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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1. 오라버니의 첩은 싫습니다



이곳은 물결치는 구름이 아름답다는 백운산 자락. 매은이 수도하는 도관이다.

커다란 사내가 작은 계집 앞에 목검을 겨누며 인상을 썼다.

“요 조그만 걸 상대로 겨루라니, 좀 너무하신 거 아니오?”

마주 선 계집의 붉은 입술이 질끈 물린다. 할 수 없다는 듯 큰 덩치의 사내는 긴 팔로 차락, 검을 뻗었다. 계집이 얼른 톡, 받아친다.

어? 이번 건 실수야, 표정을 가다듬으며 사내는 계집의 작은 가슴을 사정없이 콰악 찌른다. 그러나 유연하고 작은 몸은 고양이처럼 부드럽게 폴짝 움직인다. 콱 찔러 드는 검단은 허공을, 홱 치켜드는 검날은 또 빈 곳을 벤다. 한 번, 또 한 번, 한 번 더!

헉, 헉, 헉! 벌겋게 단 사내의 얼굴에 땀이 차오른다.

“다 되셨습니까. 그럼 갑니다!”

이번엔 계집의 공격이다.

우박처럼 쉴 틈 없이 쏟아지는 검날, 사내는 한 발, 두 발 뒷걸음질 치며 밀리다 결국 터엉! 하는 소리와 함께 검병(검의 손잡이)을 놓친다. 내공을 다스리며 휘릭, 팔을 뻗는 계집의 가느다란 손목. 그 위에서 목검은 허공을 휘돌아 긴 호선을 그리며 저 멀리 툭 떨어졌다.

“하하하! 요 조그만 것에게 이리 금세 졌습니다? 무과 응시는 다음을 기약하는 게 낫지 않겠소?”

큰 사형, 모정이 즐겁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아령과 겨누던 사내는 이번에 들어온 뜨내기 귀족. 얕은 실력을 자랑하며 잘난 체를 너무 하니, 모정이 “콧대 좀 죽여 줄래?” 부탁했었다. 웃으면 안 되는데. 그러나 아령도 조금 “흐흐흐.” 웃고 말았다.

뜨내기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어디서 계집 노비가 귀족을 희롱하느냐!”

즐겁게 웃던 아령의 얼굴에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뜨내기는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어디서 부모도 없이 남의 첩이나 될 것이! 하룻밤 여흥거리도 안 되는 못난 계집이 칼을 잡고 설치느냐. 지금 당장 바지를 벗겨 내 양물을 박아 넣어도, 매은이라고 네 편을 들어 줄 성싶으냐!”

말이 거칠어지자, 큰 사형은 웃음기를 거두며 말했다.

“이보십시오, 자제님. 그게 아니라 모든 수련에는 체계가 있으니 처음부터 찬찬히 배워야 한단 뜻입니다. 무조건 이번 무과 급제만 말씀하시면 저희도 힘들지 않겠습니까.”

“돈 받고 재주를 파는 주제에 말이 많구나!”

그때였다. 빨간 코, 작은 키의 마른 몸으로 머리는 반쯤 빠져 듬성듬성한 백발의 매은이 찬찬히 뒷마당으로 걸어왔다. 버럭 화를 내던 뜨내기 귀족도 매은의 모습을 보곤 “으흠!” 헛기침을 했다.

“급제 여부는 어차피 정해져 있을 테니, 찬찬히 수련을 하십시오.”

매은이 다독이니 귀족은 화를 억누른다.

“제길, 내 참! 황후마마와 같은 장씨 성을 쓰면서 내가 급제를 걱정하겠나?”

매은이 무섭게 눈짓을 하니 모정도 얼굴을 붉히며 뜨내기 귀족과 함께 마당을 나섰다. 목검을 든 아령만 홀로 남겨졌다.

“넌! 왜 쓸데없는 짓으로 분란을 만드느냐. 검에는 손도 대지 말란 내 명이 우습더냐?”

