문을 먼저 받아 주었다.

“성함에 가문의 이름이 없는데, 평민이신가요?”

“그렇습니다.”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평민이 어떻게 팡셰트에서 교편을 잡으셨나요?”

“실제로 무례하게 들리는군요. 제가 이 학교에서 선생이 될 수 있었던 건 평민, 귀족 간 차별금지법 덕분이지만 그런 걸 묻는 게 아니겠죠. 저는 팡셰트 학원의 장학생이었습니다. 졸업 후 바로 학교의 연구자가 되었고요. 학생의 이름은 무엇이죠?”

“칼입니다. 칼 랑트네.”

“가문에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이름이군요. 그것이 학생의 유일한 자랑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기 바랍니다.”

마지막이 되어서는 외면할 수 없었다.

“제이미 오웬입니다.”

묻지도 않은 이름을 말하고 기대하는 눈으로 본다. 제가 윌프레드 오웬의 동생이에요. 사실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듯했다. 고개만 끄덕였다. ‘제가 궁금한 건…….’ 아이의 질문에 다른 학생들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정도의 상냥함으로-그러니까 퉁명하게- 대답해 주었다. 더 불친절했을지도 모르겠다.

“더 질문이 없으면 오늘은 이만하겠습니다. 추가로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면담 시간에 내 연구실로 오도록 해요. 미리 신청하고.”

수업을 마치고서야 내가 1학년들의 이름조차 확인하지 않았다는걸 깨달았다.



이후 상황도 비슷하게 흘러갔다. 제이미 오웬은 수업마다 내게 질문했고, 어떻게든 말을 걸려 애썼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모퉁이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끈질기게 따라붙는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식사 시간에 식당에 가지 않으므로 수업 외엔 얼굴을 볼 일이 없었는데, 그렇게 복도에서 만나면 놓칠세라 끝까지 따라왔다.

신학기다운 몇 가지 행사로 전원이 홀에 모일 때마다 오웬은 턱을 괴고 나만 봤다. 내가 어느 자리에 있건 아이의 눈은 나를 찾았다. 그쯤 되면 우연으로라도 한 번쯤 눈 마주칠 법했으나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내가 의도적으로 피했기 때문이다.

나는 오웬에게 잘해 주지 않았다. 다른 아이와 똑같이 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무시했다. 시선도 주지 않고 말도 걸지 않았다. 아이의 얼굴이 소년 시절의 윌프레드 오웬과 정확히 같아서. 선배와의 약속을 정면으로 어기는 일이었다. 이러지 말자고 마음을 가다듬다가도 막상 그 회색 눈동자를 마주하면 도리가 없었다. 고개 돌리고, 피하고. 이 정도로 차갑게 굴면 포기할 법도 한데 그럴수록 제이미 오웬의 시선은 점점 타올랐다. 그걸 알 수 있었던 건 내가 늘 아이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그저 흥미로 쳐다보던 어린 시선에 잉걸불 같은 열기가 어렸다. 복도에서 스쳐 지나갈 때면 내 팔목을 붙들어 세우고 싶어 하는 게 옷을 뚫고 살갗 안쪽에까지 느껴졌다. 끈질긴 면담 신청은 갖가지 핑계로 거절했다. 그저 형에게 몇 마디 이야기 들었을 뿐인 평민 선생에게 콧대 높은 귀족 아이가 왜 저렇게 집착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내가 왜 이렇게까지 아이를 피하는지도.

일과를 마친 저녁, 연구실 창틀에 앉아 바깥을 내려다보면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제이미 오웬이 보였다. 공을 들고 달리다 상대편과 맞닥뜨렸을 때 제이미 오웬이 피하거나 돌아가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오웬은 언제나 달려들어 상대를 넘어뜨리고 지나가기를 택했다. 그렇게 우격다짐으로 공을 집어넣고 환호하며 즐거워했다.