매은의 역정에 아령은 서운하다. 오늘따라 매은의 얼굴엔 근심과 울화가 가득했다.

“절 가르치신 건 스승님이지 않습니까.”

“네 몸이나 지키라 했지, 어디서 사내들 앞에서 팔랑팔랑 재주를 자랑하느냐?”

“그래도……. 전 이대로 수련에 정진해 무인이 되는 것이 꿈이란 말입니다.”

“벼슬할래? 계집을 뽑는 무과가 있디? 집 안에 가만있으랬더니 왜 담장 밖을 나서길 또 나서!”

억울했다. 스승님은 늘 집 안에만 가두어 두려 하신다. 산에도 가지 말고, 수련장에도 가지 말고, 대련도 하지 말고, 그냥 집 안에만 콕콕콕. 나는 숨이 막혀 죽을 것이다.

“예! 계집을 뽑는 무과가 없는 게 한입니다. 사내면 진왕 전하가 계신 금의위에 들어가 멋지게 벼슬을 하고 싶습니다.”

“뭐? 진왕? 금의위!”

어이없어하며 스승이 바라보자 아령은 기분 좋게 씩 웃곤 말을 보탰다.

“예. 좀 더 나이가 많았으면 진왕 전하의 주작군에 들어가 북호와 싸우고 남적도 무찌르고 내란도 막는 멋진 전공을 세……!”

“닥치거라!”

부들부들 떠는 매은의 매서운 눈에 아령은 입을 닫아 버렸다. 그래, 오늘은 좀 반항이 과했다. 그래도 얻어맞을 각오로 할 말은 더 했다.

“그러니까, 그런 건 못 하니까…… 무예를 더 닦아 금성에 사는 부인들의 호위가 되고 싶단 말입니다.”

글썽거리는 눈물 속 머뭇거림은 진심이었다. 매은은 그 간절한 눈빛을 읽고 “에휴!” 한숨을 길게 내쉰다. 저런 아이에게 내가 해 줄 것이 무엇인가.

그러나 그의 눈빛은 그럴수록 굳건해졌다.

“계집은 사내를 만나 해로하는 것이 행복이라 그리 가르쳤거늘!”

물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도 지지는 않는다.

“이곳은 와국(鼃國)입니다. 여인도 벼슬 빼곤 뭐든 다 할 수 있다고요. 재산도 갖고 이혼도 하는데, 스승님만 왜 옛 유가의 가르침에 얽매여 절 집 안에만 가두어 두시려 하고…….”

눈치를 슬쩍 보곤, 매은이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란 걸 알고는 다시 웃으며 재재거린다.

“그러신지 모르겠습니다. 스승님? 전 금성에 가고 싶습니다. 그러니 이 아이가 매은의 제자이다! 시원하게 추천서 한 장만 써 주시면……. 아, 괜찮으시면 아예 소개장을 써 주시면…….”

“가라! 금성에.”

매은은 시원하게 뱉는다.

“저, 정말요? 감사합니다! 그럼, 얼른 짐을 싸겠습니다?”

웬일이니, 하는 반가운 얼굴로 바라보자 매은은 짜증을 부렸다.

“네가 영덕교 아래 거지 소굴에서 노숙을 해 봐야 정신을 차리지!”

그럼 그렇지, 하며 아령은 피식 바람 빠진 얼굴을 했다. 그러나 매은은 한 말을 또 했다.

“가라. 금성에.”

“예에?”

장난은 분명 아닌데 ‘뭐지?’ 하는 표정으로 아령이 매은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매은의 얼굴은 곧 묵직하게 가라앉는다. 그는 어느새 가져다 두었던 푸른 보따리를 그녀에게 툭 집어 던졌다.

“경방이 널 첩으로 맞겠다는구나. 옷과 패물이다.”

한 대 얻어맞은 표정. 딱딱하게 얼어붙은 채 그대로 받아 들었다.

“그러니 손님 맞을 준비나 해. 목욕도 하고 단장도 하고.”

아령의 낯을 확인한 매은은 차라리 속 시원하단 기색이다. 맑디맑은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비단 보따리를 툭, 내려놓는다.

“싫습니다!”

“경방과는 잘 지내지 않았니.”

“오라버니가 그렇게까지 싫은 것은 아니지만…….”

“그러면 되었지 뭘.”

“첩은 싫습니다! 어떻게 남의 남편을 훔쳐 쓰는 인생을 살라 하십니까?”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지만 매은도 지지 않는다.

“싫어도 할 수 없다. 잔말 말고 이번에 그가 오면 따라가라.”

“스, 스승님!”

매은은 냉정히 몸을 일으켰다. 이건 설명도 설득도 아닌 그저 통보였다.

“그믐이다. 너 약도 먹어야 하고. 한 사흘 자리를 비우마. 돌아와 없으면 갔겠거니, 하겠다.”

약. 그렇지 약.

가슴이 먹먹하게 잦아들었다. 죽을 목숨이 살아나며 경방에게 진 빚이 얼마인가. 나이 열둘에 죽을 뻔했던 아령을 경방과 스승님이 살렸다. 그들과의 인연은 7년. 스승님은 아령을 키웠고, 경방은 그믐마다 약을 지어 나르며 아령을 살렸다. 하늘이 내려 주신 고마운 인연들.

그러나 항상 따스한 경방과 달리 스승님은 이리 차갑다. 늘 이별할 준비를 하셨다. 넌 경방을 따라가면 그만이다, 항상 그리 모질게 정을 떼셨다. 그래, 결국은 날 이렇게 떠나보내려 하셨었나.

아령은 목걸이를 풀었다. 서로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는 이별. 진짜 이별이구나.

“맡겨 두셨던 물건입니다.”

서역에서 온 상아를 조각한 목걸이였다. 아니, 귀갑형의 인장이 목걸이처럼 만들어진 것이다. 손가락보다 짧은 그것을 내밀자, 매은은 크게 숨을 들이켜며 차마 받지 못했다. 입술을 달싹이며 혀를 축인다.

“그건…… 네 것이다. 단 하나뿐인 아주 귀한 물건이니, 잘 지녀라.”

“가장 귀한 친우의 것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널 줬으니 네 것이다. 가마.”

고개를 돌리셨다. 떨리는 몸은 그녀와의 이별을 조금쯤은 슬퍼하시는 것일 게다. 아령은 스승의 그늘진 등을 알아챘다.

“절 좀 붙들어 주십시오. 기어이, 저를…… 오라버니의 첩으로 보낼 작정이십니까!”

“자리를 잡고 잘 지낸단 소식을 보내라. 그래야 널 보러 갈 구실이 생기지.”

슬쩍 바라보는 눈에 물기가 어려 있었다. 아령은 스승의 손을 마지막으로 꽉 붙들었다.

“스, 스승님!”

“칼을 멀리해라. 글 배우면 글 쓸 일이 평생, 춤 배우면 춤출 일이 평생이다. 칼을 쥐고 살면 언젠간 다칠 일밖에 없어. 알아듣니?”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 인사였다. 매은은 냉정하게 밖으로 나섰다.

아령은 힘없이 방으로 돌아와 앉았다. 지창 밖은 날씨가 참으로 좋다.

언젠간 이렇게 되리라, 어렴풋이 짐작은 했었다. 늘 보호자를 자청한 경방 오라버니, 남의 것을 맡은 듯하시던 스승님.

백운궁은 마당이 너른 겹처마의 멋들어진 고택이지만, 그래 봐야 세 장(丈)이 넘는 높은 석벽에 갇혀 사는 것이다. 낮이나 밤이나 홀로 견디며 읽을 만한 것이라고는 여인의 품행을 가르치는 『여계』, 『여논어』, 『내훈』 같은 숨 막히는 것들.