같은 기숙사 학생들과 부둥켜 안으며 소리 지를 때면 지나가던 모든 아이들이 오웬을 쳐다봤다. 젖은 셔츠, 흐트러진 머리카락. 김이 날 것 같은 피부. 날렵한 턱으로 뚝뚝 땀방울이 떨어졌다. 운동장의 모든 잔디가 저 애가 뿌리는 땀을 맞아 봤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공을 옆구리에 낀 오웬이 고개를 들어 이쪽을 볼 때 나는 황급히 눈을 내렸다. 저 아래에서는 여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저 아이가 겨울제국에서 조금만 더 오래 살았더라면 제국의 모든 얼음과 눈이 녹아내렸을 게 분명하다.



***



나는 약초를 기르는 식물원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교실을 사용한다. 약초학 수업이 낮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있는 이유도 그 시간에만 볼 수 있는 꽃과 약초를 관찰하기 위해서다. 약초를 돌보러 식물원에 들르는 것은 선생이자 연구자로서 가장 중요한 일과였다. 녹병이 생긴 묘목에 마법 선생에게 얻어 온 치료제를 뿌리고 손을 씻을 때였다.

“선생님.”

별안간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흠칫 등줄기가 굳어졌다.

제 형의 것과 달리 조금 거칠게 감겨 오는 목소리. 조급한 듯 흙을 누르며 거침없이 다가오는 발걸음. 숙였던 허리를 천천히 폈다. 옆에 놓인 수건에 손을 닦으며 뒤돌았다. 빠르게 다가오던 오웬이 내 시선이 제 발에 닿는 것을 보고 멈췄다. 그 애의 구두코가 막 흙에서 머리를 내민 붉은 새싹을 밟기 직전이었다.

“조심할 줄 모르는구나. 오웬.”

“죄송해요. 전 그냥…… 지나가다 선생님이 계신 걸 보고.”

“일하는 중이야. 특별히 볼일이 없다면 그만 가 줬으면 좋겠는데. 저녁 시간이 되지 않았니?”

“저녁은 먹었어요. 오늘은 수업을 빨리 마쳤거든요.”

“그렇다면 기숙사로 돌아가서 쉬는 게 어떠니.”

“선생님은 안 드세요? 식당에서 뵌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난…….”

먹는 걸 싫어해. 하려던 말을 멈췄다. 거기서 멈추라고 신호를 주었는데, 오웬이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새싹을 밟지 않도록 주의하며 조심스레, 그러나 성큼성큼. 입학한 지 한 달이 되지 않은 걸로 아는데 차림새만은 졸업을 앞둔 3학년의 그것이다. 셔츠 단추는 두 개나 풀려 있고, 타이는 헐겁다. 소매 역시 팔꿈치까지 걷어 놓은 상태였다. 가슴에 교표가 붙은 스웨터 아래로 셔츠 밑단이 빠져나온 게 보였다. 어디서 긁혔는지 팔과 턱엔 자잘한 생채기까지 있다. 그 꼴로 눈이 마주치자 씨익 웃는다. 회색 눈이 가늘어졌다. 인상을 찌푸리고 말했다.

“뭔가 요청할 게 있으면 거기서 해. 더 다가오지 말고.”

흙밭을 건너오던 오웬의 발이 뚝 멈췄다.

“어떻게 아셨어요?”

너는 지나갈 때마다 내게 말 걸지 못해 안달이지만 이렇게 불쑥 찾아오는 유형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매번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성실하게 면담 신청을 하는 아이였다. 나는 약초학에 관한 질문이 아니면 너희 사감과 하라고 매번 거절하고 있었고. 늘 사용하던 핑계를 이번에도 사용했다.

“네 사감 선생님이 거절한 거라면 나도 거절이야.”

“사감 선생님께는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그럼 너희 사감 선생님께 먼저 요청하는 게 순서겠지.”

“결국 선생님께 오지는 말란 거네요.”

정확했다.

부루퉁해진 얼굴로 오웬이 주머니에 손을 꽂았다. 팔다리가 길어 사소한 동작에도 맵시가 있었다.

“전 외출증이 필요해요.”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오웬의 말이 이어졌다.

“같이 나가기로 한 친척은 외출증을 받았는데, 저희 사감 선생님은 엄해서…… 칼이 말씀드려 봤는데 친지가 죽었을 때가 아니면 안 된다고 했다더라고요. 아, 칼은 저랑 같은 방을 쓰는 애예요.”

고작 외출을 하자고 친척에게 암살자를 보낼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소년 같은 투덜거림이었다.

제이미 오웬의 기숙사 사감 선생님이 어떤지는 나도 잘 알았다. 내가 학생일 때도 그 선생님이 사감이었고, 나도 똑같이 힘들었으니까. 심지어 그녀는 지금도 나를 힘들게 했다. 만약 다른 학생이 부탁해 왔다면 외출해서 누구와 뭘 할 건지 캐물은 후 외출증을 내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번 제이미 오웬의 부탁을 들어주면 앞으로도 계속 나를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점이 신경 쓰였다. 아이와 친분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망설이는 동안 오웬이 한 발자국 더 가까워졌다.

“선생님, 제발요…….”

회색 눈을 애처롭게 찡그리며 나를 내려다본다. 긴장에 꽉 쥐어지는 손을 수건 안으로 감췄다. 기댈 곳을 찾는 사람처럼 등 뒤의 세면대를 짚고 접근하는 오웬을 보았다. 눈을 마주친 건 처음이던가. 학생의 선을 지켜 공손하던 눈빛이 어느 순간 막무가내로 돌변하며 거침없이 박혀 든다. 눈빛을 의식하는 순간 무언가가 몸을 조여 온다고 느꼈다. 식물원이 이렇게 넓은데도. 자리를 피해야 했다.

“안 돼.”

간단하게 대답하고 나가려는 나를 오웬이 잡았다.

“선생님?”

오웬은 내가 걸친 로브 끄트머리를 조심스레 잡았을 뿐인데 나는 진저리 치며 그 손을 떨쳐 냈다. 격한 반응에 오웬이 한 발자국 물러났고, 나는 비틀거렸다.

“괜찮으세요?”

잡아 주려는 손길을 거절했다.

“제이미 오웬.”

“……네, 선생님.”

“네가 필요한 건 외출증이지?”

“…….”

“해 줄 테니 내 몸에 손대지 마.”

식물원에는 수업을 진행하기 위한 간이 책상 몇 개가 설치되어 있다. 빙 돌아 오웬과 최대한 멀리 떨어진 책상으로 갔다. 지난 시간에 사용하고 치우지 않은 양피지 한 조각과 펜을 끌어당겼다. 제이미 오웬. 상기 학생의 외출을 허락한다는 글을 아무렇게나 휘갈겨 쓰고 잉크도 말리지 않은 채로 오웬의 가슴에 밀어붙였다. 얼굴은 보지 않았다. 윌프레드 오웬과 똑같이 생긴,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얼굴. 빨리 받고 여길 나가 줬으면 하고 바랐는데 오웬은 움직이지 않았다. 외출증도 받지 않은 채 잠자코 있다가 묻는다.

“선생님은 제 형의 후배라고 들었는데. 아닌가요?”

“맞아.”

“그런데 왜.”

“…….”

“저는 선생님이 좀 더…… 친절하게 대해 주실 줄 알았어요. 형은 자기가 선생님과 친하다고 했거든요. 가장 아끼는 후배라고.”

“내가 네 형과 친한 건 사실이야. 그렇지만 오웬.”

“네, 선생님.”

“내가 너랑 친한 건 아니잖니?”

“…….”

“슬슬 피곤해지는구나.”

그러니 빨리 이거 받고 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