계집은 웃을 때도 화날 때도 소리를 죽여라. 남녀는 다르니 집안사람이 아닌 남자와는 말도 주고받지 말아라. 계집이 밖으로 나갈 때는 반드시 얼굴을 가리고 몸을 숨겨라. 어찌나 이것저것 말라는지.

문득 손에 든 비단 보따리를 내려다봤다. 풀어 보니 머리에 꽂을 장신구며 노리개며 비단옷이 가득하다. 그녀로선 꿈에서도 보지 못했던 값진 것들이다.

손에 잡히는 대로 하나 집어 들었다. 슬쩍 흔드니 비단으로 만든 모란 위에 금나비들이 파르르 춤을 춘다. 아름답다.

욕심나지 않는다면 거짓. 오라버니의 첩이 되면 평생 몸 편히 지낼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곧 혼약자와 성혼을 하실 텐데.

부인을 안은 뒤 자신에게로, 자신을 안은 뒤 다시 부인에게로 가는 것을 나는 과연 견딜 수 있을까. 아니, 황자인 그에게 과연 여인이 둘뿐일까.

나는 투기를 할 것이다. 나는 그의 마음을 할퀼 것이다. 절대 그의 부인께 순종하며 그녀의 노비로 살지 못할 것이다. 고매하고 고귀하신 그의 부인이 하는 헛소리에 기가 차 싸대기를 대차게 날리곤 어느 날 참형을 당할지도.

아령은 한쪽에 쌓인 책들을 밀어 치웠다. 이따위 뭉치에 적힌 대로는 못 하겠다. 차라리 몸뚱이가, 아니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겠다.

아령은 농에서 무명 보따리를 꺼내 들었다. 수련할 때만 입던 낡은 고습(바지저고리)을 두 벌 넣고 한 벌은 입었다. 머리를 질끈 동여맨 게 어린 소년 같다.

단정히 정돈된 방, 보화가 가득한 푸른 비단 보따리. 그 위에 경방에게 이별을 고하는 작은 지편을 남겼다. 그러곤 작은 무명 보따리를 들고 일어났다.



* * *



백운산 자락으로 말 탄 자들의 행렬이 오른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탁탑천황을 모시는 백운궁. 소원을 빌고 제를 지내는 도관이나, 매은의 무도관으로 더 유명하다. 매은의 무예를 얻고 싶어 하는 전국의 젊은이들이 고하를 막론하고 몰려드니 말이다.

삼십여 명쯤이 죄다 시커먼 무복을 입었다. 길잡이는 경직된 표정으로 두 젊은이를 모셨는데, 하나는 같은 검은 무복 차림이고 하나는 화려한 비단옷을 입었다. 번들거리는 비단옷을 입은 자가 말했다.

“이번에 첩으로 들이려는데 말입니다.”

륜은 백운궁의 계집 노비에 대해 계속 떠드는 경방을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성혼이 코앞인데 웬 첩을 들이러 이 산중까지. 그러나 관심 없어 하는 륜의 눈치를 보면서도 경방은 새로 들일 첩 이야기를 꾸역꾸역 쏟는다.

“여인에 대한 제 편견을 깼지요. 계집은 얼굴 곱고 밤일 잘하고 다정하면 그뿐이라 여겼는데, 그 앤 다릅니다. 저를 좀 휘두르는 구석이 있지요.”

음담패설로 넘어가려는가. 륜은 인상을 팍 썼다.

“헛소리하려거든 입 닫아라.”

경방은 눈치를 슬쩍 보곤 또 말을 싹 고친다.

“제 가슴을 뛰게 한다고요. 당차고 영리하고 제멋대로인 게, 그리하여 어디로 어찌 튈지 몰라 불안불안한 것이 매력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 금성의 여인들과는 완전히 달라요.”

그러나 륜의 날카로운 눈매는 겁을 잔뜩 집어먹은 경방을 놓치지 않았다. 왜 저리 온몸이 빳빳하도록 긴장해선 제 첩에 대한 이야기를 쉬지 못하는가.